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6번째 산행이야기
설악산 흘림골 첫 이야기
1.산행날짜: 2008년 10월 19일(일요일)
2.산행날씨: 구름 잔뜩. 후반부는 맑음.
3.참가인원: 새싹산악회 741회 정기산행. 28명
4.산행코스: 흘림골탐방지원센타→흘림골→등선대→주전골→주전골탐방지원센타→오색지구주차장
5.산행시간
-06:30 건대입구역 발
-06:55 상일동 발
-09:31 흘림골입구 착
-09:35 발(산행시작)
-10:08 사거리안부(←5.0km 약수터입구, ←2.8km 용소폭포입구, 흘림골입구 1.2km→)
-10:14 등선대 착 / -10:25 발
-10:35 사거리안부 원위치
-10:57 이정표(←4.3km 약수터입구, ←2.1km 용소폭포입구, 등선대 0.7km→, 흘림골입구 1.2km→)
-11:07~11:40 휴식
-12:00 고개(조망데크)
-12:10 12폭포
-12:15 이정표(←3.6km 약수터입구, ←1.4km 용소폭포입구, 등선대 1.4km→, 흘림골입구 2.6km→)
-12:29 용소폭포입구 삼거리[07-06지점.이정표(←흘림골입구 3.5km, ↑용소폭포입구 0.5km, 약수터입구 2.7km→)] 착 / -13:00 발
-13:04 07-05지점
-13:15 07-04지점
-13:30 성국사(07-02지점. 해발 380m. ←등선대 3.8km, ←2.4km 십이폭포, 약수터 1.2km)
-13:43 주전골 탐방지원센타
-13:55 오색지구 주차장 착
-14:20 발
-15:05~15:41 서림휴게소에서 점심식사
-구룡령에서 잠시 휴식
-20:14 상일동 착
-20:40 건대입구 착
◆흘림골탐방지원센타-(0:33)-등선대입구사거리-(0:08)-등선대-(0:05)-등선대입구사거리-(0:52)-조망데트안부-(0:10)-12폭포-(0:19)-용소폭포입구삼거리-(0:30)-성국사-(0:13)-주전골탐방지원센타-(0:10)-오색주차장
※휴식없이 3시간, 실제로는 4시간 20분 걸렸다.
흘림골 산행들머리인 흘림골탐방지원센타(공원지킴터)
6.산행후기
흘림골은 설악산과 점봉산의 경계인 한계령에서 44번 국도를 따라 양양방면으로 2.6km정도 내려간 지점의 오른편에 있는 계곡이다. 남설악 지역인 점봉산(1,424m)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계령과 오색약수터 중간쯤에 있다.
한계령에서 가까워 접근하기가 쉽고, 주전골 바로 위에 있어 대개 연계산행을 한다.
산행코스는 흘림골과 주전골을 연계해도 산행시간은 쉬엄쉬엄 가면 4시간, 휴식없이 정상적으로 진행하면 3시간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편안한 코스라서 산행이라기보다 하이킹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쉬운 코스이다.
용소폭포에서 주전골로 가지 않고 용소폭포탐방지원센타로 바로 나갈 경우에는 폭포에서 0.4km만 가면 되며, 쉬엄쉬엄 가도 3시간 남짓이면 족하다.
한계령은 인제에서 양양으로 넘어가는 920m 높이의 고개인데 이 고개에 오르면 눈앞에 남설악 기암 괴봉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쉼터 뒤에는 서북주능선이 병풍을 이루고 있다.
흘림골이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즉, 무단으로 주목을 벌채하는 등 훼손이 심해 1985년 이후 자연휴식년제에 들어가 20여 년 동안 출입을 통제하여 속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가 금강산 관광이 실현됨으로써 관광객이 그쪽으로 흘러가므로 오색지구 상인들의 주민 숙원에 의해 2004년 9월 20일부터 개방되었다.
그러나 2006년 수해로 큰 피해를 입은 흘림골 구간은 등산로의 대부분을 새로 건설하다시피 복구하여 2007년 11월 16일 재개방했다.
