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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행궁 사진 2 (19.09.13)

약초2 2019. 9. 15. 17:14

화령전을 못 보고 와서 화성을 본 후 행궁 쪽으로 이동합니다.


행궁 담벼락





집사청(執事廳)

 

집사는 주인을 모시고 그 살림을 맡아하는 사람들로서 행궁의 집사청은 궁궐의 액정서(국왕이 쓰는 붓과 먹, 벼루 등을 보관하며 대궐안의 열쇠를 간수하고 여러가지 설비, 비품을 관리하는 관청)와 같이 잡다한 사무를 보던 집사들이 사용하던 건물이다. 죄익문 밖 동북 담 안에 있는데 1789년(정조 13)에 세웠다. 좌우 두 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낙남헌(洛南轩)

 

낙남헌은 일제강점기에 화성행궁이 철거될 당시 훼손당하지 않고 남아있는 건축물중 하나다. 낙남헌이란 이름은 후한의 광무제가 낙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궁궐 이름을 '남궁(南宮)'이라 한 것에서 따온 것으로 1794년(정조 18)에 완공되었다. 1795년(정조 19)을묘원행시에는 각종 행사가 이 곳 낙남헌에서 치러졌다. 정조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념하여 군사들의 회식을 이곳에서 하였으며, 특별과거시험을 치러 문과 5명과 무과 56명을 선발 하였는데 급제자에게 합격증을 내려 주는 행사도 이곳에서 있었다. 또한 정조는 혜경궁의 회갑연을 기념한 양로연을 시행 하였다.




사적 115호로 지정된 화령전은

2019년 8월 29일 화령전 운한각, 복도각, 이안청을 보물 제2035호로 승격됐다. 

화령전(華寧殿)

 

사적 제115호(1963.1.21) 화령전은 1801년(순조 원년) 정조대왕의 뜻을 받들어 화성행궁 옆에 세운 건물로 정조의 초상화를 모셔놓은 영전(影殿)이다. 영전은 보통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신위를 모신 사당과는 구별되는 건물로, 선왕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살아있을 때와 같이 추모하던 곳이다. 화성에서 ‘화’자와『시경』의 ‘돌아가 부모에게 문안하리라[歸寧父母]’라는 구절에서 ‘령’자를 따서 이름붙인 것이다. 화령전은 정조대왕의 뜻을 받들어 검소하면서도 품격 있게 만든 조선시대의 대표적 영전이다.




화령전 운한각에 걸린 정조의 어진

융복(군복)을 입고 있다. 원본은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옮기던 도중 분실되었고, 현재 걸려 있는 것은 2005년에 새로 그린 상상도이다.





보물 제2035호

수원 화령전 운한각·복도각·이안청 (水原 華寧殿 雲漢閣·複道閣·移安廳)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제사유적 / 제사터

수량/면적: 3동

지정(등록)일: 2019.08.29

소재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신풍로23번길 15 (신풍동)

시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수원시

 

수원 화령전은 화성 축조(1793~1796)를 주도 했던 정조(1752~1800)가 승하한 뒤 어진을 모실 영전 건축으로 1801년 건립되었으며, 전주의 경기전과 함께 궁궐 밖에 남아있는 드문 사례로 정조 이후의 모든 왕들이 직접 방문하여 제향을 하였다는 점에서 그 위상이 더욱 높다고 할 수 있다.

 

운한각, 복도각, 이안청은 화령전의 중심 건축군으로 정전인 운한각과 직각으로 이안청이 배치되고 복도각으로 연결된 ㄷ자형 구성으로, 조선초기 정자각 정전에 이안청이 별도로 있는 영전과는 달리 조선후기 변화된 새로운 형식의 영전 공간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 정전의 평면구성이 중앙에 어진을 봉안하는 합자를 두고 좌우에 온돌이 있는 협실을 두었으며, 여러 물품을 보관했던 퇴칸은 주칸의 크기를 달리해 격식을 두는 건축제도를 보여준다.

 

「승정원일기」와 「순조실록」에 건물 준공과정 및 「화령전응행절목」에 제사 절차 및 건물 관리 규범과 각 건물에 보관한 기물 등이 상세하게 적혀 전하고 있고, 19세기 궁궐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장인의 동원과 기술 및 기법이 건물 각 세부에 충분히 적용되어 있다.

 

현재 사적 제115호로 지정된 「수원 화령전」의 운한각·복도각·이안청 세 건물은 당대 숙련된 궁궐건축기술이 적용되었으며, 이후 수원의 근대적 도시 발전 과정에서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고 1801년 창건 당시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어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의미에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가치가 있다.










내포사


내포사(內鋪舍)

 

내포사는 행궁의 뒷담 안 왼쪽 기슭의 미로한정의 북쪽 50보(59.4m)쯤 거리에 위치하였다. 1796년(정조20) 9월 9일에 준공된 이 건물의 높이는 7척 5촌(2.32m)이다. 다만 온돌 1칸만을 놓았으며, 앞으로 반칸을 물려서 벽돌을 깔았다.







미로한정(未老閒亭)

 

미로한정은 행궁 후원(後苑)에 만든 정자이다. 후원 서쪽 담 안에 있었는데 미로한정이라는 말은 '장래 늙어서 한가하게 쉴 정자'라는 뜻이다. 노래당과 함께 갑자년(1804)에 세자에게 양위(讓位)하고 화성으로 가리라던 정조의 뜻이 담긴 이름이었다. 1790년(정조 14)에 세워 졌는데 1칸 6각정으로 '육면정(六面停)'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는 수원 추팔경의 하나인 한정품국(閒亭品菊 : 국화꽃 벌여놓고 황상하는 미로한정의 가을 풍경)의 경관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미로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