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서울·경기 여행

서해 최북단 백령도(白翎島) 2박3일 여행이야기-「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

약초2 2017. 5. 29. 00:23

서해 최북단 백령도(白翎島) 2박3일 여행이야기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

 

백령도 두무진에서


1.날짜: 2017년 4월 2일(일)~4일(화)

2.날씨: 사흘 내내 맑음

 

3.백령도에 대하여

(1)백령도 여객선 운항시간표(발췌한 곳: 옹진군청 홈피 > 내고장옹진 > 알림마당 > 여객선시간표)

2017년 4월 여객선 운항시간표

※ 본 시간표는 기상 조석 및 선사 사정에 의하여 운항시간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 항로 : 인천백령

운항선사

일 자(DATE)

선 명(SHIP NAME)

인 천 발(INCHEON)

기항지 출항시간(DESTINATION)

전화번호

비 고 (REMARK)

백령

대청

소청

고려고속훼리

4월 1~30

코리아킹

08:30

13:30

13:55

14:10

1577-2891

 

에이치해운

4월 1~11

하모니플라워

07:50

12:50

13:10

13:25

☏1644-4410

 

4월 14~31

하모니플라워 : 4월 12~13 휴항(주기관 정비 및 정기검사)

코리아킹 : 4월 24~25 휴항(선박 예방정비)

 

? 선사별 인터넷 주소

○ 에이치해운 : http://www.hferry.co.kr/

○ 고려고속, KS해운 : www.kefship.com

 

(2)백령도 일반 자료

◆백령도 인구(2015년 12월 31일 기준) : 5,499명(옹진군 인구: 21,143명 <세대수: 11,252>)

◆옹진군 관내 도서 : 113개 (유인도: 23개 / 무인도: 90개)

◆옹진군 행정구역 : 7개 면으로 구성(북도, 연평, 백령, 대청, 덕적, 자월, 영흥)

※우리나라에서 8번째로 넓은 섬 [최고점 : 업죽산 184m]

 

백령도(白翎島)는 대한민국 북서쪽, 옹진반도 서쪽에 있는 대한민국 관할의 섬이다. 행정구역 상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으로, 면적은 51.086 ㎢, 인구는 2015년 말 주민등록 기준으로 5천443 명, 2천999 가구이다.

 

대체로 대지상(臺地狀)의 산지를 이루며, 해식애(海蝕崖)가 장관을 이룬다. 주민은 반농반어(半農半漁)하는 사람이 많고, 중요 어업은 조기잡이이다. 예부터 중국 산둥 반도와의 교통 중개지로 중요하였고, 현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매우 가까운 곳에 있는 군사상 요충지이다.

 

이 섬은 본래 황해도에 속해 있었고, 주민들 다수가 이 섬 토박이이거나 황해도 육지 출신 실향민과 그 후손들이기 때문에 황해도의 향토문화(방언·음식 등)가 잘 보존되어 있다.

 

[역사]

고구려 때는 곡도(鵠島)라고 불렸고, 1018년(고려)에 백령진(白翎鎭)이었다. 1428년(조선)에 황해도 장연군에 속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한 후, 같은 해 9월 2일 한반도는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북쪽은 소련군이, 남쪽은 미군이 점령했다. 백령도는 대청도·소청도와 함께 38선 이남의 인근 옹진군에 편입되었고, 황해도 옹진군은 경기도 옹진군으로 재편되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3개월 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점령하였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에 따라 백령도와 대청도 · 소청도 및 연평도 등 서해5도는 대한민국에 남게 되었다. 1995년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었다.

 

[교통]

용기포선착장에서 인천항으로 가는 배편이 하루 2회 운항한다. 뱃길로 228Km이다.

 

[천연기념물]

점박이물범 (천연기념물 제331호)

옹진 백령도 사곶 사빈 (천연기념물 제391호)

옹진 백령도 남포리 콩돌해안 (천연기념물 제392호)

옹진 백령도 진촌리 감람암포획 현무암분포지 (천연기념물 제393호)

옹진 백령도 남포리 습곡구조 (천연기념물 제507호)

옹진 백령도 연화리 무궁화 (천연기념물 제521호)

 

(3)백령도 문화재

 

★ 점박이물범(천연기념물 제331호)

분류 : 자연유산 / 천연기념물 / 생물과학기념물 / 진귀성

지정(등록)일 : 1982.11.20

 

물범은 물범과에 속하며 그 중에서 가장 작은 동물로, 북태평양에서는 캘리포니아 알류산 해역과 캄차카 반도, 지시마, 북해도 및 혼슈 등지에 널리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백령도 근해에서 300여 마리까지 발견되고 있다.

 

몸길이 1.4m, 몸무게 90㎏까지 성장하며, 앞머리 부위가 둥글면서 높다. 귓바퀴는 아주 작고, 주둥이는 끝이 협소하면서 중앙에 골이 있고 목은 짧다. 앞다리는 앞으로, 뒷다리는 뒤로 향해 있어 방향을 바꿀 때 불편하기 때문에 바다와 민물에서 서식하고, 육지생활에는 매우 부적합하다. 몸 위쪽은 황갈색을 띠고 몸 옆과 등에는 크기와 모양이 불규칙한 검은 반점이 있다. 수컷의 배쪽은 황색을 띠면서 검은 점이 있고, 암컷의 몸 아랫부분은 회색이므로 구별이 가능하며, 새끼는 황색을 띠며 등은 어두운 회색이다. 북극권에 주로 서식하고, 새끼 1마리와 어미(암수)가 얼음 사이에서 생활하면서 명태, 청어, 대형 플랑크톤 등을 잡아먹는다.

 

물범은 멸종위기에 처해있을 뿐만 아니라, 포유류로서 물속에서 생활하는 진귀한 동물이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게 되었다.


[점박이물범에 대한 인터넷 기사]

■봄이면 찾아오는 점박이물범=점박이물범은 북태평양 온대 및 한대 해역에 주로 서식한다. 국내에서 발견되는 점박이물범은 1~3월 중국 랴오둥만의 유빙(遊氷) 위에서 새끼를 낳고, 봄부터 가을까지는 백령도와 황해도 연안, 가로림만 등에서 먹이활동을 하며 서식한다. 먹이활동을 하거나 이동할 때를 제외하고는 체온조절, 호흡, 체력회복 등을 위해 주기적으로 물 밖으로 나와 바위 등에서 휴식을 취한다.

점박이물범은 불법 포획, 지구 온난화에 따른 유빙의 감소, 연안개발에 따른 서식지 훼손 등으로 인해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1930년대 약 8000마리에서 현재 1000마리 수준으로 감소한 상황이다. 해수부는 2007년 점박이물범을 보호대상해양생물로 지정했다.

2018년 실시한 서식실태 조사에서 백령도 일대의 점박이물범은 316마리로 파악됐으며, 이중 85%는 물범바위에서 발견됐다. 가로림만에서도 11마리가 관찰됐다.

 

■10년 전 점박이물범 또 찾아왔다=10년 전 백령도에 왔던 점박이물범이 지난해 같은 곳을 또 찾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해양수산부는 점박이물범의 서식 실태를 조사한 결과, 2008년 인천 옹진군 백령도를 찾았던 점박이물범 3마리가 2018년에 다시 백령도를 찾아온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해수부 관계자는 “2008년 백령도에서 촬영된 점박이물범 249마리의 사진과 2018년 백령도에서 관찰된 점박이물범의 사진을 하나씩 대조해 3마리가 동일 개체임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해수부는 점박이물범의 몸에 있는 반점의 모양이 모든 개체별로 다르고, 사람의 지문처럼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 매년 촬영된 점박이물범의 반점 형태를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해 왔다.

