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지정명산

지리산 삼신봉, 내삼신봉이야기. 그리고 과외이야기

약초2 2011. 10. 18. 12:24

 지리산 삼신봉, 내삼신봉 이야기

 

1.산행날짜: 2011년 10월 15일(토)~16일(일)

2.참석인원: 새싹산악회 805회 정기산행 39명

3.산행날씨: 맑고 청명함

 

4.산행코스

-산악회: 거림→세석대피소→남부능선→삼신봉→내삼신봉→상불재→삼성궁

-글쓴이: 청학동→갓걸이재→삼신봉→내삼신봉→상불재→불일폭포우측능선→내원골 마지막민가→쌍계사→불일폭포중간지점에서 포기→택시로 이동하여 최참판댁 구경→택시로 이동하여 삼성궁 구경

 

5.산행시간

-03:08 거림소형주차장 착

-03:10~03:30 아침식사

-04:00 A팀(거림→세석대피소→남부능선→삼신봉→내삼신봉→상불재→삼성궁) 산행시작

-04:20 청학동 도착

-04:22 산행시작

-05:20 갓걸이재

-05:40 삼신봉

-06:08 내삼신봉 착 / -06:40 발

-07:27~07:36 독바위갈림길에서 휴식

-07:56 상불재(이정표 있음) 착 / -08:00 발

-08:21 삼거리안부

-09:20 내원골 마지막 민가

-09:50~11:10 쌍계사 구경

-11:40~12:20 최참판댁 구경

-13:10~14:00 삼성궁 구경

-14:20 주차장 착 / -16:05 발

-20:40 강동역 착

 

산행개념도

 

6.산행후기

성제봉 대신 불일폭포 양쪽 능선의 엄청난 협곡을 구경하다!

글쓴이가 소속된 산악회에서 지리산 남부능선 단풍산행을 한다기에 글쓴이는 예전에 답사한 적이 있어서 남부능선(영신봉~삼신봉) 대신 삼신봉~내삼신봉~성제봉~고소성~평사리 코스를 산행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상불재에서 그만 아무 생각없이 진행하다가 쌍계사로 하산하게 되었다.

 

토요일, 천둥치고 벼락치고 비가 많이 내려 혹시나(참석하겠다는 사람들이 불참할까봐) 했지만, 염려는 기우였다. 39명의 회원님들을 모신 산악회 버스는 휴게소에서 두 번 쉬고 산행들머리인 거림의 소형주차장에 3시 8분에 도착했다.

아침식사를 하고는 4시에 A팀들은 산행을 시작했다. 글쓴이는 성제봉코스를 답사 하기위해 배창랑님을 포함하여 동행 3사람, 총무님, 이렇게 5명은 청학동으로 이동을 했다.

 

1014번도로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묵계초교앞에서 배창랑님의 일행분과 헤어진 후 청학동으로 들어갔다. 배창랑님은 묵계초교~시루봉~거사봉 코스를 답사한다고 한다.

청학동 버스종점에서 마지막으로 기사님과 작별한 후 곧바로 산행에 들어갔다(04:22분).

 

실로 오래간만의 야간산행이다. 야간산행 해본지도 언제였는지 까마득하여 기억도 나질 않는다.

산행시작하고 조금 올라가니 탐방안내소가 나온다. 이정표에는 삼신봉까지 2.5km라고 쓰여 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데 아예 찍히지가 않는다.

「에그, 이번에 하산하면 정말로 디카를 구입해야지!」

 

헤드랜턴에 의지해 어두컴컴한 산길을 올라간다. 바닥에 자갈들이 잔뜩 깔려있다. 이러한 자갈길이 한참이나 이어진다. 등산로가 계곡을 따라 조성되어 있어 돌과 바위가 많다. 이제 산죽길이 이어진다. 산죽길, 정말 지겹게 경험하는 곳이 이곳 지리산 남부능선일 것 같다. 낙남정맥 역시 산죽길이 지겹게 이어지는 곳이다.

중간에 조금은 넓은 지형부에 도착하는데 잠시 헷갈린다. 좌우로 헤드랜턴을 비추고 조금 신경 쓴 후에야 정상적인 등산로에 합류했다. 시력이 나쁜 글쓴이로서는 야간산행이 늘 신경 쓰인다.

