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세계유산

[세계유산] 13.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4.법주사 후기

약초2 2021. 11. 23. 01:00

[세계유산] 13.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4.보은 법주사

 

13.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山寺, 韓國의 山地 僧院·僧園)은 대한민국의 산사 7곳을 묶어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대한민국의 13번째 세계유산으로, 2018년 6월 30일 바레인에서 열린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가 결정되었다.

 

※산사 7곳

1.경남 양산시 통도사

2.경북 영주시 부석사

3.경북 안동시 봉정사

4.충북 보은군 법주사

5.충남 공주시 마곡사

6.전남 순천시 선암사

7.전남 해남군 대흥사

 

유네스코
지정번호
사찰명 소재지 건립시기 비고
1562-
001
통도사 (通度寺) 경남 양산시 646년 경남기념물
289호
1562-
002
부석사 (浮石寺) 경북 영주시 676년  
1562-
003
봉정사 (鳳停寺) 경북 안동시 672년  
1562-
004
법주사 (法住寺) 충북 보은군 553년 사적 503호
1562-
005
마곡사 (麻谷寺) 충남 공주시 640년  
마곡사 후기 (21.09.14) 보기: https://blog.daum.net/joingi61/15965691
1562-
006
선암사 (仙巖寺) 전남 순천시 529년 사적 507호
1562-
007
대흥사 (大興寺) 전남 해남군 426년
혹은 544년
사적 508호

[출처: 위키백과]

 

1. 답사 날짜: 2021년 11월 2일(화)

2. 답사 날씨: 맑음. 단풍은 절정이나 그리 썩 쾌청한 날씨는 아님.

3. 답사 코스: 말티재→정이품송→법주사→말티재

4. 답사 인원: 2명 (여행님)

 

5. 답사 시간

-05:20 중계동 발

-08:25 말티재 착 / -09:00 발

-09:05 정이품송 소나무 주차장 착 / -09:15 발

-09:25 법주사 주차장 착 / -11:00 발

-11:20 말티재 착 / -11:35 발

-이후 용문사(은행나무) 답사 후 귀가

 

6.답사 후기

 

대한민국의 13번째(2018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山寺, 韓國의 山地 僧院·僧園)」7곳 중 첫 번째로 공주 마곡사를 지난 9월 14일 다녀오고 이번이 두 번째로 보은 법주사를 찾았다.

 

▲ 법주사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7곳은 예전에 한 두 번씩은 다녀온 곳이지만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눈높이에 맞춰 다시 답사할 예정이다.

 

출근시간대에 고속도로가 항상 막혀서 이번에는 조금 일찍 출발했다.

그런데 웬걸 구리톨게이트 가기 전 공사로 인해 20여 분 심한 정체를 겪었다. 일찍 나와도 막히고, 출근시간대는 당연히 막히고….

 

공사구간을 벗어나 시원하게 고속도로를 달렸다.

집에서 준비한 아침을 음성휴게소에서 먹고 첫 번째 목적지인 말티재 전망대 주차장에 도착했다.(08:25)

 

 

단풍 절정, 말티재 전망대!

 

12굽이 말티재(말티고개)는 단풍철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났기 때문에 법주사 가는 길에 들렸다.

 

“보은현의 동쪽 6km에 있고, 고개 위 1.6km에 걸쳐 얇은 돌을 포장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이 속리산 행차 때 임금이 다니는 길이라서 길을 닦았다”는 기록은, 중종 26년(153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이 전하는 이야기다. ‘말티고개’라는 이름은 조선왕 “세조가 피부병으로 요양 차 속리산에 행차할 때, 험준한 이 고개에 다다라 타고 왔던 어연에서 내려 말로 갈아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 고개 이름의 유래다. 또 말의 어원은 ‘마루’로서 ‘높다는 뜻’이니 말티고개는 ‘높은 고개’라는 뜻이라는 이름유래도 전해지고 있다.

[출처: 보은군청 홈피]

 

말티재는 예전 산에 미쳐 있을 때 한남금북정맥 구간 종주시 답사한 적(2003.11.30)이 있었다. 그 뒤로는 승용차로 한두 번 지나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는 세월이 많이 흘렀다.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은 백두대간의 속리산에서 시작된 정맥으로 안성 칠현산(七賢山)에서 끝맺는 정맥으로 한남·금북으로 이어주며 서북쪽으로 김포 문수산(文殊山. 한남정맥)과 서남쪽으로 태안반도 안흥(금북정맥)까지 이르게 하는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산경표》에서 규정한 1대간 1정간 13정맥중의 하나로, 해발 400∼600m의 산들로 연결되었으나 때로는 100m의 낮은 구릉으로 이어지기도 한 이 산줄기는 동쪽으로는 괴산·음성·충주 등 중원의 남한강지역과 서쪽으로 이어지는 보은·청주·증평·진천 등 금강 북부지역의 생활 문화권을 영유하였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백제의 접경지역이기도 하였지만 현재는 중부지방과 호남지방의 자연스러운 경계를 이루고 있다.

 

◆ 주요 산

한남금북정맥을 이루는 산세는 속리산 천왕봉에서 서북쪽으로 말티재·구치(九峙)·시루산·구봉산(九峰山)·국사봉(國師峰)·선두산(先頭山)·선도산(先到山)·상봉재·상당산성(上黨山城)·좌구산·칠보산(七寶山)·보광산·행태고개·보현산·소속리산·마이산(馬耳山)·차현(車峴)·황색골산·걸미고개·칠현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속리산(1058m)-갈목재(390m, 지방도 제505호선 통과)-말티재(구 국도 제37호선 통과)-새목이재(신 국도 제37호선 통과)-탁주봉(530m)-구봉산(506m)-구룡산(549m, 금적지맥분기)-(팔봉지맥분기)-국사봉(589m)-선도산(547m)-산성고개(지방도 제512호선 통과)-이티재(360m)-구녀산(493m)-좌구산(657m)-칠보산(551m)-모래재(국도 제34호선 통과)-보광산(539m)-행태고개(국도 제36호선 통과)-보현산(482m, 부용지맥분기)-소속리산(431m)-망이산(454m)-수레티고개(중부고속국도, 지방도 제329호선 통과)-칠장산(492m, 한남정맥, 금북정맥 분리)

[출처: 위키백과. 극히 일부는 글쓴이가 약간 수정했음]

 

말티재가 시작되는 지점 길가에 속리산을 가기위해 고려 태조가 말티재를 넘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조각상이 세워져있다.

