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낙동정맥 8] 외항리→고헌산→단석산(갈)→당고개(00.10.01)

약초2 2009. 2. 24. 11:46

 

295번째 산행이야기

낙동정맥 8번째

외항리→고헌산→백운산→단석산(갈)→당고개


1.산행날짜: 2000년 9월 30일(토)~10월 1일(일): 무박산행

2.산행날씨: 맑고 청명함

   서울출발시23도. 맑고화창. 와항리15도 외항재13도 1034.8봉12도 고헌산15도 692.7봉15도 백운산20도700.1봉15도 535.1봉22도 아래상목골22도 단석산갈림길20도 662봉20도 당고개20도


3.산행코스: 외항리→고헌산→백운산→단석산(갈)→당고개

4.참가인원: 거인산악회 35명

                    이구, 권영근, 김경선, 김미선외1인, 김점수, 김종기, 김종훈, 김홍대, 박계신,

                    박종성, 박지혜, 서영구, 김경희, 서진석, 김유선, 남궁균, 최중찬, 홍창기, 엄덕영,

                    오혜림, 우무웅, 유재철, 이군복, 이방원, 이석준, 이성우, 조유선, 조인기, 차창환,

                    최영락, 홍장권, 김안선, 노창현, 이연숙.


5.산행시간

-03:30 외항리 착(새벽 별자리 구경[오리온자리], 371번 버스[태종↔외항])

-03:57 발(산행시작)

-04:07 외항재

-04:57 1034.8m봉(케언, 안내판)

-05:09 고헌산(돌탑, 이정표[소호령 2km, 와항재 3km, 고헌사 3km], 정상석 2개)

-05:54 692.7m봉(삼각점)

-06:27 백운산(정상석 2개, 정상직전에서 일출구경)

-07:47 송전철탑(약640m)

-07:52 소호고개(소로길)

-08:10 700.1m봉(삼각점) 착(아침식사) /   -08:27 발

-08:55 헬기장

-09:03 헬기장

-09:10 임도 만남(오른쪽으로 진행)

-09:45 능선진입

-11:10 조각공원(작품숫자[5개] 빈약)

-11:20 예배당 건물(사다리꼴 형상). 단석산 4km 이정표

-11:53 단석산 갈림길

-12:10 단석산(정상석)

-12:27 단석산 갈림길 원위치(단석산 다녀오는데 34분 소요)

-13:24 당고개(송전철탑, 토종닭요기식당, 약수터) 착(산행종료: 9시간 27분 산행함. 후미는 11시간 산행. 봉우리 32개(단석산 포함))


◆구간:와항리(450)--(9/0)--와항재(550)--(53/4)--서봉(1034.8)--(10/4)--고헌산(1032.8)--(38/10)--임도--(14/15)--692.7봉--(5/1)--소호령(650)--(36/2)--백운산(892)--(21/13)--855.9봉--(51/8)--638.5봉--(4/3)--소호고개(550)--(17/2)--700.1봉--(21/13)--700봉--(7/5)--684.8봉--(34/4)--535.1봉--(40/16)--605.1봉--(16/4)--527.8봉--(44/9)--조각공원--(61/23)--단석산(827.2)갈림길--(14/2)--662봉--(30/7)--당고개(땅고개340)


◆총산행 시간 11:10 (와항리 03:57 ∼ 당고개 15:07)

산 행 시 간 08:45

휴 식 시 간 02:25


◆거리:와항리--1.1km--외항재--1.9km--1034.8봉--0.8km--고헌산--2.8km--1.1km--692.7봉--0.4km--백운산--1.7km--855.9봉--1.8km--638.5봉--0.2km--소호고개--0.9km--700.1봉--1.3km--700봉--0.5km--684.8봉--1.6km--535.1봉--1.8km--605.1봉--0.8km--527.8봉--5.1km--단석산갈림길--0.9km--662봉--1.3km--당고개 (총정맥거리26.2km)

 

 

 

산행지형도

 

 

6.산행후기

4333년 9월 30일 흙의날


출발하기 전에 항상 읽어보는 원의연 아저씨의 낙동정맥 종주기는 읽을 때마다 내 자신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다. 그러나 역사적인 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하루아침에 쌓이는 것도 아니니 차차 노력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아직 나는 많은 면에서 부족하고 미숙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낙동정맥의 마루금을 다 이어보았지만 피재에 이르러서는 마루금을 긋기가 아주 어려웠다. 배워야 할 게 너무 많다. 아는 것은 힘이다.


