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지정명산

구미 금오산 두번째 이야기

약초2 2010. 2. 9. 17:29

897번째 산행이야기

No.528 금오산 두 번째 이야기

 

1.산행날짜: 2010년 2월 7일(일요일)

2.산행날씨: 맑음

 

3.산행코스: 주차장→금오산관광호텔→칼다봉→성안→약사암→마애보살입상→돌탑→할딱고개→주차장[원점회귀]

 

4.참석인원: 새싹산악회 정기산행 39명 참석

 

5.산행시간

-10:35 금오산도립공원 주차장 발(산행시작)

-11:00 금오산관광호텔 들머리

-11:12 자연학습원 갈림길(←칼다봉 1.4km, →자연환경연수원 1.1km, ↓금오산관광호텔 0.6km)

-11:30~11:38 전망대에서 휴식

-11:52 715m봉(공터, 조망 좋음, 무 표시)

-11:54 삼거리안부(←칼다봉.성안.정상, →자연환경연수원 2.0km, ↓폭포)

-12:10 칼다봉(←정상 2.3km, ←성안 1.7km, →자연환경연수원 2.5km)

-12:53 성안(금오정)(←정상 0.6km, →칼다봉 1.7km, →자연환경연수원 4km, ↓폭포 1.9km)

-13:02 정상 0.4km 이정표 있는 곳

-13:15 금오산 현월봉(金烏山 懸月峯) 정상

-13:22 약사암 종각 앞 착 / -13:37 발

-13:42~13:47 암반 위에서 커피 1잔의 휴식

-14:00~14:05 마애보살입상(보물 제490호)

-14:08~14:15 돌탑군 있는 공터(오형돌탑[烏亨石塔])

-14:24 주등산로(내성터 가는길) 삼거리(←마애석불 0.6km, →정상. 약사암 0.9km, →성안 0.8km)

-14:46 할딱고개 전망대

-14:53 대혜폭포 착 / -14:55 발

-15:00 화장실건물

-15:02~15:07 해운사

-15:12 대혜문

-15:21 케이블카 승강장

-15:33 도립공원 주차장 착(산행종료) / -16:31 발

-20:00 귀가

 

◈호텔주차장-(0:12)-자연환경연수원합류길-(0:34)-삼거리안부[폭포갈림길]-(1:00)-성안-(0:20)-현월봉-(0:03)-약사암-(0:24)-마애보살입상-(0:30)-할딱고개-(0:10)-대혜폭포-(0:30)-관리사무소[주차장]

 

◈3시간 50분 소요예상, 실제는 5시간 걸렸음.

 

 

 

산행지형도(월간 산에서 발췌)

 

 

6.산행후기

2003년 12월 21일에 금오산을 첫 산행하고 오늘이 두 번째 산행이다. 금오산 코스가 단조로워 망설였는데 산악회 임원으로써 참석을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참석을 하게 되었는데 다녀오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이제야 금오산의 진면목을 조금이나마 보게 된 것이다. 전(全) 코스를 다 답사하기 전에는 「예단은 금물」이라는 명언을 다시금 깨달은 금오산 산행이었다.

 

그런데 지나간 산행기(497회)를 확인 해보니,

「헉! 똑같은 코스를 또 다녀온 것이다! 그런데 정상 이후 약사암의 범종각, 마애불상, 돌탑 등에 대한 기억이 없을까?…」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예전의 산행기는 산행시간만 기록이 되어 있어 그만큼 기억이 남지 않았으리라…. 또한 그전에는 돌탑들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도 되고….

 

중부내륙고속도로의 개통으로 금오산 가는 길이 많이 단축이 돼서 상일동에서 7시 40분경에 출발해서 주차장에 10시 20분경에 도착을 했다. 휴게소를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오랜만에 단체사진도 찍어보는 여유도 부려본다.

 

 

 

 금오산도립공원 주차장 위 잔디광장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산행에 나섰다.