 

고려 태조의 조각상을 지나면 시작되는 말티고개. 지그재그 표고차를 급히 높이는 12굽이 고갯길을 승용차로 올라갔다.

 

말티고개(말티재) 정상에는 2020년 개장한 「백두대간 속리산 관문(말티재 전망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말티재 전망대는 2층(폭 16m, 높이 20m)의 전망대 및 조형물로 12굽이의 말티고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 명소이다.

 

▣ 백두대간 속리산 관문

 

◆ 주소: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속리산로 596

◆ 문의: 043-540-3220

 

◆ 소개

대한 8경의 하나로 1970년 3월 24일 국립공원이 된 속리산 길목 해발 430m에 열두 굽이 말티재가 있다. 정상(頂上)은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으로 고갯마루 동쪽은 남한강, 서쪽은 금강 수계(水系)를 가르는 분수령(分水嶺)이다. 남쪽 능선(稜線)은 갈목재를 거쳐 천왕봉에서 백두대간과 만나고 북쪽 능선은 국사봉을 거쳐 미원고개를 지나 청주 상당산성으로 이어진다.

 

이 말티재는 신라 제24대 진흥왕 14년(서기553년) 의신조사가 인도를 다녀오는 길에 법주사를 창건하려고 흰노새 등에 불경(佛經)을 싣고 넘어간 이래 1464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자비를 깨우치러 이 고개를 넘어 법주사로 갔으니 여기에 얼마나 많은 사연(事緣)과 애환(哀歡)이 서려있을까?

 

혜공왕 때 진표율사는 금동미륵대불을 세우려고, 고려 태조 왕건은 고개 길에 얇은돌(薄石)을 깔고, 공민왕은 안동에서 홍건적의 난(亂)을 피한 후 나라의 융성을 기원하려고, 조선 태조 이성계는 왕이 되기 전 100일 기도하러 이 고개를 넘어 법주사로 갔다.

 

조선 3대 태종은 즉위 16년 심신을 다스리려고, 7대 세조는 즉위 10년 훈민정음 주역 신미대사를 만나려고, 15대 선조 때 임진왜란 당시 승병(僧兵)들이 법주사로 집결하러 갈 때도, 인조 4년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때 불에 탄 법주사를 재건하려고, 구한말(舊韓末) 당백전에 쓰려고 법주사 금동미륵대불을 훼철(毁撤)하러 가던 사람들도, 1960년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 부부도 연말마다 이 고개를 넘어갔다.

 

옛날 말티재길은 한, 두 사람이 오가던 오솔길이었으나 법주사가 세워지고 난 후 통행자가 늘어나 그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일본 강점기(強占期) 1924년 충북지사 박중양이 신작로(新作路)를 냈고 1935년 도로 확장이 되었으나 현재 상·하행 각각 1차선 도로는 1966년 6월 김효영 충북지사가 당시 지역 국회 육인수 의원(영부인 육영수 오빠)의 도움으로 국군과 미군(美軍)장비 지원, 보은군민들의 노력 동원으로 확·포장 되었다.

 

‘백두대간 속리산관문’은 국·도비 등 58억원 예산으로 2016년 6월 21일 착공, 1층 79m 터널, 2층 59m 아치형 공간(전시실, 강의실, 휴게시설), 속리산방향 1층 상단에 자비성(慈悲城), 관문, 2층 좌우 벽에 국보인 법주사 팔상전과 쌍사자석등, 보은방향 1층 상단 보은성(報恩城), 2층 좌우 벽에 중부지방 최대 규모인 삼년산성과 전국 최초의 경관조명 보은대교가 있으며 맨 위의 복원된 능선에는 천왕봉, 문장대 모형을 만들어, 탐방객들이 전망을 즐기는 쉼터로, 속리산 관광의 새로운 명소이다.

[출처: 보은군청 홈피. 극히 일부는 글쓴이가 수정했음]

 

백두대간 속리산 관문(터널)을 통과하면 곧바로 로터리 교차로가 나오고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은 다소 이른 시간이라 여유가 있었다.

이곳 상부주차장에서 하부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은 데크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단풍이 절정이었다. 전망대에서 말티재 12굽이를 먼저 보고 단풍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전망대로 향했다.

 

주차장 우측 가장자리에 해발 430m 말티재 표지석과 천하대장군, 지하대장군의 석 장승이 서 있다. 국화로 장식한 각종 조형물을 지나면 「보은 탄생 600주년 기념비」, 「보은 탄생 600주년 기념물(5분야600점)」조형물, 「말티재 백두대간 속리산 관문 안내」대형 표지석, 「결초보은」표지석 등이 세워져 있다.

 

계단을 올라가면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정문이 나온다.

그런데 아뿔싸! 문이 닫혀 있었다.

9시에 개장하여 18:00에 문을 닫는다고 적혀 있다.

 

지금 시간이 8시 38분, 문이 열릴 때까지 20여 분을 기다려야 한다. 아까 관문을 통과하기 전에 전망대 위에 두 사람 있는 것이 생각나서 관문 바깥쪽에서 전망대를 올라갔다. 물론 난간을 넘어가야 했다. 전망대 건물이 잠겨 있을 때 이쪽을 많이 이용했는지 길은 매우 뚜렷했다.

 

▲ 전망대에서 본 12굽이 말티재의 모습

 

전망대에 올라갔다.

와우~!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전망대에서 본 12굽이 말티재길은 그야말로 환상이다. 구불길로 유명한 단양 보발재(구인사 가는 길), 지리산 오도재(함양) 못지않게 이곳 역시 너무나 환상적이다. 단풍시기를 기가 막히게 맞춘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했다. 이른 시간이라 산 그림자가 있어서 사진이 조금 어두운 것이 불만이라면 불만이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하부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데크로 향했다.

이곳 단풍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이다. 붉은 단풍의 터널은 글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더구나 사람들도 없어서 마음껏 사진을 찍었다.

 

▲ 상부주차장에서 하부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데크길의 단풍터널

 

실컷 단풍구경을 마치고 상부 주차장으로 되짚어 올라와 다음 행선지인 정이품송 소나무로 향했다.

 

9시에 개장하는 인공터널 위 건물은 교육장, 카페, 전시관 등의 시설물이 있다.