 

다시 조금 진행하니 「곰 출현주의」라고 쓴 표지판이 반긴다.

「설마! 이곳에 곰이 나타나려고!」

우습게 생각하고 지나간다.

 

다시 너덜지대를 지나고, 이후 얼마나 갔을까 이정표가 나오는데 청학동에서 1.7km 왔고, 삼신봉까지는 800m 남았다고 쓰여 있다.

양쪽으로 산죽이 도열해 있는 나무계단을 오른다. 경사가 급해지는가 싶더니만 이내 주능선에 도착한다. 낙남정맥 마루금에 도착한 것이다. 이곳을 언제 지나갔나 싶어 지나간 산행기를 확인하니 2006년 5월 14일이었다.

역시 낙남정맥길인 묵계치 방향은 「탐방로 아님」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걸려 있다. 이정표(삼신봉 0.5km)가 세워져 있다.

 

낙남정맥 마루금에 올라선 후 좌측의 삼신봉으로 향했다. 완만한 오름길로 500m를 올라가니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도 이정표(←청학동 2.5km, ↓세석대피소 7.5km, 쌍계사 8.9km→)가 세워져 있다. 이정표 기둥에는 「삼신봉 해발 1,288m」이라고 쓰여 있다.

아직도 주변은 어둡다.

「예전에 정상석이 있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우측으로 바위가 보인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돌아서 올라가야 하는데 그냥 바위지대를 정면으로 치고 올라간다. 약간은 위험하게 느껴지는데 조심스럽게 올라간다. 총무님은 잘 올라올까 살피는데 이외로 잘 올라온다. 올라와서는 하는 예기가 「왜 위험하게 이쪽으로 올라갑니까?」

「크~!」 할 말이 없다. 글쓴이도 올라가면서 조금 위험하다고 느꼈으니까! 아무튼 무사히 삼신봉 정상에 도착했다.

 

삼신봉! 지리산 전망대인 삼신봉에서의 조망은 그야말로 어설픈 글솜씨로는 표현을 다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주변은 아직도 어두컴컴이다. 총무님이 아쉬웠던지 디카를 꺼내 보지만 디카는 작동을 하지 않는다. 아쉽게도 충전이 안 되었던 것이었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그래도 지리산 주능선이 희미하게나마 조망된다. 조망도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천왕봉 주변은 구름에 갇혀있다.

 

글쓴이에게 디카가 있었더라면(이번에 하산하면 기필코 디카를 구입해야지!) 총무님에게 비록 어둠속이지만 삼신봉 정상 등정 기념사진이라도 남겨줄 수 있었을텐데…. 무척 아쉬웠다.

「총무님이 정상적인 산행코스를 밟았다면, 깨끗한 하늘 배경 아래 펼쳐진 멋진 모습으로 여러 장 건질 수 있었을텐데 글쓴이의 유혹(성제봉 코스로 가자는 말)에 넘어가 지금 컴컴한 삼신봉 정상을 밟고 있으니….」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어차피 사진기도 없지만 주변도 어둡고, 그나저나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이내 삼신봉 정상에서 내려간다. 이번에는 정상적인 등산로 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내려가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삼거리에 다시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글쓴이도 처음 답사하는 구간이다. 예전에 낙남정맥을 종주할 때 내삼신봉을 갔다 오지 못한 한(?)을 비로소 오늘 풀게 되는 셈이다. 매번 느끼는 감정이지만 새로운 길을 답사할 때 마다 무척 흥분이 된다.

 

 

 

 지리산 내삼신봉 정상에서의 일출

 

내삼신봉을 향해 출발!

이곳 역시 어김없이 산죽들이 양 쪽으로 도열하고 있다. 산죽의 사열을 받으며 진행한다. 내삼신봉으로 향하는 길은 능선길이 아니라 우측 사면길로 이어진다. 바위지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능선길로 갈 수가 없다. 그렇게 우측 사면길로 진행하고, 우람한 두 개의 바위 사이로 올라가니 드디어 내삼신봉 정상에 도착한다.

