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렁 더울렁 쉬어가는 여유로운 산길,
광활히 펼쳐진 바다에 점점이 떠있는 수많은 섬들―
푸르디푸른 하늘을 닮은 싱싱한 대지,
순수한 자연으로 고이 간직된
보배의 섬 진도를 다녀 온지도 시간이 많이 흘러갔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끝맺음을 하지 못하다
이제야 끝맺음했습니다.
진도(珍島) 여행후기
1.날 짜: 2008년 2월 29일(금)~3월 2일(일): 1박3일 여행& 산행.
2.날 씨: 3월 1일(맑음). 3월 2일(구름).
3.일 정:
진도대교→접도(아기밴바위 일출)→여귀산아래탑공원(조식)→남도석성→팽목항→하조도→하조도등대→도리산전망대→관매도해상유람→동석산산행→진도읍(중식)→운림산방→진도대교
4.참석인원: 새싹산악회 727회 정기산행 28명
5.여행후기 & 산행후기
2년 전 처음 진도를 접했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가슴깊이 생생하게 남아있어 많은 분들과 함께 하고 싶어 내가 속해있는 산악회에 정기산행으로 공지하였는데….
계속되는 바쁜 회사일로 「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가슴을 짓누른다.
날짜는 다가오고….
천만다행으로 잠시나마 여유시간이 생겨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비예보가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많은 회원님들이 불참한 가운데 28명이 참석하여 2월 29일(금) 저녁 출발한다.
서해안고속국도 목포 나들목에서 2번 국도를 이용하다 삼호면(삼거리)에서 49번 국지도(국가지원지방도)를 이용하여 진도대교를 건너는데 웬일인지 멎진 야경을 기대했던 꿈은 사라지고 불 꺼진 대교를 건넌다(새벽 3시경 통과. 나중에 진도군청에 확인해보니 진도대교 점등은 일몰부터 자정까지라는 걸 알았다).
※진도, 어떤 곳인가(월간 산 2005년 3월호 P.443)
전남 진도군(珍島郡)은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으로서 한반도 서남단에 자리하고 있다. 동쪽은 명량해협(鳴梁海峽) 일부를 사이에 두고 해남반도로 이어지고, 서쪽은 황해, 남쪽은 제주해협으로 트여 있으며, 북쪽은 명량해협을 사이에 두고 해남반도의 일부인 화원반도(花源半島) 및 신안군의 여러 섬들과 마주한다. 진도군은 본섬인 진도를 포함해 상조도·하조도·가사도 등 45개 유인도와 185개 무인도 등 230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진도는 호남정맥에서 분기한 ‘땅끝기맥’이 황해에 이르러 서서히 침강하여 이루어진 다도해에서 가장 큰 섬이다. 동쪽에는 첨찰산(尖察山·485.2m)·덕신산(德神山·385m)이 자리하고,
서쪽에는 지력산(智力山·325m), 남쪽엔 동석산·급치산(221m)·여귀산(457m)이, 북쪽에는 금골산(金骨山·193m)·설매봉(雪梅峰) 등 200~400m 정도의 낮은 산지가 많이 있다. 동북부는 구릉성 산지가 분포하고, 서남부는 급경사로 인한 침식해안으로서 경관이 좋다. 하천은 석교천·인지천·이십오천·진도천·의신천 등이 있으나, 대부분 3~6km로 짧고, 첨찰산에서 발원한 의신천만이 10km 정도를 이룬다. 농토는 유기질이 많아 매우 비옥하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했고,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인진도군(因珍島郡)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는 진도현으로 개칭하면서 무안군(茂安郡)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초기에는 나주(羅州)에 속하였다가 뒤에 진도군으로 독립하였으며, 995년(성종 14) 옥주군(沃州郡)이라 했다. 조선 태종 때 해남현과 합하여 해진군(海珍郡)이라 하였고, 1437년(세종 19) 해남과 분리하여 진도군이라 하였다.
1906년(고종 43) 명산면(命山面)을 영암군(靈巖郡)에, 삼촌면(三寸面)을 해남군에 이속시켰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안창면(安昌面)·가좌면(加佐面)·도초면(都草面)을 무안군에 편입시켰다. 1973년에는 군내면(郡內面) 수역리(壽域里)·수류리(水流里)·산월리(山月里)·해창리(海倉里)를 진도면에 편입시켰고, 1979년 진도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조도면(鳥島面) 만재도리(晩才島里)와 가사도리(加沙島里)의 일부가 신안군으로 편입되었다.
