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여행(진남교반, 고모산성, 토끼비리, 도깨비도로) 후기
1.날짜: 2022년 3월 22일(화요일)
2.동행인: 여행님
3.날씨: 맑음
4.답사일정: 진남교반휴게소→고모산성→토끼비리→진남교반휴게소→도깨비도로.
5.답사 후기
오늘도 문경여행 답사에 나섰다.
3월 8일 문경여행 1탄으로 단산모노레일, 에코랄라, 월광사를 답사한 후 오늘 2탄으로 진남교반휴게소 뒤쪽에 있는 고모산성과 토끼비리, 그리고 도깨비도로를 답사하기로 했다.
▶ 문경여행(단산모노레일, 에코랄라, 월광사) 후기 보기: https://blog.daum.net/joingi61/15965791
진남교반휴게소에서 우측으로 조금 더 들어간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고모산성으로 향했다.
진남교반은 2011년 11월 6일 오정산 산행 때 문경대학에서 시작해서 진남교반으로 하산했기 때문에 한 번 온 적이 있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을 넘긴 후에 다시 찾게 되었다.
주차장 우측에 커다란 안내판(←/ 문경 오미자 테마터널 50m, 고모산성 150m, 문경토끼비리 50m)이 세워져 있고, 좌측에는 「오정산(烏井山) 등산 안내」, 「문경시 진남교반 ․ 고모산성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그 뒤에 화장실 건물도 있다.
「문경시 진남교반 ․ 고모산성 안내도」에 적힌 「진남교반 일원」의 내용을 보면 『이곳은 1933년 대구일보사가 주최한 경북팔경 선정에서 일경으로 꼽힌 진남교반 일원으로서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는 곳이다.
특히 옛길의 1번지답게 지난 2007년 명승 31호로 지정된 토끼비리 옛 길이 있으며, 길 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던 주막, 길손들의 안녕을 빌었던 성황당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지역은 교통관련 유적뿐만 아니라 지형상의 특성 때문에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으로서 5세기 신라가 북진정책을 펼치면서 쌓은 고모산성과 고부산성, 조선시대의 관성인 석현성 등의 성곽유적과 6~7세기 고분군이 남아 있다. 한 지역에 이렇게 시대별로 다양한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 곳은 국내에서 이곳이 유일한 곳이라 할 수 있다.』라고 적혀 있다.
곧바로 이정표(오정산 등산로 / 오정산 4.5km→, 삼태극전망대 1.6km→)가 나오고, 오미자테마터널 매표소가 나온다. 오미자테마터널은 마지막에 보기로 하고 폐철로를 건너 오미자터널 입구 우측에 있는 판석이 깔린 길을 올라간다. 우측에 작은 이정표(← 고모산성, 토끼비리)가 세워져 있다.
조금 올라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 중앙에 직사각형의 이정표(← 신현리 고분군<고분탐방로>, → 석현성, 고모산성, 토끼비리<명승 31호>)가 세워져 있다.
좌측의 신현리 고분군은 숙제로 남겨두고 우측의 고모산성 방향으로 갔다.
이내 갈림길이 또 나온다. 이곳에도 직사각형의 이정표(← 고모산성, → 영남대로 옛길, 토끼비리<명승 31호>)가 세워져 있다.
직진해서 계속 판석이 깔린 길을 조금 올라가면 진남문(鎭南門)이 보인다.
진남문 가기 직전에 「#고모산성」이라고 적힌 액자형 포토존이 나온다. 기념사진 촬영하라고 중앙에 납작한 커다란 돌도 배치되어 있다.
고모산성(姑母山城) 한 바퀴 돌다!
