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경상도 여행

[남해여행 1] "역시 설흘산~응봉산능선은 나를 감격하게 만들고..."

약초2 2009. 1. 27. 11:21

보물섬 남해 이야기

남해 4대 명산(설흘산, 망운산, 호구산)을 찾아서

 

1.여행날짜: 2008.12.31(수)~2009.01.04(일)

 

2.여행날씨

-2009.01.01(목): 맑고 화창함

-2009.01.02(금): 맑고 화창함

-2009.01.03(토): 맑고 화창함

-2009.01.04(일): 구름 잔뜩

 

3.여행일정

-2009.01.01(목): 가천마을일출→산행(설흘산~응봉산)→남해대교 일몰

-2009.01.02(금): 산행(망운산)→이락사→왕지마을→마늘나라

-2009.01.03(토): 산행(송등산~호구산)→노도→선구마을 일몰→삼천포항

-2009.01.04(일): 어시장→귀가.

 

4.동행인원: 4명

 

5.여행후기

미국 발 경계위기로 시작된 국가의 어려움이 곧바로 회사의 어려움으로 연결이 되어 뜻하지 않은 연초휴가를 얻게 되어 어디를 갈까 고심을 하다가 보물섬 남해군으로 가기로 하고 인터넷에서 대충 자료를 살피고는 12월 31일 저녁을 먹고 승용차를 끌고 출발한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지만 이번만큼은 기분이 썩 좋지가 않다. 앞으로의 미래가 불투명하기에….

 

진주분기점을 통과하여 사천 쪽으로 향하던 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다.

해가 바뀌어 2009년도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쓸쓸하게 해가 바뀐 적도 없었는데….

 

암튼 이러저런 생각을 하면서 사천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창선․삼천포대교를 향해 운행하는데 곳곳이 도로 공사 중이라 도로 상태가 별로 좋지가 않다.

 

자정을 넘겨 12시 30분경에 창선․삼천포대교를 건너는데(창선․삼천포대교는 서너 번 다녀온 적이 있다) 아직 불이 켜져 있어 야간경관을 즐기며 넘어간다.

야간 조명이 멋진 창선․삼천포대교를 건너고 창선도를 지나 가천마을의 주차장에 도착하니 새벽 1시 30분 정도 되었다.

 

창선․삼천포대교

건설교통부 선정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1위

 

2003년 4월 28일에 개통되어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명소가 된 「창선․삼천포대교」는 남해군 창선도와 삼천포를 연결한 다리다.

3개의 섬(늑도, 초양섬, 모래섬)을 5개의 다리(단항교, 창선대교, 늑도대교, 초양대교, 삼천포대교)로 연결하였으며, 5개의 다리 모두가 다른 공법으로 만들어져 각각의 개성을 뽐낸다.

육지와 섬만을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최초의 섬과 섬을 연결한 다리로 총연장 3.4km이다.(남해군 발행 리플릿(홍보)책자에서 발췌)

 

남해 12경: ⑫창선․삼천포대교

총연장 3.4km에 이르는 5개의 창선·삼천포대교

세계에서 보기 드문 다리의 향연

 

지난 2003년 4월 28일 성웅 이충무공의 탄신일을 기하여 1973년 남해대교가 개통된지 30년만에 창선·삼천포대교를 개통하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명물로 탄생한 창선·삼천포대교. 길이 3.4km의 창선·삼천포대교는 삼천포와 창선도 사이 3개의 섬을 연결하는 5개의 교량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해상국도(국도3호)로 남아있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관광명소이다. 남해의 새로운 관문으로 탄생한 이 다리는 창선도의 육상교량으로 150m길이의 PC빔교인 단항교, 창선과 사천 늑도를 잇는 340m의 하로식 아치교인 창선대교, 사천시의 늑도와 초량을 잇는 340m 길이의 PC BOX인 늑도대교, 초양섬과 모개섬을 잇는 202m의 종로식 아치교인 초양대교, 모개섬과 사천시를 연결하는 436m의 콘크리트 사장교인 삼천포대교라는 다섯 개의 교량이 다리박물관을 방불케 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1995년 2월 착공하여 2003년 4월 개통된 창선·삼천포대교는 전체공사비가 1,830여억원으로 한국 최초로 섬과 섬을 연결하는 교량으로 교량 자체가 국제적인 관광지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남해군 또한 주변 개발을 통해 명실상부한 한려수도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제 곧 창선·삼천포대교 주변에 전망타워, 콘도, 호텔, 유람선이 투자 유치되고, 해양레포츠 시설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남해군 창선면 북쪽 끝 단항의 해발 150m 높이에 있는 전망타워에서 바라본 섬과 다리들의 장관을 상상해보라.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남해의 동북 끝, 바다에는 어선들이 하얀 물살을 일으키며 조업에 한창이고, 다리를 질주하는 차량의 불빛이 꼬리를 문다.(남해군청 홈피에서 발췌)

