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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역사의 섬 교동도(喬桐島)를 처음 가다」보너스로 별립산 일몰도 보고 07.01.14

약초2 2007. 1. 15. 17:51
 
 

강화 교동도(화개산)와 별립산 여행&산행후기


「역사의 섬 교동도(喬桐島)를 처음 가다」보너스로 별립산 일몰도 보고


1.날 짜: 2007년 1월 14일(일)

2.날 씨: 맑음

3.일 정: 서울→강화도→창후리선착장→교동도(월선포선착장)→화개사→교동향교→교동도 구석구석→화개산→월선포선착장→창후리선착장→별립산→서울

-10:18 창후리 선착장 발

-10:32 월선포 선착장 착, 발

-화개사

-교동향교

-11:20 교동면사무소(화개산 산행)

-11:57 교동봉수대(연봉 정상)

-12:05 화개산 정상 착/   -12:35 화개산 발

-13:05 교동면사무소 원위치

-점심

-난정저수지

-15:08 월선포 선착장 착

-15:32 발

-15:45 창후리 선착장 착

-별립산 입구 버스정류장(삼거리) 착, 발

-16:15 별립산장

-16:28 삼거리

-16:41 첫 봉우리

-16:55 정상

-17:05~17:36 일몰 기다림(휴식)

-18:04 삼거리 원위치


교동도 개념도
 
 

4.여행 & 산행후기

◆교동도 개요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소재. 위치 E:126°16′ N:37°01′

  교동(喬桐)은 예성강. 임진강. 한강이 만나는 삼각주로 발달한 섬이며, 섬이라기에는 평야에 가까워 선사시대로부터 인간이 모여 살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화개산 서쪽에 있는 고인돌이나 석기시대의 유물들(마제석검) 이라든가 조개 맨돌과 같은 유적지가 남아 있어 그 모습들 증명하고 있다.

  인지가 발달하면서 교동은 교통의 중심지가 되어 바다와 강을 잇는 풍성한 물자의 집하장이 되어 문헌에 이르기를 "수륙운송이 적합하고 편리하여 모든 길에서 조운이나 세금은 말할 것 없이 소금과 고기잡이에 유리하였다." 라고 했다.

  자연환경이 이 같으니 자연히 물자가 많이 교동에 모이며 벼슬아치와 부자들이 다수 교동에서 살았다고 한다.

  교동(喬桐)은 신라 경덕왕16년(757년)의 행정구역개편에 의해 호칭이 정해졌다. 한자로 교(喬)는 높을 고(高), 높이 솟을 교(上)의 뜻으로 어원은 「夭」(구부러짐) 와 「高」의 생략형의 한자로, 높고 상부가 구부러짐의 뜻이며 교목(喬木)은 키가 큰 나무를 가리키는데 아마도 고구려시대부터 고목근현(高木根縣)으로 불리어진 것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한자로 동(桐)은 오동나무의 동자로 동재(桐梓)는 오동나무와 가래나무의 뜻으로 곧 좋은 재목(인재)을 나타낸다. 교동에 예전에는 오동나무가 많이 있었을 것이고(지금도 읍내리에는 오동나무가 많이 보인다), 좋은 인재가 많이 났기 때문에 교동이란 명칭이 부쳐졌을지도 모른다는 설도 있다.


◆ 현   황

     1. 면적: 47.15㎢  (전 : 3.14㎢ 답: 26.46㎢ 임야: 11.53㎢ 기타: 6.02㎢ )

     2. 가구수: 1,376가구  ( 농가: 998 농가, 비농가: 378가구 )

     3. 인구수: 3,586명 ( 남: 1,768명, 여: 1,818명 )

     4. 행정구역: 행정리(법정리): 17(13)

     5. 자연부락: 39개, 국민반: 127개반

     6. 학 교: 5개교 ( 초: 3 중: 1 고: 1 병설유치원: 3)  


  그전에 강화도에 갔을 때 창후리까지 갔다가 교동도를 못가고(어찌어찌하다) 이번에는 교동도에 있는 화개산 산행하려고 창후리 선착장에 도착했다. 매표원에게 들은 예기로 차가 없으면 교동도 구경을 못 한다는 소리에 급하게 마지막으로 내 자가용 차량을 싣고 떠났다.

  15분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교동도의 관문인 월선포항에 도착을 해서 매표소가서 지도를 얻으려 하니 지도가 없단다. 막배가 5시라는 걸 알고 화개산 산행을 하기 위해 차량을 몬다.

