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서울경기의 산

인왕산과 북악산 이야기

약초2 2012. 9. 5. 20:29

1026번째 산행이야기

인왕산 4번째, 북악산 3번째 이야기

 

No.380 인왕산(仁王山 338.2m)

-위치: 서울시 서대문구(홍제동), 종로구(부암동, 청운동, 효자동, 무악동)

-정상: 삼각점(서울 467, 1994 복구), 오석의 사각 종로구 경계점(종로구 옥인동 산3-39번지)표시판, 감시초소, 서울성곽, 조망 좋음.

-특기: 4번째 답사(①2002.02.13 ②2007.04.22 ③2009.12.12 ④2012.09.01)

 

No.739 북악산(北岳山 342.5m) 일명 백악산(白岳山)

-위치: 서울시 종로구(부암동, 청운동, 삼청동), 성북구(성북동)

-정상: 정상석(白岳山), 표지석(북악산 옛 모습으로 복원), 조망 좋음.

-특기: 3번째 답사(①2007.04.22 ②2009.12.12 ③2012.09.01)

 

1.산행날짜: 2012년 9월 1일(토)

2.산행날씨: 맑음

3.참가인원: 2명

4.산행코스: 독립문역→국사당→인왕산→창의문→북악산→숙정문→와룡공원→서울과학고→혜화역

 

5.산행시간

-10:50 독립문역 착 / -10:55 발(산행시작)

-11:10 국사당

-12:23 인왕산 정상(삼각점[서울 467, 1994 복구], 오석의 사각 종로구 경계점(종로구 옥인동 산3-39번지)표시판, 감시초소, 서울성곽, 조망 좋음)

-14:12 창의문

-14:15 창의문안내소

-15:17 1.21사태 소나무

-15:21 청운대(293m)

-16:16 말바위안내소

-16:32 군부대 앞

-17:06 서울과학고 앞(산행종료)

 

※ 총 산행시간 : 6시간 11분. 쉬엄쉬엄 점심시간, 휴식시간 포함.

 

 

 인왕산 인왕사 일주문

 

 국사당

 

국사당

 

 국사당에서 바라본 선바위

 

 해골바위

 

 해골바위

 

 해골바위

 

 인왕산 서울성곽

 

 인왕산

 

 인왕산

 

 인왕산

 

이정표

 

 종로구 경계점

 

 인왕산 정상 가는 길

 

인왕산 정상 가는 길에 되돌아 본 모습

 

 역시 같은 장소

 

 이정표

 

 인왕산 정상

 

인왕산 정상에 세워진 종로구 경계점 표시석

 

역시 같은 것

 

바위 위에 자리 잡은 인왕산 삼각점

 

인왕산 삼각점

 

 인왕산 정상

 

◆ 인왕산(仁王山)에 대하여

 

▶ 위치 : 서울시 서대문구(홍제동), 종로구(부암동, 청운동, 효자동, 무악동)

 

1. 발자취

 

조선시대 태조와 세종 때는 주산(主山)인 북악의 서쪽에 있다하여 서봉(西峰) 또는 서산(西山)이라고 불렀는데, '광해군일기'에는 "인왕(仁王)은 부처님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부처님이시다. 이 산에 옛날 인왕사(仁王寺)가 있었기에 인왕산이라고 불리었다."고 하였듯이, 인왕산은 이 산에 인왕사가 있어 붙여진 산 이름이다. 인왕이 불법(佛法)의 수호신인 것을 보면 인왕산은 불교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산으로 세종의 내불당(內佛堂)이 이곳에 있었고, 인왕사 서쪽에 금강굴이 있었으며, 세조 때는 복세암(福世庵)을 짓기도 하였다.

 

인왕산은 한양이 도읍으로 정해지면서 주산인 북악의 서쪽에 있어 우백호(右白虎)에 해당함으로써 주목받았으며, 따라서 도성은 쌓을 때 인왕산 능선을 따라 서쪽 성곽이 축조되었다. 그러나 일제시대와 광복 후 성곽 파손이 계속되어 겨우 일부만 남았던 것을 서울시가 1975년부터 도성복원사업을 벌여 인왕산 청운지구(돈의문 북쪽-창의문)의 성곽이 복원되기에 이르렀다.