 

남해의 멋진 산 위치도

 

 

2009년 1월 1일 첫 날 여정

 

 

「역시 설흘산~응봉산능선은 나를 감격하게 만들고…」

 

새해일출을 보려고 전국에서 몰려든 차량들로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차량으로 주차가 되어 있는 가천마을 입구의 주차장에 도착하여 비워있는 자리에 주차를 하고는 이내 잠에 빠져든다. 새벽 7시에 모닝콜을 맞추어놓고.

 

누군가가 차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잠에 취해있는 상태에서 창문을 내려 확인을 하니 남자가 정중하게 주차를 하려고 하니 차를 뒤 쪽으로 이동하여 주차하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한다.

 

일출을 보고 곧바로 이곳을 떠나야 하기에 부탁한 남자의 차를 뒤 쪽으로 보내고는 제자리에서 다시 잠자리에 든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30분이다.

 

개인들이 준비한 불꽃놀이 축포가 계속해서 터지고 흥겨운 농악이 연주되면서 주변이 무척 시끄러워 도저히 더는 잘 수가 없어 일어나 바로 옆의 화장실로 가서 해결을 하고나니 주변이 환하다. 어느새 7시가 가까워졌다.

 

옆 좌석과 뒷좌석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는 이웃님들을 깨우고는 일출을 보려고 해안가로 내려간다.

 

가천마을은 예전에도 두 번씩이나 와 본 적이 있어서 무척 낯이 익는데 암수바위까지만 보고는 그 아래의 해안가는 가본 적이 없어서 암수바위(암수바위는 남성의 양물과 임신한 여인의 배를 닮은 자연의 돌로서 바위는 높이 5.9m에 둘레 2.5m, 바위는 높이 4.9m에 둘레 2.3m의 크기로 현재 경남 민속자료 제13호로 지정되어 있고 가천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10월23일에 온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풍농과 풍어를 기원하는 푸짐한 제를 올리고, 자녀가 없는 사람들은 자녀를 낳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암수바위가 왜 미륵바위라고도 불릴까? 이는 영조 27년(1751년) 이 고을의 조광진 현감의 꿈에 어떤 노인이 나타나 「내가 가천에 묻혀 있는데 그 위를 소와 말들이 지나다녀 견디기 어려우니 나를 파내어 일으켜 주면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하더라는 것이다. 현감은 꿈에 노인이 지적한 가천의 현장에서 현재의 암수바위를 파내어 세워놓고 논 다섯 마지기를 제수답으로 내주었다. 그래서 매년 암수바위를 발견한 음력 10월23일에 제사를 지내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1920년에는 욕지도의 한 어선이 풍랑으로 가천 앞바다에서 표류하게 되었는데, 암수바위의 화신인 미륵노인이 나타나 구해준 뒤로는 「미륵바위」라는 이름이 또 붙게 되었고, 구출된 그 어부들이 평생을 암수바위에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도 있다)를 지나 이번에는 해안가로 내려간다.

 

 

암수바위 모습(좌:숫바위, 우:암바위)

 

 

남해 12경: ⑥가천 암수바위와 남면해안

암수바위, 다랭이논으로 유명한 남면 가천마을은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양을 한 남해섬의 회음부에 정확하게 위치하고 있다. 새 생명을 탄생시킬 신성한 곳인 셈이다.

