일반산행/강원도의 산

쉰움산, 두타산, 청옥산, 신선봉 이야기(2012.10.20~21[무박산행])

약초2 2012. 10. 24. 06:21

1042번째 산행이야기

쉰움산, 두타산, 청옥산, 신선봉 이야기

 

1.산행날짜: 2012년 10월 20일(토)~21일(일): 무박산행

2.참가인원: 새싹산악회 828차 정기산행 16명

3.산행날씨: 맑고 화창함

4.산행코스: 천은사→쉰움산→두타산→박달령→청옥산→연칠성령→문간재→신선봉→문간재→무릉계곡→무릉계곡주차장

 

5.산행시간: 04:50~15:50 (11시간)

-23:00 건대입구역 발

-02:26 동해휴게소

-03:10~04:10 천은사에서 차량취침

-04:10~04:30 아침식사

-04:50 산행시작

-06:10~06:45 쉰움산에서 일출과 휴식

-08:30 두타산 착

-11:00 청옥산 착

-12:06 연칠성령 착

-13:28 칠성폭포

-13:43 사원터

-14:08 학등 입구

-14:20 신선봉 착 / -14:40 발

-15:50 무릉계곡 주차장 착(산행종료)

 

◆천은사일주문-(1:20)-쉰움산-(1:45)-두타산-(0:45)-박달재-(0:45)-청옥산-(0:25)-연칠성령-(1:00)-칠성폭포-(0:15)-사원터-(0:25)-학등입구-(0:12)-신선봉-(1:10)-무릉계곡주차장

 

※휴식없이 8시간 2분 걸린다. 실제 휴식포함하면 11시간 걸렸다.

 

6.산행후기

 

오랜만에 무박산행을 했다. 언제 무박산행을 했나 한 번 찾아봤더니 4월14~15일 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무박산행을 한다. 글쓴이가 소속된 산악회(새싹)는 매번 저녁 10시에 출발했는데 이번에는 1시간 늦춰 11시에 건대입구역에서 출발했다.

 

그동안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버스가 있었는데 몇 달 전부터 그 기사가 차량을 매매한 후 쉬고 있고 대신 다른 버스를 소개하곤 했었다. 이번에도 그 기사에게 소개를 받아서 운행을 하려고 했는데 요금이 너무 비싸(105~110만원) 새로 알게 된 기사님이 소개해준 버스로 운행을 하게 되었다. 5만원 할인받아 100만원에 계약을 하고는 건대입구역에서 출발했다.

 

이미 카페에 댓글이 올라오는 숫자로 봐서 인원이 적으리라고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너무 적은 숫자(16명 참석)에 실망을 많이 했다. 그렇게 16명의 회원님들과 함께 산행지인 천은사로 향했다. 그런데 기사님이 졸음운전을 하는 것 같다는 일부 회원님 말에 화들짝 놀랬다. 야간운전을 하는 분이 졸음운전을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큰일 날 일이다. 낮에도 일을 했기 때문이라는데….

 

우여곡절 끝에 산행 들머리인 천은사에 도착을 했다. 3시경에 도착을 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조금 쉰 후 4시부터 아침을 먹고 5시 정각에 산행을 시작할거라고 기사님에게 예기를 하니 놀라면서 본인은 낮에도 일을 했기 때문에 빨리 자야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난감했지만 조금 늦게 잔다고 귀경길에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어서(산행시간이 9시간이라 충분히 시간적여유가 있기 때문에) 기사님에게 조금 피곤하시더라도 이해해 달라고 했다.

 

새벽 4시경에 미리 준비한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는 잠시 휴식을 하다가 4시 50분에 산행을 시작했다. 버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무릉계곡 주차장으로 떠났다.

 

새벽하늘을 보니 별들이 쏟아진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밤하늘의 별자리들이다. 아주 선명한 별자리들을 보니 내일 일출에의 꿈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았다.

 

「두타산 천은사(頭陀山 天恩寺)」라고 쓴 현판이 걸린 천은사 일주문을 지난다. 이후로 세월의 깊이를 더해주는 아름드리 고목(느티나무)이 자라는 수림터널의 길은 비록 컴컴한 밤이지만 운치가 있다. 보호수로 지정된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꽤 많이 보인다.

 

두타산 천은사(頭陀山 天恩寺)

위치: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고천리 785

 

천은사는 이승휴가 한민족의 대서사시인 제왕운기를 저술한 곳으로 알려져 이 일대가 이승휴의 휴허지로 지정되었다. 사찰의 창건은 경덕왕 17년(758년) 인도에서 두타의 세 신선이 흰 연꽃을 가지고 와서 창건했다는 백련대(白蓮臺)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흥덕왕 4년(829년)에 범일국사가 극락보전 건립으로 사찰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고려 충열왕 때 이승휴가 용안당을 짓고 삼화사에서 대장경을 빌려다 10년 동안 읽었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제왕운기』를 저술하였으며 절 이름을 간장암(看藏庵)으로 바꾸고 절에 희사하였다.

 

1598년 서산대사가 절을 중건하고 흑악사라 칭하였고, 1769년과 1831년에 재차 중건되었다. 1899년 목조 아버지의 묘소인 준경묘를 수축할 때 조포사로 삼았으며 이로 인해 천은사로 절 이름을 바꾸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모든 건물이 불에 타고 현재의 건물은 1972년 주지 문일봉 선사가 극락보전· 약사전· 설선당· 육화료· 영월루· 용안당· 삼성각 등을 중창하였다. 사찰입구의 자갈오솔길, 벚꽃나무 가로수의 감각적 체험을 할 수 있으며, 사찰 뒤로 쉰움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삼척시청 홈피에서 발췌]

 

오대산 월정사의 말사인 천은사는 아름드리 고목 숲에 가려진 아늑한 절집이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7호로 지정된 아미타삼존불좌상이 극락보전 안에 봉안되어 있다.