 

점박이물범의 생태를 연구해온 해수부 고래연구센터 김현우 해양수산연구사는 “10년 전에 나타났던 점박이물범이 같은 장소에 또 나타났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라면서 “백령도가 점박이물범의 서식에 좋은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라고 말했다.

 

 

★ 백령도 사곶 사빈(천연 비행장) (천연기념물 391호)

천연기념물 제 391호로 지정된 사곶 해변은 전 세계에 2곳밖에 없는 천연비행장으로 나폴리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곳이다. 한때 군부대 비행장으로 사용하기도 했던 이곳은 고운 모래알맹이들이 넓이 300m, 길이 3Km의 넓은 백사장을 이루고 있어 피서지로서 세계최고를 자랑한다.

 

★ 백령도 남포리 콩돌해안 (천연기념물 392호)

백령도의 지형과 지질의 특생을 나타내고 있는 곳 중의 하나로 해변에 둥근 자갈들로 구성된 퇴적물이 단구상 미지형으로 발달한 해안이다. 콩돌해안은 백령도 남포동 오금포 남쪽해안을 따라 약 1Km정도 형성되어 있고 내륙 쪽으로는 군부대의 해안초소와 경계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다.

둥근 자갈들은 백령도의 모암인 규암이 파쇄 되어 해안의 파식작용에 의하여 마모를 거듭해 형성된 잔자갈들로 콩과 같이 작은 모양을 지니고 있어 콩돌이라 하고, 색상이 백색, 갈색, 회색, 적갈색, 청회색 등으로 형형색색을 이루고 있어 해안경관을 아름답게 하고 있다

콩알만한 크기의 작고 둥근 자갈들이 해안에 지천으로 깔린 화동의 콩돌해변은 그 돌을 밟는 것만으로도 신비한 경험이며 맑고 푸른 바다와 조화를 이룬 이색적인 해변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덕분에 자연 그대로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가족과 해수욕하기에는 그만이다.

 

★ 백령도 진촌리 감람암 포획현무암 분포지 (천연기념물 393호)

백령도 진촌리의 감람암 포획현무암 분포지는 백령면 진촌리에서 동쪽으로 1.3㎞ 정도 떨어진 해안에 있으며, 해안선을 따라 지름 5∼10㎝ 크기의 노란 감람암 덩어리가 들어있는 용암층이 만들어져 있다. 용암층은 두께가 10m 이상이며, 검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령도 진촌리의 감람암 포획현무암 분포지는 지구 속 수십 ㎞아래에서 만들어진 감람암이 용암이 분출할 때 함께 올라와 만들어진 것으로 지하 깊은 곳의 상태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 백령도 남포리 습곡구조 (천연기념물 제507호)

백령도 남포리 장촌해안의 단층 및 습곡구조는 장촌포구 서쪽해안 약 300m 지점인 용트림바위 바로 건너편 해안절벽에 있으며, 그 규모는 높이 약 50m, 길이 약80m 정도이다.

이 단층 및 습곡구조는 백령도 일대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선캄브리아기 백령층군의 장촌층이 동아시아 일대에 광범위하게 일어났던 고생대 말~중생대 초의 지각변동으로 형성되었다.

 

즉 지하 깊은 곳의 횡압력으로 변성 및 변형작용을 받아 습곡 및 단층이 이루어진 후, 지각이 풍화 및 침식되면서 서서히 융기되어 지금과 같은 지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선명하게 드러난 큰 규모의 단층 및 습곡구조는 매우 드문 일로서, 이들에 대한 학술적 연구는 한반도의 지각 발달사를 규명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의 형성에 관한 지구과학적 현상과 역할은 학생들의 현장학습과 일반인들의 자연체험 및 관광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 백령도 연화리 무궁화 (천연기념물 제521호)

백령도내 1930년대 건립된 중화동 교회 앞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형이 우수하고 높이가 6.3m로 현재 알려진 무궁화 중 가장 크며 꽃이 홍단심계로 순수 재래종의 원형을 보유하고 있다.

○ 현 황

- 높이 : 6.3m,

- 가슴높이 및 둘레(북쪽가지 0.69m, 남쪽가지 0.72m)

- 수관폭(동서 6.3m, 남북 6.3m),

- 근원둘레 1.23m,

- 수령 90~100년(추정)

 

★ 두무진 (명승 8호)

두무진은 백령도 북서쪽 약 4㎞에 걸친 해안선에 따라 오랜 세월동안 파도와 비바람에 깎여 만들어진 높이 50여m 내외의 규암절벽을 일컫는 이름이다. 두무진이라는 명칭은 ‘뾰족한 바위들이 많아 생김새가 머리털 같이 생겼다’하여 두모진(頭毛鎭)이라 칭하였다가 뒤에 ‘장군머리와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다’하여 두무진(頭武鎭)이라 개칭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두무진을 이루고 있는 암석들은 원생대 진현통(8억 5천만 년 전)에 속하는 백색-암회색 사암 또는 규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암은 분급이 매우 양호하고 층리가 잘 발달하여 있으며 곳에 따라 사층리가 발달하여 있다. 특히, 이 지역은 북서계절풍의 영향을 직접 받은 곳이어서 해식작용이 극렬하게 일어나며 높이 50m에 달하는 해식애(海蝕崖)가 연장 4㎞의 기암절벽을 이룬다. 그리고 선대암 남쪽 약 80m 지점에 있는 만입부의 파식대에는 밀물 때 바다물 거품이 작은 만입부에서 불어 오르는 돌개바람에 의해 하늘 높이 솟아올라 함박눈처럼 내리는 현상이 있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다.

 

★백령도 패총 (향토유적 2호)

백령면의 '진촌리패총'은 옹진군의 향토유적으로 지정된 선사시대의 유적이다. 백령면 사무소에서 동북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진촌리 해안의 구릉지대 밭뚝 아래 표고 10m지점 일대에 걸쳐 위치해 있다. 이 패총은 1958년 서울대학교 학술조사단에서 답사, 보고서를 통해 선사유적지임을 밝힌 곳이다. 패각하층부에서 채집된 타제각편석기편으로 볼 때 백령도에는 이미 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패각층은 굴·섭조개의 껍질로 이루어져 있다. 주변에 도기편, 토기편들이 산재해 있다.

