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강원도의 산

시 한 수 읊어 본 마대산 첫 이야기(08.11.02)

약초2 2008. 11. 3. 16:06

798번째 이야기

861번째의 산, 마대산 첫 이야기


No. 861 마대산(馬垈山 1052.2m)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소재

-정상: 삼각점(21 재설, 77.7 건설부), 정상석(2004. 8. 영월군), 조망 보통.

-첫 산행. 산행들머리에 김삿갓 유적지, 묘소, 문학관 등이 있음.

-날씨가 흐려 주변 조망을 볼 수가 없었고, 산행들머리의 김삿갓 관련 유적지는 볼 만함.


1.산행날짜: 2008년 11월 2일(일요일)

2.산행날씨: 흐림. 때때로 바람.

3.참가인원: 새싹산악회 742회 정기산행 39명

4.산행코스: 노루목→어둔이골→찻집→거주유적지→마대산→전망봉→처녀봉→선낙골→주차장(원점회귀산행)


5.산행시간

-07:42 건대입구역 발

-07:57 상일동 착 /   -08:10 발

-11:05 산행들머리(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김삿갓유적지) 착

-11:15 산행시작

-11:23 선낙골 갈림길

-11:39 찻집갈림길

-11:59 김삿갓주거지 발

-12:55 정상직전삼거리

-13:00 마대산 정상 착 /   -13:15 발

-13:18 삼거리 발

-13:31 우회길, 능선길 갈림길

-13:40 전망대

-13:41 전망대삼거리 착 /   -14:16 발

-14:29 처녀봉 착 /   -14:35 발

-14:51 1.2km 김삿갓묘역 이정표

-14:58 민가

-15:16 선낙골 갈림길 원위치

-15:23 김삿갓유적지

-15:30 주차장 착(산행종료: 4시간 15분 산행함)

-16:46 주차장 발

-21:52 상일동

-22:30 건대입구역 착


◆김삿갓유적지입구-(0:08)-선낙골갈림길-(0:20)-김삿갓주거리-(0:51)-정상직전삼거리-(0:05)-마대산-(0:26)-전망대삼거리-(0:13)-처녀봉-(0:23)-민가-(0:18)-선낙골갈림길-(0:14)-주차장


※산행거리 8km. 휴식없이 3시간, 실제로는 4시간 15분 걸렸음.

 

 

산행개념도(영월의 명산에서 발췌)

 

6.산행후기

김삿갓 유적지로 유명한 마대산을 차일피일 미루다 소속된 산악회 정기산행으로 잡고 다녀왔다.


김삿갓이 잠든 영월 와석골…82년 발견

살다 보면 한번쯤 「그래, 여기만 살데냐」하는 객기가 오를 때가 있다. 그러나 난고 김병연(1807∼1863)은 객기 정도가 아니라 도저히 세상 한가운데에 살지 못할 사람이었다.


평생 산하를 떠돌며 시와 술로 숨을 내쉰 그를 사람들은 김삿갓이라 부른다. 김삿갓은 강원도 영월 땅에 잠들어 있다. 생전에 아들에게 「나 죽으면 여기 묻으라」 유언했던 와석골 노루목 양지바른 곳에.


영월읍 동남쪽 길로 영월화력발전소, 고씨동굴, 와석재 고개를 차례로 지나 옥동초등학교 주석분교 옆 옥동천 계곡길로 걸어 올라가면, 좁고 깊은 계곡이 돌연 펼쳐진다. 와석골 노루목. 지금도 큰길에서 한시간 반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오지다. 사는 사람이래야 7가구에 20 여명. 계곡 물은 그냥 떠 마셔도 되고 개똥벌레가 훨훨 날아다니는 청정무구한 자연, 푸른 산 위로 하늘만 뵈는 첩첩산중이다.


김삿갓은 자신의 조상과 관련된 일로 이 척박한 땅에 들어와 살다가 결국 세상을 등졌다. 그는 조부 김익선의 불충을 비웃는 글을 써 과거에 합격했으나, 그 일이 두고두고 가슴에 맺혀 평생 삿갓 쓰고 평생 하늘을 보지 않았다. 주민 신춘선(63)씨는 「요즘 같으면 할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 욕을 하고도 벼슬을 했을 것」이라며 「삿갓시대에나 가능한 철학」이라고 말한다.