일명 삿갓논, 삿갓배미라고도 불리는 다랭이 논은 남해인의 근면성을 보여주듯 층층이 계단을 이루고 있다. 옛날에 어떤 농부가 논을 갈다가 집에 가려고 삿갓을 들어보니 그 안에 논이 하나 더 있더라는데서 유래된 삿갓논은 짜투리 땅도 소중히 활용한 남해인의 억척스러움을 대변하고 있다. 다랭이 논의 의미를 되새기며 바라보는 가천마을의 풍경은 옛 전통을 그대로 간직한 한 폭의 수채화 같다.

 

가천마을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암수바위. 높이 5.9m의 수바위와 4.9m의 암바위로 이뤄진 암수바위는 발기한 남자의 성기와 애기를 밴 어머니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전국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있다.

조선 영조27년 이 고을의 현령 꿈에 한 노인이 "가천에 묻혀있는 나를 일으켜 달라"고 부탁해 땅을 파보니 암수바위가 나타났다고 한다. 이 바위를 발견한 뒤로 매년 제사를 지내도록 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바라는 제사가 매년 열리고 있다.

 

다랭이 마을 뒤쪽에 있는 설흘산(488m)은 망산과 인접해 있다. 설흘산에서 내려다보면 깊숙하게 들어온 앵강만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인 노도가 아늑하게 보인다. 설흘산 정상부근에는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있다. 원래 봉수대는 주위를 넓게 관측할 수 있는 곳에 정한다. 설흘산 역시 한려수도와 앵강만, 망망한 남쪽 대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일출의 장관이 유명하다. 남면 홍현의 무지개마을에서 오르면 가장 가깝지만 가천마을에서 북쪽으로 곧바로 오르거나 멀리 임포에서 시작하면 칼바위 등을 지나는 등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남해군청 홈피에서 발췌)

 

 

종목

명승 제15호

명칭

남해 가천마을 다랑이논(南海 加川아를 다랑이논)

분류

자연유산 / 명승 / 자연경관 / 지형지질경관

수량/면적

일원

지정일

2005.01.03

소재지

경남 남해군 남면 홍현리 777번지 등

시대

시대미상

소유자

국유, 사유

관리자

 

 

일반설명 / 전문설명

「다랑이 논」은 선조들이 산간지역에서 벼농사를 짓기 위해 산비탈을 깍아 만든 인간의 삶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형성된 곳으로"가천마을 다랑이 논"은 설흘산과 응봉산 아래 바다를 향한 산비탈 급경사지에 곡선형태의 100여 층의 논이 계단식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배후의 높은 산과 전면의 넓게 트인 바다가 조화를 이루어 빼어난 농촌문화경관을 형성하고 있어 경관적(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가천마을의 유래에 대한 자세한 자료는 없으나 대대로 마을에서 살아온 김해 김씨, 함안 조씨 가(家)에 전해오는 자료로 미루어 볼 때 신라 신문왕 당시로 추정되어지고 있으며, 미륵전설과 육조문에 대한 전설이 고려시대 이전에 삶이 시작되었고, 400여 년 전에 일어난 임진왜란 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는 설흘산 봉수대(烽燧臺)는 이미 그 전에 이곳 가천마을에 집단적으로 거주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전해오는 마을의 옛 이름은 간천(間川)이라 불리어 왔으나 조선 중엽에 이르러 가천(加川)이라고 고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2년 농촌진흥청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되었다.

 

논, 산림 및 바다의 자연적 요소와 가천암수바위, 밥무덤, 설흘산 봉수대,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인 노도(섬)와 같은 문화적 요소는 명승적 가치를 한층 높이고 있다.

 

                                                                                                                       (문화재청 발췌)

 

 

해안가의 바위지대에 도착을 하니 이곳에도 많은 사람들이 새해 일출을 보려고 몸을 움츠리며 일출을 기다리고 있다. 바람이 불어 제법 쌀쌀하다. 바위에 기대어 일출을 기다린다. 주변은 이미 환한데 얕은 구름이 끼어있어 해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해가 나오려면 시간이 제법 걸리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주변 경치를 두루두루 구경을 한다.

