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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둘레길 숲해설을 듣고와서. 갤러리 구경은 덤!

약초2 2011. 9. 23. 14:41

북한산 둘레길 숲해설을 듣고 와서

 

1.날짜: 2011년 9월 17일(토)

2.시간: 10시~12시(약 2시간)

 

3.숲교육 코스: 북한산둘레길탐방안내센타→본원정사앞→냉골입구→화계사입구[둘레길 3구간(흰구름길) 일부코스]

 

4.참석인원: 2011년 2차 숲해설교육 동료분 10명과 유화숙님 친구분.

 

북한산 둘레길 종합안내도 앞에서 오늘 진행될 코스와 북한산 둘레길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는 최희원 자연환경안내원

 

 북한산 둘레길 종합안내도에 첨부된 상세지도

 

역시 북한산 둘레길 종합안내도에 첨부된 상세지도

 

5. 후기

이번에도 숲교육을 함께 받는 동료분들과 숲해설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장소가 북한산이다. 북한산 하면 정말도 수도없이 오르락내리락 했던 곳이다. 거의 안 가본 코스가 없을 정도로 다녔던 산이지만 둘레길은 처음이고, 더군다나 숲교육 숙제도 해야 하기에 기꺼이 참석했다.

 

토요일(17일) 아침, 같은 동네 사는 동료 수정씨와 함께 약속장소인 탐방센타 앞에 도착했다. 이미 도착하신 여러 선생님들의 모습이 보여 반갑게 인사를 나누웠다.

9시30분에 숲해설을 시작하는 줄 알았는데 정작 숲해설은 10시경에 시작했다.

 

둘레길탐방안내센터 앞에 설치된 대형지도가 있는 곳에서 북한산국립공원 수유분소에서 근무하는 자연환경안내원 최희원선생님의 북한산 둘레길과 북한산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 본격적인 숲해설이 시작됐다.

 

숲해설 코스는 북한산 둘레길 중 2구간(순례길)과 3구간(흰구름길)의 일부를 코스로 잡아 숲교육을 받았는데, 사실 2구간은(솔밭근린공원 상당~이준열사묘역 입구) 진행하지 않았다.

 

북한산 둘레길 탐방안내센터

 

 

북한산 둘레길에 대하여

 

북한산 둘레길은 기존의 샛길을 연결하고 다듬어서 북한산 자락을 완만하게 걸을 수 있도록 조성한 저지대 수평 산책로입니다. 둘레길은 전체 70km 중 서울시 구간과 우이령길을 포함하여 2010년 9월 7일 44km를 개통하고, 2011년 6월 30일 나머지 26km구간을 개통하였습니다.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어 걷는 둘레길은 물길, 흙길, 숲길과 마을길 산책로의 형태에 각각의 21가지 테마를 구성한 길입니다.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둘레길은 우리의 소중한 자연을 보존하는 길, 그리고 역사와 문화, 생태를 체험할 수 있는 길입니다.

 

북한산 둘레길 탐방안내센터

◆운영단(정릉): 02-900-8085

◆센터(수유): 02-900-8086

◆팩스: 02-900-8087

◆주소: 서울 강북구 수유4동 산73-1

 

[북한산 둘레길 사이트에서 발췌] http://ecotour.knps.or.kr/dulegil/index.asp

 

북한산 둘레길 [제2코스: 순례길] 솔밭근린공원 상당~이준열사묘역 입구

 

「자유, 민주, 정의가 살아 숨쉬는 곳」

독립유공자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 구간으로, 우리 조상의 불굴의 독립정신을 느낄 수 있는 구간입니다. 헤이그밀사인 이준열사와 초대부통령이신 이시영선생의 묘소, 조국을 위해 꽃다운 청춘을 바친 17위의 광복군 합동 묘소 등 모두 12기의 독립유공자 묘역이 조성되어 있으며,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잠들어 계신 4.19민주묘지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조상의 지혜가 담긴 자연친화적 다리인 섶다리와 계곡쉼터가 있어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구간입니다.