  가장 먼저 화개사를 구경하고(고려 말 목은 이색이 공부하던 곳으로 전해져 있으며, 1915년경 노후로 인해 붕괴 되었고, 현존의 화개사는 교동에서 신축기성회를 조직하고 시주를 받아 복원하였다함), 되짚어 나와 교동향교를 답사했다.


※교동향교

향교는 조선시대 각 군과 현에 설치되어 공자 등 옛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유생과 마을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의 역할을 한 교육기관이다.

  교동의 향교는 우리나라 향교 가운데 가장 먼저 공자상을 중국으로부터 가져다 봉안한 유서 깊은 향교다. 고려 충렬왕 12년(1286) 고려 유학 제거로 있던 문선공 안유(安遊) 선생( 안향, 1243∼1306)이 원 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닻을 내려 공자상(孔子像)을 들여와 이 문묘에 봉안하였다. 이어 다시 김문정 등을 중국에 보내 유학성현들의 화상 10여점과 제기 등을 구해 오게 했다. 이후 경향 각지에 문묘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교동은 옛날 중국을 고가는 바다 길목에 있어 대부분의 배들이 그곳을 거쳐 갔다. 안유가 교동 향교에 처음 봉헌한 까닭이다.  

 고려 인종 5년(1127년) 때 각주에 향교가 세워졌을 때 화개산 북쪽인 고구리 향교골에 세워졌으며 교동읍이 읍내리로 옮겨짐에 따라 부사 조호신이 영조 17년(1741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 현존하는 우리나라 243개의 향교 중 가장 오래 된 것이다.

대성전

10간 (十間) 으로  되어 있으며 봄, 가을로 석전을 봉행한다.

대성전 내부의 위패

중국의 5성과 정자, 주자, 한국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음력2월과 8일 초정(初丁)에 석전을 그리고 매월 삭망(朔望)에 분향례를 올린다.

명륜당

명륜당은 6간이며 향교의 2대기능 (二大機能)중 하나인 현대로 말하면 공립학교와 같은 유학 교육을 시켰던 곳으로 유생들이 사서오경을 공부하고 강독을 하며 초시 준비와 향음 주례 및 각종 행사를 하던 곳이다.

홍살문과 하마비

옛날에 말을 타고 이곳에 왔을 경우 여기서 부터는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하마비이다. 홍살문은 향교를 제일 먼저 맞이하게 되는 첫 관문이다.

외삼문

홍살문을 통과하여 향교 건물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이다.

동무와 서무

동무는 9간이며 설총, 안유,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김집, 송준길 등 우리나라 구현을 봉안하고 배향한다. 서무역시 9간이며 최치원, 정몽주, 정여창, 이언적, 김인후, 성흔, 조헌, 송시열, 박세체등 우리나라 구현을 봉안 배하는 곳이다.

노령암

노령암은 원래 교동 동헌 북쪽 뜰 층계 아래에 있었는데 뒤에는 울창한 늙은 소나무가 있고 아래에는 축단이 있었다. 숙종 43(1717) 충민공 이봉상이 "노령암" 이라고 3자로 지었는데 그 후 57년 (1773)에 그의 손자 달해가 그 고적에다 적은 글이다. 순조31(1831) 봄에 그듭 석대로 쌓여져 있던 것을 정묘 1897년 교동 향교로 옮겨놓은 것이다.

성전약수

대성전 밑에 있으며 위장병에 특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경향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고 한다.



교동향교

 

  교동향교에서 나와 교동면사무소를 향했다. 화개산 산행을 하기 위해서다. 면사무소 넓은 주차장에다 주차한 후 산행에 나섰다. 이정표 같은 것은 없다. 그저 앞의 화개산 만 보고 산행할 수밖에 없다. 넓은 길 따라 진행을 하다 삼거리가 나오면 우측으로 진행한다. 조금 올라가면 다시 좌측의 능선길이 이어지는데 이제 길이 좁지만 등산로는 뚜렷하다. 다소 급한 오르막이 시작되면서 힘이 든다. 힘이 들어서 쉬고 싶을 때쯤 조망대가 나오면서 이제 계속 좌우로 바다를 보면서 산행을 하니 힘 드는 줄 모르고 올라간다. 올라가면 산성흔적이 보이는 정상에 닿는데 조금 아래에 있는 설명문에 교동봉수대(향토유적 29호. 교동면 고구리233. 연봉 정상에 세워져 있고, 높이 2.5m, 가로 8m, 세로 6m)라고 쓰여 있다. 전망이 좋다. 잠시 내려갔다 올라서니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화개산 정상에 닿는다(면사무소에서 40분 걸렸다).