인왕산 골짜기는 인왕동이라고 불렀는데 경치가 빼어나 조선 후기의 뛰어난 화가였던 겸제 정선은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로, 강희언은 '인왕산도'로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여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대표작으로 남기었다.

 

1993년에 이르러 20여 년간 안보상의 이유로 출입이 통제되었던 인왕산이 새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자유로운 등산과 암벽 등반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하루 2천여 명의 등산객이 이용하는 시민공원이 되었다.

 

2. 자연생태

 

인왕산은 높이가 338.2m이며 화강암으로 이루어져있고 암반이 유난히 노출된 것이 특징이다. 그러므로 경복궁의 내사산(內四山)인 북악산이나 남산 그리고 낙산에 비해 높고 우람한 남성적인 산세이다.

 

인왕산에는 실제의 사물과 닮은 기묘한 괴석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그 중에서도 장삼을 입은 스님과 흡사한 선바위, 둥근 모자 모양을 하고 있는 모자바위, 돼지가 코를 들고 있는 듯한 돼지바위, 달팽이가 기어가는 모양의 달팽이바위, 기관차가 객차를 끌고 가는 모양의 기차바위, 사람의 두개골과 흡사한 해골바위, 코끼리의 긴 코 같은 코끼리바위,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듯한 범바위 등이 있고 무엇보다 보는 이를 숙연하게 하는 것은 중종과 폐비 단경왕후 신씨와의 애틋한 전설이 있는 치마바위가 있다.

 

바위산이라 중턱 이상에는 수목이 별로 없으나 옥인동 골짜기와 그 위 등성이에는 때죽나무, 국수나무, 팥배나무, 소나무, 상수리나무, 좀작살나무, 아까시나무, 산초나무, 가죽나무, 싸리나무 등이 크거니 작거니 오밀조밀 들어차 있고 홍제동 뒷산에는 소나무 숲이 울창하다. 무악동에서 성곽을 따라 올라가는 등산로에는 사철쑥, 쑥, 고들빼기, 씀바귀, 이고들빼기, 감국 산국, 솔새, 억새 돼지풀, 쑥부쟁이, 구절초, 양지꽃, 제비꽃, 꽃두서니 등 다양한 풀과 야생화들이 계절 따라 저마다 자태를 뽐내고 있다.

 

3. 경승과 명소

 

1) 청풍계(淸風溪)

 

인왕산 동쪽 기슭은 현재 백운동과 청하동이 합쳐서 청운동이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백운동 아래 곧 청운초등학교 뒷길 일대를 청하동이라 했고, 그 중에서도 지금의 청운동 5번지 일대를 청풍계라 하였다.

 

지금은 길이 되어 있지만 청풍계란 이름이 말하듯이 복개 전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었다. 청풍계는 인조 때 재상 김상용의 집터(청운동 52-58호)로 그 집 이름을 늠연당(凜然堂)이라 하고 와유암(臥遊庵)은 그가 순국하기 이전 취미로 그림과 서적을 좌우에 펴놓고 즐기던 서재였다. 이 곳 시냇물 위 바위에 '大明日月 百世淸風'이라는 암각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현재는 '百世淸風' 4자만 남아있다. 이 암각글자는 우암 송시열의 글씨이며, 그 자리가 바로 회심대(會心臺)의 위가 되는 일명 천유대(天遊臺) 혹은 청풍대(淸風臺)였다. 이 청풍계는 서울 성안의 5대 경승의 하나인 백운동 계곡으로, 그 골 안이 깊고 그윽하며 수석이 아늑하고 아름다워서 놀며 즐길 만하였다.

 

김상용의 후손들이 근처에 대를 이어 살아서 이들을 장동 김씨(壯洞金氏) 혹은 창의동 김씨(彰義洞金氏)라 하였으며, 이들이 조선후기 60년 외척 세도정치의 주역이었다. 따라서 순조와 익종이 봄날에 이 곳 청풍계에 들르기도 하였다.

