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나들길 열여덟 번째 이야기
17코스 고인돌 탐방길
세계문화유산, 고인돌 44기를 보다!
1.날짜: 2019년 9월 3일(화)
2.답사코스: 강화지석묘→삼거리고인돌→낙조대→오상리고인돌
3.날씨: 흐림
4.답사시간
-10:46 고인돌공원 입구 도장함 발(답사시작)
-10:48 강화역사박물관(고인돌) 버스정류장(1,2,23,24,25,26,27,30,32,34,70)
-11:01 사직(해나무) 삼거리: 우회전
-11:12 부근리 점골 고인돌(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2호)
-11:20 삼거리(삼거1리 표지석, 삼광교회 표지석, 발밤이 말뚝 표지판, 버스정류장): 좌회전
-11:28 삼거1리 복지회관, 삼광교회
-11:29 삼거리(삼거리 고인돌 군 안내판, 발밤이 말뚝 표지판): 좌회전
-11:31 팔각정(삼거정) 착 / -11:37 발
-11:55 삼거리 고인돌 군 시작
-12:00 삼거리 고인돌 군(기념물 제45호) 안내판(←170m ․ 30m→)
-12:18~12:41 능선상에서 휴식
-12:52 고려산 분기점 (↑고려산, ↓적석사, ↓낙조봉)
-12:54 삼거리(←적석사, ↓내가면, 고려산→)
-12:58 고천리 고인돌 군(기념물 제46호)
-13:06 하점저수지 갈림길(↑미꾸지고개 4.3km, 하점저수지<수변산책로> 1.2km→, 고려산 정상 1.3km), 하점저수지 수변 산책로 안내판.
-13:35 낙조봉(삼각점)
-13:47 전망대(낙조대 보타전) 착 / -14:00 발
-14:06 적석사 대웅전
-14:24 삼거리: 우회전(이후 5코스와 중복)
-14:34 성광수도원 앞
-14:38 심도학사 앞
-14:44 오상리 고인돌 군(기념물 제47호)
-14:47 17코스 종점 발밤이 말뚝 표지판(17코스 답사 종료)
-14:58 내가저수지 앞 착 / -15:17 발
-15:35 내가초교 앞 버스정류장 착(답사 종료)
-15:44 발
-16:16 강화 역사박물관 버스정류장 착(이후 차량회수 후 귀가)
※ 강화고인돌공원 앞에서 내가초교까지
휴식 포함하여 4시간 49분 걸렸는데 휴식 제외하면 3시간 48분 걸렸다.
※ 순수 17코스(강화고인돌공원에서 오상리고인돌군까지)만 계산하면
휴식 포함하여 4시간 1분 걸렸는데 휴식 제외하면 3시간 19분 걸렸다.
5. 답사 후기
강화나들길 제17코스 고인돌 탐방길
강화지석묘 ~ 오상리고인돌
강화지석묘를 둘러본 후 출발하여 점골, 삼거리, 고천리, 오상리 등 고인돌을 탐방하는 코스로 해넘이가 절경인 낙조대를 거쳐 적석사로 내려오는 길이다. 숲으로 이루어진 능선길은 오름과 내림이 좋아 등산로와 산악자전거코스로도 이용한다. 오상리고인돌에서 끝나면 내가저수지 버스정류장까지 나와야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거리: 12km / 소요시간: 4시간 20분 / 난이도: 상
강화지석묘-(5.2km)-삼거리고인돌-(3.1km)-낙조대-(3.7km)-오상리고인돌
[코스정보]
탄성이 저절로 나오는 위엄과 멋진 자태를 뽐내는 부근리 고인돌을 보고, 탐방로를 따라 수천 년 동안 땅속에 몸을 숨긴 채 지내온 크고 작은 고인돌을 만나는 코스다.
유네스코는 지난 2000년 고창, 화순의 고인돌과 함께 강화의 고인돌을 전 인류가 공동으로 보존하고 이를 후손에게 전수해야 할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산인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역사를 모르면 교훈도 없다는 뜻을 새기며 천천히 둘러볼 일이다.
고려산 정상 수십만 평이 진달래꽃으로 붉게 물들면, 너도 꽃이고 나도 꽃이고, 우리가 모두 함께 꽃이 되는 호시절이다. 고려산 자락을 타고 내려온 시원한 바람에 떠밀려 적석사 낙조대에 올라서면 압도하는 전경과 가슴까지 물드는 해넘이가 마치 이름 모를 별에 지금 막 도착한 것처럼 아름답고 놀랍다.
적석사 오르는 가파른 길을 20여 분 올라가 가쁜 숨을 몰아쉴 때쯤 돌아서서 내려다보자. 바람이 수면을 쓸고 가며 온통 물무늬를 그리고 있는 내가 저수지 넘어 외포리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와 숨 가쁨도 한순간에 사라진다. 미세먼지도 틀림없이 바람이 죄다 몰고 갔을 것이다. 수백 살 먹은 적석사 느티나무 아래 앉아서 보는 눈앞에 펼쳐지는 전경은 절집이 주는 인심 후한 푸짐한 디저트다.
비나 눈이 온 뒤에는 미끄러워 스틱 등 장비를 잘 갖추어야 한다.
[볼거리]
▶ 부근리 지석묘
하점면 부근리 고인돌 공원에 있는 이 고인돌은 탁자식 고인돌이다.