 

(4)백령면 지명유래

 

◆ 흰새가 사랑을 이어주었다는 백령도

옛날 황해도 어느 마을에 글공부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한 선비가 살았다. 그는 사또의 어여쁜 딸을 사랑했고, 사또의 딸 역시 선비를 사모하고 있었다. 어느덧 장래를 약속하는 사이가 된 두 사람은 용기를 내어 사또에게 자신들의 사랑을 고백했고 혼인시켜 줄 것을 부탁했다. 선비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사또는 그에게 절대 자기 딸을 줄 수 없노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헤어지지 못하고 매일 남몰래 만났고, 이를 안 사또는 결국 딸을 외딴섬으로 귀양을 보내고 말았다. 한숨 속에 세월을 보내야만 했던 선비가 사또 딸의 행방을 백방으로 수소문 했으나 헛수고였다.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생각으로 시름시름 앓던 선비에게 어느날 백학이 꿈속에 나타나 흰 쪽지를 보여주며 "여기 쓰여져 있는데로 찾아가거라"고 말한 뒤 사라져 버렸다. 놀라 깨어보니 정말로 종이에는 주소가 적혀 있었다. 주소대로 장산곶에서 배를 타고 사또 딸이 있는 섬까지 온 선비는 그녀와 감격스런 재회를 했고, 어느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그곳에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훗날 사람들은 그 섬을 "백학이 알려 주었다"하여"백학도"라 하였고, 오늘날에는 흰백(白)과 날개 령(翎)을 써서 "백령도(白翎島)"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두 용이 싸우던 용기포

백령도의 용기포 뒤에 용기원산이 있다. 그 산 주위는 물살이 세고 전복, 소라, 해삼, 홍합 등 해조물이 많이 잡힌다고 한다. 옛날 용기포에 용이 한 마리 살았는데, 어느 날 저녁 무렵 그 곳 용과 바다 건너 장산곶 용이 대판 싸웠다고 한다. 두용이 백사장에서 싸우다가 그만 용기포 용의 귀가 짤려 나가고 말았다. 그 뒤로는 용기포 뒤에 있던 산을 짤린 용의 귀와 닮았다고 해서 「용귀온산」이라 하였는데 뒤에 용기원산으로 바뀌어졌다고 한다.

 

◆ 침 뱉은 재

옛날에 한 선비와 부인이 살고 있었다. 집안일에 무심한 선비는 밤낮 책에만 매달려서 살림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부인이 삯바느질을 하여 두 식구가 겨우 목구멍에 풀칠할 정도였다. 어느 해 가을 농사를 거둬들인 부인은 탈곡한 낟알을 멍석에 널어놓고 잠깐 집을 비웠는데 그 사이 장대 같은 소나기가 퍼부었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아무리 무심한 남편이라도 탈곡한 낟알을 거둬들였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부에만 몰두한 선비는 멍석의 곡식을 거두어들이지 않아 그만 모두 물에 떠내려가고 말았다. 소나기가 그친 후 집에 돌아온 부인은 이 사실을 알고는 남편에게 버럭 화를 냈고, 급기야는 집을 뛰쳐나가고 말았다. 몇 년간의 세월이 흘러 선비는 과거에 급제를 했고 이 소식을 들은 집나간 부인은 남편에게 찾아가 다시 함께 살자고 했다. 선비는 무정하게 부인을 대하다가 이내 부엌에서 물 한동이를 가져오게 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물을 쏟은 후 「만일 같이 살고 싶으면 쏟은 물을 다시 담으라」고 했다. 도저히 다시 담을 수 없는지라 부인은 울면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침이라도 뱉어 동이를 채워달라고 유언하며 그 자리에서 목숨을 끊었다. 그 뒤부터 그곳을 「침뱉는 재」라고 부르며, 사람들은 오갈 때마다 침을 뱉는다고 한다. 북포 2리(신화동)에서 북포 1리(당후동)를 가려면 작은 산고개가 있는데 그곳이 바로 「침뱉는 재」이다.

 

◆ 넘어 질수록 오래 사는 삼년고개

삼년고개는 백령도에서 꽤 험한 고개이다. 먼 옛날 백령도엔 높은 벼슬을 얻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한 가난한 선비가 살았다. 드디어 과거날이 다가왔고 시험을 치르러 가려면 이 고개를 지나야 했다. 그런데 그만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다. 그는 그 고개가 한 번 넘어지면 3년밖에 못산다는 「삼년고개」라는 사실을 깨닫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해야 할일은 많은데 앞으로 3년 밖에 못산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슬프고 기가 막혀 선비는 체면도 생각하지 않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 한참을 울어 울음조차 나오지 않자 선비는 멍하니 이런저런 생각을 했고, 갑자기 「옳거니!」하며 통쾌하게 무릎을 쳤다. 「한 번 넘어지면 3년을 산다하니 두 번 넘어지면 6년을 살 것 아닌가? 세 번 넘어지면 9년이니 여기서 여러 차례 넘어지면 오래 살 수 있겠구나!」 선비는 그 자리에서 넘어졌다 일어서기를 반복, 수명이 삼백년이 될 정도로 늘려놓았다. 그 후로 선비는 과거에 급제했고 오래오래 아주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 장군바위

진촌에서 용기포 가는 길 왼쪽(두새개안 뚝) 위쪽에 한 길반(2.5m) 정도의 큰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머리와 몸통이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사람 모양을 한 큰 바위로 마치 군졸을 호령하는 장수의 모습 같다 하여 이를 장군바위라고 부른다. 본래가 바다였던 이곳에 있던 이 바위는 육지에 더 이상 바닷물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호령을 하며 버티고 서 있다하고 바람이 몹시 불고 파도가 칠 때에는 윗부분인 머리가 파도에 못이겨 굴러 떨어지기도 한다. 이때는 목부분에서 피가 난다고들 하며 누구든지 먼저 본 사람이 머리 부분을 원위치에 올려 놓아야 한다. 이곳을 지날 적에는 사람들은 소에서 내리고 옷차림이나 걸음걸이도 조심해서 지나갔다고 한다.

 

어느 때인지 이곳을 지나가던 “맷돌쟁이”가 장군바위 머리 부분을 보니 맷돌이 적합할 것 같아서 기다렸다가 물이 빠져나간 후 들어가서 머리 부분을 자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한참 자르다보니 목 부분에서 피가 흘렀다. 맷돌쟁이는 깜짝 놀라 작업을 중지하고 공손히 무릎을 꿇고 몇 번이고 절을 하며 잘못을 사죄하고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도망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 두룡산

진촌 서쪽 월내도촌으로부터 서북쪽 잿등 높은 지대를 두룡산 또는 두룽산 등으로 부른다. 한자 그대로 용의 머리형이라는 뜻으로 백령진지 산천조에 기록되기를 “두룡산은 장연 장산곳에서 바다 밑으로 구불구불 비스듬이 들어 동쪽으로 와서 두룡산이 되었으니 작은 등성이다”라고 기록하고 동서남북 모든 산줄기의 기원이 이 두룡산이라 하며 백령도의 조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 비석거리

진촌 동쪽 적십자병원 앞쪽이 6.25전까지 큰길이었으며 이 길 옆에 옛날 백령진장인 첨사들의 선정비가 줄지어서 있었다. 또한 진촌 서쪽 월내도촌 등성이 길 옆에도 첨사들의 선정비가 줄지어서 있기 때문에 이곳을 비석거리라고 불렀다. 현재는 동서쪽 비석거리에 비석을 하나도 볼 수 없는데 1.4 후퇴 후에 이 비석들을 현충탑 앞으로 모두 옮겨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날 노인들은 아직까지 옛 그대로 이 지역을 “비석거리”라고 부르고 있어 옛날 많은 비석들이 줄지어 서 있던 지역임을 전해주고 있다.