 

 

이제 산행에 나선다. 도립공원 주차장 앞에 금오산 안내문이 적혀있어 그대로 옮겨본다.

 

『금오산(金烏山 976.6m)

해발976m의 평지돌출형으로 산세가 가파르고 기암절벽과 수림이 잘 어울린 산으로, 보물 490호인 마애보살을 비롯한 대혜폭포, 도선굴 등 자연경관이 빼어나 예로부터 영남팔경으로 꼽혀 시인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그들이 남긴 암각이 다수 남아 있고, 고려 말 충신 야은 길재선생을 기리는 채미정이 산 입구에 자리하여 빛을 더하고 있으며 금오산성은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는 산성으로 외침을 방어하기 위해 세워진 역사현장이다.

 

고려시대는 남숭산(南崇山)이라 불렸으며 조선시대부터 금오산으로 불리어 오고 있다. 산의 동쪽에서 바라보면 사람이 하늘을 보고 누워 있는 것 같이 보여서 와불산(臥佛山) 또는 거인산(巨人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금오산은 1970년 6월 국내 최초로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우리나라 자연보호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금오산은 태양의 정기 받은 밝음의 산이요, 충절이 스며든 호국의 산이며, 「조선인재 반재 영남 영남인재 반재 선산(善山)(현 구미시)」이란 말 대로 수많은 인재가 이 산 아래 배출되었으며 조국 근대화를 이룩한 박정희 대통령 또한 금오산 기슭에서 태어나게 한 인재의 곳이다. 오늘날 전국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모여들어 「젊은 도시 구미」를 이룩하여 우리나라 내륙최대의 디지털 첨단산업도시를 이룬 젊은이들의 힘의 원천이 되기도 한 한국제일의 명산이다.

 

 

산행날짜가 산불예방기간(2009.11.01~2010.05.20)이라 많이 망설였다. 칼다봉 코스를 원하는 회원님이 계셔서 예전에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칼다봉 코스로 진행한다. 4명을 제외한 나머지 회원님들은 정상적으로 개방된 코스로 진행을 했다. 앞전에 산행을 할 때는 자연학습원(자연환경연수원이란 이름으로 바뀐 것 같다) 방향에서 산행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금오산관광호텔로 들머리를 잡았는데 주등산로 길(포장도로)을 걸어가며 확인을 해보는데 등산로 입구를 찾을 수가 없어서 얼마간 지체를 했다.

 

호텔 내부로 들어가서 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분에게 등산로 입구를 물어보고는 우측의 주차장 끝 쪽으로 이동을 한다. 그런대도 이정표가 보이지가 않고, 정면으로 등산로가 보여서 주차장을 빠져나와 등산로에 접어드는데 마침 등산객 한 분과 마주친다. 그분은 이곳(호텔)에 원래 등산로가 있었는데 호텔 측에서 막아놔서 조금 아래쪽 개천에서 올라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등산객 분에게 조심스럽게 이곳이 통제구역(통제된 등산로를 허가 없이 출입한자는『자연공원법』 제86조 제2항 제2호에 규정에 의해   5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인데 괜찮은지 물어보니 상관없다는 말에 안심을 하고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본격적으로 산행에 나선다.

호텔주차장에서 12분을 올라가니 자연환경연수원 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하는 삼거리에 닿는다. 이정표(←칼다봉 1.4km, →자연환경연수원 1.1km, ↓금오산관광호텔 0.6km)를 확인하고 계속해서 힘겨운 오름길을 올라간다. 날씨가 풀려서(따뜻해서) 이마에 땀이 제법 흐르기 시작한다.

 

 

 호텔에서 12분 정도 진행하면 나오는 이정표

 

 

이후로 16분간 힘겨운 오름길을 올라가야 오름길이 일단락된다. 다시 2분 정도 평탄한 길을 진행하면 멋진 전망대에 닿는다. 호텔주차장에서 30분 걸린다.