대추축제시기에 보은 출신 오장환 시인의 시와 자료전시(21.10.15~10.31)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축제가 끝난 후에 방문해서 보지 못했다.

건물은 법주사 다녀오고 귀경길에 다시 들르기로 하고 말티재와 작별했다.

 

▼ 말티재 단풍사진 보기: https://blog.daum.net/joingi61/15965724

 

[보은] 말티재 전망대 단풍사진 (21.11.02)

보은 말티재 전망대 단풍사진 2021년 11월 2일(화) 답사 ▣ 백두대간 속리산 관문 ◆ 주소: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속리산로 596 ◆ 문의: 043-540-3220 ◆ 소개 대한 8경의 하나로 1970년 3월 24일 국립공원

blog.daum.net

 

 

정이품송, 아직 건재하구나!

 

말티재에서 약 3.8km 거리, 7분 정도 걸려 정이품송 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정이품(현재로 따지면 장관급)송은 꽤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장관급이라 해도 그렇게까지 자리를 넓게 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할 만큼의 자리 만 확보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 정이품송 (천연기념물 제103호)

 

정이품송 이야기의 주인공 조선 세조
 
우리나라의 명승지나 노거수에는 유명한 인물 혹은 역사적 사실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가 남아있는데, 이중 나무와 관련하여 대표적인 것이 정이품송과 세조 임금의 이야기이다.
세조는 재위 10년 음력 2월 요양을 목적으로 온양, 청원을 거쳐 보은 속리산을 방문한다. 말티재를 넘어 속리산으로 가던 중 길목에 있는 소나무에 임금이 타는 가마인 연(輦)이 걸릴 것 같아 「연 걸린다」고 하자 신기하게도 늘어져 있던 가지가 스스로 올라갔다고 한다. 돌아가는 길에는 근처에서 갑자기 비가 와서 일행은 이 소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였다고 한다.
세조는 「올 때는 신기하게 나를 무사히 지나도록 하더니 이제 갈 때는 비를 막아주니 참으로 기특하도다」하면서 이 소나무에게 정이품의 품계를 하사하였다고 한다.
이후부터 이소나무는 연거랑이 소나무(輦卦松), 연송(輦松), 정이품송(正二品松)이라고 불렀으며, 인근 마을은 군사들이 머물렀다고 하여 진(진)터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출처: 현지 안내판]

 

정이품송의 외곽은 데크길이 깔려 있었는데 「정이품송 이야기의 주인공 조선 세조」, 「정이품송의 변천사」, 「정이품송을 지켜라」, 「정이품송 부인 정부인송 / 속리산 또 하나의 명품 소나무」, 「보은 속리 정이품송」등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1962년 12월 3일,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된 정이품송과 작별하고 오늘의 주 목적지인 법주사로 향했다.

 

▼ 정이품송 사진 보기: https://blog.daum.net/joingi61/15965725

 

[보은] 정이품송 (21.11.02)

보은 정이품송 사진 2021년 11월 2일(화) 답사

blog.daum.net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두 번째 답사

속리산 법주사를 찾아서!

 

정이품송 앞 주차장에서 약 2km 거리, 5분 정도 걸려 일반인이 관리하는 법주사 앞 소형 주차장에 도착했다.

 

▣ 법주사에 대하여

-법주사 홈피: www.beopjusa.org

-충청북도 보은군 사내리 위치. 미륵신앙 소개, 법주사 템플스테이 안내.

 

-호서지방 제일의 가람, 법주사 톺아보기

* 톺아보기: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의 본사

 

법주사는 553년(신라 진흥왕 14년)에 의신(義信)이 창건하였다. 의신이 인도에서 공부를 마친 후 신라로 돌아오는 길에 흰 노새에 불경을 싣고 돌아 왔는데, 절을 지을 터를 찾아다니던 중 흰 노새가 지금의 법주사 터에 이르러 발걸음을 멈추고 우는 것을 보았다. 의신은 노새의 기이한 행적에 걸음을 멈추고 산세를 보니 아름다운 절경에 비범한 기운이 서려 그 곳에 절을 지었다 한다. 이에 절 이름은 인도에서 가져온 경전, 즉 부처님의 가르침이 머물렀다는 뜻에서 법주사라 지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들어서 법주사에는 뛰어난 고승대덕이 주석하면서 여러 차례 중창이 거듭되었다. 문종의 다섯 째 왕자였던 도생 승통(고려 교정에서 가장 높은 법계의 지위)이 절의를 지냈으며, 원종 때는 자정 미수대사가 주석 했는데 왕명으로 각종 경전과 장소 92권을 찬술하기도 했다. 1363년(공민왕 12년)에는 왕이 절에 들렀다가 양산 통도사에 사신을 보내 부처님의 사리 1과를 법주사에 봉안하도록 하였다. 이 사리탑은 지금 증인전 뒤쪽에 남아있다. 조선 초 세조 때는 신미대사가 절을 크게 중창하였고, 조선 중기에는 60여동의 전각과 70여개의 암자를 지닌 대찰이 되었다. 그러나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고 부분적으로 중수를 계속했으나 정유재란을 맞아 또다시 전소되었다. 이후 1605년(선조 38년)부터 1626년(인조 4년)에 걸쳐 사명 유정이 팔상전을 중건했고, 벽암 각성이 절을 중창했다. 또한 1939년에 미륵불상 조성을 시작하여 한때 중단되었다가 1964년 완공했고 1967년에는 전각을 중수하였다. 1990년 청동미륵상을 대대적으로 중수하였고 그 대좌의 지하에 용화전과 성보전시관을 마련하였다.

 

법주사에는 국보 제55호 팔상전과 보물 제915호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보물 제916호 원통보전, 국보 제5호 쌍사자석등, 국보 제64호 석련지, 보물 제15호 사천왕석등, 보물 제216호 마애여래의상, 보물 제848호 신법천문 도병풍, 보물 제1259호 괘불탱, 보물 제1360호 소조삼불좌상, 보물 제1361호 목조관음보살좌상, 보물 제1413호 철확, 보물 제1417호 희견보살상 등 수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출처: 조계종 홈피]

 

살아있는 문화유산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

 

법주사는 대한민국의 사적 제50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의 유일한 목탑인 팔상전(국보 제55호)을 비롯, 다양한 문화재를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지정문화재 국보 3점, 보물 12점, 충북 유형문화재 21점, 문화재자료 1점이 법주사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 법주사 문화재구역 입장료 안내

 

속리산 국립공원 입장료는 폐지되었지만, 법주사는 문화재구역으로 관람료(일반 성인 5,000원)가 있다.