진남문을 통과하여 성내로 들어가면 좌측으로 주차장에 있던 「진남교반일원 안내도」가 똑같은 내용으로 세워져 있고, 그 옆에 나란히 「운강 이강년의 한말 의병항쟁과 고모산성」알루미늄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운강 이강년의 한말 의병항쟁과 고모산성 고모산성은 한말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하여 의병항쟁에 나선 운강 이강년 선생의 전적지이다. 운강은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시행되자, 이를 비통히 여겨 1896년 2월 23일 향리에서 창의하였다. 창의 후 운강은 농암장터(현 농암면 개바위)에서 단발령에 앞장선 안동부관찰사와 순검 2명을 처단하였다. 이때 운강은 6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모곡(마성면 모곡리)을 거쳐 1896년 2월 26일 밤 고모산성으로 진군하여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 고모산성은 태봉(함창읍 태봉리)과 수안보에 주둔한 일본군의 병참선상에 있는 중요한 지점이었다. 1896년 2월 27일 새벽 일본군과 관군의 기습공격으로 6시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 끝에 중과부적으로 패배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고 물러나고 말았다. 이 전투로 말미암아 고모산성 안팎의 마을들이 모두 불에 타고, 지금도 그 흔적이 입구의 느티나무에 남아있다. 1907년 7월 일제가 강제롤 군대를 해산시키자 운강은 다시 제천에서 창의하였다. 제천과 충주를 거쳐 1907년 9월 문경으로 진군한 운강은, 신현(마성면 신현리)에 지휘소를 두고 고모산성에 방어진을 설치하였다. 이후 약 일주일 동안 문경새재 ․ 갈평 ․ 동로 적성에서 전투를 벌였다. 갈평에서는 일본군 1개 소대를 괴멸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출처: 현지 안내판] |
석현성(石峴城) 진남문(鎭南門)은 2004년 문경시가 복원했고, 현판 글씨는 고 심경 황규욱 선생이 썼으며, 향산 김승수 조각가가 새겼는데 안 ․ 밖으로 달려 있다.
우측으로는 달 조형물과 달 주변으로 토끼 2마리, 다람쥐 2마리의 조형물이 함께 설치되어 있고, 야간 조명물이 설치되어 있다.
정면으로 주막집이 보여 그곳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돌고개 주막거리로 윗 편의 건물은 문경에 남아 있는 마지막 주막인 영순주막, 아래편은 예천지역에 남아 있는 마지막 주막인 삼강주막을 원형 그래도 2006년 복원했다고 한다.
주막거리를 보고 위로 올라가본다. 좌측으로는 사각형의 쉼터 3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조금 올라간 고갯마루에는 성황당(城隍堂)이 있고, 그 주변으로 돌탑들이 꽤 많이 세워져 있다. 성황당 주변엔 역시나 느티나무 고목도 예외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성황당 앞에는 「문경 토끼비리와 고모산성」안내판과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문경 토끼비리와 고모산성 I 聞慶 토끼비리, 姑母山城 문경 토끼비리 / 명승 문경 토끼비리는 석현성 진남문에서 오정산과 영강으로 이어지는 산 경사면에 만들어진 잔도이다. 벼랑의 석회암 바위를 인공적으로 파 내어 안부를 만든 곳으로, 영남대로에서 가장 험난한 길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문경현 형승조에 〝고려 태조 왕건이 남쪽으로 진군할 때 이곳에 이르렀는데 길이 막혔다. 마침 토끼가 벼랑을 타고 달아나면서 길을 열어 주어 진군할 수 있었으므로 토천(兔遷)이라 불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길 전체의 길이는 500m 정도이다. 오랜 세월 동안 이 길을 지나다니던 선인들의 발자취를 그대로 느낄 수가 있다. ※ 잔도(棧道): 험한 벼랑 같은 곳에 낸 길. ※ 안부(鞍部): 산의 능선이 말안장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 고모산성 고모산성은 신라가 5세기경 문경에 진출한 이후 축조한 거점 성곽이다. 이곳은 신라가 고구려의 남진을 방어하고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소백산맥 이남에 설치한 전진 기지였다. 산성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주흘산 이남이 한 눈에 보인다. 남쪽으로는 불정지역 외에는 다른 곳으로 길을 만들 수 없어,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하는 길목에 있다. 그래서 임진왜란, 동학농민운동, 한말 운강 이강년 선생의 의병 항쟁 등 여러 차례 전략적 요충지로 이용되었다. 성은 장방형(직사각형) 구조로 총 둘레는 1,270m이다. 성의 높이는 성벽이 낮은 곳은 1m, 높은 곳은 11m로 지형에 따라 차이가 있다. 남쪽으로 1,000m 떨어진 곳에 옛길인 토끼비리(명승)가 있다. [출처: 현지 안내판] |
그 뒤로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좌측으로 주차장과 화장실 건물, 운동기구 등이 들어서 있고, 우측으로는 새로 세운 듯한 깨끗한 커다란 비석 2개가 세워져 있다.
