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옥계폭포와 월이산의 풍경
영동의 유일한 폭포이자 중부권 제일의 폭포라는 옥계폭포는 수려한 주변경관과 어우러져 그 아름다움이 널리 소문이
난곳으로 우리나라 3대 악성가운데 한명인 박연이 피리를 즐겨 불었다는 데에서 박연폭포 라고도 불리운다. 이 옥계
폭포의 물을 만들어 내면서 폭포를 품고 있는 달이 뜨는 월이산 (달이산)이 이번 산행지 이다.
옥계폭포에서 정자뒤로 나있는 폭포위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서 월이산 산행은 시작한다. 이곳에서 우측 능선에 올라
월이산 정상과 투구봉, 서봉을 지나 서재마을로 하산하여 마을에서 옥계폭포로 길게 늘어진 시골길을 따라 다시
옥계폭포로 원점 회귀가 가능하여 승용차를 이용한 산행으로는 옥계폭포를 기점으로 삼는게 좋다.
능선에 오르는 초반 오름은 가파르지만 산세가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봉우리 사이의 안부가 깊지않아 초보들도 충분히
가능한 코스이다. 다만 옥계폭포에 비해 월이산은 군에서 관리가 안되었는지 등로에 이정표가 없고 산행 끝부분의
서재마을 (또는 서재마을로 이어지는 길)로 내려서는 등로가 뚜렷하지가 않다.
지난번 영동의 마니산을 다녀오면서 돌아오는길에 옥계폭포에 들러 폭포도 구경하고 계곡물에 더운 몸을 식히려고
하였는데, 폭포의 아름다움과 달리 떨어져 내리는 물이 눈으로 보기에... 아무래도 계곡물 같지가 않아서 폭포수에 세수도
못하고 돌아왔는데 어느분이 폭포위에 마을이 있다는 댓글을 달아 주셔서 호기심으로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산으로 기억해 두고 있었다.
아래에서 얼핏 보면 옥계폭포 위로는 산속 계곡만 있을것 같이 보이는데 이번 산행을 통해 확인해보니 넓은 분지에 마을과
논,밭이 있었다. 결국 옥계폭포 아래에서 올려다 봤을때의 폭포넘어의 환상은 사라졌지만 산에 빙 둘러싸인 서재마을의
조용한 풍경은 조금 신경을 써서 관리를 하면 옥계폭포와 함께 연계되는 트레킹 코스로 사랑을 받을것 같았다.
옥계폭포앞의 기념탑과 기념비
옥계폭포앞 옥계저수지
아침에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퍼져 있어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해만 뜨면 사라질텐데 하고 있었는데, 해가 중천에 떠있을 시간인 오는길에도 해가 보이지 않고 안개만 자욱하다.
걱정도 잠시 옥계폭포앞 주차장에 도착하자 햇님이 얼굴을 드러내고 안개는 햇살에 녹듯이 사라져 버린다.
월이산 등산을 위해서는 정자 뒤편으로 폭포위로 올라가는 오름길을 택하면 된다.
옥계폭포
난계 박연선생이 태어난곳이 인근이라 하여 박연폭포라고도 불리운다.
월이산 산행의 기점은 여러곳이 있는데, 옥계폭포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이유는 원점회귀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옥계폭포와 양바위
옥계폭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온다고...
계폭포의 玉은 여성을 의미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음폭인 옥계폭포의 폭포수가 떨어지는 웅덩이에 남성을 상징하는 우뚝 솟은 양바위가 생겨났다고 한다.
어느날 마을사람들이 양바위가 폭포의 경관을 해친다고 하여 치워버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마을에 이상한 일들이 발생을 하는데... 젊은사람, 늙은사람 가리지 않고 남자들이 객사를 하거나 사고로
죽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여 마을사람들이 다시 양바위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더니, 음양의 조화를 이루게 되고
이상한 일들이 사라지면서 마을이 평온을 찾게 되었다는 재미있는 전설 이다.
옥계폭포앞 계곡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는 옥계폭포위 용소, 예저수
옥계폭포위에는 폭포수가 떨어지기 직전에 큰 용소가 하나 있는데 육안으로 깊이는 알수가 없다.
이 연못은 아무리 큰 장마가 져도 흙으로 메워지는 일이 없었으며 어찌나 깊은지 그 깊이를 가늠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옛날에 못의 깊이를 재어 보려고 마을 사람들은 명주실 한 꾸러미를 들고 나와 돌을 달아 집어넣어 보았지만 실 한 꾸러미가
다 들어가도 끝이 나타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어느 해 극심한 가뭄이 들어 폭포 위쪽의 예저수 물을 푸게 되었다. 차츰 못의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말로만 들어오던 용의 모습이 실제로 못 속에서 나타난 것이다.