화개산 정상에서의 조망(고구리 낚시터와 한강, 예성강 합수점이 보이고, 강 건너 북한땅 연백군이 보인다)

 

  화개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다. 동서남북 그 어디 하나 빠뜨릴 수 없이 좋은 조망이 펼쳐지는데 강화본섬 쪽은 아쉽게도 역광이라 사진이 아쉽다.

  사진 찍고, 잔디에서 잠시 쉬고(산불감시초소 위로 올라가서 본 조망이 더 멋지다. 개방되어 있는데 3사람 정도 쉴 수 있는 공간) 30여 분을 보내다 잠시 조금 더(북쪽으로) 가다가 되돌아와 면사무소를 향해 원위치 한다(화개산 정상에서 면사무소까지 30분 걸렸다).

  산행 도중에 주민 2사람을 만났는데 주민예기로는 밀물 때 날씨가 좋으면 북한 쪽 사람들도 보인다고 한다.


◆ 화 개 산

  화개산은 교동면 고구리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 260미터로 넉넉히 2시간이면 산행을 끝낼 수 있어 당일 교동도 여행이라면 가벼운 기분으로 산행할 수 있고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서해바다가 일품이다.  산행은 월선포에서 대룡리 교동면사무소로 들어와 면사무소 앞에 등산로가 설치되어 있고 이곳에서 20∼30분이면 8부 능선에 있는 화개약수와 효자자리를 볼 수 있다.

  화개산에는 조선 명종 10년 (1555년)에 왜란을 당하여 지현 최제운이 내성과 외성을 증축하고 성안에 군량창고를 두었다고 하는 성터가 산줄기 및 정상부분까지 훼손된 상태이지만 그대로 남아 있고,  누구의 묘 인지는 모르나 매일 같이 성묘하던 손자국, 무릎 자국이 뚜렷이 남아있는 효자묘가 있고 높이가 80Cm 폭이 4m 쯤 되는 문지와 내성의 우물로 추정되는 화개약수터가 있어 산행시 갈증을 풀어주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넓은 공간도 있다.

  산 정상은 동쪽 봉우리로 이어지고 서쪽봉우리에는 봉화대가 있고 하산은 화개사로 내려올 수도 있다  <산행문의 : 교동면사무소 930-3611>


섬까지의 배편   

서울→강화버스터미널→창후리선착장
승용차 : 48번 국도로 김포시 지나 강화대교를 건너 2km전방에서 좌회전 (보문사방면)하여 창후리방면
대중교통 : 신촌에서 강화행 버스를 타고 강화터미널에 내려서 창후리행 직행버스를 타면 된다.
강화운수터미널(032-324-0611)
강화(창후리)→교동도 07:30, 16:30~17:00 (여름에는 저녁7시까지 운항) 화개호(10~15분 소요)
배편 문의
화개해운 032-933-4268, 3212


추천 숙박시설   

고구촌 : 1박 2인 기준 20,000원
고구리 낚시터 부근에 위치한 근대식 목조 통나무 건물로 1층은 식당으로 (백반, 닭도리탕, 메기탕, 소등심, 숭어회 등)다양한 식사를 할 수 있으며, 2층은 숙박시설을 갖춘 다용도 건물입니다.
교동파크: 1박 2인 기준 20,000원
면사무소 소재지인 대룡리에 위치한 각종 시설을 완비한 현대식 숙박업소입니다.
기타: 민박 1박 20,000원
숙박시설은 강화 여인숙, 낙원 여인숙이 있으며, 낚시터 부근 민박도 가능합니다.


고구리 낚시터

1976년 4월에 완공된 88.5㏊의 저수지로서 사계절 언제든지 낚시할 수 있는 곳으로 주 어종은 참붕어, 잉어, 빠가사리, 가물치 등 공해없는 어종을 낚시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특징은 풍부한 자연산 어족자원과 넓은 수면적, 깨끗한 수질을 가지고 있으며 위치는 강화군 교동면 고구리입니다.
어종 : 붕어, 잉어, 기타
입장료 : 7,000원


달우물 온천     

인천시 강화군 교동면에 있는 달우물 약수터는 그 물맛 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달우물온천은 5대째 대를 이어 이 마을에 살던 한 양식업자가 농어 양식에 쓸 용수를 얻으려고 시추작업을 하다가 30℃나 되는 뜨거운 물벼락을 맞은 사건이 계기가 돼 발견되었다.
검사결과 알카리성 염화물질을 비롯해 칼슘과 칼륨등이 다량 함유된 수질로 다른 온천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뛰어난 살균력을 지닌 것으로 밝혀졌고 인근에 소문이 퍼지면서 기적의 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후 소문을 듣고 찾아드는 병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자 교동도 월선항에서 온천까지 왕복하는 시내버스도 생겼다.
식수로 적합한지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다른 온천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뛰어난 살균력과 위장병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연산군이 죽은 옛터      

교동면 읍내리 일원에는 조선시대 연산군이 중동반정로 폐위 되어 교동으로 위배 되었다가 1506년 11월에 죽은 터이며 주위에 우물이 남아 있어 옛날의 집이 있었다는 것으로 추측된다.