법주사 일주문을 통해 문장대를 가거나 법주사에 가는 사람은 입장료를 내야 한다.

 

◆ 기나긴 세월의 발자취 고스란히 간직한 문화재 소개

 

[국보 3점]

1.제5호 쌍사자석등 (1962.12.30 지정)

2.제55호 팔상전 (1962.12.30 지정)

3.제64호 석연지 (1962.12.30 지정)

 

[보물 12점]

[지방유형문화재 22점]

[문화재자료 2점]

 

[사적] 제503호 보은 법주사 (2009.12.21 지정)

 

[명승] 제61호 속리산 법주사 일원 (2009.12.09. 지정)

 

[천연기념물 2점]

1.제103호 정이품송 (내속리면 상판리. 1962.12.03. 지정)

2.제207호 망개나무(내속리면 사내리 산1-1. 1968.06.21. 지정)

※1966.06.24. 지정된 제4호 사적 및 명승지(속리산 법주사 일원)는 2009.12. 해지됨.

 

법주사 가기 전 주차장에 주차하고(경차인데 후불로 5,000원 냈다.), 법주사 매표소에서 5,000원 내고 법주사에 들어갔다.

 

단풍 절정기를 예상하고 법주사를 찾은 것이다.

 

※ 2021년 속리산 단풍시기

첫단풍 10월 15일 예상 / 절정기 10월 30일 예상

 

역시 단풍시기를 제대로 맞혔다고 생각이 들었다. 말티재도 그렇고 법주사도 그랬다.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속리산 자연관찰로」길로 갔다.

「국립공원이란?」안내판이 나온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은 현재(21.11.02일) 총 22개의 국립공원이 있고 산악형 17개, 해상해안형 4개, 사적형 1개가 있고, 우리나라 국토 면적의 약 4%(해상 면적 제외)에 해당된다고 한다.

 

속리산국립공원은 1970년 6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예로부터 제 2금강 또는 소금강이라 불릴 만큼 경관이 빼어나다. 총 면적 274.766k㎡에 달하는 속리산국립공원은 충북과 경북의 여러 지역에 걸쳐 바위로 이루어진 산으로, 주요 봉우리인 천왕봉과 비로봉, 문장대는 백두대간의 장엄한 산줄기를 잇고 있어 암봉과 암릉이 잘 발달되어 있다. 속리산에는 많은 산들이 접해 있으며, 남쪽의 천왕봉(1,058m)을 중심으로 비로봉, 문장대, 관음봉 등 8개의 봉우리가 활처럼 휘어져 뻗어나간다.

[출처: 속리산국립공원 홈피]

 

이어 「단풍이 드는 이유」, 「참나무이야기」, 「우리는 닮은 꽃, 생강나무와 산수유」, 「속리산국립공원 깃대종, 망개나무와 하늘다람쥐」등의 안내판을 지나면 헤어졌던 길과 합류한다.

 

▲ 법주사 일주문에 걸려 있는 2개의 현판

 

그리곤 일주문이 나오는데 이곳 법주사의 일주문에 걸려 있는 현판은 모두 2개인데 시야에 들어오는 현판은 「호서제일가람」이고 그 뒤로(자세히 봐야 보인다.) 「속리산대법주사」라 쓰여 있는 현판이 걸려 있다.

 

아치형 파고라 위에 「속리산 세조길」이라 적힌 간판이 걸려 있는 곳을 통과한다. 바닥은 낙엽이 수북하고 나무들은 울긋불긋 깊어가는 가을을 뽐낸다.

 

충북유형문화재 제167호인 「보은 속리산 사실기비」가 있는 속리실기비각, 충북유형문화재 제71호인 「벽암대사비」를 지나 정문 쪽인 아닌 좌측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돌 세 개가 눈에 들어왔다. 주변에 깔린 낙엽을 치우는 분도 계셨다. 우측에 있는 바위에 부처 그림이 있어 그곳으로 가봤다.

보물 제216호인 「마애여래의좌상」이다.

 

▲ 마애여래의좌상 (보물 제216호)

 

보은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 (報恩 法住寺 磨崖如來倚坐像) 보물 제216호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마애불(磨崖佛: 암벽에 새긴 불상)로 높이가 약 6m나 되는 큼직한 바위에 볼록 새겨진 이 여래 좌상은 보기 드물게 의자에 앉아 있는 의상(倚像)으로 옆에 조각된 지장보살과 함께 법주사의 성격을 알려주는 미륵불상이다.
둥글고 온화한 얼굴, 길고 큼직한 코, 둥근 눈썹, 뚜렷한 눈두덩, 꽉 다문 두꺼운 입술 등은 길다란 귀, 삼도(三道)의 표현 등과 함께 고려 초기 마애불의 특징적인 양식을 보여준다. 넓은 어깨에 비해서 유난히 잘록한 허리는 비사실적인 수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점은 거의 수평적으로 처리한 조각수법에서도 나타난다.
[출처: 현지 안내판]

 

마애여래의좌상 옆에는 제법 큰 단풍나무가 붉게 물들어 있어 황홀했다.

이제 중앙으로 이동했다. 압도적 크기의 금동불상과 팔상전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지만 석련지 먼저 보러 갔다.

 

▲ 법주사 석련지 (국보 제64호)

 

보은 법주사 석련지 (報恩 法住寺 石蓮池) 국보 제64호
 
신라 성덕왕 19년(720년)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1.95m, 둘레 6.65m에 이르는 희귀한 석조조형물이다. 8각의 받침석 위에 3단의 굄과 한 층의 복련대를 더하고 그 위에 구름무늬로 장식된 간석을 놓아 거대한 석련지를 떠받쳐 마치 연꽃이 둥둥 뜬 듯한 모습을 표현한 걸작품이다. 전체적인 조형 수법은 기발한 착상에 의한 것이며 특히 동자주(난간의 짧은 기둥)의 형태는 불국사 다보탑의 석난간 동자주와 유사하다.
[출처: 현지 안내판]

 

석련지을 보호하고 있는 사각의 누각은 새로 세웠는지 깨끗했다.

이어 높게 솟은 철 당간지주로 이동했다.

 

▲ 법주사 당간지주

 

법주사 당간지주는 22m의 높이라고 한다.