◆ 살쿠지

사곶마을의 옛 지명으로 이곳은 원래가 모래땅 황무지였는데 살만한 곳을 찾아다니던 어느 사람이 이곳에 와서 살펴보니 해변으로 길게 뻗어나간 모래땅이기는 하지만 부지런히 노력하여 기름진 땅으로 만들면 살만한 곳이라 생각하고 이곳을 “살곳지”라고 부르다가 살쿠지로 부르게 되었다.


◆ 청년회뚝

1960년대 사곶청년들이 김병행 씨를 대표로 하여 솔개꼴쪽 갯벌을 막아 답 조성을 한 개동뚝이다. 이때 새마을 정신으로 밤낮을 모르고 등이 벗어지고 손끝이 달아져서 피가 나도록 일을 하여 이루어진 뚝이다.

 

◆ 박우물

망산 밑에 있는 우물인데 하루 종일 여러 집에서 길어 날러도 하룻밤만 자고나면 아침에는 물이 넘친다. 이 우물에 붉은 물이 생기면 콩과 팥이 잘되고 맑은 물이 고여 넘치면 벼가 잘된다고 한다.

 

◆ 약수터우물(양코물)

진촌으로 바로 넘어가는 길옆에 있는 우물이다. 차고 물맛이 좋아 약수라고 하였다. 휴전 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이 우물을 확장 정비하고 미군들이 사용하면서부터 이 우물을 “양코물”이라고 불렀다.

 

◆ 당산(당고사)

내4리에서는 당제를 정월 보름날 지냈다. 당제를 일주일 동안 지내는데 소를 잡고 지냈다. 소머리는 잘라서 당아래로 굴렸고 고기는 집집마다 나누어 주었다. 당은 큰당, 작은당이 있었으며 당집은 작은당에 있었다고 한다.

 

◆ 복타넘이골

신화동 윗골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금잔디가 많이 나와 들판이 있어 아이들의 놀이터로 좋다. 이 골짜기에서 복타네라는 사람이 살았다하여 복타네골이라고 한다. 산소를 잘써서 복을 탔다고 하여 복타네이다. 여기서 고려자기 주전자를 캤는데 중학교에 기증한 후 감정받으러 갔다가 없어졌다고 한다.

 

◆ 업죽산 3개 골짜기

업죽산이 4개 봉우리로 되어있는데 골짜기가 세 곳이다. 동편 골짜기는 절토골로서 아직도 집터가 남아있다. 가운데 골짜기는 사람이 살았는데 천도깨비가 나와 솥뚜껑을 똘똘 말아 넣어 못살고 나왔다고 한다. 서편 골짜기에는 등잔불형 묘지가 있었는데 옛날 지관이 경마를 잡혀 지나가면서 “말 조용히 몰아라 등잔불 꺼진다”라고 한 명당이 여기였다고 한다.

(출처 : 옹진군청 홈피[옹진군청 > 내고장옹진 > 일반현황 > 지명유래])

 

4.일정

(1)4월 2일(일)

인천연안여객터미널→백령도 용기포 신항→민박집(진촌3리<사곶>)→렌터카 이용→용기포(신항)→사곶해변→백령대교→콩돌해안→연봉바위→장촌포구→용트림바위→남포리 습곡구조→중화동포구→중화동교회→천안함위령탑→연화리 두무진→연꽃마을→진촌리 심청각→민박집

 

(2)4월 3일(월)

민박집→용기포항(구항)→용기포항(신항)→끝섬전망대→하늬해변→감람암포획현무암분포지→고봉포구(사자바위)→연꽃마을→사항포구→기상대→두무진(해상, 육지)→민박집

 

(3)4월 4일(화)

민박집→끝섬전망대→민박집→사곶천연비행장→끝섬전망대→용기포신항(렌터카 반납)→인천연안여객터미널→귀가

 

5.후기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백령도!

결국 우연한 기회로 찬스를 잡아서 백령도 2박3일 일정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서해의 해금강」으로 불릴 만큼 빼어난 경승지가 많은 백령도이지만 북한 땅(황해도 장연군)과 마주 보고 있고, 잊어버릴 만하면 무력 도발을 일삼는 북한 때문에 가고 싶어도 쉽게 가고 싶은 곳은 아니다. 비용이나 시간 역시 만만치가 않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꼭 가봐야 할 곳이라 큰 맘 먹고 옹진섬 나들이 지원사업(6.특기사항 (1) 옹진섬 나들이 지원사업 안내 참조)으로 배 삯이 절반일 때 다녀왔다.

 

백령도 여행은 보통 1박2일을 선호하는데 그럴 경우 백령도의 구석구석을 볼 수가 없고 이름난 관광지만 찾게 된다. 그래서 2박3일 일정으로 다녀왔는데 결론은 시간적 여유가 많아서 좋았다. 아쉬웠던 점은 6월 이후에(점박이 물범을 구경하려면) 물때시간을(진촌리 감람암 포획현무암 분포지) 확인하고 갔으면 놓친 두 군데 까지 완벽하게 볼 수가 있었을 것이다.

 

4월 2일(일) 백령도 여행 첫 날

새벽4시 30분에 일어나서 승용차로 5시경에 출발하여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는 밖으로 나와 인근 식당에서 뼈해장국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이후 (주)에이치해운의 하모니플라워호를 타고 07시 50분에 출발했다.

 

하모니플라워호에 승선하기 전에 여객터미널 개찰구를 빠져나오면 정박해 있는 배가 3군데나 있어서 순간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다른 곳에서 승선할 뻔 했다. 백령도와 하모니플라워호를 꼭 확인하고 승선해야 한다.

 

정시에 출발한 하모니플라워호는 소청도, 대청도을 거쳐 3시간 40분 정도 걸려 백령도 용기포 신항에 도착했다.(11시 30분 경)

용기포항에서 해뜨는민박집 여주인과 만나 민박장소인 사곶에 도착하여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이제 백령도 일정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민박집 주인이 렌터카 사장을 소개해줘서 모닝차를 이틀 일정으로 십만원에 대여했다. 렌터카 사장과 용기포항으로 이동한 후 렌터카 사장과 작별하고는 본격적인 백령도 여행을 시작했다.

 

일단은 민박집을 알아야 하기에 용기포항에서 사곶에 위치한 민박집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민박집 부근의 골목을 세 바퀴씩이나 돌아도 도저히 민박집을 찾을 수가 없고, 배도 고프고 해서 인근의 식당으로 가서 칼국수(6,000원)로 점심을 해결했다.

점심을 먹고 다시 민박집을 찾기 시작했는데 이외로 쉽게 찾았다.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을 세 번씩으로 빙빙 돌았으니 헛웃음이 나온다.

 

(백령도는 우리나라에서 8번째 큰 섬이어서 마냥 도보로 다닐 수 없다. 백령도에 도착하면 보통 단체로 여행하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다니지만 개별여행인 경우는 렌트를 해야 한다.

렌트비는 모닝과 마티즈가 6만원, 아반떼 7만원, 스포티지와 투싼 9만원, 12인승 스타렉스는 12만원이다.

1박2일 기준 기름값은 2만원이면 충분하고(주유소가 2군데 있고, 가격은 서울보다 리터당 1,000정도 더 비싸다) 인터넷에서 백령도 렌트카를(5군데 있다) 치면 다 나온다.

 

백령도에는 식당만 100여 곳이 넘어 맛 집이 제법 있다.

