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일 사흘째 여정
「군립공원은 역시 군립공원! 가장 멋진 조망의 호구산!」
금산모텔에서 여유를 부리다 남해군의 마지막 산행지인 호구산을 산행하려고 금산모텔에서 나오려고 하는데 몽돌해변의 주차장에서 바라본 앵강만의 반대쪽 풍광이 멋져 잠시 사진 몇 장을 찍고는 출발한다.
또 다시 아침식사가 문제다. 설마 남해군에서 가장 큰 사찰인 용문사 근처에는 식당이 있겠지 하며 용문사로 향하는데 식당이 없다.
아침은 먹고 산행을 해야 하기에 용문사 주차장에서 되짚어 내려와 남면 소재지까지 가 보았는데 식당은 몇 군데 있는데 모두 다 아침식사가 되질 않는다.
왔다갔다 시간 만 허비하다가 다행히 비상용으로 준비해둔 코펠과 버너는 있어서 슈퍼에서 라면과 생수 등을 구입하고 대형주차장으로 이동하여 라면을 끓여 먹고는 용문사 입구의 주차장(소형)에 다시 도착한다.
어느새 시간이 11시를 넘어섰다.
산행준비를 마치고 11:05분에 산행에 나선다.
-11:05 용문사 입구의 주차장 발(산행시작)
-11:37 백련암
-11:43 염불암 대웅전
-11:50 이정표 있는 삼거리(←송등산 정상, ↓용문사, ↑원산) 착 / -11:52 발
-12:05 주능선 이정표(←송등산, ↓염불암, ↑호구산(납산))
-12:11 사거리안부 이정표(←송등산, ↓염불암, ↑호구산(납산))
-12:21 이정표(↑정상, ←남면 두곡, ↓염불암)
-12:22 561m봉(능선분기점 삼거리)
-12:35 송등산 정상 착 / -12:45 발
-12:58 561m봉
-12:59 남면 두곡 갈림길 착 / -13:00 발
-13:07 사거리 안부 이정표
-13:12 삼거리 이정표(원 위치) 착 / -13:15 발
-13:35 호구산 정상 착 / -13:50 발
-13:53 삼거리(우측으로)
-14:09 송등산 갈림길 원위치
-14:13 염불암 대웅전
-14:15~14:21 휴식
-14:30 용문사 입구 소형주차장 착(산행종료: 3시간 25분 산행함)
①부도탑 ②지장대도장 표지석 ③용문사 일주문 ④용문사 천왕각
⑤천왕각에서 바라본 천왕교와 일주문 ⑥봉서루 ⑦구유
①봉서루에서 바라본 대웅전 ②대웅전 ③석불을 모시고 있는 전각 ④범종루
전국 3대 지장도량의 하나임을 알리듯이 용문사 입구에는 대형 지장도량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또한 용문사는 남해군 제1의 사찰답게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데 그에 따른 문화재 알림안내판이 줄지어 세워져 있고, 사찰 내부로 들어가서도 많은 안내판들이 세워져 있다.
남해 12경: ⑪호구산과 용문사
용문사는 미륵이 탄생하여 맨 처음 몸을 씻었다는 용소마을 위쪽의 호구산 계곡에 호젓하게 자리 잡고 있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금산에 보광사를 짓고, 뒤에 호구산에 첨성각을 세우고 금산에 있던 보광사를 옮겼다고 한다. 전국 3대 지장도량의 하나로 불리는 용문사의 독특함은 천왕각의 사천왕이 짓밟고 있는 양반과 탐관오리이다. 그런 모습에서 우리는 권력을 탐하지 않고 오직 민초들의 곁에 있고자 했던 용문사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용문사는 남해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절이다.
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수많은 용조각이 새겨진 대웅전, 용화전에 모셔진 화강암으로 된 고려시대의 용문사석불, 조선 인조 때의 시인 촌은 유희경선생의 촌은집책판 52권을 비롯하여 문화재자료 천왕각, 명부전이 있다. 또한 문화재로는 지정되지 않았지만 임진왜란때 승병들이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총구가 세 개인 삼혈포와 용문사가 호국사찰임을 표시하기 위해 숙종이 하사한 수국사금패, 궁중매듭 번 등이 용문사가 자랑하는 문화재이다. 용문사의 산내 암자로 백련암과 염불암이 있다. 특히 백련암은 수행처로 이름나, 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용성스님,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석우스님, 성철스님이 머문 곳으로 유명하다.
염불암 대웅전(우측이 실질적인 산행들머리이다)
산행개념도(부산일보 발췌)
용문사를 구경하고 나오면 연이어 남해자생식물단지가 나오는데 볼거리가 참 많다.