그저 봉우리들을 오르고 내리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낙동정맥을 밟고 있는 것이라는 걸 항상 염두에 두라는 대장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면서 오늘도 종종걸음을 친다.



4333년 10월 1일 해의날


잠자는 사이 달이 바뀐다. 10월이다. 새천년이라며 왁자지껄하게 시작한 2000년이 3개월 남은 시점이고 바야흐로 가을이다. 나의 10월은 와항리에서 시작되고 있다. 잠든 거리로 나서 떠나가라고 손짓하는 시월의 첫 새벽….


와항리(450m)와 외항재. 지도에 표기된 지명이다. 마을 이름을 따서 와항재라고 할 법도 한데 지도에는 분명히 외항재로 표기되어 있어 나를 헷갈리게 한다. 1.1km의 구간은 산봉우리를 넘지 못하고 시멘트 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새벽 4시가 못된 시각. 별들이 어둠을 따라 촘촘히 하늘에 박혀 있다. 오른쪽 위에 떠 있는 삼태성은 내 방 천정에 있는 것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내 천정에는 카시오페이아도 있는데 하늘에서는 카시오페이아 자리를 찾을 수 없다. 먼동이 터올 때 스스럼없이 사라질 별들.


산내숲속숯불생고기라는 간판을 단 음식점을 지나니 외항재(550m)이다. 능선을 우회해 시멘트도로를 따라 오른 9분의 걸음. 상북면이라는 도로표지판을 앞에 두고 오른쪽 시멘트 방벽으로 올라서니 고헌산 정상까지 3km라는 이정표가 있다. 내가 잰 거리로는 2.7km인데….


지금부터는 경상남도를 벗어난다. 경상북도로 진입하는 것이다.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몇 달은 경상북도의 산자락을 밟아야 할 것이다. 그러다 강원도 땅으로 들어서면서 피재에서 멈출 마루금. 길은 멀고 험하다.


깨끗하고 넓은 길 양쪽으로는 좋은 소나무들이 자란다. 기울기가 더해질수록 금방울 언니가 점점 뒤로 밀려난다. 김경희 아줌마는 발목을 삐었다고 하신다. 초반부터 걱정거리가 쌓인다.


외항재에서 부터 고헌산까지의 방향은 남동일텐데 나침반을 보니 이상하게도 남서 방향으로 나온다. 자꾸 뒤를 돌아본다. 마을의 불빛들이 아롱거린다. 어둠 속에서 보이는 불빛은 늘 따뜻함을 그리게 만든다. 집과 그 집에서 번져 나오는 새벽의 냄새들….


길이 좁아지며 억새 능선이 잠시 이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가파른 돌 자갈길이다. '멋도 없는 길.' 나는 멋도 없는 길이라고 중얼거리고 있다. 멋도 없는 길이라니…. 다만 여러 가지 면모를 보여주는 것인데 멋도 없는 길이라니… 질책을 해도 역시 목구멍에서는 자꾸 멋도 없는 길이라고 투덜대고 있다. 하긴 하루하루가 내게 모두 소중하긴 해도 심심한 날이 있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보낸 허송세월들이 있기 마련이다. 길은 세월이다. 그래도 가파른 오르막 덕분에 자주 돌아보는 뒤의 능선들이 가슴을 트이게 한다.