여기까지 보고 되짚어 주막거리까지 간 후 좌측의 산성과 나란히 올라가는 우측의 길로 올라갔다.
오름길 경사가 완만해서 이내 문루가 없는 성문에 도착했다.
이곳에 「진남교반일원 안내도」와 「고모산성 남문」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그러니까 이곳이 석현성(고모산성) 남문이나 보다.
고모산성 남문 이곳은 고모산성의 남문(산성에 출입하기 위하여 설치한 남쪽에 위치한 성문)이다. 2004년 (재)중원문화재연구원에서 실시한 발굴 조사결과 남문터와 성내 용벽시설, 투석용 몽돌무지(싸움을 할때 던지기 위한 주먹크기의 냇자갈돌 무지), 성외 보축성벽(체성벽을 보호하기 위해 성벽 바닥부분에 덧대여 쌓은 또 다른 벽체)등이 확인되었다. 남문의 규모는 길이 16m, 너비 5~5.8m이며 주향은 남동향이다. 남문의 구조는 성벽을 쌓아올려 성벽의 높이가 중단부 이상 높아진 다음 성문을 축조하기 위해 개구부를 내고 성벽과 직교하는 통로부 측벽을 축조한 현문(현문)형태의 성문이다. 산성 바깥에서 성문을 바라볼 때 입면 (요철모양)자 모양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문에는 문루가 있으나, 발굴조사 결과 고모산성은 축성기법에서 삼국시대 축조기법을 보이고 있으며, 문터에서 건물과 관련된 유구 및 유물이 발견되지 않으므로, 상단부에 문루(門樓) 시설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현지 안내판] |
짧은 나무계단을 타고 남문 위로 올라서서 성 내로 들어가면 남문지 투석 안내판과 투석더미가 쌓여 있다.
고모산성 한 바퀴 돌기 위해 좌측으로 올라간다.
고모산성 안내판이 나온다.
고모산성(姑母山城) 경상북도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고모산성은 삼국시대 5세기경 신라에서 계립령로(鷄立嶺路: 문경→충북 미륵사지)를 개설하던 시기에 북으로부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성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주흘산 이남이 한 눈에 보이고, 남쪽으로는 불정지역 외의 다른 곳으로 길을 만들 수 없어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하는 길목에 위치하여 임진왜란, 동학농민운동, 한말 운강 이강년 선생의 의병 항쟁시 전략적 요충지로서 많이 이용되었다. 이 성은 할미성이라고도 불리며, 둘레는 1,270m로서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성의 높이가 낮은 곳은 1m, 높은 곳은 11m이고, 폭은 2~3m이다. 동쪽에 암문 1개가 남아 있고, 남쪽 1km 위치에 옛길인 토끼비리(串岬遷)가 있다. 고모산성을 중심으로 주변에 마고산성, 고부산성, 희양산성 등 많은 산성이 위치하고 있다. 문경시장 [출처: 현지 안내판] |
안내판을 지나 성 위로 올라갔다.
폭이 좁던 산성은 갑자기 엄청 넓어졌다. 바깥쪽으로 여장대신 나무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다행히 나무 난간이 낮아서 성 밖의 풍경을 보는데 지장은 없었다.
넓어졌던 성 위는 편안한 흙길로 변한다. 이곳에서 진남교반이 멋지게 보인다.