 

이곳에서 땀도 식힐 겸 잠시 휴식시간을 갖는다. 처음 동행한 이혜숙님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나이를 물어보니 올해 환갑이란다!

「헉!」

놀라서 뒤로 자빠질 뻔 했다.

「50대 초중반 정도로 봤는데….」

산행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몇 마디 더 나누다보니 이혜숙님의 산행경력이 나온다. 그 연세에 체력과 산에 대한 열정에 감탄한다. 여기에서 겸손함을 다시 배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조망

 

 

 삼거리안부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사진)를 보면 칼다봉은 더 진행해야 한다.

 

 

「왔다 갔다 아직까지 자리 못 잡은 칼다봉 정상?」

 

8분간의 휴식을 마치고 이제 칼다봉을 향해 진행한다.

 

계속되는 오름길을 14분 더 올라가니 715m봉에 닿는다. 715m봉은 아무런 표기도 없는 공터인데 조망이 좋은 편이다. 월간 산에서 제공한 지도를 보면 이곳이 칼다봉으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예전지도에는 584.9m봉이 칼다봉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금오산도립공원에서 설치한 이정표를 확인하면 이곳(715m)이 아닌 745m봉이 칼다봉인 것 같다. 그러나 실제 745m봉도 아무런 표기가 없어서 마냥 답답하다.

 

715m봉에서 급하게 2분을 내려가면 대혜골의 폭포(대혜폭포)로 하산할 수 있는 삼거리안부에 닿는다. 이정표(←칼다봉.성안.정상, →자연환경연수원 2.0km, ↓폭포)가 세워져 있다. 여기서 이정표의 화살표 방향을 보면 아직 칼다봉을 안 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성안에 도착해서도 기념사진 촬~칵!

 

 

 성안의 이정표

 

 

삼거리안부에서 16분을 다시 올라가면 이정표(←정상 2.3km, ←성안 1.7km, →자연환경연수원 2.5km)가 세워져 있는 745m봉에 닿는데 정작 745m봉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칼다봉이란 말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후에 나오는 이정표에는 칼다봉 정상표시가 뒤로 표기되어 있어서 745m봉이 칼다봉 임을 예상할 수 있다. 나중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예전(2005.11.29) 사진에 칼다봉 정상(745m봉) 표기가 된 이정표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전에 답사한 나는 그것을 본 적이 없다. 아무튼 왔다 갔다 아직까지 자리 못 잡은 칼다봉 정상이라 할 수 있다.

 

이제 편안한 능선길이 이어져 힘들지 않고 편안하게 좌우 조망을 즐기며 진행하는데 통제구간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하고 교행을 한다. 통제구역에 가슴 졸이며 조심스럽게 접근한 내가 어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더욱 더 황당한 것은 서슴없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야호~!」소리까지 내는 사람들을 보고는 아연 실색한다.

조망을 즐기며 편안한 능선길을 얼마간 진행을 하니 짧은 바위구간에 밧줄이 걸려있어 밧줄을 잡고 올라선다.

이후 완만한 능선길을 진행하다가 잠시 휴식시간을 가져본다.

 

휴식을 마치고 조금 더 진행을 하다가 이내 내리막에 들어서면 성안의 분지에 들어서는데 장승이 서 있고 이정표(←정상 0.6km, →칼다봉 1.7km, →자연환경연수원 4km, ↓폭포 1.9km)가 반긴다. 바로 옆에 금오정이 보인다. 이제 정상이 600m 남았다.

 

 

 금오산 정상에서

 

 

완만한 오름길을 9분 올라가면 정상 0.4km 이정표 있는 곳이 나오고, 조금 더 올라가는데 윤명규 전회장님과 김재호 사장님이 내려오고 있어서 반갑게 인사 나누고 다시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이내 시설물 보호팬스가 나와 좌측으로 조금 올라가니 금오산 정상인 현월봉에 닿는다.