2005년 현재 진도읍·군내면·고군면·의신면·임회면·지산면·조도면 등 1읍 6면으로 이루어졌다. 면적은 430.6㎢, 인구는 37,408명(2004년 현재)이다. 군청소재지는 진도읍 성내리다.
진도군 일대의 해역은 대륙붕 지역이고, 북상하는 쿠로시오해류의 영향으로 어족이 풍부하며, 해수 오염이 없어 해조류양식에 유리하다. 섬으로만 이루어진 군이지만 주민의 일부가 반농반어에 종사하고, 대부분의 주민은 농업을 전업으로 한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콩·참깨·고구마를 비롯해 마늘·대파·배추 등 각종 채소류가 생산된다. 특산물로는 구기자·돌미역·돌김·멸치·유자와 진도홍주가 있다. 진돗개(천연기념물 제53호)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진도는 예로부터 문화와 예술의 고장으로 이름 높았다. 한국의 대표적 민요인 진도아리랑을 비롯해 남도지방에서 불리는 창이나 민요 등 어디를 가나 부녀자들의 노래 가락을 들을 수 있다. 진도지방에서 불리는 민요는 김매기 등 농사를 하면서 부르는 농업요가 대부분 고, 닻배노래 등 고기를 잡으면서 부르는 어업요나 유희요 등도 많다. 또한 조선 후기 남종 문인화의 대표적 화가인 소치 허유~미산 허형~의재 허백련~남농 허건으로 이어지는 화가와, 서예가 소전 손재형 등이 진도 출신이다. 매년 4~5월 신비한 바닷길이 열리는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와 모도의 간조육계도에서 영등제가 열린다.
1984년 진도대교 완공으로 비로소 육지와 연결되었다. 진도대교를 지나온 18번 국도가 섬 중앙을 지나 남쪽의 임회면 팽목항까지 이어진 다음, 의신면~고군면을 연결하여 동남부를 돌고 있다. 서부는 801번, 803번 지방도가 면마다 연결되어 있다. 진도 내의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임회면 팽목항에서 조도와 관매도행 배편이 있다.
※진도대교
정유재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왜선 330여척을 무찌른 명량대첩지, 울돌목위에 놓여진 우리나라 최초의 사장교(길이 484m, 폭 11.7m)로 1984년 10월 18일 준공되었으며, 2005년 12월 15일 제2대교가 개통되었다.
태초에 진도를 섬으로 태어나게 한 울돌목의 너비는 한강과 비슷한 294m 내외. 진도의 나이든 주민들은 ‘울두목’이라 부른다. 울두는 목구멍인 인후(咽喉)를 말하는 ‘울대’의 사투리다. 물살이 하도 거세서 붙은 지명이다. 특히 사리 때면 해협을 빠져나가는 물살이 소용돌이치면서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동물들 울부짖음처럼 우르릉거리는데, 주민들은 20리 밖에서도 그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조류는 시속이 최고 13노트(24km)로 이는 배가 제대로 운행할 수 없는 유속이다. 울돌목에 걸린 진도대교도 처음 계획은 현수교였지만, 빠른 물살 때문에 양쪽 해안에 69m의 강철교탑을 세워, 강철 케이블로 다리를 묶어 지탱하는 사장교 형식을 채택하였던 내력이 있다. 이 때문에 일찍이 전문가들로부터 세계적인 조류(潮流) 발전지로 꼽혀왔고, 얼마 전 정부는 여기에 조류발전소를 건립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고고학자들은 전망대가 있는 망금산 성터에서 백제와 통일신라시대 토기 파편을 발견하기도 했다. 황해와 남해를 잇는 바닷길인 울돌목은 고대부터 중요한 역사적 현장이었던 것이다.
신라시대에 완도에 청해진을 연 장보고도 이곳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후백제 세력이 고려의 왕건 군대에게 끝까지 저항하던 곳도 진도였는데, 이때 울돌목을 중요한 방어선으로 여겼을 것이다. 또한 고려 후기에 대몽항쟁을 주도했던 배중손 장군의 삼별초군도 이 물길을 방패막으로 삼았다.