 

2) 송석원(松石園)

 

인왕산 동쪽 기슭 지금의 옥인동 47번지 일대는 서울 장안의 5대 경승 가운데 하나인 인왕동 부근으로, 광복 이후로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앉아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일찍이 옥류동이라 하였다. 순조 이후에는 송석원으로 더 알려졌던 경치 좋은 골짜기였다. 송석원은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져 있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고 바위에 김정희의 글씨로 '松石園'과 송시열 글씨로 '玉流洞'이 새겨져 있었으나 지금은 자취조차 남아 있지 않다.

 

이 일대는 세도가의 별장지로 일찍이 김상헌의 손자 김수항의 별장 청휘각이 있었고, 민태호의 사조정과 옥정실이 있었다. 또 송석원 도인 천수경과 같은 청빈한 평민도 옥류천 위에 초가집을 짓고 독서를 즐기고 시문으로 교유하면서 살았기에 오히려 송석원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더 알려졌다.

 

한편 송석원은 조선 순종의 비 순정효황후의 숙부로 조선왕조 옥새를 강탈하여 일제에게 넘긴 윤덕영의 별장으로도 유명하였다.

 

3) 필운대(弼雲臺)

 

『필운대는 인왕산 남쪽 기슭 배화여고가 있는 곳으로 선조 때 정승인 이항복의 집터이다. 『한경지략』명승조에, 필운대는 인왕산 아래에 있는데 이오성(李鰲城)이 젊은 시절에 필운대 아래에 있는 권도원수(權都元帥) 집에 붙어서 살았기에 스스로 호를 필운이라 하였다. 지금 바위 벽에 '弼雲臺' 석 자가 새겨져 있는데 오성의 글씨라고 한다. 필운대 옆의 여염집에서 여러 가지 꽃나무를 가꾸어 서울 사람들이 봄철에 꽃구경을 나설라치면 먼저 이곳을 손꼽았다. 사람들이 술을 차고 매일같이 모여들어 시를 읊었는데 그 시를 속칭 '필운대 풍월'이라 하였다. 또 대 옆에 육각현(六角峴)이 있다. 바로 인왕산 기슭이어서 필운대와 더불어 유명하다.』고 하였듯이 필운대는 19세기까지 손꼽히던 명소였다.

 

건물들이 들어서기 전 필운대 암각글씨가 있는 바로 앞의 평평한 바위에 오르면 인왕산을 등지고 왼편으로 눈앞 가까이 우뚝한 북악이 보이고, 그 두 산 사이로 저 멀리 북한산의 비봉 · 문수봉 · 보현봉과 백운대까지 바라다 보였다. 몸을 돌리면 서울 시내 남산이 발아래이고 다시 남으로는 동서로 굽이쳐 흐르는 한강이 전망되었다.

 

지금도 배화여고 교사 아래 벼랑바위 벽에 '弼雲臺'라 새긴 암각글자가 뚜렷하게 남아 있고, 오른편 암벽에는 이항복의 9세손 이유원이 1873년에 조상을 그리며 읊은 한시(漢詩)가 새겨져 있다.

 

4) 백호정약수(白虎亭藥水) 터

 

인왕산 남동쪽 기슭 누상동의 백호정은 누각골의 막바지에 있었던 서촌 5사정(射亭)의 한 곳이다. 이곳에 있는 '白虎亭'이라는 각자는 숙종 때 명필가 엄한명이 바위에 새긴 글씨다. 백호정약수터는 인왕산에 호랑이가 많던 시절에 병든 흰 호랑이가 수풀 속에서 물을 마신 후 곧 병이 나아서 활동하는 것을 보고 주민들이 그 자리에 가보니 조그마한 샘이 있어 이 곳을 약수터로 이용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현재는 '白虎亭'이라 새겨진 돌기둥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4.주요이용시설

 

