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산행(둘레길 등)/평화누리길[경기도]

[평화누리길] 10 (고랑포길) 장남교[원당리]에서 숭의전지까지 (후기)

약초2 2018. 3. 23. 13:37

평화누리길 제10코스(고랑포길)

장남교→숭의전지 (18km / 5시간 44분 소요)

「임진강의 물줄기를 바라보며!」

 

1.답사 날짜: 2018.03.06 (화)

2.날씨: 맑고 쾌청함

3.답사 코스: 장남교→비룡대교 입구→숭의전지(고랑포길)

4.동행 인원: 여행님

5.답사 방법: 자가용 승용차 이용

 

6.답사 시간

-11:00 장남교(원당리) 발(답사 시작)

-11:19 장남 119 지역대

-11:22 세상의 모든 아침(스템프 찍는 곳)

-11:30 번지점프 앞 삼거리(직진) 착 / -11:32 발

-11:57 넓은 징검다리

-12:12 좁은 징검다리

-12:22 뚝방길 쉼터 착 / -12:34 발

-12:59 새터(학곡리 표지석)

-13:43 학곡리 고인돌 착 / -13:57 발

-14:08 적석총 착 / -14:10 발

-14:17 학곡교

-14:42 구미배수펌프장

-14:51 해쌀펜션

-15:04 숭의전 3.1km 지점

-15:30 아미2리 마을회관

-15:50 숭의전 착 / -16:10 발

-16:33 가장 높은 곳

-16:40 송전탑, 사각정자 쉼터

-16:44 승마체험장(답사 종료)

 

◈ 장남교→(0:30)→번지점프앞삼거리→(1:15)→새터→(0:44)→학곡리고인돌→(0:18)→학곡교→(0:25)→구미배수펌프장→(0:19)→숭의전3.1km지점→(0:46)→숭의전→(0:34)→승마체험장

 

※ 휴식없이(과외 약 40분 포함) 4시간 51분 걸렸고, 휴식 포함하면(과외포함) 5시간 44분 걸렸다.

※ 과외없이(휴식없이) 순수 10코스 만 계산하면 약 4시간 11분 정도 걸린 것 같다.

 



10코스 개념도(평화누리길 팜플렛에서 발췌)


7.답사 후기

 

「임진강의 물줄기를 바라보며!」

 

파주시와 임시로(아직 답사하지 못한 6코스<출판도시길>, 7코스<헤이리길>가 남아 있기 때문) 작별하고, 연천군으로 접어들었다.

연천군 평화누리길은 10코스(고랑포길), 11코스(임진적벽길), 12코스(통일이음길)가 있다.

 

평화누리길 9코스(율곡길)를 마치고 일주일 만에 다시 평화누리길 답사에 나섰다. 이제 10코스 고랑포길이다.

 

10코스 입구에는 벤치 2개, 이정표(평화누리길 10코스(고랑포길) 입구→, ←율곡습지공원 19km, 숭의전 22km→), 10코스 안내판, 10코스 아치형 시설물(안쪽에 스템프 찍는 곳 있음), 대형안내도(연천 평화누리길) 등이 설치되어 있다.

2차로 건너편에는 연천 광고(통일 한국 심장, Miracle 연천) 도로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10코스 인증 사진을 찍고!


인증 사진을 찍고 10시 58분에 출발한다.

2~3분을 진행하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화장실이 있고, 조금 더 직진하면 쉼터(사각정자)가 조성되어 있다. 화장실 옆에는 파란색의 평화누리 자전거길 푯말(숭의전지 20.97km)이 세워져 있다.

 

화장실이 있는 삼거리에서 367번 도로(2차로)와 작별하고 우측의 시멘트 포장도로로 들어서면 이곳이 자전거길 임을 알려주는, 길 양쪽 가장자리에 파란색의 줄이 그어져 있고, 한 가운데에는 철판으로 만든 평화누리길 엠블럼이 뚜렷하다. 이러한 엠블럼은 자주 나온다.