예전부터 메밀 농사가 많은 탓에 돼지뼈로 국물을 낸 황해도식 냉면집이 그 맛을 잇고 있다. 그 중에서 1988년에 문을 연 사곶냉면(032-836-0599)이 유명하다. 물냉 ․ 비냉 6000원, 수육 한 접시 8000원이다.)

 

이제 민박집에서 다시 출발함으로써 본격적인 백령도 여행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근처의 사곶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렌터카에 해변으로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적혀 있어서 사곶해변 입구에 주차를 하고는 사곶해변을 구경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다르게 크게 실망했다. 예전에 신안 비금도에서 택시타고 해변을 가로 질러 간적이 있었는데(신안 비금도 명사십리해수욕장은 원평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데 총 4.1Km에 달하고 친환경에너지인 풍력발전기와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차량이 해변에 진입해서 주행한다.) 이곳 사곶해변은 천연비행장이라고 하는데 입구가 모래사장으로 되어 있어서 차량이 진입을 과연 할 수가 있나 의심스러웠다. 시기가 물이 빠질 때가 아니어서 그런가? 하며 실망하고는 이내 되짚어 나왔다.

 

★ 백령도 사곶 사빈(천연 비행장) (천연기념물 391호)

 

사곶해변은 나폴리해변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단 두 곳뿐인 천연 비행장이다.

규조토로 이루어진 3㎞의 백사장이 워낙 단단해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달려도 바퀴가 빠지지 않고 비행기의 이착륙이 가능할 정도여서 실제로 한국전쟁 때 유엔군이 비행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백령도 사곶사빈(천연 비행장)은 천연기념물 391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빈(沙濱) : 파랑 등의 작용으로 바닷가에 모래가 쌓여 이루어진 해안지형.

 

사곶해변에서 실망한 체 백령대교를 건너는데 「서해최북단백령도」라고 써진 표지석이 눈에 띄어 잠시 담수호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한 후 백령대교를 건너니 「사진찍기 좋은 녹색명소」라고 써진 표지판이 보인다. 주변 해안이 멋지다. 또한「05 오색콩돌길」이라고 써진 표지판도 보이는데 백령도 둘레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이다.

 

백령 흰나래길의 코스(이야기가 있는 백령 흰나래길 문화생태탐방로)

 

1코스 용기포맞이길(총거리 2.7km / 소요시간 1시간 00분)

2코스 점박이물범길(총거리 3.1km / 소요시간 1시간 15분)

3코스 심청마을길(총거리 7.8km / 소요시간 2시간 40분)

4코스 은빛사곶길(총거리 3.3km / 소요시간 1시간 10분)

5코스 오색콩돌길(총거리 7.3km / 소요시간 2시간 40분)

6코스 용트림바위길(총거리 3.0km / 소요시간 1시간 00분)

7코스 중화포구길(총거리 5.1km / 소요시간 1시간 00분)

8코스 백령수호길(총거리 6.4km / 소요시간 2시간 20분)

9코스 두무비경길(총거리 1.5km / 소요시간 30분)

    


백령도 지도

 

이내 나오는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진행하여 올라간 고갯마루에도 「사진찍기 좋은 녹색명소」라고 써진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혹시나 조망이 좋을까 싶어 잠시 차를 세우고 숲길로 들어섰는데 나무에 가려 조망이 별로다. 그러나 숲길은 부드럽게 이어지고 처음 백령대교 입구의 표지판이 있는 곳으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

숲길에서 되짚어 돌아 나와 조금 진행하니 길가에 주차된 차량들이 제법 보인다. 이곳이 콩돌해안 입구이다.

 

★ 백령도 남포리 콩돌해안 (천연기념물 392호)

 

백령도의 지형과 지질의 특생을 나타내고 있는 곳 중의 하나로 해변에 둥근 자갈들로 구성된 퇴적물이 단구상 미지형으로 발달한 해안이다. 콩돌해안은 백령도 남포동 오금포 남쪽해안을 따라 약 1Km정도 형성되어 있고 내륙 쪽으로는 군부대의 해안초소와 경계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다.

둥근 자갈들은 백령도의 모암인 규암이 파쇄 되어 해안의 파식작용에 의하여 마모를 거듭해 형성된 잔자갈들로 콩과 같이 작은 모양을 지니고 있어 콩돌이라 하고, 색상이 백색, 갈색, 회색, 적갈색, 청회색 등으로 형형색색을 이루고 있어 해안경관을 아름답게 하고 있다

콩알만한 크기의 작고 둥근 자갈들이 해안에 지천으로 깔린 화동의 콩돌해변은 그 돌을 밟는 것만으로도 신비한 경험이며 맑고 푸른 바다와 조화를 이룬 이색적인 해변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덕분에 자연 그대로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가족과 해수욕하기에는 그만이다.

 

입구 쪽은 크기가 아주 작은 콩돌이고, 내려 갈수록(바다 쪽) 콩돌은(아주 둥글지는 않고 납작하다) 조금씩 커지고 색상 또한 아주 다양한 모습에 감탄을 한다. 시간도 많이 있고 해서 여유있게 콩돌해안을 즐겼다.

 

콩돌해안에서 오군포구를 지나고 연봉바위 해안을 지나면 장촌포구에 닿는데 이곳이 천연기념물 제507호로 지정된 남포리 습곡구조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습곡구조 뿐 아니라 조망데크가 세워져 있는 곳에서 멋진 바위인 용트림바위도 볼 수가 있다.

 

★ 백령도 남포리 습곡구조 (천연기념물 제507호)

 

백령도 남포리 장촌해안의 단층 및 습곡구조는 장촌포구 서쪽해안 약 300m 지점인 용트림바위 바로 건너편 해안절벽에 있으며, 그 규모는 높이 약 50m, 길이 약80m 정도이다.

이 단층 및 습곡구조는 백령도 일대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선캄브리아기 백령층군의 장촌층이 동아시아 일대에 광범위하게 일어났던 고생대 말~중생대 초의 지각변동으로 형성되었다.

 

즉 지하 깊은 곳의 횡압력으로 변성 및 변형작용을 받아 습곡 및 단층이 이루어진 후, 지각이 풍화 및 침식되면서 서서히 융기되어 지금과 같은 지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선명하게 드러난 큰 규모의 단층 및 습곡구조는 매우 드문 일로서, 이들에 대한 학술적 연구는 한반도의 지각 발달사를 규명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의 형성에 관한 지구과학적 현상과 역할은 학생들의 현장학습과 일반인들의 자연체험 및 관광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용트림바위는 개인적으로 생각해보면 토끼 모습 같다.

이곳에 널찍한 주차장과 데크가 설치되어 있어서 꼭대기까지 올라가봤는데 바람이 세게 불어서 이내 내려왔다.

 

남포리 습곡구조를 뒤로 하고 중화동포구 가기 전 저수지 가는 길로 비포장도로가 나오는데 길이 막혀서 되돌아 나와 중화동포구로 향했다.

 

이곳에 121년 역사의 중화동교회가 있다. 수령 150년 된 팽나무 옆에 놓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계단 끝 부분에 천연기념물 제521호인 국내에서 가장 큰 무궁화가 있고 이내 교회 건물이다.


백령도 중화동교회

 

중화동 교회는 서울의 새문안교회 다음으로 1898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두 번째 장로교회다.