현재 남한에 있는 탁자식 고인돌 가운데 가장 크고 비교적 잘 보존된 전형적인 고인돌로 덮개돌의 크기는 긴 쪽의 길이가 6.50m이고, 너비가 5.20m이며, 두께는 1.20m이고 전체 높이는 2.60m, 무게는 50t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인돌의 받침돌이나 덮개돌의 석재는 강화에서 흔히 보이는 화강편마암이고, 놓인 방향은 동북방향이다. 받침돌은 지표면에서 약 70도가량 기울어져 있는데 이 모습이 원래의 공법인지 아니면 후대에 기운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많은 학자는 50톤에 달하는 덮개돌의 무게로 인해 후대에 받침돌이 기울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받침돌을 좌우에 세우고 한쪽 끝에 마감하기 위한 판석을 세월 묘실을 만들고 시신을 안치한 후 다른 한쪽을 마감하였을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양 끝의 마감돌은 없어지고, 좌우의 받침돌만 남아 있어 석실 내부가 마치 통로를 연상케 한다.
▶ 삼거리 고인돌군
하점면 삼거리 진촌마을에 있다. 진촌마을은 고려산 북서쪽 능선 상에 있는 마을로 이 지역 일대에 탁자식 고인돌 9기가 일렬로 분포되어 있다. 어떤 고인돌은 덮개돌 위에 작은 구멍이 여러 개 패여 있는데 이러한 모양을 남한에서는 성혈이라고 하고 북한에서는 별자리와 연관 짓고 있다. 작은 구멍이 있는 고인돌의 크기는 받침돌의 높이가 2.80m, 너비 0.90m, 두께 0.38m이다.
▶ 오상리 고인돌
오상리에는 인천시 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된 고인돌과 인천시 기념물 제47호로 지정된 고인돌군이 함께 있다. 이 지역의 고인돌을 2000년 선문대학교 고고연구소에서 발굴하고 인천시 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된 고인돌을 중심으로 주변에 10기의 고인돌을 복원하였다. 인천시 기념물 제16호 지정된 이 고인돌은 이곳에 있는 고인돌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길이 3.35m, 석실은 돌널형태로 바닥은 맨바닥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이 지역의 고인돌 덮개돌의 형태는 모두 판돌형이다.
발굴과정에서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토기인 민무늬토기와 대롱옥(관옥), 반달돌칼, 화살촉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 적석사 사적비
내가면 고천리 고려산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절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조계사 말사고 416년(장수왕 4) 인도 승려가 연꽃을 날려 떨어지는 곳에 지었다는 사찰이다.
적석사 사적비는 조선 숙종 40년(1714)에 세워진 것으로 높이 3.94m, 높이 3.4m, 너비 0.69m이다. 비문에는 사찰의 중건, 중수상황과 고려시대 몽골침입에 대항하여 강화에 도읍을 옮겨 왔을 때의 상황 등이 기록되어 있다. 글씨를 쓴 사람은 조선 후기의 명필인 백하 윤순(1680~1741)이다.
▶ 낙조대에서 본 전경
고려산 능선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능선의 끝자락에 낙조봉이 있고 그 아래 낙조대가 있다. 강화8경 중 하나로 일몰이 아름다운 곳으로 연말이 되면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낙조대에는 적석사에서 관세음보살상을 봉안하여 불자들이 수행을 하는 장소였으나, 일몰을 보기 위해 모여드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철과 나무로 구조물을 만들어 안전하게 석양을 감상하도록 하였다. 일몰 못지않게 일출 또한 장관이다.
[출처: 강화나들길 홈피(www.nadeulgil.org/)]
고인돌공원 입구 옆(우측)에 있는 17코스 시점 도장함
오늘도 승용차를 이용했다.
강화고인돌공원 내(內)의 넓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주차비 무료) 고인돌공원 정문을 나서면 고인돌공원 안내소 옆에 도장함이 설치되어 있어서 보도여권에 도장을 찍고 출발했다.(10:46)
고인돌공원 안에는 우리나라(남한)에서 가장 큰 지석묘인 고인돌(No.18)이 공원 중앙에 있다. 사적 137호이자 세계문화유산이다. 18코스(왕골공예마을 가는 길) 때 봤기 때문에 오늘은 생략했다.
고인돌공원에서 1분 정도 가면 우측으로 고구려 대막리지 연개소문의 유적비, 안내판, 고려산자락 여행 스템프함이 설치된 곳이 나오고, 이어 2차로 도로를 횡단보도로 넘어가면 진달래꽃과 고인돌 조형물로 만든 버스정류장(강화역사박물관<고인돌>)이 나온다. 이곳에는 무려 11개 번호(1,2,23,24,25,26,27,30,32,34,70)의 버스가 다닌다. 옆에 세워져 있는 발밤이 말뚝 표지판은 직진을 안내한다.
하점면 부근2리 경로당 건물을 지나 2분 후 발밤이 말뚝 표지판(시점 0.3km, 종점 9.8km)을 만난다. 계속해서 1차로의 넓은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고려산 진달래 군락지 가는길 →」이라고 쓴 푯말이 나온다. 푯말과 진행방향이 같은데 1분 후 다시 푯말이 나오고, 다시 1분 후 푯말이 또 나오는데 이번에는 푯말과 작별하고 우측의 돌담을 끼고 진행을 한다. 그리고는 숲길이 시작된다. 다행히 숲길은 7분 만에 끝나면서 포장도로에 떨어진다.