 

화장실이 있는 삼거리에서 10분을 진행하니 다시 사거리가 나오는데 좌측의 전봇대에는 평화누리길 푯말이, 우측에는 평화누리길 자전거길 푯말이 세워져 있다. 다시 만난 367번 도로(2차로) 따라 우측으로 진행한다.



세상의 아침 스템프 찍는 곳



6분을 진행하니 장남 119지역대가 나온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장남면 주민자치센터, 장남면사무소, 장남보건지소 등이 나온다.

 

장남 119지역대에서 조금 더 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통일바라기영농조합인 「세상의 모든 아침」 건물이 있고 그 앞에 쉼터가 조성되어 있는데 스템프 찍는 부스도 설치되어 있다. 장남 119 지역대에서 3분 걸렸다.

 



감악산이 보이고... 전망 좋은 쉼터



「세상의 모든 아침」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2분을 진행하니 자전거길과 작별하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자전거길은 우측, 평화누리길은 직진한다.

 

직진하여 6분 정도 진행하니 번지점프 입간판이 세워져 있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최근에 변경된 코스로(변경 전에는 번지점프하는 곳으로 진행했다) 직진하여 진행한다(입구 바닥에 평화누리길 엠블럼, 전봇대에 푯말이 붙어있다).

 

8분을 진행하니 삼거리가 나오는데 자전거길과 다시 작별하고, 우측으로 5분 올라가니 언덕에 한씨가원의 2층집이 있다.

 

한씨가원의 2층집을 뒤로 하고 내려가면 흙길이 시작되면서 「민통선 사미천 캠핑장」이라고 쓴 아치형 간판이 나온다. 이정표(숭의전 18.2km, 장남교 3.8km)가 세워져 있다. 한씨가원에서 8분 걸렸다.

 

「민통선 사미천 캠핑장」 아치형 간판이 있는 곳에서 3분 정도 내려가면 장남교 4km 이정표 아래 「우천시 우회하시오」라고 쓴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1~2분을 더 내려가면 사미천에 걸쳐 있는(사미천은 이곳에서 남쪽으로 약 335m 더 가서 임진강과 합류한다.) 다소 긴 징검다리가 나온다.

 

징검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진행한다. 임진강과 나란히 가는 폭 넓은 비포장길을 따라 조금 진행하면 나무에 매달린 그네가 나타나고, 아주 폭이 좁은 실개천에 걸쳐 있는 징검다리(징검다리라고 하기엔 어색하다. 사실 다리를 놓아야 할 자리인 것 같다)를 건너 다시 넓은 길을 따라 진행하는데 양쪽의 나무들이 흙이 잔뜩 묻어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아마 홍수가 지면 이곳이 물이 차는 곳인가 보다.

 

이어 첫 번째 징검다리 보다 조금 길이가 짧은 징검다리(석장천)를 건너 계단을 올라가면 뚝방에 올라서게 된다. 이곳에 이정표(숭의전 11.9km)와 우천시 우회하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우천시 우회하는 곳에서 이곳까지 18분 걸렸다.

 

뚝방에 올라선 후 우측으로 진행한다. 정면으로 감악산이 멋지게 보인다. 비포장길을 따라 조금(7분 정도) 가면 쉼터가 나오는데 벤치, 이정표(←숭의전 11.5km, 장남교 10.5km→), 운동기구 5개, 화장실, 사각정자 등이 있다.

 



학곡리 고인돌



정자(쉼터)에서 12분을 휴식하고, 13분을 진행하니 이정표(숭의전 10.6km)가 나온다. 이곳에서 뚝방길에서 내려와 자전거길로 진행한다.

 

시멘트 포장길따라 12분을 진행하니 사거리가 나온다. 학곡리 표지석과 버스정류소가 있다. 371번 도로(2차로. 이곳에서 남쪽으로 5분 정도<350m> 가면 비룡대교가 나온다.)를 횡단하여 청정로 52번길(1차로)을 따라 진행한다.

 

7~8분 진행하면 어긋난 사거리가 나온다. 2차로 도로(노아로)를 횡단하여 뚝방길(자전거길)로 진입한다.

