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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산줄기의 족보, 산경표

약초2 2010. 1. 29. 15:31

 

이용대의 등산칼럼(글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교장)

 

한국 산줄기의 족보, 산경표

 

종주등산의 참맛은 사방으로 시야가 터진 조망을 즐기며 걷는데 있다. 하늘과 땅이 맞닿는 공간에 솟아있는 크고 작은 산과 들판, 시원스레 뻗어나간 도로와 옹기종기 모여 군락을 이룬 마을과 도시, 산자락을 끼고 흐르는 개울과 강줄기, 이런 자연 풍경들을 보노라면 상쾌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우리나라 산에서 종주산행을 할 수 있는 대상은 여러 곳이 있으나 그중 으뜸은 역시 백두대간(白頭大幹)이다. 남쪽의 지리산에서 시작하여 북쪽의 향로봉까지 남북을 종단하는 약 690km에 이르는 백두대간은 종주등산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백두대간이라는 보통명사는 이제 등산을 하지 않는 사람까지도 알고 있을 만치 널리 알려진 이름이 되었으며, 지금도 전 국민적인 관심과 열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종주를 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백두대간을 무리지어 종주한 결과 산지와 식생이 훼손되어 정부가 등산로 복원에 예산을 투입할 정도에 이르렀지만, 백두대간이 우리의 옛 지리개념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알고 오르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하는 의문이 든다.

 

 

 

 

 

백두대간이란 이름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13년이다. 조선조 때 산줄기를 정리해 놓은 <산경표(山經表)>라는 책이 조선광문회에 의해 간행되면서 처음 등장하지만 사람들에게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다. 이후 백두대간이란 이름은 오랜 세월동안 묻혀 있다가 1980년 이우형이란 고지도 연구가에 의해 <산경표>가 발견되면서부터 대간(大幹) 정간(正幹) 정맥(正脈)의 개념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1986년 언론매체로는 처음으로 한국일보사가 발간한 월간지 <스포츠레저>에 ‘백두대간’이라는 말이 실리면서부터 그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백두대간이란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이 단어는 너무나 생소한 어휘였다. 수백 년 동안 전해 내려오던 우리 산줄기 이름이라는 사실이 다시 알려지기까지는 67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백두대간이란 북쪽의 백두산(2750m)에서 시작하여 낭림산, 금강산(1638m)을 거쳐 설악산(1708m), 태백산(1567m)까지 내려와 속리산(1058m)에서 지리산(1915m)까지 뻗은 한반도를 남북으로 관류하며 큰 획을 긋는 도상거리 1625km의 한반도에서 제일 긴 산줄기다.

 

높이는 100m에서 2750m까지 다양하며, 남한구간에서 1500m 이상의 높이를 지닌 산은 설악산(1708m), 오대산(1614m), 태백산(1667m), 덕유산(1614m), 지리산(1915m) 뿐이다.

 

백두대간은 조선조 후기에 발간된 지리서인 <산경표>에서 그 이름이 처음 등장한다. 이 책은 일종의 지리부도와 유사한 성격의 책으로 우리나라의 산줄기 명칭과 강줄기를 모두 포함한 지형에 관한 총체적인 정보를 수록한 책으로, 우리나라 산줄기와 갈래를 알기 쉽도록 만든 지리서이다.

 

‘산경(山經)’은 ‘산의 흐름’, 즉 산의 경과(經過)를 뜻한다. 산경 표는 우리나라의 산이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로 흐르다가 어디에서 끝나는지를 도표(圖表)로 표현한 책이름이다. 산줄기의 표현을 족보(族譜)기술 식으로 정리했으며, 산경(山經)을 바탕으로 거리(里數)를 부기해서 이를 펼치면 모든 구역의 경계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도표화했다.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본의 <산경표> 서문에서 밝혔듯이 ‘산경’만이 우리 산의 줄기(幹)와 갈래(派)의 내력을 제대로 나타낸, 산의 근원을 밝힌 표라고 했다.

 

산경표는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15개로 분류하고 있다. 1대간(大幹), 1정간(正幹), 13정맥(正脈)에다 다시 가지 쳐 뻗은 기맥(岐脈)까지 기록하고 있다. 이는 조선조 때 공인된 우리나라 산맥 이름이다. 산경표는 우리나라 인문지리학의 시초라는 평가를 받는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와 함께 조선조를 대표하는 인문지리서로 백두대간이나 여러 정맥들을 종주하거나 지리연구가에게 중요한 지침서가 되고 있다.