고헌산에서 산행을 그만두면 좋으련만… 푸하하! 다시 길은 넓어지고 가파르게 오르며 오른쪽으로 살짝 휘니 드디어 봉우리가 보인다. 은방울 언니가 저게 고헌산인지를 묻는다. "아뇨. 저 봉우리 너머에요. 저건 1034.8봉!" "맞아, 원의연씨의 종주기에도 그렇게 되어 있었어." 언니도 열심히 공부를 하고 온 것이다. 정상이 멀지 않다. 저기에 오르면 마음껏 쉬어보리라. 조끼를 벗는다. 왼쪽 산자락 너머에 마을 불빛이 흡사 일출의 기운 같다. 금방울 언니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한 줄기 바람이 목덜미를 스쳐간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리더니 이내 서봉(1034..8m)이다. 돌탑 앞에 놓인 울주군에서 세워 놓은 환경안내문이 먼저 나를 맞는다. 5시 3분. 가파른 길은 다 오른 셈이다. 풀밭을 뒤지니 오른쪽으로 하산로가 이어지고 있다. 헤드랜턴을 지도 위에 비춘다. 궁근정리로 이어지고 있다. 바람은 가파른 오르막에서 솟은 땀을 식혀주고 있다. 12도.


선두는 고헌산을 지나고 있다. 가파른 자갈길을 내려가는데 한 무리의 구절초가 활짝 피어 있다. 김경희 아줌마의 발목이 심상치 않다. 아줌마의 걸음이 느려지고 있고 보폭도 좁아진다. 1031봉을 지나 오르니 5시 17분 고헌산(1032.8m)이다. 김인기씨가 헤드랜턴의 불빛에 의지하여 대리석으로 된 표지석의 사진을 찍고 있다. 나도 셔터를 누른다. 이정표는 오른쪽으로 고헌사 방향을 나타낸다. 내가 잰 거리의 3.2km가 무색하게 소호령까지의 거리는 2.0km. 돌탑의 상부는 무너져 내리고 있다. 돌탑 위에 뭔가 번쩍거리고 있다. 대리석 표지석이 하나 더 있고 표지목이 있다. 이런 이런!


고헌산이 낙동정맥에서 벗어나 있다는 논란에서 어느 쪽 편을 들 것인가 할 때 직접 경험에 비추어 본 지금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왼쪽으로 휘어진다. 마루금의 방향은 북동으로 틀어지기 시작한다. 정맥도 이제 본격적으로 북진을 시작하는 것이다. 봉우리를 하나 지나면서 대장님이 선두가 그 봉우리를 지날 즈음부터 보냈던 무전을 되새긴다. 오른쪽으로 난 방화선 길을 따를 것!


방화선 길은 자갈지대이다. 김경희 아줌마의 발목이 더욱 걱정스러워진다. 순간 주르륵! 미끄러진다. 아, 나의 불행은 남의 행복. 은방울 언니가 하하 호탕하게 웃더니 언니마저도 주르륵! 쯧쯧~ 타산지석!


불행은 어디에서나 혀를 낼름거리다가 잠시 방심한 사이 잠입하는데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는 빈 틈 없는 방어가 늘 필요하다. 그런데 늘 그렇게 긴장하고 산다는 것은 무리이다. 하기야 미끄러지면 어떻고 미끄러지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가끔 그런 변화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정맥의 마루금이 늘 한 방향을 향한 것이 아니듯.


고헌산을 지난다는 대장님의 무전에 응답을 보낸다. 가파른 오르막에서 진이 빠져 있을 금방울 언니는 괜찮다고 한다. 늘 힘들어하면서도 토요일이면 배낭을 꾸리는 우리의 습관. 도란거리는 얘기 중 김경희 아줌마에게서부터 업보라는 단어가 나온다. 업보! 그래. 어쩌면 이 모든 게 업보인지도 모른다. 몇 억년을 지층처럼 겹겹이 누적되어 나타나는 업보!


아침 해가 고개를 내밀려고 한다. 오른쪽으로 붉은 기운이 은은하다. 우리가 북쪽을 향해 가고 있긴 하나 보다. 잠시 기다리고 후미와 같이 진행한다. 김경희 아줌마의 발목 상태를 들으신 대장님은 선두에게 무전을 보내신다. 이석준 아저씨의 한방술이 필요한 때문이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거인의 의료진이 드디어 그 힘을 발휘할 때다. 가파르던 내리막의 경사가 완만해지면서 무밭이 나온다. 임도 삼거리를 지난다.