설립연도는 1896년(2016.11.20일 세운 한국 기독교 복음 전래 선구지 기념비에 적힌 연도 / 1898년 : 교회 앞에 세워진 표지판에 써진 설립연도) 당상관(堂上官) 허득이 한문서당에서 성경을 가르친 것이 교회설립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선교사가 아닌 주민들이 스스로 교회를 설립한 것은 국내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소래교회에 있었던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가 중화동교회 초대 당회장을 맡았다. 주민들이 먼저 설립예배를 한 뒤 선교사인 언더우드가 초대 당회장으로 왔다는 점에서 주민들이 직접 세운 자생교회로 불린다.

중화동교회는 서해 도서지역 선교의 뿌리라는 종교사적 의미가 커 교회 옆에는 1800년대 국내 선교의 역사를 담은 기독교 역사관이 있는데, 매달 수백 명의 관광객이 이 역사관을 찾는다.

 

우리나라에서 8번 째 큰 섬인 백령도에는 현재 군인을 포함 해 5천여 명이 거주하고 있고, 10개 민간 교회와 2개 군인교회 등 12개 교회가 있는데 100년의 역사가 넘는 교회가 4곳이나 된다.

독일 출신의 귀츨라프 선교사는 1832년 백령도를 거쳐 충청도 지방에 복음을 전했고, 1866년 대동강변에서 순교한 영국 출신의 토마스 선교사는 백령도에서 먼저 성경을 배포했다.

백령도의 모교회 격인 중화동교회는 자생적 신앙공동체이자 국내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장로교회로 121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수령이 백년이 넘은 무궁화나무와 주민들과 애환을 함께 했을 녹슨 종, 초대 당회장 언더우드 선교사 기념비가 유서 깊은 교회임을 말해주고 있다.

예배당 옆 백령 기독역사관에는 초창기 백령도 복음 전파 과정을 엿볼 수 있는 볼거리들이 전시되어 있다.

 

★ 백령도 연화리 무궁화 (천연기념물 제521호)

 

백령도내 1930년대 건립된 중화동 교회 앞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형이 우수하고 높이가 6.3m로 현재 알려진 무궁화 중 가장 크며 꽃이 홍단심계로 순수 재래종의 원형을 보유하고 있다.

○ 현 황

- 높이 : 6.3m,

- 가슴높이 및 둘레(북쪽가지 0.69m, 남쪽가지 0.72m)

- 수관폭(동서 6.3m, 남북 6.3m),

- 근원둘레 1.23m,

- 수령 90~100년(추정)

 


중화동교회와 무궁화나무를 본 후 천안함위령탑으로 향했다.

 

중화동포구에서 제법 거리가 있는 천안함위령탑이 있는 곳까지 이정표가 잘되어 있어서 쉽게 찾아 갈 수 있었다.

 

천안함위령탑은 2010년 북한에 의해 천안함 피격으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천안함 승조원 46용사의 희생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공간으로 안보관광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제법 넓은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위령탑으로 향한다. 주차장에는 40밀리 함포를 비롯하여 몇 가지 화기가 전시되어 있다. 언덕 오름길이 조금은 힘이 든다.

 

높이 8.7m의 기둥 세 개가 서로 받치고 있는 형태(항상 서해바다를 응시하며 우리 영해, 우리 영토, 우리 국민을 언제나 굳건히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냄)의 위령탑 하부 중앙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는데 이는 365일 서해바다를 항상 밝히도록 함으로써 우리 NLL을 사수하겠다는 46용사들의 해양수호 정신을 표현했다고 한다.

조망이 무척 좋다.

 

천안함 46용사 위령탑

 

2010년 3월 26일 21시 22분, 백령도 서남방 2.5km 해역에서 경비작전을 수행하던 우리 해군의 천안함(PCC-772)은 수중에서 발생한 폭발로 함수와 함미로 절단되어 침몰하였다. 104명의 승조원 중 58명은 구조되었으나 46명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우리 군은 즉각적인 초동조치를 취하면서 미해군과 민간인, 관계기관 등의 지원과 협조로 거친 물살과 한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해상에서 5월 20일까지 탐색 및 구조작전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온 국민들의 염원을 뒤로한 채 46용사는 끝내 주검으로, 장렬한 산화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천안함 피격사건의 원인을 찾기 위해 민 ․ 군 합동조사단과 미국, 호주, 영국, 스웨덴 4개국에서 파견된 전문가들은 과학적이고 주도면밀한 조사와 검증작업을 펼쳤다. 5월 15일, 민간 어선이 천안함 침몰해역에서 결정적 증거물인 북한제 어뢰 추진체를 수거함으로써 천안함 침몰이 「북한제 감응어뢰」의 수중폭발에 의해 일어난 것을 확인하였다. 이로써 천인공노할 북한의 잔악하고 호전적인 도발 작태는 만천하에 드러났다.

 

우리 군은 북한의 만행을 기억하고, 천안함 46용사들의 숭고한 희생과 그들의 고귀한 정신을 후세에 귀감으로 삼고자 천안함 피격사건 현장이 바라다 보이는 이곳에 위령탑을 세웠다.(천안함 46용사 위령탑 안내 동판에 세워진 내용 발췌)

 

잠시 숙연해진 마음을 바로 잡고 이제 백령도의 하이라이트인 두무진으로 향했다.

 

백령도 북서쪽 끝으로 가면 두무진이다. 머리카락처럼 뾰족한 바위가 많아 예전에는 '두모진(頭毛鎭)'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후 바위의 형상이 마치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하는 것 같다 하여 '두무진(頭武津)'이라 바뀌었단다. 해안가와 절벽 위 능선 사이로 형제바위, 부엉이바위, 코끼리바위, 장군바위, 신선대 등 그 형태에 빗대어 이름 붙인 만상의 기암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절벽 틈에는 기댈 곳을 찾은 나무와 풀들이 자라고 있다. 하늘과 바다 사이, 깎아지른 절벽에 녹색 물감을 흩뿌린 듯한 두무진 풍경이 그림처럼 눈에 담긴다. 해안가에는 까만 가마우지가 날개를 펼치고 일광욕을 즐기는가 하면, 해수면에는 천연기념물 제331호인 점박이물범이 가끔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점박이물범은 6월 이후에 등장한다고 함. 시기가 일러 아쉽게 구경을 못했다)

 

절벽의 단면을 살펴보면 층층이 여러 겹을 이루고 있다. 오랜 시간 퇴적 작용으로 형성된 후 굳어진 것이다. 이것이 지각 변동으로 땅 위에 솟았고, 빙하기가 끝나면서 침식과 풍화를 거쳐 지금 같은 모습을 하게 되었다.

 

두무진 유람선을 타려고 문의해보았지만 오늘은 운행하지 않는다고 하고 내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 3시 이후에 전화를 달라는 소리 만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육로로 두무진을 구경했다.

횟집 몇 군데를 지나니 데크길이 나오고 바위 사이로 난 멋진 길을 통과한다.

「統一로가는길」이라고 써진 표지석을 지나니 철도침묵계단이 나온다. 입구에 「백령도 두무진(명승 제8호) ↑500m」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조금 올라가면 우측으로 용 그림의 멋진 통일기원비가 서해바다를 배경으로 멋지게 세워져 있고 정면에는 두무비경길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정표의 표시대로 가장 먼저 전망대를 보고는 데크길을 따라 해안으로 내려갔다.