인왕산에 오르는 등산길로는 크게 8개의 들머리가 있다. 먼저 남릉지역의 사직동 들머리로 사직공원 에서 황학정을 오른쪽으로 돌아 인왕산길을 거쳐 무악동으로 넘어가는 도로 중간에서 인왕산 능선을 타고 가는 길로, 돼지바위 · 달팽이바위 · 범바위를 거쳐 정상에 이른다. 그리고 동쪽의 누상동 · 옥인동 · 청운동 들머리는 모두 인왕산길에서 왼쪽으로 나있는 등산길을 이용하게 되는데 석문-쉼바위-인왕천약수-해골바위를 거쳐 능선으로 오르는 길과, 만수천약수와 버드나무약수터에서 성곽 쪽으로 오르는 길, 청운약수터에서 자하문 근처 성곽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무악동 들머리로 국사당-선바위약수터-돼지바위를 거쳐 능선에 오르는 길과 홍제4동 인왕궁아파트 뒤에서 옥룡천약수터를 거쳐 능선에 오르는 길, 북릉의 홍제3동 문화촌아파트 뒤에서 홍심약수터와 성덕사를 거쳐 기차바위를 지나 책바위 위에서 성곽과 만나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있으며, 부암동사무소 뒤에서 부암약수터를 지나 능선을 따라 정상에 오르는 길이 있다. 그 이외에 홍제3동 배수지 뒤로 용천수를 지나 오르는 길과 자하문고개에서 오르는 길, 옛 서울여상 뒤에서 오르는 길 등 모두 13개 들머리가 있으나 다른 길들과 곧 만나게 된다.

 

인왕산 등산길은 청와대 앞길과 더불어 1968년에 통행제한 조치 이후 1993년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25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인왕산 등산로를 앞의 13개 들머리를 총괄하여 크게 두개의 종주코스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홍은동 홍지문에서 무악동에 이르는 총 3km 등산로이고, 또 하나는 자하문터널 끝에서 인왕산 정상까지 연결되는 총 2.5km 코스로 도보로 정상까지 50분 정도 소요된다.

 

한편 인왕산 동쪽 모든 등산로의 들머리가 되는 산중턱 위 인왕산길은 종로구 사직동에서 누상동 · 옥인동을 거쳐 청운동의 창의문으로 이어지는 인왕산 중턱길을 말한다. 폭 12∼15m, 연장 2,300m의 이 길은 북악로 또는 속칭 인왕스카이웨이, 북악스카이웨이(10km)로 불리다가 1984년 11월에 자하문을 중심으로 '북악산길'과 '인왕산길'로 나누어 이름을 붙였다. 이 길은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 침입 이후 수도권 경비와 산책로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다.

 

5. 사적과 문화재

 

1) 사직단(社稷壇)

 

인왕산 남동 기슭에 있는 종로구 사직동 사직공원에 가면 먼저 고색창연한 정면 3칸의 사직단 정문을 만나고, 이어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는 3칸의 북문을 들어서면 2기의 단을 볼 수 있다. 그 왼쪽 단(동쪽)이 나라의 국토신을 모시는 사단(社壇)이고, 오른쪽(서쪽)의 단이 오곡신을 모시는 직단(稷壇)인데, 이를 통틀어 사직단이라 한다.

 

나라의 제사로 사직이 모셔진 것은 삼국시대부터이며 조선시대 사직제도는 고려 성종 때 정비된 제도를 계승한 것이다. 조선 태조는 1394년 한양으로 천도하고 고대 동양의 옛 도읍지 건설의 정형을 제시한 주례(周禮), 동관(冬官) 고공기(考工記)에 의해 남쪽을 향한 궁궐을 중심으로 좌묘우사(左廟右社)의 배치로, 좌측 동부 연화방(蓮花坊)에 종묘를, 우측 서부 인달방(仁達坊)에 사직단을 설치하였다. 천도 이듬해인 1395년 1월 29일에 사직단 축조공사를 시작하여 2월 27일에 완성을 보았다.

 

그 후 임진왜란 때 폐허가 되었다가 광해군 원년(1608)에 복구되었다. 광무 1년(1897)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에 오르면서 사단과 직단은 태사단(太社壇), 태직단(太稷壇)으로 높여졌다. 그러나 일제강점으로 1922년 사직단을 중심으로 약 66,619평이 사직공원으로 탈바꿈되어, 1940년 3월 조선총독부고시 제208호 '경성시가지계획공원 제35호'에 따라 정식으로 도시공원이 되었다. 또한 1960년대 도시계획으로 신문(神門)이 뒤로 14m 들어가 그 면적이 더욱 축소되는 등 황폐된 것을 1988년에 고증 발굴하여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공원의 현재 면적은 16만 8,000㎡이며, 현존하는 사직단은 18.4평만이 사적 제121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고, 사직공원 입구의 사직단 정문은 보물 제177호로 지정되어 있다. 공원 안 북쪽에는 단군성전이 있으며, 그 뒤쪽으로 궁술연마장인 황학정(黃鶴亭)이 있다. 황학정(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5호)은 서촌 5사정 중의 하나인 필운동 등과정(登科亭)의 터이다. 원래 이 황학정은 고종 광무 2년(1898) 어명에 의하여 경희궁 내 왕비가 거처하던 회상전 북쪽에 지었던 것을 1922년 일제에 의해 경희궁이 헐리고 궁내 건물들이 일반에게 불하될 때 사직공원 북쪽인 등과정 옛터에 옮겨졌다.