이내 삼거리가 나온다. 좌측으로 보람하우징 입간판이 있다. 도로 건너편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어서 건너가 확인해보니 역시나 보호수(고유번호: 4-9-63. 현지 오석의 안내판에는 4-9-46으로 되어 있다)였다. 30m 높이에 둘레가 4.4m이나 되는 커다란 느티나무인데 수령 260년(지정날짜: 1982.10.15)이라고 되어 있다. 이 대목에서 약간 실망했다. 크기로 봐서는 족히 400년은 되 보였다.
수형이 아름다운 느티나무 주변에는 운동기구와 팔각정, 버스정류장이 있다. 이곳 버스정류장 이름은 사직(해나무)인데 33, 34, 36번 버스가 다닌다. 발밤이 말뚝 표지판(시점 1.0km, 종점 9.1km)도 세워져 있다.
점골 고인돌
우회전해서 2차로 포장도로를 따라 9~10분 정도 진행하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 점골 고인돌이 있다.(11:12)
강화 부근리 점골 고인돌 (江華 富近里 점골 支石墓)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2호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고려산 북쪽 주능선 끝자락 해발 15m의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이 고인돌은 탁자식이다. 덮개돌은 장축 4.28m, 단축 3.7m이고 전체 높이는 1.85m이다. 2000년 12월 2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현재의 형태는 덮개돌과 굄돌이 동쪽으로 기울어 붕괴되어 있던 것을 2009년 실시한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발굴 조사 결과에 따라 해체한 후 원래대로 세운 것이다. [출처: 현지 안내문] |
강화군에서는 세계유산인 고인돌 유적에 각각 고유번호를 매겼는데 점골 고인돌은 24번이다. 점골 고인돌에서 조금 더 뒤쪽으로 가면 「부근리 점골 고인돌 이야기」표지판이 세워져 있는데 고인돌을 만드는 과정을 그림으로 설명했다. 이곳에도 「고려산자락 여행」 스탬프 함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강화나들길 ⑰ 고인돌 탐방길」 세로형 표지목도 세워져 있다.
점골 고인돌 유적 앞쪽으로는 신원문화사 물류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이제 되짚어 나와 직진을 한다.
이후 4분 정도 더 가면 다시 삼거리가 나오는데 버스정류장이 있고, 「삼거1리」 대형 표지석도 세워져 있다.
좌회전해야 하는데 좌회전 하는 위치에 「삼광교회←」 대형 표지석과 발밤이 말뚝 표지판(시점 2.0km, 종점 8.1km)이 세워져 있다.
좌회전해서 8분 정도 진행하니 삼거1리 복지회관과 삼광교회가 나오고, 1분 후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 삼거리 고인돌 군 안내판(1.4km →), 발밤이 말뚝 표지판(시점 2.9km, 종점 7.2km)이 세워져 있다.
삼거리 고인돌 군 중 125번 고인돌
좌회전하여 2분 정도 진행을 하니 앞서가던 여행님이 팔각정에서 쉬고 있어서 이참에 휴식을 했다.
팔각정에는 한글로 「삼거정」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고, 작년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짧은 휴식(6분)을 마치고 진행하는데 정면으로 머리에 시설물을 이고 있는 고려산 정상부가 잘 보인다.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5호로 지정된 삼거리 고인돌 군 안내판은 1.4km 지점을 시작으로 팔각정 지나 1.2km, 900m, 잡풀 속에 갇힌 850m, 700m 등 자주 나온다.
700m 지점 안내판이 있는 곳에는 우측으로 주차장 시설이 되어 있고 안내판은 좌측을 가르치고 있어 좌측으로 가려고 하니 민가의 대문에 막혀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곳에도 발밤이 말뚝 표지판(시점 3.7km, 종점 6.4km)이 세워져 있다.
좌회전이 아니고 직진해서 2~3분 올라가면 540m 안내판이 나오고, 2분 후 360m 안내판과 공설(공원)묘지 안내문이 나온다.
1분 후 삼거리가 나온다. 우측의 포장길 방향에 300m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포장길은 흙길로 바뀌고 2분 후 발밤이 말뚝 표지판(17-19. 시점 4.3km, 종점 5.8km)이 나오고 곧바로 완만한 경사로에 설치된 나무계단을 올라가면 비로소 첫 번째 고인돌이 나온다. 125번 고인돌인데 125번 숫자 위에는 「삼거리 천촌고인돌」이라고 쓰여 있다. 두 개의 돌덩이가 있다.
첫 번째 삼거리 고인돌 군 안내판(1.4km →)에서 첫 번째 고인돌까지 휴식없이 걸으면 20분 정도 걸린다.
첫 번째 고인돌(125번)에 이어 126번(비스듬히 누운듯한 바위 1기), 127번(크고 작은 돌들이 모여 있고, 어떤 것은 갈라진 듯하다), 52번(제법 넓은 돌이 있고, 앞 뒤로 작은 돌이 있다)까지 고인돌이 이어진다.
다시 완만하게 올라가는 길에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경사가 약간 급하다 싶으면 다시 고인돌(41번)이 나온다. 125번 고인돌에서 약 3분 거리에 있다.
41번 고인돌은 표지석을 새로 제작한 것 같다. 125번, 126번, 127번, 52번은 「삼거리 천촌고인돌」이라고 쓰여 있는데 41번은 세계유산 마크와 강화군 마크가 새겨져 있다. 큰 돌 하나가 작은 돌에 기대어 있고 그 뒤로 2개의 돌이 더 있다. 주변은 초록의 풀밭이다.
