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산행(둘레길 등)/[강화]나들길

[강화나들길 6코스] 화남생가 가는 길 (후기)

약초2 2019. 9. 1. 09:34

강화나들길 열일곱 번째 이야기

 

6코스 화남생가 가는 길

여름철 6코스는 험한 길!

 

1.날짜: 2019년 8월 27일(화)

2.답사코스: 강화풍물시장주차장→선원사지→화남생가→터진개

3.날씨: 아침에 비 온 후 흐렸지만 매우 후덥지근한 날씨

 

4.답사시간

-09:46 강화풍물시장 앞 도장함 발(답사 시작)

-09:53 징검다리

-10:15 강화인삼스파랜드

-10:44 산불 난 곳

-10:52 선원사지

-11:37 지산2리 남산대 경로당

-11:41 남산동 시 표지판 있는 곳

-11:47 월하선원

-12:34 조경교

-13:16 영모사(고씨 문중)

-13:19 평해황씨 효부 정려문

-13:34 화남생가

-13:40 두운2리 마을회관

-14:00 고능2리 능내촌 표지석

-14:21 능선상에 오두리 간이 상수도 물탱크

-14:38 오두리 버스 종점

-14:46 터진개 버스 정류장 착 (답사 종료)

 

※ 휴식 포함하여 5시간 걸렸는데 휴식(40분) 제외하면 4시간 20분 걸렸다.

 

5. 답사 후기

 

[2019년 8월 6일 답사 내용]

-13:16 6코스 시점(도장함, 대형지도 등)

-13:23 징검다리

-13:36 사거리 다리 있는 곳

-이후 알바 하여 나들길 6코스 포기하고 귀가

 

실로 오랜만에 다시 찾은 강화나들길, 이제 남은 코스는 4개 코스(5.고비고개길 / 6.화남생가가는길 / 7.낙조보러가는길 / 17.고인돌탐방길)이다. 이중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다가 처음에는 5코스를 선택했는데 오전에 집안일로 출발을 점심 때 해서 4개 남은 코스 중 만만한 6코스를 선택했다.

 

13:16분에 6코스 시점에서 도장을 찍고 출발하려고 하니 아뿔싸 도보여권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중에 찍기로 하고 출발은 했다. 날씨는 폭염주의보 발령 상태로 무척 더운 날씨였다.

 

징검다리까지는 신경 써서 아주 잘 갔는데, 징검다리를 건너자마자 좌측에 리본이 하나 보여서 아무 생각 없이 좌측으로 동락천 수로를 끼고 진행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진행방향에는 리본이 하나도 없고 건너편에는 리본이 자주 보였다. 아무튼 나란히 진행을 하고 있으니 그냥 진행하면 리본이 보이겠지 하면서 진행했다. 다리가 나온다. 사거리 지점인데 진행방향의 세군데 모두 리본이 없다.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지만 계속 직진해서 진행했다.

한참을 진행해도 리본은 보이지가 않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는 빽을 해서 다시 다리가 있는 사거리에 도착한 후 이번에는 좌회전(진행방향일 때는 우회전)해서 진행을 했다. 역시나 한참을 진행해도 리본은 보이지가 않았다.

이거 어디서 잘못됐는지 도저히 감이 잡히질 않았다.

날씨는 무더워 온 몸이 땀투성이고, 속은 부글부글 끓고….

결국 무더위에 포기하고 한국농어촌공사를 지나 구(舊) 48번 국도변 용진주택 앞에서 버스타고 강화터미널에 도착하여 차량회수 후 귀가했다.

 

그 후 3주가 지나 다시 6코스를 찾았다.

그날(8월 6일) 집에 도착하여 어디서 잘못됐는지 인터넷 검색을 한참이나 했다. 결국 강화나들길 카페, 네이버지도를 검색해서 과외 시작점을 알아냈었다.