누구보다 울돌목의 조류를 극적으로 이용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한 이는 조선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충무공이 1597년 정유재란 당시 단 12척의 배로 130여 척의 적선과 당당히 맞서 물리친 명량대첩의 현장이 바로 여기다. 이순신이 일본의 흉계로 통제사에서 물러난 뒤 원균은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일본 수군과 대전했으나 7월14일에 벌어진 칠천량에서 대패하여 조선 수군은 해상권을 상실한다. 당시 대부분의 조선 전함은 박살이 났으며, 원균도 목숨을 잃었다. 이에 선조는 8월30일 백의종군 중이던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한다. 백의종군에서 풀려난 이순신이 우수영에 도착했을 때 남은병력은 9명의 장교와 그보다 적은 6명의 병사가 전부였다. 이순신은 약 보름간의 강행군 끝에 12척의 전선과 120명의 군사를 모아 가까스로 수군의 모습을 갖춰 다시 전투 대비를 한다. 그러나 칠천량에서 전멸하다시피 대패한 뒤라 장수나 병사들은 지레 겁을 먹고 제대로 싸우려들지 않았다. 이순신은 두려움에 떠는 병사들에게 말한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必死卽生, 必生卽死).」
이 무렵 이순신은 해남 우수영의 진을 진도의 벽파진을 옮겼다가 다시 우수영으로 이동하는데, 이는 울돌목의 빠른 조류와 물때를 면밀히 조사해 작전을 짜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9월16일 일본 수군이 해남 어란포를 떠나 울돌목으로 공격해왔다. 구루시마 미치후사(來島道總)와 도도 다카토라(藤堂高虎)가 지휘하는 적은 133척의 대함대였고, 반면 조선 수군은 12척에 새로 한 척을 보탠 13척이 전부였다.
울돌목을 지나는 북서해류는 가공할 만한 유속이었다. 울돌목은 조류가 잠시 멈추는 정조기(停潮期)의 짧은 시간을 제외하고는 전투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물살이 빨랐다. 더구나 조수 이동이 심한 보름사리라 물살은 어느 때보다 거칠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적보다 물살을 바르게 읽고 있었다. 좁은 해협에서 일자진(一字陣)으로 적을 맞이한 이순신은 바뀌는 조류를 이용해 순식간에 일본 군선 31척을 무찔렀다. 대승이었다. 아군의 피해는 미미했다.
이 명량해전은 원균이 대패한 칠천량해전 이후 남해안에서 승승장구하던 일본 수군의 기를 꺾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남해에서 황해로 돌아 한양으로 진격하려던 일본군의 수륙병진계획을 송두리째 부숴 버린 전투로, 정유재란의 판세를 뒤집는 일대 전환점이 되었다. 죽음의 해협에서 일자진으로 풍전등화의 조국을 되살린 이순신 장군의 결단을 생각하면 심장의 박동은 울돌목 바위에 부딪쳐 튀어 오르는 조류만큼 세차게 뛴다. 열세를 극복하고 전세를 완전히 뒤집은 충무공의 명량해전을 목격한 진도의 민초들은 수많은 전설을 생산해냈다. 진도 여인들에게 군복을 입혀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도록 하여 군인이 많은 것처럼 위장했다는 망금산 강강술래 전설, 산봉우리를 이엉으로 엮어 노적봉을 만들고 군량미가 많은 것처럼 위장하였다는 군내면 독굴산 전설, 녹진 옆 분토리에서 백토(白土)를 바닷물에 풀어 쌀뜨물로 위장했다는 전설 등이 그것이다. 당시 울돌목 양안에 철쇄를 설치해 일본 군선을 격퇴했다는 영웅담도 후대에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설화라 한다. 발달한 현대 과학으로도 설치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설로 치부되던 일이 역사적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었다. 울돌목에서 남쪽으로 10여 리 떨어진 고군면 도평리엔 주인을 알 수 없는 떼무덤이 있다. 이 묘역엔 모두 232기의 무덤이 있는데, 창녕 조씨나 김해 김씨 등 진도를 기반으로 한 씨족 인물들 16기와 일부 무연고자들의 무덤을 제외한 200여 기는 정유재란 때 순절한 사람들의 것이다. 현재는 당당히 「정유재란 무명열사 묘역」으로 불리지만, 이전만 해도 떠도는 전설일 뿐이었다. 이 묘역의 무덤들이 명당도 아닌데다가 울돌목이 있는 북향을 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희생자 묘역임이 분명하다는 게 이곳을 조사한 목포대 박물관 조사팀의 지적이다. 당시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두었으나 곧바로 북서 밀물을 타고 신안 당사도로 빠지는 바람에 우수영을 비롯한 해남과 진도 주민들이 적군 잔당의 보복에 시달렸던 상흔이기도 하다.