41번 고인돌 앞에는 인천시 기념물 제45호 삼거리 고인돌 군 안내판(←170m ․ 30m→)과 발밤이 말뚝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글쓴이는 17코스가 우측으로 이어지는 줄 알고 170m 지점 고인돌부터 보려고 했는데 여행님은 30m 위치에 있는 고인돌 쪽으로 향했다. 발밤이 말뚝 표지판을 자세히 보니 17코스는 170m 지점(좌측)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여행님이 있는 30m 지점으로 이동했다.
강화고인돌노래 안내판, 삼거리 고인돌군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삼거리 고인돌군 (三巨里 支石墓群)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5호
강화지역에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인 고인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며, 특히 이들 중 10~20여 기에 달하는 무리를 이루고 있는 고인돌군이 5곳이 있다. 이중 하나인 삼거리 고인돌군은 고려산 북쪽 능선에 위치하며, 모두 9기의 탁자식 고인돌이 있다. 삼거리 고인돌 중에는 덮개돌에 성혈(性穴)이라고 하는 작은 바위 구멍이 패여 있기도 하는데 이를 별자리와 연관 짓기도 한다. 2000년 12월 2일 고창, 화순의 고인돌 유적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출처: 현지 안내문] |
4개의 고인돌(42번, 43번, 44번, 45번)을 한데 묶어 넓게 보호난간을 설치했다.
4개의 고인돌을 보고 원위치 하니 여행님이 어느새 강화고인돌노래를 들려준다.
이제 170m 지점을 향해 좌회전한다.
다시 오름길이 이어지는데 이곳에도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나무계단을 올라가니 46번 고인돌이 나오고, 강화 삼거리 고인돌군 안내판도 나온다. 앞전에 본 안내판은 최근에 세운 것이고, 지금 안내판은 예전에 세운 것이다. 내용은 별반 차이가 없다.
49번 고인돌이 나오고, 「삼거리 고인돌군 100m→」안내판이 나온다. 이어 2개(47번, 48번)의 고인돌이 나오는데 한데 묶어서 보호난간을 설치했다.
고려산 주능선 분기점(우측으로 진행한다)
47번, 48번 고인돌을 마지막으로 보고 계속해서 오름길을 올라간다. 조금 힘들다 싶었는데 쉬기 좋은 넓은 지역이 나와서 휴식을 했다.
23분 휴식을 마치고 다시 오름길을 올라간다. 11분을 올라가니 드디어 고려산 주능선 분기점이 나온다.
이정표(↑고려산, ↓적석사, ↓낙조봉), 고인돌 안내판, 발밤이 말뚝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바로 옆에는 옆으로 가지를 길게 뻗은 소나무가 있는데 한쪽 줄기는 고려산 등산객과 강화나들길 나들이객에게 휴식을 주는 의자 역할을 해주고 있다.
고천리 고인돌 군
고려산 주능선 분기점에서 우측의 적석사, 낙조봉 방향으로 내려간다.
1~2분 후 우측으로 내가면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 발밤이 말뚝 표지판, 이정표, 119 구급함, 「기념물 제46호 고천리 고인돌 군 ← 100m」 안내판, 노란색의 국가지점번호(다사 0557 7218)판이 세워져 있다.
계속 직진한다. 조금 진행하니 능선 상에 한 개의 큰 돌과 작은 돌이 나오는데 겹겹이 줄이 나 있어 유구한 세월을 말해주는 듯하다.
그리곤 30초 정도 진행하니 보호난간을 둥근 나무로 만든 고인돌들이 나타난다. 고천리 고인돌 군이다.
72번, 73번, 74번, 75번, 76번, 77번, 78번, 79번, 80번, 81번, 82번 이렇게 모두 11기의 고인돌이 모여 있다. 그리곤 끝 부분에 「기념물 제46호 고천리 고인돌 군 ← 400m」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이곳 11기의 고인돌 말고, 400m 지점에 또 있다는 것인가?
고천리 고인돌 군 안내판 맞은편에는 새로 제작한 강화 고천리 고인돌군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안내판을 읽어보니 18개의 고인돌이 세 곳에 군집을 이루고 있다고 하니 두 곳의 군집을 이룬 곳에 7개의 고인돌이 있다는 것이다.
강화 고천리 고인돌군 (江華 古川里 고인돌群)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6호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부족장의 무덤으로 지석묘(支石墓)라고도 부른다. 고려산(해발 436m)의 서쪽 능선을 따라 해발 350~250m 지점에 18기의 고인돌이 세 곳에 군집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고인돌이 분포하는 평균 고도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다. 대부분의 고인돌은 무너져 원형이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그중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3군의 관리번호 69호 고인돌은 덮개돌의 크기가 가로 3.35m, 세로 2.47m, 두께 0.65m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암석에는 고인돌을 만들기 위해 돌을 떼어낸 흔적이 남아있다. [출처: 현지 안내문] |
강화 고천리 고인돌군 안내판에서 4분을 진행하니 하점저수지 갈림길이 나온다. 이정표(↑미꾸지고개 4.3km, 하점저수지<수변산책로> 1.2km→, 고려산 정상 1.3km)와 하점저수지 수변 산책로 안내판, 고인돌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7분 정도 더 진행하니 조금 전과 똑같은 강화 고천리 고인돌군 안내판이 나온다. 그 주변에 83번, 84번, 85번, 86번, 87번, 88번 이렇게 6개의 고인돌이 몰려 있다. 이후로는 고천리 고인돌을 강화나들길에서는 보지 못했다. 결국 안내판에 나와 있는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는 69호 고인돌을 못 봤다.
