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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전국해안선 일주여행(9)] 영흥도 일주

약초2 2010. 6. 8. 19:08

 [자전거 전국해안선 일주여행(9)]

영흥도(靈興島) 일주

 

1.여행날짜: 2010년 6월 5일(토요일)

2.여행날씨: 맑음

3.답사코스: 영흥도 일주

4.답사시간: 10:55~16:10(5시간 15분)

 

5.여행후기

 

영흥도[靈興島]에 대하여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면(靈興面)의 주도(主島).

 

위치: 인천 옹진군 영흥면

면적: 23.46㎢

크기: 해안선길이 42.2km, 최고봉 127.7m

인구: 1,840명(1999)

 

면적 23.46㎢, 해안선길이 42.2km이다. 1999년 12월 말 현재 674세대에 1,84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인천항에서 남쪽으로 26km 해상에 위치한다. 최고봉은 중앙에 솟은 국사봉(國思峰:127.7m)이며, 동쪽에 대부도(大阜島), 북쪽에 무의도(舞衣島), 서쪽에 자월도(紫月島)가 있다.

 

원래 명칭은 연흥도(延興島)였으나 고려 말 익령군(翼嶺君) 기(奇)가 정국의 불안으로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온 식구를 이끌고 이곳으로 피신하면서 익령군의 영(靈)자를 따서 영흥도(靈興島)라고 칭하였다.

 

1975년과 1984년에 신석기시대의 조개무지와 23점의 빗살무늬토기, 원시농업의 흔적이 엿보이는 농경도구들이 발견되면서 이때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였고, 1018년(고려 현종 9) 수주(수원)에 속군 되었으며, 뒤에 인주(인천)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남양부에 속하였고, 1914년 3월 1일 경기도 부천군에 소속되었다. 1973년 지금의 옹진군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 인천광역시로 통합, 편입되었다. 1270년(고려 원종 11)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가 강화도에서 진도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영흥도를 기지로 삼아 70여 일 동안 항몽전을 벌였으며, 6·25전쟁 때에는 인천상륙작전의 전초기지로 활용되었다.

 

해안은 대체로 굴곡을 이루고 있어 어장이 발달하였고, 간조 때에는 넓은 개펄 위로 바지락·굴·소라·낙지 등의 해산물이 풍부하게 채취된다. 산이 낮고 농경지가 많아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며, 지역 특산물로 포도와 흑염소 엑기스가 유명하다. 섬 전체에 상수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십리포해수욕장·장경리해수욕장 등의 해변에는 노송이 우거져 있어 피서철이 되면 사람들로 붐빈다. 2001년에 선재도와 영흥도가 영흥대교로 연결되어 접근이 쉬워졌다. 서쪽 해안에는 영흥화력발전소가 들어서 있다.

 

 

 

 항도(지형도에는 불섬, 영흥도 안내지도에는 목섬으로 표기됨)가 물이 찰때와(좌측) 물이 빠질때(우측)의 모습

 

 

 선재도와 항도 간 물이 찰 때의 모습

 

자전거로 답사하는 전국해안선일주여행 9일차이다.

오늘은 영흥도 일주이다. 무척 기대가 된다.

 

집에서 승용차를 몰고 선재대교를 건너 영흥대교로 향하는데 항도(지도에는「불섬」, 영흥도 안내지도에는 「목섬」으로 표기되어 있다) 가는 길이 앞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밀물 때라 선재도와 연결되는 길이 바다에 잠겨져 있어 잠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사진 몇 장을 촬영한다.

 

 

 측도

 

 

 측도

 

 

이어 측도 가는 길이 나오는데 도로표지판이 측도 가는 길에 바로 세워져 있기 때문에 도로표지판을 보는 순간 그냥 지나쳐 버리기 십상이다. 결국 조금 위로 올라간 후 되돌아와 우측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다시 길을 놓쳐 버렸다. 그래서 다시 되돌려서 무척 신경을 써서(신호등이 없다)측도 가는 길로 들어선다.

 

폭 좁은 시멘트도로 2차로이다. 얼마안가 정면으로 건물 하나가 보이고 이내 정면으로 바다가 보이는 막다른 길의 삼거리가 나온다. 감각적으로 좌회전하여 들어간다. 잠시 진행하다가 이내 우회전하면 측도로 연결되는 길에 전봇대가 줄지어 있는 것이 보인다.

「지금이 물이 한참 들어올 때라 잘못하면 이 길도 물에 잠기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측도 가는 입구 해변에서 집에서 준비한 아침식사를 한다.

아침식사를 하는데 심심치 않게 차량들이 측도를 오가고 있다. 물이 많이 들어와도 측도는 항도와는 달리 물에 잠기지 않나보다.

