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충청도 여행

다시 찾은 논산 1박2일 여행후기

약초2 2023. 6. 11. 12:52

다시 찾은 논산 1박2일 여행후기

 

1.답사날짜: 2023년 5월 30일(화)~31일(수)

2.날씨

[첫 날] 맑음

[둘째 날] 맑음

 

3.답사한 15곳

[일정]

온빛자연휴양림→쌍계사→선샤인랜드→강경근대역사문화거리(강경성당, 김대건신부 최초 사목지, 강경성결교회, 구연수당건재약방)→강경산 소금문학관(박범신)→강경갑문→구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계백장군유적지→탑정호 야경→[숙박]→김홍신문학관→연산역→개태사→농다리

 

[1일차]

①온빛자연휴양림: 벌곡면 황룡재로 480-113

②쌍계사: 양촌면 중산길 192

③선샤인랜드: 연무읍 봉황로 102

④강경성당: 강경읍 중앙리 228

⑤김대건신부 최초 사목지: 강경읍 홍교리 96-1

⑥강경성결교회: 강경읍 계백로 219번길 40-1

⑦구연수당건재약방: 강경읍 중앙리 88-1

⑧강경산 소금문학관(박범신): 강경읍 강경포구길 38 (강경읍 북옥리 139-2)

⑨강경 갑문: 강경읍 황산리 198

⑩구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 강경읍 남교리 1

⑪탑정호 야경: 부적면 신풍리

 

[2일차]

⑫김홍신문학관: 중앙로 146-23 (내동 1214)

⑬연산역: 연산면 선비로 275번길 31-2

⑭개태사: 연산면 계백로 2614-11

⑮진천 농다리

 

4.답사시간

 

[첫 날: 23.05.23.]

-05:50 중계동 발

-09:15~10:00 ①온빛자연휴양림

-10:40~11:00 ②쌍계사

-11:30~12:40 ③선샤인랜드

-13:45~14:00 ④강경성당

-14:10~14:32 ⑤김대건신부 최초 사목지, ⑥강경성결교회, ⑦구연수당건재약방

-14:38~17:07 ⑧강경산 소금문학관(박범신)

-15:12 ⑨강경 갑문

-15:20~15:30 ⑩구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

-16:07~16:10 계백장군유적지

-18:10~20:40 ⑪탑정호 야경

-탑정호 인근에서 숙박

 

[둘째 날: 23.05.24.]

-09:00 숙소에서 발

-10:05~10:50 ⑫김홍신문학관

-11:15~11:32 ⑬연산역

-11:43~12:00 ⑭개태사

-13:50~14:15 ⑮진천 농다리

-14:30 귀경 시작

-17:00 중계동 착

 

5.답사 후기

 

오늘도 여행지 검색에 몰입하다 서울신문 2023년 5월 12일 인터넷 기사

‘논산 군번’보다 깊게 새겨진 창작혼… 작가의 서재를 엿보다라는 제목에 「논산」이란 단어가 눈에 확 띄었다. 논산은 내 고향으로 태어나서 20년을 산 곳이다. 그러니 「논산」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검색을 할 수 밖에….

그래서 이번 여행은 논산으로 정했다.

 

기사에 나온 여섯 군데에다가 개태사를 추가해서 일곱 군데를 당일로 다녀오려 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강화 교동도의 「화개정원(화개정원은 5월 16일 다녀왔다.)」과 중랑장미축제, 부천 백만송이 장미원 장미축제에 밀려 2주 후에 가게 되었는데 하루의 쉼이 더 생겨서 1박2일의 일정으로 논산 명소 14군데와 귀경길에 진천 농다리까지 다녀왔다.

 

 

중계동에서 5시 50분에 출발하여 망향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 25번고속도로 계룡IC에서 빠져나와 첫 번째 목적지인 온빛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09:15)

 

파란하늘과 초록의 메타세쿼이아가 잘 어울리는 이국적인 분위기
1.온빛자연휴양림
벌곡면 황룡재로 480-113(벌곡면 한삼천리 309)

 

▲ 온빛자연휴양림

 

벌곡면의 온빛자연휴양림은 개인이 조성한 숲이다. SBS 드라마 ‘그해 우리는’의 촬영장으로 쓰였고 한국관광공사에서 ‘한류 성지’로 선정하기도 했다. 메타세쿼이아 나무 풍경이 아름답고 계절을 가리지 않고 이국적인 풍경을 볼 수 있다.

 

휴양림 중간쯤의 사방댐 옆 건물은 휴양림 소유자의 별장이라고 한다. 이 별장을 배경으로 인증샷 찍는 사람들이 많다. 휴양림 입장료나 주차비 등은 없다. 다만 휴양림 내부는 물론 주변에 편의시설이 없으니 물 등 먹거리는 미리 준비해 가야 한다. 휴양림 입구의 우측 길은 사회복지시설(우리집공동체, 루가의 집)로 가는 길이다.

 

개인 사설 자연휴양림을 방문하니 휴양림 분위기는 없고 대신 너무나 조용하고 고요했다. 사방댐으로 가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내 사방댐에 도착해서 사방댐 건너편에 설치된 집을 보노라니 한편의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조금은 이른 시간이라 우리 팀 만 있으려니 했는데 주변에 두 팀 모습이 보였다. 이제 이곳도 제법 유명세를 탄 모양이다.

 

▲ 온빛자연휴양림

 

사방댐 주택을 지나면 다시 주택 두어 채가 나오고 개울을 따라 굵고 키가 큰 메타세쿼이아가 가로수처럼 즐비하게 도열하고 있는 모습 또한 너무 멋졌고, 몇 개의 조각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중간에서 되돌아 나왔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목 한가운데 겹겹이 층을 이룬 암릉이 보이는데 이곳은 금남정맥 산줄기 천호산(371.6m) 북쪽에 있는 능선에서 동남쪽으로 내려온 산줄기의 끝부분 산이 채석을 해서 거의 수직으로 깎여진 산봉우리가 아이러니하게 암벽층이 겹겹이 보이면서 멋지게 보였다. 이 모습을 보면서 온빛자연휴양림과 작별하고 다음 행선지인 쌍계사로 향했다.

 

온빛자연휴양림 입구 도로에서 얼마 안 간(약 760m) 삼거리(한삼천리. 좌측으로 가면 김집선생묘가 나온다.)에 느티나무 보호수(수령 400년, 1997.11.1. 지정)가 있어 잠시 구경했다. 이 느티나무는 「시(市)나무」로 지정되었다.

 

이어 또 하나의 거목(느티나무)이 나와 그냥 지나쳤는데 다시 거목(느티나무)이 나오는데(양촌면 도평3리 도리들마을) 앞 전 나무보다 더 커서 잠시 주차하고 구경했다.

