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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부암동 백사실계곡에 다녀와서

약초2 2011. 9. 5. 22:44

서울 종로구 부암동 백사실계곡에 다녀와서

 

1.날짜: 2011년 9월 3일(토)

 

2.시간

-08:00 집 발

-10:00~12:00 숲 해설시간

-12:05~12:30 백사실계곡 탐방

-귀경길에 조계사 탐방

-14:00 귀가

 

3.함께 숲교육을 받은 사람: 어른 8명(박선희씨, 장기숙씨, 이름 모르는 젊은 여성 5명, 본인). 어린아이 3명 합 11명.

 

백사실계곡 탐방코스(빨간색이 탐방한 구간이다)

 

4.후기

「서울 종로구 부암동 백사실계곡!」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이었을까? 한마디로 요약하면 실망 그 자체였다. 그래도 숙제 1건을 했다는 것에 만족했다. 어차피 한 번은 가 봐야할 곳이었다.

 

숲해설교육을 함께 받는 동료 장기숙씨가 백사실계곡 숲교육을 받으러 간다기에 백사실계곡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흔쾌히 참석하겠다고 하고는 참가 전날 인터넷을 뒤져 백사실계곡을 공부했다.

포털 「다음」에서 검색했는데 그 곳에는 백사실계곡에 대해 「서울의 숨겨진 보물」이라고 써져 있고, 더군다나 명승(36호)에 까지 지정된 곳이어서 무척 기대가 컸다.

 

다음날 아침, 만남의 장소인 세검정초교까지 가는 시간을 잘 몰라 2시간 정도 여유를 두고 가면 되겠지 싶어 8시에 집에서 출발했다.

버스를 타고 청량리에서 내려 지하철로 이동하여 종각역에서 내려 1번출구를 빠져나와 두 번째 정거장(「종로구청 입구」 표지판 있음)에서 1020번(초록색) 버스를 타고 17분 걸려 세검정초교앞에서 하차했다. 시간을 보니 15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우측의 운동기구가 설치된 곳에 벤치가 보여 그쪽으로 이동을 하니 미리 와있던 박선희씨가 반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벤치에 앉아 이런 예기, 저런 예기를 나누고 있는데 숲해설가분이 나타나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아직 장기숙씨가 나타나지 않아서 전화를 하니 마을버스타고 오는 중이라고 한다. 약속시간(10시) 1분을 앞두고 장기숙씨가 나타난다.

 

 

백사실계곡 안내문

 

 부암관광문화명소 안내 지도

 

 동명 유래

 

오늘 숲해설을 받는 사람은 숲해설교육을 함께 받는 동료 세 사람 외에 다른 팀에서도 참가를 했는데 여성 4명에다가 어린이 2명 이렇게 모두 9명이 참가했다.

숲해설가분 예기는 한 팀이 더 오기로 돼 있는데 마냥 기다릴 수 없다고 하여 백사실계곡을 향해 출발했다(10:04).

 

 

홍제천과 북한산의 모습

 

홍제천(4.특기사항 ③홍제천(弘濟川) 참고)이 가로지르는 다리(신영교)를 건너 주택가로 접어드는데 도로가 길 가장자리에 나 있는 「그령」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면서 숲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결초보은의 유래(4.특기사항 ④결초보은 [結草報恩] 참고)와 함께 생명력이 무척 강함을 강조하였다.

이후 주택가 도로를 지나가면서 「기생초」, 「회양목」, 「서양등꼴나무」등의 설명이 이어졌다.

 

 백사실계곡으로 가는 길에는 푯말이 세워져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어린아이가 세 명이어서 숲해설가분께서는 어른이 많기 때문에 어른 위주로 숲해설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에게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가끔씩 어린아이를 위한 숲해설도 하겠다고 한다. 좋은 기회이다. 대상이 어른과 아이들이 혼합되어 있을 때 어떻게 진행을 하는지 유심히 관찰을 했다. 숲해설교육과정을 받기 이전에 숲 해설을 서너 번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모두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나무와 풀이름만 주로 전달되는 그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구암하이빌아파트 옆 길가에 강아지풀이 있어 숲해설가분께서 강아지풀을 꺽어 어린아이들에게 전달한다.