    


강화나들길 제6코스 화남생가 가는 길

강화버스터미널 ~ 광성보

 

강화풍물시장에서 출발하여 논길을 지나 숲길로 들어서면 바로 약수터가 반긴다. 작은 습지와 흔적만 남은 토성이 있다. 선원사를 뒤로 하고 8월에 연꽃축제를 보면 행운이다. 화남생가를 둘러 본 후 광성보까지는 한가로운 농촌의 모습을 즐기는 코스

거리: 18.8km / 소요시간: 6시간 / 난이도: 중

강화버스터미널-(2.2km)-약수터-(3.1km)-선원사지-(4.6km)-삼동암천-(1.5km)-환경농업교육관-(0.7km)-화남생가-(1.6km)-능내촌입구-(5.1km)-광성보

 

[코스정보]

 

화남 고재형 선생은 1906년 강화도의 유구한 역사와 수려한 자연을 노래하며 강화의 논 ․ 밭 ․ 산길 ․ 바닷길을 둘러보고 칠언절구의 한시 256수를 「심도 기행」이라는 기행시집으로 남겼다. 나들길은 바로 화남 선생이 걸었던 길을 잇고, 잊힌 길을 찾아 강화가 품고 길러 낸 자연과 땅 위에 모든 것과 연결한 길이다. 선생의 생가 두두미 마을에는 선생이 남긴 『봄바람 맞으며 두두미를 걷노라니, 온 마을의 산과 내가 한눈에 들어오네. 밝은 달 푸른 버들 여러(구)씨 탁상에서, 잔 가득한 술 맛이 힘을 내게 하는구나』라는 「두두미동」시 한 수가 있다.

 

터미널을 벗어나면 바로 고식이 들판, 조산평이라고 불리는 너른 논이 이어진다. 바람결에 몸을 흔드는 벼 이삭의 배웅을 받으며 도감산을 오르면 진달래, 생강나무 꽃이 발길마다 따라와 탄성이 절로 나온다.

나무 틈 사이로 보이는 푸르디푸른 논은 자연이 만든 예술품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다. 화남 고재형 선생의 고향 두두미 마을은 「세상의 모든 꽃이 이곳에 모두 있다.」라는 말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조용하고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볼거리]

 

▶ 선원사지

1245년 최우가 호국 사찰로 창건하였다. 여기에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현재 합천 해인사에 있는 고려대장경 목판을 만들어 보관했다.

유적에 대한 네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독립된 건물지 21개소와 부속 행랑지 7개소가 확인되었으며, 건물들은 북고남저의 지형 위에 동서로 긴 4개의 층단을 두고 빼곡히 들어서 있다. 출토유물은 자기류, 기와류, 소형 청동 탄생불, 금동나한상, 탄화된 사경편 등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자기류 대부분은 12세기 후반~14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청자편이 대부분이고, 기와류는 평기와가 가장 많고, 막새 ․ 취두 ․ 잡상 등이 출토되었다.

 

▶ 화남생가

화남 고재형 선생이 태어나 자란 곳이다.

지금도 후손이 살고 있다.

[출처: 강화나들길 홈피(www.nadeulgil.org/)]

    


동락천 징검다리


오늘도 승용차를 이용했다.

그런데 강화장날(오일장. 2 ․ 7일)이어서 풍물시장 넓은 주차장에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차량으로 북적되고 있었다. 다행히 빈곳이 있어서 주차를 했다.

강화나들길 6코스 시점인 풍물시장에 때마침 오일장이 열리고 있어 동행한 여행님은 글쓴이가 화장실로 볼 일 보러 가는 사이 장을 보았다.

 

장을 본 여행님과 합류하여 도장함에서 도장을 찍고 출발했다.(09:46)

시점에는 좌측으로 글씨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된 안내판,「제6코스 화남생가 가는 길」 대형 안내판, 도장함 등이 설치되어 있고, 우측 다리 앞에는 발밤이 말뚝 표지판(6-01)이 세워져 있다.

 

113년 전, 옛 선비가 걷던 길

 

병오년(1906년), 때는 봄이었다. 한 선비가 행장을 꾸려 말에 싣고 길을 떠났다. 선비는 과거에 급제했지만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고향 강화 일주에 나섰다. 당시 우리나라는 외세의 침략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예순이 넘은 선비는 자신이 밟고 있는 땅이 더 소중하고 아름답게 여겨졌을 것이다.

선비는 자신이 태어난 두두미 마을에서 출발해 바닷가 성곽에 오르고 옛 궁궐터를 지나 큰 나무 아래서 숨을 고르며, 시간이 고인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천 리 길, 강화 100여 마을을 둘러본 끝에 한시 칠언절구 256 수를 짓고 시집 <심도기행>을 남겼다. 심도(沁島)는 강화의 또 다른 이름, 선비는 화남(華南) 고재형(1846∼1916) 선생이다. 선비가 걸었던 길은 103년(2009년)의 시간이 흘러 ‘강화 나들길’로 다시 태어났다.