흙길은 다시 넓은 성벽으로 바뀐다.
4차로의 신국도와 영강, 영강 건너 구길과 문경의 산들이 멋지게 보인다.
성벽 아래쪽으로 탐방로가 없기 때문에 넓은 성벽따라 급하게 내려간다.
내려가는 도중에 좌측 풍경을 즐긴다. 난간이 없기 때문에 되도록 바깥쪽으로 나가지 않고 구경했다.
옛길과 신국도의 진남2교, 구길의 진남교, 옛날 다리, 옛날 철교 등이 영강에 놓여 있다. 멋진 길들의 조합이다.
급하게 산성을 내려가면 산성은 이내 싱겁게 끝이 난다. 이곳까지 성곽이 보수된 것이다. 이제 성곽 미복구 지역을 지나간다. 이후 길이 없을 것 같이 보였지만 탐방로는 확실한 윤곽선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서 탐방로 상태는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잡풀에 덥힌 옛날 성벽을 보면서 내려가면 안부가 나온다. 이곳이 고모산성 서문지이다. 아쉽게도 아무런 안내판도 없었다.
서문지에서 성 밖으로 잠시 나가봤다. 영강 쪽으로 길이 뚜렷하게 나 있었다.
서문지에서 성벽이 끊어진 후 다시 성벽이 뚜렷하게 이어지고 있다. 두 개의 성벽통로가 나온다. 통로는 좁아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나 할 정도였다.
두 개의 통로가 뚫려 있는 성벽을 지나니 성벽은 잠시 자취를 감추고 탐방로는 마모가 된 통나무 계단을 올라간다.
이후 성벽이 무너진 곳도 지난다. 때는 이른 봄철이라 노란 생강나무 꽃이 곳곳에 활짝 피어 길손을 반긴다.
다시 성벽을 만났다. 이번 성벽은 허물어져 있지 않고 형태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곤 고모산성에서 제일 높은 곳에 도착했다. 높은 곳에는 방공호 비슷한 통로(Y모습)가 있었다. 나무에 가려 전망이 별로였지만 조령천과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고모산성 성벽은 우측으로 이어지고 있어 우측으로 꺾어 내려간다.
성벽 안쪽으로 뚜렷한 길 따라 조금 내려가면 성벽이 끊어지는 곳이 나온다. 이곳이 동문지이다.
동문지 역시 서문지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안내판도 없다.
동문지 부터는 성벽이 허물어져 있지 않고 뚜렷하게 보수한 곳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동문지에서 뚜렷한 길을 따라 3~4분 내려가면 성벽을 보수한 남문지가 나온다.
이렇게 해서 고모산성 한 바퀴를 돌았는데 41분 걸렸다.
이제 성벽으로 올라가서 성벽을 따라 내려가 진남문을 거쳐 계속 성벽길로 진행했다.
곧바로 성벽이 끝난다. 이제부터는 명승 제31호로 지정된 토끼비리 길로 이어진다.
석벽을 깎아 만든 벼랑길
토끼비리
문화재 지정: 명승 제31호
경북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에 있는, 석현성 진남문에서 오정산과 영강으로 이어지는 산 경사면에 개설된 천도이다. 2007년 12월 17일 대한민국의 명승 제31호로 지정되었다.
고려를 세운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과 전투를 벌이다가 남하하는 도중에 길을 잃고 말았다. 수직의 낭떠러지로 이루어진 절벽 앞에 이르러 군사들이 길을 찾아 헤매고 있을 때 마침 토끼 한 마리가 벼랑을 따라 달아났다. 그 토끼를 쫓아가니 험하기는 했지만 길을 낼 만한 곳이 나타났다. 토끼가 지나간 벼랑을 잘라 길을 내고 왕건은 힘겹게 진군할 수 있었다.