 

고려시대의 강직한 관리였으며 대학자인 이승휴(1204~1300)가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귀중한 자료의 하나인 「제왕운기」를 저술한 곳이다.

이승휴는 가리 이씨의 시조로 호를 동안거사라고 하였으며, 고려 고종 때 문과시험에 합격한 신진관리로 직간으로 파직을 반복하였다.

서장관이 되어 원나라에 다녀온 이후 우사간, 전중시사 등을 역임하였으나 관직을 버리고 외가인 두타산 구동으로 돌아와 용안당이라는 건물을 짓고 살면서 「제왕운기」를 저술하였다.

용안당은 후에 간장암이라 하였고, 간장암은 다시 천은사로 이름이 바뀌었으므로, 현재의 천은사 일원은 이승휴가 거처하였던 유허지 임을 알 수 있다.

「제왕운기」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칠언시와 오언시로 엮은 서사시로 민족문화의 우월성과 역사적 전통을 강조한 귀중한 자료이다.

 

쉰움산 등산로는 절 내부로 들어가서 사찰 구경을 한 후 시작해도 되는데 한밤중이라 아쉽게도 사찰 구경하는 것은 포기하고 사찰 옆으로 조성되어있는 등산로를 따라 진행했다.

 

우측으로 천은사를 두고 등산로를 따라 진행했다. 등산안내도와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거리를 확인하니 두타산까지 5.1km이다.

 

5~6분이면 아치형 철다리를 건너게 되고, 다시 6분 후 철다리 하나를 더 건너간다.

두 번째 철다리를 지나 10분 후 이정표(→쉰움산 0.8km, 두타산 4.3km, ↓천은사 0.7km)가 있는 갈림길에 닿는다. 직진하는 길을 따라 계속되는 좌남골을 타다가 쉰움산을 오를 수도 있지만 이정표는 오른쪽 산비탈로 길을 안내하고 있다.

 

이정표에서 계류를 뒤로 하고 우측 가파른 산비탈로 10분 남짓 올라 산중턱쯤에 이르니 아름드리 노송과 바위들이 보이고 왼편으로 거대한 바위인 은사암이 보인다.

 

은사암에서는 다시 주등산로로 되돌아 나와 암봉 위로 올라설 수도 있지만 암봉 아래를 왼편으로 돌아 반석이 끝나는 지점에서 짧은 릿지길을 올라서도 암봉 위로 갈 수 있다.

 

은사암 암봉 위로 올라서면 너른 전망대로 곳곳에 작은 돌탑들이 늘어서 있다.

이곳에서 보는 풍광 또한 한동안 발길을 붙잡아 두기에 충분하다. 회원님들은 비록 어둡지만 분재 같은 소나무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쁘다.

 

은사암을 뒤로 하고 10분 가량 올라서면 길섶으로 작은 샘터가 나온다.

샘터를 지나면 곧 쉰움산까지 0.1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는 능선 안부에 올라서게 된다. 여기서 오른편은 실제 쉰움산 삼각점이 있는 688봉이고, 왼편 방향이 일반적으로 쉰움산으로 부르는 「오십정산(670m)」정상석이 있는 방향이다.

 

쉰움산까지 이어지는 길은 암릉 능선으로 되어 있지만 암릉 왼편으로 우회길이 있다.

직진하여 바윗길을 올라가면 이내 오십정산(쉰움산)의 이름을 낳게 한 돌 웅덩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가뭄이 심해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는 하나도 없었다.

 

 쉰움산(오십정산)에서 일출을 기다리며

 

 2012년 10월 21일(일) 쉰움산 정상에서의 일출

 

일출을 보며!

 

 쉰움산에서의 일출

 

 쉰움산(오십정산) 정상석 앞면

 

 쉰움산(오십정산) 정상석 뒷면

 

쉰움산 정상에서 바라본 빈내골(비린내골)의 협곡

 

 

 쉰움산 정상에서 두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모습(정상부 능선에만 침엽수가 있다)

 

쉰움산 정상부는 몇 백 명 정도라도 너끈히 쉴 수 있는 거대한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린내골 쪽으로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데 쉰움산의 한자이름인 「오십정(五十井)」이라고 써져 있다. 아직 일출시간이 남아 있지만 이제 주변은 많이 환해졌다. 이곳에서 일출을 보기로 했기 때문에 자리 잡고 휴식을 하면서 간식을 먹었다.

일출이 뜨는 쪽으로 구름이 끼어 있어서 제 시간에 일출 보기는 틀렸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날씨가 맑기 때문에 구름위로 떠오르리라 생각은 했다.

 

아직도 시간이 조금 남아 있어 주변 경치를 더 구경한다. 역시 비린내골의 협곡이 압권이다. 오십정(실제로는 50개 보다 더 많은 돌 웅덩이가 있다)의 돌 구덩이와 분재 같은 소나무들! 너무 멋진 오십정산의 정상 풍경이다.