귀가 집신 크기만 하고 몸길이는 꼬리가 폭포 아래쪽까지 내려갈 정도였고 폭포 위쪽에 척 걸쳐진 용의 머리를 보고 물을
푸던 일꾼들은 기겁을 하여 모두 도망가 버렸다. 용이 사람의 눈에 뜨이자 그 뒤 못은 차츰 메워져서 지금의 형태로 남아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저수 한쪽에는 대형 파이프가 연결되어 있는데, 가물어서 폭포수가 떨어지지 않는다면 폭포아래 옥계저수지에서 위로 물을
끌어 올려 유사시에 인공적으로 폭포를 돌릴수도 있게 만들어 두었다.
예저수 구경을 하고 계곡 다리를 건너 산행을 시작한다.
비젼행군로 갈림길 - 주의해야 할 지점
옥계폭포 까지는 영동군에서 관리를 잘 했는데, 그 위 월이산 등산로는 전혀 손을 쓰지 못한것 같다.
계곡을 따라 서재마을로 들어가는 길과 산행을 위해 능선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에 제대로된 표지판이 없다.
나무로 비젼행군로 라고만 되어 있는데, 우측 행군로 방향에 산악회의 리본이 많이 걸려 있는것을 보고
감으로 우측길로 방향을 잡았다.
옥계폭포 계곡
비젼행군로를 택하면 바로 능선까지 20여분 가량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지나온 옥계계곡을 조망할수 있는곳을 지나 10여분 더 가면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능선에 오르니 건너편으로 영동군 심천면 일대를 휘어감고 굽이쳐 흘러가는 금강이 보인다.
능선을 따라 조금더 진행하니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계소 방향으로 흘러가는 금강을 조망할수 있는곳이 나온다.
왼쪽 능선을 따라 맨 뒤의 봉우리가 월이산 정상이다.
월이산 정상으로 가는 능선길 넓은 곳에 모여 앉아 푸짐하고 느긋한 점심 식사를 하고 계속 진행을 한다.
월이산 정상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지, 정상석 주변 및 헬기장은 잡풀로 가득하며, 정상의 최정상부에는 어느님의 묘 1기가
자리하고 있다.
정상 조금 못미친곳에 옛날 봉수대터가 있는데, 영동 박달라산에서 신호를 이어 받아 옥천 고리산을 지나 대전
계족산으로 전달을 하는 중요한 정보통신 수단으로 봉수별장 1인을 포함해 200명이 넘는 군인이 근무를 했다고 한다.
월이산 또는 달이산이라 불리우는 이 산의 유래에 대해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이 동네에 살던 월이 총각은 힘이 장사라서 동네 사람들이 멀리하여 항상 외롭게 지냈는데, 하루는 같은 마을의
일향 처녀가 개울가에서 노는 총각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의 순박하고 믿음직한 모습에 반해 남의 눈을 피해가며 사랑을
꽃피우는 중에, 이 사실을 전해들은 처녀 부모가 바깥 출입을 금지하자 처녀는 집안에 갇힌 채 눈물과 한숨으로 지내다
소나무에 목을 매어 자결하고 말았는데, 뒤늦게 이 소식을 전해들은 총각은 폐인이 되어 세상을 뜨게 되었다는 유래에서
두 연인의 인연이 된 산을 월이산이라 하고 그 맞은편 작은산을 일향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월이산은 순 우리말로
달이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이름은 '달이 떠오르는 산'이라는 뜻이다.
서대산 조망
진행방향의 봉우리들...
왼쪽 끝 위로 국사봉이 보인다.
투구봉을 천모산이라 부른다고 하는 안내도.
단군신화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특정 종교에서 그리 부른것 같기도 한데, 정확하지는 않다.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짧게 밧줄 구간도 지난다.
서재마을
산이 자연 성벽같이 에워싸여 있는 서재마을은 마치 하나의 요새 같이 조용하게 자리하고 있다.
전에는 옥계폭포위로는 산과 계곡만 있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옥계폭포 위로 이 마을이 있는것이다.
옥계폭포 주변을 관광단지로 조성 하고 다시 명소로 거듭이 나려면 군에서는 폭포수의 오염 문제도 같이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청정계곡수라고 생각들 할텐데, 마을을 보면 논물과 일부 방류된 생활수 흘러가는 것을 짐작할수 있다.
투구봉에서의 조망
투구봉은 달리 천모산 이라고도 한다.