응봉산의 남쪽 산줄기(육조문 기암)가 너무나 멋지게 보인다.

 

응봉산의 멋진 산세와 남쪽 바다를 연달아 바라보는데 호주머니에서 전화 벨소리가 들려온다. 아까 그 남자인데 차를 빼달라는 소리다. 아무리 기다려도 일출보기가 틀렸다고 스스로 판단해서 복잡한 이곳을 일찌감치 뜨려고 하나보다.

 

별 수 없이 해안가의 바위지대에서 힘들게 주차장을 향해 올라가는데 여기저기서 탄성소리가 들려온다. 해가 막 나오려는 순간 같아 뒤돌아보니 정말 해가 막 나오려고 한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해가 뜨기를 기다리니 야속하게 다시 구름 속으로 해가 들어간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다시 재촉전화가 걸려온다.

제기랄!

밤새 차를 몰고 와서는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자서 그런지 몸이 무거워 힘들게 주차장에 올라가 차를 빼준다.

다시 바닷가를 바라보니 다행히 아직 해가 올라오지는 않았다.

 

이젠 해안가로 내려갈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것 같아 다랭이 논에서 일출을 기다린다.

다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고 풍악소리가 더욱 더 커지면서 드디어 2009년 새해 새아침을 밝히는 해가 막 떠오르고 있다.

 

「오, 하나님!

저에게 올 한해 좋은 일들만 있게 해주시고,

저를 아는 모든 분들 건강하고, 하는 일마다 모두 다 성공하게 해주시옵소서!」

 

 

 2009년 새해 일출(가천 다랭이논에서 바라본 일출)

 

 

장엄한 일출을 보고는 임시천막이 설치되어 있는 곳으로 들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천막 안에서 떡국을 먹고 있고 일부는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뜨는 사람도 보인다.

 

주방 쪽으로 가서 기웃거리는데 자기 내 식구들 먹을 양 만큼 밖에 없다는 쌀쌀한 소리를 듣고는 쓸쓸히 쓴웃음을 머금고 천막에서 빠져나와 아침식사를 하려고 차량을 이동한다.

 

선구마을 쪽으로 진행을 하는데 이내 많은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어서 한참을 기다려도 도저히 차량이 움직이질 않아 차를 돌려 이번에는 홍현마을 쪽으로 향한다.

 

얼마안가 이곳 역시 꼼짝없이 앞뒤로 꽉꽉 막힌체 한참을 기다린다. 집에서 준비한 과일을 먹으면서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니 드디어 차량이 빠지기 시작한다.

 

결국 석교리까지 진행하여 아침식사를 하는데 음식 값이 제법 비싸다.

갈치조림(8천원)을 먹는데 맛보다는 내용물이 조금은 너무한다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배가 고파 맛있게 먹고는 설흘산 산행을 하려고 되짚어 가천마을 쪽으로 향한다.

 

삼거리의 중촌마을 입구에서 산행들머리(가천마을 쪽에서 중촌삼거리까지 진행한 후 삼거리에서 무지개마을 쪽인 오른쪽 오르막 포장로를 돌아서면 왼쪽 시멘트 포장길로 올라서면 곧바로 산길로 연결된다)를 찾지 못해 결국 무지개마을까지 진행을 한다.