부산 동래에서 서울에 이르는 영남대로 중 가장 험하다는 토끼비리. 여기서 ‘비리’란 ‘벼루’의 사투리로 강이나 바닷가의 낭떠러지를 의미한다. 길을 찾던 왕건에게 토끼가 벼랑을 따라 달아나면서 길을 열어주었다고 하여 이 길을 ‘토천(兎遷)’이라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 토끼비리는 문경 가은에서 내려오는 영강과 문경새재에서 흘러오는 조령천이 합류하는 곳에서부터 S자형으로 산간 협곡을 파고돌면서 동쪽 산지에 형성된 벼랑에 가까스로 깎아 만든 길이다. 토끼비리는 영강의 하천변 절벽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조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벼랑길을 잔도라 한다. 길이는 약 2km에 달한다.
문경시 마성면에 위치한 석현성의 진남문 아래에는 성벽이 축조되어 있다. 이 성벽을 따라가면 오정산과 영강으로 이어지는 산의 경사면에 다다르게 된다. 이 경사지는 거의 수직절벽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에 겨우 한 사람 정도가 지나갈 수 있는 좁고 험한 토끼비리가 개설되어 있다. ‘관갑천잔도(串岬遷棧道, 관갑의 사다리길)’라고도 하는 이 길은 조선시대 주요 도로였던 영남대로의 한 구간을 이루고 있는 특별한 옛길이다.
잔도(棧道)는 험한 길을 의미하는 어휘다. 절벽을 파내고 건설한 벼랑길과 사다리길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잔도는 충주 남쪽의 달천변, 문경새재의 제2관문인 조곡관 아래 용추 부근, 양산의 황산천, 밀양의 작천 등에 조성되어 있다. 지리학자 최영준은 영남대로에 여러 곳의 잔도가 있는데 그중 가장 험한 길이 관갑천과 작천의 잔도라 말하고 있다.
영남대로는 과거 한양과 동래를 이어주던 도로 중 가장 넓고 짧은 길이었다. 지금의 경부고속도로보다 무려 100여 리 이상 짧았다고 한다. 지금은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거의 없으나 문경에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는 토끼비리가 있다. 그러나 이곳도 20세기 초 차량이 통행할 수 있는 신작로가 개설되면서 폐도가 되어버렸다. 토끼비리의 벼랑길 노면 위에는 우리 선조들이 드나들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동안 바위의 표면이 닳고 닳아 돌길이 반질반질한 모양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그 옛날 이곳을 왕래했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조들의 발걸음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영남대로 중에서 가장 좁고 험하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녀 길바닥이 반질반질하게 닳았다.
토끼비리는 영강의 수면에서 10~20m 위의 석회암 절벽을 깎아서 만들었는데 세 가지 공법을 이용했다고 한다. 첫째 구간은 경사가 매우 심한 암벽 지역으로 석벽을 깎아낸 후 토석을 다져 노면을 평탄하게 만들었다. 토석의 유실을 방지하기 위해 축대를 쌓아 길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중간 구간은 벼랑이 가장 가파른 지역으로 바위를 절단하여 길을 낸 흔적이 뚜렷한 곳이다. 잔도의 폭이 갑자기 좁아지는 위치에는 축대를 쌓아 길의 폭을 넓히기도 했다. 길 가장자리에 말뚝을 박고 그 위에 나무로 만든 난간을 설치하여 길을 억지로 넓힌 흔적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그다음 구간은 산줄기가 뻗어 내려와 고갯마루를 형성하는 곳으로 암맥이 돌출한 부위는 인공으로 암석을 깎아 말의 안장과도 같은 암석안부(巖石鞍部)를 만들었다. 이곳은 영남대로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토끼비리는 고모산성에서 날개처럼 뻗은 석현성벽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고모산성은 4세기 말 신라가 영토확장에 열중하던 시기에 축조되었다. 이곳은 경북팔경 중에서도 제일의 풍광으로 손꼽히는 진남교반(鎭南橋畔)을 조망하는 장소다. 진남교반이란 주변 산야의 숲이 울창하고 푸른 강물이 흐르는 영강 위로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듯한 층암절벽, 철교, 옛 다리, 새로 놓은 다리가 나란히 하고 있어 자연과 인공 요소가 잘 조화된 풍광을 가리킨다. 진달래와 철쭉이 흐드러진 진남교반은 문경의 소금강이라 불린다.