 

2) 도성(都城)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어 있는 도성은 1396년 1월 9일부터 2월 28일까지, 8월 6일부터 9월 24일까지 두 차례 농한기를 이용하여 197,400명에 달하는 각 지방 백성들을 동원하여 축성하였다. 이 때 축성공사는 600척을 1구로 정하여 백악 동쪽에서 천자문의 천(天)자에서 시작하여 낙산 · 남산 · 인왕산을 거쳐 백악 서쪽에 이르러 조(弔)자로 마쳤다. 따라서 인왕산 지역에 해당하는 도성 서북지역은 사(師)자에서 조(弔)자에 이르는 24구간으로 돈의문에서 창의문을 거쳐 백악 정상까지의 구간에 해당되었다.

 

그 후 세종년간에 토성 부분을 모두 석성으로 개축할 때 남산 잠두봉에서 인왕산 사이를 석축으로 고쳐 쌓았다. 아울러 인왕산 상봉 못 미쳐 사직공원 쪽에 있는 성을 곡성(曲城) 혹은 굽은성이라 부르는데 세종 4년(1422)에 축성된 것이다. 지형에 따라 쌓아 세 번이나 굽어 있으므로 굽은성이라 불렸다. 현재 군부대가 주둔해 있어 일반인은 접근하기 어려운 반면,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그 후 숙종년간에 서울 도성이 다시 수축되었고, 1961년에 창의문 좌측의 성곽을 보수하고, 1972년에 인왕산 북쪽 방면 석축을 보수하는 등 부분적인 보수공사가 있었다. 1975년에 도성복원계획 아래 인왕산 지역은 청운지구(돈의문 북쪽∼창의문)로 구획되어 복원공사가 진행되었다.

 

인왕산 지역과 북악을 잇는 고개에는 도성 4소문 가운데 하나인 창의문이 있는데 성문 가운데 유일하게 조선 초기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어 그 문화재적가치가 더욱 높다. 창의문은 실질적인 도성의 북문 역할을 하였으며 1623년 인조반정 때 반정군이 진입한 문이기도 하다.

 

3) 무계정사(武溪精舍)

 

인왕산 북쪽 기슭 창의문 밖 부암동 329-4번지는 세종대왕의 셋째 왕자 안평대군의 정자였던 무계정사 터(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호)로 암벽에 횡으로 '武溪洞'이란 암각이 있다. 안평대군이 몽유도원도로 그려진 도원에서 노니는 꿈을 꾼 뒤 그 곳과 같은 자리를 찾았다. 이곳에 정자를 세우고 무계정사라 이름 붙이고 글을 읊으며 활을 쏘았던 장소로 현재는 그 터만 남아 있다. 무계정사를 짓기 전에는 효령대군의 집터였으며 무계정사는 안평대군의 호를 따서 비해당(匪解堂)이라고도 불렀다.

 

4) 석파정(石坡亭)

 

인왕산 북쪽 기슭 창의문 밖 부암동고개 종로구 부암동 316-1번지에 위치한 석파정(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호)은 조선 말기의 대표적인 별장이다. 당초에 철종 때 영의정 김흥근의 별장이었는데 흥선대원군이 집권한 후 그의 소유가 되었다.

 

건물의 뒷바위 앞면에 '三溪洞'이란 각자가 있어 '삼계동정자'라 하다가, 흥선대원군의 별장이 된 후 앞산이 모두 바위여서 대원군이 자신의 아호를 '석파'라 하고 정자 이름을 석파정이라 하였다.