 

 

산행 개념도(부산일보에서 발췌)

 

 

-09:40 무지개마을 발(산행시작)

-10:30 설흘산 정상(봉수대) 착 / -10:55 발

-11:05 사거리 안부(310m. 이정표)

-11:11 삼거리 안부(←매봉산, ↓가천, →설흘산 봉수대) 착 / -11:28 발

-11:34 넓은 헬기장

-11:53 응봉산(이정표, 정상석, 케언 등) 착 / -12:02 발

-12:17 422m봉

-12:34 이정표(해발 375m. ←선구마을 1.5km, 응봉산 정상 1.0km→)

-12:40 이정표(해발 345m. ←선구마을 1.4km, 응봉산 정상 1.1km→)

-12:56 이정표(해발 225m. ←선구마을 0.8km, 응봉산 정상 1.7km→)

-13:20 등산로입구(대형 등산지도)

-13:21 주차장

-13:22 선구마을 입구(2차선 도로) 버스정류장 착(산행종료: 3시간 42분 산행함)

-13:54 발(남면 택시 이용)

-14:00 차량회수

 

◆무지개마을-(0:50)-설흘산봉수대-(0:10)-사거리안부-(0:06)-삼거리안부-(0:06)-헬기장-(0:19)-응봉산-(0:15)-422m봉-(1:05)-선구마을

 

※휴식없이 2시간 51분, 실제로는 3시간 42분 걸렸음.

 

 

설흘산 정상에서 바라본 조망(앵강만 건너로 호구산이 잘 보인다)

 

 

홍현2리의 무지개마을에서 조금 더 가면 등산로 푯말이 세워져있는 곳에 도착하여 갓길에다 주차를 하고는 시멘트포장길을 따라 한동안 진행을 한다.

 

삼거리(중촌마을)의 산행들머리를 찾지 못해 이곳에서 계속 진행을 하면 다시 되 짚어 와야 하기에 설흘산으로 직접 올라가는 길로 진행하려고 시멘트포장도로 따라 진행을 하다가 저수지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무덤에서(이곳까지는 길 상태가 무척 좋음) 곧장 능선으로 진입을 하는데 잡목의 저항이 심해 결국 5분도 못돼 포기하고 다시 무덤으로 내려와 저수지를 지나 시멘트포장길로 되 돌아왔다.

잔머리를 쓴 것이 결과적으로는 우습게 되었다. 그래도 힘든 표정 짓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따라 와주는 이웃님들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이제 편안하게 시멘트포장길을 따라 진행을 하니 가끔씩 표지기도 눈에 띈다. 시멘트 포장길이 끝나고 본격적인 등산로에 접어든다. 등산로 상태가 무척 좋다.

 

오름길이 시작된다. 곧장 오르다 등산로는 우측으로 휘어지면서 올라간다. 얼마간 올라가니 가천마을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주능선 사거리안부에 닿는데 이정표(해발 310m. ←홍현2리 0.65km, ↑설흘산봉수대 0.6km,↓주차장(매봉산)0.56km, 가천마을 0.9km→)가 세워져 있다.

 

주능선의 사거리안부에서 설흘산 봉수대 방향의 좌측으로 진행한다. 설흘산 좌측 사면 쪽으로 완만하게 진행을 하여 올라가니 다시 안부에 닿는데 이곳에도 이정표(←홍현 1,300m, ↓가천 1,100m, 설흘산 100m→)가 세워져 있다. 바로 우측 앞에 봉수대가 올려다 보인다.

 

이곳에서 우측의 봉수대로 가지 않고 좌측의 망산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내 망산 정상에 도착한다. 삼각점(돌산404, 2002재설)만이 홀로 망산을 지키고 있다. 나무에 가려 조망이 썩 훌륭하지가 않다. 그래서 직진하여 조금 내려가니 바위가 있어 그곳에서 앵강만을 가로질러 맞은편에 있는 금산을 바라보는데 역시 나무들이 시야를 방해한다. 계속 내려가면 시야가 좋을 것도 같은데 그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중촌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해서 올라왔으면 아쉬움도 없었을텐데…) 되돌아 다시 망산에 도착하여 이내 내려가 다시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안부를 거쳐 설흘산 봉수대 직전의 공터에 세워져 있는 봉수대 안내문에 도착하여 잠시 봉수대 안내문을 읽어본다.