문경은 영남에서 중원으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한 고을로 하늘재, 새재를 비롯하여 근세에 차도로 개설된 이화령까지 여러 개의 고갯길이 자리한다. 또한 고모산성 아래에 이르면 길이는 그다지 길지 않지만 토끼비리와 같은 험로도 위치하고 있다. 길은 물과 산과 계곡을 건너 계속되는 하나의 긴 노선이다. 평지를 지나고 높은 산을 넘고 시원한 들을 만나고 아름다운 계곡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길에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는 반드시 끊기지 않고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토끼비리와 같은 잔도는 길의 연결이라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
[출처: 우리 명승기행 / 김학범 / 김영사]
토끼비리가 시작되는 곳에 쉼터가 조성되어 있고 데크길이 시작되고, 「옛길(토천)구간 전체배치도」와 「문경 토끼비리」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전체 거리 500m 정도에 약 8분 정도 걸리는 토끼비리에는 닳고 닳은 길과 데크길, 돌탑, 「관갑잔도 관갑의 사다리길」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지금 길손이 걸을 때는 전체 거리가 다소 짧아서 아쉬웠지만, 당시 이곳을 지나던 수많은 사람들은 이 구간을 빨리 벗어났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을 것이다. 우측으로는 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영강 건너 쪽에서 봐야 보인다.
토끼비리가 끝나는 지점에 이정표(↖4km 오정산, ↖1.1km 삼태극전망대 / 병풍바위 전망대 150m→)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병풍바위 전망대로 향했다.
병풍바위 전망대까지 150m 거리에 3분 걸렸는데 길이 조금 험해서 꽤 길게 느껴졌다.
병풍바위 전망대에는 조망도(경북 팔경 진남교반 주변 안내도)가 세워져 있어서 좋았다. 병풍바위는 영강 건너편에서 보면 멋진 암벽바위이다.
병풍바위 전망대에서 되짚어 나와 토끼비리가 끝나는 안부에 원 위치했다. 이곳에 오정산 등산로 이정표(↓진남휴게소 0.5km / ←오정산 4.0km, ←삼태극전망대 1.1km)와 작은 스텐 이정표(영남대로 옛길<등산로 아님>→)가 세워져 있어서 잠시 영남대로를 가보려고 했지만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이제 1.1km 거리의 삼태극 전망대를 가기 위해 계단을 올라간다.
계단길은 제법 길게 이어진다. 그리곤 12분 정도 헉헉대며 올라가니 이정표(오정산 등산로 / ←3.6km 오정산, 진남휴게소 0.9km→)가 반기는데 삼태극 전망대까지의 거리는 적혀 있지 않아서 맥이 빠졌다. 저 멀리 산봉우리에 걸쳐 있는 정자가 아무래도 삼태극 전망대 같은데…, 거리가 너무 멀다. 이쯤해서 포기하고 되짚어 내려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힘들어도 온 거리가 아까워서 올라가기로 했다.
헉헉대며 23분을 올라가니 드디어 팔각정이 나타났다.
계단을 올라가면 2층의 팔각정으로 연결된다. 내부에 태극정(太極亭) 현판이 걸려 있다.
이제부터 조망을 즐겨본다. 먼저 우측을 바라봤는데 생각보다 볼거리가 없어서 실망했다. 그러나 좌측으로 이동해서 본 순간!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S라인을 이루는 영강과 구도로, 그리고 신도로, 고속도로(중부내륙)까지 너무 멋진 장면에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고모산성에서 보는 경북팔경 제1경인 진남교반보다 삼태극전망대에서 보는 S라인이 더욱 더 멋졌다!