 

내삼신봉 정상석(三神山頂)이 반긴다. 실로 얼마나 기다렸던 내삼신봉이었던가? 너무나 뿌듯하다. 시간을 보니 6시 8분이다. 일출시간까지는 약 30분 정도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잠시 판단을 해본다. 이곳이 아니면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 아마 없을 것 같다. 30분 정도의 시간이면 엄청난 거리를 진행할 수도 있지만 하늘을 보니 틀림없이 일출을 볼 수가 있을 것 같다. 오늘 갈 거리가 장난은 아니지만 그래도 쉬지 않고 진행하면 정해진 시간 내에 도착을 할 수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곳에서 일출을 보기로 했다.

 

총무님이 준 감을 맛있게 먹고 나니 몸이 더 떨려온다. 바람은 바위에 기대고 있으니 좀 참을 만 했다. 다행스럽게 바람의 세기도 잠시이지만 잠잠해졌다.

 

일출 쪽의 반대 방향을 보고 일출 쪽 방향을 볼 때 마다 무척 환해지고 있다.

6시 11분, 16분, 21분, 26분…. 이렇게 시간이 흐를 때마다 주변은 환해지고 있다.

일출시간인 6시 34분(산청 기준)이 가까워지는데 하는 순간, 해가 솟기 시작한다.

감격의 순간이다. 실로 너무나 오랜만에 보는 일출이기 때문이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지리산 일출이지만 글쓴이에게 지리산 일출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일출을 한 번 본적은 있지만 그것은 능선 오름길에 찌그러진 일출을 봤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일출은 오늘이 처음인 것이다.

 

 

 내삼신봉 정상에서

 

내삼신봉 정상에서

 

6시33분에 일출을 구경하고, 이후 계속 퍼지는 해를 바라보다가 6시 40분에 서둘러 성제봉으로 향했다.

 

내삼신봉을 내려가니 이내 바윗길이다. 조심스럽게 바윗길을 진행한다. 중간에 밧줄지대도 나타난다. 이후 능선길로 이어진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주변에 단풍 든 나뭇가지들을 보면서 상쾌하게 능선길을 진행한다.

 

쇠통바위가 나타날 때가 됐는데….

아쉽게도 어느 것이 쇠통바위인지도 모른체 그냥 지나가버렸다. 아무런 표시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쁘게 가야 할 형편이기에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이다. 중간에 바위가 나타나는데 그것이 혹시 쇠통바위가 아닐까?

 

이곳까지 오는데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이곳도 바위 위로 올라가야 볼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니 아까 내삼신봉에서 30여 분 기다린 것은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상불재(이곳에서 과외가 시작됐다)

 

이정표(←6.5km 쌍계사, ←2.5km 상불재, 세석대피소 10.0km→, 삼신봉 2.5km→) 바로 아래에 있는 큰 암릉이 바로 쇠통바위라고 한다.

청학동의 자물쇠바위를 이 쇠통바위의 구멍에 끼워 열어야 세계평화가 온다는 전설이 있다. 쇠통바위를 지나가다 보면 청학동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얼마간 진행을 하고 나니 조금 넓은 터가 나오는데 이곳에 이정표(←세석대피소 10.7km, ←삼신봉 3.2km, 쌍계사 5.8km→)가 세워져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이 독바위 갈림길이다.

 

지리산에는 독바위가 3개가 있다. 하나는 함양독바위로 용유담 근처에 보이는 바위이고, 또 하나는 하봉(1781m) 근처에 있는 거대한 바위로 산청독바위라 불리 우고 마지막 하나는 이곳 하동독바위라고 불리 우는 것인데 독같이 생겨 불린다는 말과 홀로 솟아 있어서 홀로 독(獨)바위라 불린다고 한다는 말이 있다.

 

이곳에서 10여분 휴식한 이후로 상불재까지 한걸음에 내쳤다.