 

남해(南海) 설흘산(雪屹山) 봉수대(烽燧臺)

소재지: 남해군 남면 홍현리 산237-1번지

 

남해 설흘산 봉수대는 해발 490m의 설흘산 정상에 자연암반을 기반으로 하여 석축된 것으로 평면은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하단부는 각이 있다. 규모는 높이 6m, 직경 7m, 둘레 20m로 조성 되었으며 이 봉수대는 남해 금산 봉수를 받아 내륙의 망운산 순천 돌산도 봉수와 연결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 남쪽 해안방어와 관련된 관방시설로서 당시의 통신체제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학술자료로 인정되어 지난 2003년 6월 7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248호로 지정 되었으며 2007년 2월 봉수대 주변을 복원정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봉수대 안내문에서 발췌)

 

이제 계단을 통해 봉수대 위로 올라간다.

역시 설흘산(488m) 정상에서의 조망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인터넷에서 선답자의 후기를 보고 사진도 봤지만 역시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하니 가히 조망이 일품이다.

 

 

 설흘산 정상에서 바라본 가천마을과 다랭이논 모습

 

 

 설흘산 정상(봉수대)에서 바라본 응봉산과 그 뒤의 칼바위능선 모습

 

 

앵강만 너머로 남해군 제일의 명산인 금산(錦山 681m)이 잘 보이고 금산 주변의 산줄기도 잘 보인다.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인 노도가 내려다보이고 여수만 건너편의 여수 해안지역 뿐만 아니라 한려수도의 아기자기한 작은 섬들도 조망된다.

 

멀리 남쪽 바다로 햇볕을 받고 있는 소치도와 소치도 주변의 배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고, 발밑으로 가천마을의 다랭이 논이 평화롭게 보인다.

 

조금 눈을 위로 돌리니 바로 앞의 응봉산(일명 매봉산)의 정상과 그 뒤로 칼바위능선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육조문의 바위능선이 잘 보인다.

 

조망삼매경에 빠지다 봉수대의 사각문을 통해 봉수대 내부로 들어가 보니 제법 넓다. 사각문에 비치는 응봉산과 그 뒤의 칼바위능선이 파란 하늘과 대조되어 멋지게 보인다. 다시 봉수대 밖으로 기어 나와 이내 계단을 통해 봉수대를 내려오니 2001년 4월 남면산악회에서 세운 예쁜 설흘산 정상석이 반긴다. 정상석에는 높이가 481m로 표기되어 있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찍고는 이번에는 직진하여 전망대 봉우리 쪽으로 향한다.

짧은 바위구간을 지나니 이내 넓적한 바위가 있는 전망대 봉우리에 올라선다. 이곳이 봉수대 보다 조망이 더 좋은 것 같다. 일출 장소도 봉수대보다 더욱 더 좋은 것 같다. 이곳에서도 조망삼매경에 빠지다 이내 다시 봉수대 정상으로 되돌아 와서 응봉산을 향해 내려간다.

 

 

봉수대 내부로 들어가서 봉수대 입구를 통해 바라본 응봉산과 칼바위능선 모습

 

 

봉수대 올라가는 입구에 세워진 깜찍한 설흘산 정상석

 

 

앵강만과 노도, 그리고 금산이 잘 보인다

 

 

 응봉산으로 향하다 바라본 설흘산 봉수대 모습

 

 

아까 왔던 길 대신 응봉산 정상 쪽으로 직진하여 급경사를 내려간다. 한동안 조심스럽게 내려가면 아까 올라왔던 길과 합류되면서 등산로도 좋아진다. 이내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사거리안부에 원위치 한다(설흘산 봉수대 정상에서 10분 걸린다).

 

사거리안부에서 편안한 능선길을 따라 6분을 진행하니 삼거리 안부에 닿는데 이곳에도 이정표(←매봉산, ↓가천, →설흘산 봉수대)가 세워져 있다. 넓고 햇볕이 비쳐 따뜻한 곳이라 이곳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잠시 휴식을 한다.

 

휴식을 마치고 6분을 편안하게 진행하니 넓은 헬기장이 나온다.

 

넓은 헬기장을 지나 잠시 편안한 능선 길을 진행하니 이내 오름길이 시작된다.

 

넓은 헬기장에서 19분을 진행하여 응봉산(472m) 정상의 공터에 도착한다.