낙조봉
9분 후 발밤이 말뚝 표지판(시점 7.5km, 종점 2.6km)과 119 안내판(현위치: 고-8. 정상까지 약 2.2km)이 세워진 곳을 지난다. 그런데 능선 상에 방화수가 자주 눈에 띈다. 초기 산불진압에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이어 오름길이 이어지고, 7분 후 적석사 갈림길이 나온다.
발밤이 말뚝 표지판, 이정표(↑0.5km 낙조봉, ↑2.6km 미꾸지고개, ↑3.1km 망월리 ←0.2km 적석사, 고려산 2.4km↓), 고인돌 이정표 등이 세워져 있다.(13:30)
이제 시야가 터지는데 아쉽게도 흐린 날씨라 주변이 흐릿하다. 5분을 올라가니 드디어 낙조봉 정상이다. 오래된 삼각점이 있고, 조망이 좋은 곳인데 역시 흐린 날씨로 주변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낙조대 보타전
그래도 주변 경관을 잠시 구경하고는 적석사를 향해 내려간다. 잠시 바위지대를 조심스럽게 내려가면 적석사로 내려가는 오름길 돌계단이 나오고 보타전 갈림길이 나온다.
보타전을 빠트릴 수 없어서 보타전으로 이어지는 데크길로 보타전에 도착했다.
강화 8경(갑곶돈대, 광성보, 초지진, 마니산, 보문사, 연미정, 적석사, 전등사)의 하나여서 역시 최고의 조망대이다. 일명 낙조대라고도 한다. 날씨가 흐려서 아쉽지만 비가 오지 않는 걸로 위안을 삼는다.
이곳에서 잠시 쉬고 되짚어 계단을 올라간 후 적석사로 내려간다.
적석사 대웅전
삼성각을 지나 내려가면 좌측으로 낙조대 보타전으로 가는 계단이 나오고, 이내 적석사에 도착한다.
적석사는 고려산 서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고구려때 천축국 스님이 고려산에 올라 다섯색의 연꽃이 피어있는 오련지를 발견하고 다섯송이의 연꽃을 날려 그 연꽃이 떨어진 곳에 절을 세웠다 합니다. 그 중 붉은 연꽃이 떨어진 곳에 적련사를 세웠는데 그곳이 이 절의 전신입니다. 적석사 뒤편 산정상은 낙조봉이라 불리며 이곳에서의 낙조는 강도팔경의 하나로 꼽힐만큼 아름답습니다.
[출처: 강화군청 홈피]
적석사 내부로 들어가면 우측에 2층의 누각이 눈에 띄는데 1층은 종(표면에 고려산 적석사라 쓰여 있다), 2층은 북이 설치되어 있다. 마당 중앙에는 오래된 느티나무 2그루가 아주 가까이 붙어 있는데 부부(夫婦)목이라 한다. 또 하나의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는데 그것은 담장 아래쪽에 있다.
대웅전 건물은 2층은 대웅전, 1층은 관음굴이다.
이밖에 종무소 건물이 있는데 꽤 오래된 건물같이 보인다.
적석사에서 내려가는 길에 외로이 홀로 있는 적석사 사적비각이 있다.
적석사 사적비 (積石寺 事蹟碑)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8호
적석사는 1934년에 편찬된 「전등본말사지(傳燈本末寺誌)」의 기록에 의하면 백련사, 청련사 등과 함께 고구려 장수왕 4년(416)에 창건되었으며 처음에는 적련사(赤蓮寺)로 불리었다가 적석사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이 사적비는 숙종 40년(1714)에 세워진 비로, 불교의 전래 및 사찰의 중건 ․ 중수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고려 시대 몽골 침입에 대항하여 강화도로 도읍을 옮겼을 때 적석사가 임금의 거처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을 담고 있다. 전체 높이 394cm, 비신(碑身)의 높이 304cm, 너비 69cm로 「고려산 적석사지비(高麗山 積石寺之碑)」라는 비의 제목이 새겨져 있다. [출처: 현지 안내문] |
비각 안에는 고려산 적석사지비가 있다. 상단부의 큰 글씨「고려산 적석사지비(高麗山 積石寺之碑)」는 잘 보이는데 아래쪽은 글씨가 너무 작고 희미해서 보이지가 않는다.
오상리 고인돌 군
이제 적석사와 작별하고 급경사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7분을 내려가니 발밤이 말뚝 표지판(시점 8.6km, 종점 1.5km)이 나오고, 이후 5분을 더 내려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까지가 순수 17코스이다. 이제부터는 5코스와 겹친다. 이곳에도 발밤이 말뚝 표지판(시점 8.9km, 종점 1.2km)이 세워져 있고, 「낙조대 800m ↓」파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좌측은 시멘트 포장도로, 우측은 비포장길이다.
우측으로 진행한다. 7분을 진행하니 17코스와 5코스 내용이 적힌 발밤이 말뚝 표지판(5-26 / 17코스 → / 5코스 시점 8.7km, 종점 7.1km)이 나온다. 곧바로 녹색대문의 민가가 나오면서 흙길은 포장도로로 바뀐다.