우측으로 동락천 수로를 끼고 출발한다.

3분을 진행하면 좌측 도로가 있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도로종점」 표지판이 우측에 세워져 있다.

다시 3분을 진행하면 징검다리 입구가 나온다.

입구에는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그 옆에 강화나들길 「⑥화남생가 가는길」나무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나무계단을 내려가 징검다리식으로 만들어진 동락천 보를 건너 다시 나무계단을 올라가면 앞전(8월 6일)에 과외를 받기 시작한 삼거리이다.

이곳에서 좌측의 리본 만 보고는 좌측으로 진행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지금 자세히 보니 우측의 전봇대에 분전함이 있고 그 위에 강화나들길 표식(화살표)이 걸려 있다. 이것만 보았어도 과외를 받지 않았을 텐데 못 보고 그냥 지나간 것이다. 좌측을 둘러보니 역시 리본이 매달려 있다. 쓸데없는 곳에 매달려 과외를 불러일으킨 리본을 여행님이 제거했다.

    


강화인삼스파랜드의 대추나무


이제 직진해서 진행한다.

넓은 고식이들판 사이로 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조금 일찍 심은 벼는 어느새 고개를 숙이고 있다.

 

계속해서 직진한다. 잠시 비포장도로가 나오고 새로 만든 다리도 건넌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발밤이 말뚝 표지판(종점 14.2km, 시점 0.8km)이 세워져 있다.

 

새로 신축한 다리를 건너면 삼거리가 나온다.(10:04)

우측에 발밤이 말뚝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우측으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5분 후 강화정신요양원 간판이 세워져 있는 삼거리를 지나면 1차로 포장도로로 바뀐다.

 

이후 조금 더 진행하면 강화정신요양원 입구 삼거리에 닿는다. 발밤이 말뚝 표지판(종점 13.4km, 시점 1.6km)이 세워져 있다.

좌회전하면 강화정신요양원이다. 우회전하여 2분 진행하면 나오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해서 조금 올라가면 강화인삼스파랜드가 나온다.(10:15)

 

영업을 안 한지 6년이 지나서 그런지 휑하다. 입구에는 무척 큰 대추나무가 있는데 대추가 주렁주렁 많이 달려 있다.

강화인삼스파랜드에 대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법원 경매로 나왔는데 토지 2147.45평, 건물 1140.79평이고, 감정평가액이 36억4천만원인데 14억원<2016.01.21>으로 종결됐다고 되어 있다.

종결된 지 3년이 넘었는데 아직 영업은 재개하지 않았다.

 

아무튼 글쓴이가 현재까지 본 대추나무 중 가장 큰 대추나무를 뒤로 하고 곧바로 정면으로 보이는 계단(발밤이 말뚝 표지판. 6-08)을 올라감으로써 도감산 산길에 접어든다.(10:19)

    


선원사지


계단을 올라선 후 약 30초 정도 진행하니 삼거리가 나온다. 발밤이 말뚝 표지판이 좌측으로 가라고 알려준다.

2분 후 다시 나타난 삼거리에도 발밤이 말뚝 표지판(6-10)은 좌측으로 안내한다.

좌측으로 2분 진행하니 발밤이 말뚝 표지판 6-11(종점 12.6km, 시점 2.4km)이 나타난다.

 

6분 후 6-12 발밤이 말뚝 표지판이 나오고, 4분 후 사거리안부가 나오는데 등고선상 표고 90m 지점이다. 이곳에는 발밤이 말뚝 표지판(6-13)과 이정목(↓창리방면, ↑지산리방면, 일만보걷기산책로→)이 세워져 있다. 우회전하여 일만보 걷기 산책로로 진행한다.(10:33)

 

일만보 걷기 산책로는 선원면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주민의 건전한 여가 활동과 체력증진을 위하여 조성(2007년 7월)했다고 한다.

강화중성(고려 고종 37년<1250년>에 쌓은 토성으로 길이가 약 4km)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으며, 찬우물 약수터와 혈구산 등산로로도 연결되어 있는 삼림욕 산책로라고 한다.