조금 떨어져 있는「배롱나무」에 대해서 설명을 한 숲해설가분은 이제 본격적으로 백사실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이곳에서 여성 한 명이 초등학생 여아 1명을 데리고 합류했다.

 

백사실에 대한 유래부터 설명을 하는데 기록(문헌)에 나와 있는 것이 없어서 백사실계곡이란 말이 어떻게 내려왔는지 잘 모르고 단지 조선 중기때 문신인 이항복의 호가 백사이기 때문에 백사실계곡으로 불리워졌을거라는 추측만을 할 뿐이라고 한다. 또한 이곳을 백석동천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백석 즉, 멀리서 보면 흰색의 바위로 보이는 북악산(옛 이름은 백악산이다) 북사면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을 한다. 조금 후면 확인할 별서터 역시 누구의 별서터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밖에 월암(바위)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고는 도성 밖으로 내사산(內四山)이 있는데 동(낙산), 서(인왕산), 남(남산), 북(북악산)의 내사산이 그것이다 라는 말과 함께 외사산(外四山)에 대한 설명도 했는데

북쪽의 북한산(836.5m), 서쪽의 계양산(계양산이 아니고 덕양산(125m)이 맞다), 남쪽의 관악산(631m), 동쪽의 아차산(아차산이 아니고, 용마산(348m)이 맞다)을 일컬어 외사산이라 하는 것까지 설명을 들었는데 산을 자주 다니는 글쓴이는 외사산과 내사산에 대한 것은 정확히 알고 있어서 숲해설가님의 체면도 있고 해서 틀린 부분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갔다. 나중에 숲해설이 끝난 후 개인적으로 말해야겠다 하고는.

 

이곳 백사실계곡이 유명하게 된 것은 도룡뇽 때문인데 해설가분은 2004년에 도룡뇽 알을 구경했다고 한다. 올해는 아쉽게도 도룡뇽 알의 개체수가 무척 적어 환경이 훼손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무척 아쉬워한다. 더불어 출입금지 현수막을 설치하여 이제는 계곡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도 알려줬다.

 

 중국단풍

 

이제 백사실계곡에 대한 유래를 마치고 백사실계곡을 향해 이동을 한다.

장기숙씨가 곧바로 나타난 나무의 이름을 몰라 숲해설가분에게 여쭤 본 나무는「중국단풍」이라는 것과 이 중국단풍이 오리발처럼 생긴 것하며 일산에 가면 가로수로 심어져 있다는 것까지 말을 해준다. 또한 중국단풍 열매로 아이들에게 씨앗날리기를 하며 씨앗공부도 시켜준다.

 

 이곳까지 승용차 통행이 가능하다. 백사실계곡은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가죽나무에 붙어 있는 중국매미

 

숲해설가 선생님의 손에 있는 중국매미의 모습

 

이어 「명아주」에 대한 설명도 이어진다. 이제 찻길이 끝나고 계단길이 이어진다. 이곳까지 대략 신영교에서 140m 거리이다.

 

계단 오름길에 좌측 건물 옆으로 가죽나무 2그루가 심어져 있었는데 이곳에서 숲해설가분은 매미를 잽싸게 잡고는 중국매미에 대하여 설명이 이어진다. 가죽나무에 여러 마리의 중국매미들이 붙어있는 것이 목격된다.

 

조망이 터지면서 인왕산이 조망된다.

 

계단을 다 올라가니 조망이 터지면서 우측으로 인왕산이 멋지게 조망된다. 길가에는 「둥근잎유홍초」가 군락지어 있다.

이곳에서 숲해설가분은 좌청룡(낙산)과 우백호(인왕산)의 이야기와 함께 모악재에 대한 설명도 깃들여 이야기를 해준다.

 

날씨가 무척 청명하여 인왕산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지만 숲해설을 들어야 하는 처지라 아쉬움을 달래며 인왕산과 점점 멀어지며 숲해설가분을 따라간다.