 

 

 물이 가득차있는 영흥대교

 

 

 영흥대교 건너면 가장 먼저 만나는 수산물직판장

 

 

 영흥대교

 

 

 영흥대교에서 십리포해수욕장으로 향하는 중

 

 

아침식사를 마치고 측도는 나중에 귀경길에 답사하기로 하고 큰 길로 나아간 후 영흥대교를 넘어 곧바로 우회전한 후 나타나는 공터에다 주차를 한 후 본격적으로 영흥도 답사에 나선다.

 

수산물직판장이 나오고 유람선 타는 곳이 나오는데 유명관광지의 유람선과는 다르게 이곳 유람선은 어떤지 초라하게 보인다.

계속 해안가 도로를 따라 진행을 한다. 얼마간 진행을 하면 해안가도로는 큰 도로와 합류된다.

 

 

 십리포해수욕장

 

 

 십리포해수욕장

 

 

얼마간 진행을 하다가 우측의 산길로 접어들어 좁은 시멘트포장길을 따라 진행을 하다가 이내 다시 큰 길과 합류한 후 큰 길을 따라 십리포해수욕장에 도착을 한다.

 

이곳 십리포 해수욕장은 다른 곳과는 조금 다르게 해변과 송림과의 사이의 모래가 언덕을 이루고 있다. 아까 십리포해수욕장 초입에서 사륜오토바이 수십대가 출발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이곳 십리포해수욕장의 해변까지 들어와서는 해변길을 사륜오토바이를 타고 진행하는데 정말 어이가 없다.

 

 

 장경리해수욕장

 

 

 장경리해수욕장 입구

 

 

어수선한 십리포해수욕장을 빠져나와 이제 장경리해수욕장으로 향한다.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제법 길게 2차로 도로를 따라 진행을 한다. 한동안 진행을 하니 드디어 장경리해수욕장이 나온다. 이곳 장경리해수욕장이 십리포에 비해 조용하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없어 좋았다.

 

장경리해수욕장 입구의 삼거리에서 곧장 직진하여 진행하는데 「아뿔사!」 통일사 방향을 지나쳐버려 되짚어 내려가 삼거리에서(외리 방향에서는 통일사 이정표가 있는데 장경리해수욕장에서는 초입 삼거리의 대형도로표지판[내6리. ↑통일사, 대부.선재 100m→]이 세워져 있다) 우회전하여 들어간다. 이내 포장도로는 시멘트포장도로로 바뀐다. 이제 표고도 높아져서 더 이상 타고 올라갈 수가 없어 공터에다 자전거를 세워두고는 걸어서 올라간다.

 

얼마안가 통일사가 나온다.

 

 

 통일사

 

 

 영흥사 유일의 사찰인 통일사

 

 

통일사(統一寺)

 

본 사찰은 6.25사변 당시 전사한 남편의 넋을 기리기 위해 여승 崔善奎스님이 1983년 창건하였다.

스님의 남편인 서형석씨가 1951.1.4 후퇴시 학도병(당시하사관)으로 서부전선에서 1개소대 병력으로 중공군 대부대와 맞서 싸우다 전우들이 모두 전사하자 자신도 장렬하게 자결하였다 한다.

 

그후 미망인이 된 스님이 그 한을 풀기 위해 이곳 國思峯에 현 사찰을 짓고 항시 조국통일기원 염불을 계속하고 있으며 대지 70평, 건평 20평의 소규모 사찰로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하고 있다.(통일사 안내 푯말에서 발췌)

 

 

 국사봉 산행의 이정표

 

 

 국사봉 정상

 

 

영흥도 유일의 사찰인 통일사를 구경하고는 이제 국사봉을 산행하려고 통일사에서 임도따라 직진하다가 삼거리(←차로없슴, 통일사입구→)에서 우측으로(차로없슴 방향) 꺽어 올라간다.

 

계속 이어지는 임도길을 조금 진행하면 이정표(국사봉 212m, 통일사 600m)가 나오면서 숲길이 시작되면서 오름길을 올라간다. 조금 올라가면 국사봉 정상의 3층의 팔각정이 나온다.

팔각정 옆에는 안내 푯말이 세워져 있다.

 

【영흥도 국사봉과 소사나무 보호지역

국사봉(國思峰)은 영흥도(靈興島)에서 제일 높은 해발 123m의 봉우리로서 팔미도 등대와 인천항은 물론, 맑은 날에는 멀리 있는 강화도 마니산과 백령도와 황해도 해주의 수양산까지 보인다.

정상 주변의 소사나무는 중부 이남의 해안지역에 분포하며 높이가 8m 정도로 5월에 꽃을 피고, 10월에 열매를 맺는 관상용 낙엽소 교목으로 자연보호 가치가 매우 큰 수백년 된 소사나무 군락지이다.

