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7번째 산행이야기
함백산 두 번째 이야기
1.산행날짜: 2012년 1월 15일(일요일)
2.참가인원: 새싹산악회 제811회 정기산행 55명
3.산행날씨: 흐림.
4.산행코스: 두문동재터널입구→두문동재(싸리재)→은대봉→함백산→만항재
5.산행시간
-10:43 두문동재터널입구 발(산행시작)
-11:22 두문동재(사거리안부) 착 / -11:43 발
-12:09 은대봉 착
-중간에 30분 정도 휴식
-14:33 함백산 정상 착
-14:52 선수촌도로 착 / -14:55 발
-15:22 만항재 착(산행종료)
※거리: 만항재-(2.85)-함백산-(5.4)-싸리재. 8.25km[실제거리] + 접속거리(두문동재터널입구에서 싸리재까지) 약1.86 = 합계 약 10.1km
4시간 39분 산행함. 휴식시간 빼고 순수 산행시간은 3시간 45분 걸렸다.
6.산행후기
백두대간 함백산 해발 1,572.9m 함백산은 강원도 태백시와 정선군 고한읍의 경계에 있는 해발 1,572.9m의 산으로 우리나라에서 6번째 높은 백두대간의 대표적인 고봉 가운데 하나다.
함백산은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여암 신경준이 저술한 산경표에 대박산으로 기록되어 있고, 정선총쇄록에는 상함박, 중함박, 하함박 등의 지명이 나오는데 왜 함백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태백(太白), 대박(大朴)과 함백(咸白)이라는 말은 모두 크게 밝다는 뜻이다. 척주부에 보면(臺南有上咸白中咸白下咸白上下有本寂深妙寂隱寂庵今或廢)라고 하였으니 함백산은 봉우리가 셋이다. 상함백은 두문동재 남쪽에 솟은 은대봉을 말하고 중함백은 은적암 뒷봉우리이며, 하함백은 지금의 함백산인 것이다. 허목(허목)의 미수기언에 보면.(太白山新羅北岳文殊大朴二臺處甫處檢麻羅邑白山皆大山) 「태백산은 신라 때 북악인데 문수, 대박의 두 봉우리가 있고, 우보산, 우검산, 마읍산, 백산등이 다 태백산이다.」라고 하였으니 함백산은 현재 태백산보다 높지만 태백산의 한봉우리였던 것이다. 삼국유사에서는 함백산을 「묘범산(妙梵山)으로 기록하였는데 묘범산은 묘고산(妙高山)과 같은 말로 불교에서 말하는 수미산(須彌山)과 같은 뜻으로 대산이며 신산으로 여겨 본적암. 심적암. 묘적암. 은적암 등의 절이 있었다고 한다.」
함백산 북서쪽 사면에는 서기 636년 신라 선덕여왕 5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정암사(淨岩寺)가 있는데 문수보살의 계시에 따라 갈반지를 찾아 큰 구렁이를 쫓은 후 그 자리에 적멸보궁(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2호)과 수마노탑(보물 제410호)을 세우고 석가모니의 정골사리를 모셨다고 하며, 적멸보궁 옆 주목나무는 자장율사가 꽂아둔 지팡이가 살아난 것이라며 선장단이라 부르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천연기념물 제73호인 열목어가 서식하고 있고, 일명 작약봉이라 하여 산속에는 흰 진달래 그밖에 흰 짐승과 꽃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함백산의 야생화는 국내 최대 규모로 군락을 이루고 계절마다 다양하고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 몇 번 방문했던 사람도 늘 새로움을 기대하며 찾아온다.