2~3분 후 성광수도원이 나오고, 다시 2~3분 후 발밤이 말뚝 표지판(17-31. 시점 9.5km, 종점 0.6km)이 나오는데 순수 17코스 발밤이 말뚝 표지판이다.
이후 1~2분 뒤 공부와 명상의 집이라는 부제가 붙은 심도학사 앞을 지나고, 5~6분 뒤에 오상리 고인돌 군 입구가 나온다.
5코스 이정표(↑오상리고인돌, ←국화학생야영장 6.05km, ←고천리)가 세워져 있고, 바로 앞에는 강화 오상리 고인돌군 안내판, 강화고인돌노래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강화 오상리 고인돌군 (江華 鰲上里 고인돌群)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7호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부족장의 무덤으로 지석묘(支石墓)라고도 부른다. 2000년 실시된 발굴조사 결과 이곳에는 모두 12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모두 북방식 고인돌이다. 크기는 대 ․ 중 ․ 소형으로 구분되고 묘실 구조는 「ㅍ」자 형태이다. 발굴결과 구석기시대의 구형석기(球形石器)와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 조각들이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조각들과 함께 출토되었다. 이는 강화도에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계속 살아왔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외에도 대롱옥, 반달돌칼, 돌화살촉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오른쪽 제일 큰 고인돌은 강화내가오상리고인돌(江華內可鰲上里고인돌)로 1995년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6호로 지정하여 따로 구분하고 있다. [출처: 현지 안내문] |
12기(56번, 57번, 58번, 59번, 60번, 61번, 62번, 63번, 64번, 65번, 66번, 67번)의 고인돌을 확인했다.
오상리 고인돌 군 끝 지점에 17코스 종점 발밤이 말뚝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이로써 17코스를 마쳤다.
17코스 고인돌 탐방길에서 총 44기의 세계문화유산, 고인돌을 확인했다.
※ 강화고인돌공원에서 오상리 고인돌 군까지
휴식 포함하여 4시간 1분 걸렸는데 휴식 제외하면 3시간 19분 걸렸다.
이제 버스 타는 곳까지 이동을 해야 한다.
숲길로 들어선다. 숲길은 이내 끝나고 민가가 나타난다, 금당실공방이란 작고 예쁜 나무 간판이 걸려 있다. 그리곤 포장도로를 따라 2분정도 걸어가면 2차로 포장도로에 도착했다. 이곳이 내가저수지 입구이다.
이곳에는 5코스 발밤이 말뚝 표지판(시점 10.1km, 종점 5.7km), 고려사 ←800m 표지판, 버스정류장(저수지관리소. 38, 49)이 있다. 우측에는 낚시터 매점이 있다.
내가저수지 앞 버스정류장에 38번, 49번 버스가 있는데 모두 강화역사박물관 쪽으로 운행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택시를 이용하려 했는데 외포리 쪽 택시는 운행 중인지 몰라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도보여권에 나와 있는 번호로 전화를 하니 대리기사 알려주는 곳이다. 또 한군데 전화하니 차가 없다는 것이다. 강화읍에서 출발하는 택시는 출발하는 강화읍부터 요금을 계산하니 요금이 무척 비싸게 나올거라는 예기를 들어서 할 수 없이 버스 통행량이 많은 내가면사무소까지 가기로 했다.
15:17분에 출발하여 내가저수지를 우측에 끼고 진행한다. 18분 정도 걸려 내가면사무소 가기 전에 있는 내가초교 앞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이로써 오늘 답사를 마쳤다.
※ 강화고인돌공원 앞에서 내가초교까지 휴식 포함하여 4시간 49분 걸렸는데 휴식 제외하면 3시간 48분 걸렸다.
내가초교 앞 버스정류장에는 1, 2, 30, 36, 37, 38, 49번 버스 등 모두 7개의 버스노선이 다닌다.
버스를 기다린지 얼마 되지 않아 2번 버스가 도착해서 15:44분에 출발하여 32분 걸려 강화 역사박물관 버스정류장 도착했다.(16:16)
이후 고인돌공원의 주차장으로 가서 차량회수 후 귀가했다.
온전한 탁자식 고인돌은 누가 봐도 고인돌(지석묘)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 온전하지 않고 흐트러진(복원이 안 된) 고인돌은 일반인이 볼 때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산자락에는 복원되지 않은 고인돌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데…. 이것이 지석묘라는 것을 알 수가 없다. 오늘 답사한 삼거리고인돌군과 고천리고인돌군은 고인돌(세계문화유산)이라고 표시를 했으니 고인돌인줄 알지 표시가 없다면 아마 전국의 산에 깔려있는 흔하디흔한 돌덩이로 볼 것이다.
평범한 돌덩이가 어떻게 고인돌일까? 돌덩이를 들어내서 땅 속에 있는 유골을 본 것인가? 하는 의구심은 답사 내내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아무튼 17코스 고인돌 탐방길에서 총 44기의 고인돌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갖는다.
