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근대 유산, 그 기억과 향유
1.저자: 이광표
2.출판사: 현암사
3.독서기간: 2022년 5월 18일(수)부터 5월 28일(토)까지
4.이 책을 읽게 된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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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책, 저자 소개
이 책은 일반적인 문화유산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근대 유산만의 특징은 무엇인지, 우리는 지금 근대 유산을 어떻게 기억하고 향유하고 있는지, 또한 앞으로 근대 유산의 보존과 활용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진지하게 성찰한다.
1부 ‘근대 유산과 기억의 방식’에서는 구체적으로 옛 서울역(문화역 서울 284)을 예로 들어 우리가 옛 서울역을 지금처럼 활용하는 방식이 과연 적절한지, 옛 서울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물으면서 근대 유산을 새로운 시각으로 깊이 있게 볼 수 있게 해준다. 근대 유산은 과거이면서 현재이다. 과거의 연속이면서 거기에 새로운 변화가 축적된다. 현재와 연결되어 있고 현재의 사람들이 행위에 참여한다. 그것은 지금의 나, 우리와 연결되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 유산은 그 어떤 문화유산보다도 이 시대 대중들의 수용과 인식의 문제가 더욱 중요해진다. 그 점에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2부 ‘근대를 걷는다’에서는 이 같은 관점과 문제의식을 토대로, 우리가 잘 알지 못했거나 잘 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잘 몰랐던 근대 유산의 다양한 현장들을 직접 찾아가 소개하고 역사적 맥락과 의미를 되짚어본다. 일제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하던 옛 궁궐과 왕릉, 수난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옛 서울역, 우리와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극장, 빵집, 서점 등의 장소들, 산업화 시대의 공장과 굴뚝, 궁핍한 시대 속에서도 피어났던 예술혼과 가려졌던 이야기, 수탈의 아픔이 새겨진 철길과 역사, 추억의 애잔함이 묻어나는 우체국, 사연이 숨어 있는 곳곳의 건물들, 도처에 산재한 애환 가득한 생활의 흔적 등 오늘의 우리와 직접 맞닿아 있는 근대의 역사, 그 역사의 현장성을 생생히 느끼면서 근대 유산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저자 : 이광표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공부한 뒤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석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화유산학 협동과정(박사)을 졸업했다. 1993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오랜 시간을 문화부에서 문화재 담당 기자로 일했으며 정책사회부장, 오피니언팀장, 논설위원을 지냈다. 동국대학교, 국민대학교, 동덕여자대학교 등에서 문화재학, 박물관ㆍ미술관학, 한국미술사를 강의했고 현재는 서원대학교 휴머니티교양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을 맡고 있기도 하다. 저서로 『명작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문화재 가치의 재발견』, 『그림에 나를 담다』, 『명품의 탄생』, 『손 안의 박물관』 등이 있다.
6.책 속으로
문화재보호법상 국가(또는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문화재는 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로 나뉜다. 지정문화재 제도는 국가가 특정 대상을 국가 문화재로 지정해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과 함께 도입되었다. 여기에는 국보, 보물,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국가무형문화재, 국가민속문화재 등이 포함되며 통상 생성된 지 100년 이상 된 것을 대상으로 한다.
그럼, 등록문화재는 무슨 의미이며 지정문화재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우선, ‘등록’은 ‘지정’보다 유연한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등록문화재는 근대기에 생성된 문화유산, 즉 근대 유산을 대상으로 한다. 생성된 지 100년이 되지 않아 지금 당장 지정문화재가 될 수는 없지만, 100년이 지나면 지정문화재가 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한 근대 유산을 문화재로 지정하기에 앞서 일단 문화재로 등록해 관리하자는 것이 바로 등록문화재 제도의 취지라고 할 수 있다.