한계령에서 양양 쪽으로 2.6km 정도 내려가면 흘림5교가 나오고, 오른편에 흘림골탐방지원센타(공원지킴터) 건물이 있다.
흘림5교 다리 옆에 수해복구비가 있는데, 바로 옆 쉼터의 큰 바위가 수해로 인해 굴러 내려온 것이라 한다. 이토록 큰 바위조차 굴러 내려올 정도이니 폭우로 인한 물길의 위력을 짐작할 만하다.
수해복구비를 보면, 2006.7.15-7.17. 시간당 122㎜라는 사상 초유의 집중호우로 한계령 도로가 14km나 파괴되어 당시 100여대의 차량이 고립되고 약 1,500톤에 달하는 집채만한 바위가 도로를 가로막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17개월간 1,161억원의 예산으로 연 4만대의 장비와 14만 명의 인력을 투입하여 한계령길의 옛 모습을 되찾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산행기점은 쉼터 안쪽 흘림골탐방지원센타(공원지킴터) 건물 왼쪽의 나무계단이다.
흘림골 입구에서 계곡옆길을 타고 오르다 보면 계곡이 아직도 수해에서 굴러 내려온 큰 바위들이 누워있는 등 피해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러나 암봉들의 장관은 여전하여 초입에서부터 우측의 기암 괴봉들이 등산객들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등선대 오르기 전 조망테크에서 바라본 칠형제봉의 모습
산행기점에서 여심폭포를 향해 올라가면 대부분 나무계단길이 이어지고, 그런 길을 15분 정도 올라가면 「등선대 0.6km, 흘림골 입구 0.6km」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그곳에서 다시 10여분 올라가면 오른 편에 여심폭포가 보인다.
≪여심(여신)폭포의 전설: 옛날에 병풍바위로 둘러싸인 선녀탕에 일곱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몰래 따라 내려온 선관이 가장 예쁜 두 선녀의 옷을 숨겼다.
옷을 잃은 두 선녀는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애달아하다 지쳐 한 선녀는 옥녀폭포가 되었고 다른 한 선녀는 여신폭포가 되었다고 한다.
선관은 두 선녀가 없어지자 선녀를 찾으러 대청봉으로 올라가다 힘이 부쳐 주저앉아 폭포가 되었는데 그 자리를 독주골, 폭포를 독주폭포라 부르게 되었다.
이때 선관이 감추었던 선녀들의 옷은 폭포수에 떠 내려와 지금의 그린야드호텔 앞에서 치마폭포와 속치마폭포로 변했고 선관의 상투와 감투가 각기 상투바위와 감투바위가 되어 근처에 흩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두 선녀가 변한 옥녀폭포와 여신폭포에서 약수터까지 흘러내려 오는 물을 음수, 독주폭포에서 흘러내려 오는 물을 양수라 하여 그 양수와 음수의 조화로 오색의 약수가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흘림골이란 바로 이 여심폭포에서 흘러내린 계곡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계곡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흘림골의 명물 여심폭포는 높이 30m 정도의 작은 폭포이다. 여성의 깊은 곳을 닮았다 하여 여심(女深) 혹은 여신(女身)폭포라 하며 보기에도 민망한 모양이지만 여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 때문에 신혼부부들의 단골 경유지였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계곡이 깊어서 안개가 자주 끼고, 해가 일찍 지므로 마치 날씨가 흐린 듯하다 고 하여 「흐린골」이라 하던 것이 「흘림골」이 되었다고 한다. 또 한 가지는 여심폭포에서 흘러내린 물이 뭇 사람을 유혹하기에 「흘림골」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재작년 폭우의 피해와 짧은 계곡도 영향이겠지만 무엇보다도 요즘 무척 메말라 계곡이나 폭포수가 물을 구경할 수가 없다. 물줄기의 흔적만이 폭포임을 말해주는 듯 하다.
여심폭포를 조금 지나 뒤를 돌아보면 우람한 암봉들이 도열해 있는 것이 보이는데 이 암봉의 이름이 칠형제봉이다.
칠형제봉 중 특히 왼쪽에 남근을 닮은 봉우리가 재미있다. 이 남근석은 자신이 마치 여심폭포의 주인인 양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남근을 세우고 있다.