 

7분을 진행하니 자전거길에 사각기둥 2개 원형기둥 2개가 박힌 곳이 나온다. 이곳부터는 보도블록이 깔려 있다. 9분 후 보도블록과 헤어지고 우측 임진강변으로 내려간다.

 

임진강변 하천부지가 공사 중인데 군데군데 많이 파 헤쳐져 있다. 이유인즉 공사하기 전 유물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한다.

 

2분을 내려가서 좌측으로 진행한다. 숭의전 8.1km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임진강 (臨津江)

 

강원도 법동군 용포리(룡포리, 龍浦里)의 두류산에서 발원하여 황해북도 개풍군 림한리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사이에서 한강으로 흘러드는 강. 한탄강과 더불어 남/북 자연경계선이다.

 

길이 244.00km, 유역면적 8,897.24㎢로서 한강의 제1지류이다. 오른쪽 유역에는 아호비령산맥이 뻗어 있고, 왼쪽유역에는 지류들이 흐른다. 주요 지류는 강원도 고미탄천(古味呑川:114km), 경기도 평안천(平安川:81km)·한탄강(漢灘江:130km) 등이며, 5km 이상의 지류는 250여 개이다.

 

수상교통의 요지로 6·25전쟁 이전에는 고랑포까지 배가 다녔고, 작은 배는 안협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예로부터 신라·백제·고구려의 국경으로 분쟁이 잦았던 지역인데, 기록에 따르면 삼국시대는 임진강을 칠중하(七重河)라 하였고, 경기도 연천군에 고구려 칠중현(縣)의 치소(治所)인 파주 칠중성(城)이 있었다.

 

이 강의 남북을 잇는 다리는 6.25 전쟁 때문에 몽땅 파괴되고 딱 하나 남았었는데, 그 이름하여 자유의 다리. 현재는 통일대교와 임진강철교를 위시하여 다리가 여럿 건설되어 있다.

 

피서를 가는 행락객들이 왕왕 있긴 하지만 여러 사건 사고 사례 때문에 별로 추천하지는 않는 곳.

 

• 2005년에는 강변에서 전술 훈련 중이던 JSA 경비대대 부대원들이 급류에 휘말려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포탄 낙하 상황이 주어지자 길옆으로 몸을 피하다가 병장 한 명이 실족하여 임진강에 빠졌는데, 이를 구하러 중대장, 소대장, 사병 3명[2]의 총 5명이 들어갔으나 중대장과 이병만 가까스로 살아나오고 나머지 3명과 처음 물에 빠진 병장 1명을 포함한 4명은 그대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 2009년 9월 6일 새벽 2시경 북한의 황강댐 무단방류 도발로 인해 6명이 목숨을 잃었다.

 

• 북한에서 흘러들어오는 강이기 때문에 목함 지뢰가 떠내려 오는 일도 있었다.

[인터넷 나무위키에서 발췌]

 

 

[임진강의 다리]

 

◈ 임진강철교: 경의선 임진강역과 도라산역을 연결한다. 바로 옆에는 한국 전쟁 당시 파괴된 구 교각들이 놓여 있다.

◈ 통일대교: 임진각과 판문점을 연결한다.

◈ 전진교: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과 진동면을 연결한다.

◈ 리비교: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과 진동면을 연결한다.

◈ 장남교: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과 연천군 장남면을 연결한다.

◈ 비룡대교: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과 연천군 백학면을 연결한다.

◈ 삼화교: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강 남단과 북단을 연결한다.

 

 

임진강을 가장 가까이 가서 본다. 그런 길을 12분을 진행하고, 이제 강가에서 좌측으로 올라간다. 숭의전 7.3km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3분 후 나타나는 삼거리에서 자전거길과 만나 우측으로 2분을 진행하니 좌측의 넓은 공터에 고인돌이 보인다.

 

제법 넓은 공터에 고인돌, 안내판, 벤치가 세워져 있다.

이곳의 고인돌은 강화, 고창 등에서 본 고인돌과는 다르게 생겼다.