『불의 나라』- 산속에 대량의 석탄이 매장되어 있어 산 주위에는 국내 굴지의 탄광이 모여 있다. 『물의 나라』-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연못에 하루 5,000톤의 물이 솟게하는 물줄기의 으뜸이다. 『천상의 화원』- 흰색의 철쭉과 흰색의 동식물 및 많은 종류의 다양한 야생화가 서식하고 특히, 금대봉은 생태보전지역으로 꽃과 자생식물을 촬영하려는 생태탐방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함백산 정상 아래 공터에 세워진 둥그런 표지석에서 발췌] |
글쓴이가 소속된 산악회에서 함백산을 두 번째로 찾았다. 앞전에는 백두대간 구간종주(2002.12.31~2003.01.01 무박으로 화방재→함백산→싸리재→피재 코스를 9시간 산행했는데 그날 함백산 7부 능선에서 새해 일출을 봤는데 너무나 장엄했다. 새싹산악회는 백두대간을 1999년 3월 13일 시작하여 2003.01.01 피재까지 마무리한 후 약 3년 간 공백기를 가졌다가 2006.04.23일 재개하여 그해 12월 3일, 총52회에 거쳐 백두대간을 마쳤다. 내리→웅석봉→천왕봉→진부령)때였고, 오늘(2012년 1월 15일[일요일])은 눈꽃산행으로 다시 찾은 것이다. 무려 9년 만에 다시 찾았는데 그사이 정상석 옆 군부대 철조망이 없어졌고, 대신에 멋진 돌탑이 세워져 있고, 아래 공터에는 함백산 유래가 적힌 오석으로 만든 예쁜 원형의 표지석이 새롭게 설치되어 있었다. 은대봉 정상석도 그때는 없었다.
함백산 호응이 너무 좋아 관광버스 45인승 버스가 넘쳐나서 정명식 회장님의 카니발 승합차까지 동원됐다. 총55명의 회원님들이 함백산 산행에 참석을 했다.
개인적으로 함백산 정상에 설치된 시설물(통신시설, 철조망 등)이 보기가 안 좋아 별로 선호하지 않았던 산이지만 다른 회원님들은 함백산의 눈꽃산행을 기대해서 그런지 아님 우리나라(남쪽)의 6번째 고봉이어서 그런지 생각 외로 무척 반응이 좋았다.
※우리나라(남한)의 산 높이 순서
순서 |
봉우리 미포함(순수 산[山] 만 포함) |
봉우리 포함 |
1 |
한라산 1,950m 제주도 [국립공원] |
한라산(영봉) 1,950m |
2 |
지리산 1,915m 전남 구례, 전북 남원, 경남 함양, 산청, 하동 [국립공원] |
지리산(천왕봉) 1,915m |
3 |
설악산 1,708m 강원 속초, 인제, 양양 [국립공원] |
지리산(중봉) 1,875m |
4 |
덕유산 1,614m 전북 무주, 장수, 경남 거창, 함양 [국립공원] |
지리산(제석봉) 1,806m |
5 |
계방산 1,577m 강원 홍천 내면, 평창 진부면 |
지리산(반야봉) 1,732m |
6 |
함백산 1,573m 강원 정선 고한읍, 태백 |
설악산(대청봉) 1,708m |
7 |
태백산 1,567m 강원 태백, 경북 봉화 석포면 [도립공원] |
덕유산(향적봉) 1,614m |
8 |
오대산 1,565m 강원 홍천 내면, 평창 진부면, 도암면 [국립공원] |
계방산 1,577m |
9 |
가리왕산 1,562m 강원 정선 북면, 평창 진부면 |
함백산 1,573m |
10 |
남덕유산 1,507 무주, 함양 |
태백산(장군봉) 1,567m |
산행지형도(두문동재터널입구에서 시작해서 만항재까지 산행했다)
산행들머리인 두문동재터널 입구
두문동재터널입구에서 두문동재(싸리재)를 향해 옛날 38번국도길을 따라 올라가는 회원님들
상일동에서 7시 40분에 출발하여 약3시간 걸려 두문동재터널 입구에 도착하여 10시43분에 산행을 시작했다. 함백산 산행을 대부분의 산악회가 만항재에서 시작하지만 글쓴이의 산악회에서는 심한 정체를 예상하여 조금은 힘들지만(싸리재[두문동재]보다 만항재부터 산행을 시작하면 표고차로 인해 조금 편안하다. 그러나 시간은 거의 비슷하게 걸린다) 싸리재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역시 예상한대로 싸리재(예전에는 두문동재라는 말 보다 싸리재라는 이름을 많이 사용했는데 지금은 두문동재라는 이름을 많이 사용한다. 싸리재나 두문동재나 같은 고개이름이다)까지 차량이 올라갈 수 없어 두문동재터널 입구에서 하차하여 산행에 들어갔다. 일부 4륜구동 지프차는 올라가는데 결국 얼마못가서 포기하고 만다. 그런데 두문동재터널을 빠져나가 태백 쪽에서 올라가면 두문동재 고개까지 진입할 수가 있다. 그러니까 반대 쪽 방향인 태백시 쪽은 제설작업이 돼있었다.