워낙 세상을 떠돌다보니 그가 묻힌 곳이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1982년 향토사학자 박영국씨(작고)가 집요한 추적과 고증 끝에 와석골에서 삿갓 무덤을 찾아냈다. 오직 「김삿갓 뫼는 양백(태백- 소백)지간, 영월-영춘 어간에 있다」는 고문서 기록 하나에 의지했다고 한다. 와석골은 강원 경상 충청 3도에 걸친 도계 접경지.


「동네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어요. 바깥사람들만 몰랐죠.」신씨 말이다.

하기야 삿갓이 이곳으로 이장된게 1백년이 갓 넘었으니 3대만 올라가도 구전으로 전하는 바 적지 않았을 터. 그는 「노루목에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오니까 삿갓이 다시 짐을 꾸려 타지로 도망갔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밭 한가운데 초라하게 서 있던 묘는 1989년 정부에서 밭과 앞집 3채를 사들여 터를 재정비했다. 「그때 한 6천만원이면 길도 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땅 사버리니까 끝이었다」며 그래서 지금도 예산이 없어 진입로 포장이 안돼 있다고 한다.

그래도 묏자리는 삿갓 자신이 반기지 않을 만큼 썩 훌륭하게 정비돼 「왕릉」같다. 묘 옆에는 「시선 난고 김병연지묘」라는 자연석 비석이 오래지 않은 과거 살았던 방랑 시인 한 사람의 흔적을 알린다. 「네 다리 소나무 소반에 죽이 한 그릇/하늘과 구름이 함께 떠도네/주인장, 제발 무안해하지 마오/나는 물 속 청산을 사랑한다오.」 봉분에서는 누군가가 쏟아 부은 술 내음이 향기롭다.


김삿갓 집터는 묘에서 왼편으로 2㎞ 위쪽 산행길이다. 가벼운 산행길. 그 길엔 돌복숭아, 물봉선화, 갈대가 무성하고, 집 마당엔 들풀 들이 가득하다. 옆에는 개울이 흐르고 약초꾼과 화전 해먹던 사람들이 살고 간 흔적이 쌓여 있다. 주춧돌과 기둥 일부를 제외하고는 1백여년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거쳐 간 사람들이 지붕을 얹고 흙을 새로 바르고 외양간을 내 삿갓의 내음은 모두 사라졌다.


묘소 건너에는 서울사람이 지금 전통찻집을 만들고 있다. 비포장길은 경상도 영주까지 뚫려 있어 아마도 김삿갓이 방랑벽이 도지면 사통팔달 운신하기 쉬웠을 터. 이제 김삿갓 묘가 있다는 소문에 한 여름이면 자연과 위대한 시선의 흔적을 밟으려는 외지인들로 붐빈다. [조선일보]


마대산은 백두대간이 선달산을 거쳐 고치령과 마항치 사이에 형제봉을 일으키고, 북쪽으로 가지를 쳐 옥동천과 남한강에 가로막혀 지맥을 다한 산으로, 동쪽계곡에 김삿갓 유적지를 품고 있는 산으로 선낙골 계곡의 가을단풍이 매우 아름다운 산이다.


산행들머리인 노루목 김삿갓 묘 앞에 11시 5분에 도착하여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이내 산행에 들어간다.


 

 김삿갓유적지 앞의 멋진 다리

 

 

 김삿갓유적지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산행에 들어갔다

 

 

김삿갓 생애 표지판

 

김삿갓 유적지에는 많은 장승과 돌탑이 조성되어 있어 볼거리가 많은데 원점회귀산행을 하기 때문에 하산하고 자세히 보기로 하고, 또한 김삿갓 묘에도 하산 후에 참배하기로 하고 산행에 들어간다.


산행은 좌측(어둔이골)으로 올라가 우측(선낙골)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역으로 해서 상관은 없지만 영월의 명산 가이드북을 참고하여 어둔이골로 올랐다.