 

강화중성에 대하여

 

고려는 1232년(고종 19년) 몽골 침략에 맞서 수도를 강화도로 옮겼다. 이후 강화는 1270년(원종 11년)까지 39년 동안 개경을 대신해 고려의 도성 역할을 했다. 당시 고려는 내성을 비롯해 외성, 중성(외서와 내성 사이)등을 차례로 축조해 모두 세 겹의 성벽이 겹겹이 둘러싼 요새를 구축했다.

 

이중 중성은 강화읍 외곽 일대에 ‘⊂’ 형태로 둘러진 토성이다.

성곽은 길이 약 11.39㎞로, 기록(『고려사(高麗史)』권82)에는 성곽의 둘레가 총 2,960칸이며, 크고 작은 문 17개가 있었다고 한다.

1250년(고종 37년)에 지어져 1259년(고종 46년)에 몽골과의 화의에 따라 훼철(毁撤)된 것으로 전한다.

 

강화중성에 대한 발굴조사는 2009년부터 총 5차례 진행되었으며 일부 성곽 구간의 축조방법과 구조가 확인된 바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성곽의 부속시설이자 방어시설로 추정되는 목책 치(雉)와 도랑인 외황(外隍)이 조사되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강화중성(토성)을 따라 진행을 한다. 이후 8~9분 정도 진행을 하면 다시 해발표고 90m 쯤 되는 사거리 안부가 나온다. 역시 이곳에도 이정목(↓선원사방면, ↑고시기(창리)방면, ←일만보걷기 산책로)이 세워져 있고, 옛날에 성황당 흔적인 무너진 돌무더기도 보인다.

 

이후 살짝 오르면(1분정도) 사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토성(고려 중성)과 작별하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직진하는 나들이꾼들이 많았는지 두 개의 긴 작대기로 직진을 못하게 막아 놨다. 이곳에도 발밤이 말뚝 표지판(6-14, 종점 11.4km, 시점 3.6km)이 세워져 있다.

 

1분 후 산불이 난 지역을 통과한 후 8분을 진행하니 시야가 터지면서 초원지대가 나온다. 선원사지이다.

 

강화 선원사지 [江華 禪源寺址]

 

시대: 고려

문화재 지정: 사적 제259호(1977.11.29 지정)

건립시기: 고려시대

성격: 사찰터

유형: 유적

면적: 11,540.5㎡

소재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산 133

분야: 예술·체육/건축

 

요약: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고려시대 대몽항쟁 당시 고려대장경 목판을 조각하던 곳으로 추정되는 사찰터. 사적.

 

개요

 

사적 제259호. 선원사는 고려시대에 몽골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 후 1245년(고려 고종 32)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최우(崔瑀)가 자신의 원찰(願刹)이자 대몽항쟁의 정신적 지주로 삼고자 창건한 곳이다. 강화도 피난 당시 국찰(國刹)의 격을 갖던 사찰이었으며. 충렬왕 때에는 임시 궁궐로 사용하기도 했다. 특히 대장도감(大藏都監)을 설치하여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목판을 조각, 봉안하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때 조각된 팔만대장경 목판은 현재 합천 해인사에 봉안되어 있는데 1398년(조선 태조 7)한양의 지천사(支天寺)로 옮겼다가 1456년경(세조 2)해인사로 다시 옮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려시대의 선원사는 순천 송광사와 함께 2대 선찰(禪刹)로 손꼽혔으나 1398년(조선 태조 7) 이후 아무런 기록이 없으며, 그 터는 잊혀져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1976년 동국대학교 강화도학술조사단이 지표조사를 통해 처음 발견하여, 몇 개의 주춧돌과 보상화무늬 전돌, 범자(梵字) 새긴 기와, 지붕에 얹었던 잡상 등을 확인하였다. 이후 선원면(仙源面) 도감마을, 도감산에 있는 절터이므로 학술적·역사적 가치와 지역 연원에 근거하여, 1977년 사적 제259호 강화선원사지(江華仙源寺址)로 지정되었으나 위치에 대한 논란이 있다.


