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경상도 여행

[울진 7] 월송포진 성터 (21.05.26)

약초2 2021. 6. 3. 08:00

울진여행 7

월송포진 성터

2021년 5월 26일 답사

 

옛 7번 국도에서 사구 습지 생태공원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월송포진 터가 남아있다.

 

월송포진은 명종 10년(1550년) 돌로 성을 쌓았으며, 만호 1인과 수군 400명이 주둔해 동해안 경비를 담당했다. 조선시대에는 울릉도와 독도를 삼척포영과 교대로 수색하고 왜구를 토벌했으며, 현재 삼척포영은 개발로 흔적이 사라진 바람에 월송포진만 남아 있는 상태다.

 

월송포진은 우리나라가 오랜 세월 동안 독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해 왔다는 역사적 근거는 물론 고고학적 중요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http://www.kyongbuk.co.kr)

 

 

월성포진은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302, 303번지 일대 20여 필지의 옛 월송정 자리로 조선시기 수군 진지로 사용되던 성터였다. 포진이란 요즘 말로 표현하면 해군 진지와 같은 역할인데 주로 왜구들의 침구를 막기 위한 관방시설이었다. 울릉도는 당시 평해군 관할로 평해군수와 월송포진성의 책임자인 월송 만호가 2~3년에 한번씩 독도를 포함한 울릉도에 파견돼 관장했다. 즉 월송포진은 조선 정부의 울릉도와 독도 수토의 기점지역이며 19세기까지도 조선이 울릉도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어 역사적 의의가 크다. 지난 2011년 8월부터 2012년 4월까지 진행됐던 망양~직산간 도로 확·포장 공사 유적발굴조사 현장에서 발굴을 책임졌던 (재)삼한문화재연구원은 월송포진의 남쪽 성벽과 문루, 우물, 기와무지 등을 발굴했다. 월송포진 성벽의 잔존 길이는 68.6m 규모이고 폭 5.8~6.2m, 높이 0.8~1.25m이며 외벽과 내벽으로 구성돼 있다. 또 성안에는 1군데의 우물터가 확인된다. 우물터는 성벽 북쪽으로 3m 가량 떨어져 있고 직경 130~150㎝, 깊이 180㎝ 규모의 원형 우물이다.

 

출처 : 울진21(http://www.uljin21.com)

 

 

평해 사구습지 생태공원 답사를 마치고

월송정으로 향하던 중

길가에 월송포진 성터라고 써져 있는 안내판을 보았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는 상황에

안내판 만 달랑 2개(그것도 사진은 오래돼서 없어졌다) 세워져 있었다.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부근은 현장 보존(?)으로 비포장도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