임도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 지점에 이석준 아저씨와 홍장권 아저씨 일행들이 우리를 맞는다. 홍장권 아저씨는 난생 처음 보는 붕대를 풀기 위해 무진 애를 쓰신다. 아주 얇은데다가 오랫동안 쓰지 않아 엉겨 붙어 있다. 3M 붕대라고 한다. 김경희 아줌마의 발에는 그렇게 붕대가 감기고 은방울 언니의 압박붕대가 덧발린다. 그렇게 15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선두는 백운산에 도착하고 6시 17분에 해는 불쑥 불쑥 생각났다는 듯이 제 모습을 보이더니 완전히 지평선 위에 떠오른다. 금방울 언니를 모델로 세우니 힘든 기색은 전혀 없이 프로다운 모습을 보인다. 씨익!


침을 보고 어린애처럼 무서워하는 아줌마의 표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석준 아저씨께서 아줌마의 손바닥에 세 번의 침을 박는다. 손짓의 가벼움. 그게 전문가의 손길이라는 것인가! 그런 손길인데도 아줌마는 겁에 질려 떨고 있다. 손바닥에 침을 꽂고 아줌마는 엉거주춤 앞장서신다. ...


임도를 따라 오르니 삼각점이 있는 692.7봉이다. 봉우리 한가운데가 임도로 파여 있다니... 할 말을 잊는다. 왼쪽으로 보이는 백운산과 뒤를 돌아보고 내가 내려온 그 자갈 너덜길의 능선을 한 장 찍어둔다. 6시 40분 소호령(650m)을 지나면서 방향은 북서쪽으로 바뀌면서 백운산까지 1.7km의 길이 가파르게 보인다.


12명이 된 선두 일행이 백운산을 출발한다고 한다. 돌 위에 쌓인 낙엽 틈으로 애기 도마뱀이 보인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그때부터 나뭇가지 하나만 보여도 가슴이 철컹거린다. 그러다 가슴이 쫄아들고 말겠다. 그래도 그런 길을 올라가고 있다니 간이 부은 것일까? 그렇게 상충된다면 몸무게 변동은 없을 것이다.


앞에 보이는 바위를 향해 오른다. 저기가 백운산이겠거니... 잉? 백운산이 아니네! 속았다는 기분으로 다시 오르는데 은방울 언니가 지금 걷고 있는 능선을 따라 나 있는 임도가 가리마 같다고 한다. 끄덕끄덕. 한가운데를 가르는 가리마. 이마에서 정수리까지의 가리마를 기준으로 우리의 신체는 왼쪽과 오른쪽으로 갈린다. 각각은 대칭되어 다른 기능을 담당하지만 결국은 내 신체이다. 정맥의 마루금이 일구어 놓은 마을들이 저마다 다르지만 모두 뭉뚱그려 우리의 산하이고 우리 삶의 터전이듯이.


김홍대 아저씨게서 내 이름을 부르신다. 역시 밥은 활력이다. 7시 18분. 백운산(892m)에 이른다. 후미가 10명 정도 되는 것 같다. 일단은 배낭에서 김경희 아줌마께서 주셨던 김밥통을 2개 꺼내놓고 표지석이 있는 곳으로 간다. 대리석으로 된 표지석이 2개 있고 그 사이에 표지목이 시멘트에 박혀 있다. 세 개가 비스듬히 일직선으로 박혀 있어 참 재미있다. 그 배열 때문에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보는 듯하다.


김경희 아줌마는 늘 정성이시다. 그 동안의 산행기를 읽고 아줌마의 막내딸 진영이가 "엄마는 먹을 때만 나오네" 했다지만, 염치없이 아줌마에게서 받아드는 도시락에는 늘 아줌마의 정성이 깃들여 있기 때문에 무심할 수가 없다.