 

쉰움산(일명 五十井山. 670m)

위치: 동해시,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 소재

 

쉰움산은 삼척시 동쪽 15Km 지점의 전국적 명산인 두타산의 북동쪽 상에 솟은 작은 한 봉우리다. 이 산은 태백산과 마찬가지로 무속의 성지라 이를 만한 곳이다. 산 곳곳에 치성을 드리는 제단, 돌탑 등이 즐비하다. 어느 할머니가 이곳에 놀러왔다가 그만 신이 내려 무당이 되었다는 일화도 전한다. 쉰움산은 실은 산봉의 정상이 아니라 여기저기 수많은 웅덩이가 패인 암반지대다. 쉰움이란 지명은 이처럼 오십 개의 움이 팼다는 뜻으로, 한자로는 오십정산이라고도 표기를 한다. 쉰움산에는 이승휴의 「제왕운기」가 쓰여진 역사 깊은 사찰이 있는데, 천은사가 그것이다. 역사적 의미가 소중하여 사적441호로 지정되었으며, 주변의 두 아름도 넘는 노거목 숲의 풍치가 기막히다.

 

◆입산금지 안내

춘계 : 매년 2.15 ~ 5.15(사정에 따라 연장될 수 있음)

추계 : 매년 11. 1 ~ 12. 15(사정에 따라 연장될 수도 있음)

 

 

◆등산로

① 댓재(산신각) → 통골목이 → 두타산 6.1Km (3시간 소요)

② 번천리 → 통골목이 → 두타산 6.0Km (2시간 30분 소요)

③ 중봉분교 → 망군대 → 청옥산 8.1Km (5시간 소요)

※ 청옥산 → 두타산 3.2Km (1시간 50분 소요)

④ 천은사 → 쉰움산 → 두타산 5.6Km (3시간 소요)

⑤ 내미로 → 천은사 → 쉰움산 2.2km (1시간 20분 소요)

 

※삼척시청 홈피에서 발췌

http://tour.samcheok.go.kr/03joy/03.jsp?amode=_viw&idx=83&type=_blank&cate=6

 

시간이 흘러 대장님이 소리친다. 해가 뜨기 시작한다고!

간식을 먹던 자리에서 일어나 일출을 구경한다. 얕은 구름이 끼어 있어서 비록 수평선 바다 위에서 올라오는 일출은 아니지만 그래도 구름을 뚫고 나오는 장엄한 붉은 해가 온 천지를 뒤덮기 시작할 때의 감격! 너무 멋진 일출을 구경했다.

 

일출을 구경하고 이제 두타산을 향해 출발했다. 초반에는 거의 평지 길을 진행한다.

곧바로 쉰움산 기도터 제단이 나온다. 무속의 성지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돌을 쌓고 치성을 드린 흔적이 있는 제단터이다.

 

쉰움산에서 남서쪽 능선으로 100m거리, 7~8분쯤 진행하면 돌탑과 이정표(↓쉰움산 0.1km, 천은사 1.5km, ↑두타산 3.5km)가 서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이정표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았지만 여기서 왼쪽 아래 사면을 타고 내려서는 길은 좌남골로 내려선 후 다시 천은사로 원점 회귀하는 짧은 길이다. 쉰움산 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하산지점이 되는 곳이다.

 

돌탑을 지나 5분정도 진행하니 헬기장이 나온다.

 

쉰움산을 출발하여 1시간 정도 진행하니 두타산성 3거리에 닿는데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쉰움산에서 두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가끔씩 대간 길인 청옥산~고적대 능선이 잘 보이고 단풍이 든 능선이 너무나 멋지다.

 

계속되는 오름길에 두타산 정상을 밟기가 힘이 들지만 그래도 쉼없이 계속 올라가 결국 두타산 정상에 도착했다.

 

제법 큰 무덤 하나가 고스락을 지키고 있는 두타산 정상은 사방에서 보면 우뚝하지만 너른 평지이다. 정상석은 예전의 그대로이고, 새롭게 이정표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두타산(頭陀山. 1,352.7m)

위치: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두타로

 

미로면과 하장면 그리고 동해시 무릉계곡의 경계에 자리 잡고 있는 해발1,352.7m의 두타산은 삼척의 모산이며, 백두대간의 주봉을 이루고 있으며, 청옥산, 쉰움산과 이어져 있다. 두타산은 바람의 산이라 할 만큼 바람이 모질게 부는 곳으로, 산 이름인 두타는 불교용어로서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弗道)수행을 닦는다는 뜻이다. 삼척시의 영적인 모산(母山)으로서 선망의 대상이기도 한 두타산은 백두대간의 주봉을 이루며 쉰움정, 용소, 주목, 철쭉 등이 유명하며 제왕운기를 저술한 이승휴의 유허지인 천은사가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빼어난 산세와 희귀동식물의 비경이 감추어져 내려져오고 있는 곳이다.

 

두타산성 : 동북쪽 산허리 험준한 곳에 둘레 8607척의 석성이 있어 이것을 두타산성이라고 한다.