이런저런 구경을 마치고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얼마간 올라가는데 민박촌을 연상케하는 길 다란 건물 한 채가 나타나는데 사용안한지 오래된 건물인지 여기저기 부서진체 방치되어 있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아마 4월 초파일이나 수리해서 쓸 모양인 것 같다. 앞에 넓은 주차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오래된 건물 같지 않은 깨끗한 대웅전 한 채 만 덜렁 나타난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아마 염불암 대웅전 같다. 용문사 입구의 주차장에서 용문사와 남해식물자생단지를 구경 안하고 이곳까지 계속 걷는다면 아마 15분 정도 걸릴 것 같다.
넓은 길은 여기까지이고 대웅전 우측으로 가면 짧은 대밭이 나오는데 이곳이 실질적인 산행들머리이다.
짧은 대밭을 올라가니 본격적인 등산로가 이어진다. 4분을 올라가니 좌측으로는 송등산, 직진으로는 호구산(납산)으로 가는 길이 갈리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멀리 남해까지 왔는데 송등산도 답사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좌측의 송등산 쪽으로 올라간다.
이곳 삼거리에는 이정표(←송등산 정상, ↓용문사, ↑원산)와 함께 119구급함도 설치되어 있는데 호기심이 발동하여 잠시 열어보니 비상약이 구비되어 있어 감동 먹었다.
송등산과 호구산이 갈라지는 지점의 이정표와 119구급함 모습
송등산 쪽으로 발길을 돌려 6분을 올라가니 주능선에 닿는다. 여기에도 이정표(←송등산, ↓염불암, ↑호구산(납산)가 세워져 있다.
좌측으로 가면 송등산, 우측으로 가면 호구산이라 좌측의 송등산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잠시 바위가 깔려있는 능선을 지나가 조금 더 내려가니 사거리안부에 닿는데 이곳도 이정표(←송등산, ↓염불암, ↑호구산(납산)가 세워져 있다. 바로 앞 봉우리가 송등산이려니 생각을 하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여 올라간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사거리안부에서 10분을 올라가니 남면 두곡으로 갈 수 있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도 역시 이정표(↑정상, ←남면 두곡, ↓염불암)가 세워져 있다. 561m봉 직전의 삼거리이다. 조금 더 가면 561m봉 정상에 서고 이후 완만한 내림길이 이어지다가 안부에서 송등산 정상을 향한 오름길이 시작된다.
오름길이 시작되면서 앞으로 갈 호구산의 정상부(봉수대)가 멋지게 계속해서 잘 보이고 남해바다가 멋지게 조망된다.
두 번이나 속은(밑에서 올라올 때 정상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곳) 후에야 비로소 송등산 정상에 선다.
송등산 정상
송등산 정상 가기 전의 오름길에서 바라본 호구산의 멋진 모습
송등산 정상에서의 멋진 조망
송등산 정상의 조망
송등산(松登山 617.0m) 정상은 삼각점(글씨가 없음)과 예쁜 정상석이 세워져 있고, 이정표(송등산 정상. ↑귀비산 ․ 명산봉, ←남면, ↓이동면)가 세워져 있다.
사면이 바다라 역시 송등산 정상에서의 조망도 너무나 멋지다. 바로 앞의 호구산 봉수대는 물론이고 앞전에 산행한 남해 최고봉인 망운산도 잘 보인다.
10분간의 휴식을 마치고 이제 호구산을 향해 출발한다.
내려가면서 바라보는 조망이 너무나 멋지다. 안부로 내려와 다시 올라서면 561m봉이고 이어 남면 두곡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타난다.
7분을 내려가면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는 안부가 나오고, 5분을 올라가니 비로소 처음 대했던 주능선 삼거리에 원 위치한다.
잠시 한숨을 돌리고 이제 새로운 길을 향해 출발한다.
잠시 너덜지대 비슷한 바위지대를 지난다. 계속 오름길이 이어진다.
얼마간 힘겹게 올라서니 호구산 정상 암반부 직전의 안부에 닿고 이제 호구산 정상부인 암봉을 향해 올라간다. 길이 양 쪽으로 나 있는데 우측에 이정표가 보이는데 좌측길로 올라간다.
바위지대를 조심스럽게 올라가고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곳을 로프 잡고 올라서니 호구산 정상부에 닿는데 너무 멋진 조망에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호구산 정상의 조망
노도와 그 뒤로 소치도가 보인다
호구산 정상의 봉수대
깨끗한 하늘에 파란 남해바다의 환상적인 조합에 동서남북 막힘이 없이 조망되는 호구산 정상부에서 그만 할 말을 잊어 버렸다.