※명량대첩
1597년(선조 30) 9월 정유재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울돌목(명량)에서 일본 수군을 쳐부순 명량대첩(鳴梁大捷)은 정유재란의 전환점을 마련해준 해전이다. 조선군은 12척의 전선으로 133척의 적과 싸웠고, 왜선 31척을 격파했다. 명량해전의 승리로 칠천량해전 이후 남해안에서 승승장구하던 일본의 수륙병진계획은 차질이 생겼고, 조선은 다시 해상권을 회복하였다.
명량해전의 현장인 울돌목은 해남반도와 진도 간의 좁은 해협을 이루며 바다의 폭은 한강 너비 정도의 294m 내외다. 물길은 동양 최대의 시속을 지닌 11~13노트의 조수가 흘러 배를 운행하기 힘든 곳이다. 한편, 1984년 10월18일 진도군 녹진과 해남군 학동 사이의 울돌목에 놓인 진도대교는 길이 484m, 폭 11.7m의 사장교다. 현재 다리를 넓히는 마무리공사가 한창이다.
고군면 벽파진에 세워진 이충무공 벽파진전첩비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기리기 위해 1956년에 세운 비석으로, 커다란 바위 언덕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비석 머리에는 쌍룡
이 휘감은 채 양편으로 머리를 내놓고 있는데 매우 사실적이다. 비문은 노산 이은상이 짓고 글씨는 진도 출신 서예가 소전 손재형 선생이 썼다. 명량해협의 동쪽 길목인 벽파진은 진도대교가 놓여 지기 전만 하더라도 진도와 육지를 오가는 관문이었다.
수품항에서 아기밴바위로 일출보러 가는 길
불 꺼진 진도대교를 쏜살같이 내달려 접도로 향한다.
18번 국도를 이용하여 금갑리로 향한다. 접도대교를 건너 군도6호선 포장도로 따라 진행하니 수품항 표지석이 서 있고 정자도 세워져 있는 넓은 주차장에 도착한다.
아기 밴 바위에서 바라보는 일출이 멋지다 하여 이곳 수품항에 도착을 하긴 했는데 앞전에 남망산 산행 만 하고 아기 밴 바위는 가본 적이 없어 사전 답사를 하려고 버스에서 나와 어두운 밤을 조금 걸어가는데 어느새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무시하고는 좀 더 살피다가 아기 밴 바위 등산로의 들머리를 확인하고는 다시 버스로 되돌아와 좌석에 앉아 아직 일출시간이 남아있어 잠시 눈을 붙인다.
일출시간이 다 돼서 일어나 회원님들과 함께 일출을 보려고 버스에서 나와 조금 진행하면 좌측으로 「등산로 첫 입구」「진도 접도 웰빙 등산코스」「일출전망대 아기밴바위」의 3개 표지판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 산행들머리가 나온다.
잠시 완만하게 오르다 이내 평평한 길을 얼마간 진행을 하니 본격적인 숲으로 들어선다. 조금 진행하니 오르막으로 이어지다가 이내 주능선에 올라선다.
주능선에서 좌측으로 가면 일출전망대이고 우측으로 가면 아홉봉으로 가는 길(이정표 있음)이라 좌측으로 꺽어 조금 올라가니 「일출전망대 아기밴바위」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일출봉 정상에 닿는다. 조망이 너무 멋지다.
잠시 조망을 즐기다가 조금 더 진행하여 해안가 아래로 내려가니 아기밴바위 위에 서게 된다. 이곳 역시 조망과 주변경관이 너무나 멋지다. 곧바로 회원님들도 따라 내려와 잠시 사진을 찍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어느 사이 해가 구름사이로 막 떠오르기 시작한다.