양촌면 면나무 보호수로 지정(1997.11.01.)된 느티나무는 수령 300년인데 앞전에 본 400년 된 느티나무 보다 더 굵어 보였다.

이어 두 번째 목적지인 쌍계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주차장에서 쌍계사까지 약 500m 거리라서 쌍계사 입구인 봉황루 앞 공터에다 주차를 하고 쌍계사에 들어갔다.

 

▶온빛자연휴양림 사진 보기: [논산 벌곡] 온빛자연휴양림 (23.05.30)

▶400년 시(市)나무 느티나무 보호수 사진 보기: 느티나무 보호수 (충남 논산시 벌곡면)

▶300년 면(面)나무 느티나무 보호수 사진 보기: 느티나무 보호수 (충남 논산 양촌면)

 

 

대웅전 꽃 창살이 유명한
2.불명산 쌍계사(雙溪寺)
양촌면 중산길 192

 

▲ 꽃 창살이 유명한 쌍계사 대웅전

 

대웅전 꽃 창살이 유명한 쌍계사(雙溪寺)

대웅전 전면 5칸 10짝의 문에 연꽃, 난초, 국화, 작약, 모란(목단), 무궁화 등 6가지 꽃문양을 새겼다.

 

쌍계사라고 하면 경남 하동의 지리산 쌍계사(雙磎寺)가 더 유명한데 한자로는 계자가 다르다. 지리산 쌍계사는 磎(시내계), 논산 쌍계사는 溪(시내계)로 둘 다 「시내, 시냇물, 산골물」이라는 뜻이지만 돌석(石)과 삼수(氵)변으로 다르게 쓴다.

 

논산 쌍계사는 일반적인 사찰과 달리 일주문과 사천왕문이 없다. 봉황루(鳳凰樓) 현판이 붙은 2층 누각 아래 사찰 경내로 통하는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논산 쌍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다. 건축 양식이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창건한 것으로 보인다. 1739년(영조 15)에 세운 중건비가 부도 앞에 세워져 있다.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408호) 내부에는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1851호)이 있다.

 

범종루(凡種樓)에는 법전사물(法殿四物. 불전사물(佛殿四物)이라고도 한다. 범종(梵鍾), 법고(法鼓), 운판(雲板), 목어(木魚))이 있는 전각을 말한다. 당호는 절에 따라 범종루·종각·종루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단층일 경우 각(閣)이라 하고 중층일 경우 루(樓)라고 한다. 규모가 큰 사찰에서는 중층으로 세워 법전사물(法殿四物)을 함께 두기도 한다.

그런데 이곳 쌍계사의 범종루는 1층 규모여서 범종각이라 명칭 해야 맞는데 어쩐 일인지 범종루라고 써진 현판이 걸려 있다.

 

불전사물은 사찰건축의 하나인 범종루, 또는 범종각에 배치한 네 가지 타악기를 이르는 말이다. 범종과 운판은 청동으로 만든 금속악기이고, 법고와 목어는 나무로 만든 타악기다. 금속악기의 음은 맑은 고음을 내고, 목조 타악기는 투박한 저음을 낸다.

 

불전사물은 통상 한 전각 안에 모두 매달려 있다. 생김 하나하나가 기존 악기 관념과는 거리가 멀다. 낯선 사람에게서 범종루는 마치 입체조형으로 구성한 설치예술의 전시장 같은 느낌을 준다. 묵직하고, 투박하며, 고요함 속에서 그 형세들은 하나같이 의문을 갖게 하고 그로테스크하다. 범종루에서 연주되는 소리는 파격적이다. 연주자는 악기를 때려 부술 기세로 온 몸으로, 때론 춤을 추듯 우아하게, 때론 고요하게 연주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연주한다’는 말은 뭔가 어색하다. 온 몸을 던지고, 우아하게 강약으로 때리고, 속을 휘젓고, 무심히 두드린다. 심지어 커다란 법고 앞에선 서너 명의 스님들이 교대로 돌아가면서 리듬을 이어가며 북을 두드린다. 일찍이 그런 연주는 경험한 적이 없다.

[출처 : 현대불교신문(http://www.hyunbulnews.com)]

 

대웅전 좌측 뒤편으로 가면 연등이 걸려 있고 연등터널을 통과하면 석조 관세음보살 상이 있다.

관세음보살상은 비가 내려도 얼굴 부분이 젖지 않는다고 안내판이 적혀 있는데 실제 답사를 해봐도 얼굴(앞, 뒤)과 가슴 부분은 비 한 방울 맞지 않은 것처럼 깨끗했다. 참으로 신기했다.

 

이곳 쌍계사에 또 한 가지 볼거리는 중앙에 있는 연리근목이 있는데, 연리(連理)란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서로 만나 합쳐지는 현상을 말하는데 뿌리가 만나면 연리근(連理根), 줄기가 만나면 연리목(連理木), 가지가 하나 되면 연리지(連理枝)라고 부른다.

우리 조상들은 연리나무가 나타나면 희귀하고 경사스러운 길조(吉兆)로 여겼다고 한다.

 

쌍계사 구경을 마치고 이제 세 번째 목적지인 선샤인랜드로 향했다.

 

▶쌍계사 사진 보기: 불명산 쌍계사 (23.05.30)

 

2023 국가대표브랜드 대상 (병영테마파크 부문)
3.선샤인랜드
연무읍 봉황로 102

 

선샤인랜드는 서바이벌 체험장, 밀리터리 체험관, 드라마·영화 세트장을 관람 및 체험을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눈으로만 보는 단순한 전시관이 아니라 방문객들이 직접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서바이벌 체험장은 온 몸으로 전해지는 생생한 전투 현장을 느낄 수 있는 체험이다.

밀리터리 체험관의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스크린 사격, 실내 사격, VR체험이 있다.

드라마·영화 세트장은 한국 전쟁이 끝난 195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생생한 역사 현장을 제공한다.

 

◆ 2023 국가대표브랜드 대상(병영테마파크 부문) ◆

2023년 4월 27일 시상

 

국가대표브랜드 대상은 소비자브랜드평가원이 조사·평가하고 산업통상자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농림축산식품부가 후원하는 브랜드 인증제도다.

 

논산시 '선샤인랜드'는 한국적 매력과 문화적 잠재가치, 체험의 즐거움 등이 결합된 관광 인프라로 관광문화 창달에 기여하는 한편, 대한민국의 대외적 브랜드를 한층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논산시 연무읍에 위치한 선샤인랜드는 국내 최초로 '호국'을 테마 삼아 조성된 병영테마파크다. 논산시가 지역이 지닌 국방·병영의 이미지를 호국이라는 가치로 승화시켜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관광자원을 개발해 낸 사례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재현한 선샤인스튜디오는 논산시가 터와 기반시설을 제공하고, 미디어 콘텐츠 제작사인 SBS A&T와 드라마 제작사인 (주)화앤담픽처스가 공동으로 투자해 조성했다.