 

6·25전쟁 직후 한때 천주교 경영의 콜롬바고아원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던 석파정 경내에는 수백년된 노송이 차일을 친 듯 서 있고, 그 밑에 연자방아 등으로 조경하여 운치를 더하고 있다. 또한 부근의 계곡에는 못을 꾸미고 장대석으로 누대를 만들어 그 위에 정자를 세웠다.

 

그리고 석파정 여러 집채 중 사랑채도 있었으나 서예가 손재형(孫在馨)이 1958년 종로구 홍지동 125번지에 고가옥을 옮겨 지을 때 뒷뜰 바위 위로 옮겼으며,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호 '대원군별장'으로 별도 지정되었다.

 

5) 선바위

 

선바위(서울특별시 중요민속자료 제4호)는 인왕산 서쪽 기슭에 있는 두 개의 거석이다. 형상이 마치 중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 같아서 '선(禪)'자를 따서 선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또 조선 태조와 무학대사의 상이라는 전설, 또는 이성계 부부의 상이라는 전설도 있다.

 

자식 없는 사람이 이 바위에 빌면 효험이 크다고 하여 정성을 드린다. 작은 돌을 붙이면 효험이 더욱 크다고 하여 작은 돌을 문질러서 붙인 자국이 많이 남아 있다. 이를 '붙임'이라 하며, 이러한 바위를 '붙임바위(付巖)'라고도 한다. 일제가 남산에 있던 국사당(國師堂)을 선바위 곁으로 옮기게 한 뒤로 선바위에 대한 신앙은 무속신앙과 더욱 밀착되었다. 국사당은 무신당으로서 굿을 행하는 곳이니 바로 옆에 있는 선바위와 복합적으로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6) 국사당(國師堂)

 

국사당(서울특별시 중요민속자료 제28호)은 서울을 수호하는 신당으로 현재 종로구 무악동 인왕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원래는 남산 정상에 목멱신사로 있었다. 태조 5년 남산을 목멱대왕으로 봉하여 호국의 신으로 삼아, 개인적인 제사를 금하고 국가의 공식행사로 기우제와 기청제를 지냈으며 매년 봄 · 가을로 초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조선 말기에는 이미 국가적인 제사를 지내는 일이 없었고, 다만 별궁의 나인들이 치성 드리러 오거나 또는 개성 덕물산(德物山)에 치성 드리러 가는 사람들이 먼저 이 당을 거쳐 가고는 하였다고 한다. 고종 때 명성왕후가 궁중 나인들을 시켜 국사당에 치성을 드리게 하였다는 사실은 궁중 발기(撥記)의 기록으로도 뒷받침된다.

 

국사당은 1925년 남산에서 현 위치로 이전되었는데, 이것은 일본인들이 남산 기슭에 신사인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더 높은 곳에 국사당이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전을 강요하였기 때문이다. 이전 장소를 인왕산 기슭으로 택한 것은 그곳이 태조와 무학대사가 기도하던 자리이기 때문이라고 하며, 국사당이라는 명칭도 무학대사를 모시는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전할 때 그 재료를 그대로 옮겨 원형대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국사당 안에는 서울특별시 중요민속자료 제17호로 지정된 무신도(巫神圖) 21점과 명두 7점이 있다.

 

 인왕산 정상에서 창의문 쪽으로 가려면 되짚어 내려와야 한다.

 

 복원된 서울성곽

 

 인왕산

 

 기차바위 갈림길

 

 기차바위 갈림길에 세워진 이정표

 

 서울성곽을 걸으며

 

 인왕산 등산 안내도

 

 서울성곽 인왕산 부근

 

이제 인왕산 산행을 마치고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나온다.