이정표(←쌍계사 4.9km, ↓삼성궁 2.3km, 삼신봉→)가 반기는 상불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산악회 회원님들이 삼성궁 쪽으로 하산을 해야 하기에 삼성궁 방향 쪽에다 하산유도표지 종이(A4용지)를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돌로 얹어 놓았다. 두 장을 깔아 놓았는데 나중에 확인하니 모두들 못 봤다고 한다. 그럼에도 다행스럽게 쌍계사 쪽이 아닌 삼성궁으로 모두 하산해서 천만다행이었다.

아마 중간에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이 없애버렸나 본데 산악회 후미가 수거해오는데 왜 본인들과 상관이 없는 물건을 없애버리는지 모르겠다. 소위 자연보호라는 명목아래….

 

이제 이곳 상불재에서 성제봉을 가기위해서 쌍계사방향도 아니고, 삼성궁으로 가지도 않기 때문에 삼거리 중 하나 남은 능선길로 당연히 진입을 했다. 능선 진입 입구에 나무로 막나 놓은 것이 조금은 신경이 쓰였지만 무시하고 나무를 통과 하여 능선에 진입했다. 이곳에서 실수를 했던 것이다.

 

이쪽에서(이정표가 있는 삼거리) 왼쪽 삼성궁 방향으로 180도 틀어 사면을 타고 300m 가면 안부 능선에 닿는데 이곳도 이정표가 있음.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타야 성제봉으로 갈 수가 있었는데….

 

급한 내리막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잠시 완만해지고, 이후 다시 급경사 내리막이 계속 이어진다. 경사가 무척 낮아진다. 거의 바닥에 떨어졌다고 느낄만큼 심하게 표고가 떨어진다. 중간 중간 나무에 매달린 표지기가 보인다. 급하게 내려선 이후 잠시 완만하게 이어진다. 이곳부터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표고가 떨어져도 너무 떨어진 것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지형도를 챙겨 왔지만 지형도 볼 생각도 안하고(등산로가 잘 나 있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에 사로 잡혀서…) 그냥 진행했다. 중간 중간에 표지기 리본이 매달려 있기 때문에 그것을 믿고 그냥 진행했다. 지형도상(1/25,000 악양) 891봉 정상에 있는 무덤을 지나니 경사는 더 심하게 떨어진다. 아예 땅바닥까지 떨어질 모양이다. 이제야 불안감(과외를 받고 있다는…)이 엄습해온다. 아무것도 모르고 열심히 뒤 따라 오는 총무님에게 갑자기 미안함도 썰물처럼 몰려온다.

 

그러더니 갑자기 물소리가 들려온다.

총무님에게 「이거 물소리 아니여요?」

총무님 왈, 「물소리인데요!」

아니 왠 물소리?

사태가 심각해졌다. 제대로 된 능선길을 갔다면 이런 물소리가 들리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내 암자(불일암)가 보이기 시작한다. 진행할수록 암자가 뚜렷하게 보인다. 그러더니 물소리도 제법 커져서 확연히 물소리를 알 수가 있었다. 이곳이 좌우로 협곡을 이루고 있는데 계곡 건너편에는 조망데크도 보인다.

「저곳이 혹시 불일폭포 전망대???」

그랬던 것이다. 불일폭포 전망대였던 곳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아무튼 분명히 과외를 받고 있다는 것은 알았는데 이곳이 어디인지는 잘 몰랐던 것이다. 어디서 잘못됐는지 사태파악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빨리 하산을 해야 하는데 이곳 지형이 절벽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건너편 569봉의 암봉이 무척이나 아름답고, 좌우 협곡을 이루고 있는 이곳은 무척이나 아름다웠지만 아름다움을 느끼기 보다는 이곳을 빨리 빠져 나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계곡 쪽으로는 절벽을 이루고 있어 최대한 좌측능선에 붙어 내려가는데 결국은 짧은 벼랑을 만났다. 겨우겨우 약한 나뭇가지를 잡아가며 벼랑을 횡단한다.

벼랑을 빠져 나올 때 순간적으로 미끄러웠지만 용케 잘 넘어섰다. 이제 총무님이 문제다. 총무님은 비교적 쉽게 건너온 것 같다. 짧은 벼랑지대를 통과하여 한숨을 내쉬고 이제 어지러운 산죽을 헤치며 내려선다. 한동안 산죽을 헤치고 나서니 심메니길인지 모르지만 길이 뚜렷하게 이어진다. 이제 한숨 났다고 생각이 들어 총무님에게 쉬고 가자고 하니 총무님은 더 내려가서 좋은 곳에서 쉬자고 한다.