 

통신탑 철망 옆의 삼각점(선산11-1981재설) 곁에 세워진 정상석(懸月峯) 이면에는「초생달이 걸려있는 모습을 보고 지은 이름이라」라고 적혀있다.

 

이곳에서 정상적으로 산행한 회원님들과 만나 정상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정상석이 있는 곳은 좁아서 휴식할 장소가 못돼서 곧바로 약사암의 범종각을 보려고 내려간다.

 

 

 

 약사암 범종각 모습

 

 약사암 범종각은 들어갈 수가 없어 앞에서 촬영했다.

 

 

3분정도 걸려 약사암에 닿는다.

약사암 범종각이 금오산의 최고 명물이지만 구름다리는 폐쇄되어 먼발치로 만족해야 한다. 약사암의 널따란 암반위에서 휴식을 하면서 간식을 먹는다.

 

『약사봉 바로 밑에 약사암이 있으나 의상대사가 세웠다는 기록이 없어 단정키 어려우나 대사의 득도로 인해 세워진 것이라 믿는다. 최인재 선생의 일선지 불우조에 의하면 “약사봉은 천애 낭떠러지에 아래 있으며 나무판자 다리를 놓아 들어갈 수 있으나 그 아래는 아득하기만 하여 가히 굽어 볼 수 없다”하였으니 그 전부터 있었음이 확실하고 고종 때 영남진지에 의하면 “금오산성내의 3리에 있으며 법당이 8칸이라”되어 있으나 현재는 법당이 2칸이며 그 때의 건물이 아니니 그 후 여러 번 중수되었음이 확실하다. 1935년 중수기에 의하면 “지리산에서 석불3구 증 3형제불을 가져와 1구는 성주의 수도암, 1구는 금릉의 직지사에 나머지 1구는 약사암에 봉안했다”하는데 학계의 조사연구에 의하면 신라말에서 고려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월봉의 깎아지른 절벽의 바위 틈바구니에 간신히 발붙일 길이 있고 그 아래 약사암 (藥師庵:조계종)이 있으며…

약사암 뒤 봉우리가 큰 바위 하나로 이루어진 천애 절벽이요, 천하의 비경이라 하는 약사봉이니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625~702)가 초년에 천하비경을 찾아 이 바위 아래에서 참선(參禪)할 때 하늘의 선녀가 하루 한 끼의 주먹밥을 내려주어 하루하루 요기를 했고 약사여래(藥師如來)가 내려와 시중을 들어줌으로서 사바의 번뇌를 끊고 득도하여 고승(高僧)이 되었다는 전설과 함께 붙여진 이름이 약사봉이다.

그 약사봉에 걸쳐 있듯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듯한 약사암이 있다.』

(금오산도립공원 홈피에서 발췌)

 

 

 마애보살입상(보물 제490호)

 

 

휴식을 마치고 바로 아래의 화장실 건물 쪽으로 해서 마애불상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휴식하기 좋은 암반위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도 가져본다.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여 13분 진행하니 마애보살입상(보물 제490호. 고려시대, 높이 5.55m)이 나온다. 앞전 산행에도 똑같은 코스로 진행을 해서 분명히 봤을텐데 기억이 영….

 

 

 각종 돌탑이 주변경관과 잘 어울려 멋지다.

 

 멋진 돌탑들

 

 

 

마애보살입상에서 3분정도 진행을 하니 능선 끄트머리에 각종 돌탑들이 조성되어 있는 곳에 닿는다. 두 곳의 능선 끝부분 공터에 조성된 각종 돌탑들은 하나같이 예술품같이 멋지게 조성되어 있다. 오형돌탑(烏亨石塔)이라고 안내판도 세워져 있다.

태극기가 걸려있는 돌탑, 탑처럼 세운 돌탑,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원형돌탑, 거북이 형상의 돌탑 등 각종 돌탑들이 조성되어 있는데 그야말로 노천 예술작품이다.