 

 

산경도(산경표를 따라서[박종율님]에서 발췌)

 

 

 

산경표는 백두대간 종주 붐을 조성했고, 우리의 지리개념을 재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과거 일본인 지리학자들이 왜곡시킨 우리 산줄기 개념을 바로잡는데 바탕이 되었다. 그동안 우리가 애써 배워온 산맥체계는 1903년 일본의 지리학자 고토 분지로(小藤 文次郞)가 발표한 지질학 연구논문 <조선의 산악론>에 토대를 두고, 야스 쇼에이(失洋 昌永)라는 일인학자가 집필한 <한국지리>라는 교과서에 수록된 내용이었다. 이 교과서는 고토분지로의 이론을 검증 없이 지리교과서에 적용한 것이다. 이것은 산맥이 실제 지형의 파악을 목적으로 하는 지리개념이 아닌, 땅속의 맥줄기인 지질구조선을 산맥의 기본개념으로 한 것으로 태백산맥, 소백산맥, 차령산맥 등의 이름이 여기에 해당한다. 백두대간과 태백산맥이라는 두 체계는, 전자는 땅위 지형의 개념이고 후자는 땅속 지질의 개념이다.

 

일제가 식민지 지하자원의 수탈을 목적으로 우리의 산줄기 개념을 지질의 개념으로 왜곡시키자 이를 우려한 육당 최남선이 자신이 설립한 조선광문회에서 우리 산줄기 갈래와 이름을 바로잡기 위한 민족적 저항의식에서 1913년에 산경 표 영인본을 발간한다. 이는 국민계몽사업의 일환이기도 했다.

 

조선광문회는 1910년 육당 최남선이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들어가자 출판물을 통해 국민계몽 사업을 벌이기 위해 발족한 단체다. 당시 일본 학자들의 한국학연구와 출판활동이 조선총독부의 비호아래 식민지 통치의 자료로 활용되는 것을 우려해, 우리 고전의 보존과 보급을 위해 민족문화 선양을 목적으로 설립한 것이다.

 

오늘날 산경표의 가치를 알 수 있게 해준 것은 조선광문회의 고전간행사업 덕택이다. 이때 우리 고유의 지리개념인 산경표의 가치를 인정하고 인쇄본으로 간행하지 않았다면 백두대간이라는 옛 산줄기의 이름을 재인식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산경표의 백두대간은 일제의 강점기간 동안 역사의 그늘 속에 묻혀 있다가 다시 햇빛을 보게 된 것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고지도 연구가 이우형(작고)에 의해 발견되어 옛 개념을 살리게 된 것이다. 백두대간을 되찾기까지는 67년의 세월이 필요했으니, 한번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일은 이처럼 어려운 것이다.

 

<산경표> 간행 시기는 18세기경인 조선조 때 만들어졌으며, 저자는 미상인 채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산경표>의 저자와 간행 연대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바 없다. 시대상황으로 미루어보아 조선조 후기 영조 때의 실학파 지리학자 여암 신경준(旅庵 申景濬, 1712~1781)의 저작이거나, 아니면 그가 제작한 여지고(輿地考)의 산경을 바탕으로 후대사람이 쓴 책이라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그는 정부가 주관한 여러 지리지편찬사업에 참여했고, <산수경(山水經)>과 같은 지리서와 <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 <팔도지도(八道地圖)> 등의 지도를 제작한 지리학자다. 1913년에 간행한 <산경표 영인본>은 조선광문회 소장본으로 여암 신경준의 <산수경>에 하여 선표(選表)되었다고 전한다. <산경표>의 저자를 밝혀내는 일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우리 고유의 산줄기 개념이 전해져 내려오지 못한 채 망각된 산줄기로 사라져 버린 것은 일제의 한반도 강점이 원인이었다. 현재 우리가 배워온 산 이름인 장백, 마천령, 노령, 태백산맥 등은 일본지리학자가 일반상식의 산맥과는 달리 지질구조선 즉, 땅속의 맥 줄기를 산맥의 기본개념으로 한 것이다. 산맥이라는 개념자체가 땅위의 어떤 선상(線上)을 기준하지 않고 땅속의 구조선을 기준으로 하여 거기에 땅위의 산들을 억지로 꿰맞춰 놓은 분류체계다. 그 결과 땅위의 산줄기에 상관없이 지질구조선대로 따라 그려진 산맥에는 물길들이 포함되는 모순을 낳기도 한다.

 

조선광문회의 <산경표 영인본>은 1990년에 작가 박용수가 해제를 붙여 ‘도서출판 푸른산’에서 재출간한바있다. 그동안 출간된 산경표 관련 연구서는 조석필이 쓴 <태백산맥은 없다>(1997년, 산악문화)와 현진상이 펴낸 <한글 산경표>(2000년, 풀빛), 박성태가 쓴 <신 산경표>(2004년, 조선일보사) 뿐이다. 백두대간 종주인구가 몇 백만을 넘어선 시점에서 백두대간이란 용어는 이제 보통명사가 되었다. 또 역사, 지리학자들도 백두대간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아직도 교과서에는 일제하의 지질개념의 오류가 그대로 남아 우리전통 지리개념처럼 배우고 있다.

 

그동안 이우형(고지도 연구가), 박용수(작가), 조석필(의사, 산악인), 현진상(산악인), 박성태 등이 산경표 관련 저서를 펴내며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주도해왔지만, 아직도 이 방면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 상태다. 학술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전문적인 연구가 이루어 지지 않고 있는 점이 아쉽다. m

[월간 마운틴 2009.11]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