 

거리: 3.1km / 소요시간: 약1시간 10분 / 난이도: 하

 

교통편

◆솔밭근린공원 상단: 지하철 수유역 3번출구-버스 120번,153번 / 덕성여대입구 하차(길건너 도보 5분)

◆이준열사묘역 입구: 지하철 수유역 1번출구-마을버스(강북01번) / 통일교육원 하차

 

주차시설(유료)

공영주차장(둘레길탐방안내센터 앞)-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산73-1

 

볼거리, 느낄거리

국립4.19민주묘지 전망대, 독립유공자묘역, 섶다리, 둘레길탐방안내센터

 

 

2코스 순례길 개념도

 

북한산 둘레길 [제3코스: 흰구름길]

 

「땅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하늘길이 시작되다」

국립공원 경계를 따라 울창한 숲과 아담한 오솔길을 걷다보면, 12m 높의 구름전망대가 나옵니다. 독특한 모양의 원형계단을 통해 전망대에 오르면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용마산, 아차산, 서울도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경관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빨레골 계곡은 물이 맑고, 수량이 풍부해 대궐으 궁중 무수리들이 빨래터와 휴식처로 이용하면서 빨레골이란 명칭이 유래되어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거리: 4.1km / 소요시간: 약2시간 / 난이도: 중

 

교통편

◆이준열사묘역 입구: 지하철 수유역 1번출구-마을버스(강북01번) / 통일교육원 하차

◆북한산생태숲 앞: 지하철 길음역 3번출구-버스 1014, 1114번 / 북한산생태숲(종점) 하차

 

볼거리, 느낄거리

화계사, 구름전망대, 작은구름전망대, 빨래터

 

 

3코스 흰구름길 개념도

 

 다소 빠른 걸음으로 진행하는 최희원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산 둘레길은 각종 푯말과 상기 지도처럼 안내판 등이 자주 설치되어 있어서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둘레길탐방안내센타가 있는 곳에서 숲속 방향으로 진행하여 이준열사 방향으로 진행을 해야 둘레길 2구간 끝부분을 진행할 수가 있는데, 탐방센타에서 곧바로 도로로 나와 주택가로 접어들면서 3구간인 흰구름길 구간을 시작했다.

 

마을길을 지나 본격적인 숲이 시작되는 곳에서 첫 번째 설명이 시작됐다. 최희원선생님은 내년이면 북한산국립공원에 근무하지 10년째 접어드는데 강산이 변하는 10년 세월에 숲 생태도 많은 변화가 목격됐다고 설명을 하는데 무척 동감을 했다.

 

얼마간 진행을 하니 「둘레길에서 한 편의 명언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써진 안내판이 설치된 다소 넓은 공터에 도착하는데 이곳에서 두 번째 설명이 이어졌다.

 

최희원선생님은 북한산 둘레길에 총 46개의 안내판을 직접 설치했다고 한다. 잠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데 이곳 수유동 쪽 둘레길에다 일본사람의 명언을 설치했는데 주민들이 안내판을 넘어뜨리는 등 훼손을 하는데, 사연인즉 이곳 수유동 쪽 주민들은 보통 30년 이상 주거하고 있고, 이곳이 독립유공자 지역이라 반일감정이 많아 하필 일본인이 쓴 명언을 두고 볼 수는 없었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글쓴이의 마음도 똑같이 느껴진다.

 

공터에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 있는데 모기가 극성을 부리는데, 때 마쳐 모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는데 모기는 혈액 속에 지방성분이 많은 사람들이 모기에 잘 물린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곳 북한산 자락은 워낙 샛길도 많고 사람들이 많이 오르락내리락 하여 등산로가 많이 훼손이 되었는데 그나마 둘레길이 생겨 샛길이용을 어느 정도 방지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간다.

훼손된 등산로에 코아매트를 설치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이동을 하는데 속도가 보통의 숲해설가 선생님과는 다르게 조금 빠르게 진행을 한다.