 

 

멋진 조망

 

 

 삼거리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

 

 

약7분간의 예술작품(돌탑)을 구경하고는 이내 하산을 하기 시작한다. 우측의 사면길을 따라 조금 진행하면 철탑 직전의 삼거리에 닿는다.

이곳에도 어김없이「산불조심 등산로폐쇄」라고 써진 현수막이 매달려 있다. 이정표에는 마애석불 0.6km라고 써져 있다.

 

 

 겨울철이라 결빙되어 있는 대혜폭포의 모습

 

 대혜폭포 입구의 각종 푯말

 

 

정상 등산로에 합류한 후 이제 본격적인 하산을 하기 시작한다.

계속되는 급경사 내리막구간을 내려간다. 금오산 산행시 최고로 힘든 구간이다.

앞서가던 총무님을 따라 내려가는데 뱃가죽이 땡겨 쫓아가기를 포기하고 이내 내 페이스대로 급경사 구간을 22분을 내려가니 할딱고개 전망대에 닿는다.

 

전망대 위로 올라가니 많은 사람들로 북적된다. 그래도 비집고 올라가서 조망을 즐긴다. 이곳도 조망이 좋다. 설악산의 만경대처럼 대혜골 사방으로 펼쳐지는 도선굴을 비롯한 금오산 속살을 낱낱이 살펴볼 수가 있다.

예전에는 할딱고개 전망대 올라가는 곳에 계단이 없었다. 또한 할딱고개부터 대혜폭포까지 지금은 모두 계단으로 되어 있다. 7분동안 계단을 내려가면 대혜폭포 앞 넓은 공터에 닿는다.

 

1967년 9월 5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곳에 들러, 「자~ 우리 청소작업부터 하지~!」 라고 말했대서, 새마을운동의 발상지가 되었다는 안내문이 세워져있는 대혜폭포이다. 지금은 겨울철이라 결빙이 되어있다.

 

해운사

 

 

 케이블카 타는 곳

 

 

대혜폭포에서 5분을 진행하니 좌측으로 해운사가 보인다. 우측으로 화장실이 보여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이내 해운사를 구경하러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힘이 든다.

 

『해운사는 근세(1925년 4월 20일)에 창건된 절로써 대혜폭포 북서쪽의 언덕받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관음보살 좌성에 칠성탱화 등이 유존하고 있고, 일구의 석조 나한상도 있다.

해운사절 안내문에 의하면 신라말 고승 도선이 대현사라는 절을 창건(서기 827〜898)하였으나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철화스님이 현재의 해운사를 복원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유금조산록』『일선지』등에 따르면 대혈사는 금오산의 북쪽에 있었다고 하나 유적을 찾을 수 없고, 문헌으로도 입증할 수 없어 안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다.』(금오산도립공원 홈피에서 발췌)

 

도선굴은 해운사 대웅전 앞 뜨락을 거쳐 가면 용이한데 앞전 산행때 다녀와서 생략하고는 이내 해운사를 빠져나온다.

약수터에서 약수를 받고 내려가는데 앞에 총무님과 이혜숙님 설국님 모습이 보여 얼른 합류한다.

 

 

유서깊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하산한 회원님들이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이내 옛 성터를 복원해서 세운 대혜문을 빠져나오면 이내 넓은 계단이 나오고 케이블카 승강장이 나온다. 이제 도로따라 진행하는데 도로를 수리하느라 포크래인이 등산로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12분을 진행하니 주차장에 닿는다.

 

이후 느티나무(채미정 건립당시[영조44년 1768년]에 심은 것으로 추정되며 2000년 5월 현재 둘레 3m, 높이 13m, 폭23m 정도이다) 아래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귀경길에 올라 오아시스, 설국님 부부의 배려로 예상보다 빠르게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