다행히 못 볼 줄 알았던 일출이 장엄하게 떠오르고 있다.
『전남 진도군 의신면에 위치한 작은 섬 접도는 과거 금갑도 유배지로 섬중의 섬이었지만 지금은 다리로 연결되어 교통이 원활하다. 접도의 3개 마을 중 수품마을은 국가지정어항으로 지정되어 1차 투자가 완료되어 방파제, 물량장 등이 설치되어 아름다운 어항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수품항 「아기 밴 바위」에서의 일출관람
커다란 바위가 작은 바위를 잉태한 듯한 형상의 아기 밴 바위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새벽녘 잔잔한 바다위로 태양의 미광이 물길을 따라서 바라보는 이의 가슴에 이르러서는 마치 활화산에서 분출되는 마그마의 기운이 느껴진다.』(진도체험관광 책자에서 발췌)
아기밴 바위에서의 일출모습
수품항 모습
일출사진 몇 장을 찍고 다시 일출봉으로 올라가 하산하여 수품항에 되돌아 와 다음 행선지인 여귀산 아래 탑 공원에서 미리 준비해 간 아침식사를 하기 전 때마침 생일을 맞이한 회원님 두 분의 생일축하도 해주며 즐거운 아침식사 시간을 보낸다.
여귀산 아래 탑 공원 모습
이제 남도석성으로 향한다.
남도석성(南桃石城)
임회면 남동리 바닷가에 자리한 남도석성(南桃石城)은 고려원종 때 배중손 장군이 삼별초군을 이끌고 진도로 남하하여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삼고 최후까지 격전을 벌인 성이다. 패주하던 삼별초가 돈지에서 둘로 나뉘었는데, 임회 방면으로 패주했던 배중손 장군과 그 부하들은 남도석성에서 최후를 마쳤다 전한다. 금갑에서 배를 탄 김통정, 유존섭은 제주로 건너가 그곳에서 2년 남짓 항몽전을 펼치다가 여몽연합군에 섬멸되었다. 이곳엔 삼국시대에 이미 성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고, 현재의 성은 조선 초기 진을 설치하면서 세운 것으로 보고 있다.
1765년경(영조 41)에는 둘레 1,040척, 높이 12척의 성이었다고 한다. 동·서·남문이 있던 자리가 잘 남아 있으며, 둘레가400여m 정도이지만, 해안지방을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위치임을 보여주고 있는 유적으로 가치가 매우 크다. 성문 앞에 있는 쌍운교와 단운교는 석성의 외곽을 건너다니기 위하여 축조한 것인데, 편마암의 자연 석재를 사용한 것으로는 드물어 학계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남도석성에 도착하니 남도석성 만호비가 가장 먼저 반긴다.
남도석성 안으로 들어가니 여러 채의 민가가 생활하고 있다. 얼마 못가 석성은 끝이 나 성벽 위로 올라가 반 바퀴를 둘러보고는 내려와 성 밖으로 나오니 전남 문화재자료 제215호인 쌍운교 및 단운교가 반긴다.
먼저 단운교를 보고 조금 위로 가면 쌍운교가 나오는데 쌍운교 아래에는 수많은 송사리 때 들로 장관을 이뤄 잠시 즐거운 구경을 한다.
쌍운교 및 단운교는 「규모가 작으나 단아한 멋이 있고 자연석을 사용하여 투박하지만 오히려 서민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다」고 표지판에 적혀있다.
남도석성의 모습
단운교와 쌍운교 모습
남도석성 구경을 마치고 이제 하조도를 가기위해 팽목항으로 향한다.
팽목항에 도착하여 총무님과 함께 매표소(서진도 농협 조도지점: 사무실(542-5383~5), 팽목매표소(544-5353), 어류포매표소(542-3771). 팽목항에서는 창유(어류포)와 관매도 가는 배를 탈 수 있다)에 들어가 매표를 한 후 전세(관광)버스와 작별하고 10시 20분 배를 타고 하조도(창유리)로 향한다.