두문동재로 올라가는 도로는 하얀 백설로 덮여있다. 고개가 꺾이는 지점마다 가로질러 올라가는 샛길이 뚜렷하다. 모든 사람들이 샛길로 올라간다. 이렇게 꺾이는 지점마다 반복해서 샛길로 올라가니 두문동재 고갯마루까지 35분이 걸렸다. 중간에 약간 정체를 했으니 정체가 없다면 30분 정도면 올라갈 수 있다.
두문동재
두문동재
은대봉을 향해 오르다가 내려다본 두문동재 모습
은대봉을 향해 올라가는 모습
은대봉 오름길은 비교적 완만한 오름길이다.
은대봉 정상에서 인증 샷!
두문동재(일명 싸리재)에 올라서니 예전에 없었던 대형 표지석(백두개간 두문동재. 해발 1,268m. 정선군 고한읍)이 새롭게 세워져 있다. 두문동재는 해발 1,268m(경기도 가평의 명지산[1,267m] 보다도 높고, 치악산 최고봉 비로봉[1,288m]보다는 20m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무척 높은 고개이다. 조금 진행하면 만날 은대봉이 1442.3m이니 174m의 표고 차만 극복하면 되니 그리 힘들지 않게 은대봉까지 진행할 수가 있다.)이고, 강원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 삼수동의 경계이다. 예전 38번 국도인데 이제는 관광도로가 됐고 터널을 통과하는 도로가 새롭게 38번국도가 됐다. 각종 안내판과 등산지도 등 시설물이 많이 설치되어 있다. 화장실도 있다. 조망이 무척 좋은 곳이지만, 오늘은 날씨가 청명하지 못해 조망이 희미하다. 이곳에서 함백산은 우측으로 올라가야 하고, 좌측은 금대봉, 매봉산을 거쳐 설악산으로 가는 길이다.
후미가 올 때까지 기다리다 후미가 도착하자(11분 기다렸다) 함백산을 향해 출발했다.
함백산 입구 쪽에 태백국유림관리소에서 설치한 작은 이정목이 설치되어 있는데 만항재까지 8.0km라고 쓰여 있다. 예전에 백두대간을 종주한 포항셀파산악회에서 백두대간을 50m 줄자로 실측했는데 이 구간 실측거리[만항재-(2.85)-함백산-(5.4)-싸리재. 8.25km]가 8.25km임을 생각하면 도상거리가 아닌 실제거리임을 알 수 있다.
역시 완만한 오름길이 이어진다. 이곳에 눈이 온지가 꽤 오래됐는데 바닥에만 깔려 있는 적설량이 꽤 되는 걸로 봐서 무척 추운 곳임에는 틀림이 없다. 눈꽃 없는 눈꽃산행이고, 예전에 답사한 코스이지만 그래도 역으로 답사하게 된 것을 위안 삼으며 은대봉을 향한다. 26분 걸려(20분 정도면 은대봉에 도착할 수 있음) 은대봉 정상 헬기장에 도착했다. 이곳에 새롭게 정상석(태백시 주목산우회에서 2006년 9월에 세움)이 세워져 있다. 은대봉(1,442.3m)은 예전에 상함백으로 불리웠던 산이다.
고목 뒤로 백운산과 하이원리조트가 보인다.
주변을 두리번거려도 새싹산악회 회원님들은 보이지가 않는다. 서둘러 선두를 따라 잡으려고 내려간다. 조금 내려가니 전재윤 고문님 등 새싹 식구들의 모습이 보인다. 선두는 막 출발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산사랑님이 끓여준 떡국 갈비탕을 조금 먹고는 다시 출발했다.
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이곳이 태백선 철로의 정암터널 위이다. 정암터널이 예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터널이었다.
정암터널(淨巖)에 대하여
요약: 태백선의 고한역과 추전역 사이에 있는 터널로 길이 4,505 m, 너비 3.9 m, 높이 5.9 m이며 1973년 2월 개통되었는데 터널의 단면은 말굽형[馬蹄型]이며, 단선 터널이다.