 

 

인왕산 지도(빨간선이 답사한 구간이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 표지석

 

 서시 표지석

 

 북악산

 

 북악산을 배경으로

 

 장안연우에 대한 설명 안내문

 

 사진 부분 만 확대한 사진

 

 윤동주 시인의 언덕

 

 인왕산 등산로

 

 창의문 앞

 

최규식 경무관 동상

 

 청계천 발원지 표지석

 

 서울성곽길 안내도

 

서울 성곽길

 

도성 북쪽의 백악과 서쪽의 인왕산의 능선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서울 도성의 북쪽 문인 창의문과

그 아래 펼쳐진 계곡을 그린 그림이다. 정선 작품

 

창의문

 

 서울 성곽길 안내문

 

 이정표

 

 창의문 설명 안내판

 

 안내판

 

 

수선전도

 

 

 

 창의문

 

 창의문

 

 창의문 안내소로 올라가는 길

 

◆ 북악산 서울성곽 탐방 안내

 

개방구간

-1코스: 말바위안내소 - 숙정문 - 백악마루 - 창의문안내소 (2.2km)

-2코스: 숙정문안내소 - 숙정문 - 백악마루 - 창의문안내소 (2.3km)

-3코스: 창의문안내소 - 백악마루 - 숙정문 - 말바위안내소 (2.2km)

 

입장시간

-하절기(4월~10월): 09:00~15:00

-동절기(11월~3월): 10:00~15:00

※휴관일: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화요일 휴관)

탐방시간: 2시간 내외 소요.

 

신청방법

-현장 개별신청: 신분증 지참 후, 현장에서 출입신청서 작성 후 제출

-사전 단체신청: 30명 이상 단체일 경우 홈페이지에서 신청서 작성 후 접수(신분증 지참)

 

필요 신분증

-내국인: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 중 하나

-외국인: 여권, 외국인등록증.

 

해설 프로그램 운영

-출발시간: 4~10월(오전 10시, 오후 2시) / 11~3월(오전 10시30분, 오후 2시)

-출발장소: 말바위안내소, 창의문안내소.

 

탐방시 주의사항

-탐방객은 불필요품(인화물질 등)의 소지와 사용을 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탐방로 전 구간은 금연, 금주 및 취사 금지 구역입니다.

-사진 촬영은 지정된 장소에서 만 가능합니다.

(허용지역: 숙정문, 촛대바위, 백악마루, 1.21사태 소나무, 백악쉼터, 돌고래쉼터)

 

▶ 오시는 길

말바위 안내소

1.지하철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로 나옴

-지선(초록)버스로 종로 02번 탑승하여 성균관대 후문에서 하차 후 걸어서 10분 와룡공원 도착(와룡공원에서 서울성곽 따라 걸어서 20분)

 

2.지하철 4호선 혜화역 1번 출구로 나옴

-지선(초록)버스 종로 08번 탑승하여 종점(명륜3가)에서 하차 후 걸어서 10분 와룡공원 도착(와룡공원에서 서울성곽 따라 걸어서 20분)

 

숙정문 안내소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옴.

-지선버스 1111번, 2112번 탑승하여 종점(명수학교)에서 하차 후 걸어서 10분.

 

창의문 안내소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옴.

-지선(초록)버스 7212번, 1020번, 7022번 탑승하여 자하문 고개에서 하차 후 2분.

 

탐방문의

-말바위안내소 02-765-0297~8

-숙정문안내소 02-747-2152~3

-창의문안내소 02-730-9924~5

 

 창의문 안내소에서 표찰을 받고 출입

 

 북악의 식생

 

 지도

 

북악산(백악마루. 백악산)

 

 북악산 옛 모습으로 복원 표지석

 

 북악산 정상에서

 

 북악산 정상

 

북악산 정상 바로 아래 벤치에서

 

 1.21 사태 소나무에 대한 설명 안내판

 

 1.21 사태 소나무

 

 청운대

북악산 서울 성곽 내에서 가장 조망권이 좋은 곳으로 남으로는 경복궁과 세종로, 북으로는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를 볼 수 있고,

성곽의 외곽 부분도 관람할 수 있는 곳이다.

 

 숙정문

 

숙정문 설명문

 

 서울성곽(혜화문)으로 가려면 와룡공원 쪽으로 가야 한다.

 

 조망데크

 

 말바위 안내소로 올라가는 계단 모습

 

 북악산 서울성곽 탐방 안내문

 

 서울성곽길 화살표

 

말바위 쉼터에 세워진 지도

 

 서울 성곽

 

 북악하늘길

 

 북악하늘길

 

 군부대 옆

 

 서울과학고 근처 서울 성곽이 단절된 곳

 

 서울과학고 근처

 

서울과학고~혜화문 사이의 지도

 

 

북악산 서울성곽 개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