 

둥근잎유홍초

 

둥근잎유홍초

 

봉숭아에 대해서 설명을 하시는 숲해설가 선생님

 

봉숭아

 

다시 길가에 핀 봉숭아에 대한 설명이 길게 이어지고, 이어 「바랭이」로 우산만들기를 한다. 글쓴이는 그저 곁에서 구경 만 했다. 바랭이로 만든 우산은 우산이라기 보다는 계란요리를 할 때 계란이 잘 풀어지라고 흔들어 주는 그런 기구 같았다. 어린아이 세 명이 참 잘 따라한다.

 

숲해설 참여자들이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다.

 

삼각산 현통사(백사실계곡 초입부에 세워져 있다)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내려가서 소원성취 배를 띄었다.

 

화창한 날씨 덕인지 숲해설가분은 새에 대하여도 설명을 한다. 참새, 직박구리 등 새들이 가을에 왕성한 활동을 한다는 예기를 설명해준다.

이어서 길가에 떨어진 참나무 줄기를 주어서 「도토리거위벌레」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도토리를 까서 루빼로 도토리 열매에 숨어있는 벌레까지 보여주며 설명을 한다. 참나무에 대한 설명이 길게 이어진 후 「상수리」까지 설명이 이어진다.

 

길바닥에 떨어진 상수리 잎으로 배를 만든 후 소원빌기를 한다며 이동을 한다.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내려가니 암반에 고여 있는 물이 있고, 그 아래로 물이 떨어지는데 폭포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어쨌든 이곳에서 배를 띄우며 소원빌기 배띄우기를 했다. 정면으로 일주문에 「삼각산 현통사」라고 써진 사찰이 보인다.

 

실질적인 백사실계곡 초입부 모습

 

 

 

이번 숲해설에 같이 참여한 여성분과 어린 딸 모습

 

이정표(백사실계곡에 이정표가 잘 세워져 있다)

 

각종 푯말

 

삼각산 현통사

 

백사실계곡이 생태보전지역임을 알리는 푯말

 

지도 부분 만 확대했다.

 

삼각산 현통사와 각종 푯말이 세워져 있는 백사실계곡의 초입부

 

소원빌기 배띄우기를 마치고 암반 위로 올라가니 널찍한 공터가 나온다. 이곳에 각종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이곳이 백사실계곡 시작점임을 알리고 있다. 그러니까 백사실계곡 하류부인 셈이다.

이곳 백사실계곡에는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화장실 가실 분은 사찰(현통사)로 가서 해결을 하라고 알려준다. 덕분에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개도맹 서포터즈 안내 푯말

 

출입금지 현수막

 

별서터

 

화장실을 다녀온 사람들과 합류한 후 본격적인 백사실계곡 탐방(해설)에 들어갔다. 이곳부터는 모기가 있다고 하여 미리 준비해 온 약품(천연제품. 모기기피제)을 참가자들에게 뿌려주는 자상함을 보여준다.

 

가장 먼저「산초나무」가 반긴다. 산초나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조금 이동하니 드디어 별서터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휴식시간을 가졌다. 시간을 보니 숲해설 시간도 30여 분 정도 남은 것 같았다. 오늘 숲해설은 여기까지이고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고 하니 젊은 여성분들과 어린아이들은 무척이나 좋아한다.

 

별서터 연못터

 

별서터

 

 

 

별서터 부근 공터 모습

 

별서터에 자리 잡고 있는 느티나무

 

별서터에 자리 잡고 있는 느티나무

 

휴식을 마치고 이곳 별서터 유래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이곳이 백사 이항복의 별서터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곳 역시 전해 내려오는 문헌이 없기 때문에 정확히 누구의 별서터인지 모른다는 내용이다.

 

이곳 별서터에는 남북을 중심으로 육각정자와 연못이 있고, 약 3.78m 정도의 높은 대지 위에 사랑채 부분과 안채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현재 사랑채와 정자 등은 건물터에 기초만 남아 있다.

 

별서터 정면 산기슭에는 「월암(月巖)」이라고 써진 각자(刻字)바위가 잘 보인다.

이곳에서 백석동천에 대한 설명을 다시 들은 후 주변에 오래된 거목의 느티나무 4그루와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어 이곳이 별서터임을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이어 카드게임을 하는데 호기심에 무척 궁금했는데 다름 아닌 곤충과 애벌레의 짝 찾기 게임이었다.