 

 함께 동행한 숲교육 동료분들

 

 북한산 둘레길 3구간 흰구름길 일부 모습

 

 북한산 국립공원은 샛길이 많이 형성되어 있고 그림과 같이 많이 훼손되어 있어 나무 뿌리가 그대로 지상에 노출되어 있다.

 

공터에서 잠깐 휴식중!

 

 역시 같은 장소!

 

조금 진행하니 선생님은 갑자기 「1번」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1번이 무엇인가 봤더니 다름 아닌 산초나무이다.

이후 약 100m 정도를 진행하더니 다시 「2번」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설명이 이어지는데 1번을 찍고, 약 94 걸음을 걸었는데 통상 약100m라고 치면 100m 안에 산초나무가 두 그루밖에 서식을 하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한다.

산초나무 같은 것은 일상생활과 매우 밀접하기 때문에 마을 근처에 있는 산초나무는 살아 남아 있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제 숲길을 벗어나 다시 차도로 내려섰다. 이곳 지명이 「냉골」이다. 이곳에서 다시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수유동의 옛 이름인 무너미골에 대한 설명이 길게 이어진다. 이어 이곳이 복개된 곳이라는 설명도 함께 이어졌다.

 

 

강북구 지명유래(강북문화원에서 발췌. 홈피: http://www.gbculture.or.kr/)

지명

지명 유래

미아동

조선말 고종 2년(1865)에 편찬한 [육전조례]에 한성부 동부 숭신방(성외) 미아리계라고 공식기록에 처음 나타나는데 그 유래는 획실하지 않으며,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되너미고개(돈암현)을 일명 미아리고개라고 부르는 까닭에 고개이름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는 설과 미아 7동에 있는 불당(佛當)골에서 미아사(彌阿寺)가 오랫동안 있었으므로 이 절 이름에서 동명이 유래 되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여하간 미아리라는 한자 뜻 그대로 언덕에서 쉬어간다는 마을 이름인 만큼 동명과 고개와는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하겠다.

수유동

조선 태조 5년(1396)에 동부에 속했으며, 그뒤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수성책자 [도성삼군분계총록]에 동부 숭신방(성외) 가오리계, 수유촌계, 우이계로 되어 어영청 전영에 소속되어 도성방어에 일익이 되기도 하였다. 수유동명의 유래는 삼각산 골짜기에서 물이 이 마을로 넘쳤기 때문에 물 수(水)자와 넘칠 유(踰)자를 써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우리말로는 물이 넘친다 하여 '무너미'라고 부르게 되었다.

빨래골

수유동 486번지 일대의 이곳은 삼각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의 양이 많아 '무너미'라고 부르게 되었다. 물이 많아 자연적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인근 주민들의 쉼터와 빨래터로 이용되었고, 당시 대궐의 궁중 무수리들이 빨래터와 휴식처로 이용하면서 빨래골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으며 지금도 널리 일반인에게 통용되는 지명이다.

번동

18세기 중엽 정선 그린[도성대지도]와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에 벌리(罰里)로 표시되어 왔으며 갑오개혁때 동서숭신방(성외) 동소문외계번리로 되어 있다. 이때 벌리(伐里)가 번리(樊里)로 바뀐 것 같다. 번동이라는 동명의 유래를 살펴 보면 고려 시대에 씌여진 [운관비기]라는 책에 "李氏가 한양에 도읍하리라"는 비기설이 있어, 고려 말기의 왕과 중신들이 이 설에 의거 경계를 하던 중, 한양 삼각산 아래 이곳에 오얏나무(李)가 무성하다는 말을 듣고 李氏가 흥할 징조라 여겨 오얏나무를 베기 위해 벌리사를 보냈는데 이로부터 이곳을 벌리(伐里)라 칭하다가 번리(樊里)기 되었다고 한다.