내용

 

1996년부터 2001년까지 4차례에 걸쳐 동국대학교박물관이 발굴조사 한 결과, 독립된 건물지 21개소와 부속 행랑지 7개소가 확인되었으며, 건물들은 북고남저의 지형 위에 동서로 긴 4개의 층단을 두고 빼곡히 들어서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부 대형건물지(기단길이 38m)에는 삼존불을 지탱한 것으로 보이는 불단 유구가 확인되었고, 5개의 건물지에서 온돌시설과 배수시설 등이 확인되었으나 탑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지역은 건물지가 집중되어 있는 중심구역으로 남북길이 180m, 동서너비 180m정도이다. 출토유물은 자기류, 기와류, 소형 청동탄생불, 금동나한상, 탄화된 사경편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자기류(총 2,300여 점)는 12세기 후반∼14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청자편이 대부분(94%)이고, 기와류는 평기와가 가장 많다. 막새, 취두, 잡상 등이 출토되었는데, 이중 막새류는 연화문, 범자문, 귀목문이 대부분인데 ‘박씨(朴氏)·유씨(劉氏)’명(銘) 막새도 있다. 취두편은 모두 21개가 조사되었다.

 

출토 유물로 보면 절터와 관련된 유적으로 추정되나,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고려팔만대장경』을 판각했던 선원사(禪源寺) 터로 볼 수 있는 고고학적 자료가 확인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더구나 1931년 편찬된 『속수증보강도지(續修增補江都誌)』에 “선원면 선행리 충렬사 앞 인근 일대가 선원사의 유지”라 되어 있어, 향토사가들은 이를 근거로 현재 선원사지는 가궐터(假闕址)이며, 충렬사 전면 터가 선원사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헌사학계에서도 현 위치가 문헌자료와 배치된다는 이유로, 선원면 선행리의 충렬사 부근이 선원사지이며, 대단히 많은 수량의 치미, 용두, 잡상이 출토된 현 선원사지는 사찰이라기보다 궁궐과 가까운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2013년 5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강화군 선원면 신정리에서 발견한 건물 터가 고려시대 가궐(假闕) 터로 추정되고 있어, 앞으로의 조사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특징

 

사역이 크게 네 구역으로 구분되어 층단식(層段式)으로 대지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의의와 평가

 

남한지역에 현존하는 고려시대 사찰 터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선원사 [禪源寺]

 

요약: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에 있었던 고려시대 무신 최우가 창건한 사찰. 사적.

 

내용

 

강화도로 고려의 도읍을 옮긴 최우(崔瑀)가 대몽항쟁을 위한 국민총화의 일환으로 창건하였다. 초대주지로는 진명국사(眞明國師)가 위촉되었고, 2대 원오국사(圓悟國師), 3대 자오국사(慈悟國師), 4대 원명국사(圓明國師), 5대 굉연(宏演) 등 당대의 신망이 높은 고승들이 차례로 임명되었다. 송광사(松廣寺)와 함께 당시 2대 사찰로 손꼽히던 사찰이었다. 그러나 고려의 왕실이 다시 개경으로 환도한 뒤 차츰 쇠퇴하여 조선 초기 이후에 폐허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절은 현재 해인사에 있는 고려대장경의 재조사업(再彫事業)과 깊은 관계가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398년(태조 7)에 이 절에 있던 대장경판(大藏經板)을 서울로 옮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조선 초기까지 대장경판은 선원사에 보관되어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 절이 대장경판을 만든 곳이라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대장도감(大藏都監)의 본사(本司)가 강화도에 있었고 승려들이 경판을 필사하고 조각하였다는 점 등을 통하여 경판을 보관하였던 이 절에 대장도감을 설치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현재의 선원사지는 그 입지적 조건이 대장경판 간행사업을 진행시키기에는 아주 적합한 곳이다. 두 궁성이 아주 가까운 곳이었고, 절의 앞뜰에서 부두가 보이는 곳이어서 목판 재목을 운송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또한 이 절이 최우의 원찰(願刹)이었고, 충렬왕 때 궁전으로 사용하였을 만큼 규모가 컸다는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 절터에서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보상화문전(寶相花文塼), 명문이 새겨진 막새기와·치미(鴟尾)·원숭이 상 등이다. 이들은 그 양도 풍부하고 질적으로도 상당히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거의가 고려 때의 유물로 추정된다. 또한 이 절에는 오백불상이 있었다고 하며, 사지는 사적 제259호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엄청난 크기의 선원사지를 잠시 이리저리 구경을 하고는 지난 1995년부터 복원불사를 추진하고 있는 현재의 禪源寺(선원사)를 구경하고 2차로 도로에 내려왔다.