 

당간지주(幢竿支柱)란 무엇일까? 당간(幢竿)은 삼국시대 불교가 전파되면서 사찰 앞에 돌이나 쇠로 만들어 높이 세운 기둥으로 찰간(刹竿)이라고도 한다. 찰간에 깃발을 달아 종파, 문파를 알렸는데, 행사와 불사 때 행사를 알리고 그 주변지역에 사찰이라는 신성한 영역을 알리는 동시에 사원에 모든 액을 물리치려는 의미로 만들었다고 한다. 당(幢)이란 사찰의 문 앞에 긴 장대를 세우고 그 끝에 용두의 모양을 만든 다음 깃발을 달아서 부처님과 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과시하는 장엄구로서 모든 번뇌를 파괴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당번(幢幡)은 항상 달아두지 않고 기도나 법회가 있을 때 불전이나 불당 앞에 세우기도 하였는데 이는 중생을 지휘하고 마군(魔軍)을 굴복시키기 위함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절을 사찰이라 말하는 것은 절에 당간 즉 찰(刹)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종파를 표시하기 위해 당간위에 특정한 색깔의 깃발을 내걸기도 했다.

 

현재 전하는 법주사 당간지주는 고려 목종 7년(1006)에 조성된 것으로서 조성 당시의 높이는 전체 약 16m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 고종 3년(1866년) 국가재정마련을 위한 당백전(當百錢) 주조라는 대원군의 명에 의해 사찰의 수많은 금속물들이 수거된 바 있었는데, 당시 이곳의 철당간 역시 파괴되었다. 곧이어 순종 당시(1910년경) 이곳 철당간은 22m의 높이에 원래 모양대로 복원되었으며, 1972년 다시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제법 많은 사찰을 찾았지만 법주사처럼 철당간이 있는 곳은 기억에 없다.

 

▲ 사천왕문과 그 앞에 우뚝 선 전나무 2그루

 

이제 사천왕문으로 향했다.

사천왕문 앞에 우뚝 솟은 두 그루의 나무 이름이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했지만 쉽지 않았다. 숲해설까지 배운 글쓴이가 나무에 대해 모른다는 것이 창피도 했지만 어쩔 수 없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고, 워낙 높이 솟아 있고, 비슷비슷한 나무들이 많아서 이다.

인터넷에서 나무 이름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결국 전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나무는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침엽교목으로 젓나무라고도 부르는데 나무가 자라면 40m정도 까지 자란다고 한다.

나무 모양이 아름다워서 도시에서 정원수나 크리스마스트리용으로 많이 사용되었으나, 공해에 약해 도시에서 점점 사라지는 수종이기도 하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 하는 사람들이 계절 마다 사진기를 들고 찾아오는 곳이 바로 법주사인데 법주사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이 전나무 두 그루를 중심으로 법주사 전경사진을 찍는 등 최고의 모델이 되기도 한다.

오랜 세월을 이곳 법주사에서 함께한 이 전나무 두 그루가 앞으로도 그 웅장한 모습으로 오래도록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참고자료] 전나무에 대하여: https://blog.daum.net/joingi61/15964370

 

1.전나무속 나무들(전나무, 구상나무, 분비나무, 일본전나무)

제1장. 소나무과 나무들(솔방울 나무들) 소나무과 각 심피에 2개의 배주와 단지가 있다 1장씩 난다 가문비나무속 독일가문비나무, 가문비나무, 종비나무, 풍산가문비나무. 전나무속 구상나무, 전

blog.daum.net

 

전나무 두 그루의 호위를 받으며 사천왕문에 들어선다.

 

속리산 법주사 정문인 사천왕문(충북유형문화재 제46호) 앞쪽에 금강문이 있지만, 사천왕문이 원래의 정문이었다고 한다. 조선후기 인조 때 벽암대사가 법주사를 크게 중건할 때 지은 건물로 앞면 5칸 규모이다. 산지 사찰의 경우 언덕을 올라가면서 입구에 사천왕문이 있는 경우가 많지만 법주사 사천왕문은 평지 사찰 출입문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천왕문과 목탑인 팔상전, 금당이었던 대웅전이 일직선으로 나란히 배치된 1탑 1금당식 사찰의 공간배치를 잘 구현해 놓고 있다.

 

법주사는 삼국시대 진흥왕(553년) 때 창건되었다고 하며 혜공왕 때(776년) 승려 진표가 크게 중창함으로써 미륵신앙의 중심 사찰이 되었다. 오늘날 금동미륵대불이 있는 곳에는 오랫동안 금동대불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대웅전에서는 옛 금당인 장륙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통일신라까지 신앙의 중심이었던 목탑도 유일하게 남아 있다.

 

사천왕문을 나서면 드디어 고대하던 팔상전이 나온다.

 

▲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유일한 목탑인 팔상전 (국보 제55호)

 

보은 법주사 팔상전(捌相殿) 국보 제55호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유일한 목탑인 팔상전(국보 제55호)은 사찰 창건 당시에 의신대사가 초창했다고 전하며, 신라 혜공왕 12년에 진표율사가 중창했었으나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졌던 것을 1602년부터 사명대사(송운 유정)와 벽암대사에 의해 조선 인조 2년(1624)에 다시 복원된 것이라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1968년, 팔상전 해체중수공사시 중앙의 거대한 심주(心柱) 밑에 사리장치가 발견되어 팔상전 건립 경위를 밝히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전각 내부에는 사방 네 벽에 두 폭씩의 팔상도(석가여래의 일생을 8단계로 나누어 표현한 그림)가 모셔져 있으며, 그 앞에 불단을 만들어 불상을 봉안하고 불상 앞에는 납석원불과 나한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출처: 법주사 홈피]

 

정말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흐르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우리나라 유일의 5층 목조탑인데 크기(높이가 22.7m)가 커서 5층 전각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팔상전에서 금동미륵대불로 향했다.

금동미륵대불은 높이가 33m(아파트 12층 높이), 무게 160여톤이 나간다. 원래 이름은 미륵대불이었는데 2002년에 황금 옷을 칠한 후 부터는 금동미륵대불이라 부르고 있다.

 

▲ 금동미륵대불

 

사연 많은 금동미륵대불의 안내판에 적힌 내용을 보면 신라 혜공왕 12년(776년)에 진표율사가 7년간의 노력 끝에 금동미륵대불을 조성했는데 조선 고종 9년(1872년)에 대원군이 경복궁을 축조함에 소요되는 자금마련이라는 구실로 당백전 화폐를 주조하기 위해 불상을 몰수해 갔다.