 

 

◈ 연천 학곡리 고인돌

[요약]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학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支石墓) 유적.

 

연천학곡리고인돌(漣川鶴谷里고인돌)은 경기도 기념물 제158호이다. 지정(등록)일은 1996.01.18.이고 소재지는 경기 연천군 백학면 노아로 236-6이다. 관리주체는 연천군이다.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재청)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문화재청)

 

백학면 학곡리 임진강변의 마을 안, 편평한 대지상에 위치한다. 학곡리 마을은 마을 뒤쪽으로 야트막한 구릉이 펼쳐져 있고 앞쪽으로는 임진강이 흐르는 충적대지가 발달하여 일찍부터 사람이 살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 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한 주변에서는 선사시대의 유물이 많이 찾아지고 있다. 학곡리에서는 모두 5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연천군청)

 

학곡리 고인돌은 땅(지표)위에 네 개의 받침돌로 석실(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큰 상석(덮개돌)을 올려놓은 형식적으로 전형적인 탁자식이다. 현재는 양쪽을 막는 막음돌이 사라지고 없으나 보존 상태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무암을 이용하여 상석과 지석(굄돌) 1개를 만들었으며 또 다른 지석 1개는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상석은 표면을 치밀하게 다듬었고 상석의 윗부분은 가장자리에서 중앙부로 가면서 완만하게 파여 있는데, 평면 형태는 약간 각이 진 6각형에 가깝다. 상석의 크기는 길이, 너비, 두께가 각각 (280x270x45)㎝로 북동방향으로 길게 놓았다. 상석의 윗면에는 지름 7㎝ 안팎의 구멍이 10여개 파여 있지만 대부분 그 흔적이 뚜렷하지 않다. 남아있는 두 지석은 지석간의 거리 55cm, 지석의 높이 60cm로 남북방향으로 길게 놓여져 있으며 지석들의 길이는 2m가량 된다. 바닥에는 막돌들이 깔려있다. (연천군청)

 

덮개돌 윗면에는 8개 정도의 알구멍<성혈(性穴)>이 파여 있는데, 확실하게는 알 수 없으나 풍년을 빌거나 자식 낳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최근까지 학곡리의 사람들은 마을에 재난이 일어났을 때 이곳에서 동네굿을 벌이는데, 이와 같이 고인돌은 민간 신앙과도 연결되어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문화재청)

 

연천 지역에는 이곳 학곡리 고인돌 외에 통현리 전곡리 양원리에서도 탁자식 고인돌이 발견되고 있다.(경기문화포털)

 

[출처] 연천 학곡리 고인돌|작성자 경기문화재돌봄사업단

 



학곡리 적석총



벤치에서 14분을 휴식하고 짧은 벽화가 그려진 마을을 지나 7분을 진행하니 2차로 도로가 나타난다. 이곳에 이정표(숭의전 6.6km)와 자전거길 푯말이 세워져 있다. 삼거리인데 우측으로 100m 진행하니 다시 이정표(숭의전 6.5km)와 자전거길 푯말, 「연천학곡리적석총 100m →」라고 쓴 녹색의 푯말이 나온다. 이곳에서 2차로 도로와 작별하고 우측의 비포장길로 100m 진행하니 임진강가에 보호목으로 둘러싸인 적석총이 보인다.

 

 

◈ 연천 학곡리 적석총

[요약] 연천 학곡리 적석총(漣川 鶴谷里 積石寵)은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학곡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적석총이다.

 

연천학곡리적석총 (漣川鶴谷里績石塚)은 경기도 기념물 제212호이다. 지정(등록)일은 2006.04.24.이고 소재지는 경기 연천군 백학면 학곡리이다. 관리주체는 연천군이다.