 

2차로 도로변에는 버스정류장이 있고, 도로표지판(선원사지. 팔만대장경 판각성지→), 발밤이 말뚝 표지판(종점10.5km, 시점4.5km)도 세워져 있다.

    


월하선원 옆에 있는 멋진 벤치식 표지목


2차로도로를 가로질러 내려가니 선원사 연꽃 축제장이라고 쓴 대형 표지석과 시(詩)비가 나오고 곧바로 연꽃이 심어져 있는 곳이 나오는데 규모가 생각보다 작아서 실망했다.

 

곧바로 나오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한다. 6-16 발밤이 말뚝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길가의 밤나무에 밤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다시 나타난 발밤이 말뚝 표지판(6-17)은 좌회전하라 한다. 이후 조금 더 진행하니 팔각정이 나온다. 팔각정 앞에는 발밤이 말뚝 표지판(숫자는 희미해서 판독불가)도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약 23분간 휴식을 했다.

 

휴식을 마치고 2분이 채 안된 지점에 신지라는 고승이 신지동 뒷산에 절을 짓고 등대를 세워 남산대라고 명칭하였던 것이 유래됐다는 지산2리 남산대마을 표지석이 있는 곳이 나온다. 또한 이곳에는 팔각정(현판: 남산대)과 경로당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이후 좌측으로 연꽃이 심어져 있는 곳을 지나니 예쁜 연못이 나오는데 이곳에는 수생식물들도 심어져 있어 보기가 좋았다.

화남선생이 지은 심도기행 시「남산동(南山洞)」이 세워진 곳을 지나니 월하쉼터가 나온다.

 

원로 작곡가 정월하 선생이 운영하는 곳인데 무료로 운영하는데 주중이라 그런지 썰렁했다. 주변이 꼭 산사같이 꾸며져 있다. 탑도 있고, 석등도 있다. 약수물도 흘러내리고 있다. 「월하선원」이라고 빨갛게 쓴 간판이 걸려 있다.

바로 옆에 강화나들길 제6코스 화남생가 가는 길 대형 의자형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상당히 깨끗한 것을 보니 아마 최근에 설치한 것 같다. 또한 이곳에 발밤이 말뚝 표지판(6-23. 종점 9.4km, 시점 5.6km)도 세워져 있다.

이어 인삼밭을 지나 사거리에 도착했다. 연동고개이다. 버스정류장도 있다.(12:00)



화남생가의 후손이 살고 있는 집


도로를 건너 3분 정도 진행하니 황토색 벽돌집(창고 비슷함)이 나온다. 이후 나들길은 수풀이 무성한 곳을 지나가는데 강화나들길을 믿고(?) 반바지 차림으로 나선 여행님은 다리에 수없이 잡풀에 긁히면서 지나갔다. 약 6분여를 지나가는데 엄청 길게 느껴졌다. 여름철에는 6코스를 답사하지 않는 걸까? 나들길꾼이 지나간 흔적도 보이지가 않았다.

 

1차 수풀지대를 벗어나니 우측으로 탱자나무 군락이 나타나는데 탱자가 많이 달려 있다.

 

발밤이 말뚝 표지판(종점 7.9km, 시점 7.1km)이 풀 속에 갇혀서 잘 보이지가 않은 곳을 지나니 다시 1차로 포장도로가 반긴다.

황금벌판을 보며 조금 진행하니 사거리가 나온다. 전봇대 옆에 「조경촌 ←」이라고 쓴 파란색 원형 간판이 세워져 있고, 그 옆에 발밤이 말뚝 표지판도 세워져 있다.

 

좌회전하여 4분 진행하니 삼동암천을 가로 지르는 조경교(총연장: 63m, 교폭: 7m)가 나온다.(12:34)

조경교를 건너 풀속에 갇힌 발밤이 말뚝 표지판도 지나고, 사거리도 지난다. 그렇게 조경교에서 12분 정도를 지나면 두 번째 수풀지대가 나온다. 입구에는 발밤이 말뚝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무성한 풀밭길로 가라고 정확하게 알려준다.