 

응봉산 정상은 예쁜 정상석(응봉산 해발472m. 남해향우회 다음카페. 2008. 3.15)과 케언이 세워져 있고 삼각점의 기둥(1992의 숫자만 보인다) 만 보인다. 그리고 삼각점의 안내문(위치: 남해군 남면 선구리 산128-2번지. 표고: 472, 위도: 34-43-59, 경도: 127-52-59, 이 삼각점은 (지적)측량 기준점으로서 국민모두의 소중한 재산이므로 파손하거나 그 효용을 해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되며, 만약 무단으로 훼손하는 경우에는 관련 법령에 따라 처벌받게 되오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리자: 경상남도(T.055-211-2961) 남해군(T.055-860-3016). ※위급상황 발생시 소방본부(055-119)에 삼각점번호를 통보하면 조난자 등에 대한 인명구조가 가능함.)도 세워져 있다. 이정표도 세워져 있다. 장사하는 분도 한 몫 하는데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물건만 보인다.

 

 

응봉산 정상 모습

 

 

응봉산 정상에서의 조망도 무척 뛰어나다. 바로 앞의 설흘산 봉수대가 너무 잘 보인다. 앞으로 진행할 능선도 잘 보이는데 암릉길이라 자못 기대가 크다.

 

응봉산 정상에서 좌측으로 진행하면 육조문의 암릉을 거쳐 가천으로 가는 길이다. 나중에 기회가 있으리라 믿고 오늘은 칼바위능선으로 진행한다.

 

잠시 급하게 내려갔다가 이내 완만한 능선길이 시작되면서 주변 경관이 조망된다.

너럭바위가 나오고 좌측으로 남해바다와 어우러진 남면의 해안도로 따라 이어지는 마을이 정겹게 보인다. 날씨도 받쳐주어 맑고 쾌청한 하늘이 더없이 좋은 조망을 제공한다.

 

반대쪽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고 있다. 아마 산악회 소속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과 교행을 한다.

계속되는 바윗길과 앞 쪽과 좌측으로 펼쳐지는 파란 바다와의 조화를 이뤄 멋진 조망을 제공하는데 가히 할 말을 잊는다.

진작 왜 이런 산을 답사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였다. 산행 경력 13년차로 접어들고 답사한 산 만해도 벌써 883개(조금 전에 답사한 응봉산까지)가 넘었는데…. 그간 산줄기 산행만 고집하느라 그랬다고 애써 위안을 삼는다.

 

 

 이곳부터가 설흘산~응봉산 산줄기의 하이라이트인 칼바위능선이다

 

 

 그림같은 풍광

 

 

 칼바위능선의 암봉들

 

 

 그림같이 펼쳐지는 칼바위능선 모습

 

 

앞으로 나아갈수록 펼쳐지는 경관이 몸을 흥분하게 만든다. 똑딱이 디카로 계속해서 멋진 경관을 촬영한다.

좌우로 절벽인 넓적한 암반지대의 좌우로 나무난간 보호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이 하이라이트 지점이다.

 

이제 아쉽게도 나무데크를 따라 좌측으로 내려가 암봉을 우회한다. 암봉을 직접 갈 수도 있겠지만 피곤한 몸 끌고 가기엔 무리일 것 같아 정상석인 등산로를 따라 진행을 한다.

 

암봉 아래의 안부로 올라서니 다시 조망이 펼쳐진다. 조망바위에서 멋진 조망을 구경하다가 이내 진행한다.

 

12:34분에 선구마을 1.5km 남았다는 이정표(해발 375m. ←선구마을 1.5km, 응봉산 정상 1.0km→)를 지나고, 다시 6분 후에 선구마을 1.4km 남았다는 이정표(해발 345m. ←선구마을 1.4km, 응봉산 정상 1.1km→)를 만난다.

16분을 진행을 하니 다시 이정표가 나오는데(해발 225m. ←선구마을 0.8km, 응봉산 정상 1.7km→) 선구마을까지 800m 남았다고 쓰여 있다.

