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행선지인 광성보에 도착했습니다.
광성보 위치
사적 227호 광성보는 요금 1,100원 내고 입장합니다.
광성보의 안해루 입니다.
광성보
◆소재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833
◆사적 제227호(1971.12.28 지정)
이곳은 사적 제227호로 강화해협을 지키는 자연 지형이 험한 요새로 강화 12진보의 하나이다.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천도한 후에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터이다. 불은면 덕성리 해반에 소재하고 있으며, 강화해협과 김포와 마주보고 있다. 화장실 위치가 무기고였다고 전한다. 과거에는 감나무 아래 기와가 수북하였다.
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이곳을 경작하다가 대포탄환을 무더기로 발견하기도 했다고 한다.광성보는 강화에 여러 진이 설치되기 시작한 1658년에 설치되었는데 1679년 돈대를 쌓을 때 화도돈·오두돈·광성돈이 함께 축조되었다. 1745년(영조 21)에 성을 석성으로 개축하면서 성문을 건립하였는데, 이를 안해루라 하였다.
1871년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로 통상을 요구하며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오는 미국 로즈함대를 덕진진, 초지진, 덕포진 등의 포대에서 일제히 사격을 가하여 물리쳤다. 그러나 4월 23일 미국 해병대가 초지진에 상륙하고, 24일에는 덕진진을 점령한 뒤, 여세를 몰아 광성보로 쳐들어왔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어재연 장군을 중심으로 용감히 항전하였으나 열세한 무기로 분전하다가 포로되기를 거부하여 몇 명의 중상자를 제외하고 순국하였다. 이때 어재연 장군과 휘하 전수비군은 용감히 싸우다 장렬히 순국하였는데, 전사한 어재연 장군과 쌍충비와 약 50여 명의 순국영령들을 기리기 위한 신미순의총이 광성보에 있다.
신미양요 순국 무명용사비와 쌍충비의 모습
쌍충비 안내문
손돌목 안내문
그림같이 아름다운 용두돈대의 모습
용두돈대 내부의 모습
용두돈대
용두돈대와 물살이 센 손돌목의 바다 모습
용두돈대의 모습
용두돈대에서 바라본 모습(아직 해가 지려면 조금 시간적 여유가 있다)
광성돈대의 모습(역광사진)
광성보를 구경하고는 귀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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