서봉을 지나니 등로가 갑자기 어지러워 진다.
흔적이 희미해지고 일행들이 방황을 한다.
어차피 서재로 내려가야 하기에 갈래길에서 등로라고 생각한 길로 가다보니 등로는 사라지고 길이 없는 사면을 그냥
내려간다. 아무래도 갈림길 선택을 잘못한것 같은데... 이정표도 없는길에 등로마저 희미해지니 찾을수가 없다.
서재마을
마을로 방향을 잡고 거친산길(?)을 내려왔다.
코스모스가 담을 대신한 마을길
옥계폭포로 이어지는 마을앞 개울 한가운데에 벼가 자라고 있다.
수확한 포도밭 바닥에 요즘 금값이라는 배추와 무우등 채소를 가꾸고 있다.
서재마을의 논에도 벼가 추수를 기다리고 있다.
월이산이 둘러싼 서재마을 분지는 상당히 크다.
서재마을에서 옥계폭포가 있는곳으로 시골길 따라 돌아가는중
서재마을에서 옥계폭포로 돌아가는 길은 제법 길어 굳이 산행이 아니더라도, 옥계폭포와 연계된 가벼운 트레킹
코스를 조성해도 될것 같다.
천화원
서재마을에서 옥계폭포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나오는 단월드 연수원 일지명상센터 천화원은 연간 4만여 명의 국내·외
명상여행객이 다녀가는 등 명상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한다.
천화원 앞의 장승들
81자 천부경
천화원에서 천부경을 가지고 수련을 하는지 장승들 옆에 천부경을 비석으로 만들어 두었다.
천부경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
우주는 시작됨이 없이 시작된 우주이니...
천부경은 우리 역사의 시원과 함께 탄생한 것으로, 상고시절에 환인 천제에 의해 환웅천황에게 전하여지고 이것이 다시
국조 단군 왕검께로 전해질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천부경은 약 9000년 전 중앙아시아의 천산에 살았던 한인천제 때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던 우주의 원리, 하늘의 원리를 표현한 글이라고 한다. 천부경의 해석에 대해서는 현재에도 의견이
분분하며 81자에 우주의 원리를 담았다고 하는데 그만큼 어려운 경문인것 같다.
천부경의 사료가 실려 있는 문헌은 태백일사, 삼성기, 단군세기, 단기고사, 신단실기, 정신철학통론, 제왕운기주, 신단민사,
신고봉장기, 천을진경, 삼국유사, 단군철학석의 등인데 천부경 원문 81자가 모두 기록된 문헌은 태백일사를 비롯한 몇 권의
문헌이고, 그 외의 문헌에는 천경, 또는 천부경이라는 경서의 이름만 표시되어 있다.
천화원을 지나면서 만난 다듬어진 동산에 정자와 아름다운 코스모스가 피어있다.
옥계폭포위쪽 협곡 밑에 숨어 있는 제2 폭포의 비경
등로를 따라 가다 협곡 아래로 가파른 길을 내려가면 된다.
제2폭포 밑에서... 옥계폭포가 있는 계곡으로 이어지는 작은 2단 폭포...
협곡의 등로 위에서는 이 작은 폭포만 보이고, 실제 제2폭포는 보이지 않는다.
옥계폭포위 용소
촬영 장소에 가려면 폭포위 등로 꼭대기에서 밧줄을 잡고 폭포끝 용소 너머로 내려오는 길을 따라 조심스레
내려오면 된다.
옥계폭포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옥계계곡
옥계폭포
월이산 지도
인터넷을 찾아봐도 뚜렷하게 나온 제대로된 월이산 지도를 찾을수 없다.
그래서 다음 산행자를 위해 임시로 지도를 만들어 보았다.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하산로는 녹색화살표로 구분을 했다.
돌아오는길에 칼국수로 유명하다는 인근 원동삼거리에 있는 월이산 가든에 들러 뒤풀이를 하였는데 맛도
좋을뿐더러 칼국수의 양이 엄청나서 다들 눈물을 머금고 남길수 밖에....
메뉴는 칼국수와 막걸리로 아주 단촐하다.
<인근맛집>
- 폭포가든 :: 옥계폭포 근처의 계곡에 있다. 쌈밥으로 유명한집 (043-742-1777)
- 대박집 :: 생선국수 (5,000원), 옥천읍 죽향리 214 (043-733-5788)
- 금강올갱이 :: 삼양사거리 위치 (6,000원) 삼양리 12-5 (043-731-4880)
- 월이산가든 :: 원동삼거리 위치, 특대칼국수 (4,000원) 이원면 원동리 365 (043-732-8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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