카드게임을 하면서 숲해설가분에게 성함을 물어보니 「오수경」이라고 말하면서 처음에 예기 안 한 것에 대한 미안함에 잠시 쑥스러워 한다.

 

카드놀이 하는 참여자분과 해설사님

 

모기기피제를 만들고 있는 해설사님

 

모기기피제를 만들고 있는 해설사님과 따라 하는 참여자 분들

 

카드게임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모기 쫓는 약 만들기를 시작했다. 천연약품으로 만들기를 하는데 모두들 무척이나 호기심을 갖고 열심히 숲해설가 선생님을 따라한다.

 

 

부암동 백사실계곡 숲해설사이신 오수경 선생님

 

직접 본인들이 천연약품으로 만든 모기기피제를 각각 선물로 받고, 기념사진도 촬영하고는 숲해설을 마쳤다. 숲해설교육과정을 하면서 처음으로 들어보는 숲해설이었는데 오수경선생님(010-6628-9842)은 어느 정도 경력이 엿보인다. 무척이나 성심껏 설명하는 모습과 어른 위주의 해설에 간간히 어린아이들에게 까지 세심하게 설명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유적 발굴조사 안내 푯말

 

월암 각자바위

 

월암 각자바위

 

선약이 있는 장기숙씨와 박선희씨와 작별을 한 후 글쓴이는 백사실계곡에 대해서 좀 더 탐방하고 싶어 하산하지 않고 계속 탐방을 했다.

 

가장 먼저 별서터 맞은편 산기슭에 있는 월암바위를 향해 올라갔다. 등산로가 희미하지만 이내 월암바위 앞에 도착했다. 월암바위 보는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백사실입구 방향으로 진행했다.

 

백석동천 각자바위와 해설판

 

부암동 백서동천 해설판

 

백석동천 각자바위

 

이제 월암바위에서 내려와 상류 쪽으로 향했다.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측으로 방향을 잡았다. 1~2분 정도 진행하니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고 써진 각자(刻字)바위가 나타난다. 그 옆에 해설판도 세워져 있다. 잠시 해설판을 읽고, 사진도 두 어장 찍고는 다시 진행한다. 얼마 안 가 민가가 나오면서 탐방로가 끝이 난다. 너무나 시시하게 끝나버렸다. 별서터에서 아마 1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백석동천 각자바위에서 시간 지체를 안했으면 아마 6~7분 정도면 될 것 같다.

 

 동네 골목길 관광 제4코스 부암동 푯말

 

이곳(백사실계곡)이 1급지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물봉선 군락지

 

되짚어 되 내려간다. 아까 만난 삼거리에서 이번에는 약수터 방향으로 방향을 튼다. 곧바로 약수터 가는 길이 나온다. 약수터로 가려면 좌측으로 가야 하는데 계곡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계속 직진했다.

 

수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래도 백사실계곡의 명성답게 흐르는 물이 무척이나 깨끗하다. 중간 정도 가니 두 분이 계곡에서 탁족을 하고 있다. 이곳 계곡에는 현수막이 걸려 있지 않으니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지나갔다.

조금 더 올라가니 물봉선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물봉선이 피어 있는 것을 보니 이곳이 1급수가 맞긴 맞나보다!

 

 이곳에서 백사실계곡 탐방을 마쳤다.

 

물봉선 군락지를 지나니 이내 백사실계곡 초입임을 알려주는 각종 푯말 등이 세워져 있다. 이곳도 아까 민가지역에서 10분 정도 소요했는데…. 그러니까 양쪽 다 돌아봐도 15분 정도면 다 돌아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너무 짧은 백사실계곡!

 

 

 조계사 백송

 

조계사 회화나무

 

백사실계곡과 헤어진 후 민가 쪽으로 걸어가는데 이제 계곡에 이끼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5분 후에 군부대입구 삼거리에 도착했다. 좌측으로 가면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으로 가는 길이라 정면으로 진행했다.