해안에 내려가서 두무진의 멋진 바위들을 보는데 감탄사가 연발 나온다.

이래서 신이 빚은 작품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떠올랐다. 고려의 충신 이대기가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 표현했을 정도로 절경이다.

 

사진 찍을 곳도 많아서 이곳저곳 바삐 돌아다니며 핸드폰사진 찍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선대암 부근에서 제법 많은 시간을 보내고 다른 곳을 보려고 계단을 올라갔다. 오늘 많은 일정을 소화해서 그런지 다리도 제법 아프다. 그래도 백령도에서 가장 멋진 두무진 구석구석을 놓칠 수가 없어서 이제는 다른 쪽 계단을 통해 해안으로 내려가는데 해가 역광으로 눈이 부시다. 형제바위가 시야에 들어왔는데 역광이라 아쉬웠다.

그래서 형제바위는 내일 보기로 하고 이제 두무진과 작별하고 민박집으로 향했다.


★ 두무진 (명승 8호)

 

두무진은 백령도 북서쪽 약 4㎞에 걸친 해안선에 따라 오랜 세월동안 파도와 비바람에 깎여 만들어진 높이 50여m 내외의 규암절벽을 일컫는 이름이다. 두무진이라는 명칭은 ‘뾰족한 바위들이 많아 생김새가 머리털 같이 생겼다’하여 두모진(頭毛鎭)이라 칭하였다가 뒤에 ‘장군머리와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다’하여 두무진(頭武鎭)이라 개칭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두무진을 이루고 있는 암석들은 원생대 진현통(8억 5천만 년 전)에 속하는 백색-암회색 사암 또는 규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암은 분급이 매우 양호하고 층리가 잘 발달하여 있으며 곳에 따라 사층리가 발달하여 있다. 특히, 이 지역은 북서계절풍의 영향을 직접 받은 곳이어서 해식작용이 극렬하게 일어나며 높이 50m에 달하는 해식애(海蝕崖)가 연장 4㎞의 기암절벽을 이룬다. 그리고 선대암 남쪽 약 80m 지점에 있는 만입부의 파식대에는 밀물 때 바다물 거품이 작은 만입부에서 불어 오르는 돌개바람에 의해 하늘 높이 솟아올라 함박눈처럼 내리는 현상이 있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다.

 

★ 점박이물범(천연기념물 제331호)

 

분류 : 자연유산 / 천연기념물 / 생물과학기념물 / 진귀성

지정(등록)일 : 1982.11.20

 

물범은 물범과에 속하며 그 중에서 가장 작은 동물로, 북태평양에서는 캘리포니아 알류산 해역과 캄차카 반도, 지시마, 북해도 및 혼슈 등지에 널리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백령도 근해에서 300여 마리까지 발견되고 있다.

 

몸길이 1.4m, 몸무게 90㎏까지 성장하며, 앞머리 부위가 둥글면서 높다. 귓바퀴는 아주 작고, 주둥이는 끝이 협소하면서 중앙에 골이 있고 목은 짧다. 앞다리는 앞으로, 뒷다리는 뒤로 향해 있어 방향을 바꿀 때 불편하기 때문에 바다와 민물에서 서식하고, 육지생활에는 매우 부적합하다. 몸 위쪽은 황갈색을 띠고 몸 옆과 등에는 크기와 모양이 불규칙한 검은 반점이 있다. 수컷의 배쪽은 황색을 띠면서 검은 점이 있고, 암컷의 몸 아랫부분은 회색이므로 구별이 가능하며, 새끼는 황색을 띠며 등은 어두운 회색이다. 북극권에 주로 서식하고, 새끼 1마리와 어미(암수)가 얼음 사이에서 생활하면서 명태, 청어, 대형 플랑크톤 등을 잡아먹는다.

 

물범은 멸종위기에 처해있을 뿐만 아니라, 포유류로서 물속에서 생활하는 진귀한 동물이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게 되었다.

 

민박집으로 가는 길에 관창길을 경유했는데 연꽃마을을 지나 진촌리 심청각에 들렸다.

 

백령도는 《심청전》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심청이 거동 봐라. 샛별 같은 눈을 감고, 치맛자락 무릅쓰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뱃전으로 우루루루루루, 만경창파 갈매기 격으로 떴다 물에 가 풍, 빠져노니···." 판소리 《심청가》 중에서 심청이 인당수에 뛰어드는 대목이다. 백령도 북동쪽, 심청이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전해지는 인당수가 보이는 곳에 심청각이 있다. 이곳에서 보이는 바다는 북쪽으로 시원한 전망을 자랑한다.

 

심청전의 배경무대인 백령도를 알리기 위해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와 연봉바위가(연봉바위 위치는 지도에는 남쪽에 표기되어 있다. 심청각의 위치는 북쪽이고) 바라다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관련 판소리, 영화, 고서 등을 전시하고 있다.

 

2층으로 된 멋진 누각인데 시간이 늦어서 내부는 구경하지 못했다. 이곳도 조망이 훌륭하다. 바다건너(이곳 바다가 인당수라고 함) 북한 땅 장산곶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고, 탱크도 전시되어 있다. 당연히 효녀심청상도 세워져 있다.

 

심청각을 마지막으로 보고 이제 민박집으로 가던 도중 진촌리 함바식당에서 가정식백반으로 저녁을 먹고 민박집으로 귀가하여 백령도 첫 날 일정을 모두 마쳤다.

 

4월 3일(월) 백령도 여행 둘째 날

아침 8시에 일어나서 민박집 아주머니가 대접한 아침식사를 주인 아주머니와 함께 먹고 둘째 날 일정에 들어갔다.

 

어제는 동선을 왼쪽으로 돌았는데 오늘은 오른쪽으로 돌기로 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용기포항(신항)으로 향했다.

용기포(신항)항에는 당연히 여객터미널이 있고,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마스코트인 물범 3마리(2014 인천아시안게임의 마스코트는 ‘비추온’, ‘바라메’, ‘추므로’라는 이름의 물범 3남매로 인천 백령도에 서식하는 천연기념물인 점박이물범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인천의 세 수호신이 백령도에서 살고 있던 물범 3남매에게 자신들의 능력과 힘을 전수하여 인천아시안게임을 널리 알리고 성공될 수 있도록 지키는 수호 마스코트로 변신시켰다는 것. 가장 덩치가 큰 노란색 물범 ‘비추온’은 3남매 중 첫째로 빛을 발하는 능력으로 온 세상에 희망을 비추는 빛의 전령사다. 둘째인 파란색 물범 ‘바라메’는 순간적으로 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재능을 갖고 있으며, 유일한 여자인 막내 ‘추므로’는 흥겨움을 돋우는 환희의 능력으로 인천아시안게임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한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인천 아시안게임 마스코트


서해 최북단 섬 백령도라고 써진 표지석과 효녀 심청이 점박이물범과 함께 대리석으로 만든 조형물이 있다. 그밖에 백령 흰나래길의 9개 코스(이야기가 있는 백령 흰나래길 문화생태탐방로)가 적힌 표지판도 세워져 있다.

용기포항에 내리면 가장 먼저 반기는 백령도 대형 간판(모델 이용식)과 백령면 관광안내도도 세워져 있다.

 

용기포신항에서 구항으로 향했다. 구항에는 오래된 용기포등대가 설치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멋진 해식동굴이 있는 곳이다.