6. 참고자료
① 고인돌 답사 순서
1. 18번(하점면 부근리 고인돌공원 내. 사적 137호. 남한에서 가장 큰 탁자식 지석묘)
2. 24번(하점면 부근리 점골. 기념물 32호)
[삼거리 고인돌 군] : 13기
3. 125번, 126번, 127번, 52번 (4기)
4. 41번
5. 42번, 43번, 44번, 45번 (4기)
6. 46번
7. 49번
8. 47번, 48번 (2기)
[고천리 고인돌 군] : 17기
9. 72번 ~ 82번 (11개)
10. 83번 ~ 88번 (6개)
[오상리 고인돌 군] : 12기
11. 56번 ~ 67번
※총 44기의 고인돌 답사
② 세계유산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 [Gochang, Hwasun and Ganghwa Dolmen Sites]
● 상세정보
◆ 국가 : 대한민국(Korea, Republic of)
◆ 위치 : 전라북도(全羅北道) 고창군(高敞郡), 전라남도(全羅南道) 화순군(和順郡), 인천광역시(仁川廣域市) 강화군(江華郡)
◆ 등재연도 : 2000년
◆ 등재기준
기준 (ⅲ) :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은 기원전 100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장례 및 제례를 위한 거석문화 유산이다. 이 세 지역의 고인돌은 세계의 다른 어떤 유적보다 선사시대의 기술과 사회상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 요약
한국의 고인돌은 거대한 바위를 이용해 만들어진 선사시대 거석기념물로 무덤의 일종이며, 고창, 화순, 강화 세 지역에 나뉘어 분포하고 있다. 한 지역에 수백 기 이상의 고인돌이 집중 분포하고 있으며, 형식의 다양성과 밀집도 면에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이 세 지역의 고인돌은 고인돌 문화의 형성 과정과 함께 한국 청동기시대의 사회구조 및 동북아시아 선사시대의 문화 교류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산이다.
● 완전성
세 지역 모두에 수백 기 이상의 고인돌이 밀집 분포하고 있으며, 이들 지역에 분포한 다양한 형태와 유형의 고인돌을 통해 거석문화 발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고인돌의 축조 과정을 알 수 있게 하는 채석장의 존재는 우리나라 고인돌의 기원과 성격을 비롯해 고인돌 변천사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유산의 완전성에도 기여한다.
● 진정성
고창, 화순, 강화 지역의 고인돌 유적은 대부분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어 보존 상태가 매우 뛰어나다. 거대한 규모의 석조 유적이기 때문에 변형이 쉽지 않아 장기 보존이 가능한 측면도 있다.
● 역사적 배경
고인돌은 기원전 2000년~1000년, 전 세계의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문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거석문화의 발현이다. 영국의 스톤헨지, 오크니 제도 돌무덤 유적, 그리고 아일랜드의 보인(Boyne) 굴곡부 유적, 서아프리카의 돌무덤처럼 거석을 쓰는 새로운 기술이 돌을 정렬하거나 쌓는 의례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고인돌은 기원전 1000년경 동아시아 선사시대의 주목할 만한 유적으로 티베트, 쓰촨, 간쑤와 같은 중국 서부와 산둥 반도, 일본 규슈 북서 지방과 같은 해안 지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창 죽림리 고인돌 유적은 기원전 7세기부터 존재했으며, 기원전 3세기 무렵에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화순의 고인돌은 이보다 약간 늦은 기원전 6세기~5세기경에 만들어졌다. 강화 고인돌 유적이 만들어진 연대를 추정하기에는 자료가 불충분하지만, 더 이른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 보존 및 관리 체계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은 연속유산이며, 세 지역 모두 문화재보호법에 의거 국가 지정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 관리되고 있다. 문화재 및 보호구역 경계로부터 500m 이내 지역은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에 따라 해당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건설 행위에 대한 사전 심의가 의무화되어 있다.
문화재청은 고인돌 유적의 보존을 위한 예산을 배분하고 보수와 유지 관리 및 주변 지역 현상 변경과 관련된 심의와 허가를 담당하는 정부기관이다. 유산이 속한 각 지자체는 구체적인 보전관리 및 정비 사업을 담당하며, 현장에는 유산 보존 관리를 담당하는 상시 관리소가 있다. 고창 고인돌박물관과 화순 고인돌 발굴지 보호각, 강화역사박물관은 각 지역 방문객들에게 고인돌에 대한 심도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유산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과 함께 3, 4년 주기로 전문가의 정밀 모니터링이 실시되고 있다.
고인돌의 보존 관리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고인돌 보존의 가장 큰 위협 요소는 화재와 주변 환경의 훼손이다. 화재 예방을 위해 매년 잡목 제거 작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삭토나 수목의 뿌리로 인해 도괴된 고인돌에 대해서는 학술 발굴조사를 통해 정비 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유산면적 : 52㏊
완충지역 : 315㏊
참고번호 : 977
고창, 화순, 강화의 유적은 한국은 물론 세계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 높은 밀도로 분포된 고인돌 군이다. 이것들은 고인돌의 채석, 운반, 건설, 그리고 동북아시아 고인돌 형태의 변화 추이에 대한 중요한 증거들을 보존하고 있다.