 

학곡리 적석총은 학곡리 돌마돌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약 100m정도 떨어진 임진강변의 자연제방 위에 위치하고 있다. 강쪽의 구릉 말단부에 일정한 크기의 강돌을 보강하여 적석부의 붕괴와 유수로 인한 침식을 막고 자연구릉에 기대어 돌을 쌓았다. 그후 구릉 정상부를 정면하여 무덤방을 위치시키고 다시 강돌을 쌓아 마무리하였다. 무덤은 잦은 강물의 침범과 주변 개발로 파괴되면서 상당부분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발굴조사 결과 적석총은 서남부가 파손되었으나 평면 형태가 장타원형으로 판단되며, 장축은 25m이고 단축은 10m이며 높이는 약 1m이다. 강돌을 이용하여 장축방향이 강과 평행하게 적석되었고 적석부의 중앙에서 4기의 무덤방이 확인되었다. 무덤방은 3기가 동반부에 위치하고 1기는 서반부에 조성되었다. 1호 무덤방만 장축방향이 동서 방향이고 나머지는 남북 방향이며 무덤방의 형태는 장방형이다. (문화재청)

 

유물은 1호 무덤방에서 평저호(平底壺) 2점과 구슬 4점이 출토되었고, 2호에서는 타날문토기편, 구슬 81점, 골제(骨製) 장신구 1점, 청동환(靑銅環) 1점이 출토되었다. 3호 무덤방에서는 평저호 2점, 구슬 32점, 철제 낫(鐵鎌) 1점이 조사되었고, 4호 무덤방에서는 평저호 2점, 구슬 18점, 청동방울(靑銅鈴) 1점이 각각 출토되었다. 타날문에는 승석문 (繩蓆文), 격자문(格子文), 평행선문(平行線文) 등에 횡침선이 부가된 형태이며, 이 가운데 평행선문이 가장 많은 출토비율을 보인다. 고구려계 유물이 발견되지 않아 백제의 건국과 관련된 무덤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학곡리 적석총이 위치한 돌마돌 마을에는 마귀할멈이 치마폭에 돌을 날라 와 이 적석총을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마을 주민들은 이 적석총을 ?활짝각담?으로 부르며 신성 시 해왔다. (연천군청)

 

[출처] 연천 학곡리 적석총|작성자 경기문화재돌봄사업단

 

 

삼국시대의 적석총을 보고는 1~2분 진행하니 숭의전 6.2km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에도 임진강 쪽으로 유적지 발굴을 위해 군데군데 흙이 파여 있다.

보도블록 자전거길을 따라 6분을 진행하니 2차로(노아로)가 나타난다. 이정표에는 숭의전 5.8km 남았다고 쓰여 있다. 새둥지마을 입간판도 세워져 있다. 곧바로 90m 길이의 학곡교를 건너니 제법 규모가 큰 몽생미셸(펜션 & 카페)이 나온다.

 



숭의전



임진강변 가까이에 신축중인 건물(몽생미셸)을 지나니 현재 영업하고 있는 몽생미셸이 나온다. 정문에 양쪽으로 해태상이 지키고 있고 내부에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끝 지점에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몽생미셸과 작별하고 고개에서 내려가면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이정표(숭의전 5.4km)와 자전거길 푯말이 세워져 있다.

 

내려가면 보도블록이 깔린 자전거길이 나온다. 정면으로 감악산이 보인다. 좌측으로 진행한다. 11분을 진행하니 풍차가 멋진 밤나무집 매운탕식당이 있는 사거리가 나온다.

 

매운탕집을 가로 질러 진행한다. 이젠 비포장도로를 걷는다. 계속해서 우측으로 섬진강을 바라보며 진행한다.

 

3분 후 구미배수펌프장을 지난다. 이곳부터는 다시 포장도로길을 걷는다. 이정표(숭의전 4.5km)가 나오고, 보도블록길이 시작된다.

 

보도블록길과 작별하고 해쌀펜션 앞에서 자연스럽게 좌회전을 한 후 2분 후 나오는 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한다. 인삼밭 앞에 있는 이정표에는 숭의전 3.6km 남았다고 한다.

이후 3분 정도 더 진행하니 자연스럽게 자전거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길이 이어지고 이후 5분 후 2차로 도로(노아로)와 만난다. 청색의 평화누리 자전거길 이정표(평화누리 자전거길 숭의전지 3.10km→)가 세워져 있다.