7시 31분.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다음 목적지로 삼은 소호고개까지는 3.3km. 지도를 보니 855.9봉은 쉽게 놓쳐버릴 것 같다. 이제서야 1034.8봉인 서봉에서부터 이어지던 방화선 길이 끝을 맺는다. 약간 왼쪽으로 내려간다. 가끔 바위를 내려서면서 조금 지체된다. 산에서도 사뿐사뿐 걷는 혜림 언니의 걸음은 아주 가볍다. 어떻게 산에서 저렇게 걸을 수 있을까?


잡목 또한 가세한다. 으~ 모두들 한 마디씩 뱉어낸다. 오르락내리락. 서영구 아저씨께서 놀리신다. "이럴 땐 숏다리가 좋은 거야. 그지?" "기죽이지 마세요 아저씨!" 낮게 자란 잡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허리를 구부려야 한다. 길도 희미해진다. 사람들의 왕래가 적었다는 것일까….


7시 52분 855.9봉을 지나며 잡목길은 조금 나아진다. 백운산 언저리여서일까? 왼쪽은 청명하기만 한데 오른쪽은 구름에 높은 봉우리들만 섬으로 떠 있다. 저 구름들은 왜 오른쪽으로만 몰려 있을까? 아, 구름들이 능선을 넘어서 왼쪽으로 이동중이다. 흩어짐은 농도를 낮춘다. 삐죽삐죽 보이는 구름 위 섬들을 전망하며 봉우리를 몇 번 지난다. 큰 바위를 만나 왼쪽으로 돌아내리니 억새 능선이 나타나면서 금방울 언니는 다시 멋진 포즈를 취한다.


평탄하게 진행하면서 구름이 나를 스치는 것 같다. 아주 옅어서 기운만 느껴질 뿐이다. 후욱! 숨을 몰아쉰다. 구름이 폐부로 들어온다.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살짝 휘어져 내려오는데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대장님이 따라붙어 있다. 억새지대를 지나며 좌우를 살피니 아무것도 없다. 신발끈을 묶고 있는데 "쉬었다 가세요." 소리치면서 대장님이 지나가신다.


휴식이란 편안한 것이다. 어디에선가 지친 몸을 가눌 수 있다는 것. 5분 동안의 휴식이 보충해준 기운으로 봉우리에 오르니 철탑이 있다. 철탑 아래에서 이군복 아저씨와 방원이, 홍장권 아저씨와 김안선 언니와 김종훈 아저씨와 김경선 이사님께서 식사를 하고 있다. 홍장권 아저씨께서 사과를 주신다. 모두 왼쪽으로 내려서는데 나만 다시 사과에 발걸음을 멈춘다. "고맙습니다!" 명랑한 인사를 하고 서둘러 일행을 따라간다. 다시 방화선이다. 어휴! 방화선길 옆으로 개미취가 너울거린다.


어느덧 방화선 길은 삼거리 임도가 되어 있다. 자꾸 고개는 갸우뚱거린다. 여기가 소호고개(550m)일 것 같은데. 638.5봉에서 소호고개까지는 200m 정도의 거리이고 철탑이 있는 봉우리가 638.5봉일 것이다. 철탑에서 고도계를 보지 못했는데… 시계를 보니 9시가 다 되어가고 있다.


봉우리를 향하여 오른다. 이 지점이 소호고개라면 0.9km를 오르면 700.1봉일 것이다. 나무에 가려 봉우리는 보이지 않으나 도상거리를 가늠해 볼 때 15분 정도 걸릴 것이다. 점점 가팔라지는 길을 오르니 9시 17분 700.1봉. 삼각점은 보이지 않는다. 왼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경상북도와 울산광역시를 나누는 가리마이다.


9시 30분. 멀고도 먼 길을 향해 출발한다. 오늘 구간의 반 정도를 온 것이다. 앞으로 반이 남아 있다. 엄덕영 아저씨는 윗상목을 통과하고 있나 보다. 내리막길에서 처음으로 용담을 만난다. 꽃봉오리가 봉긋하게 솟아 있다. 길은 좋다. 뚜렷한 길 왼쪽으로 희미하게 길이 나 있는 것 같아 확인차 희미한 길을 따라가 보지만 길은 어느 지점에서 끊겨 있다. 다시 뚜렷한 능선길로 진행한다. 9시 51분에 700봉을 지나니 노창현 선배마저 윗상목을 지난다고 한다.