돌아서 가는 길을 찾아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무성한 풀밭길을 헤쳐 나간다. 우측으로 수로와 나란히 간다. 수로 건너편으로 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해봤지만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 그냥 풀밭을 헤치고 지나간다.

수로와 나란히 진행하는 무성한 풀밭길은 다행히 5분 만에 끝이 났다. 끝지점에도 발밤이 말뚝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이후 2차로 포장도로를 가로 질러 다시 숲길로 들어선다. 입구에 발밤이 말뚝 표지판(종점 5.4km, 시점 9.6km)이 세워져 있다. 숲길은 다행히 경운기길이라 상태가 무척 좋다.

 

이후 2분 정도 진행하니 꽤 많은 주목나무가 심어져 있는 곳이 나온다. 쉴만한 장소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14분 정도 휴식을 했다.

 

휴식을 마치고 2분을 진행하니 다시 2차로도로를 가로 질러 진행한다. 그리고는 넓은 비포장 흙길을 따라 조금 진행을 하니 오래된 기와집이 나온다.

나들길은 기와집을 끼고 좌측으로 들어서는데 3번째 수풀지대가 나온다. 이곳에는 친절하게 다른 곳으로 가지말고 풀밭으로 가라고 방향 표시 강화나들길이 세워져 있다.

이번에도 역시 5분 정도 진행하니 풀밭지대에서 벗어난다. 그리고는 숭덕문이 나타난다. 고씨 문종 영모사 정문이다. 입구에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영모사에서 2분 정도 진행을 하니 좌측에 평해황씨 효부 정려문이 나타난다. 아주 살짝 나들길에서 벗어난 평해황씨 효부 정려문을 확인하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후 화남생가를 지나(지나갈 때는 그곳이 화남생가인줄 몰랐다) 큰나무(물푸레나무. 300살) 안내판을 지나간다.

이어 나오는 삼거리에 화남선생의 시 「斗頭村(두두촌)」 표지판이 나온다. 맞은편에는 발밤이 말뚝 표지판(종점 4.4km, 시점 10.6km)과 「꽃마니에 뜨락 ←70m」라고 쓴 노란색의 작은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좌회전한다.

 

좌회전을 한 후 마을을 지나가면서 「이상하다! 이 근처에 화남생가가 있을텐데…」 라고 여행님에게 예기를 하니 여행님은 때마침 옆에 있던 마을 주민에게 화남생가를 물어본다. 그리고는 알아 와서 그곳으로 되짚어 가봤다. 그런데 글쓴이가 알기로는 화남생가는 스레트 지붕이라고 알았는데 주민이 화남생가라고 알려준 집은 2층집이었다.

그래서 이곳이 아니다 싶어 이번에는 좌측으로 가봤다. 그곳에서도 여행님은 주민분에게 화남생가를 다시 한 번 물어보더니 틀림없이 2층집이 화남생가라는 것이다. 아무튼 고개를 갸우뚱하며 사진 한 장 찍고는 다시 원위치 했다.

결론은 2층집은 화남의 후손이 살고 있는 집이고 우측으로 화남생가가 있었는데 철거를 했다.

※화남생가는 영모사 지나 계속 직진하다보면 우측에 있음.

후손이 살고 있는 2층집 옆에 스레트 지붕의 초라한 집이 화남생가인데 얼마 전에 철거를 했다.

 

원 위치하여 조금 진행하니 다시 큰나무(두두미마을 상수리나무. 300살) 안내판이 나오고 그 옆에는 꽃마니에뜨락 간판이 세워져 있다.

 

1차로 포장도로를 따라 얼마간 진행을 하니 두두미마을 출구(입구)가 나온다. 이곳에 화남선생의 시 표지목 「斗頭尾洞(두두미동)」이 세워져 있다. 이밖에 두두미마을 안내도, 목장승(두운랜드 전통테마마을),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의 목장승이 세워져 있다.

 

도로 맞은편에는 버스정류장이 있다.



터진개 정류장(도장함이 없어졌다)


두운2리 마을회관 앞을 지나 조금 진행하니 발밤이 말뚝 표지판(종점 3.7km, 시점 11.3km)이 나온다.

 

잠시 1차로 포장도로를 따라간다. 이어 짧은 돌담을 빠져 나오면 삼거리가 나온다. 정면으로 대형 표지석(능내촌. 고능2리 →)이 세워져 있다.