 

입산금지 안내

춘계 : 매년 2.15 ~ 5.15(사정에 따라 연장될 수 있음)

추계 : 매년 11. 1 ~ 12. 15(사정에 따라 연장될 수도 있음)

 

 

등산로

① 댓재(산신각) → 통골목이 → 두타산 6.1Km (3시간 소요)

② 번천리 → 통골목이 → 두타산 6.0Km (2시간 30분 소요)

③ 중봉분교 → 망군대 → 청옥산 8.1Km (5시간 소요)

※ 청옥산 → 두타산 3.2Km (1시간 50분 소요)

④ 천은사 → 쉰움산 → 두타산 5.6Km (3시간 소요)

⑤ 내미로 → 천은사 → 쉰움산 2.2km (1시간 20분 소요)

[삼척시청 홈피에서 발췌]

 

 2004.10.31 대간 종주할 때의 사진(필름사진)

 

 새싹산악회 전순기 고문님은 대간 종주(댓재~백봉령)하고 나머지 지원조는 쉰움산 거쳐 두타산에 올랐다. (2006.04.23)

 

2006.04.23일 새싹산악회 대간 지원조들과 함께(맨 우측에 고인이 된 김종천 사장님 모습도 보인다)

 

그대로 그 모습 현재의 두타산 정상석

 

이후 시간이 조금 흐르니 함께 산행했던 모든 회원님들이 도착해서(힘들어 하는 두 사람은 두타산성 삼거리에서 무릉계곡으로 하산했다) 이곳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했다. 두타산은 워낙 바람이 많이 불고 바람 피할 곳이 없는 곳인데 다행히 바람이 안 불어서 조금 길게 휴식을 취했다.

 

이제 대간 길을 따라 청옥산으로 향한다.

두타산에서 청옥산 가는 길은 처음에는 급한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서 겨울철에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렇게 급하게 내려간 후 이제 오름길이 이어진다. 잠시 평탄한 길에 조릿대 지역을 지나니 「두타산코스 1-15」푯말이 나온다.

 

붉은색으로 채색된 단풍에 묻혀 있는 청옥산, 그리고 우측 멀리 뾰족하게 보이는 고적대가 눈에 들어온다.

 

1-16, 1-17지점을 지나 박달령에 도착했다.

 

박달령(朴達嶺)

「밝달」에서 온 말로 「밝」은 광명을 비추는 높고 큰 산을 의미하고, 「달」은 산과 들을 뜻하는 말로 청옥산과 두타산을 합하여 광명을 주는 맑고 큰 산이라 하여 두 산을 연결하는 안부를 박달령으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

 

박달령은 무릉계곡의 박달폭포로 내려서는 분기점이다. 무릉계곡 상단부의 쌍폭을 볼 수가 있다. 처음 청옥산을 찾을 때 무릉계곡 주차장에서 박달재로 올라간 기억이 생생하다.

 

박달령에는 「박달재」라고 써진 이정표(↑청옥산 1.4km, 무릉계곡관리사무소 5.6km→, ↓두타산 2.3km)가 세워져 있다.

 

 청옥산 정상

 

박달재에서 하산하는 회원님들은 한 사람도 없었다. 모두 청옥산으로 향했다. 바위들이 대문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문바위재에 이르니 이곳에도 이정표(문바위재. ←청옥산 1.1km, 두타산 2.5km→)가 세워져 있다.

 

이제 청옥산을 향한 본격적인 오름길이 시작된다.

두타 오름길 못지않게 청옥산 오름길도 만만치가 않다.

잠시 너덜길을 오르고 이후 된비알에 숨이 목까지 차기 시작한다. 청옥 오름길에도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로프에 의지하며 올라간다. 앞 서 올라가는 대장님은 잘도 올라간다.

그렇게 된비알을 치고 올라가면 학등 정상이다. 2-14지점 푯말, 이정표(↑청옥산 50m, 무릉계곡관리사무소 6.7km→, ↓두타산 3.7km)가 세워져 있다. 학등은 바른골과 박달골의 중간 능선인데 무릉계곡에서 문간재(신선봉 가는 길목)을 넘어 좌측으로 진행하면 학등능선 초입이 나온다.

이후 50m 더 가면 비로소 헬기장이 조성되어 있는 청옥산(靑玉山)정상이다.

 

 

2004.10.31일 대간 종주할 때의 청옥산 정상

 

청옥산

 

청옥산(靑玉山) 1,403.7m

위치: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중봉리

 

두타산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발 1,404m이다. 청옥산과 두타산을 연결하는 산맥을 햇대등이라 하여 한 폭의 병풍을 펼친 것 같다. 또한 이 산에는 청옥과 약초가 많이 난다하여 산 이름을 청옥산이라 하였다 한다.

 

◆입산금지 안내

춘계 : 매년 2. 15. ~ 5. 15(사정에 따라 연장가능)

추계 : 매년 11. 1 ~ 12. 15(사정에 따라 연장가능)

 

 

◆등산로

① 댓재(산신각) → 통골목이 → 두타산 6.1Km (3시간 소요)

② 번천리 → 통골목이 → 두타산 6.0Km (2시간 30분 소요)

③ 중봉분교 → 망군대 → 청옥산 8.1Km (5시간 소요)

※ 청옥산 → 두타산 3.2Km (1시간 50분 소요)

④ 천은사 → 쉰움산 → 두타산 5.6Km (3시간 소요)

⑤ 내미로 → 천은사 → 쉰움산 2.2km (1시간 20분 소요)

 

고지도에는 두타산으로 표기되어 있고 지금의 두타산보다 50m 더 높다. 아미타경에 나오는 일곱 가지의 보석 중 하나인 청옥에서 온 지명이라 하기도 하고, 임란 때 유생들이 의병들의 정신이 죽지 안했다는 뜻으로 「청옥산」이라 했다고 하기도 하고, 동해시 쪽에서 바라보는 산세가 「푸르다」고 하여 청옥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청옥산 주봉에 있던 소나무는 임란 때 불타버린 경복궁을 중건 하기위한 대들보용 목재로 사용되었다. 산 아래 샘이 있고 정상부는 넓은 공터여서 고적대와 함께 야생화의 천국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바위솔이 군락을 이루는 곳이라 대간꾼들의 비박장소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이정표(청옥산. ←고적대 2.3km/연칠성령 1.3km, 두타산 3.7km/박달재 1.4km→, ↑무릉계곡관리사무소 6.7km)와 국기(태극기와 독도사랑기)가 게양되어 있고, 이동중계탑 시설도 설치되어 있다. 한글과 한자로 된 정상석이 각각 세워져 있다. 바람이 전혀 불지 않은 따뜻한 날씨여서 잠시 누워 휴식을 했다.