김삿갓유적지 입구에서 도로 따라 조금 올라가니 작은 성황당이 세워져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좌측 옆에 마대산 등산 안내판이 자리 잡고 있어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깊이 패인 계곡의 널따란 길을 따라 5분 진행하니 시멘트 포장도로는 끝이난다. 계곡을 건너니 비포장도로가 이어진다. 김삿갓 모양의 멋진 이정표에 「주거지 1.5km」라고 쓰여 있다(11:20).


 

김삿갓 이정표

 

 

 김삿갓주거지

 

계속해서 3분 더 올라가니 선낙골이 갈라지는 삼거리에 닿는데 선낙골 방향으로 「 단체의 숲 안내」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이곳이 좌측으로 올라갔다가 우측으로 되돌아오는 원점회귀지점이다(11:23).


4분 더 올라가니 이동식 간이 화장실 건물도 나타난다.

4분 더 진행하니 주거지 700m 표지판도 나타난다.

8분을 더 올라가니 찻집이 갈라지는 삼거리에 닿는데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대부분의 회원님들이 우측으로 올라가는데 도대체 전통찻집의 분위기가 궁금하여 일부 회원님들과 찻집을 가기위해 좌측으로 올라간다.


조금 가니 우측으로 민가가 보인다.

설마 이곳이?

우측의 민가가 찻집이 아닐 거라는 예단을 하고는 조금 더 올라가니 배추밭이 나타나면서 길이 끊어진다. 별수 없이 우측으로 진행을 하여 조금 전의 민가 마당으로 들어서면서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수염을 기른 남자분이 나타나

이곳은 등산로가 아닙니다!


전통찻집이 어디에 있나요?

이곳에서 동동주, 작설차, 오미차 등을 팔고 있습니다!


헉! 이것이 아니다 싶어 되돌아 나가고 싶었지만 입에선 이미

제일 빠른 차로 6잔 주세요!


옆에 있던 윤 고문님이 그냥 가자고 성화한다.

말을 이미 해버린 상태라 먹고 가자고 하며 눈짓을 보낸다.

결국 어색한 분위기 속에 오미자차(한잔에 3,500원)를 먹는다.


인터넷에서 마대산 검색 중에 200년 된 전통찻집이 있다기에 확인하고 싶어 가본 것이었는데 분위기가 실망 그 자체였다.

그러나 처음 먹어보는 오미자차의 짙은 향이 좋았다.


수염 기른 남자분과 부인, 그리고 3~4살 정도 보이는 남자아이가 식구이고 넓은 마당에 장독대가 많이 정열 되어 있고, 동동주, 전통 차 종류, 된장 등을 팔고 있다.


남자분 예기가 이곳은 영월 땅이고 배추밭 뒤로는 단양땅이라 하고, 이곳에 들어 온지 17년 됐고, 전기는  불과 4년 전에 들어왔다고 한다.

같이 동행한 아주머니가 된장을 사려다 이외로 비싸(강화도의 된장보다 비싸다는 예기를 한다) 포기하고는 이내 서둘러 올라간다.


마당을 가로질러 올라가면 태양열시설물이 나오고 이내 내려가는 길이 나오면서 나무다리를 넘어가니 김삿갓 주거지가 나온다.


난고 김삿갓 주거지

이곳은 조선조 말엽 전국을 바람처럼 떠돌며 날카로운 풍자로 상류사회를 희롱하고, 재치와 해학으로 서민의 애환을 읊은 방랑시인 김삿갓이 생전에 거주 하였던 곳이다.

 

선생은 안동 김씨의 시조인 고려 개국공신 선평의 후예로 순조 7년(1807) 3월 3일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에서 부 안근과 모 함평 이씨 사이의 이남으로 출생하였고, 본명은 병연 호는 난고이다.

 

순조 12년(1812)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을 때 조부 김익순이 선천부사로 있으면서 홍경래에게 항복하여서 역적으로 몰려 폐족처분을 받아 가족이 영월로 옮겨와 은둔생활을 하였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도 모친은 자식에게 조부의 사연을 감추고 글을 가르쳤으며, 20세 되던 해 영월 동헌에서 백일장에 응시하여 조부를 비판하는 글로 장원이 되었다.