우이동

동리 뒤에 있는 삼각산 봉우리 중에 소 귀 같이 보이는 봉우리가 있으므로 소귀봉 즉 우이봉 아래 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전해진다. 우이동은 도성에서 꽤 먼 거리에 있지만 오래전부터 서울의 성외 지역의 한 마을로 되어 있었으며, 고종 4년(1867)에 발간된 육전조례에 한성부 동부 숭신방(성외) 우이동계가 있었고 또 갑오개혁 당시에 문서에 동서숭신방(성외) 동소문외계에 우이리가 있다.

가오리

가오리는 현재 수유동 우이초등학교 등이 있는 곳으로 옛날 미아리 고개에서 장사를 지내는 소리가 임금에게까지 들리자 번잡스러우니 오리(五里)를 더 가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이동을 했다. 떡공장을 좌측에 끼고 능선에 진입한다. 이번에도 조금 빠른 걸음으로 앞장서시는 최희원선생님을 따라 열심히 올라간다.

 

이제 마지막 설명 장소인 넓은 공터에 다다라 이곳에서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커다란 밤나무가 눈에 띈다.

나무의 혹, 아카시와 아카시아의 구분, 다람쥐와 청솔모의 차이(동면의 차이)와 청솔모에 대한 오해부분에 대한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이어 산성을 좋아하는 진달래, 삼림욕하기 제일 좋은 시간은 2~4시가 가장 좋다는 예기도 이어졌다.

 

피톤치드

-나무에서 방산(放散)되어 주위의 미생물 따위를 죽이는 작용을 하는 물질.

산림욕 효용의 근원이다. -다음 국어사전 인용.

 

피톤치드란 단어는 근래 매스컴에서 많이 사용하는 말로, 일반인들에게도 많이 사용되어지고 있다.

 

영문 표기는 Phytoncide 로 phyton(식물)과 cide(죽이다)의 합성어이다.

 

러시아 학자에 의해 처음 사용된 용어로 조물주가 사람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극찬하는 사람도 있다.

 

피톤치드는 나무가 외부의 해충이나 침입자들로부터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스스로 내뿜어 해로운 해충, 진드기는 접근을 못하게 하고 (기피), 사람에게는 이롭게 하는 방향성 물질로서 모든 나무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피톤치드를 발산하는데 나무 각각의 분사하는 피톤치드의 양은 물론이고, 성질과 특성 그리고 기능면에서도 확연한 차이가 있다. 활엽수보다는 침엽수가 피톤치드를 더 많이 생산한다. 기존의 피톤치드 수목으로는 편백나무가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는 일본에서 피톤치드 산업이 먼저 발달함으로써, 일본에 주로 산재해 있는 편백나무에서 피톤치드 성분을 많이 추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화계사 입구에 설치된 지도

 

 화계사입구에서 마지막 설명을 하는 최희원선생님

 

설명을 마치고 이제 숲을 빠져나오자 화계사 입구에 도착했다. 오늘 일정의 마지막 장소이다.

이곳에서 제일 처음 언급했던 소나무 굽은 이유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소나무에 대한 영문표기가 「Japanse red pine」로 쓰는 것에 많은 아쉬움을 토로하면서 잣나무의 영문표기가 「Korean Pine」임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소나무의 중요성에 대하여 상당시간 할애하며 열심히 설명을 해준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금강소나무에 대하여

 

조선시대 우리 선조는 이 멋들어진 나무에게 강송(鋼松)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 중에서도 속이 누렇고 잘 썩지 않는 녀석에게는 별도로 황장목(黃腸木)이라는 이름을 주고 아껴왔다.

이 나무는 왕실의 전용 목재로서 궁궐을 짓거나 관곽재로 사용되었다.

죽어서 천년이라는 말처럼 목조건축물로서의 위용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일본의 침략으로 이름이 바뀐 황장목과 춘양목….

 

일본이라는 나라는 유난히 나무에 집착하는 나라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 수군이 황장목으로 만들어진 거북선과 판옥선에 의하여 대패했기 때문이다.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황장목의 명칭을 적송(赤松)이라 정한 그들은 적송(Japanse red pine)으로 명명하여 외국에 알렸다.