  점심 먹고 여기저기 더 돌아다니다가 3시 8분에 월선포에 도착해서 3시 32분에 교동도를 떠나 13분 만에 강화도 창후리에 도착을 해서 창후리 부두 사진 몇 장 찍고 별립산 산행을 위해 출발한다.



창후리 선착장의 갯벌 풍경(역광사진)

 

  별립산 산행들머리 찾는데 조금 지체해서 시간에 쫓겨(일몰 전에 하산하려고) 급하게 서둘러 올라간다.

  별립산장 옆(좌측)으로 진행하니(16:15) 묘가 계속해서 나타난다. 얕은 능선 하나 넘어 계곡을 건너 좌측능선으로 붙는다. 약하게 오르니 손질 잘된 무덤을 지나고 조금 오르니 삼거리가 나온다(16:28). 우측으로 가면 약수터가 나온다. 곧장 직진해서 오른다. 조금 힘이 든다 싶으니 주능선에 닿고 이후 뚜렷한 능선 길 따라 오르니 반대쪽에서 4사람이 하산을 한다. 인사를 나누고 급하게 올라간다. 올라가면서 뒤돌아보는 경치는 그야말로 기가 막히다. 내려올 때 보기로 하고 계속 올라가니 첫 봉우리에 닿는다(16:41).

  잠시 조망을 구경하다 곧바로 짧게 내려간 다음 긴 오르막이 시작된다. 바닥에 눈도 보이고, 바위도 심심치않게 나타난다. 힘겹게 올라서니 봉우리 정상에 선다. 이후 평지길같은 능선을 더 진행하니 바로 앞이 군부대가 나타나면서 더 이상 진행을 할 수 없다(16:55).


별립산 정상

 

  정상에서의 조망, 너무나 좋다! 강화도 주능선(고려산~혈구산~퇴뫼산)이 하늘금을 이루고, 강화의 넓은 벌판이 시원하게 보이고, 바다 또한 시원하게 잘 보인다. 조금 전에 갔다 온 교동도 역시 가깝게 잘 보인다.

  지체할 수가 없어서 바로 내려가는데 일몰의 장면이 나타나는데 할 수 없이 자리 잡고 앉아 일몰을 기다린다(17:05~17:36).


별립산 정상에서의 일몰 모습

 

  이번 역시 마지막 바다로 떨어지기 직전 구름에 가려 급하게 뛰다시피 하면서 내려간다. 왔던 길 되짚어 내려가다 마지막 삼거리에서 이전엔 좌측이 아닌 곧바로 내려가 본다. 조금 더 가니 사거리가 나오는데 어두워져서 좌측으로 하산하여 주차해 둔 곳으로 내려간다. 시간은 6시 4분이다.

  이후 교통소통이 원활하여 일찍 귀가해서 편안한 저녁식사를 마쳤다.


5.특기사항

①교통안내

1.교동도 카페리호는 강화본도 창후리에서 출발합니다.

        ( 만조시 15∼20분,  간조 때는 1시간 정도 걸림)

2.카페리 운항 회수 및 막배 시간이 짧습니다. 동계철과 하계철이 다릅니다.

        첫배 6시30분경 막배 6 - 7시경 (꼭 확인필요 933-4268)

3.강화도 창후항에서 승선 신청서를 작성해야 됩니다. 

       (주민등록증 휴대 필수)

4.숙박시설이나 오락시설, 음식점등이 미비합니다.

5.나가실 때는 막배 시간 30분 전 교동도 월선포에 도착하셔야 막배를 타실 수 있습니다.

6.역사탐방이 목적이라면 사전에 많은 정보가 필요합니다.

       (이정표가 잘 되어 있지 않아 유적지를 찾기 힘듬) 

    ※ 출발 전  032-933-4268, 6619 뱃길정보 확인하세요.

②화개산 등산(1시간 30분~2시간)을 권합니다.

③사전 지식 없이 출발했는데 사진 지식을 갖고 출발하면 여행(답사)이 재미있습니다.

④강화 본도로 넘어와서 별립산 산행을 했는데 조망이 너무 좋습니다(1:30~2:00 충분).

                                                                                       [끝]

출처 : 조인기
글쓴이 : joingi61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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