등록문화재 제도는 2001년 도입되었다. 100년이 되지 않은 건축물이나 물건, 예술품 등과 같은 근대 유산들이 사라지거나 훼손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자 그 보존 대책의 일환으로 등록문화재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 p.36
근대 유산은 과거이면서 현재이다. 과거의 연속이면서 거기에 새로운 변화가 축적된다. 현재와 연결되어 있고 현재의 사람들이 행위에 참여한다. 따라서 그 의미와 가치, 평가와 해석 등이 모두 변할 수 있다. 평가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다. 이는 또한 해석과 평가에 있어 여전히 논란이 있을 수 있고 주관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근대 유산은 완결된 것이 아니라 늘 변화하고 진행 중이다. 지금의 나, 우리와 연결되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 유산은 그 어떤 문화유산보다도 이 시대 대중들의 수용과 인식의 문제가 더욱 중요해진다.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관점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 p.40
고종에게 대한제국은 근대로 가는 과정이었다. 조선의 위상을 회복하고 자주권을 되살리기 위한 열망이었다. 살아서 대한제국을 잃었지만 죽어서 황제릉이 조성되었으니 어쩌면 그 열망이 이뤄진 것일까. 아니다. 유릉에 이르러 근대의 꿈은 무너졌다. 일본인들이 만든 석물은 근대 조각이기에 앞서 조선의 전통과 왕실에 대한 훼철이었기 때문이다. 고즈넉한 홍릉과 유릉. 초입에서 두 줄로 도열해 사람을 맞아주는 석물들. 언뜻 보면 당당하지만 그 내력을 생각하면 마음이 쓸쓸해진다.
--- p.97
나혜석은 수덕여관을 떠나 여기저기 전전하다 1948년 행려병자로 삶을 마감했고 김일엽은 1971년 수덕사에서 입적했다. 이응노의 첫 번째 부인 박귀희는 홀로 수덕여관을 지키다 2001년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일까. 수덕여관에 가면 참 쓸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수덕여관 곳곳의 각종 설명문은 이응노 중심으로 되어 있다. 나혜석, 김일엽, 박귀희의 흔적이 누락된 것이다. 힘겨운 시대를 헤쳐갔던 세 여성에게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 이들을 빼놓고 수덕여관을 제대로 기억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 p.201
유상규는 안창호를 스승이자 아버지로 모셨고 안창호는 그를 특히 아꼈다. 안창호는 끝내 그 사랑스러운 제자 곁에 묻혔다. (……) 하지만 지금 그곳에 안창호는 없다. 유상규의 무덤 옆에 안창호의 묘는 온데간데없고 흔적을 알리는 묘지석(墓址石)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1973년 박정희 정부가 서울 강남에 도산공원(島山公園)을 조성하면서 안창호의 묘를 옮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창호와 유상규를 떼어놓는 일이 어떻게 벌어진 것일까. 그때는 도산이 ‘유상규 옆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사실조차 모르던 시절이었다. 도산을 좀 더 잘 추모하자는 취지였지만 결과적으로 도산의 뜻을 저버린 꼴이 되었다. (……) 망우묘지공원의 유상규 묘 앞에 서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안창호의 영혼이 도산공원을 빠져나와 이곳에서 제자 곁을 떠도는 것은 아닌지.
--- p.252
독립기념관은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부재들을 어떻게 전시할까 고민한 끝에, 땅을 5미터 정도 파고 들어가 계단식 원형으로 공간을 만든 뒤 그 한가운데 첨탑을 전시하기로 했다. 첨탑을 지표면 아래에 배치해 위에서 내려다보는 방식이다. 다른 부재들은 첨탑 주변으로 흩뜨려 배치했다. 흩어져 있는 화강암 부재 하나하나엔 지난날의 상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첨탑을 내려다보도록 한 것은 상징적이다. 늘 고개를 들어 위로 올려보았던 총독부 건물의 중앙 돔 첨탑. 그걸 이제 우리가 내려다본다. 내려다본다는 것, 그건 일제 잔재 청산과 극복을 의미한다. 또한 상처에 대한 해원(解寃)이기도 하다. --- p.244
[예스24 제공]
6.읽고 나서
새로운 근대 유산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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