본문: 길이 4,505m. 너비 3.9m. 높이 5.9m. 강원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古汗里)와 태백시 화전동(禾田洞) 경계에 있는 함백산(咸白山. 1,573m)의 북사면에 있다. 1973년 2월 개통되었다. 터널의 단면은 말굽형[馬蹄型]이며, 단선 터널이다. 1956~75년에 있은 태백선 건설공사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공사였으며 제천역에서 동쪽으로 83km 지점에 있다. 터널 북쪽으로 태백~정선 간 국도가 지나며, 부근에 정암사(淨巖寺)와 용연굴(龍淵窟)이 있다.
※우리나라의 철도 최장터널은 2009년 2월 13일 개통된 경부고속철도(KTX)의 부산시 구간인 부산시 금정구 노포동과 동구 초량동까지의 20.3km 의 금정터널이다. 앞 전 가장 긴 KTX 황학터널보다 2배나 길다. 최고 시속 300km로 달리는 KTX로도 10분이 걸린다. |
태백선 철로가 정암터널을 빠져나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855m)에 위치한 추전역이 나온다.
정암터널 위를 지나간다. 산죽지대를 지나 쉼터에 도착하니 정선군에서 설치한 함백산 등산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는데 훼손되어 있다.
함백산 등산 안내도 두문동재-(0.59km)-은대봉[상함백]-(0.8km)-제1쉼터-(1.73km)-제2쉼터-(0.5km)-중함백-(0.9km)-제3쉼터-(1.1km)-함백산정상-(2.42km)-만항재입구 |
잠시 완만한 길을 진행하는데 곳곳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약 500m를 힘겹게 올라간다.
이제 오름길이 잠시 평평한 길롤 바뀐다. 좌측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려보니 새능말산악회의 이상용 형님이다. 아까 치악휴게소에서 만나고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상용이 형이 건네준 만둣국 한 그릇을 순식간에 후다닥 해치웠다.
주목을 배경으로
이곳 함백산 주목은 태백산 주목에 비하여 크기가 다소 작다.
사면길로 진행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
함백산 정상으로 향하다 뒤돌아 본 조망
상용이 형과 헤어진 후 다시 살짝 올라가니 넓은 공터가 나온다. 이곳에서도 수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 직진하여 봉우리를 넘어가는 길과 우측 사면길로 가는 길이 있는데 능선길에는 너무 복잡하여 우측의 조용한 사면길로 진행을 했다.
사면길로 진행을 하니 무척 편안하다. 무엇보다도 반대쪽에서 오는 사람들과 교행을 안하니 무척 편안하다. 주목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얼마 안 가 주능선에서 내려오는 길과 합류한다. 뒤 돌아오니 뒤에 솟은 봉우리가 우뚝하다.
정면으로 함백산 정상이 코앞이다. 주목군락지에 도착한다. 좌측으로 오투리조트와 매봉산 풍력발전기가 잘 보인다.
함백산 정상
함백산 정상을 향한 오름길이 시작됐다. 헐떡거리며 올라간다.
철제로 만든 헬기장을 만나면서 힘든 오름길은 이제 끝났다. 조금 더 올라간다. 드디어 함백산 정상에 선다. 함백산 정상석은 예전에 있던 그대로 있는데 그 뒤로 새롭게 멋진 돌탑이 세워져 있다. 예전에는 정상석 바로 옆에 철조망이 있었는데 언제 철거했는지 지금은 깨끗해서 너무나 좋다.
함백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너무 좋다. 남쪽의 태백산(1,567m)을 위시해서 북쪽으로는 금대봉(1,418m)과 매봉산(1,303m), 서쪽으로는 백운산(1,426m), 두위봉(1,466m), 장산(1,407m) 등 대부분 1,400m 이상인 산으로 덮여 산세가 거대하고 웅장하다. 백두대간의 위용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 바라 본 태백산은 그저 그런 펑퍼짐한 봉우리이다. 반대쪽 태백산에서 바라본 이곳 함백산 풍광이 멋지다.