평평한 호구산의 정상부를 조금 더 진행하니 봉수대가 나타난다.
봉수대에 올라가니 더욱 더 멋진 조망을 제공한다.
가히 조망이 환상이다. 멀리 광양, 여수, 하동, 통영이 모두 보이며 잔잔히 펼쳐진 바다가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남해군 관내에 이보다 멋진 조망을 제공하는 산은 없다고 생각이 든다. 역시 군립공원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든다.
호구산은 송등산, 괴음산 등 산군을 엮어 호구산으로 대표되는 호구산군립공원으로 1983.11.12일 지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만큼 자연경관이 뛰어나고 보존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말 같다.
호구산은 호랑이 형상을 닮았다는 유래가 있고, 옛날 호랑이가 지리산에서 건너와 이 산에 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남해산악회에서 2002.4.2일에 세운 정상석에는 호구산이란 이름 대신 납(猿 원숭이 원)산으로 표기가 되어 있고 높이도 626.7m로 표기되어 있다. 내용을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어리둥절할 뿐이다. 국토지리정보원의 1/25,000 지형도의 남해(南海)(1974년 편집, 2006년 수정(2003년 촬영, 2006년 조사), 2007년 인쇄) 도엽명에는 「南山 ×619」로 표기되어 있다.
호구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거의 넋을 빼놓는 수준이다
호구산(납<원>산) 정상석
조망삼매경에 빠지다 13:50분에 하산하기 시작한다.
직진하여 3분을 내려가니 이정표(←석평, ↓정상, →용문사)가 세워진 곳이 나와 우측의 용문사 방향으로 내려가니 곧바로 염불암 이정표가 또 나온다. 아까 정상부로 올라가기 직전에 봤던 이정표이다. 그러니까 정상 암반부를 한 바퀴 돌고 내려온 셈이 된 것이다.
이제 급한 내리막(이곳에서 올라가려면 힘이 들 것 같음)을 16분 내려가니 처음의 송등산 갈림길이 나온다. 원점회귀한 셈이다. 역시 119구급함이 보인다.
4분을 더 내려가면 대밭이 나오고 염불암 대웅전 건물이 나오면서 넓은 길이 시작된다. 실질적인 산행은 마침 셈이다.
용문사
시멘트 포장길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남해식물자생단지가 나오고 쉼터가 나와 잠시 벤치에 앉아 남해바다(앵강만)의 풍광을 바라보고, 차밭을 바라보고, 오밀조밀한 용문사의 전각들을 바라보다가 9분을 더 내려가니 주차장에 닿는다.
이로써 3시간 25분의 호구산(虎丘山) 산행을 즐겁게 마쳤다.
이제 남해의 마지막 행선지인 노도를 가려고 벽련마을을 향해 이동한다.
벽련마을 가는 길에 1인분에 1만원하는 갈치조림을 먹고는(남해의 음식 값이 너무 비싸 불만이다. 그렇다고 내용이 좋은 것도 아니다) 벽련마을에 도착한다.
주차를 하고는 선박을 알아보려고 두리번거리는데 아저씨가 다가선다.
결국 아저씨(이준길)의 낚시 배로 노도에 들어간다.
남해바다를 가로지르는 사이 한 눈에도 알 수 있는 호구산이 멋지게 쫓아온다.
이내 노도에 도착한다(15:50).
①벽련마을의 남해노도 표지판 ②노도 입구 모습
③서포 김만중선생 유허비 ④각종 표지판 모습
⑤초옥터와 허묘 갈림길 모습 ⑥김만중 선생 허묘
⑦유배 초옥 ⑧유배 초옥 입구에 있는 표지판
⑨유배 초옥 앞에서 바라본 조망 ⑩노도 부두로 내려가기 직전에서 바라본 호구산의 모습
옛날 이곳에서 배의 노를 많이 생산했다 하여 노도(櫓島)라 부른다. 현재는 16가구에 43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배를 타고 청정해역에 나가 고기를 잡기도 하고, 좁은 땅에 농사를 짓기도 하지만, 바다가 넓어 거의 어업으로 삶을 엮어 가고 있다.
1997년 남해문화원에서 서포가 유배생활을 하던 유허와 주변을 정비하고 안내문을 설치했다. 초옥터와 유허비, 허묘, 우물지, 안내문 등을 구경하면서 서포 김만중의 문학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물고기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물이 맑으며 볼락, 농어, 감성돔이 잘 잡히는 섬이기는 하지만,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서포는 이곳에서 [사씨남정기]와 [서포만필] 등을 집필했다.