여심폭포에서 300m을 더 오르면 이정표(←5.0km 약수터입구, ←2.8km 용소폭포입구, 흘림골입구 1.2km→)가 세워져 있는 등선대 안부에 이른다.
등선대에서 바라본 대청봉의 모습
이곳에서 왼쪽으로 6-7분 정도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등선대(登仙臺) 정상(1,002m)이다. 정상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남설악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등선대는 신선이 놀다 간 곳이라고도 하고, 선녀가 하늘로 올라간 곳이라고도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등선대는 흘림골 산행의 절정이며 남설악 최고의 전망대이다. 정상은 의자바위라고 불리는 큼직한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눈 아래 칠형제봉이 칼날처럼 나란히 줄지어 있는 모습도 장관이다. 정상 바로 앞에는 소위 만물상이라 불리워지는 기암능선이 병풍을 치고 있어 금강산을 방불케 한다. 동북쪽으로는 거북바위 너머 멀리 대청봉이 신비스러운 자태로 솟아있고, 북쪽으로는 칠형제봉 너머로 한계령휴게소와 안산(1,430m), 귀때기청봉(1,578m) 등 서북주능선이 잘 보인다.
서북주능선은 12선녀탕-안산-귀때기청봉-끝청-중청-대청봉까지의 약 20km에 이르는 험준한 능선이며 이 능선에서는 설악산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또 서쪽으로는 점봉산 능선 일대에 만 가지 형상의 암릉이 도열해 있다. 그래서 만물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등선대에서 바라본 만물상의 모습
등선대에서 바라본 조망
등선대에서 바라본 조망
등선대에서 바라본 한계령과 서북주능의 모습
등선대 정상
등선대 정상에서 바라본 등선대 오르기 전 사거리안부의 모습
등선대에서 바라본 조망
등선대에서 안부사거리로 되돌아 내려와서 등선폭포, 십이폭포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 계단길이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정면에 보이는 경치 역시 환상적이다.
각가지 모양의 암봉 너머로 구름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능선이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내고 있다.
등선대 안부에서 400m 정도 내려가면 등선폭포가 있다.
등선폭포 역시 수해 탓인지 아님 가뭄 탓인지 물이 말라 폭포로서의 기능을 잃고 물길흔적만 남아 있다.
등선대에서 주전골로 내려가면서 바라본 기암
주전골의 단풍
주전골의 암봉들
등선대에서 1.4km 정도 내려가면 비로소 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이 십이폭포이다. 열두 굽이 굽이친다 하여 십이폭포라 하며, 폭포는 전체적으로 누워있는 형태의 와폭이다.
12폭포의 모습
십이폭포를 뒤로 하고 내려오다 보면 중간 왼편 계곡에도 멋진 폭포가 보인다. 계곡을 막고 있는 큰 바위 아래에서 흘러내려오는 폭포인데 특별한 이름이 없어 무명폭포라고 부르기도 하고 혹자는 이 폭포를 주전폭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어서 암반에 소를 이루고 있는 곳이 옥녀탕이다.
십이폭포에서 용소폭포로 가는 길 양편에는 기암 괴봉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십이폭포에서 800m 정도 가면 왼쪽 용소폭포와 오른 쪽 주전골로 나뉘는 갈림길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정표(←흘림골입구 3.5km, ↑용소폭포입구 0.5km, 약수터입구 2.7km→)에는 용소폭포는 이곳에서 0.5km 거리에 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이 소에서 천년을 살던 이무기 두 마리가 승천하려 했으나 암놈 이무기는 준비가 안 되어 승천할 시기를 놓쳤는데 용이 되려다 못된 암놈 이무기가 바위와 폭포가 되었다고 전한다.
주전골의 가을
주전골의 가을
주전골의 가을
용소폭포에서 400m만 더 가면 용소폭포탐방지원센타에 이르고, 갈림길에서 오른 쪽으로 2.7km 더 가면 약수터 입구에 이른다.