 

이후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연칠성령으로 향한다.

연칠성령으로 가는 등산로는 앞전의 등산로와는 사뭇 다르다. 앞전의 길은 조금 넓었는데 갑자기 등산로가 좁아지고 등산로 상태가 앞전의 등산로보다 썩 좋지가 않다. 그래도 대간길이어서 길은 매우 뚜렷하다.

 

그렇게 얼마나 진행했을까 드디어 연칠성령에 도착했다.

연칠성령에는 연칠성령정상이라고 쓴 이정표(←고적대 1.0km, 두타산 5.0km/청옥산 1.3km→)가 세워져 있다. 또 다른 이정표(연칠성령. ←고적대 1.0km, ↑무릉계곡관리사무소 6.7km, 두타산 5.0km, 청옥산 1.3km→)도 세워져 있다.

 

연칠성령(蓮七星嶺)

연칠성령은 삼척시 하장면과 동해시 삼화동을 오가는 곳으로 산세가 험준하여 난출령(難出領)이라 불렸다. 이 정상을 망경대(望京臺)라 하는데 인조 원년 명재상 택당 이식이 중봉산 단교암에 은퇴하였을 때 이곳에 올라 서울을 사모하여 망경(望京)한 곳이라 전해진다. 다른 일설은 하늘에 계신 칠성님께 이어지는 고개로 보기도 하고, 사원터에서 하장면 방향으로 늘어선 일곱 개의 봉우리에서 온 말로 보기도 한다.

 

여기에서 고적대로 이어지는 대간 마루금과 작별하고 30여 분 휴식한 후 우측의 무릉계곡으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앞서 대장님, 파주 사모님, 이문수님은 고적대로 떠났다. 그 뒤로 방빼님과 함께 온 여성분, 갑돌이님, 봉삼님, 전재복님, 막차로 김서은님이 고적대로 향했었다.

 

 연칠성령에서 무릉계곡으로 내려가는 능선의 단풍

 

 연칠성령에서 무릉계곡으로 내려가는 능선의 단풍

 

 무릉계곡 상류부

 

연칠성령에서 하산하면서 바라본 고적대(高積臺. 1353.9m)가 아찔하게 뾰족하다. 기암절벽이 대(臺)를 이루어 원효대사가 이름 짓고 수행한 곳이라 하고, 신선들이 노닐던 곳이라 한다.

 

무릉계곡으로 내려가는 급경사 내리막은 경사도가 급해 매우 조심스럽게 내려가지만 결국 두 번씩이나 엉덩방아를 찧어야 했다.

 

두타산~청옥산~연칠성령으로 이어지는 대간길에는 단풍나무가 거의 없어서 단풍 절정임에도 실망을 했다. 연칠성령에서 내려가는 길 9부능선까지도 거의 단풍나무는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이후로는 절정의 단풍이 마음을 들뜨게 했다. 아쉽게도 글쓴이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촬영하는데 그만 배터리가 거의 다 돼서 그렇게 멋진 단풍을 눈으로만 담아야 했다.

 

단풍나무에 대하여 바로가기 [ http://blog.daum.net/joingi61/15964354 ]

단풍이 드는 이유 바로가기 [ http://blog.daum.net/joingi61/13020388 ]

 

그렇게 짙은 단풍으로 물든 환상의 단풍 능선길을 내려간다. 드디어 칠성폭포가 있는 계곡으로 떨어진다. 이곳에도 이정표(칠성폭포. →사원터 약0.65km, 관리사무소 약 4.9km / ←청옥산 약3.1km, 고적대 약 2.8km / 연칠성령코스 4-2)가 세워져 있다.

 

칠성폭포는 가뭄으로 인해 폭포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었다.

이후 건물이 세워져 있는 임진왜란 때 선비들이 의병을 일으킨 곳이라고 하는 사원터에 도착한다. 이곳에도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반석의 계곡을 두어 번 지나고 철 계단도 지나면 학등 입구에 닿는다. 이곳에도 이정표(학등입구 / ←학등, 청옥산 / ↑연칠성령, 사원터 / ↓용추, 관리사무소)가 세워져 있다.

 

신선봉 입구인 문간재에 설치된 안내판

 

 신선봉에서 본 박달골의 멋진 수직 바위

 

 역시 신선봉에서 본 조망

 

 신선봉 표지목

 

 신선봉 맞은편 조망대에서 본 아찔한 절벽과 단풍나무(역광사진)

 

 신선봉 사랑바위

 

 신선봉

 

이후 오름길이 나오는데 체력이 남아 있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 얕지만 힘든 오름길을 오르면 안부인 문간재에 닿는다. 이곳에 예전에 없던 이정표(문간재 / ↑신선봉 약50m / 청옥산 약4.0km, 고적대 약5.0km→ / ←무릉계곡관리사무소 약2.7km / ↑광개토대왕비 / ↑사랑바위)가 세워져 있다. 이곳이 신선봉 가는 길목이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하산할 때 힘든 탓으로 신선봉을 생략하고 무릉계곡으로 그냥 하산한다. 글쓴이는 앞선 산행 때 신선봉에서의 화려한 조망을 알기 때문에 우측 50m 거리에 있는 신선봉으로 향했다.