 

매우 뚜렷한 길을 이제 편안하게 진행한다. 꼭 둘레길 같은 길을 따라 한동안 진행하니 민가가 보인다. 이곳에서 총무님에게 「능선으로 갈까요? 이곳에서 하산할까요?」하고 물어보니, 총무님은 「일단 민가로 내려가서 이곳이 어디인지 물어보고 가는게 좋겠어요?」한다.

 

이내 민가로 내려섰다. 민가 3채가 있는데 어떤 집도 사람이 없다. 계곡으로 내려서서 잠시 쉬면서 그때서야 지형도를 꺼내 이곳이 어디인지 확인하니 바로 내원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까 전망대 데크도 불일폭포 전망대임을 알았다.

「오, 마이 갓!」

 

이곳에서 다시 관음봉으로 올라서기에는 너무나 멀고, 시간도 되질 않았다. 무척 아쉬웠지만 포기했다. 포기한 순간 밀려오는 총무님에게 대한 미안함!

총무님은 내게 되려 위안을 준다.

「이래서 내원골을 답사하게 됐잖아요? 이러지 않으면 언제 내원골을 답사하게 되나요.」

내겐 너무나 고마운 말이었다.

 

내원골 마지막 민가(3채)가 있는 이곳에 감나무가 있는데 여느 감나무와는 다르게 감 종자가 무척이나 작다. 말과 당나귀로 비교한다면 아마 당나귀로 비교가 된다.

 

휴식을 마치고 출발한다. 시간을 보니 9시20분이다. 앞으로의 일정은 내려가면 쌍계사이니 쌍계사 구경하고, 불일폭포도 구경하고, 삼성궁으로 오는 길에 최참판댁에 들려 구경하는 걸로 계획을 잡았다.

그런데 좀 더 신중했더라면 이곳에서 곧바로 불일폭포 쪽으로 갔다면 불일폭포를 볼 수가 있고, 내려오면서 쌍계사를 구경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불일폭포 먼저 볼 생각을 안 하고 그저 빨리 내려가고픈 생각에 쌍계사로 향했다.

 

폭 넓은 내원골 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간간히 표지기도 보인다. 30분 정도 걸려 쌍계사 내부에 들어섰다. 쌍계사를 구경하고, 이제 마음이 편안해지니 불일폭포가 욕심이 났다. 글쓴이는 쌍계사는 예전에 몇 번 구경한 적이 있으나 불일폭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총무님에게 불일폭포 가자고 하니 흔쾌히 수락한다.

그래서 쌍계사에서 불일폭포로 향한다.

그런데 불일폭포까지의 거리가 2.3km이다. 왕복이면 4.6km인데…. 벅찬 거리이고, 시간도 그렇고…. 그래도 불일폭포를 보고픈 마음에 출발했다.

 

처음부터 다리가 무거웠다. 그래도 불일폭포 보고픈 마음에 계속 올라간다. 1km정도 올라갔을 때부터는 포기하고 싶었다. 총무님 눈치를 살펴보니 포기같은 것 아예 보이지가 않는다. 1.5km 정도 올라갔을 때 도저히 힘이 들어서 이곳에서 쉬고 가자고 제의했다.

 

잠시 포도 먹으며 쉬고 있으니 이제 살 것 같았다. 불일폭포를 향해 올라가는 사람, 내려오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불일폭포를 보고 내려오는 청춘 한 쌍이 내려오고 있어 그 중 남자분에게 불일폭포 수량이 어떠냐는 말과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리는가에 대해 물어보니 수량은 별로고 아직 1시간 30분 정도 더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과감하게 이곳에서 포기해야 겠다고 생각을 하고 총무님에게 그만 내려갑시다 하니 이외로 쉽게 동조한다.

 

결국 1.5km에서 불일폭포 보는 것을 포기하고 되짚어 내려갔다.