 

이렇게 왜곡된 영문 이름 Japanse red pine은 안타깝게도 지구가 없어질 때까지 변할 수가 없다.

 

황장목을 대량 반출하기 위해 일제는 1941년 영동선(영주~강릉)에 춘양역을 만들었다.

직선으로 놓아도 될 철로를 억지로 산속으로 연결했다 해서 유래된 말이 억지춘양….

이때부터 춘양목이라는 이름이 목재상들을 통해 구전되게 되었다.

 

금강송으로 불리던 명칭이 최근에 금강소나무로 통일되었지만, 지금도 대부분의 목재상들과 목수들 심지어 문화재 복원공사의 중책을 맡은 장인들조차 우리의 금강소나무를 일본식 표기인 적송으로 부르고 있다. 기가 막히는 현실이다. 그들에게서 역사의식을 찾아볼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구상에 한국에서만 자생하는 금강소나무의 영문 이름을 금강소나무(Korean red pine)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고민에 잠겨본다.(인터넷에서 발췌)

 

마지막으로 삼각산과 북한산의 지명유래에 대한 설명이 다시 길게 이어지면서 더불어 한양천도의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이 대목에서 광화문 앞에 설치된 해태상 만으로는 관악산의 화기를 잠재우기 힘들기 때문에 숭례문의 현판글씨를 세로로 썼다는 말도 덧붙여 설명을 했다. 이렇게 서울의 역사와 유래 등을 듣고는 아쉬운 작별을 했다.

 

오늘 숲해설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숲해설교육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최희원선생님이라 단편적인 나무, 풀 등에 대한 설명 보다는 지명, 유래에 대한 설명에 더욱 공을 들였던 것 같았다. 이에 글쓴이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다시 한 번 복습의 차원에서 다시 들었고, 어떻게 설명이 이어지는 것에 대해 포커스를 맞춘 하루였다.

열심히 설명을 해주신 자연환경안내원 최희원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강북구 문화유적지로서의 화계사를 말한다.

 

화계사는 천년을 이어온 전통 문화사찰입니다.(화계사사적비문참조)

강북구에서는 도선사와 아울러 가장 많이 알려진 사찰로 서울시민은 물론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강북구의 자랑입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화계사와 관련된 문화 유적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출처; 화계사 불교문화 해설서 참조)

 

* 화계사 대웅전 서울시유형문화재 제65호(1986년)지정

* 화계사 동종 300년 보물 제11-5호 (2000년 2월15일)지정

* 화계사 보화루 한글맞춤법통일안(1933년 10월 공표) 집필

 

한글맞춤법통일안 수정안을 재검토하고, 이를 전체적으로 마무리 짓기 위하여 정리위원 9명(권덕규· 김선기· 신명균· 이희승· 이윤재· 정인승· 최현배 등) 화계사 보화루에서 기거하면서 마지막 정리를 하게 한 뒤 1933년 10월 29일 한글맞춤법통일안을 공표하였다.

 

* 오탁천(약수터)

까마귀가 쪼아서 솟아난 샘물로 알려져 선조임금과 흥선대원군이 피부병을 고쳤다고 전해 내려온다. 또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오탁천은 화계동일대(수유리, 우이동, 번동, 미아동)의 많은 주민들이 애용하던 약수터이다. 화계동 계곡은 화계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 명필가의 친필 현판

조선말 명필들(흥성대원군, 정학교, 신관호 등)의 친필 현판들을 감상할 수 있다.

 

* 유수옹 1벌(놋물드므 )

홍대비가 1904년에 하사한 궁궐에서만 볼 수 있는 유물로 올해로 107년 된 조선왕실의 유물이다.