 

신선봉으로 가는 길목은 초입에 바위가 있다. 바윗길을 진행하는데 이곳 신선봉도 소문이 났는지(앞 전 산행 때는 찾는 이 들이 드물어 한가해서 좋았었다) 꽤 많은 사람들로 다소 복잡했다. 그렇게 신선봉에 도착을 하니 새롭게 길쭉한 사각의 정상목이 반긴다. 꽤 많은 사람들로 북적된다.

 

이제 조망을 즐긴다. 역시 신선봉에 잘 올라왔다고 생각을 했다. 기막힌 기암절벽, 그리고 물들어 가는 단풍!

한참을 즐기다가 또 다른 신선봉의 조망처로 이동한다. 조금 뒤로 빽을 한 후 바윗길로 해서 조금 진행하면 신선봉의 또 다른 조망처에 닿는다. 이곳에서 봐야 신선봉의 진면목을 느낄 수가 있다. 정면의 기암절벽과 우측의 아찔한 절벽, 그리고 그 절벽 사이사이에서 자라고 있는 화려한 단풍나무! 그야말로 이곳 바위에 올라서면 신선이 된 느낌이다. 이곳에서 회원님들과 상봉하기 위해 자리 잡고 휴식을 한다. 30분 정도 지난 후에 무전교신을 하고 회원님들을 기다린다. 결국 회원님들과 재 상봉한 후 사진 촬영을 하다가 하산하기 시작한다.

 

되짚어 문간재에 도착했다. 이제 급경사 내리막에 설치된 철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내려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우측은 하산길, 좌측은 등산길이라고 써져 있다. 우측길은 하늘문, 관음암을 거쳐 삼화사로 가는 능선길이고, 좌측은 무릉계곡으로 가는 길이다. 결국 나중에 두 길은 만난다.

처음엔 발걸음을 하늘문으로 향했으나 너무 힘들다는 판단아래 편안한 하산길인 계곡길로 내려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태고의 신비와 전설을 품고 있는 무릉계곡명승지를 접한다.

무릉계곡은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여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인간의 세계를 넘어 신선이 거니는 선계로 느낄 만큼 아름다움의 극치를 나타낸다. 바른골의 반석을 따라 소와 담을 그리고 폭포를 이루던 맑은 계곡물은 신선봉 밑에서 무릉계곡을 대표하는 쌍폭과 용추폭포를 이루어 낸다. 무릉계곡의 입구에 위치한 무릉반석에는 이 신선경에 감탄한 선인들의 감흥이 싯구로 남아 있다.

 

수많은 기암괴석과 절경이 어우러진 신선이 노닐었다는 그 곳

무릉계곡 명승지

 

신선이 노닐었다는 무릉계곡명승지 일명 무릉도원이라 불리우는 무릉계곡명승지는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계곡으로 수많은 기암괴석과 절경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마치 현존하는 선경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태고의 신비와 전설 속에 무릉계곡명승지는 이곳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관광명소이다.

 

고려시대에 동안거사 이승휴가 천은사의 전신인 용안당에 머물며 〈제왕운기〉를 저술하였고, 조선 선조 때에 삼척부사로 재직 하고 있던 김효원이 제명하였다고 한다. 기암괴석이 즐비하게 절경을 이루고 있어, 마치 선경에 도달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무릉계는 수많은 관광객을 도취시키며, 많은 전설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명승지로, 1977년 국민관광지 제1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전기 4대 명필가의 한 사람인 봉래 양사언의 석각과 삼척부사나 토포사들의 이름이 각각 10명 이상 새겨져 있다.

 

소개

무릉중대반석(약칭 : 무릉반석)

옛 풍월객들이 수도 없이 이곳을 찾았으며, 이름을 천추에 남기려는 선비들은 반석에 이름을 새겼다. 그리고 옥호거사가 쓴 초서 12자는 명작으로 남아있다. 1958년 세워진 금란정에는 계원들의 시구 현판이 걸려있고, 북쪽 삼화사의 풍경소리 은은하다.

 

무릉중대계곡

별유천지를 방불케 하는 중대 계곡, 두타산과 청옥산을 사이에 둔 [제2의 금강산]이라 불리우는 무릉계곡명승지는 용추폭포의 맑은물과 병풍 같은 기암괴석이 한데 어우러져 눈내린 비경을 한층 더 연출하는 아름다운 곳이다.

 

두타산성

두타산성은 삼국시대 진흥왕(550)에 지어졌다.방어와 통치의 거점으로 잡았으며 식량의 저장고 역할도 하였다. 두타산 중허리는 파사왕(102)에 쌓았다는 석성이 유적으로 남아있다 이 석성은 길이8.725척 높이 5척이라 한다. 문간치는 조선 태종갑오(1414). 삼척부사 김맹손이 쌓았다고 한다. 길이는8.725척 높이는 6 척이라 한다.