 

2016년 착공에 돌입해 이듬해 공식 개장했으며 그해에만 5만명이 다녀갔다. 이후 꾸준한 인기 속에 2018년에는 20만명이, 2019년에는 35만명이 방문했고 코로나19로 시름하던 2020년부터 2022년에도 총 35만명이 넘게 찾는 등 논산의 대표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선샤인랜드는 이병헌, 김태리, 유연석, 변요한 등 초호화 배우진이 출연한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세트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드라마 흥행과 더불어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젊은이들에게 '인생샷' 명소로 인기를 끌었다.

 

선샤인랜드는 이후에도 봉오동전투, 파친코 등 여러 영화와 드라마, CF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콘텐츠들이 넷플릭스, 애플TV 등 OTT서비스를 타고 한류열풍에도 기여하고 있으며, 호국의 개념을 세계인에게 전하는 매개체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또한 한국전쟁 직후의 1950년대를 재현한 1950스튜디오, 서바이벌 경기와 밀리터리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밀리터리 체험관도 관광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 선샤인랜드

 

서양 문물이 해일처럼 밀려오던 시절이었다. 한성(서울)에 가로등 수백 개가 처음 불을 밝힌 날, 놀란 사람들의 탄성 사이로 두 남녀가 만났다. 조선 노비 출신 미 해병대 장교 유진 초이(이병헌 분)와 명문가 규수 고애신(김태리 분). 언뜻 그 시절 청춘 남녀의 연애 풍경처럼 보이지만,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2018년 방영한 뒤 새로운 한류 드라마의 아이콘이 된 〈미스터 션샤인〉에서 두 주인공이 처음 만나는 장면이다. 이를 비롯해 드라마는 대부분 논산선샤인랜드에서 촬영했다.

 

논산시와 드라마 제작사 등이 손잡고 조성한 논산선샤인랜드는 국내 유일한 개화기 촬영 세트장인 선샤인스튜디오, 한국전쟁 직후의 풍경을 재현한 1950스튜디오, 실내에서 사격과 VR 체험을 즐기는 밀리터리체험관 등으로 구성된다. 논산선샤인랜드 동절기(11~2월) 운영 시간은 오전 9시~오후 5시, 수요일과 1월 1일, 명절 당일은 휴관한다. 1950스튜디오 입장료는 없고, 밀리터리체험관은 체험 종류에 따라 비용이 발생한다(스크린·실내 사격 각 2000원, VR 체험 5000~1만 5000원). 선샤인스튜디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수요일 휴관), 입장료는 어른 9000원, 청소년 7000원, 어린이 5000원이다.

 

※밀리터리체험관은 내부 리모델링으로 2월 13일부터 6월 말까지 휴관 예정이며, 이외 시설은 관람 및 체험 가능

 

총면적 약 2만㎡에 이르는 선샤인스튜디오는 〈미스터 션샤인〉의 배경이 된 1900년대 초반 한성을 재현한 공간이다. 한성전기 사옥을 비롯한 근대 서양식 건물 5동, 기와집 19동, 초가집 4동, 일본식 가옥 9동에 1899년 운행을 시작한 전차까지 어우러져 120여 년 전 모습이 완성됐다. 드라마가 세계적 인기를 끌자, 선샤인랜드 또한 한류 관광지로 떠올랐다.

 

선샤인스튜디오 매표소를 지나면 담쟁이덩굴이 휘감은 간판 너머 글로리호텔이 보인다. 대한제국 시기 한성 최초의 서양식 숙박 시설 손탁호텔을 모델로 꾸민 글로리호텔은 드라마에서 한성을 찾은 외국인과 내국인이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미 해병대 장교 유진 초이와 유학생 김희성(변요한 분)이 이곳에 머물렀고, 일본 낭인 구동매(유연석 분)도 자주 드나들었다. 현재 로비에는 드라마에 사용된 소품을 전시하고, 2층에는 고풍스런 카페 ‘선샤인가배정’이 있다.

 

글로리호텔 아래쪽은 드라마 속 주요 배경인 홍예교와 전찻길이다. 남녀 주인공의 운명적인 만남도, 일본 낭인들의 혈투도, 부모에 대한 복수도 이곳에서 시작됐다. 덕분에 드라마를 기억하는 방문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기념 촬영 장소다. 지금은 홍예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춰 선 전차가 드라마에서 본 옛 모습 그대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전찻길을 따라 걷다 보면 ‘대안문(大安門)’이란 현판이 달린 거대한 문이 나온다. 대안문은 덕수궁 대한문(大漢門)의 옛 이름이다. 그 옆 벽돌 건물은 대한제국 최고 군 통수 기관 원수부다. 대안문 앞으로 고애신의 마당집과 구동매가 머물던 일본식 목조 가옥(동매집), 건물 중앙의 화강암 시계탑이 인상적인 한성전기 사옥 등이 이어진다. 이밖에도 양과자를 팔던 불란셔제빵소, 흥신소를 닮은 해드리오 등 드라마 속 장소가 곳곳에 있다.

 

선샤인랜드 구경을 마치고 이제 강경으로 넘어갔다.

 

▶선샤인랜드 사진 보기: [논산 11경] 제10경 선샤인랜드 (23.05.30)

 

[참고자료]

※ 논산시는 1996년 논산이 보유한 명승·고적 위주로 관촉사, 탑정호, 대둔산, 계백장군유적지, 쌍계사, 개태사, 옥녀봉, 노성산성논산 8경으로 지정한 바 있고, 2022년 2월 3일 기존의 8경에서 11경으로 업그레이드 했다.

또한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로 5품(딸기, 젓갈, 고구마, 곶감, 대추)도 선정했다.

 

▣ 논산 11경

제1경 관촉사 은진미륵: 천년의 미소가 아름다운 은진미륵을 품은 관촉사

제2경 탑정호와 출렁다리: 철새들의 낙원이자 논산의 젖줄

제3경 대둔산 수락계곡: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충남의 작은 금강산

제4경 계백장군유적지: 5,000 결사대의 충절정신과 충청인의 얼이 살아 있는 곳!

제5경 쌍계사: 고풍스런 정교함의 극치 대웅전의 꽃무늬 창살로 유명

제6경 개태사: 태조 왕건이 지은 고려시대 최대의 개국 사찰

제7경 강경포구와 근대역사거리: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경치에 반한 선녀의 전설이 깃든 곳!

