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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법주사

약초2 2007. 11. 5. 15:56

 

팔상전미륵대불로 상징되는 미륵신앙도량

대한불교 조계종 법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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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관람료 \3,000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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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일주문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209번지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

043-543-3615(8655), 원주실: 043-543-4755, FAX: 043-543-3620

홈피: www.beopjusa.or.kr/

 

 


60여동의 건물과 70여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大刹)

A.D.553년(진흥왕 14년) 의신(義信)스님에 의해 창건된 이후,

776년 진표(眞表) 및 영심(永深)스님 대의 중창을 거쳐 왕실의 비호를 받으면서 8차례의 중수를 거듭했던 법주사는,

조선조 중기에 이르러서는 60여동의 건물과 70여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大刹)로서의 위용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인해 절의 거의 모든 건물이 불타버렸던 결과,

1624년(인조2년)경에 이르러 벽암(碧巖)스님에 의해 또다시 법주사는 중창을 거듭하였고,

1851년에는 국가적 규모의 중수작업이 진행되기도 하였던 등 그 뒤 수차례의 중건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30여동의 건물이 조성된 현재의 법주사

팔상전(捌相殿)이라 불리우는 1기의 목탑과 더불어,

대웅보전(大雄寶殿)을 중심으로 용화전(龍華殿) 원통보전(圓通寶殿) 명부전(冥府殿) 능인전(能仁殿) 조사각(祖師閣) 진영각(眞影閣) 삼성각(三聖閣) 등 8개의 전각(殿閣)과 일주문(一柱門) 금강문(金剛門) 사천왕문(四天王門) 종고루(鐘鼓樓) 부도전(浮屠殿) 등 5개의 부속건축, 그리고 선원(禪院) 강원(講院) 염불원(念佛院) 등 3개의 원(院)이,

또한 염화당 용화당(龍華堂) 미룡당(彌龍堂) 응주전(凝住殿) 사리각(舍利閣) 종무소(宗務所)를 포함한 10여 채의 요사채들이 남아 있어 도합 30여동의 건물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미륵신앙의 요람 법주사

법주사는 미륵 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석가모니불이 멸한 후 56억 7천만년이 지나 우리가 사는 염부제인 지상에 내려와서

바라문의 여자 범마파제(梵摩波提)에게 잉태되어 마침내 부처가 된 미륵은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세 번에 걸쳐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설법을 행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고 합니다.

인간은 일심으로 미륵을 믿고 철저히 수행하고 선근(善根)을 쌓아서

용화삼회의 설법에 참가하여 구원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미륵신앙입니다.

 

 


용화삼회 설법도량(龍華三會 說法道場)

진표율사가 금산사(金山寺)에 이어 법주사를 제2도량으로, 금강산 발연사(鉢淵寺)를 제3도량으로 창건하였는데

이는 용화삼회 설법도량을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공민왕 11년에는 임금이 법주사의 불은(佛恩)에 감격하여 통도사에 칙사를 보내어

불사리(佛舍利) 1립(粒)을 옮겨다가 현재 수정봉 밑 능인전 뒤에 사리탑을 조성 봉안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세조는 당시 법주사에 주석하던 신미(信眉), 학열(學悅), 학조(學祖) 선사 등을 인견(引見)하고 법주사와 속리산 내의 사찰을 일신토록 하였다고 합니다.

 

 


법주사의 창건

법주사는 의신조사가 창건을 하고 진표율사가 7년 동안 머물면서 중건하였다고 전해져오나 삼국유사 4권 관동풍악발연수석기(關東楓岳鉢淵藪石記)에 보면 진표율사는 금산사에서 나와 속리산에 들러 길상초가 난 곳을 표해 두고 바로 금강산에 가서 발연수사(鉢淵藪寺)를 창건하고 7년 동안 머물렀다고 합니다. 진표율사가 그 후 금산사와 부안 부사의방에 가서 머물때 속리산에 살던 영심, 융종, 불타 등이 와서 진표율사에게서 법을 전수 받았습니다. 그때 진표율사가 그들에게 「속리산에 가면 내가 길상초가 난 곳에 표시해 둔 곳이 있으니 그 곳에 절을 세우고 이 교법에 따라 인간 세상을 구제하고 후세에 유포하여라」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영심스님 일행은 속리산으로 가서 길상초가 난 곳을 찾아 절을 짓고 길상사라고 칭하고 처음으로 점찰법회를 열었습니다. 금산사를 중건한 진표스님이 미륵불을 조성하였기 때문에 진표스님의 법을 받은 영심스님 등도 마찬가지로 길상초가 난 곳에 절을 세우고 미륵불을 조성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내용에 근거하여 현재의 법주사는 영심스님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려 인조 때까지도 절 이름을 속리사라고 불렀다는 점과 「동문선」에 속리사라는 제목 시가 실려 있는 점으로 미루어 아마도 절 이름이 길상사에서 속리사로, 그리고 다시 법주사로 바뀐 것이 아닌가 생각되지만 지금까지 정확하게 규명되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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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

 

 

법주사 사천왕문 (法住寺 四天王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6호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이 건물은 절을 지키는 사천왕상을 모시고 있는 문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집이다.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처음 세웠으며, 혜공왕 12년(776)에 중창하고, 조선 인조 2년(1624)과 고종 34년(1897), 1972년에 각각 중수하였다. 이때에 사천왕상도 다시 고쳤다.