※팽목항에 게시되어 있는 운항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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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조도출발 (율목항) |
하조도출발 (어류포) |
진도 출발 (팽목항) |
관매도출발 |
비고 |
1항차 |
07:00 |
07:30 |
08: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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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항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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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
1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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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항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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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
12:00 |
13:15 |
팽목-창유-관매 |
4항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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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0 |
1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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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항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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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 |
18: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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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3월 1일부터 조도고속훼리호는 운항시간표가 다음과 같이 변경되오니 미리 숙지하시어 불편함이 없도록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상기시간은 조석차 또는 선사의 사정에 의하여 변경될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 피서철이나 명절 연휴시에는 증편하여 운항합니다.
문의사항은
061-544-5353 (팽목 매표소)
061-542-3771 (어류포매표소)
서진도농협 조도지점
팽목항 매표소와 조도고속훼리의 모습
30분 걸려 하조도(下鳥島) 어류포항(창유리)에 도착하니 이미 연락을 취했던 마을버스 사장 겸 기사인 박정환(010-8677-8910) 사장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버스에 승차한 후 가장 먼저 하조도등대를 향해 출발한다.
하조도 지도
도리산전망대 위치
하조도등대의 모습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도로 폭이 좁아지면서 두 대가 교행하기 힘든 비포장도로를 달려 하조도등대에 도착한다.
『하조도항로표지관리소(下鳥島航路標識管理所)는 서해와 남해를 연결하는 해상교통의 요충지인 장죽수도(長竹水道)가 내려다보이는 진도군 조도면 창유리 산7-2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폭이 좁고 유속이 빠른 장죽수도를 항해하는 선박이 안전하게 통항할 수 있도록 다양한 항로표지(航路標識)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이곳 하조도항로표지관리소는 1909년 2월 조선총독부 체신국에서 야간에 불빛을 이용하여 위치를 알려주는 등대(燈臺) 건립을 시작으로 1953년 5월에는 안개 등으로 시계(視界)가 불량할 때 음향(音響)을 이용하여 위치를 알려주는 무신호기(霧信號器)가 설치되었다.
또한 2006년 5월 연안을 통항하는 선박들의 항행안전을 위하여 해상교통관제(海上交通官製) 및 각종 항행안전 정보를 제공해 주는 연안VTS(Vessel Traffic Service;선박통항관제서비스)의 레이다 기지국이 설치되었고, 해양 기상정보 제공을 위한 기상신호표지시스템등 변화하는 해상교통 여건에 발맞춰 다양한 해양교통시설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하조도의 아름다운 자연과 기암절벽이 한데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는 하조도항로표지관리소는 2007년 9월 노후된 시설물을 정비하고 방문객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을 확충하여 해양 친수공간으로 조성되었으며, 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등탑(燈塔)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지역의 상징물이 되고 있다.』
(하조도항로표지관리소 벽에 붙어 있는 대형실사 안내문에 적혀있는 내용 발췌)
너무 멋진 하조도 등대 주변을 살펴본다.
관사를 지나 나무계단으로 내려가니 돌고래 3마리가 지구를 떠받치는 멋진 조형물이 세워져 있는 조망대에 닿는다. 장죽도(長竹島)가 아주 가깝게 보이고 그 뒤로 겹쳐 있는 진도 본섬도 보이고 그밖에 크고 작은 많은 섬들이 떠 있는 다도해(多島海)를 바라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조망대에서 다시 계단을 올라와 관사를 지나 능선 끝자락 꼭대기 위에 세워져 있는 정자(육각정자. 운림정(雲林亭))로 가기위해 나무계단을 오르는데 때마침 강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데 상당한 추위를 느껴 되돌아갈까 하다가 「이곳에 오기도 힘든 곳인데…」하는 생각이 들자 강한 바람을 기쁘게 맞으며 힘겹게 계단을 올라가 정자위에 선다.
잠시 운림정에서 다도해를 바라보다 강한 바람의 추위 때문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곧바로 내려간다.
그래도 바람 따위는 괜찮다는 듯 대부분의 회원님들이 운림정을 향해 올라간다.
도리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
운림정에서 내려와 조도여객 버스를 타고, 이제 왔던 길 되 돌아 나가 하조도의 포장도로를 따라 구석구석을 진행하면서 박정환 사장은 한 곳도 놓치지 않고 진도에 대해 그곳의 지명과 특산품 등 여러 가지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면서 운행을 한다.