제8경 노성산성과 명재고택: 노성산 아래 우리 선조들의 건축적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곳

제9경 세계유산 돈암서원: 한국의 서원 중 하나로 한국에서 14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제10경 선샤인랜드: 단순한 전시관이 아닌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

제11경 종학당과 한국유교문화진흥원: 전국 최초 유교문화 전문기관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재 제650호
4.강경성당
강경읍 옥녀봉로 27번길 13-3 (강경읍 중앙리 228)

 

▣ 강경읍

충청남도 논산시의 서쪽에 있는 읍.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면적이 두 번째로 좁은 읍. 원래는 전국에서 가장 좁은 읍이었으나, 2019년 10월 21일자로 퇴계원읍이 면에서 읍으로 승격되면서 2위로 떨어졌다. 읍소재지는 남교리이다.

 

금강 하구의 관문인 강경포구는 조선 시대 중국 무역선이 비단과 소금을 싣고 들어와 장삿길을 튼 이래, 원산항과 더불어 우리나라 2대 포구로 불릴 만큼 번성했다. 이런 번영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에도 이어졌고, 이 시기에 지은 은행과 학교 등 근대건축물이 강경근대역사거리를 이룬다.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옛 한일은행 강경지점과 강경중앙초등학교 강당, 옛 강경노동조합 건물 등이 남아 있다.

 

▲ 외형이 독특한 강경성당(강경성지성당)

 

강경성당(江景聖堂)은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있는 건축물이다. 2015년 8월 25일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650호로 지정되었다.

 

「강경성당」은 1961년에 건립된 것으로, 당시로서는 특이한 구조방식인 첨두형 아치보로 내부를 구성하는 등 현대적 처리가 돋보이는 성당건축물이다.

 

건축에 조예가 깊은 보드뱅 신부(1897∼1976)의 설계와 감독으로 지어져, 건립 당시의 구조와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존·활용 여건이 양호하며, 당시의 일반적인 건축구조형식을 벗어나 아치 형식의 구조프레임을 사용하여 대형공간을 만드는 등 건축적ㆍ종교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강경성당 내부를 보려했지만 번호키로 잠겨 있어서 아쉽게도 보지 못하고 다음 목적지인 김대건신부 최초 사목지로 향했다.

 

▶강경성당 사진 보기: [논산] 강경성당 (23.05.30)

 

[참고자료]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된 논산시 근대건축물 11곳.(강경 10군데. 연산 1군데)

 

제10호 논산 강경 중앙리 구 남일당 한약방(현재 문화재 명칭은 '강경 구 연수당 건재 약방')

②제42호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舊江景聖潔敎會禮拜堂. 논산 강경 북옥감리교회): 구강경성결교회 예배당은 1953년 매각된 후 북옥감리교회에서 사용하다가 2012년 11월 다시 강경성결교회에서 매입하였다. 2002년 9월 13일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제48호 연산역 급수탑: 1911년에 건립된 원통형 급수탑으로, 국내에 현존하는 급수탑 중 가장 오래되었다. 콘크리트가 아닌 화강암 석재를 쌓아올려 만든 특이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상단 물탱크 부분은 철제로 되어 있다.

제60호 강경중앙초등학교 강당

제322호 구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

제323호 구 강경노동조합: 한동안 빈 건물로 유지되다가 현재는 지역 역사문화 안내소로 사용.

 

제324호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 조흥은행, 충청은행으로 쓰다가 개인 젓갈창고 등으로 사용해오다가 시에서 매입한 이후 역사관으로 사용 중.

제337호 강경 화교학교 교사와 사택(江景華僑學校校舍-舍宅)

⑨제601호 강경 갑문(江景 閘門)

제602호 강경 채운산배수지(江景彩雲山配水池)

⑪제650호 강경성당(江景聖堂)

   

조선 최초의 가톨릭 사제(신부)
5.김대건신부 최초 사목지
강경읍 홍교리 96-1
 
100년의 역사, 최초 신사참배 거부 선도 교회
6.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
강경읍 계백로 219번길 40-1
 
근대 시기 한옥의 다양한 변화를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
7.구 연수당 건재 약방
강경읍 중앙리 88-1

 

김대건은 조선 최초의 가톨릭 사제(신부)로, 세례명은 안드레아다. 성 피에르 모방 신부의 천거로 마카오에서 유학하며 신학을 공부해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하였으나, 단 1년밖에 사목생활을 하지 못하고 붙잡혀 군난을 받고 25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1846년, 병오박해). 1984년 한국의 동료 순교자 102명과 함께 시성됐다.

 

전국에 있는 대건중학교, 대건고등학교들은 바로 김대건 신부의 이름을 따서 만든 학교이다. (대구광역시, 인천광역시, 논산시에 있다.) 당연히 가톨릭 계열 미션스쿨. 그 외에도 예수회 재단인 서강대학교에 김대건 신부의 이름을 딴 건물인 김대건관이 존재한다. 강릉시 소재의 가톨릭관동대학교에도 대건관이 존재한다. 몇몇 미션스쿨에서는 김대건 신부를 수호성인으로 지정하는 경우도 있다. 오천중학교에도 김대건의 이름을 딴 성 김대건관이 만들어졌다. 많은 성당의 주보성인으로도 정해졌는데 대표적인 곳이 논산 육군훈련소 성당이다.

[출처: 나무위키]

 

<충청투데이 2019년 5월 14일(화) 11면 기사>

한국  사제의  사목지”… 성지된 논산 강경

 

[충청투데이 김흥준 기자]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부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국내 최초 미사를 집전한 논산시 강경의 성역화 사업이 마무리되면서 강경이 대한민국 기독교의 성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 11일 논산 강경 성지 성당에서는 유흥식 라자로 천주교 대전 교구장의 집전으로 '성 김대건 신부 사목성지 축성식'을 통해 한국 천주교 발전의 한 획을 그은 '성 김대건 신부'를 추모했다. 이번 '성 김대건 신부 사목성지 축성식'으로 그동안 조선 3대 시장으로 불리며 당시 사통팔달의 해상 교통과 풍부한 물류 유통 도시의 면모를 자랑하던 논산 강경이 재조명되며,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한몫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제 논산은 1896년 한반도에 상륙한 침례교 최초 예배지라는 역사적 사실에 더해 한국 최초 신부에 의한 미사 집전지라는 사실이 공식화 되면서 신구교 모두의 성지라는 색다른 이력을 갖게 됐다. 기념식에서 천주교 대전 교구 유흥식 교구장은 '사목 성지' 조성을 위해 애써온 황명선 논산시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며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해 행사의 의미를 더했다.

 

황명선 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한국 천주교는 사회적 약자의 곁을 지키며 인간의 존엄을 우선하고,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해 오며, 이는 시가 추구하는 동고동락 공동체의 기본정신과도 같다"고 전제하고 "성 김대건 신부 사목성지 조성이 대한민국과 카톨릭 역사에 꼭 필요한 일이자, 많은 분들의 열정과 격려의 결과로써 화합의 더 큰 역사를 여는 큰 울림이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인 사제인 성 김대건 신부는 1821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1845년 중국 상해에서 성직자로서의 서품을 받고 이후 조선으로 건너온 뒤 목회 활동을 하다 이듬해인 1846년 당국에 체포되어 새남터에서 효수 당했다.