사천왕은 사방을 지켜주며, 국가를 수호하는 네 신이다. 수미산 사천왕천(四天王天)에 머무는데, 동방의 지국천왕(持國天王), 남방의 증장천왕(增長天王), 서방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북방의 다문천왕(多聞天王)을 말한다. 위로는 제석천(帝釋天)을 섬기고, 아래로는 팔부중(八部衆)을 지배하면서 불법(佛法)을 믿고자 하는 중생을 수호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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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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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간지주

 

 

 

당간지주 (幢竿支柱)

당간이란 달리 찰(刹) 또는 찰주(刹柱)라 불리고 일반적으로 절(寺)을 사찰(寺刹)이라 말함은 절(寺)에 당간 즉, 찰(刹)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종파(宗派)를 표시하기 위해 당간 위에 특정한 색깔의 깃발을 내걸기도 하였다.

한편, 당간이란 솟대와도 같은 기능을 갖게 되어 신성구역임을 표시하는데 쓰이기도 한다. 현재 전하는 법주사 당간지주(幢竿支柱)는 고려 목종 7년(1006년)에 조성된 것으로서 조성 당시의 높이는 전체 약16m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 고종 3년(1866년) 국가재정마련을 위한 당백전(當百錢) 주조라는 대원군의 명에 의해 사찰의 수많은 금속물들이 수거된 바 있었는데, 당시 이곳의 철당간 역시 파괴되었다. 곧이어 순종 당시(1910년경) 이곳 철당간은 22m의 높이에 원래 모양대로 복원되었으며, 1972년 다시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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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미륵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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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미륵대불

 

 

 

청동미륵대불

절 왼편으로 커다랗게 서 있는 이 미륵불은 여러 번 옷을 갈아입은 전력이 있는 기구한 사연을 안고 있다.
신라 혜공왕 때인 776년, 진표율사가 금동미륵대불을 처음 지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몰수되었는데, 1964년에 시멘트로 다시 불사를 했다. 1990년에는 붕괴 직전의 시멘트 대불이 청동대불로 다시 태어났다. 2000년 들어 원래 제 모습을 찾아주자고 해서 금동미륵불 복원 공사를 했다. 3mm 두께로 황금을 입히는데 모두 80kg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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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미륵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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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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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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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상전

 

 

 

법주사 팔상전 (法住寺 捌相殿)

국보 제55호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처음 건립되었으며, 그 후 임진왜란 때에 불타버려 조선 인조 4년(1626)에 다시 지어졌고, 최근(1968)에 완전 해체 복원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팔상전은 법주사의 5층 목조탑 건축으로, 1984년 4월 30일 쌍봉사의 대웅전으로 쓰이고 있던 3층 목조탑이 화재로 소실됨으로써, 한국 목조탑의 유일한 실례가 된 중요한 건축물이다.

내부 기둥과 기둥 사이 4면에 석가여래의 일생을 8장면의 그림으로 나타낸 팔상도(八相圖)가 모셔져 있으므로 이 5층 목탑을 팔상전이라고 부르게 된 듯하다. 전체높이는 약 22.7m로소 현존하는 한국의 탑 중에 제일 높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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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사자석등과 대웅보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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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사자석등

 

 

 

법주사 쌍사자 석등 (法住寺 雙獅子 石燈)

국보 제5호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신라 석등 중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로 조성 연대는 성덕왕 19년(720)으로 추정되고 있다.

등은 부처의 자비로 명랑한 생활을 하며 여러 가지의 재앙(불교에서의 8난)을 예방하기 위하여 창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조 유물에 사자를 조각한 것은 삼국시대 이래 많은 예를 볼 수 있으나 현존하는 석탑, 석등에 조각된 사자상 중 법주사 쌍사자 석등이 가장 뛰어난 솜씨를 드러내고 있다.

다른 석등에 비해 불을 켜는 화사석과 그 위를 덮는 지붕돌이 큰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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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석등과 대웅보전

 

 

 

법주사 사천왕석등 (法住寺 四天王石燈)

보물 제15호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신라의 전형적인 팔각 석등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조각 수법으로 보아 혜공왕(765~780, 재위)대에 진표율사가 법주사를 다시 고쳐 지을 때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화사석(불을 켜놓은 부분)은 8각으로 4면에 창(窓)을, 나머지 면에는 사천왕상을 배치하였고, 지붕돌(석등의 위를 덮는 돌) 정상에는 보주를 받치고 있는 받침이 남아 있다.