이내 다시 삼거리가 나온다. 계속 직진하여 진행했다. 뒤쪽으로는 북한산의 멋진 스카이라인이 좌측으로는 북악산의 멋진 모습에 잠시 시간을 지체하고는 이내 계속 내리막길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을 하는데 여행님을 만난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여행님과 함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여행님은 글쓴이가 백사실계곡 숲교육 받으러 간다니까 본인도 백사실계곡을 한 번도 가본적이 없어서 이곳을 택해 왔다 보다. 그것도 집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왔다고 한다.

 

귀가 길에 조계사에 들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송과 회화나무를 구경하고는 귀가했다.

 

5.참고자료

①명승 36호 백석동천에 대한 문화재청 자료

 

종목

명승 제36호

명칭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서울 付岩洞 白石洞天)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원

수량/면적

50,861㎡(지정구역)

지정(등록)일

2008.01.08

소재지

서울 종로구 부암동 115번지 등

시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공유, 사유

관리자(관리단체)

서울 종로구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은 1800년대 도성에 인접하여 조성되었던 별서 관련 유적으로 주변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에 건물지(사랑채, 안채 등)와 연못 등이 남아있으며, 인근에"백석동천(白石洞天)"·"월암(月巖)"등의 각자(刻字)바위가 위치하고 있다.

 

백악산(북악산) 뒷자락에 북한산을 정면으로 자연 경관이 수려한 백사골에 조성된 동천(洞天 :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의 하나로 주변에 흰 돌이 많고 경치가 아름답다고 하여 “백석동천”이라 불린다고 전하며, ‘백석’이란 중국의 명산인 ‘백석산(白石山)’에서 비롯된 것으로 ‘백석산’은 ‘백악산(북악산)’에서 착안된 것으로 풀이 된다.

 

서울 지역의 별서로서는 김흥근(金興根) 별서인 석파정(石坡亭), 김조순(金祖淳) 별서인 옥호정(玉壺亭), 심상응(沈想應)의 별서로 알려진 성낙원(城樂園) 등이 남아 있다.

 

백석동천은 남북을 중심으로 육각정자와 연못이 있고, 약 3.78m 정도의 높은 대지 위에 사랑채 부분과 안채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현재 사랑채와 정자 등은 건물터에 기초만 남아 있고, 담장과 석축 일부가 남아 있다.

 

백석동천은 사랑채 등의 건물지와 연못, 각자바위 등이 잘 남아 있고 마을과의 거리감을 확보하고 있는 등 별서의 구성요소를 두루 갖춘 격조 높은 조원(造園)의 면모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②[참고자료]명승목록(하단 엑셀 파일 참조)

명승은 현재(2011.08.08일 기준) 82호까지 지정되어 있다.

 

홍제천(弘濟川)에 대하여

인간을 구제한다는 홍제천

1. 홍제천과 그 지류

1) 자연조건과 연혁

홍제천(弘濟川)은 상류부에 북한산국립공원이 위치하며 북한산 문수봉과 보현봉· 형제봉을 발원지로(發源地)로 하고, 북악산과 인왕산을 분수령으로 하여 청계천과 그 물길이 나누어지며, 수계(水系)로는 제1지류인 불광천(佛光川)과 제2지류인 녹번천(碌磻川)이 있다.

 

홍제천의 수계는 한강 하류 우측 연안에 위치한 난지도· 성산대교에서 동북쪽으로 뻗은 유로를 따라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유역(流域)은 서쪽으로 경기도 고양시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북한산 줄기를 분수령으로 구파발동· 진관외동이 위치하고 있으며, 남동쪽으로는 안산(鞍山)과 무악재를 분수령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행정구역은 서울시 종로구· 서대문구· 마포구· 은평구 일부 또는 전 지역을 포함하여 모두 4개 구 36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상(河床)은 상류부에서 하상경도 약 1/30로 하상에 암반이 노출된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반면에, 하류부는 하상경도가 약 1/400로서 모래질로 형성된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홍제천 수계의 서쪽에는 화강암질편마암(花崗巖質片麻巖)이 약간 분포되어 있으며, 산발적으로 암맥류(岩脈類)가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불광천 전체 하상과 홍제천 중하류 유역에는 충적층(沖積層)이 분포되어 있고, 홍제천 상류부의 북한산국립공원 일대에는 쥬라기(Jurassic)에 형성된 흑운모화강암(黑雲母花崗巖)이 분포되어 있으며, 하천의 왼쪽과 오른쪽으로는 선캠브리아기(Pre-Cambrian)에 형성된 호상흑운모편마암(縞狀黑雲母片麻巖)이 분포되어 있다. 홍제천 수계의 지질분포를 보면 충적층이 14.7%, 흑운모화강암이 42.4%, 호상흑운모편마암이 26.1%의 분포를 이루고 있다.