다시 쌍계사 경내로 들어와 쌍계사 매표소(1인당 2,500원 이었던가???)를 지나 가게 앞에 이르러 가게 앞에 마련된 평상에 앉아 잠시 휴식을 하고 있으니 총무님이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온다.

화개택시를 호출하고 커피를 먹고 있으니 이내 화개택시가 나타난다.

 

화개택시를 타고 최참판댁 구경을 하고, 다시 그 차를 타고(최참판댁을 구경시간 약 30분 동안 미터기는 작동시키지 않았다고 함) 삼성궁으로 향했다.

 

삼성궁으로 향하는 1시간 여 동안 도로의 굴곡이 심하고 택시기사님의 과속으로 인해 멀미를 하는 총무님이 무척 고생했다.

 

삼성궁으로 향하는 택시안에서 회장님, 대장님과 통화를 하니 삼성궁까지 구경을 하고 와도 시간이 충분할 것 같아 삼성궁 주차장까지 이동했다. 요금이 69,000원 나왔다. 그러니까 상불재에서 쌍계사로 하산하면 삼성궁까지 69,000원의 택시비가 나온다는 예기다. 만약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쌍계사에서 하동으로, 그리고 하동에서 청학동 가는 버스를 타야하는데 버스 배차시간을 잘 모르지만 시간관계상 엄두가 나질 않는다. 엄청난 댓가의 과외였다. 그나마 나 홀로 과외를 받았다면 많이 속상하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총무님과 함께여서 택시비가 하나도 안 아까웠다. 총무님에게는 미안했지만.

 

삼성궁을 구경(입장료 5,000원)하고, 10여 분 내려간 주차장에 도착하니 2시 20분이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하산하신 회원님들은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결국 후미까지 다 내려와서 식사마치고 4시 5분에 귀경길에 올랐다.

다행히 고속도로 정체가 별로 없어서 강동역에 8시40분경에 도착했다.

 

7.참고자료

①단풍에 대하여

 

단풍은 식물 잎에 함유된 색소들의 분해 시기가 각기 달라서 일어나는 현상인데요, 단풍에 영향을 미치는 색소의 분해는 날씨와 밀접한 관련이 있답니다. 식물의 잎에는 녹색을 띤 색소가 있는데, 바로 광합성에 필요한 햇빛을 붙잡는 안테나 구실을 하는 엽록소죠. 이 엽록소는 분해되기 쉽지만 나무가 왕성하게 자랄 때는 계속 합성돼서 일정량이 유지된답니다. 그래서 봄, 여름의 나뭇잎은 가을철과 달리 녹색을 띠게 되고요.

 

식물의 잎에는 엽록소 이외에도 카로티노이드안토시안 등 보조색소가 있는데요. 이름이 좀 어렵죠? 카로티노이드는 엽록소가 잘 흡수하지 못하는 다른 파장의 빛을 흡수해서 그 에너지를 엽록소에 전해줍니다. 노란색이나 황색을 띠는 이 보조색소는 나무가 왕성하게 자랄 때는 녹색 엽록소에 가려 눈에 잘 띄지 않죠. 한편 엽록소와 함께 봄부터 잎 속에 합성되는 카로티노이드와 달리 붉은 색소인 안토시안은 그 성분이 세포액에 녹아 있다가 늦여름부터 새롭게 생성돼서 잎에 축적되지요.

 

식물은 해가 짧아지고 기온이 낮아지면 잎자루에 코르크처럼 단단한 세포층을 만들어 월동 준비를 하기 시작하는데요. 이 세포층이 만들어지면 잎으로 드나들던 영양분과 수분이 더 이상 공급되지 않고, 그 결과 엽록소의 합성도 멈추게 된답니다. 잎 속에 남아 있던 엽록소는 햇빛에 분해돼서 점차 그 양이 줄어들어 녹색은 서서히 사라지고요. 그에 반비례해서 분해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린 카로티노이드와 안토시안은 일시적으로 제 색깔인 노란색과 붉은색을 내기 시작하죠. 결국 우리 눈에 보이는 단풍은 나뭇잎 속에 함유된 이들 색소가 각기 다른 분해 순서에 따라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발현 현상인 셈이랍니다!