 

 

 그림같은 풍광

좌측은 향촌마을, 중간은 몽돌해변인 선구리해수욕장 그리고 우측이 선구마을이다.

 

 

 좀 더 가까워진 선구마을 모습

 

 

이제 조망도 없는 능선 길을 진행하니 다소 지루한 느낌이 든다.

마지막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24분을 내려가니 비로소 산행날머리에 닿는다. 대형등산지도가 세워져 있다(13:20). 바로 앞의 선구마을이 잘 보인다.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니 주차장이 나오고, 우측으로 수령 350년 된 팽나무가 나온다. 곧바로 2차로 도로에 떨어지고 바로 건너편으로 문짝이 설치되어 있는 버스정류장에 도착함으로써 3시간 42분의 행복한 산행을 마친다.

 

 

 산행을 마치고 선구마을로 내려가는 중

 

 

버스정류장 안에서 남면택시를 호출하고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무제님이 선구마을에서 마늘을 사 가지고 온다.

호출한 택시가 오려면 25분 걸린다 하여 그 사이에 마늘을 까면서 기다린다. 시간이 흘러 시내버스가 나타나고 이내 남면택시가 나타난다.

 

13:54분에 택시를 이용하여 6분(택시요금 1만원) 만에 차량을 세워둔 곳에 도착하여 차량을 회수하여 택시를 뒤쫓아 남해의 이름난 식당으로 향한다.

 

앵강만을 끼고 있는 남해자연횟집에 도착하여 1인당 13,000원(선택의 여지가 없다. 겨울철에는 다른 메뉴가 없다) 하는 전복죽을 40여분을 기다려 먹고는 남해 드라이브에 나선다.

 

앵강만을 한 바퀴 돌고 상주를 거쳐 미조와 갈라지는 삼거리(초전)에 도착하니 이곳에 국도 3호선 시점비(시점: 경상남도 남해군 미조면 초전. 종점: 함경북도 초산군 초산면. 총연장: 1199km. 휴전선 이남: 549km. 휴전선 이북: 650km)가 세워져 있다.

이곳이 국도 3호선 시점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국도 3호선은 초전에서 시작하여 창선․삼천포대교를 거쳐 육지로 들어가서 사천, 진주, 함양, 김천, 문경, 충주를 거쳐 서울을 넘어 북한 땅의 초산까지 이어진다고 시점비에 표기되어 있다.

 

 

경남 남해군 미조면 초전에 설치되어 있는 국도 3호선 시점비

 

 

 사진 몇 장을 찍고는 다시 운행하는데 졸음이 몰려온다. 창선․삼천포대교(목 좋은 곳에서 주간 사진을 찍기 위해 가려고 했음)를 건너기 직전의 휴게소에 잠시 쉬면서 눈을 붙여본다.

이웃님들은 어디를 갔는지 모르겠다. 졸음이 몰려와 금새 잠에 빠져든다.

 

시간이 꽤 흘러 창선․삼천포대교의 주간사진 찍기를 포기하고(몸이 피곤하여 귀찮아졌음) 때마침 일몰시간이 가까워져 일몰지로 유명한 남해대교로 급히 행선지를 바꿔 남해대교를 향한다.

 

시간에 쫓기니 거리도 제법 길게 느껴진다.

결국 이미 해가 떨어진 후에야 남해대교를 건너 해안도로에 도착한다.

그래도 아직 여명이 남아있어 사진 몇 장을 찍고는 해안도로를 따라 진행을 하는데 어쩐 일인지 하동방향이 나온다.

아차차! 남해대교를 건너지 않고 해안도로를 따라 진행해서 그렇게 됐음을 뒤늦게 깨닫고는 되짚어 차를 돌려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읍내로 들어가 읍내의 모텔에서 피곤하지만 행복했던 남해에서의 새해 첫날에 대한 추억을 고이 간직하고 꿈나라로 빠져든다.

 

첫날 일정

서울출발→남해 가천마을(일출)→설흘산~응봉산(산행)→앵강만(드라이브)→초전→창선․삼천포대교→남해대교(일몰)→남해읍내(숙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