사천왕이란 불교에서 수미산을 중심으로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동쪽의 지국천왕, 서쪽의 광목천왕, 남쪽의 증장천왕, 북쪽의 다문천왕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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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법주사 대웅보전 (法住寺 大雄寶殿)

보물 제915호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얕은 기단 위에 서 있는 중층의 이 건물은 신라 진흥왕 14년(553년) 의신조사가 창건하고, 인조 2년(1624년)에 벽암대사가 중창한 것으로 총 120간, 건평 170평, 높이 약 20m에 이르는 대규모의 건축물입니다.

내부에는 앉은키가 5.5m. 허리둘레 3.9m에 이르는 국내 소조불 좌상으로 가장 크다고 알려진 3신불(三身佛)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중앙에 봉안한 불상은 진실로 영원한 것을 밝힌다는 진여의 몸인 법신 비로자나불상이고, 좌측에 안치한 불상은 과거의 오랜 수행에 의한 과보로 나타날 보신 노사나불(아미타불)상이며, 우측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화신으로 나투신 석가모니불상입니다.

대웅보전에 모셔진 부처님은 실내 안존불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불상입니다. 세 분 부처님을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우리 사람에게는 정신 즉 마음이 있고, 공부를 하면 지식이 있게 되는 즉 덕이 있고, 사람마다 제각기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다 이 셋을 포용하고 있습니다. 법당의 가운데 부처님은 마음을, 왼쪽 부처님은 덕을, 그리고 오른쪽 부처님은 육신을 뜻한 것입니다. 이렇듯 부처님은 원래 한분이지만 우리중생들이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세 몸(三身)으로 모셔 놓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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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견보살상

 

 

 

법주사 희견보살상 (法住寺 喜見菩薩像)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8호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희견보살은 성불(成佛)의 큰 서원을 가지고 몸과 뼈를 태우면서까지 아미타불 앞에 공양하는 보살로서 사람에게 어떠한 어려운 일이 있어도 강한 의지를 배양하라는 뜻으로 조성한 것이라 한다.

이 보살상은 모루돌 위에 다기(茶器) 모양의 그릇을 머리에 이고 부처님 앞에 나아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모루돌과 보살 그리고 그릇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얼굴부분은 마멸이 심하여 자세히 볼 수 없지만, 잘록하고 유연한 허리와 대조적으로 그릇받침을 받쳐든 양팔은 힘겨운 듯한 모습을 꽤 사실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옷은 속옷 위에 가사를 걸쳤고, 띠 매듭과 옷자락이 무릎위에서 투박하게 처리 되었다.

신라시대에 만든 것으로 예술적 가치가 있는 희귀한 문화재이다. 전체 높이는 213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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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보전

 

 

 

법주사 원통보전 (法住寺 圓通寶殿)

보물 제916호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이 건물은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의신조사에 의해 처음 건립되고 혜공왕 12년(776) 진표율사에 의해 고쳐지어 졌으며 임진왜란으로 불탄 뒤 1624년(인조 2년) 벽암대사가 다시 고쳐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네모꼴 평면의 단층 메 모서리 지붕을 이룬 아름답고 화려한 건물로 이 안에는 높이 2.8m의 금으로 입힌 목조 관음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관음보살상은 머리에 화관을 쓰고 있으며, 자비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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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연지

 

 

 

법주사 석연지 (法住寺 石蓮池)

국보 제64호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8각의 받침석 위에 3단의 굄과 한 층의 복련대(伏蓮帶: 꽃부리가 아래로 향한 연꽃무늬대)를 더하고 그 위에 구름무늬로 장식된 간석을 놓아 거대한 석연지를 떠받쳐 마치 연꽃이 둥둥 뜬 듯한 모습을 표현한 걸작품으로 8세기경에 제작한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조형 수법은 기발한 착상에 의한 것이며 특히 동자주(난간의 짧은 기둥)의 형태는 불국사 다보탑의 석난간 동자주와 유사하다.

연꽃은 더러운 흙탕물에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우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듯이 우리의 현실은 서로가 시기하고 모함하는 연못의 흙탕물과 같은 세상이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착하게 생활하면 내세에는 극락세계에 태어난다는 불교의 윤회적인 교리를 표현한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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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전경

 

 

보은군 조례 제1902호(2007.8.13)로 내속리면 속리산면으로, 외속리면을 장안면으로, 회북면을 회인면으로 면 행정구역 명칭 변경 및 내속리면 대목리를 속리산면 도화리로 외속리면 하개리를 장안면 개안리로 리 행정구역 명칭이 변경되었다. 2007.10.01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