 

길을 건너면 갈색의 평화누리 이정표(현위치: 구미리 숭의전 3.1km→ / ↓장남교 18.9km)와 청색의 평화누리 자전거길 이정표(평화누리 자전거길 장남교 18.90km↓)가 세워져 있다.

 

평화누리길 이정표 사진을 찍느라(굳이 사진을 찍지 않더라도 차가 다니는 2차로 도로에 좌측으로 자전거도로가 개설되어 있기 때문에 편안하게 자전거도로를 따라 가게 됐다) 길을 건넜다.

 

이후 자동차도로와 분리가 된 자전거도로를 따라 400m 진행하니 승마체험장이 나온다. 이곳이 분기점이다.

이곳에서 도로를 건너 산 쪽으로 진행을 했어야 했는데 그냥 자전거도로를 따라 진행을 했다. 이후 고개를 넘고 크리스탈 빌리지 입구를 지나 삼거리에 닿는데 그때서야 눈치를 채고(과외 받고 있다는)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하디흔한 표지기(리본) 한 장 못보고, 이정표도 못 봤다. 빽을 해서 다시 고개를 넘어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종점(숭의전)이 코앞인데….

결국 자전거도로를 따라 숭의전에 도착했다.

 

 

숭의전(崇義殿)

사적 제223호(1971.12.27 지정)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숭의전로 382-27(아미리 7번지)

 

숭의전은 조선시대에 전조(前朝)인 고려시대의 왕들과 공신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이곳은 원래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원찰이었던 앙암사(仰巖寺)가 있었던 곳으로 1397년(태조 6년)에 고려 태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건립한 것이 시초이다.

 

태조 때인 1397년 귀의군 왕우에게 이 지역의 봉토를 주고 머물면서 고려 태조의 묘를 세우도록 했다. 정종 때인 1399년 숭의전 건물을 짓고 고려 태조와 8왕(혜종·현종·원종·충렬왕·성종·경종·문종·공민왕)의 제사를 받들도록 했다. 그러나 세종 때인 1425년 예법에 제후는 5묘를 세워야 하는데 고려의 8위는 부당하다 하여 태조·현종·문종·원종 4위만을 받들도록 했다. 1451년 문종은 고려 현종의 후손이 공주에 사는 것을 찾아내 그에게 순례란 이름을 지어주고 3품관직과 토지·노비를 지급하여 제사를 받들도록 하고 숭의전이라 명명했다. 정전·후신청·전사청·남문·수복사 등이 있었으나 6·25전쟁 때 모두 소실되었다. 1973년 왕씨 후손이 정전을 복구했다.

 

◈고려조의 충신 16명: 복지겸, 홍유, 신승겸, 유금필, 배현경, 서희, 강감찬, 윤관, 김부식, 김취려, 조충, 김방경, 안우, 이방실, 김득배, 정몽주

 

[출처: 다음백과, 숭의전 팜플렛에서 발췌]

 

 



숭의전을 뒤로 하고 어디서 잘못됐는지 찾으러 go~, go~!



숭의전 구경을 마치고 어디서 잘못됐는지 확인 차 역종주를 시작했다.

숭의전에서 리본을 확인하고 좌측의 돌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숭의전 0.6km 이정표를 지나 커피 파는 곳 좌측의 철계단을 통해 산으로 올라가니 전망대가 나오는데 겨울철인데도 나무 가지에 가려 전망이 별로다. 계속되는 오름길에 나무계단이 깔려있어 편안하게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서니 임진강이 잘 보이기 시작한다.

 

이후 낙엽이 수북이 쌓인 편안한 능선길을 진행한다. 좌측 강가 쪽에 로프 난간도 설치되어 있다.

숭의전 0.9km 이정표를 지난다. 능선상에「산나물, 약초 채취금지」라고 쓴 안내판이 자주 나타난다.

 



분기점(이곳에서 부터 과외 받았다. 길 건너는 승마체험장)



숭의전 1.9km 이정표를 만난다.