이번엔 투구꽃이다. 무리지어 피어 있다. 소백산에서 처음으로 투구꽃을 보았을 때 그 색의 천연스러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올해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라 반갑다. 오늘 용담도 보고 투구꽃도 본다. 대단한 노획물이라도 얻은 병사처럼 가시밭길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지난다. 잠시 오르니 684.8봉 헬기장이다. 10시 3분. 보도블록만 드문드문 보일 뿐 잡초는 계절의 이득을 누리며 헬기장을 덮고 있다. 용담이 여기저기서 꽃을 피운다.


자그마한 봉우리를 하나 내려 잡초에 덮인 헬기장을 지난다. 가파르게 내려간다. 임도다! 10시 26분. 나 역시 윗상목골 임도(480m)에 다다른 것이다. 공터에는 나뭇가지가 쌓여 있다. 내 무전기는 소리들을 잘 전달해주지 못한다. 간헐적인 소리들을 대충 짜맞추니 도로를 따라가다가 오른쪽으로 능선을 타라고 한다.


윽!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는데 나무들은 벌목되어 있다. 포크레인이 지나간 흔적이 역력하다. 내 발이 잘려나가는 듯한 나무와의 교감으로 천천히 힘들게 오르니 10시 41분. 535.1봉이다. 소호고개에서 4.3km를 걸어온 곳. 항상 다른 곳으로 빗겨가시던 우무웅 아저씨께서 오늘은 거의 줄곧 같이 걸어가신다. 과일로 가파른 오르막의 숨결을 가다듬는다. 금방울 언니의 빵은 원기 회복에 도움이 된다.


임도에서부터 이어진 벌목과 철조망이 계속된다. 벌목지대를 내려가려니 껍질이 벗겨지는 하얀 백양나무 몇 그루가 보인다.


다시 임도(485m)가 나온다. 지도상으로 봤을 때는 바로 왼쪽으로 아래상목골이라는 마을이 있지만 길은 윗상목골로 이어지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아래상목골 임도라고 붙이려 했다가 끄적거리던 손짓이 멈추어진다. 임도를 따라 생긴 절개지로 진행하다가 다시 임도로 내려서서 계속 걸으니 이제야 포장이 된 듯한 시멘트도로가 허옇게 빛을 받고 있다. 앞 절개지를 오른다.


허물어진 묘는 넓은 공터에 자리해 있다. 계속되는 오르막은 떡갈나무로 가득하다. 봉우리를 지나서 사거리 흔적이 있는 곳을 지난다. 왼쪽 뒤에서 올라오는 길은 아래상목골에서 이어진 것이리라. 오른쪽이야 뭐 수의동 아니겠어! 혼자서 중얼거리다 머쓱해져 어깨를 움츠린다.


길은 꼬불거린다. 오른쪽에 밭을 끼고 가다가 능선으로 오르니 605.1봉. 산기슭은 고랭지채소밭으로 개간되어 있다. 규모면에서야 대간상의 광동이주단지와 매봉산 기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1평방미터라도 훼손된 지역을 어떻게 보상할 수 있으랴. 봉우리에 다 오르기도 전에 오른쪽으로 휘어져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엄덕영 아저씨는 조각공원을 출발이라고 한다. 산 봉우리 몇 개 뒤로 멀리 건물이 보인다. 누군가가 저게 조각공원이 아니냐고 한다. 글쎄요… 우리는 언제쯤이면 조각공원이라는 무전을 보내게 될까… 조각공원이 너무 멀다.


이군복 아저씨께서 소리치신다. "방원아. 그냥 요쪽으로 와!" 채소밭까지 다 오른 우리와는 달리 미리 오른 선구자의 경험으로 덕을 보는 후미의 후미!