 

노랗고 붉은 단풍을 들게 만든 카로티노이드와 안토시안마저 분해되면, 쉽게 분해되지 않는 탄닌 색소로 인해 나뭇잎은 갈색으로 변하게 돼요. 잎이 붉게 물든다고 알려져 있는 단풍나무의 잎도 나뭇가지에 따라서, 또 시기에 따라서 제각각 다른 색의 잎을 달고 있는 이유도 이들 색소의 분해 속도가 가지마다 달리 진행되기 때문이죠.

 

블루홀님 작품(지리산 단풍)

 

「건조하고 일조량이 많을수록 단풍이 곱게 든다」는 기상청의 설명은 일교차가 큰 서늘한 날씨는 엽록소를 빨리 분해시키고, 밝은 햇살과 건조한 날씨는 수액에 당분 농도를 증가시켜서, 안토시안의 생성 양을 늘려 노랗고 붉은 단풍이 잘 들게 하는 환경조건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평지보다 일교차가 큰 산악지방, 강수량이 적은 지방, 일조량이 많은 양지쪽에 밝고 고운 단풍이 드는 것이죠. 따라서 예년보다 많은 여름철 강수량이나 9월 중순까지 지속된 늦더위보다, 오히려 건조하고 일조량이 많은 가을 날씨의 지속 여부가 올해 단풍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풍은 산 전체로 볼 때 꼭대기에서 아래로 20% 정도 물들었을 때를 첫 단풍이라 하고, 80% 이상 물들었을 때를 절정기라고 하는데요. 대개 첫 단풍 이후 보름쯤 지나야 절정의 모습을 보이죠. 우리나라 단풍은 보통 하루에 50m씩 고도를 낮추고 25km씩 남하하니, 강원 산간지방에서 시작한 단풍은 10월 중순 중부지방을 거쳐 하순에는 중부 해안과 남부지방으로 내려오겠죠.[인터넷에서 발췌]

 

②낙남정맥에 대하여

★낙남정맥(洛南正脈) 개요

 

낙남정맥은 이름 그대로 낙동강의 남쪽에 위치한 정맥이다. 낙동강의 물줄기는 반도 남부의 동서 중간을 가르며 흘러내리고, 그 남쪽으로 가로지르는 낙남정맥을 끼고 일찍이 삼한시재를 전후하여 변한 12국 또는 가야 6국이 결성되어 삶의 터전으로 삼아왔다.

 

수로왕이 서기 42년 가락국을 건설하면서 약 491년간 가야국으로 통합하여 찬란한 문화와 유물을 남기는 등 꽃을 피어오다가 신라에 항복하면서 막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김수로왕의 탄생설화와 당시의 뛰어난 문화를 짐작할 수 있는 역사의 터전이기도 하다.

 

본래 낙동강 하구에서 가까운 산경표에 기재된 분산(盆山)을 찾아야 하겠으나, 같은 이름의 산은 찾을 수 없고, 현재 김해시 북쪽에 있는 분성산(盆城山 390m)이 그중 비슷한데, 과연 그것이 옳은지 확인하기란 어려운 실정이다.

 

백두대간이 백두산, 설악산으로 줄기차게 뻗어 내리다 그 종착지인 지리산 천왕봉 가기 전 세석평전을 품고 있는 영신봉(1,651.9m)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내려 유명한 지리산 청학동을 바라보는 바위 봉우리인 삼신봉(1,284m)에서 청학동 안부를 거쳐 삼신봉 보다 더 좋은 전망을 선사하는 외삼신봉을 지나, 묵계치(삼신봉터널) 고운재를 지나 옥산까지의 산줄기는 서쪽으로 섬진강으로 물길을 대주고 있으며 이후 산줄기를 잘라 내고 인위적으로 진양호 물이 사천만으로 흘러들게 만든 거대한 강 가화강(10m)를 지나 백운산 대곡산 무량산(581.4m) 여항산 서북산(738.5m) 광려산(720m) 대산(727m) 마산의 진산인 무학산(767.4m) 천주산 창원의 진산인 봉림산 대암산 용제봉 김해의 신어산(630m)을 지나 낙동강 하구인 김해시 매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그 줄기를 낙동강에 담그는 221km(실제거리 264.76km)의 산줄기로써 옥산이후 줄기차게 경상남도 해안지방과 내륙지방을 분계하며 북쪽으로는 모든 물이 남강으로 흘러들어 낙동강과 만나며 남쪽으로는 바닷가 개울을 적셔주고 있다 지리산 구간을 제외하면 800미터 이하의 낮은 산등이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가화강 부근의 산줄기들은 200미터 내외의 높낮이가 거의 없는 과수원 밭 등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내륙과 해안의 특이한 기후 분포를 보여주는 중요한 산줄기이다.