다시 로프난간이 있는 곳을 지나 편안한 능선길을 진행하다 능선 정점을 만나고(숭의전에서 23분 소요), 이후 7분을 내려가니 송전탑과 사각정자를 만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조금 내려가니 「좌측으로 파이프를 밀어 통과 후 다시 우측으로 막고 통과하는(반대쪽은 반대방향)」 곳이 나오고, 조금 더 내려가면 2차로 도로(노아로)가 나온다(사각정자 쉼터에서 4분 걸린다).

 

이곳이 문제의 지역이다.

이정표(현위치: 구미리 / →숭의전 2.7km / ↓장남교 19.3km )가 세워져 있다. 또 다른 빛바랜 이정표(→전망대)가 바로 옆에 세워져 있다. 길 건너편이 승마체험장이다.

 

2.7km 과외수업의 종점이다.

이번 과외수업은 숭의전 3.1km 지점에서 2차로 도로를 진행할 때 위험하지 않고(갓길 이용), 편안한 길(따로 분리된 자전거길)을 따라 앞 만 보고 진행한 결과이다. 길(2차로 도로)을 건너지 말고 2차로도로 가장자리로 진행했어야 했다.

 

역종주 할 때는 길을 잃어버릴 수가 없는 곳이지만 순종주시에는 아차(길 건너 자전거길로 진행)하면 길을 놓치기 쉬운 지역이다.

 



경순왕릉


이후

평화누리길 안내도(팜플렛)에 나와 있는 10코스 콜택시 전화번호(031-835-0033)로 전화를 하니 통화중이어서 11코스 콜택시 전화번호(031-832-0044)로 하니 통화가 된다.

예기인즉 미산면 쪽은 호출을 하면 미터기를 출발지부터 찍고 가서 비싸니 백학 쪽을 이용하라는 것이었다.

 

할 수없이 다시 10코스 전화번호에다 다시 통화를 시도했는데 다행히 통화가 됐다. 들리는 수화음은 지금 손님을 태우고 멀리 나와 있어서 그쪽으로 가기 힘드니 버스를 이용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기사한테 물었다. 그럼 다른 택시는 없읍니까? 이곳은 택시 한 대 뿐이라고 한다.

 

허탈한 마음에 할 수 없이 버스를 타려고 이동을 해야 하는데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막막했다. 고개 쪽(숭의전 방향)으로 올라가려니 힘들고…, 해서 백학면 쪽으로 이동을 하다가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예전 정맥이나 지맥 종주할 때 하고는 이번이 처음이다.

 

다행히 첫 번째 차량이 도움을 주었다. 차주는 전원주택(크리스탈 빌리지)에서 일산으로 가는 중이었다고 한다. 비룡대교를 건너 37번 국도를 타고 가야 하는데 일부러 장남교 남단까지 이동을 해주곤 헤어졌다. 참으로 고마운 분이다.

 

장남교 남단에서 헤어진 후 장남교로 올라선 후 593m 거리의 장남교를 건너 10코스(고랑포길) 입구에 도착하여 차량을 회수한 후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차량으로 12분 정도 이동하여 신라의 여러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경주를 벗어나 있는 경순왕릉(敬順王陵. 사적 제244호)과 연천 고구려 3대성(호로고루, 당포성, 은대리성)의 하나인 호로고루(瓠蘆古壘. 사적 제467호)를 답사하고 귀가했다.

 

 

경순왕릉(敬順王陵)

사적 제244호(1975. 6. 25 지정)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산18-2번지

 

[요약]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에 있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제56대 경순왕의 무덤.

 

[내용]

사적 제244호. 지정면적 3,967㎡. 무덤봉분의 지름은 7m, 높이는 약 3m이다.

경순왕은 신라 제56대 왕으로 마지막 왕이다. 성은 김, 이름은 부(傅)로 신라 제46대 문성왕의 6대손이며 이찬 효종(孝宗)의 아들이다. 927년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사망한 후 왕이 되어 935년 왕건에게 나라를 물려줄 때까지 9년간 재위하였다.