버스는 한국의 아름다운 도로 100선에 선정된 조도대교(상조도와 하조도를 연결하는 다리)를 건너 상조도의 도리산전망대 입구의 삼거리에 도착하여 주차를 하려고 하는지 빽을 한다. 그와 동시에 빽(거꾸로) 상태로 거리는 500m 이지만 4번씩이나 굽어진 도리산전망대까지 올라가는데 회원님들의 입에선 연실 감탄을 금치 못한다.
박사장님 예기로는 뒤로 가야 도리산전망대 올라가면서 다도해의 풍광을 다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거꾸로 가는 버스로 올망졸망한 섬들의 고향인 다도해의 멋진 풍광에 연실 감탄한다.
아까 하조도등대에서 만난 남성3인조 자가용이 버스를 바짝 뒤따라오면서 놀라운 표정을 짓는 모습이 목격된다.
짧게 한 번, 연속해서 세 번 굽어진 고개를 완벽하게 거꾸로 올라온 버스는 도리산 전망대 주차장에 주차한다.
버스에서 내려 잠깐 포장도로 따라 올라가니 돈대산(223m) 도리산전망대 나무데크에 도착한다(전망대가 위치한 곳은 돈대산 정상부근이고 도리산이라는 이름은 산이름이 아니라 마을 이름이다. 상조도에 위치한 산은 돈대산[223m]이고 하조도에 위치한 산은 돈대봉[271m]인데 돈대봉이 조도면 최고봉이다).
도리산전망대 데크에서 바라본 다도해의 풍광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다.
말로,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멋진 풍광 앞에 그저 넋 놓고 바라볼 뿐이다.
조망데크엔 나무벤치와 조망도가 설치되어 있어 수많은 섬들을 쉽게 알아 볼 수가 있다.
민박집 전경
관매도 해상유람에서 바라본 관매8경의 모습
환상의 다도해 풍광을 본 후 버스로 되돌아가 이제 민박집으로 향한다.
다시 조도대교를 건너 창리를 지나 고개를 두 번 넘어서니 신전해수욕장이 나오고 곧바로 민박집(진도군 조도면 신전리 1238)에 도착한다.
짐을 풀어놓고 관매도 해상유람을 하기위해 부둣가로 이동을 한다.
지금은 시즌이 아니라 유람선이 운행을 하지 않아서 어렵게 선박을 수배하여 관매도 해상유람을 하기위해 배로 올라간다.
이제 관매도를 한 바퀴 도는 해상유람을 한다. 유람선이 아니라서 선장은 아무런 설명없이 운전만 열중한다.
관매도(觀梅島)는 전설이 깃든 신비한 절경의 집합소이다.
관매도에 다가 가면서 가장 먼저 보이는 방아섬, 정상에는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데 선녀가 내려와 방아를 찧었다는 전설이 있다. 일명 남근바위라고도 불린다.
거센 파도에 밀려 섬과 섬 사이가 3m 절벽으로 갈라진 하늘다리, 하늘에서 내린 벼락으로 한쪽 섬이 깍여져 나갔다는 벼락바위, 비오는 날 밤이면 할미도깨비가 나온다는 할미중드랭이굴. 이밖에도 섬 가장자리에 덩그라니 놓여진 꽁돌은 아래 부분이 움푹 패여 있는데 손금까지 새겨진 손가락 자국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관매팔경의 제1경인 관매해수욕장은 먼발치 배에서 밖에 보지 못한게 아쉬웠다. 선장님에게 부탁하여 잠깐이라도 밟아볼 걸….
관매도를 한 바퀴 돈 후 부둣가에 미리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던 버스에 올라 차량으로 이동하여 민박집에 도착한다.
일몰산행시간에 맞춰 다시 만나기로 한 버스와 작별하고는 방을 배정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소주 한 순배씩 돌려가며 이런저런 예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 저녁 일몰시간이 가까워져 돈대봉(敦大峰 271m) 일몰 산행을 하려고 민박집을 나선다.
돈대봉 1/25,000 지형도
정확히 예정된 시간에 맞춰 버스가 도착한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돈대봉에서의 일몰사진」 때문에 이곳 진도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돈대봉에 거는 기대가 무척 컸다.