 

증조부와 아버지 역시 천주교 박해로 3대에 걸쳐 순교자를 배출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1925년 로마 교황 비오 11세는 김대건 신부를 복자로 선포했고, 1984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으로 추증됐다.

논산=김흥준 기자 khj50096@cctoday.co.kr

[출처 : 충청투데이(https://www.cctoday.co.kr)]

 

강경성당(강경성지성당)에서 김대건신부 최초 사목지는 논산 방향으로 약 300m, 걸어서 3~4분 정도 걸리는데 차량으로 이동(1분)했다.

 

▲ 김대건신부 최초 사목지 앞에 있는 구조물

 

김대건신부 최초 사목지 앞에 주차장에 있어서 그곳에 주차를 하고는 길 건너편에 있는 사목지를 구경했는데 빈 공터에 판석이 깔려 있고, 그 한가운데에 「성 김대건 신부 유숙 장소 (구순오 집터)」라고 적힌 화강암판이 바닥에 박혀 있다.

 

그리고는 모퉁이를 돌아 나가면 성당 모양의 녹슨 철제 구조물(가운데 김대건 신부 모습의 구멍이 나 있다.) 양 옆으로 왼쪽에는 성 김대건신부 첫 사목성지 안내비, 오른쪽에는 성 김대건신부 헌양비가 세워져 있다.

 

김대건신부는 이곳 강경 교우 구순오의 집에서 한 달 남짓 머물며 성사를 집전하고 미사를 봉헌하는 등 고국에서 첫 사목활동을 시작하였고, 라파엘호를 정리하고 새로이 배를 준비하는 등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준비를 하고 함께 강경 땅을 밟은 디딘 페레올 주교 역시 이곳에서 은거하며 교구장의 직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김대건신부의 사목활동은 1년을 넘기지 못하고 1846년 병오박해 때 붙잡혀 25세의 젊은 나이로 순교했다.

 

▲ 강경성결교회

 

사목지 터 만 확인하고 되짚어 다음 목적지로 가려는데 길 건너 정면으로 강경교회(강경성결교회)가 보였다. 1923년에 세운 강경성결교회예배당은 기독교 토착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초기 한옥교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한때 감리교회로 넘어갔다가 역사적 중요성을 인식한 성결교회에서 다시 매입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던 건물이다. 국가등록문화재 제42호로 지정(2002년 9월 13일)된 근대건축물이다.

 

강경성결교회 옆에는 최초 신사참배 거부 선도 교회임을 기념하는 대형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강경은 금강 수로의 영향으로 서양 종교가 일찍이 전해진 곳이다.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와 천주교 등 작은 읍내에 유난히 교회 건물이 많은 이유다.

 

강경성결교회와 김대건신부 최초 사목지에서 강경 쪽으로 불과 약 80m 지점에 남일당한약방(구 연수당 건재 약방)이 있다.

 

▲ 구 연수당 건재 약방

 

지금은 사라진 강경 하(下)시장의 한약방 건물로서 건축양식이 특이하며, 1920년대 촬영된 강경시장 전경 사진 속의 건물 중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건물로 역사적인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근대 시기 한옥의 다양한 변화를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인 구 연수당 건재 약방은 2002년 2월 28일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었다.

 

김대건신부 최초 사목지, 강경성결교회, 구 연수당건재약방까지 보고는 이제 다음 목적지인 강경산 소금문학관으로 향했다.

 

▶김대건신부 최초 사목지,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 구 연수당 건재 약방 사진 보기: 김대건신부 최초 사목지 외 (23.05.30)

 

소설가 박범신의 삶과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8.강경산 소금문학관
강경읍 강경포구길 38 (북옥리 139-2)

 

김대건신부 최초 사목지 주차장에서 약 1km 거리에 약 3분 정도 걸려 강경산 소금문학관 앞 주차장에 도착을 했다.

 

▲ 강경산 소금문학관

 

소설가 박범신의 삶과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강경산 소금문학관

 

금강에 맞닿은 곳에 있는 옥녀봉 자락에 지는 해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소금문학관이 2021년 12월에 개관을 했다. 주차장에서 2~3분이면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접근성이 뛰어나고, 겉모습은 투박하지만 나룻배 모양의 현대식 건축 구조로 지어졌다.

 

소금문학관이라는 명칭은 강경이 낳은 소설가 박범신의 장편 소설 ‘소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강경읍이 지닌 내면의 얼굴을 형상화한 작품인 ‘소금’은 작가가 2011년 고향 강경으로 내려와 처음으로 집필한 대표작이다.

 

박범신 작가의 소설 ‘소금’의 배경이 된 집. 주인공 선명우의 잃어버린 첫사랑과 자아 그리고 자본의 욕망에 빠져 행복을 버렸던 우리 공동체를 회복하는 장소이자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안식처로써의 소금집.

소금문학관 뒤편에 있으며 걸어서 5~6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데 아쉽게도 방문은 못했다.

 

강경산 소금문학관 뒤편이 옥녀봉인데 옥녀봉은 지난 2월 21일에 다녀와서 패스하고 다음 목적지인 탑정호 음악분수를 보려고 탑정호로 향했다.

▶옥녀봉 사진 보기: [논산] 강경 옥녀봉 (23.02.21)

▶강경산 소금문학관 사진 보기: [논산] 강경산 소금문학관(23.05.30)

 

국가 등록문화재 제601호
9.강경 갑문
강경읍 황산리 198
 
국가 등록문화재 제322호
10.구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
강경읍 남교리 1번지

 

강경갑문

강경 갑문(江景 閘門)은 2014년 9월 1일 국가등록문화재 제601호로 지정되었다.

 

▲ 강경 갑문

 

갑문은 3중문 구조로, 제1문과 제2문은 동일한 기단부에 인접하여 설치되었고 제3문은 일정거리 떨어진 곳에 설치되었으며, 수로를 횡단할 수 있도록 보도교가 설치된 시설로, 현재 문은 남아 있지 않으나 문의 개폐장치유구 등이 잘 남아 있다.

 

조석(潮汐)에 지장을 받지 않으면서 화물의 하역과 선적 작업을 가능하게 하고, 강물의 수위(水位)를 조절하고 홍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시설물로 근대기 산업시설로써 가치가 있다.

 

구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

구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는 2007년 4월 30일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322호로 지정되었다.