 

그 후에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 자책과 통한을 이기지 못하여 22세에 집을 나서 방랑생활을 하면서 서민들의 애환을 시로 읊어 서민 문학의 큰 틀을 마련하였다.

 

1863년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에서 작고하여 그곳에 묘를 썼으며 삼년 후 둘째아들 익균이 현재의 묘로 옮겨 모셨다.

 

1982년 김삿갓의 주거지를 발견할 당시 이곳에서 살았던 엄운섭(당시 64세)의 증언에 의하면 1972년경 주거지 본채의 대들보가 썩어 내여 앉아서 철거하고 바깥채에서 살고 있다고 하였다.

 

화전촌의 집은 모두가 통나무로 짓는 것이 관례인데, 이집 본채 자리 철거목재는 기둥, 천장보 도리 등이 도끼로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가 양반댁의 안목 있는 주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의 주거지 건물은 강원의 얼 선양사업의 일환으로 2002년 9월에 복원한 것이다.(주거지에 설치된 안내문의 내용)


주거지를 구경하고 있는데 수염 기른 어르신이 나타나 깜짝 놀란다.

관리인 듯하다.


김삿갓 주거유적지는 김삿갓이 방랑을 떠나기 전까지 살던 곳으로 그 시절 허기진 배고픔을 함께 나눈 200년 된 고염나무와 돌배나무, 250년 된 밤나무가 주거지를 지키고 있으며, 현재 이곳에는 현대판 김삿갓이 살고 있다고 한다(난고 김삿갓 문학관 팜플렛에서 발췌).


난고당(蘭皐堂)에는 김삿갓 어른의 영정도 있어 잠시 참배를 하고는 서둘러 앞서간 회원님을 쫓아 올라간다(11:59).


묘역앞에서 주거지까지의 거리는 1.8km이다.

충청도(단양)와 강원도(영월)를 9번 넘나들어야만 갈 수 있는 이곳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축지법을 쓸 수 있는 곳이다.

한 발에 충청도, 두 발에 강원도라 시감이 절로 날 수 있는 이 길을 지나야 김삿갓주거유적지에 도착한다(난고 김삿갓 문학관 팜플렛에서 발췌).


 

 김삿갓 주거지에 있는 난고당

 

 

주거유적지에서 계곡 길을 따라 올라가니 삼거리가 나오는데 모두 능선 쪽으로 올라갔는지 뚜렷한 오름길을 올라간다.

 

이내 밧줄이 나오면서 힘겨운 급경사 오름길이 시작된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자주 보이는 우거진 급경사 길을 따라 얼마간 올라서니 급경사는 완만하게 올라간다.

능선 상에 겨우살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김삿갓 주거지에서 51분 걸려 정상 직전의 삼거리에 도착한다(12:55).

이정표(←마대산 정상 0.1km, ↓김삿갓주거유적, 전망대 0.9km→)가 세워져 있다.


5분 정도 걸려 마대산 정상에 도착하니 2004. 8. 영월군에서 세운 정상석이 반긴다. 바로 옆에 삼각점(21 재설, 77.7 건설부)도 보인다(13:00. 휴식없이 진행하면 김삿갓유적지입구에서 1:24분 걸린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조망(북동방향으로 뻗은 주능선과 서북방향으로 태화산이 손에 잡힐 듯 시야에 들어오고 그 밑으로 남한강을 따라 고씨동굴 국민관광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이 좋을 듯 싶은데 구름이 낀 흐린 날씨로 주변 조망이 희미하게 보인다.

좁은 공터이고 바람도 세게 불기 시작하여 추위를 느껴 이내 전망대로 향한다(13:15).


 

 마대산 정상

 

다시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삼거리를 그대로 통과하여 13분을 진행하니 사면길로 가는 길과 능선길로 가는 삼거리가 나와(13:31) 능선길로 가기위해 좌측으로 올라선다.

 

이제 짧은 암릉길이 이어진다. 날씨가 받쳐주지 못하는 것이 이내 아쉽다. 그야말로 단풍이 절정이고 암릉과 소나무의 멋진 조화도 주변 배경이 어두우니 아쉽기만 하다.