지형도(1:25,000 조도[鳥島])를 미리 챙기지 못해 박사장님의 예기를 듣고 조도초교 앞에서 버스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한다.
잠시 시멘트 포장도로 따라 진행하다가 이내 숲길로 들어서고 초반은 매우 완만하게 올라가다 잠시 돌 계단길 따라 올라가면 주능선에 닿는데…. 그만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정면으로 펼쳐지는 다도해의 풍광이 기가 막히다.
우측이 돈대봉 정상인데 좌측의 봉우리도 심상치 않아 좌측으로 방향을 바꾼다.
역시 돈대봉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바위 능선과 어우러진 다도해의 풍광이 실로 가슴 벅차다. 계속되는 바윗길을 따라 진행하다가 바윗길은 끝이 나고 하산하는 길이 이어지자 빽하여 돈대봉을 향한다.
얼마가지 않아 돈대봉(271m) 정상에 선다.
돈대봉 정상은 아쉽게도 그 흔한 정상석도 세워져 있지 않고 아무런 표시도 되어 있지 않지만 정상에서의 조망은 거의 환상 그 자체다.
원래 이곳에서 일몰을 보려고 했는데 산행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아 해가 아직도 중천에 걸려있어 손가락산에서 일몰을 보려고 손가락산 쪽으로 진행을 한다.
주능선은 바윗길이기도 하지만 나무가 없어 주변 조망을 바라보며 산행을 할 수가 있어 너무나 좋다. 돈대봉에서 잠시 내려섰다가 나무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다시 다도해의 멋진 섬들을 조망한다. 다시 바윗길의 능선을 조금 내려가니 밧줄이 걸려있는 곳이 나온다.
급경사의 바위를 밧줄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내려오면 안부인데 조금 진행하여 올라가니 약 5m높이의 위치에 자연굴이 있는 멋진 바위(부안의 채석강처럼 바위가 겹겹이 쌓여 있음)앞에 이른다.
나무로 만든 약 2.5m 높이의 사다리가 놓여 있고 밧줄이 걸려있어서 사다리 타고 올라가다가 밧줄을 잡고 올라서면 이외로 넓은 굴에 놀란다.
굴을 빠져나와 평탄한 바위에서 다시 조심스럽게 바위 턱을 잡고 올라서면 겹겹이 쌓여있는 바위의 정상에 서게 되는게 놀랍게도 이곳 정상은 넓고 평평하다. 조망 역시 환상이다.
이곳에서도 일몰을 보지 못하고(아직도 해가 떨어지려면 멀었음) 결국 조금 더 가기로 하고 내려선다.
내려서니 엄지손가락 같은 큰 바위가 있어서 다시 한 번 놀란다.
암벽등산을 해야 만이 엄지손가락 바위를 올라갈 수가 있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몇 장의 사진을 찍고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데….
해가 많이 기울기 시작하는데 얕은 구름이 심술을 부린다.
일몰 보기가 틀렸음을 직감한 일부 회원님들이 하산을 서두른다.
좀 더 기다리다가 아쉬운대로 구름 속에 갇혀 있는 일몰사진을 찍고 하산을 서두른다.
엄지손가락 같은 바위가 우뚝 솟아있는 평평한 안부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처음 얼마간은 급경사이지만 이내 완만하게 내려간다.
밭을 지나 얼마간 내려가니 포장도로가 나오는데 버스정류장이 눈에 띈다. 마을이름이 산행이라고 쓰여있다.
산행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우측으로 포장도로 따라 얼마간 진행을 하니 삼거리가 나오면서 삼거리식당이 나온다.
이미 미리 도착해 있던 회원님들과 반갑게 조우하고 저녁식사를 하고, 버스를 타고 민박집에 도착하여 다시 술과 더불어 이런저런 예기를 하다 깊은 잠에 빠진다.
이로써 길고 긴 진도 여행 첫 날을 마감한다.
민박집 바로 앞이 신전해수욕장인데 밤에 해수욕장이라도 걸어볼 걸 그랬나….
돈대봉으로 산행하러 가는 중 / 돈대봉 직전의 바위에서 바라본 조망
환상의 모습
돈대봉에서의 조망
손가락산 부근의 모습
엄지바위와 하조도 일몰 모습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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