 

▲ 구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

 

1925년 5년제 갑종 상업학교로 승격된 강경공립상업학교의 교장관사로 1931년에 신축된 건물로 일본 목조 쇼인조(書院造) 형식을 근대적 재료인 벽돌을 이용하여 구성한 것으로 높은 박공지붕이 내려오면서 이어내림지붕 형태로 늘어진 것이 특징이다. 입구의 석재마감 포치 등 외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으며 1920년대 및 30년대에 근대적 기술을 주택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건물로서 당시 학교 관사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탑정호로 가기 전에 강경산 소금문학관 인근에 있는 등록문화재 601호로 지정된 강경갑문과 역시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구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를 보고 탑정호로 향했다.

 

▶구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 강경갑문 사진 보기: [강경] 구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 강경갑문 (23.05.30)

 

[참고자료]

2022.03.25 한국일보 13면 기사 내용

 

걷고 싶은 길, 가고 싶은 거리

쇠락한 '조선시대 3대 시장' 강경.. 근대역사문화거리로 재탄생

 

충남 논산 강경시장은 평양시장, 대구 서문시장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시장으로 꼽히던 곳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강경은 옛 영화를 찾아보기 힘든 모습으로 쪼그라들었지만, 금강 하류의 이 소읍을 한두 시간 자박자박 걷다 보면 곳곳에서 과거의 명성과 만난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짓고 살던 적산가옥이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고, 현대식 건물과 확연히 다른 모양을 한 이들 건물 사이를 걷다 보면 10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주요 거리를 근대역사문화거리로 지정해 건물들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논산시는 개발도 병행하면서 과거 번성했던 강경 재건을 꾀하고 있다.

 

호남선 강경역에서 내려 5분을 걸으면 금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낀 역사기행이 시작된다. 차량 이동보다는 도보 이동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가다 보면 발길을 잡아끄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차려진 코스는 모두 4가지. 제1코스 근대문화유산코스, 제2코스 상업문화코스, 제3코스 유교문화코스, 제4코스 성지순례코스다.

 

 

금강을 품은 조선 3대 시장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강경의 근대역사문화 공간을 둘러볼 수 있는 1코스. 강경중앙초등학교 강당에서 시작해 구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스승의날 발원지(강경여중고)→빛의 광장→강경 구연수당 건재 약방→본정통거리→대동전기상회→객주촌→구한일은행 강경지점(강경역사관)→젓갈시장4거리(상징조형물)로 이어진다.

 

강경이 조선시대 3대 시장과 포구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금강에 있다. 금강이 휘감아 도는 강경은 강과 바다를 연결하는 수상 교통이 발달해 조선시대에 평양, 대구와 함께 다양한 지역의 산물들이 거래되는 시장이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던 만큼 돈이 돌았고, 그 풍요 속에서 근대문화가 꽃을 피웠다.

 

강경은 현재(2023년 1월 기준) 인구 7,648명에 불과한 소읍이지만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서해 수산물과 호남 곡물, 포목거래와 중국 상선이 드나들던 무역항이었다. 1870년 무렵 점포 수는 900여 개에 달했고, 1970년대까지 상주 인구 3만 명에 유동인구가 하루 10만 명이었다.

 

금강 하류이지만 수심이 깊어 제법 큰 고깃배와 상선이 오갔다. 충청내륙과 호남지방까지 넓은 시장을 배후에 뒀던 덕분에, 해당 지역의 산물이 강경으로 몰렸던 까닭에 하루 100여 척의 선박이 강경을 오갔다.

 

1871년 신미양요 이후 강경은 서해와 중국의 소금을 전국에 공급하면서 더욱 번성했다. 수백 명의 직원을 데리고 소금을 공급하던 객주들은 대금업과 수산물 도매로 막대한 자본을 형성했다. 인근 군산항 개항으로 수입 화물 80%가 강경시장을 통해 나가면서 수산물, 곡물, 공산품을 아우르는 국제중개항 역할을 했다.

 

하지만 철로가 뚫리며 상권이 흔들렸다. 운송능력이 수십 배인 철도의 기세에 눌려 한때 침체되는 듯했다. 그러나 일제의 본격적인 쌀 수탈로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강경과 군산을 관문으로 삼은 일제는 최신식 도정공장을 짓고 쌀을 일본으로 실어갔다. 1924년 어선과 교역선 보호, 수산물 하역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제방을 쌓고 갑문을 만들자 일본인이 몰려왔다. 한때 일본 상인은 1,500여 명으로 늘었고 강경 상권을 손아귀에 넣었다. 당시 시가지엔 그들이 지은 관청, 공공건물, 학교, 각종 상점과 금융, 점포병용 주택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광복과 함께 시든 강경

 

일제가 패망하자 강경포구도 시들었다. 광복 이후 군청이 논산으로 옮겨갔고, 덩치를 키운 대전과 익산의 상권이 강경을 위협했다. 여기에다 금강 하구에 토사가 쌓이면서 화물선과 큰 고깃배 접안이 힘들어졌고, 강경의 상권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1990년 금강하굿둑이 생기면서 강경은 포구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강경항에는 현재 140여 개의 젓갈도소매점들이 있다. 200년간 이어온 수산물가공법과 염장법을 이어온 후손들이 운영하는 것들이다. 젓갈의 전국 유통량 50% 이상이 이곳에서 비롯된다.

 

강경을 더 깊게 들여다보기를 원하는 이들은 읍내 중심에 위치한 강경역사문화안내소와 역사문화연구원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강경의 역사소개와 함께 여러 가지 자료를 구할 수 있고 여행동선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곳의 안내를 받아 읍내를 걷다 보면 1920년대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금강 제방 옆에 낮은 건물들이 올망졸망 자리 잡은 강경읍내는 도심 중심부에서 반경 1㎞ 이내에 대부분의 볼거리가 몰려있다. '소읍 하나가 우리나라 근대사를 담고 있는 박물관이라니...'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근대건축물만 11곳이다.

 

김무길(80) 강경역사문화연구원 연구부장은 "강경의 역사를 알고 여행하면 재미가 더욱 쏠쏠하다"며 "폐가와 다름없는 건물에도 100년의 역사와 수많은 사연을 담고있어, 당시를 상상하며 돌아보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강경역사문화안내소로 사용 중인 건물은 부두노동조합 사무실로 쓰이던 공간이다. 1925년 지어진 2층 건물로 2009년 일부 무너진 곳을 복원했다. 강경근대역사관으로 쓰이고 있는 건물은 옛 한일은행이었다. 그 이전엔 동양척식주식회사와 함께 수탈의 첨병 역할을 하던 조선식산은행 강경지점이 있던 곳이다. 1905년 지어진 서양식 벽돌 건축물은 3층 높이를 하고 있지만, 안으로 들면 단층짜리 건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강경 구경 마무리 옥녀봉

 

길모퉁이를 돌면 젓갈시장 사거리가 나온다. 전통 새우잡이 통발 모양을 형상화한 상징 조형물은 강경의 옛 명성을 알리고 있다. 도로 양쪽에 늘어선 젓갈집에 들러 짭쪼름한 젓갈 쇼핑도 여행의 별미가 된다.