그 후 1939년에 시멘트 부처님을 조성하던 중 80%의 공정상태에서 6.25 동란으로 중단되었다가 1963년 재개되어 1964년 5월에 완성되었다.

1986년 붕괴 직전의 시멘트 미륵부처님이 해체되고 1990년 4월 청동미륵부처님을 다시 조성했다.

2000년에 들어서 검푸른 청동녹을 벗겨내고 개금불사를 시작하여 2002년 6월 7일 금동미륵대불이 완성되었다.

개금방법은 건식전기도금공법으로 순금 3미크론 두께로 연도 금면적 900㎡에 황금 80kg이 소요되었고, 재원은 3만 불자의 시주금으로 충당되었으며 공사 연 동원인력은 총 4,500여명이었다.

[출처: 현지 안내판]

 

통일호국 금동미륵대불 내부로 잠시 들어 가봤다.

중앙에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는 국보 제83호. 삼국시대 불상)을 현대식으로 재현한 것이 모셔져 있다. 길게 이어진 벽면에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작은 불상들이 모셔져 있었는데 표정과 자세가 모두 제각각이었다.

또한 일반적으로 보기 어려운 귀한 탱화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금동미륵대불 석실 내부에서 나와 이제 다른 전각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관세음보살을 모신 법당인 원통보전(圓通寶殿)을 찾았다.

 

▲ 법주사 원통보전 (보물 제916호)

 

보물 제916호로 지정되어 있는 원통보전은 법주사 창건 당시 의신조사(義信組師)에 의해 지어진 건물로서 776년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중창하고, 임진왜란 떼 소실된 것을 1624년 벽암대사(碧巖大師)가 다시금 복원하였습니다. 전각 내부에는 앉은키 2.8m, 허리둘레 1.9m의 거대한 목조의 관음보살좌상(보물 제1361호)이 자비가 넘치는 상호로 봉안되어 있습니다. 원통보전은 정방형(正方形)의 특이한 건축양식으로서 조선 중기의 미묘하고도 화려한 건축미를 보여주고 있고, 주심포계(柱心包系)의 단층 건물로 사모지붕에 절병통으로 조성된 특유의 형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출처: 법주사 홈피]

 

이어 보물 제1417호인 석조희견보살입상(石造喜見菩薩立像)을 봤다.

 

▲ 석조희견보살입상 (보물 제1417호)

 

신라 33대 성덕왕 19년 (720년)경에 조성된 입상으로 향로를 머리에 이고 있으며, 향로 용기의 면에는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고, 보살상은 앞가슴 부분의 법의가 벌어져 있고, 힘이 들어간 듯한 근육이 조각 자체를 강하게 느껴지게 합니다. 구원겁토록 부처님께 향불을 공양하고 있는 희견보살의 모습을 조성해 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높이 약 2m, 붉은 화강석 재료의 조각상입니다. 보물 제1417호.

[출처: 법주사 홈피]

 

석조희견보살입상은 사각형의 전각에 모셔져 있다.

이어 진영각, 명부전, 삼성각을 차례로 봤다.

 

▲ 법주사 진영각

 

진영각은 사찰에 따라 조사각이나 조사당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앞면 7칸, 옆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고승대덕의 영정을 봉안하는 곳으로 법주사의 창건주 의신 조사, 전법초조 태고선사를 중심으로 모두 30분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 법주사 명부전

 

이어 명부전을 봤는데 명부전은 앞면과 옆면 각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진영각과 삼성각 사이에 있다.

명부세계를 주재하는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모시는 명부전은 협시불, 시왕(十王)을 모시고 있다.

 

▲ 법주사 삼성각

 

삼성각(三聖閣)은 대웅보전 왼쪽에 위치하고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내부에는 1991년에 조성한 칠성(七星), 독성(獨聖), 산신(山神)을 탱화로 봉안하였다.

 

이어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불전의 하나인 보물 제915호인 대웅보전을 봤다.

 

▲ 법주사 대웅보전 (보물 제915호)

 

이 건물은 신라 진흥왕14년(553)에 의신조사가 처음 건립하여 혜공왕12년(776) 진표율사가 고쳐지었으나 임진왜란시 불타 버린 후 인조 2년(1624)에 벽암대사가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면적이 402.80㎡. 높이가 약 19m에 이르는 대규모 건물로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불전의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이 건물과 같은 수법의 건물로 금산사 미륵전이 있다.

내부에는 높이 5.5m, 허리둘레 3.9m에 이르는 국내 소조불 좌상으로 가장 크다고 알려진 보물 1360호 법주사 소조비로자나삼불 좌상이 안치되어있다.

[출처: 현지 안내판]

 

※대웅보전(大雄寶殿)은 대웅전 격을 높여 부를 때 대웅보전 이라 한다.

※대웅은 고대 인도의 "마하바라" 를 한역한 말로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는 위대한 인물(大雄)로 일컬은 데서 명칭이 유래 했다고 함.

 

법주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塑造毘盧遮那三佛坐像): 보물 제1360호

 

보은 법주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은 법주사 대웅보전에 모신 삼신불로,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아미타불, 오른쪽에 석가모니불이 놓여 있다. 인조 4년(1626)에 현진(玄眞), 청헌(淸憲), 연묵(衍黙), 양묵(懹黙)등이 만들었으며 영조 23년인 1747년에 새로 금칠을 했다.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불상은 목조 불상과 소조 불상이 주류를 이룬다. 대부분 네모반듯한 모양의 장중한 형태이며 신체의 굴곡이 거의 없다. 법주사 소조 비로자나 삼불 좌상은 이러한 시대적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고 제작 연대가 확실하여 조선 후기 불교 조각의 기준이 되는 불상으로 평가된다.

[출처: 현지 안내판]

 

이곳 대웅보전에 와보니 이곳에도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앞서 본 전각들 그러니까 진영각, 명부전, 삼성각 모두 스님들이 자리 잡고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다른 사찰에서는 보지 못했던 광경이라 의아했다. 그러니까 전각마다 각각의 스님들이 자리 잡고 예불을 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대웅보전 앞의 계단에는 특이하게 돌원숭이가 좌 ․ 우로 배치되어 있었다.

 

이어 보물 제15호인 사천왕 석등을 봤다.