 

이 지역의 기상현황을 자세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1954년부터 1991년까지 서울관측소에서 관측한 주요 기상자료에 의하면 연평균 기온은 11.5도이며, 최저기온은 1970년 1월의 영하 20도 2분, 최고기온은 1958년 6월의 37도 2분이다. 그리고 연평균 강우량은 1,256.9mm이며, 연평균 상대습도는 69%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홍제천 지역의 녹지체계는 상류에 북한산자연공원, 백련산근린공원, 안산자연공원 등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중류에 궁동근린공원이 하천을 따라 위치하며, 하류에는 성산제1공원이 있다. 그리고 불광천은 상류에 북한산자연공원과 백련산근린공원이 인접해 있고, 중류에 망월산자연공원, 하류에 성산제2공원과 상암공원 등이 인접해 있어 은평구와 서대문구· 마포구의 녹지체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1992년 현재 홍제천과 불광천 유역의 토지이용현황을 살펴보면 홍제천은 총면적 19.04㎢ 가운데 주거지가 6.78㎢로 35.6%, 임야가 11.48㎢로 60.3%를 점유하고 있으며, 불광천은 총면적 20.7㎢ 가운데 거주지가 14.59㎢로 70.4%, 임야가 4.82㎢로 23.3%를 각각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와 같이 홍제천과 불광천 유역은 북한산이 위치한 상류지역의 임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주거지역과 상업지역 등으로 구성된 도시지역으로서 용수공급의 대부분을 수도권광역상수도에 의하여 한강에서 취수하여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홍제천 및 불광천 자체에서 취수되는 생활용수나 공업용수는 없는 실정이다.

 

홍제천 물줄기는 북한산에서 발원한 후 남서쪽으로 흘러 한강에 흘러 들어가는 지방2급하천으로서 하천 길이는 11.95km, 유로연장이 13.92km, 유로면적이 597,500㎡, 유역면적이 20.92㎢, 하천의 평균 폭은 50m이다. 이 하천은 1974년 7월 24일 서울특별시 고시 제146호로 지방2급하천으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후 1983년과 1988년에 하천정비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1999년 2월 현재 18.94km에 달하는 유역의 하천 개수가 완료된 상태이다. 이 유역의 행정구역은 종로구· 서대문구· 마포구의 일부 또는 전지역을 포함하여 3개 구 15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홍제천은 종로구 평창동 49번지에서부터 시작하여 홍지동과 홍은동을 지나면서 물길이 굽어져 흐르다가 백련산 동쪽을 감싸 돌면서 남가좌동에 이르러 한강의 하중도에 해당하는 난지도 형성에 일조하면서 한강으로 유입된다. 홍제천 본류는 인조반정(仁祖反正)을 모의하던 세검정(洗劍亭)을 지나 홍제원에 이르면 모래가 많이 퇴적되어 물이 늘 모래 밑으로 스며서 내려가는 까닭에 ‘모래내’라고도 하며 한자어로는 ‘사천(沙川)’이라 부르고 있다. 지금 서대문구에 남아 있는 ‘모래내’라는 지명도 이러한 연유에서 붙여진 이름이고 도로명 ‘모래내길’도 그 어원의 유래가 같다. 이 외에도 조선시대 이 하천 연안에 중국의 사신들이나 관리들이 예복을 갈아 입거나 숙식을 할 수 있도록 설립한 홍제원(弘濟院)이 있었기 때문에 ‘홍제원천’이라고도 불리우며, 지금의 명칭인 홍제천도 이와 같은 연유에서 붙여진 것이다. 또한 홍제천 하류에 이르면 부근의 산이 성 같이 둘러싸여 있으므로 우리말로 ‘성메’ ‘성미’로 부르던 것에서 명칭이 유래된 성산동을 거치므로 ‘성산천(城山川)’이라고도 부르고 있으며, 상류지역은 세검정이 있던 것에 연유하여 '세검천(洗劍川)'이라 불리우기도 하였다.