 

젓갈시장을 지나 '본정통거리'에 들어서면 일본인이 남기고 간 건축양식 그대로 다시 세운 건물들이 많다. 건물들을 자세히 보면 '대동전기상회' 등 벽에 글자와 간판을 새겨넣은 '건축 간판'을 발견할 수 있다.

 

근대건축물이 아니더라도 큰길을 벗어나 골목에 들어서면 일본 잔재가 대부분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폐쇄한 지 오래돼 먼지와 거미줄을 뒤짚어쓴 골목의 낡은 이발소나 오래된 창고, 점포는 영화에서나 보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근대역사문화거리 구경을 마쳤으면 강경 최고의 전망대인 옥녀봉에 꼭 올라야 강경관광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영화세트장 같은 거리를 지나 북쪽으로 향하면 해발 44m에 불과하지만 강경에서 가장 높은 옥녀봉이 나온다. 아래로 금강이 곡선을 그리며 흐르고 있어 이곳이 포구였음을 일깨워 준다. 이곳에서 해질 무렵 황금빛으로 물드는 일몰 풍경은 일품이다.

 

강경은 금강 수로 영향으로 서양 종교가 일찍이 전해진 곳이다.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와 천주교 등 작은 읍내에 유난히 교회 건물이 많은 이유다. 읍내 가운데에 위치한 강경천주교회는 배를 뒤집어 놓은 듯한 아치형 골조로 건축됐다. 인근에는 김대건 신부가 유숙했던 장소가 남아 있다.

 

1923년에 세운 강경성결교회예배당은 기독교 토착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초기 한옥교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한때 감리교회로 넘어갔다가 역사적 중요성을 인식한 성결교회에서 다시 매입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던 건물이다.

 

근대 건축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금강변 언덕에는 죽림서원ㆍ임리정ㆍ팔괘정 등 조선시대 유적이 연이어 남아 있다. 임리정은 인조 4년(1626) 김장생이 건립해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인근 팔괘정(八卦亭)은 우암 송시열이 스승 김장생을 가까이 하기 위해 건립하고 강학한 정자다. 두 곳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더욱 운치 있다. 앞마당에 서면 금강이 유유히 흐르고 강 건너 부여의 너른 평야가 넓게 펼쳐진다.

 

논산시는 강경에 ‘근대역사문화촌’을 조성 중이다. 논산시 관계자는 "일부 건물을 사들여 근대 건축양식으로 개축하고 숙박업소나 공방 등을 유치하고 있다"며 "강경을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중앙초등학교 강당에서 시작해 구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스승의날 발원지(강경여중고)→빛의 광장→강경 구연수당 건재 약방→본정통거리→대동전기상회→객주촌→구한일은행 강경지점(강경역사관)→젓갈시장4거리(상징조형물)

 

 

이렇게 멋진 곳이 또 있을까?
11.탑정호 야경
부적면 신풍리

 

◈ 탑정저수지에 대하여

 

탑정저수지는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있는 저수지이다. 1941년에 착공하여 1944년에 준공되었으며, 한국농어촌공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충청남도에서 예당저수지(국내 최대 규모의 저수지)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저수지로서 어족자원이 풍부하다. 깨끗한 수질과 겨울철에도 잘 얼지 않고, 주변의 논산평야 등 대규모 농경지가 위치해 풍부한 먹이로 철새들의 서식에 적당하여 겨울철새들의 월동지로 이용되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는 탑정호를 계획적으로 개발하는 수변개발사업을 2012년부터 추진하고 있다.

 

▶저수지 규모

-유역면적 : 21,880ha

-저수량 : 31,611천m3

-관개면적 : 5,117ha

 

▶시설 제원

-댐형식 : 흙댐 (필댐)

-제방 : 길이 573m, 높이 17.8m

-물넘이 : 측수로식, 길이 240m, 월류수심 2m

 

◆ 탑정호 수변생태공원

탑정호 수변생태공원은 논산시에서 2010년부터 탑정호 수변에 수생식물원, 자연학습원, 분수, 팔각정 등 산책코스를 조성하여 연중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관광코스로 특히 매주 수요일에는 전국 각지에서 오는 영외면회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이다.

 

◆ 탑정호 출렁다리

탑정호 출렁다리는 동양 최대 길이의 보행 현수교로 길이가 600m(동양 최대 규모) 에 달한다. 탑정호를 가로질러 가야곡면에서 부적면을 연결한다. 내진설계 1등급을 받은 튼튼한 다리로 몸무게 75kg 기준 약5,000명을 동시에 수용 가능하며, 초속 60m 강풍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되었다. 다리 전체를 스크린 삼아 각양각색의 장면을 연출하는 미디어파사드 분수쇼, 150m 규모의 음악 분수 스크린에 실사 영상과 각종 글자를 표출하는 레이저쇼 등 음악과 영상이 한데 어우러진 화려한 볼거리를 즐길 수 있다.

 

◆ 주변 관광

-계백장군유적전승지 - 계백 장군 묘소 (충청남도 기념물 제74호)

-백제군사박물관

-김장생 유교문화체험

-돈암서원

-논산 탑정리 석탑

[출처: 위키백과. 일부 내용 본인이 첨가]

 

사실 탑정호는 수도 없이 다녀온 곳이다. 그런데도 이번에 가는 이유는 음악분수 야경을 보기 위해서 였다.

그런데 월요일(5월 29일)이 석가탄신일 대체공휴일이라 음악분수가 화요일에 가동하지 않았다. 현지에 도착해서 현수막을 보고서야 화요일에 음악분수 가동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곳에서 숙박하려고 예약도 했는데….

결국은 음악분수 야경을 보려면 한 번 더 와야 하는데 탑정호 주변 공사가 마무리되면 그때 방문할 것이다.

 

▲ 탑정호 출렁다리 야경

▲ 탑정호 출렁다리 야경 동영상

 

그래도 온 김에 음악분수 주변, 출렁다리 야경은 즐겁게 감상했다.

음악분수 야경시간이 많이 남아서 인근의 계백장군유적지를 방문했는데 공사 중이라 되돌아 왔다.