아름다운 섬 영흥도의 국사봉 정상 자연보호에 우리 모두 앞장섭시다.

2003. 3.21

옹진군 영흥면 주민자치위원회. 한국남동발전(주) 영흥화력건설처

(정상에 세워져 있는 안내 푯말 내용)

 

또한 이정표(고개넘어 1.3km, 작골 800m, 통일사.버드니)도 세워져 있다.

팔각정 위에 올라가니 조망이 무척 좋다.

 

 

 국사봉 정상에서 바라 본 조망(영흥대교, 선재도 방향)

 

 

 국사봉 정상에서 바라본 조망(장경리해수욕장 방향)

 

 

통일사약수터 안내푯말

 

 

 

임도에서 만난 4사람과 잠시 예기를 나누다 먼저 하산한다. 이번에는 반대방향으로 내려간다.

내리막구간을 내려서면 임도에 떨어진다. 이곳에도 이정표(버드니 1.7km, 국사봉 280m, 통일사 400m)가 세워져 있다.

 

이정표가 있는 임도에서 우회전하여 조금 가면 통일사가 나온다. 그러니까 통일사을 중심으로 좌측이나 우측, 아무 쪽으로 가도 국사봉이 나온다.

약수터 벤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휴식을 마치고 자전거를 회수하기 위해 내려간다.

 

 

에너지파크

 

 

 에너지파크

 

 

 에너지파크

 

 

 에너지파크

 

 

 에너지파크

 

 

이제 국사봉 산행을 마치고 자전거를 회수한 후 이제 영흥화력발전소를 향해 진행을 한다.

영흥화력발전소 직전에 에너지파크라는 곳이 나오는데 시설을 잘 해놔서 잠시 쉬고 가기가 좋다.

 

팔각정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는 화력발전소 구경을 하려고 후문을 들어가려니 출입통제를 한다. 할 수없이 이번에는 정문 쪽으로 가서 한 번 더 물어보니 역시 출입통제를 한다.

「아뿔사! 아까 국사봉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화력발전소를 가보라고 했는데…」

 

 

 출입금지지역인 수산종묘배양연구소

 

 

화력발전소 정문에서 자전거를 돌려 이번에는 수산종묘배양연구소를 향한다.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다 끝 부분에 비포장도로를 거쳐 정문 근처에 도착하니 이곳도 출입금지지역이다.

별수 있나 다시 자전거를 돌릴 수밖에!

 

 

 유료로 운영되는 용담낚시터 입구

 

 

 용담낚시터에서 나오는 일방통행 길이 나온다

 

 

수산종묘배양연구소에서 자전거를 돌려 삼거리에 원 위치 한 후 외리에서 해안가 쪽의 시멘트길따라 들어간다. 유료인 용담저수지를 거쳐 일방통행길 따라 진행한 후 얼마간 진행하니 붉은노리삼거리가 나온다.

 

이곳 붉은노리삼거리에 위치한 슈퍼에서 잠시 휴식을 하다 이제 영흥도 답사를 마치려고 주차되어 있는 삼거리를 향해 마지막 페달을 밟는다.

 

 

 물이 빠진 상태의 영흥대교

 

 

십리포해수욕장의 소사나무

 

 

면사무소 입구 도로를 거쳐 해안가도로를 거치고 영흥대교 직전에서 수산물직판장으로 들어간다. 아까 처음에 수산물직판장을 구경을 못해서 이번에 구경하려고 자전거를 세워두고 수산물직판장에 들어가니 이외였다.

 

수산물직판장 내부는 온통 식당들이었다. 그러니까 식당마다 수족관을 구비해두고 식당 영업을 하는 것이다. 이런 곳은 처음 보았다.

식당으로 빽빽한 수산물직판장을 빠져나와 자전거를 회수한 후 다시 유람선선착장를 거쳐 공터에 도착한다.

이로써 5시간 15분(휴식포함)의 자전거여행을 즐겁게 마쳤다.

 

집으로 가려다 십리포해수욕장의 소사나무를 놓쳐 자동차로 십리포해수욕장에 다시 도착해서 소사나무 안내판을 자세히 읽어 보았다.

 

아래는 인터넷에서 검색한 기사 내용이다.

 

[Why?의 우리 땅 우리 사람]

[Why] 바닷바람 맞으며 마을 지킨 그 소사나무들은…

 

참 딱하게도 생겼다. 400그루 가까운 나무들이 한 그루도 빠짐없이 모조리 전기고문 당하는 사람들처럼 비비 꼬여 있다. 해풍(海風)에 낙엽들이 바스락거리는데 나무들은 음산하기까지 한 모습으로 바람을 맞는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도는 대부도, 선재도와 함께 다리로 육지와 연결된 섬이다. 선착장에서 10리를 가면 해수욕장이 나온다. 10리를 간다고 해서 십리포해수욕장이다. 십리포 사람들은 150년 전 방풍림을 만들었다.