 

홍제천의 '홍제(弘濟)'란 의미는 글자 그대로 널리 구제한다는 의미이다. 고려시대에는 ‘홍제(洪濟)’로 쓰다가 조선 세종 이후부터 홍제(弘濟)와 혼용되었으며, 조선 후기 이후로는 주로 홍제(弘濟)가 사용되었다. 이곳은 빈민을 구제하기 위한 장소로서, 혹은 여행자의 숙소로서 주로 사용되다가 후에는 중국에서 오는 사신과 조선에서 중국을 왕래하는 사신들이 묵어 가는 장소로 주로 이용되었다. 혹자는 홍제의 의미가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끌려갔던 조선의 여인들이 돌아올 때 이곳 홍제천에서 더러워진 몸을 닦아야만 도성 안으로 들어와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했기 때문에 그때부터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였다고 하여 홍제(弘濟)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한 근거가 없으며, 홍제라는 용어 자체도 이미 그 이전부터 사용되었으므로 병자호란 이후 조선 사회의 변화 속에서 어원을 찾는 것은 명백하게 잘못된 것이다.

 

홍제천에는 모두 12개의 도로교와 2개소의 철교가 가설되어 있다. 철도교는 서울역에서 문산까지의 경의선 노선 가운데 경의1철교와 경의2철교가 철로를 연결하고 있다. 그리고 도로교는 홍제1· 2교, 성산교, 성산1· 2교, 사천교, 연가교, 홍남교, 홍연2교, 홍연교, 백련교, 홍제3교가 놓여 있다. 그리고 1999년 2월 현재 홍제천 위를 따라 지나는 내부순환로가 완공 개통되어 한강 이북지역의 원활한 교통 소통에 일조하고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하천 위에 가설된 교각으로 인하여 미관이 좋지 않은 단점도 안고 있다.

[네이트 지식에서 발췌]

 

결초보은 [結草報恩]

→ 풀잎을 엮어서 은혜를 갚음

▷ 죽어서도 은혜를 갚음

춘추시대 진(晋)나라의 위무자에게 애첩이 있었는데, 그녀에게 자식이 없었습니다. 위무자가 병이 들어 위독하자 본처의 아들인 위과에게 이렇게 분부했습니다. "내가 죽거든 애첩을 개가시켜라"

그러나 얼마 후 임종할 무렵이 되자, 다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죽거든 애첩을 나와 함께 묻어 달라"

 

위무자가 죽자, 위과는 애첩을 개가시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위독해지면 마음이 흐트러지는 법이다. 나는 아버님이 올바른 정신으로 하신 말씀을 따르기로 했다"

 

그 뒤 진(秦)나라 환공이 진(晋)나라를 공격했습니다. 전쟁에 나간 위과는 크게 패하여 적장 두회에게 쫓기게 되었습니다. 한창 도망치고 있는데ㅡ 저 멀리 넓은 초원에서 한 노인이 풀을 서로 엮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위과가 그 곳을 지나가자 뒤따라오던 두회는 그만 엮어 놓은 풀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때를 틈타서 위과는 말머리를 돌려 재빨리 적장 두회를 사로잡았고 싸움은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날 밤 위과는 꿈에서 낮의 그 노인을 보았는데, 노인은 공손히 인사하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개가시킨 여인의 아비 되는 사람이오. 당신이 아버지의 첫 유언에 따라 내 딸을 개가시켜 목숨을 구해 주었기 때문에 오늘 풀을 엮어서 은혜를 갚은 것이오"

이것이 결초보은입니다.

출전: <<춘추좌씨전 春秋左氏傳>>

 

6.경비

①교통비: 2,400

②합계: \2,400

 

명승목록.xls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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