 

암릉길을 얼마간 진행하니 1030m 전망대바위에 올라선다.

 

 멋진 모습

 

 

 날씨가 흐려 조망이 흐리다

 

 

 산 곳곳에 겨우살이가 많은 편이다

 

 

 전망대 봉우리에서 바라본 마대산의 모습

 

이곳에서의 조망은 정상보다 좋아 동쪽방향으로 함백산과 태백산, 구룡산, 선달산을 따라 고치령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하늘금이 파도처럼 한 눈에 들어오고, 단양 영춘면 의풍리와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가 산 속의 분지를 이루고 있고, 삼도 접경지인 어래산이 손에 잡힐 듯 강원도 고유의 거대한 산군이 시야에 들어온다는데 바로 코앞의 산만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아쉬움을 뒤로한 체 내려서니 이정표(←20m 전망대, 처녀봉 0.9km→)가 세워져 있는 공터에 닿는다.

전 고문님한테 연락받은 것도 있고 해서 이곳에서 간식을 먹기 위해 자리를 잡는다. 계속해서 불던 바람이 잠시 잠잠하다(13:41).


뒤에 오던 회원님들이 속속 도착하여 대식구가 모여 즐거운 간식을 먹는데 바람이 심불을 부린다.

결국 추위를 느껴 그리고 시간도 꽤 흘러서 하산하기 위해 일어선다.


14:16분에 처녀봉을 향해 출발한다.

내려갔다가(안부에서 북쪽방향의 계곡 길로 옥동리 마을로 하산할 수 있다) 짧은 오르막을 오르니(전망대삼거리에서 13분 걸려) 공터에 아름드리 소나무 2그루가 서 있는 처녀봉 정상이다(14:29).


아무런 표시가 없는 처녀봉에서 잠시 휴식하다가 14:35분에 하산한다.

급한 내리막을 16분 내려가니 이정표(김삿갓 묘역 1.2km)가 나온다(14:51).

7분을 더 내려가니 선낙골 외딴 농가가 나타나면서 시멘트도로가 시작된다(14:58).


농가 앞 계곡으로 난 시멘트 포장 농로를 따라(중간에 짧은 비포장도로가 있음) 18분을 내려가니 오름길에 보았던「 단체의 숲 안내」표지판이 보이면서 합수점이 나타나고(15:16) 7분을 더 내려가니 유적지공원이 나타난다.

여러 가지의 각종 시설물을 구경하고는 주차장으로 향한다. 주차장 뒤쪽으로 난고 김삿갓 문학관이 있어 입장료(\1,000)을 내고 구경한다.


 

산행초입 모습

 

 

 김삿갓의 시

 

 

 멋진 조형물

 

 

김삿갓 유적비

 

 

김삿갓 시

 

 

 김삿갓 문학관 앞에 있는 조형물

 

 

난고 김삿갓 문학관 모습

 

 

 김삿갓 문학관 내부 일부모습

 

김삿갓의 생애를 공부하고는 나와 늦은 점심을 먹는데 여전히 바람이 심불을 부린다.

16:46분에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21:52분에 상일동을 거쳐 22:30분에 건대입구역에 도착한다.


아차차!, 김삿갓 어른의 묘를 참배 못했구나!



난고 김삿갓의 생애

허름한 삿갓을 쓰고 조선 팔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당시 양반 귀족들의 부패상과 죄악상, 비인도성을 홀로 풍자한 방랑시인, 본명은 김병연(金炳淵), 호는 난고(蘭皐)이다.