노도는 0.41㎢ 넓이의 작은 섬으로 서포는 1689년부터 3년간 이 섬에서 유배생활을 한 뒤, 5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이곳에서 자기가 파 놓은 옹달샘의 물을 마시고, 솔잎 피죽을 먹으며 근근이 연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표지판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이정표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서 쉽게 서포 김만중선생의 유적지를 찾아갈 수가 있다.
20분 걸려 서포 김만중선생의 허묘(이곳이 허묘임을 알리는 대리석만이 남아있어 실망했다)를 찾아 절을 올리고는 이내 내려온다.
허묘와 초옥터가 갈리는 삼거리에서 이번에는 초옥터로 향한다.
5분 걸려 서포 김만중선생의 유배지인 초옥터에 닿는다.
역시 쓸쓸한 분위기가 엄습한다. 그러나 바로 앞의 조망은 너무나 멋지다.
초옥터 앞에 세워져 있는 안내문을 읽고는 초옥터로 올라가 잠시 구경을 하는데 앞전에 영월 마대산 산행 때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 주거지를 볼 때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관리가 잘 되어 있지가 않다. 너무나 허술한 초옥터에 그만 실망을 한다. 그나마 이 정도라도 정비가 된 것에 위안을 삼아야할지….
남해 12경: ⑦노도, 서포 김만중선생 유허
현재 16가구 43명이 살고 있는 작은 섬 - 노도.
섬에서 바라보는 금산의 절경과 앵강만의 풍광 못지않게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의 작가 서포 김만중이 56세의 일기로 유형의 삶을 마감했던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벽련(碧蓮). 말 그대로 짙고 푸른 연꽃, 3천 년 만에 핀다는 우담바라의 마을 바로 앞 삿갓처럼 생긴 섬이 바로 노도이다.
서포가 생을 마감한 지 308년이 지난 지금 노도에는 그가 직접 팠다는 샘터와 초옥터, 그리고 허묘가 남아 그의 자리를 쓸쓸히 메우고 있다.
조선 후기 정치가로서, 문신으로서, 효자로서, 소설가로서, 한글애호가로서, 시인으로서, 한시대를 풍미한 대문호 서포의 발자취가 그 고뇌스런 일생과 함께 서려 있는 남해의 작은 섬 노도는 유배문학의 산실이다.
남해는 서포 김만중 외에도 기묘사회로 유배당한 자암 김구 선생이 13년간의 기나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섬으로 들어가는 길이 어렵지만 벽련마을 안에서 어선을 이용하면 쉽게 섬에 갈 수 있다.
서포 김만중선생 유배초옥을 나오면서 해안가로 잠시 내려간다. 이곳은 조망이 멋지다. 좌측으로 금산이 바라보인다.
16:29분에 선착장을 향해 출발한다.
선착장의 모습이 보일 즈음 앞에서 선장님이 미리 와서 손짓을 한다. 유적지 보고 내려올 때 전화하라고 명암을 받고 헤어졌는데 미리 와서 기다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아서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기다리고 있어서 잠시 뛰어 배에 올라 타 노도와 작별을 한다(16:46).
남해에서의 마지막 일몰 모습
풍광 좋은 선구마을 모습
5분 걸려 벽련마을 선착장에 도착해서 남해에서의 마지막 일몰을 보려고 선구마을로 향한다.
선구마을에 도착하니 해가 이미 서산으로 넘어가 버렸다.
아쉬움을 뒤로 한체 남해와 작별하고는 삼천포로 향한다.
창선․삼천포대교를 건너 삼천포 시내에 들어와 어시장에 들려 저녁을 먹고는 조금 더 구경을 하고는 시내로 들어가 그랜드모텔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다.
다음날 어시장에 들려 해물 몇 가지를 구입하고는 귀가했다.
※남해 12경
제1경 금산과 보리암
제2경 남해대교와 충렬사
제3경 상주 은모래 Beach
제4경 창선교와 원시어업죽방렴
제5경 이충무공 전몰유허
제6경 가천암수바위와 남면해안
제7경 노도, 서포김만중 선생 유허
제8경 송정 솔바람 해변
제9경 망운산과 화방사
제10경 물건방조어부림과 물미해안
제11경 호구산과 용문사
제12경 창선-삼천포 대교
창선.삼천포대교의 야경
6.특기사항
①예정에 없던 휴가를 얻어 이웃님들과 함께 3일간(1.1~1.3) 남해여행을 하고 4일 날 삼천포에서 숙박한 후 어시장을 구경하고 귀가했다.
②노도는 벽련마을에서 낚시배인 동진호(선주 이준길)를 2만원에 대여해 답사했다. 노도는 정기여객선이 없다.
-동진호 선주 이준길: 경남 남해군 상주면 벽련리
055-862-6573 / 010-3119-6573 / 010-3862-6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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