 

* 북한산둘레길 흰구름길 구간 ‘불교문화유적지’

화계사는 북한산 둘레길이 조성되면서 수많은 탐방객들이 둘레길을 지나다 화계사의 열린 마루에서 쉬어가곤 간다. 화계사가 종교시설이지만 탐방객들은 불교문화유적에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 의 숨결을 느낀다.

 

* 450년 된 느티나무

화계사는 화계사 창건당시 심어진 450여년 된 느티나무 3그루가 있다. 아름드리 나무아래 열린 마루에서 흐르는 땀을 식히고 있노라면 삶의 모든 시름이 한 순간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한다.

 

* 세계적인 사찰 화계사 (숭산스님과 국제선원)

화계사는 서울의 유명사찰로 우리나라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더 잘 알려진 사찰이다. 화계사에 주석하셨던 숭산 큰스님은 세계평화의 염원을 이루고자 35년여 년의 세월 동안 세계16개국에 45개 선원을 개설하고 8만여 신도를 두었다, 또한 숭산 스님은 전 세계를 돌며 세계일화(世界一花) 사상을 널리 알리고 인류의 영적스승으로 추앙을 받으셨던 스님이다. 화계사는 이미 세계 사람들에게 불교와 우리 한국의 전통을 배우고자 찾아오는 사찰이 되었다.[인터넷에서 발췌]

 

화계(華溪=花溪=꽃골)

지명 ‘화계’와 관련된 공식 기록들

 

1. 화계사 사적비문에 의하면 『화계사 창건 당시 사찰 명 화계사(華溪寺)는 화계동(華溪洞=꽃 골)에서 연유되었다.』고 분명히 적고 있습니다.

 

2. 강북구 우이동 주민센터의 홈페이지에 의하면『1949년 8월13일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에 속한 행정구역을 서울시에 편입시키고 ‘화계동’ 이라 하였다.』고 되어있습니다.

 

3. 2009년에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지명사전에 의하면 『화계동은 1955년 4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6호에 의해 행정동제가 실시될 때 설치되어 번동과 우이동・수유동 일원을 관할하게 되었다. 이후 1970년 5월 5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13호에 의해 화계동은 폐지되고 번동・수유제1동・수유제2동이 설치되어 번동과 우이동・수유동 일원을 각각 관할하게 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또한 화계천(華溪川)은 강북구 수유동 삼각산 남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우이천과 합류되는 한강 제3지류이다. 길이 2.8㎞, 평균하폭 20m인데 전 구간 복개되어 있다.

 

 

갤러리 자작나무

 

갤러리 자작나무

 

숲해설교육을 마치고 이제 점심때가 돼서 유화숙선생님이 점심을 제공한다고 해서 일부 동료분들은 택시를 타고 먼저 이동을 했고, 나머지 분들은 버스를 타고 식당에서 합류하여 맛있는 점심을 먹고, 유화숙선생님이 운영하고 있는 갤러리로 이동하여 잠시 갤리리 내, 외부에 자생하고 있는 수목에 대한 설명도 듣고, 때 마쳐「섬은 홀로 걷는다」라는 제목으로 조경희 개인전이 전시(2011.09.16[금]~2011.09.29[목])되어 있어 전시 작품도 감상했다. 조경희작가님도 직접 방문하여 조경희작가님의 일상생활에서부터 전시작품에 대한 설명까지 폭 넓은 이야기도 함께 들어서 좋은 시간을 가졌다.

 

이런 좋은 시간을 물심양면으로 제공해주신 유화숙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6.참고내용

(1)학명 읽는 법

주로 학술적으로 사용되는 생물에 대한 이름을 학명(Scientific name)이라고 한다. 이는 지역에 따라 달리 쓰이는 일반명(Common name)과는 달리 전세계적으로 한 생물 당 한 개밖에 없고 이름을 통하여 식물의 형태나 분포를 짐작할 수 있어 편리하다. 예를 들어 소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되는 일반명이고 학명을 Pinnus densiflora ZIEB. et ZUCC.이다. 학명은 속명, 종명, 명명자 순으로 이루어졌으며 라틴어를 사용한다. 따라서 피누스 덴시플로라 지볼디이 에트 죽까르니히라고 읽어야 한다. 명명자는 모르더라도 속명과 종명을 알아두면 편리하다. '소나무는 피누스 덴시플로라' 라고.