주전골이란 용소폭포 입구에 있는 시루떡바위가 마치 엽전을 쌓아놓은 것처럼 보여져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예전에 스님을 가장한 도적들이 바위 동굴에 숨어들어 위폐(위조 엽전[錢])을 주조[鑄]하다가 들켜 일망타진된 후 주민들이 그들이 숨어있었던 골짜기를 주전골이라 한 데서 얻게 된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전해 오고 있다.
주전골로 들어서자마자 곧 금강문이라는 석문을 만나고, 다시 10여분 내려가면 선녀탕이라는 아름다운 소도 있다. 갈림길에서 선녀탕까지는 1.1km거리이다. 선녀탕에서 다시 5분 정도 내려가면 왼편에서 지계곡이 주전골로 합류해 온다. 그 지계곡을 온정골이라 하고, 등산로는 그 지 계곡을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가는데, 다리 아래쪽이 과거 제2약수터가 있던 곳이다. 원조 약수터에서 1.5km, 성국사에서 300여m상류이다.
원조 오색약수는 조선중기에 오색석사의 한 스님이 발견했다고 하며, 약수공이 3개 있다. 아래쪽 물가에 두개, 그곳에서 10여m 위에 한 개가 있어서 아래쪽은 남성들이 마시는 양수요, 위쪽은 여성들이 마시는 음수라 한다. 이 약수는 1970년대 중반까지는 하루 용출량이 5000리터 정도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부터 갑자기 용출량이 줄어들어 이젠 약수 한 모금 마시기 위해 한참동안 기다려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주민들은 1994년 오색에 들어선 그린야드호텔 측에서 온천장의 온천공을 뚫으면서 약수가 지나는 수맥을 건드렸기 때문이라 하여 법정공방까지 벌렸었다고 한다.
그런데 태풍 루사(2002년 8월)와 매미(2003년 9월), 그리고 2006년 폭우로 인하여 설악산 일대가 휩쓸려 내려갈 때 제2오색약수터도 수마에 할퀴어 흔적조차 없어져 버렸다. 아직도 제2약수터로 내려가던 계단은 그대로 있으나 약수터 자리는 마당바위가 대신하고 있다.
제2약수터에서 10여분, 선녀탕에서 800m이면 성국사에 닿는다. 성국사(城國寺)는 옛날 오색석사(五色石寺)터에 새로 지은 절이다.
전설에 의하면 절 후원에 다섯 가지 색의 꽃이 피는 나무가 있어서 오색사라 하였다고 한다. 경내엔 원래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탑이 두 기 있었으나 동쪽 탑은 허물어져 파편들만 남아있던 것을 서탑 맞은편에 새롭게 정렬을 해 놨다. 서탑(오색리 삼층석탑)은 1968년 복원되어 보물 제497호로 지정되었다. 성국사에서 1.2km 정도 내려가면 주전골탐방지원센터에 닿는다.
≪양양 오색리 삼층석탑(보물 제497호)
소재지: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
이 탑은 3층의 전형양식(典型樣式)을 따르고 있는 통일신라(統一新羅) 석탑이다.
이중기단(二重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이 설치 되었는데, 탑신에는 우주(隅柱)만 조각되었으며, 옥개석(屋蓋石)은 4단의 받침이 조각되고 추녀선이 직선이며 네 귀가 약간 치켜들려 있어 경쾌하고 간결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상륜부(相輪部)는 없어졌는데 탑의 높이는 약 5m이다.≫
보물 제497호 성국사 삼층석탑
오색약수터의 모습
이제 포장도로를 따라 도로를 걸으면 주차장이 나온다.
식사할 곳이 없어서 후미가 도착하자마자 이동하여 오색~한계령 길이 심한 정체를 이루고 있어 구룡령으로 향하다 서림휴게소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구룡령을 넘어 귀경했다.
7.특기사항
①새싹산악회 741회 정기산행으로 예전보다 일찍 출발했다(06:30발).
②흘림골은 첫 산행이고, 주전골은 예전에 두 번 갔다 왔다.
③단풍은 절정이고, 많은 사람들로 혼잡하고, 등산로가 거의 시설물(나무보도길)로 되어 있어서 거의 산책길 수준이다. 주차장도 많은 차량으로 혼잡했다.
④오색부근이 심한 정체로 구룡령으로 하여 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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