 

금란정

한말까지 유림들은 향교 명륜당에 모여 유학강론에 전념하였으나 한일합병을 당하여 폐강하기에 이르자 이에 분개하여 우의를 다지는 금란계를 결성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정자를 건립하기를 결의하였다. 그러나 일본 관헌들에 의해 제지당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뒤 1945년 해방을 맞이하자 금란계원과 그 후손들이 선인의 뜻을 계승하여 정자를 짓기로 합의하고 1949년 봄에 건립하였고 1956년 9월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호암소

무릉계곡명승지관리사무소 아래쪽으로 205m쯤 아래 계곡에 있는 소. 소양옆이 절벽으로 되어 있는데, 옛날 호랑이가 건너뛰다가 빠져 죽은 소라는 데에서 유래한다. 호암소는 김효원(金孝元)이 임경대(臨鏡臺)로 개명하여 부르기도 하였다. 전설ㆍ옛날 도술에 능한 고승이 이 곳을 지나다가 호랑이가 해치려 하여, 고승은 신통력을 발휘하여 소를 훌쩍 건너 뛰었는데 호랑이가 뒤따라 건너뛰다가 고승의 발길에 채여 소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소 옆의 암벽에 虎岩(호암)이라 새겨 놓은 글씨가 남아 있어 흔히 호암소 대신 호암으로 통칭하기도 한다. 이 글씨는 삼척부사로 왔던 미수 허목(許穆)의 글씨라고 전하는데, 호암은 김효원의 두타산일기에도 기록되어 있다. 또한, 3~4m 위에 中臺洞門(중대동문)이란 글씨도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오혁(吳奕)의 글씨라는 설이 있다.

 

등산관광코스

입구 →무릉반석→삼화사→두타산성→두타산(10.2㎞, 4시간 소요)

입구 →무릉반석→삼화사→관음사→고적대→두타산(24㎞, 7시간 소요)

입구 →학소대→쌍폭포→용추폭포→박달령→청옥산(12㎞, 4시간 소요)

 

연계관광지

무릉계곡명승지 → 추암해변 → 천곡천연동굴 (4시간 소요)

무릉계곡명승지 → 묵호항 → 망상해변 (4시간 소요)

 

이용안내

구분

어른

청소년, 군인

어린이

비고

개인

2,000원

1,500원

700원

문화재 관람료

40% 포함

단체

1,500원

1,000원

500원

 

이용요금

 

주차료

구분

소형

대형

주차료

2,000원

5,000원

       

-주차료는 동해시 등록차량 50% 감면

※ 상기요금은 2011년 7월 1일부터 변경되는 요금입니다.

 

교통안내

▶ 승용차 : 동해시청 ⇒ 무릉계곡명승지입구 (12㎞, 20분 소요)

▶ 시외버스 : 동서울 ⇒ 시외버스터미널 (1일, 11회 1시간 간격, 3시간30분소요)

▶ 고속버스 : 서울(강남,동서울) ⇒ 동해시(1일 22회, 3시간30분)

▶ 철도 : 청량리 ⇒ 동해역/묵호역(1일 4회, 6시간소요)

[동해시청 홈피에서 발췌]

 

무릉계곡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조선조 명필 양사언이 이곳의 절경에 감탄해 무릉반석에 「武陵仙院 中坮泉石 頭陀洞天(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이라고 쓰면서부터 무릉계곡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설로는 무릉반석 부터 시작되는 비경지대는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가 중국의 무릉도원과 같은 선경이라 하여 「무릉계」라 처음으로 이름 지었다 전해지고 한편으로는 조선 선조 때 삼척부사 김효원이 지었다고도 한다.

 

청옥산과 두타산 북쪽 아래로 깊게 패어져 내린 협곡인 삼화동 무릉계곡 일원은 1977년 국민관광지 제1호로 지정된 명소이기도 하다.

 

청옥, 두타산 일원은 궁예시대부터 새 세상을 그리워하던 이들이 몸을 숨긴 채 때를 기다렸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또 정선, 임계를 거쳐 서울로 가던 옛길이었던 이곳에 6.25때는 인민군 피복창이 들어섰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쟁 중에는 인민군 병참기지였던 이곳에 미 공군의 융단폭격이 있기도 하며 더 멀리 임진왜란 때는 선비들이 의병을 일으킨 곳(사원터)과 두타산성의 피맺힌 전설(왜군들이 빨래하던 노파를 협박해 백두대간 쪽 두타산 정상에서 접근하여 무릉계곡 쪽만 굳게 방비하던 의병들을 역습해 몰살시켰다 함)이 서린 땅이기도 하다. 또한 쉰음산 아래 천은사는 이승휴가 「제왕운기」를 쓴 역사의 땅이기도 하다

 

다시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박달령 쪽으로 진행해야 무릉계곡 제1의 절경인 쌍폭을 갈 수가 있는데 그만 직진하고 말았다. 대장님이 가물어서 별 볼일이 없다고 위안을 준다. 예전에 본 것으로(글쓴이가 무릉계곡을 처음 찾을 때가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이다. 1996년 9월1일에 새싹산악회 회원3명과 함께 무릉계곡을 찾았는데 그때 코스가 무릉계곡→쌍폭→박달령→청옥산→연칠성령→문간재→신선봉→무릉계곡으로 원점회귀하는 산행이었는데 글쓴이가 용추폭포 앞에서 잠시 길을 잃어버려서<동료가 119에 신고도 했다고 함> 11시간 30분 산행한 추억이 있는 곳이다. 그때 당시 입장료가 2,000원이었는데 지금도 2,000원 한다) 위안을 삼고 무릉계곡을 내려간다.