함백산 정상에서 만항재로 가는 방향의 모습
함백산 중계소
새로 설치된 함백산 정상 표지석
이정표
태백선수촌 가는 도로 직전의 등산로 입구 모습
잠시 새싹 회원님들이 있나 하고 두리번거리니 보이지가 않는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느라 너무나 복잡한 정상석 주변을 얼른 내려간다. 내려서면 역시 새롭게 설치된 오석의 둥그런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이제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간다. 좌측으로 선수촌 고원 훈련장이 잘 보인다.
「함백산 1.9km→」라고 써진 대형 이정표가 나타난다.
2차선 포장도로에 떨어진다. 좌측으로「태백선수촌 → 1.1km」라고 써진 도로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우측으로는 도로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승용차 두 대와 관광버스 한 대가 주차되어 있다. 좌측은 태백시 황지동이다.
넓은 공터에서 올려다 본 함백산
만항재 하산지점
만항재 하산지점의 맞은편 모습
만항재를 향해 도로를 건너니 「등산로안내」라고 써진 대형 등산지도가 세워져 있다. 현위치에서 만항재까지 1.49km 남았다고 써져 있다. 이곳에는 두문동재에서 만항재까지 총거리 7.68km 라고 써져 있다.
완만한 오름길을 올라가니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제단 비슷한 것이 설치되어 있다. 잠시 펑퍼짐한 함백산 정상을 조망한다.
중간에 도로를 만나지만 계속 능선따라 직진하여 진행한다. 두 번의 능선을 지나니 드디어 만항재 고갯마루가 보이기 시작한다. 내려서면 414번 지방도가 지나는 만항재입구에 떨어진다. 선수촌입구의 도로에서 27분 걸렸다. 4시간 39분의 산행을 마쳤다.
이곳에서 약 100m 위가 만항재 고개 정상이다. 만항재는 해발 1,330m로써 우리나라에서 차량으로 갈 수 있는 최고 높이의 고개이다.
이후 후미까지 도차한 후 고한으로 이동하여 황태국으로 점심을 먹고 귀경했다.
후미가 예정산행시간보다 1시간 정도 지체됐지만 차량 소통이 원활하여 예정도착시간보다 20분 정도 일찍 도착한 것에 만족한 하루였다.
7.특기사항
①백두대간에 대하여
백두대간 [白頭大幹]
1. 백두대간이란?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비롯하여 지리산까지 우리 땅의 골간을 이루며 이어진 산줄기다. 그 길이는 1,800km, 높이는 100미터에서 2,740m 까지 이룬다.
남한에서 종주할 수 있는 거리는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도상거리 약670km, 실제거리 735.6km이다.
함경도 흥남과 비슷한 위도상의 마유령(972m) 북쪽은 모두 1천m가 넘지만, 그 이남으로는 금강산(1,638m), 설악산(1,708m), 오대산(1,563m), 태백산(1,567m), 덕유산(1,614m), 지리산(1,915m) 만이 1,500m이상 높이를 간직하고 있다.
남북을 꿰뚫는 세로 산줄기인 까닭에 예로부터 개마고원, 영동과 영서, 영남과 호남을 가로막는 장벽이었으며 그런 만큼 황초령(1,200m), 추가령(586m), 대관령(832m) 등의 고개가 주요 교통로가 되어왔다.
이 땅의 모든 산줄기가 백두산과 통한다는 개념은 조선시대 이래 우리 민족의 자연 인식 체계를 이루는 주요한 틀이었다. "택리지"의 이중환과 "대동여지도"의 김정호, "성호사설"의 이익이 모두 여기에 기초하여 지도를 그리고 지리서를 썼다.
2.태백산맥은 일본 지질학자가 명명한 이름
현재 우리가 배우고 있는 산맥체계는 1903년 고토 분지로라는 일본인 지리학자가 제안한 지질학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당시 일본인들은 조선에 대한 지질 및 광산조사에 혈안이 돼 있었다. 청일전쟁을 목적으로 우리나라를 교두보로 삼았고 특히 금에 관심이 많았다.
고토 분지로는 이 시기에 들어온 지리학자였다. 그는 교통사정이 열악했던 1900년대 단지 14개월 동안 국내 지질을 연구하고 돌아가 동경제국대학 논문집에 「조선의 산악론」과 「지질구조도」를 발표했다. 산맥 개념이 세워진 것도 이때부터다.