5세 때 홍경래의 난으로 삼족이 멸하는 처지에 놓이자 종이었던 김성수가 구사일생으로 그를 구출, 황해도 곡산에서 키웠다. 김삿갓은 20세가 되기도 전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 백일장에서 장원이 되었으나, 조부를 욕하였다는 죄책감에 22세부터 방랑을 시작하여 40여 년 간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읊은 그의 시는 전국적으로 널리 퍼졌다. 인도주의적인 감정과 평민사상에 기초하여 지배층에 대해서 강한 반항 정신을 나타낸 그의 시는 서민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1863년 3월 29일 전라도 화순군 동북면 구암리에서 5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고, 3년 후 아들 익균이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노루목으로 묘를 이장하였다(난고 김삿갓 문학관 팜플렛에서 발췌)



눈 1 (雪)

天皇崩乎人皇崩

萬樹靑山皆被服

明日若使陽來弔

家家簷前淚滴滴


천황씨가 죽었는가 인황씨가 죽었는가

온갖 나무와 청산이 모두 상복을 입었네

만약에 내일 햇빛이 찾아와 조상을 하면

집집마다 처마 끝에 방울방울 눈물 흘리리


(해설)

예로부터 시인들은 자연에 몰입하여 순결의 상징인 눈을 즐겨 노래하였다. 그러나 사회현실의 모순과 갈등을 경험한 그는 온 세상에 흰 눈이 쌓인 것을 상복을 입은 것에 비유하였다.

즉, 김삿갓이 바라본 흰 눈은 축복과 순결의 이미지보다는 인생사에 대한 비애를 담고 있었을 것이다.



송아지 값 소송 (犢價訴題)

四兩七錢之犢

放於靑山綠水

養於靑山綠水

隣家飽太之牛

用其角於此犢

如之何則可乎


넉 량 칠 전 주고 사온 송아지를

청산녹수에 풀어놓고

청산녹수가 길렀는데

이웃집 살찐 큰 소가

뿔로 송아지를 받았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으리


(해설)

김삿갓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시인이다. 그는 우리 주변의 모든 소재를 시어(詩語)로 이용하였다.

즉, 죽은 송아지 문제로 다투는 이웃 간의 싸움을 말리면서 사람이 소를 기를 것도 아니고 또 사람이 소를 죽인 것이 아니니 서로 싸울 이유가 없다며 동정심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시를 지었다.

그는 이웃 간의 극한 감정대립마저 아름다운 시로 승화시키는 재주를 가진 시인이었다.



죽 한 그릇 (粥一器)

四脚松盤粥一器

天光雲影共徘徊

主人莫道無顔色

吾愛靑山倒水來


네 다리 소나무 상에 놓인 죽 한 그릇

하늘빛과 구름그림자 함께 노닐고 있네

주인이여 무안해 하지 마오

나는 청산이 물에 거꾸로 비치는 것을 더 좋아한다오


(해설)

이 절구(絶句)는 어느 시골집에서 죽 한 그릇을 얻어머고 지은 것이다.

너무 가난한 이 여인은 햇빛과 구름의 그림자가 사발 속에 어른거릴 정도로 멀건 죽을 대접하고 무안해하였다.

그러나 김삿갓은 오히려 「주인이여 무안해 하지 마오 나는 청산이 물에 거꾸로 비치는 것을 더 좋아한다오」라며 주인을 위로하였다.

김삿갓은 이미 초탈적(超脫的)이고 몰아적(沒我的) 경지에 접어든 시인이었다. 그리고 이 시에서 죽 밖에 줄 수 없는 가난한 여인의 심정에 대한 난고의 긍휼(矜恤)한 마음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돈 (錢)

周遊天下皆歡迎

興國興家勢不輕

去復還來來復去

生能捨死死能生


천하를 두루 돌아다녀도 모두 너를 환영하고

나라와 집을 흥하게 하니 네 힘이 가볍지 않구나

갔다가도 다시 오고 왔다가도 다시 가니

산사람도 능히 죽이고 죽는 사람도 살리는구나


(해설)

해학과 익살 그리고 세상 세태를 풍자하면서 살아가는 김삿갓일지라도 그의 가슴 한 구석에는 늘 남모르는 서러움이 복받쳐 올랐을 것이다.

그가 하룻밤을 지새우는 거처는 동네 서당이 최고의 잠자리고 시골집 사랑방이나 처마 밑이 고작이었다.

그는 세상의 야박한 인심 속에서 「산사람도 능히 죽이고 이미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돈에 대한 세상의 세태와 양반들의 횡포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엄흥용 著 「방랑시인 난고 김삿갓 한시집」중에서)

[난고 김삿갓 문학관 팜플렛 책자에서 발췌]


7.특기사항

①새싹산악회 742회 정기산행으로 39명이 참가했다.