학소대 입구에 도착하니 학소대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상단부에 모형 학 두 마리가 세워져 있다.

 

이후 하늘문, 관음암 거쳐 능선길로 내려오는 길과 합류하고, 조금 진행하니 삼화사가 나온다.

삼화사에 도착하니 매우 작은 형형색색의 종이들이 경내에 가득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고, 마이크 소리도 꽤나 크게 들려온다. 직감적으로 무슨 행사를 하는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삼화사국행수륙대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건국과정에서 희생된 영혼을 위무하고 친 고려 성향의 세력들을 포용하여 백성들과 소통,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동해의 삼화사와 강화도의 관음굴, 거제도의 견암사에서 국행수륙대재를 설행하였는데 이것이 조선시대 수륙재의 시작이라고 한다.

 

삼화사국행수륙대재는 하늘과 땅(天地), 죽은자와 산자(冥陽), 사성과 육범(水陸)의 모든 존재가 서로 소통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삼화사에서 국행수륙대재가 설행된 배경은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과 두 아들이 삼척에서 교살되었기 때문이며, 이들 왕씨 일가의 영혼을 달래어 민심을 수습하고 백성들과 소통, 화합하기 위하여 매년 봄과 가을에 왕실에서 주관하여 설행한 의례였다.

또한 삼화사에 「天地冥陽水陸齋儀纂要(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가 전해지고 있으며, 이는 삼화사국행수륙대재 의례서이며 수륙대재가 삼화사에서 전승되어 온 역사적 배경과 함께 서지학적 중요성이 인정되어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괘불을 내어걸고 야외에서 설행되는 삼화사국행대재는 동해시민 뿐 아니라 국, 내외 모든 인연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3일간의 장엄한 의식공간이며 의례행위와 예능행위가 어우러져 축제적 분위기를 자아내 모두가 환희에 찬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우리 민족의 소중한 문화행사이다.

[삼화사 홈피(http://www.samhwasa.or.kr/)에서 발췌]

 

삼화사 국행수륙대재 설행(10.19~10.21)기간으로 방생, 하단, 금강경독송, 봉송회향이 마지막 날 일요일에 거행되었다.

 

그러다 보니 다소 어수선한 삼화사 경내를 빠져나오고 일주문을 통과했다.

이제 승계에서 속계로 나온 셈이다. 이제 주차장이 지척이다. 더불어 발걸음도 빨라졌다.

드디어 점심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는 식당으로 들어감으로써 무박산행을 무사히 마쳤다.

오늘 경치가 좋은 쉰움산에서의 일출, 두타산 정상에서의 맛있는 간식, 청옥산에서도 맛있는 간식, 신선봉에서의 기암절벽 조망은 압권이었다. 다소 아쉬웠던 것은 요즘 가물어서 무릉계곡의 폭포들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점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단풍은 절정이었는데 주능선(백두대간)은 단풍나무가 거의 없었다. 연칠성령에서 무릉계곡으로 내려가는 능선길의 단풍은 무릉계곡의 단풍보다도 멋졌다.

 

산행 지도(빨간색이 답사한 구간이다)

 

◈ 동해비경

1.미인의 걸음걸이 능파대(촛대바위)

2.용이 승천하는 듯한 용추폭포

3.옛 선인들의 풍류 무릉반석

4.얕은 수심, 청정해수 망상명사십리

5.환상적인 지하궁전 천곡천연동굴

6.경관이 수려한 만경대

7.동해의 문화 호해정. 할미바위

8.경관이 아름다운 등산로 초록봉

9.국내 최초 망상오토캠핑리조트

 

7.특기사항

①답사 산봉우리

No.672 쉰움산(일명 五十井山. 670m): 동해시, 삼척시 미로면 소재

-정상: 넓은 암반지대, 정상석, 돌웅덩이가 많음, 조망 좋음.

-특기사항: 2회 산행(1회: 2006.04.23)

 

No.613 두타산(頭陀山. 1,352.7m): 동해시, 삼척시 미로면, 하장면 소재

-정상: 넓은 공터(헬기장), 정상석, 큰 무덤1기, 각종 안내판, 이정표, 조망 좋음 등

-특기사항: 3회 산행(① 2004.10.31 ② 2006.04.23)

 

No.10 청옥산(靑玉山. 1,403.7m): 동해시, 삼척시 하장면 소재

-정상: 넓은 공터(헬기장), 이동중계탑시설물, 국기게양대(태극기와 독도사랑기 게양), 삼각점, 정상석 2개(한글, 한자) 등

-특기사항: 3회 산행(① 1996.09.01 ② 2004.10.31)

 

No.613-1 신선봉(神仙峰. ?): 동해시 소재

-정상: 암반(절벽)지대, 정상목, 조망 좋음 등

-특기사항: 2회 산행(1회: 1996.09.01)

 

②새싹산악회 828차 정기산행으로 무박산행으로 진행했다. 16명이 참석해서 2명은 두타산성삼거리에서 무릉계곡으로 하산하고 8명은 고적대 거쳐 무릉계곡으로 하산했다. 나머지는 연칠성령에서 무릉계곡으로 하산했다.

③가뭄이 심해 무릉계곡의 폭포의 물줄기가 시원치가 않았다.

④대리 기사 참석

⑤서울 도착 후 갑돌이님에게 저녁식사 대접받고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