1904년에는 정치지리학을 전공한 일본인 야쓰쇼에이가 「한국지리」를 펴냈다. 그는 고토의 산맥지형도를 그대로 차용했다. 1905년 조선이 통감부체제로 들어가면서 교과서 내용에 제재를 받게 됐다. 1908년 지리교과서였던 「고등소학대한지지」에 야쓰쇼에이가 발표한 「한국지리」가 옮겨졌다.
산맥은 지질개념으로 지리를 연구한 한 개인의 연구결과에 불과하다. 백두대간이 단지 명칭상의 문제가 아닌 것도 이 때문이다. 백두대간은 지형의 개념이고 태백산맥은 지질의 개념이다. 그러나 우리는 산맥을 지형의 개념으로 지금껏 써오고 있다. 1906년 당시에도 정연호가 「최신고등대한지지」를 통해 산경표나 대동여지도를 언급하며 대간과 정맥을 말했지만 일제에 의해 금서가 되고 말았다.
일제는 하나의 산줄기로 연결된 대간과 정맥의 개념을 없애고 산맥개념을 도입해 우리땅을 여러 갈래로 갈라놓았다. 고토의 산맥도에는 아예 백두산이 없다. 일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를 식민통치에 편한 체제로 바꾸면서 우리의 지형을 바꿔 놓았다. 일본이 지배하여 역사와 정신을 모조리 훼절하면서 백두대간의 개념은 뒤안으로 사라지고 그들이 지은 이름인 마천령, 함경, 태백, 소백 등의 산맥 이름만이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3.산은 물을 넘지 않는다는 대원칙
조선후기의 실학자 신경준에 지어졌다고 추정되는 "산경표"에는 1대간, 1정간, 13정맥의 산줄기 이음이 있다.
13정맥은 청천강을 기준으로 한 청북정맥과 청남정맥, 한강을 에워싸는 한남, 한북정맥, 금강을 두른 금남과 금북, 낙동강 좌우의 낙동, 낙남 정맥, 임진강과 예성강 사이의 임진북 예성남 정맥, 그리고 해서정맥, 호남정맥, 한남 금북 정맥, 금남 호남 정맥등이다.
대부분의 산줄기 이름을 강에서 따온 이유는 노년기 산지의 애매한 줄기 이어짐을 역으로 물 흐름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이는 대동여지도의 발문에 "산줄기는 분수령을 따르게 마련" 이란 뜻의 "山自分水嶺 " 명문화 하고 있는 줄기 가름의 대원칙 때문이다.
4.백두대간은 1대간, 1정간, 13정맥
1대간 : 백두대간
1정간 : 장백정간
13정맥
청북정맥, 청남정맥, 해서정맥, 임진북 예성남정맥, 한북정맥, 한남정맥, 금북정맥, 한남금북정맥, 금남정맥, 호남정맥, 금남호남정맥 낙동정맥, 낙남정맥
5.백두대간 종주
백두대간 부활에 첫 시위를 당긴 이들은 산악인들이었다. 처음엔 대학생들을 중심이었다. 그들은 사람의 흔적조차 지워져 가시덩쿨로 뒤 덮힌 길을 헤치며 온몸으로 마루금을 그어 나갔다.
더러는 독도에 실패해 마루금에서 벗어나 종주를 중단하는 좌절도 겪었다. 더러는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폭우속에서 지쳐 울기도 했고,작열하는 땡볕 아래서 더위에 지쳐 쓰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피땀과 열정을 바쳐 산을 탔고 그 결과 백두대간은 피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제하는 한반도의 뼈대라는 것을 몸으로 확인했다.
뒤를 이어 일반 산악인들이 줄줄이 백두대간 종주의 장도에 올랐다. 지금 백두대간은 산행에 대한 기초지식과 체력만 있다면 누구나 종주를 할 수 있을 만큼 길이 잘 나 있고 길표시도 완벽하게 마련돼 있다.