 

▲ 대웅보전 앞에 있는 법주사 사천왕 석등 (보물 제15호)

 

보은 법주사 사천왕 석등(四天王 石燈) 보물 제15호
 
보은 법주사 사천왕 석등은 사천왕이 조각되어 있는 석등으로 팔상전 서쪽에 있다. 사천왕은 불교에서 수미산의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을 뜻한다.
석등은 높이가 3.9m이며, 받침돌과 불을 밝히는 화사석, 지붕돌로 구성되어 있다. 받침돌은 밑받침돌과 위 받침돌이 대칭을 이루도록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화사석은 여덟 면으로 되어 있는데, 한쪽 네 면에는 창을 내고 다른 쪽 네 면에는 사천왕상을 두었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라간 형태이며 꼭대기에는 보주를 두던 받침이 남아 있다.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팔각 석등 양식으로 조각된 것으로 보아 신라 혜공왕 때 진표율사가 법주사를 고쳐지었을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보주: 탑이나 석등 따위의 맨 꼭대기에 얹은 구슬 모양의 장식
[출처: 법주사 홈피]

 

이어 국보 제5호 쌍사자 석등을 봤다.

 

▲ 법주사 쌍사자 석등 (국보 제5호)

 

◆ 쌍사자석등

 

국보 제5호인 쌍사자석등은 신라 성덕왕 19년(720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높이 10척에 이르는 8각 석등으로 두 마리의 사자가 마주 서서 뒷발로 복련석을 디딤하여 앞발로 양련석을 받들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사자가 디딤한 복련석은 8각 지대석 위에 놓여 있으며, 양련석 주위에는 이중으로 연꽃잎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신라시대 석등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신라시대 석조예술품 중 뛰어난 걸작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출처: 법주사 홈피]

 

쌍사자석등은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한 기억이 있어서 잠시 인터넷을 검색 해보니 광양 중흥산성(국보 제103호), 구례 화엄사(국보 제35호), 합천 영암사지(보물 제353호), 여주 고달사지(보물 제282호. 현재 경복궁에 있음), 양주 회암사지(보물 제389호) 등에서도 쌍사자석등이 있다.

 

다시 팔상전을 한 번 더 보고, 종각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곳(범종각)에는 친절하게도 「운판(雲版)」, 「목어(木魚)」, 「불교의 사물」, 「범종(梵鍾)」, 「법고(法鼓)」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한 안내판이 부착되어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됐다.

 

그중에서도 「불교의 사물」 안내판을 적어보면, 불교의 사물은 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중생(짐승, 미물을 포함)을 제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版) 범종(梵鍾)등 불교 의례에 사용되는 의식용 4가지 법구를 말한다. 범종은 유명계, 즉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영들을 제도하기 위해 치는 것이고, 법고(큰 북)는 육지의 동물을 위하여 두드리며, 운판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날짐승을 위해서 치고, 목어는 수중동물을 구제하기 위하여 친다. 라고 적혀 있다.

 

요즘 세계유산에 관심이 많아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답사를 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가는 곳 마다 꼭 문화재를 보수하고 있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돼서 예산이 늘어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무척 아쉬웠다.

이곳 법주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법주사 경내를 공사 차량들이 왕래 하는 것을 보고는 아연 실색했다.

어디 보수하는지 확인을 해보니 「궁현당 지붕보수공사」였다.

공사기간은 2021.06.18 ~ 2021.12.14 이고, 발주자는 보은군청으로 되어 있는데 왜 보은군청이 발주자일까? 법주사가 발주자가 아니고!

 

높이 1.95m, 둘레 6.65m의 감로천(甘露泉)을 보고, 대형 철솥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이곳 주변에는 붉게 물든 단풍이 있어 깊어 가는 가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 법주사 철솥 (보물 제1413호)

 

법주사 철솥(鐵鑊). 보물 제1413호

 

철솥은 법주사 공양간 근처에 있던 것으로 규모는 높이 1.2m, 지름 2.7m, 둘레 10.8m 이두께 10cm에 무게는 20톤에 달한다.

큰 사발형상을 하고 있는 이 철솥은 쌀 40가마를 담을 수 있는 규모로 법주사에 전하여 오는 말로는 법주사가 한창 번성하여 3,000 승도가 운집하여 있을 때 장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비교적 단순한 구조로 몸체에는 아무런 문양이나 기록이 없어 제조연대, 제작자 및 제조방법 등을 알 수 없지만 주철로 주조된 대형의 주물솥이라는 점에서 기술사적 측면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출처: 현지 안내판]

 

궁금해서 철솥 내부를 쳐다보니 역시나 수많은 동전이 깔려 있었다. 지폐도 몇 장 보였다.

이곳에서 단풍 사진 몇 장 찍고 금강문을 통해 법주사 경내를 빠져 나왔다.

 

▲ 법주사 금강문

 

금강문(金剛門)은 법주사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고, 197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앞면 3칸 규모이다. 양쪽에 담장을 쌓아 사찰 내 ․ 외부를 분리하고 있다.

 

이어 속리산 세조길을 거쳐 법주사 부도군과 단풍터널을 지나 주차장에 원위치하여 차량을 회수한 후 다시 말티재를 찾았다.

 

▼ 속리산 법주사 사진 1-2 보기: https://blog.daum.net/joingi61/15965726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속리산 법주사 1-2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속리산 법주사 사진 1-2 2021년 11월 2일(화) 답사

blog.daum.net

▼ 속리산 법주사 사진 2-2 보기: https://blog.daum.net/joingi61/15965727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속리산 법주사 2-2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속리산(보은) 법주사 사진 2-2 2021년 11월 2일(화) 답사

blog.daum.net

 

 

다시 말티재!

 

아침 이른 시간에는 상부 주차장에 주차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만 차로 할 수 없이 하부 주차장에 주차하고 올라갔다.

 

하부 주차장에서 상부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데크계단 주변으로는 환상의 단풍터널이다. 최고의 절정임을 알려주듯 많은 사람들이 길목을 막고 사진 촬영하기 여념이 없었다.

 

단풍터널의 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개방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전망대에 다시 도착했다. 역시나 많은 사람들로 인해 말티재 사진 찍기가 힘들었지만 아무튼 몇 컷 찍는데 성공하고 되짚어 내려와 귀경했다.