팔각정에서 내려오니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삼태극(三太極) 산과 물, 그리고 길이 만들어 내는 세 개의 태극문양(太極紋樣)을 이르는 말로, 낙동강 상류의 영강 물줄기와 오정산의 산줄기, 그리고 옛 국도3호선의 길줄기가 각각 삼태극(三太極) 문양을 낸다. 그 모습이 마치 금강산을 방불케한다고 해서 「문경의 소금강」으로 불리기도 한다. 삼태극: 천 ․ 지 ․ 인(天 ․ 地 ․ 人), 하늘과 땅과 사람의 기운이 조화롭게 상생하는 것 [출처: 현지 안내판] |
안내판에서 조금 더 내려간 곳에서 본 S라인은 전망대에서 보는 광경보다 더욱 더 멋졌다! 이곳에서 정신줄 놓고 조망삼매경에 빠지다 정신을 차리고 되짚어 팔각정에 올라간 후 토끼비리 끝나는 지점에 원 위치했다.
토끼비리 끝나는 안부에서 삼태극전망대까지 올라갈 때 35분, 내려갈 때 30분 걸렸다.
되짚어 토끼비리를 지나 주차장에 원 위치했다.
▶ 진남교반, 고모산성 사진 1-2: https://blog.daum.net/joingi61/15965792
▶ 진남교반, 고모산성 사진 2-2: https://blog.daum.net/joingi61/15965793
▶ 토끼비리, 삼태극전망대: https://blog.daum.net/joingi61/15965794
그리고는 진남교반휴게소로 들어가 점심을 먹고, 오미자테마터널을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문경대학 기숙사 앞에 있는 도깨비도로를 체험하고 귀경했다.
문경 오미자 테마 터널 문경 오미자 테마 터널은 마성면 진남교반 문경선 석현터널에 오미자를 테마로 조성된 문화 및 체험공간으로 길이는 540m이다. 경북8경 중 으뜸으로 꼽히는 진남교반에 자리한 이 테마터널은 지상에 삼국시대 산성인 고모산성이 있고 영남대로의 원형을 간직한 토끼비리가 있어 주변 경관이 수려한 입지여건을 갖고 있다. 섭씨 14~15도 온도를 유지하는 터널 입구 50m 근처에만 가도 시원한 바람을 느낄 정도이다. 또한 문경 전통 도자기도 감상할 수 있는 데다 어린이를 위한 만화 캐릭터와 매직아트, 포토 존도 마련되어 있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
▶ 문경 오미자 테마 터널 사진 보기: https://blog.daum.net/joingi61/15965795
◆ 도깨비 도로가 있다? 문경시 호계면 별암리 산6. 문경대학으로 향했다. 문경대학은 놓인 '터'부터가 미스터리다. 문경대학이 둥지를 튼 곳은 오정산 바위공원. 1994년 문경대학 터를 닦을 때 6m 정도 땅을 파 들어가자 거기서 바위군락이 발견된 것이다. 말하자면 대학 자체가 바위군락 위에 지어진 셈. 바위의 모양새도 미스터리다. 밀가루 반죽 같은 매끈한 돌들이 수백, 수천 개가 늘어서 있다. 이곳에 또 하나의 미스터리 핫플이 있다. 이름하여 도깨비 도로. 정확히는 문경대학 기숙사 앞 50여 m 구간이다.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곳이다. 현장 모습은 평범 그 차체. 그 유명한 제주공항 옆 신비의 도로처럼 그저 오르막일 뿐이다. 시작 지점에서 기어를 'N(중립)'에 놓자 차가 스르륵 움직인다. 이내 오르막을 거슬러 오른다. 속도도 붙는다. 생수를 부으면 물도 오르막 구간을 따라 역류하니 말 다했다. 그야말로 반전의 핫플이다. |
6. 참고자료
1933년 대구일보사가 주최한 경북팔경 목록
①진남교반(문경) ②문경새재(문경), ③주왕산(청송), ④금오산(구미), ⑤청량산(봉화), ⑥보경사 청하골 12폭포(포항), ⑦희방폭포(영주), ⑧빙계계곡(의성)
▶경북팔경 사진 보기: https://blog.daum.net/joingi61/15964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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