 

※낙남정맥 종주시 필요한 지형도 도엽명

①1:50,000(11매)

밀양, 김해, 마산, 창원, 함안, 충무, 진주, 곤양, 하동, 산청, 운봉.

 

②1:25,000(20매)

물금, 봉림, 무계, 진해, 진영, 창원, 마산, 봉성, 반성, 구만,

고성, 학림, 두문, 삼곡, 진주, 사천, 성내, 대평, 청암, 대성.

 

 

쌍계사

 

 쌍계사

 

③쌍계사에 대하여

쌍계사(雙磎寺)는 신라 성덕왕 21년(722년) 대비(大悲), 삼법(三法) 두 화상께서 선종(禪宗)의 六祖이신 혜능스님의 정상을 모시고 귀국, "지리산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 : 눈쌓인 계곡 칡꽃이 피어있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의 인도로 이곳을 찾아 절을 지은 것이 유래가 되었다. 그 뒤 문성왕 2년(840년) 중국에서 선종의 법맥을 이어 귀국하신 혜소 진감(眞鑑)선사께서 퇴락한 삼법스님의 절터에 옥천사(玉泉寺)라는 대가람을 중창하시어 선의 가르침과 범패(梵唄)를 널리 보급하시었으니 후에 나라에서 "쌍계사"라는 사명을 내렸다.

그간에 벽암, 백암, 법훈, 만허, 용담, 고산스님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동안 고색창연한 자태와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쌍계사는 국보 1점(진감국사 대공탑비-국보47호), 보물 3점(대웅전-보물 500호, 쌍계사 부도-보물 380호, 팔상전 영산회상도-보물 925호)의 국가지정 문화재와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청학루, 마애불, 명부전, 나한전 등의 많은 문화유산, 칠불암, 국사암등의 암자가 있으며, 조계종 25개 본사중 제13교구 본사이기도 하다.

 

쌍계사는 여러 문화재외에도 차와 인연이 깊은 곳으로 쌍계사 입구 근처에는 '차시배추원비(茶始培追遠碑)'가 있고, 화개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벚꽃길에도 '차시배지(茶始培地)' 기념비가 있다.

차는 신라 선덕여왕때 당나라에서 처음 들여왔는데 흥덕왕 3년(828년) 김대렴(金大簾)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줄기에 처음 심었다고 한다.

김대렴이 차를 심은 이후 진감선사가 쌍계사와 화개 부근에 차밭을 조성, 보급하였다고 한다.

 

쌍계사는 범패의 고향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진감선사 혜소가 중국에서 불교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쌍계사 팔영루에서 우리 민족의 정서에 어울리는 범패(梵唄)를 만들어냈으며, 오랫동안 범패 명인들을 배출하는 교육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팔영루라는 이름도 진감선사가 섬진강에서 뛰는 물고기를 보고 팔음률로서 범패를 작곡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현재 혜능대사의 정상이 모셔진 금당(金堂)에 금당선원이 있어 눈푸른 납자들의 정진이 이어지고 있으며

전통강원(傳統講院)과 금강계단(金剛戒壇)이 설치되어 바야흐로 선맥과 강맥, 그리고 율맥의 법통이 바로선 수행도량의 명성을 떨치고 있다.

쌍계사 홈피. http://www.ssanggyesa.net/

 

 

 최참판댁

 

 삼성궁

 

 삼성궁

 

 삼성궁

 

삼성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