 

경순왕이 왕위에 오를 당시에는 국가가 후백제, 고려, 통일 신라로 분열되어 있었고 후백제의 잦은 침공과 각 지방 호족들의 할거로 국가 기능이 마비되는 상태였다. 이에 경순왕은 무고한 백성들이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막고자 신하들과 큰아들 마의태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려에 귀부하였다. 이때 마의태자는 금강산으로 들어가고 막내아들 범공은 화엄사에 들어가 스님이 되었다. 귀부후 경순왕은 태자의 지위인 정승공에 봉해지는 한편 유화궁을 하사받고 경주를 식읍으로 받아 최초의 사심관으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태조 왕건(王建)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하여 여러 자녀를 두었으며 43년 후인 고려 경종 3년(978년) 세상을 떠났다.

 

능은 오랫동안 잊혀져오다 조선시대에 찾게 되었다고 하며, 신라의 왕릉 가운데 경주지역을 벗어나 경기도에 있는 유일한 신라왕릉이다.

 

무덤의 외형은 둥근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 밑둘레에는 판석(板石)을 이용하여 무덤보호를 위해 병풍처럼 돌렸고 능 주위로는 곡장(曲墻)이 돌려져 있다. 능 앞에 혼유석(魂遊石)이 놓여 있고 ‘新羅敬順王之陵(신라경순왕지릉)’이라고 새긴 묘비가 세워져 있는데, 뒷면에 있는 비문의 내용에 의하여 경순왕의 무덤임이 확인되었고, 1747년(영조 23)에 이 비를 세운 것을 알게 되었다.

 

능 앞에 있는 기타 석물로는 장명등(長明燈), 망주석(望柱石) 2개가 마련되어 있다. 신라왕릉의 경우 곡장이 마련된 것이 없으나,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왕릉에 비로소 곡장을 마련하고 있어 묘비에서와 같이 경순왕이 죽자 왕의 예로서 무덤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발췌]

 

 



호로고루



 

 

호로고루(瓠蘆古壘)

사적 제467호(2006.01.02 지정)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1257-1번지

 

호로고루는 개성과 서울을 연결하는 중요한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원당리에서 임진강으로 유입되는 지류가 흐르면서 형성된 약 28m 높이의 현무암 수직단애를 이루는 긴 삼각형 대지 위에 조성된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이다. 이곳은 조수간만의 영향을 받는 감조(感潮)구간의 상류에 위치하여 임진강 하류에서부터 배를 타지 않고 도하(渡河)할 수 있는 최초의 여울목에 위치한다. 평양지역에서 출발한 고구려군이 백제 수도인 한성(漢城)으로 진격하기 위한 최단코스는 평양에서 개성을 거쳐 문산 방면으로 직접 가는 것이 아니라, 동쪽으로 15㎞ 정도 우회하여 장단을 지나 호로고루 앞의 여울목을 건너 의정부방면으로 진격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호로고루가 있는 고랑포일대의 임진강은 『三國史記』에도 여러 차례의 전투기사가 등장할 정도로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지역이었다. 호로고루의 어원에 대해서는 이 부근의 지형이 표주박, 조롱박과 같이 생겼다하여 호로고루라고 불린다는 설과 "고을"을 뜻하는 '홀(호로)'와 '성'을 뜻하는 '구루'가 합쳐져 '호로고루'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더 자세한 설명은 연천군 문화관광 홈피 참조

연천군 문화관광 > 관광명소 > 문화유산․박물관 > 문화유산정보

tour.yeoncheo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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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244호] 신라 경순왕릉 (2018.03.06)

[사적 제467호] 연천 호로고루 (2018.03.06)

[평화누리길] 10 (고랑포길) 장남교[원당리]에서 숭의전지까지 (사진 1)

[평화누리길] 10 (고랑포길) 장남교[원당리]에서 숭의전지까지 (사진 2)

[평화누리길] 10 (고랑포길) 장남교[원당리]에서 숭의전지까지 (사진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