고인돌은 기원전 2000년~1000년, 세계 곳곳의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문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거석문화의 발현이다. 고창, 화순, 강화의 선사시대 무덤은 기원전 1000년경의 돌무덤 몇 백 기를 보여 주고 있다. 고인돌은 티베트, 쓰촨(四川), 간쑤(甘肅)와 같은 중국 서부와 산둥(山東) 반도, 일본 규슈(九州) 북서 지방과 같은 해안 지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인돌은 한국의 청동기시대에 전래되었다. 고창의 죽림리 고인돌 군은 기원전 7세기경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곳의 고인돌 건설은 기원전 3세기에 중단되었다. 화순 고인돌은 이보다 약간 늦은 기원전 6세기~5세기경에 만들어졌다. 강화 고인돌 군이 만들어진 연대를 추정하기에는 자료가 불충분하지만, 더 이른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인돌은 보통 거대한 덮개돌을 지탱하는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가공되지 않은 굄돌 따위로 이루어져 있다. 대개 고인돌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중요 인물의 시신 또는 유골 위에 세운 단순한 무덤방으로 알려져 있다. 흙무덤이 고인돌을 덮고 있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풍화작용과 동물들에 의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고인돌은 유골을 가족 공동묘지에 묻기 위해 시신을 수습하는 제단으로 쓰였을 수도 있다. 고인돌은 보통 높은 기념물 위에 있는 고지대의 묘지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는 고인돌을 세운 사람들이 낮은 곳에 있는 정착촌에서 고인돌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동아시아에서는 그 모양에 따라 탁자식(북방식)과 바둑판식(남방식), 두 가지 형태의 고인돌이 알려져 있다. 첫 번째, 탁자식은 지상 건축물이다. 네 개의 굄돌을 석곽 또는 석관의 가장자리에 세우고 거대한 덮개돌을 그 위에 올린다. 두 번째, 바둑판식에서는 석벽 또는 적석벽으로 된 무덤방을 땅 밑에 만들고, 덮개돌은 땅 위에 놓인 돌무지에 의해 지탱된다. 바둑판식의 변종도 있는데, 그것은 땅에 묻힌 돌 위에 바로 덮개돌을 올려놓은 것이다.
고창 고인돌 유적은 규모가 크고 다양한 형태로, 죽림리 매산마을의 한가운데에 있다. 대다수의 고인돌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언덕의 남쪽 자락 15~50m 높이에 자리 잡고 있는데, 덮개돌의 모양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 442기가 있다.
화순 고인돌 유적은 고창의 것들처럼 지석강을 따라 야트막하게 이어진 언덕의 능선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의 고인돌 하나하나는 고창보다 온전한 모습을 보여 준다. 효산리 고인돌은 158기, 대신리 고인돌은 129기다. 고인돌을 만든 돌이 어디서 채석되었는지 식별이 가능한 경우도 꽤 있다.
강화 고인돌 유적은 연안 섬 강화도 산기슭에 위치해 있다. 강화의 고인돌은 다른 유적들보다 높은 지대에 있을 뿐만 아니라 보다 초기의 형태가 많은데, 특히 부근리와 고천리의 고인돌이 그렇다.
[출처: 유네스코와 유산 홈피 http://heritage.unesco.or.kr/ ]
우리나라(남한)에서 가장 큰 지석묘(부근리 고인돌 공원 내)
< 강화지역 >
강화 부근리 고인돌군
분류 : 문화재
문화재 구분 : 인천 > 기념물
지정번호 : 44호
소재지 : 인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317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부근리 고인돌군은 사적 제137호로 지정된 강화 부근리 지석묘 주변, 해발 50m 내외의 낮은 구릉과 평지에 모두 16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평지에는 사적 제 137호인 강화 부근리 지석묘와 탁자식 고인돌의 고임돌로 추정되는 석재 하나가 세워져 있다. 여기서 북동쪽으로 약 300m 떨어진 솔밭에 덮개돌 밑에 고임돌이 없는 고인돌인 개석식 고인돌 3기가 축조되어 있으며, 사적 제 137호의 동쪽 낮은 구릉에는 탁자식 4기와 개석식 고인돌 4기가 분포하고 있다.
[출처: 강화군청 홈피]
7. 더 많은 사진 보기
17코스 고인돌 탐방길(사진 1) http://blog.daum.net/joingi61/15965305 |
17코스 고인돌 탐방길(사진 2) http://blog.daum.net/joingi61/15965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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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강화나들길 답사 후기 (2018.11.12 ~ ?)
코스 | 답사 순서 | 답사날짜 | 답사 후기 |
1.심도역사문화길 | 8 | 19.01.08 | |
2.호국돈대길 | 9 | 19.01.22 | |
3.고려왕릉가는길 | 10 | 19.01.29 | |
4.해가지는마을길 | 12 | 19.03.12 | |
5.고비고개길 |
|
|
|
6.화남생가가는길 | 17 | 19.08.27 | |
7.낙조보러가는길 |
|
|
|
8.철새보러가는길 | 7 | 19.01.01 | |
9.다을새길 | 3 | 18.11.20 | |
10.머르메가는길 | 4 | 18.11.27 | |
11.석모도바람길 | 5 | 18.12.04 | |
12.주문도길 | 1 | 18.11.12 | |
13.볼음도길 | 2 | 18.11.13 | |
14.강화도령첫사랑길 | 15 | 19.05.21 | |
15.고려궁성곽길 | 16 | 19.06.11 | |
16.서해황금들녘길 | 14 | 19.05.14 | |
17.고인돌탐방길 |
|
|
|
18.왕골공예마을가는길 | 11 | 19.02.12 | |
19.석모도상주해안길 | 6 | 18.12.25 | |
20.갯벌보러가는길 | 13 | 19.04.30 |
9. 답사 경비
①승용차 이용 기름값(추정): 20,000
②통행료: 1,800
③식대: 14,000
④버스비: 1,250
⑤간식비: 10,000
⑥합계: 47,0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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