백두대간 종주는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남한에서 종주할 수 있는 거리는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도상거리 약670km, 실제거리 735.6km이다. 가장 짧은 어프로치(접속구간) 거리까지 환산하면 785km이다. 산행에만 50일이 걸리며 배낭 무게만도 20㎏이 넘는다. 말없는 산과 끊임없이 내면의 대화를 나누며 묵묵히 혼자 가는 길로 어떤 이들은 히말라야의 고산을 등반하는 것보다도 더 힘들다고 말한다.
여름철의 뙤약볕과 싸우며 걸어야 할 때도 있고, 하루 종일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지내야할 때도 있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 침낭 하나에 의지해 긴긴 겨울밤을 지새야 할 경우도 있고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악천후 속에 오도 가도 못하고 제자리에서 헤매야 할 때도 있다.
며칠을 가도 사람 한 명 만나지 못할 때도 있고 길 아닌 길로 들어서 가시덩쿨에 온몸을 뜯겨야 할 때도 있다. 인생의 모든 고통을 죄다 풀어놓은 듯한 쓰라린 순간들이 매일매일 종주자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종주자들은 말한다. 그 고통의 순간들이 결국 종주를 마치게 해주는 힘이라고.종주를 마치고 진부령으로 내려오는 순간 왈칵 눈물이 치솟아 걸음을 떼기가 어려웠다고 대부분의 종주자들은 술회한다.
그 모든 고통의 순간들이 너무도 뚜렷이 떠오르지만 언제나 말없이 그윽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백두대간의 어머니 품 같은 따뜻함에 뒤돌아 뛰어가 안기고 싶은 충동에 젖는다고 한다.
산악인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종주를 꿈꾸는 백두대간, 백두대간 종주는 단순한 산줄기를 밟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수 천 년 동안 내려온 우리 민족의 슬기로운 지리관을 느끼며 민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을 확인케 해준다.
또한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분단국가로서 백두대간은 통일에 대한 강한 확신으로 자리한다. 우리가 종주할 수 있는 것은 백두대간의 절반도 안 되는 남한구간이다. 민족은 두개의 체제로 나뉘어져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철조망이 허리를 조이고 있지만 백두대간은 결코 민족의 하나 됨을 포기하지 않는다. 백두대간을 종주한 모든 산악인들은 꿈꾼다.
6.백두대간 종주요령
백두대간 종주는 하루에 지도상으로 15㎞씩 걷는다 해도 40여일이 넘게 걸린다. 일주일에 하루씩 쉰다면 대략 50일은 잡아야 한다. 겨울철은 적어도 70일은 잡아야 한다. 해가 짧고 동계장비가 무거운데다 눈이 쌓여 있어 그만큼 산행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구간을 나눠서 주말에만 종주를 할 경우 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나선다 해도 40회 이상은 산행에 나서야 해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이 걸린다.
백두대간 종주에는 지도가 필수적이다. 지도는 서울 종로의 중앙지도사(02-730-9191), 서울 용산의 서울지도센타(02-749-6641) 등에서 살 수 있다. 국립지리원 발행5만분의1 지형도는 25매, 2만 5천분의1 지도는 50매가 필요하며 백두대간 지도를 달라고 하면 알아서 준다.
지도는 5만분의1 지형도를 기본으로 까다로운 곳만 2만 5천분의1을 추가로 구입하는 것이 좋다. 지도를 구입했다면 우선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줄(마루금)을 그어두는 것이 좋다.
계곡으로 빠지지 않게, 지 능선으로 잘못 들지 않게 그어야 하며 연필로 그린 다음 형광펜으로 다시 그려야 실수를 해도 수정할 수 있다. 금을 그을 때는 전문산악인의 조언을 받든지 다른 종주자들이 그린 개념도나 지도를 참조하는 것이 좋다.
위험한 구간이 간간히 나타나지만 중급 이상의 실력자라면 어려움없이 통과할 수 있다. 위험구간은 육십령에서 남덕유산, 삼봉산에서 도마치고개, 속리산에서 밤티재, 대야산에서 촛대봉재, 점봉산에서 한계령 사이 등이다. 요즘은 수많은 안내산악회가 백두대간 종주에 나서는데 예전에는 모두 무박으로 진행했는데 요즘은 당일로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있으니 안내산악회의 도움을 받아 함께 가는 것도 여러 가지 측면(특히 비용문제)에서 좋다.
[한국의 산하에서 발췌. 일부 문장은 글쓴이가 고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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