어디에서 굿을 하는지 꽹과리 소리가 귀청을 진동시키더니 닭 축사가 나타나면서 후각을 역겹게 자극한다. 꽥꽥거리는 걸 보면 오리도 있나보다. 수의동이다. 11시 47분. 간이휴게소는 폐쇄된 듯하고, 김종훈 아저씨가 식당에서 맥주를 들고 나오신다. 수돗가에서 물을 보충한다. 대장님 일행을 김종훈 아저씨와 남기고 먼저 출발한다. 축사를 사이에 끼고 도로를 따라 진행하니 묘2기가 나온다. 김경선 이사님께서 맥주판으로 돌아가신다.


12시가 되기 조금 전 527.8봉을 지난다. 그 사이 벌서 2.6km를 걸었는데도 조각공원은 어디에 숨었는지 나타나지 않는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단석산갈림길까지는 5.1km를 가야 하니 까마득하기만 한데 도대체 언제 조각공원이 나타날까… 조각품들이 어떤 것이길래… 지도에 옥방목장이라고 표기된 곳 근처에 아까부터 계속 건물이 보였는데 그게 조각공원과 상관이 있는 건지 아니면 조각공원의 휴게소 건물인지 아직 모르겠다. 건천과 경주 지도를 꺼낼 즈음이다. 방화선길이 이어진다. 삼거리에서는 바로 앞에 사다리 비슷하게 생긴 쇠 물체가 옆으로 비껴 세워져 있다.


다시 삼거리에 이르니 왼쪽에 조각품이 하나 있다. 와우! 이제 조각공원인가 보다. 그러나 아무런 표시도 없이 조각작품 하나 있다고 해서 그게 어디 조각공원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인가. 계속 오른다. 가다 보면 언젠가는 나타나겠거니….


535봉에 이르러 뒤를 돌아보니 고헌산과 백운산이 보인다. 지나온 것에 대해서는 왜 항상 애틋함이 남겨지는 것일까… 다시 가기 어렵기 때문일까? 내가 언제 다시 저 봉우리에 오를까를 생각하면 여운은 너무 짙어진다.


쌍전봇대가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휘어진다. 엄덕영 아저씨는 단석산 정상에서 무전을 보내신다. 이야~! 단석산이라고!!!


아, 보인다. 누군가가 내지르는 소리에 모두 시선을 한 곳에 집중시킨다. 너른 잔디밭 능선. 공원의 규모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광활하고 조각작품은 너무 적다.


겨울에만 휴게소로 이용된다는 피라미드식 건물에 도착하니 방주교회라고 적혀 있다. 몇몇은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를 하고 돌아온다. 그늘에 앉아 김경선 이사님께서 주신 김밥으로 배를 채운다. 모두 배가 고픈 것일까? 지친 것일까? 난 처음 오를 때와 비슷한 컨디션이다. 나의 가장 좋은 점은 남들에 비해 지구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과일로 입가심을 하고 13시 23분 출발이다.


조금 가니 단석산 ←4km라는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대로 향하니 이제서야 비로소 산길다운 곳이다. 15분 다리 품을 팔며 봉우리를 하나 지나 오르니 652봉. 조금 진행하다 보니 엄덕영 아저씨는 산행 완료, 노창현 선배는 마지막 봉우리라고 한다. 아직도 우리는 갈 길이 멀다.


오른쪽 너머로 단석산이 보인다. 생각 같아서는 갔다 오고 싶지만 일행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 네 갈래 길에는 네 방향으로 이정표가 있다. 오른쪽이 비지리 왼쪽이 산내면이다. 정상1.5km라고 적힌 방향으로 진행하니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으로는 편평한 사면길이 이어지고 있고 왼쪽을 택하니 곧 오른쪽으로 휘면서 바위를 오른다.


14시 14분. 반환점3km라는 이정표를 바라보며 단석산(927.2m) 갈림길을 지난다. 당고개까지 2.2km가 남은 셈인데 산행 10시간째를 넘어서고 있다. 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662봉을 지나야 당고개로 내려가게 된다. 그리고 내려서기 전 갈라지는 능선에서는 독도에 주의하여 왼쪽을 택해야 한다. 지도를 훑으며 다시 한 번 머리 속에 길을 그려낸다.