 

삼거리에는 버스정류장(능촌입구. 43 ․ 55)과 발밤이 말뚝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좌회전하여 2차로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을 한다.

 

이어 1~2분 후 다시 숲길이 나온다.

이동식 화장실이 있는 곳을 지나니 오두리 간이 상수도 물탱크 시설물이 나온다. 그리고는 세 번째 잡풀지대가 나오는데 그나마 이곳은 앞전의 두 군데 보다 작은 풀들이 깔려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는 2차로 포장도로에 들어섰다.

좌측으로 오두보건진료소와 오두리 경로당 건물이 있다. 이내 사거리에 도착을 했다. 오두리 버스 종점(43번, 55번)이다. 발밤이 말뚝 표지판은 종점까지 0.6km 남았다고 쓰여 있다.

 

잠시 휴식하다가 이내 마지막을 향해 출발했다.

8분 진행하여 터진개 버스 정류장에 도착을 했다. 이곳에 도장함이 있다고 알았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버스 올 시간이 남아서 잠시 해안가까지 갔다. 시간은 흘러 어느새 칠면초가 빨간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이곳에 발밤이 말뚝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데 2코스 만 표시되어 있다. 이곳부터 6코스 종점인 광성보까지는 겹치는 구간이다.

 

그래서 능내촌 입구에서 광성보까지 5.1km 거리는 2코스(호국돈대길)와 겹치기 때문에 생략했다.

 

이로써 6코스 화남생가 가는 길을 무사히(?) 마쳤다.

휴식 포함하여 5시간 걸렸는데 휴식(40분) 제외하면 4시간 20분 걸렸다.

 

이후 15:15분에 버스를 타고 약 15분 정도 걸려 강화터미널에 도착하여 차량을 회수한 후 귀가했다.

    


터진개 해안

이후 2코스와 광성보까지 겹친다.



6. 더 많은 사진 보기

 

[강화나들길 6코스] 화남생가 가는 길 (사진 1)

[강화나들길 6코스] 화남생가 가는 길 (사진 2)

[강화나들길 6코스] 화남생가 가는 길 (사진 3)

[강화나들길 6코스] 화남생가 가는 길 (사진 4)

     

  

7. 강화나들길 답사 후기 (2018.11.12 ~ ?)

 

코스

답사

순서

답사날짜

답사 후기

1.심도역사문화길

8

19.01.08

http://blog.daum.net/joingi61/15965217

2.호국돈대길

9

19.01.22

http://blog.daum.net/joingi61/15965222

3.고려왕릉가는길

10

19.01.29

http://blog.daum.net/joingi61/15965226

4.해가지는마을길

12

19.03.12

http://blog.daum.net/joingi61/15965237

5.고비고개길

 

 

 

6.화남생가가는길

17

19.08.27

 

7.낙조보러가는길

 

 

 

8.철새보러가는길

7

19.01.01

http://blog.daum.net/joingi61/15965212

9.다을새길

3

18.11.20

http://blog.daum.net/joingi61/15965198

10.머르메가는길

4

18.11.27

http://blog.daum.net/joingi61/15965201

11.석모도바람길

5

18.12.04

http://blog.daum.net/joingi61/15965204

12.주문도길

1

18.11.12

http://blog.daum.net/joingi61/15965194

13.볼음도길

2

18.11.13

http://blog.daum.net/joingi61/15965195

14.강화도령첫사랑길

15

19.05.21

http://blog.daum.net/joingi61/15965267

15.고려궁성곽길

16

19.06.11

http://blog.daum.net/joingi61/15965274

16.서해황금들녘길

14

19.05.14

http://blog.daum.net/joingi61/15965262

17.고인돌탐방길

 

 

 

18.왕골공예마을가는길

11

19.02.12

http://blog.daum.net/joingi61/15965232

19.석모도상주해안길

6

18.12.25

http://blog.daum.net/joingi61/15965207

20.갯벌보러가는길

13

19.04.30

http://blog.daum.net/joingi61/15965255

 

 

8. 답사 경비

 

①승용차 이용 기름값(추정): 18,000

②통행료: 1,800 (경차)

③식대: 14,000

④버스비: 1,250

⑤주차료: 2,500 (하루 종일 요금, 경차 50% 할인)

합계: 37,55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