 

▶탑정호 출렁다리 사진 보기: [논산] 탑정호 출렁다리 (23.02.21)

▶탑정호 야경 사진 보기: [논산] 탑정호 야경 (23.05.30)

 

[참고자료: 탑정호 기사]

서울신문 2023년 5월 12일 기사

 

‘출렁다리’보다 높게 치솟는 물줄기… 논산의 달밤을 적시다

 

다음날 느긋하게 일어나서 김홍신문학관 부근의 김밥집에서 김밥과 라면을 먹고 개장 시간(10:00)에 맞추어 입장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밀리언셀러 작가
12.김홍신문학관
중앙로 146-23 (내동 1214)

 

▲ 김홍신 문학관

 

김홍신문학관은 대한민국 최초의 밀리언셀러 작가 김홍신의 문학정신을 조명하고 지역의 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고향 후배 남상원 회장의 후원으로 건립된 문화공간이다. 동향 선후배의 우정과 애향심이 담긴 김홍신문학관은 논산시 내동에 120평 규모의 집필관과 268평 규모의 문학관으로 조성되어 2019년 6월 8일 개관했다. 집필관에는 작가의 집필실을 비롯해 레지던시 창각 공간과 세미나실, 수장고가 마련 됐으며, 문학관은 작가 일대기의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특별전시실을 비롯해 아카이브 전시실, 문학전망대, 관람객을 위한 열린 다목적실과 까페로 구성돼 있다. 김홍신문학관의 건축이념은 '바람으로 지은 집'이다. 건물은 자연의 빛과 바람이 수평,수직으로 관통하여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으로 연결되도록 지어졌으며, 이는 작가 작품세계의 주요 모티프인 '바람'의 의미와 염원을 품은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재)홍상문화재단은 이러한 건물의 상징에서 출발하여 미래가치를 담아 문학관을 운영한다.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김홍신문학관에서 다음 목적지인 연산역으로 향했다.

 

▶김홍신문학관 사진 보기: [논산] 김홍신문학관 (23.05.31)

 

첨성대를 닮은 국내 최고령 급수탑이 있는
13.연산역
연산면 선비로 275번길 31-2

 

김홍신문학관에서 연산역까지 13.2km 거리에 약 21분 걸려 도착했다. 연산역 앞에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주차를 하고는 연산역 우측에 있는 급수탑(국가등록문화재 제48호)으로 향했다.

 

▲ 연산역 급수탑

 

호남선 개통과 함께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1911년 12월 30일에 설치하여 1970년대까지 약 60여 년 간 사용되었다. 급수탑의 규모는 높이 16.2m, 바닥면적 16.6㎡ 급수탑용량은 30t이다. 급수탑 옆에 위치하고 있는 우물은 폭이 2.8m, 깊이 6m의 크기로 급수탑의 급수용으로 축조하였다. 일제감정기에 전국 각지에 철도망을 부설할 당시 주요 역마다 기관차 급수시설을 설치하였는데 충남에는 서대전과 강경역에 급수탑이 있었으나 현재는 이곳 연산역만이 남아 있다. 특히, 연산역 급수탑은 유일하게 화강석을 벽돌형태로 다듬어 만들어져 모양과 크기에서 독특한 미감을 준다. 급수탑은 가장 인상적인 근대산업시설물로서 철도사는 물론 산업개발사와 관련하여 중요한 근대 건축물이다.

 

* 소유자 : 국토교통부

* 관리자 : 한국철도시설공단

* 규모 및 구조 : 높이 16.2m 바닥면적 16.6㎡ 급수탑용량 30t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급수탑을 보고는 연산역 대합실을 거쳐 좌측으로 나가니 열차를 개량해서 기차문화체험관이 만들어져 있어 잠시 구경을 했다.

기차문화체험관 옆에는 공예체험관도 있다.

이렇게 연산역 구경을 마치고 이제 호국사찰 개태사로 향했다.

 

▶연산역 급수탑 사진 보기: [논산] 연산역 급수탑 (23.05.31)

 

호국종찰
14.천호산 개태사(開泰寺)
연산면 계백로 2614-11

 

연산역에서 4.9km 거리에 약 7분 걸려 개태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 개태사 어진전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한 기념으로 창건되었다.

 

태조의 영정을 모시는 어진전(御眞殿)이 있으며, 고려 말기가 되기 전까지는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곳이다.

 

천호산 자락에 있는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기념으로 지은 개국사찰이다.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의 어진(왕의 초상화)을 봉안한 어진전이 있다. 고려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호국사찰이면서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는 항상 이곳에서 하늘에 기원을 올리고 나라의 평온을 소원했다고 한다. 대웅전에는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멸하고 마침내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조성했다는 삼존석불이 있다.

 

이 개태사의 삼존석불은 조선시대 이전의 불상 중 걸작에 속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키가 큰 주존불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좌협시불, 우협시불이 있다. 중앙의 본전불은 좌우 230㎝, 앞뒤216㎝ 방대형 대좌 위에 입상으로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이 삼존불은 조각의 선이 굵고 강하여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석불로 그 가치가 크며 본존불은 아미타상, 우협시불은 관세음보살, 좌협시불은 대세지 보살상이라고도 전한다. 무엇보다 이 삼존불을 보고 있으면 기골이 장대한 늠름한 무장의 기상을 한눈에 느끼게 된다.

 

지금의 삼존석불은 애초에 세운 개태사의 사세가 쇠락해 폐사되어 노천에서 비바람을 맞고 있던 것을 보호각을 조성하여 다시 모신 것이다.

 

개태사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직격이 3m, 높이가 1m 정도 되는 거대한 가마솥이다. 흔히 고려 때 스님들이 국을 끓이던 솥이라고 하는데 「신동국여지승람」에는 장을 끓이던 솥으로 적혀 있다 한다. 이 솥은 그 크기만큼이나 다양한 전설을 많이 갖고 있는데, 한 전설에 의하면 고려말기 왜적들의 침입으로 개태사는 쇠퇴하여 가고 가마솥은 녹슬어 쓸모없게 뒹굴고 있었는데, 왜적들의 침입이 있자 우리나라 군사들의 식사를 마련하기 위하여 이 솥을 다시 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솥에 밥을 지어먹은 군사들이 잘 싸워 그 때부터 왜적들이 물러가기 시작했다. 그 다음부터 이 솥은 왜적들에게 원한을 지게 되었으며, 왜적들이 이 솥을 옮겨가려고 할 때면 하늘에서 천둥과 벼락이 쳐 손을 대지 못했다고 전한다.

 

철확(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1호)은 개태사에 잘 보관되어 있는데 이 절이 그 당시 얼마나 크고 도량하는 스님이 많았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개태사 답사를 마치고 귀경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많이 남아서 예정에 없던 진천 농다리 구경하고 귀경했다.

 

▶천호산 개태사 사진 보기: [논산] 호국종찰 천호산 개태사 (23.05.31)

 

6.답사 경비 (2인, 경차)

①식대: 82,000

-30일 아침: 16,000 / 점심: 24,000 / 저녁: 24,000

-31일 아침: 7,000 / 점심: 11,000

②고속도로 통행료: 약 11,000원

③주유비: 약 80,000원

④입장료: 20,000

⑤숙박비: 50,000

⑥간식비: 30,000

⑦합계: 27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