②날씨가 흐려 주변 조망을 볼 수가 없었고, 산행들머리의 김삿갓 관련 유적지는 볼 만함.

③산행 중에 전통찻집(전통차를 팔긴 팔아도 농사짓는 민가이다)에서 오미자차를 먹었다.

④산행 이벤트로 시 쓰기를 했다.

⑤귀경길 차량지체로 건대입구에 저녁 10시 30분에 도착했다.

 

[시 쓰기 출품작 내용]

 

                                       마대산을 읊음

                                                                                                    -고물


                                충절의 늙은 죽순을 가르고 잘라서

                                가로잡고 세로 엮어 광명을 가리니

                                팔도백성이 알아보는 이 없다.

                                보는 듯 들리는 듯 신선의 노래있으니

                                님에게 뺏을 것은 입술뿐이노라


                           



                                                            무제

                                                                                              -초련


                                         삿갓 마대산에 오니

                                         마음과 몸이 공기처럼

                                         시원하고 새싹에 들어

                                         왜 마음이 항상

                                        부드럽고 시원하네

                                        다시 새싹에서

                                        만나 김병연처럼

                                        방량하고 새싹처럼

                                        발전하네

                                        멋저부러 새싹

                                        우리는 최고여!


                 





                                           11월 2일

                                                                                  - 보라돌이


                            부푼 맘 가슴안고 배낭을 정리하네

                            술 취한 저 사람은 아직도 한밤이네

                            아이고 이놈팔자야 언제까지 깨우나


                           산사람 만나는 날 날씨도 좋아좋아

                           저산도 나를 오라 멀리서 손짓 하네

                           뒷좌석 애주가님들 한잔 술에 또 한잔


                           마대산 산행시작 신랑이 걱정이네

                           지팡이 의지하며 힘겹게 오더니만

                           힘겨운 깔딱고개엔 주저앉고 말았네


                           맛좋은 늦은점심 미역국 환상일세

                           김삿갓 방랑시인 묘역도 참배했고

                           내일은 원점이라오 아자아자 파이팅


                           




                                     가을풍경

                                                                               -gs5073


                                     산이좋아 산에 오르니

                                     알록달록 예쁜옷 갈아입고

                                     같이 놀자 손짓하네

                                     발아래 산천은 굽이돌아

                                     위풍당당 자태를 뽐내네

                                     떨어진 낙엽은 저물어가는

                                     가을이 아쉬운 양

                                     바스락바스락 가을을

                                     노래하네


                 




                                                    마대산

                                                                                   -솔바람


                                  마  마르고닳도록

                                  대  대한민국 만세

                                  산  산에 오른 새싹 여러분 만만세


                          


                          김삿갓

                                                                                    -딸기향


                                  영월에 가을을 느끼며

                                  김삿갓 그대는 왜 외로이 생을 마감했는지

                                  하늘이 그대보기를 거절했는가?

                                  삿갓의 매력을 우리세대에 까지

                                  또 다시 상기시키며 발길을 머물게 하는지!

                                  아! 김삿갓 김삿갓



                                


                                        무제

                                                                               -이영


                                       산에 오르면

                                       눈으로 보며

                                       마음속으로 가져가며

                                       버리고 가는 것은

                                       오직 발자국만 남기고가는 새싹님들에

                                       산을 사랑하는 마음은 영원하리

                              

 


                                        마대산

                                                                                     -약초


                           김삿갓 흔적이 가득한 마대산을

                           오늘 처음 답사한다.

                           삿갓대신 모자쓰고 죽장대신 스틱잡고.


                           힘겨운 깔딱 오름길, 정상에 도착하니

                           정상석이 반기네.


                           형제봉은 어디로 갔고

                           태화산은 어디로 갔나

                           뿌연 안개 속에 보이는 건

                           겨우살이 뿐 이노라.


                          뿌연 안개가 야속하고

                          바람이 심술을 부리는구나.


                          하산하여

                          삿갓어른 묘소 참배도 못하였으니

                          다시 찾으리 마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