금방울 언니에게 마지막 봉우리가 하나 더 있음을 알려드리니 언니는 이제 완전히 포기한 듯한 심정으로 "그냥 가지 뭐"라고 한다. 금방울 언니는 <서서히 그리고 꾸준히>라는 경구를 상기시킨다. 은방울 언니는 너무나 쌩쌩해서 우무웅 아저씨께서 은방울 언니에게 패기에 넘쳐 흐르는 것 같아 부럽다고 말씀하신다.


662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잣나무 숲이 들어서 있다. 가파르게 오르다 뒤를 돌아보니 금방울 언니가 지팡이를 뒷짐처럼 지고 무념무상으로 오른다. 초월한 듯한 저 태도.... 경이롭다.


오후 2시 30분이다. 662봉에서 마지막 남은 간식을 처리하며 일어서려는데 대장님과 오혜림 언니가 나타나신다. 오혜림 언니가 나를 주려고 남겨 두었다며 고구마를 내미신다. 감동은 성급하게 밀물이 된다.


내리고 오르고 내리고... 갈림길이닷! 능선이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 곳. 왼쪽을 택해 내려간다. 대장님으로부터 무전이 들린다. 왼쪽 능선을 타라고 말씀하신다. 네 벌써 그 지점 지났습니다.


이제는 무조건 길을 따라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큰 묘가 나온다. 제단에는 처사객양손씨라고 되어 있다. 서영구 아저씨께 유인과 학생과 처사의 차이점을 여쭌다. 궁금해 하는 것이 많아 내 주변 사람들은 늘 곤욕을 치러야 한다.


휘어지는 대로 꼬불대는 길을 따라 내려오니 당고개(340m)다. 지도에는 땅고개로 되어 있다. 20번 국도위로 가끔 차가 지난다.


11시간 10분. 26.2km의 거리. 계속 걸어도 좋겠다. 그만두고 집으로 얼른 가도 좋겠다.

(위의 후기는 거인산악회 총무이신 고 이연숙씨의 후기에서 발췌했습니다)

 

 

 

 일출

 

 

 백운산 정상에서

 

 

 

 

단석산 정상

 

 

 

7.특기사항

①날씨가 맑고 청명해서 좋았음

②기사 바뀜(양 기사)

③산행 종료 후 귀경길 버스 안에서 소란(음주로 인함)

 

④답사 구간

-경북 경주시 산내면 대현리 A지구에서 8번째 낙동정맥 시작

-외항재(경북 경주시 산내면 /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포장도로

  ↳ A지구↔외항재 구간: 사유지로 산행불가

-No.256 고헌산(高獻山 1032.8m):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두서면 소재

   -삼각점, 정상석 2개, 돌탑, 이정표.

-소호령(蘇湖嶺):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두서면 소재

   -사거리안부.

-No.257 백운산(白雲山 892m):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두서면 소재

   -삼각점, 정상석 2개, 조망 좋음.

-소호고개: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두서면 / 경북 경주시 내남면 소재

   -소로길

-No.258 단석산(斷石山 827.2m): 경북 경주시 내남면, 건천읍 소재

   -삼각점, 경주국립공원(단석산지구), 정상석, 넓은 공터, 억새, 조망 좋음.

-당고개: 경북 경주시 산내면, 건천읍 경계

   -4차로, 송전철탑, 닭요리식당, 약수터.

 

⑤지형도: 1/50,000(언양·경주)) / 1/25,000(대현·건천)

⑥교통: 신동아고속관광버스

-동대문 ∼ 와항리: 05:30(양재동2분 망향휴게소23분 휴게소20분 정차)

-당고개 ∼ 서울(신사동): 05:42(건천기사식당53분 칠곡휴게소20분 정차)


8.경    비

①산행회비: 40,000

②식대: 3,000

③교통비: 1,100

④합계: \4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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