 

마을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서다. 수종은 바닷가에 잘 자라는 소사나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바닷가에서 흔히 보는 소나무 방풍림 대신에 여기 사람들은 소사나무를 택했다.

 

토종 소사나무를 산에서 날라 모래밭 뒤 얕은 언덕에 심었다. 전하기로는 자갈, 모래밖에 없는 언덕이라 마을사람들이 볏짚으로 가마니를 짜 놓고 그 위에 황토를 부어 땅을 만들었다고 한다. 넓이는 3000평 정도 된다.

 

과연 나무들은 쑥쑥 자라서 길이 400m 정도 되는 방풍림 뒤로 더 이상 모래도 날아오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게 되었다. 논과 밭은 제대로 소출이 나오게 됐다. 대신 나무들은 죽어났다.

 

하늘로 뻗어야 할 이 자작나무과 나무들이 불어 닥치는 바람에 직립을 포기하고 옆으로 옆으로 자란 것이다. 그나마 제대로 뻗지도 못하고 밑동과 가지에 옹이들이 달라붙고 새끼줄처럼 비틀어졌다. 방풍이라는 소임은 완수했으되 정작 나무들은 고단한 세월을 살아야 했다. 평균키가 10m 정도 되는 다른 곳 소사나무와 달리 땅에서 꼭대기까지 8m가 되지 않는다. 세월을 이겨낸 꼬부랑 할머니 같이 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당나무 숲이라고 부른다. 바람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숲이니, 그렇게 숲은 서낭당만큼 대접을 받는다. 100년이 지나고 보니 십리포 소사나무숲은 전국에서 하나밖에 없는 소사나무 군락지가 됐다. 그것도 사방으로 줄기를 비틀어버려 외형상으로는 여느 소사나무와 동족이라고 볼 수 없는 그런 독특한 군락지다. 영흥도는 소사나무의 북방한계선이다. 인천시는 1997년 이곳을 천연보호림으로 지정했다.

 

1990년대 소사나무숲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해수욕장을 찾는 사람들은 숲으로 들어가 텐트를 치고, 삼겹살을 구워먹고, 오줌을 누고, 술판을 벌였다.

 

2001년 영흥도가 연륙교로 뭍과 연결되면서 텐트 치고 술판 벌이는 사람들이 몇배로 늘었다. 바람에 치이는 것도 서러운데 사람들까지! 결국 2002년 소사나무숲 둘레에 연녹색 철책이 설치됐다.

 

안내판에는 야영 못하고 취사행위도 안 되고 소중한 곳이니 보호한다고 적혀 있는데 '들어가면 안 된다'는 말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으니 어인 일인가.

글=박종인 기자(조선닷컴. 2010.03.13기사입력 내용 발췌)

 

 

 관광안내도

 

 

 영흥도 지형도(1/50,000 축소분).  빨간색 부분이 자전거로 일주한 곳이다.

 

 

6.특기사항

①영흥화력발전소(한국남동발전), 수산종묘배양연구소는 출입금지지역이다.

 

②선재도에서 측도 가는 길은 세군데 있는데 처음 가는 사람은 중간에서 들어가면 되는데 이정표가 측도 가는 길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표지판이 보이는 즉시 우회전(신호등이 없기 때문에 전방에서 오는 차량을 조심해야 한다)하여 들어가면 된다. 이어 정면이 막힌 삼거리에서 좌회전하고 이후 우회전하여 들어가면 된다.

또 다른 길은 대부도방향에서는 들어가기가 쉽지 않고 영흥도 방향에서는 해변 쪽으로 들어가면 된다. 또한 나올 때도 맨 우측방향으로 나오면 되는데 마지막 부분이 폭이 좁고 현재 비포장이다. 비포장구간이 짧다.

 

 

 현재(9차)까지의 답사구간(빨간색 표시)

 

 

③자전거 전국해안가 일주여행 일정

(1)2010.03.27 서울중계동→동부간선도로→한강→48번국도→강화대교

(2)2010.04.03 강화대교→강화도 해안일주→강화대교

(3)2010.04.10 보구곶리→덕포진→대명항→초지대교

(4)2010.04.17 초지대교→영종대교기념관→월미도

(5)2010.05.01 신시도 일주

(6)2010.05.08 인천역→소래포구→오이도역

(7)2010.05.21 해운대동백섬→대변항→일광해수욕장

(8)2010.05.29 오이도역→시화방조제→영흥터미널

(9)2010.06.05 영흥도 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