 

학명은 될 수 있는 대로 라틴어로 쓰고, 이름지은 학명은 반드시 라틴말 소리값으로 읽어야 한다. 예컨대 소나무 학명인 Pinus densiflora를 제대로 읽자면 '피누스 덴시플로라'이다. 그런데 이미 소리값이 사라진 라틴어를 정확하게 읽는 것은 유럽 사람들조차도 완벽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누구나 같이 읽자고 만든 학명이라면 될 수 있는대로 옳게 읽어야 할 것이다. 누구는 이렇게 다른 이는 저렇게 읽는다면 우리가 굳이 학명을 써야 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학명을 같은 서양 언어라고 해서 영어나 독일어 식으로 읽어도 안 되며,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자기 편할대로 읽는 것은 더욱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정식으로 안 배우고 처음부터 알 수는 없는 일이고, 또한 남의 나라 말이니 더욱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는 해도 누구나 안틀리고 읽는 부분은 우리도 이제는 옳게 따라야 한다는 뜻에서 여기 몇 가지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을 적어본다.

 

(가) 모음

1) 모든 모음은 따로 읽는다. 예컨대 속명 Abies는 '아비에스'로 종명인 thunbergii는 '툰베르기이이'로, leianthus는 '레이안투스'로 읽어야 한다.

 

2) 주로 과 이름에 나오는 겹모음은 한 소리로 읽는다. 예컨대 과 이름 Pinaceae는 '파나체애'로 속명 Paeonia는 '패오니아'로 읽어야 한다.

 

3) i 는 '이'로 읽고 '위'로 읽으면 안 된다.

 

4) y는 단어 앞 첫 음절에 놓이거나, 그 바로 뒤에 모음이 나오든지, 또는 두 모음 사이에 놓였을 때 '이'로 읽지만, 그 밖에는 모두 '위'로 읽는다.

 

5) 겹모음 eu는 음절 앞에 오면 '오이'로, 끝에 붙으면 '에우'로 따로 읽어야 한다. 예컨대 Euonymus는 '오이오뉘무스'로, coccineus는 '콕치네우스'로 읽어야 한다.

 

(나)자음

1) 모든 c는 e, i, ae, oe, y 앞에서는 'z'로 읽고, 다른 모음이나 자음 앞에서는 'k'로 읽는다. 예컨대 Picea는 '피체아'로 Caesalpinia는 '채살피니아'로, Acer는 '아처 또는 아체르'로, Circium은 '치르치움'으로, Cydona는 '치도니아'로, Cacalia는 '카칼리아'로 읽는다.

 

2) 겹자음 cc는 'kz'로 읽는다. 예컨대 coccineus는 '콕치네우스'로 읽는다

 

3) 자음 q, g, s는 모음 u가 뒤에 오면 하쳐서 'qv', 'gv', 'sv'로 읽어야 한다. 예컨데 Quercus는 퀘르쿠스(!)가 아닌 '크베어쿠스'로 읽어야 한다.

 

4) j는 자음이지만 모음 앞에서는 겹모음처럼 읽어야 한다. 예컨대 japonica는 자포니카(!)가 아닌 '야포니카'로 읽어야 한다.

 

5) 라틴어 자음은 써진 대로 모두 읽어야 한다. 예컨대 Robinia psedoacacia는 '로비니아 프소이도아카치아'로 읽어야 하고, '수도아카시아'로 부르는 것은 학명이 영어라면 몰라도 라틴어로 쓰고 읽어야 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6) 자음 가운데 g는 '그'로 소리난다. 예컨대 은행나무 학명인 Ginkgo biloba는 '징코 비로바'가 아니라 '깅코 빌로바'로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