 

7.참고자료

 

(1) 세계유산

한국의 세계유산 총 52개 목록 [2021.11.17일 현재]

 

★ 한국의 세계유산(문화, 자연, 복합유산) 15개 목록

1.해인사 장경판전(1995년)

2.종묘(1995년)

3.석굴암과 불국사(1995년)

4.창덕궁(1997년)

5.화성(1997년)

6.경주역사유적지구(2000년)

7.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2000년)

8.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2007년) ※세계자연유산

9.조선 왕릉(2009년)

10.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2010년)

11.남한산성(2014년)

12.백제역사유적지구(2015년)

13.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2018년)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14.한국의 서원(2019.07.06) ※소수서원(경북 영주), 도산서원(경북 안동), 병산서원(경북 안동), 옥산서원(경북 경주), 도동서원(대구 달성), 남계서원(경남 함양), 필암서원(전남 장성), 무성서원(전북 정읍), 돈암서원(충남 논산) 등 9곳.

15.한국의 갯벌(2021.07.26). 보성-순천갯벌(전남 보성, 순천), 서천갯벌(충남 서천), 고창갯벌(전북 고창), 신안갯벌(전남 신안). ※세계자연유산

 

★ 한국의 인류무형문화유산 21개 목록

1.종묘제례(宗廟祭禮) 및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2001년)

2.판소리(2003년)

3.강릉단오제(2005년)

4.처용무(2009년)

5.강강술래(2009년)

6.제주 칠머리당 영등굿(2009년)

7.남사당놀이(2009년)

8.영산재(2009년)

9.대목장(大木匠), 한국의 전통 목조 건축(2010년)

10.매사냥, 살아있는 인류유산(2010년)

11.가곡(歌曲), 국악 관현반주로 부르는 서정적 노래(2010년)

12.줄타기(2011년)

13.택견, 한국의 전통 무술(2011년)

14.한산(韓山) 모시짜기(2011년)

15.아리랑, 한국의 서정민요(2012년)

16.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2013년)

17.농악(農樂)(2014년)

18.줄다리기(2015년)

19.제주해녀문화(2016년)

20.씨름, 한국의 전통 레슬링(2018년)

21.연등회(燃燈會), 한국의 등 축제(2020년)

 

★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16개 목록

1.조선왕조실록(1997년)

2.훈민정음(해례본)(1997년)

3.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2001년)

4.불조직지심체요절 하권(佛祖直指心體要節 下卷)(2001년)

5.조선왕조 의궤(儀軌)(2007년)

6.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高麗大藏經板-諸經板)(2007년)

7.동의보감(東醫寶鑑)(2009년)

8.일성록(日省錄)(2011년)

9.1980년 인권기록유산 5 ․ 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록물(2011년)

10.새마을운동 기록물(2013년)

11.난중일기(亂中日記): 이순신 장군의 진중일기(陣中日記)(2013년)

12.한국의 유교책판(2015년)

13.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기록물(2015년)

14.국채보상운동 기록물(2017년)

15.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17세기~19세기 한일 간 평화구축과 문화교류의 역사(2017년)

16.조선왕실 어보와 어책(2017년)

[출처: 유네스코와 유산 홈피 http://heritage.unesco.or.kr/]

 

(2)대한불교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 교구본사(25개)

 

서울: 직할교구 조계사 / 특별교구(군종교구)

경기: 제2교구 용주사 / 제25교구 봉선사

강원: 제3교구 신흥사 / 제4교구 월정사

충남: 제6교구 마곡사 / 제7교구 수덕사

충북: 제5교구 법주사

전북: 제17교구 금산사 / 제24교구 선운사

전남: 제18교구 백양사 / 제19교구 화엄사 / 제20교구 선암사 / 제21교구 송광사 / 제22교구 대흥사

경북: 제8교구 직지사 / 제10교구 은해사 / 제11교구 불국사 / 제16교구 고운사

대구: 제9교구 동화사

부산: 제14교구 범어사

경남: 제12교구 해인사 / 제13교구 쌍계사 / 제15교구 통도사

제주: 제23교구 관음사

※경북 영주 부석사(제16교구 고운사의 말사) 안동 봉정사(제16교구 고운사의 말사),

 

(3) 법주사 성보박물관 건립사업 기공식 (2021.11.15 기사)

 

보은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속리산 법주사에서 성보박물관 건립 기공식이 15일 열렸다.

 

군에 따르면 속리산 법주사 성보박물관은 국비 86억 5000만원, 도비 46억 7500만원, 군비 46억 7500만원 등 총 180억 사업비를 들여 2022년 말 완공을 목표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속리산 법주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소중한 불교관련 문화재 및 유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전시 등 활용을 통해 법주사의 유산적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조성된다.

 

보은군은 2019년 성보박물관 건립사업 추진에 들어가 기본계획 및 실시설계 용역을 마친데 이어 문화재 현상변경허가, 건축허가 등 행정절차를 지난 10월 완료했다.

 

특히 속리산 법주사 입구일원에 건립되는 성보박물관은 지상 2층 건축연면적 3043㎡ 규모로 전시공간 (실내)은 높이 17m, 폭 7.5m, 괘불 크기는 높이 14.3m, 폭 6.5m 보물 제1295호 보은법주사 괘불탱의 특별전시를 위한 실내 전시공간이 조성된다. 법주사 괘불탱은 조선중기의 괘불도로 1997년 8월 8일 보물로 지정됐다. 크기는 가로 6.5m, 세로 14.5m에 이른다.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 창건된 보은군을 대표하는 천년고찰로 지난 2018년 6월 30일 충북에서는 처음으로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와 함께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지정됐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전국산사 7곳 가운데 성보박물관이 없는 곳은 보은속리산 법주사가 유일하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4월 천연기념물분과위원회를 열고 보은속리산 법주사 일원내 성보박물관 건립안건을 조건부 가결했다.

 

충북도에는 처음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보은속리산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창건한 1500년 고찰이다. 법주사 일대는 2009년 12월 명승 61호와 사적 503호로 지정됐다. 보은속리산 법주사내 국내유일의 목탑인 팔상전(국보 55호), 쌍사자석등(국보 5호), 석연지(국보 64호) 등 국보 3점이 있다. 사천왕석등(보물 15호) 등 보물 12점과 천연기념물 2점, 충북도 유형문화재 22점 등 모두 43점의 지정문화재가 등록된 문화유산의 보고다.

 

정상혁 보은군수는 “2022년 말 완공을 목표로 추진하는 성보박물관 건립사업이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행정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