 

해식동굴 가는 길은 두 곳이 있는데 기포공중화장실 옆에 설치된 계단데크길과 백령로 16-1(신주소)과 백령로 18(신주소)사이의 골목으로 가는 길이 있다. 아쉽게도 해식동굴 가는 길의 이정표는 없어서 잠시 초입을 찾느라 당황했었다.

 

용기포구항에서 해식동굴까지는 그리 멀지 않고 무엇보다도 주변 경관이 너무나 멋지다. 이곳에서 한참이나 머물렀다. 또한 차량으로 등대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는데 길이 좁다. 등대 앞 공터에 주차를 시킨 후 걸어서 올라가면 폐허된 군 시설물이 나오고 조금 더 올라가면 등대가 나오는데 사용 안한지 오래된 것 같다. 조망도 별로고 주변볼거리도 없어서 이내 내려왔다.

 

이제 구항에서 끝섬전망대로 향했다.

그런데 「헉! 월요일이라 휴관이다.」

 

백령 국토 끝 섬 전망대 시설안내

개관일 : 2013. 6.5

시설개요 : 2층(392.39㎡) 규모 전망시설

이용시간 : 오전 09:00 ~ 오후 06:00 (근무시간: 평일[09:00~17:00] / 주말[09:00~18:00] / 점심시간: 12:00~13:00)

입장 : 관람종료 30분 전까지

휴관일 : 매주 월요일 / 공휴일 다음날

이용시 주의사항

-전경외 군사시설 사진촬영 금지

-옥외 화장실 이용(시설내 화장실 없음)

-애완견, 음식물 반입 금지

-전망대 내 금연, 금주

 

끝섬전망대에서 바라 본 용기포 신항이 멋지다. 잠시 주변 경치를 보다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하늬해변이 나온다. 잠시 해변으로 내려갈까 생각해봤는데 해안에 철조망이 쳐져 있어서 해안으로 내려가는 것을 포기하고 계속 북쪽 방향으로 진행했다.

우측의 해안과 나란히 진행하는데 해안은 철조망이 쳐져 있고 군 초소도 설치되어 있어서 이곳이 정말 북한과 접경지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 날 남쪽을 구경할 때는 철조망이 없었다.

이내 점박이 물범길 표지판이 나오고, 옹진 백령도 진촌리 감람암 포획현무암분포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그러니까 이곳 해변이 감람암 포획현무암을 볼 수 있는 곳인데 아쉽게도 철문이 잠겨져 있고, 물도 많이 차 있는 상태이다.

진촌리 패총, 점박이물범 표지판도 세워져 있다.

 

★ 백령도 진촌리 감람암 포획현무암 분포지 (천연기념물 393호)

 

백령도 진촌리의 감람암 포획현무암 분포지는 백령면 진촌리에서 동쪽으로 1.3㎞ 정도 떨어진 해안에 있으며, 해안선을 따라 지름 5∼10㎝ 크기의 노란 감람암 덩어리가 들어있는 용암층이 만들어져 있다. 용암층은 두께가 10m 이상이며, 검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령도 진촌리의 감람암 포획현무암 분포지는 지구 속 수십 ㎞아래에서 만들어진 감람암이 용암이 분출할 때 함께 올라와 만들어진 것으로 지하 깊은 곳의 상태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백령도 패총 (향토유적 2호)

 

백령면의 '진촌리패총'은 옹진군의 향토유적으로 지정된 선사시대의 유적이다. 백령면 사무소에서 동북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진촌리 해안의 구릉지대 밭뚝 아래 표고 10m지점 일대에 걸쳐 위치해 있다. 이 패총은 1958년 서울대학교 학술조사단에서 답사, 보고서를 통해 선사유적지임을 밝힌 곳이다. 패각하층부에서 채집된 타제각편석기편으로 볼 때 백령도에는 이미 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패각층은 굴·섭조개의 껍질로 이루어져 있다. 주변에 도기편, 토기편들이 산재해 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심청각 앞길을 지나 고봉포구에 도착했다. 고봉포구에는 포효하는 모습의 사자바위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글쓴이의 입장은 사자바위 모습 같지 않았다.

 

사자바위가 있는 고봉포구를 지나 어릿골해안 가기 전 중간지점에서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철책 안쪽으로 그야말로 수천, 수만 마리의 갈매기가 때지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갈매기가 이곳에만 모여 있는 것이다.

 

희한한 광경을 보고는 조금 더 진행하니 연꽃마을이 나온다. 어제는 그냥 지나갔지만 오늘은 주차를 시킨 후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백령 심청 테마파크」라고 써진 대형 간판이 세워져 있다.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려고 하는 순간이 그려져 있다.

연꽃마을 내부에는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려고 하는 순간의 대형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연꽃마을 답게 연꽃들이 많이 식재되어 있다. 연꽃이 필 때면 멋질 것 같다.

 

연꽃마을에서 이제 사항포구를 거쳐 다시 두무진으로 향한다. 오늘 유람선을 탈 수 있다고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백령도에 오게 된 동기도 두무진 유람선을 타고 두무진의 비경을 보기 위해서이다.

두무진 가기 전 기상대도 올라가 보았다. 내부는 관람불가여서 기상대에서 주변경관만 구경하고는(하늘이 깨끗하지 않고 뿌옇지만 대청도의 삼각산이 뾰족하게 보였다) 이내 두무진 유람선 선착장에 도착하니 유람선은 출항 직전이었다. 매표도 하지 않은체 급하게 유람선에 올라탔다.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또 다른 2사람이 급하게 뛰어와 유람선에 합류해서 유람선을 출항을 했다.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리는 두무진은 선상관광이 압권이다.

 

연화리 두무진포구에서 타는 유람선은 예약제로 비정기적으로 운항하기 때문에 개인인 경우 단체와 배를 같이 타 사전에 시간을 체크(032-836-8088)해야 한다. 보통 해질 무렵에 유람선을 탄다고 보면 오후 1시정도에 문의를 해야 한다.

 

두무진 포구에서 출발해 연화리 해안을 왕복하는데 1시간 정도 걸리고 요금은 어른 1만5000원, 어린이 8000원이다.

 

유람선 선장님의 구수함 입담의 설명을 들으면서 선대암, 형제바위, 코끼리바위, 기도바위, 잠수함바위 등을 구경한다. 유람선은 천안함위령탑 부근에서 회항하여 다시 두무진 유람선 선착장으로 되돌아온다.



해상에서 본 두무진의 기암들

 

육상에서는 형제바위 부근까지만 볼 수가 있고 이후 코끼리바위, 기도바위, 잠수함바위 등은 배를 타야 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민박집 주인의 소개로 절반 가격에 구경했다.

 

해상관광을 마치고 이제 육상관광을 한다. 어제 구경했지만 오늘 또 보고 싶고 형제바위 사진(역광이어서)을 못 찍어서 육상관광을 시작했다.

이틀 구경하니 더욱 더 깊이 있게 보게 된다. 선대암 등 바위에 하얗게 보이는 것은 가마우지의 배설물이라고 한다. 이곳 두무진에서 일몰까지 구경하려고 작심했기 때문에 여유있게 구경을 하고, 형제바위 앞에서 일몰을 기다리는데 군인들이 와서 문을 닫아야 하니까 그만 나가야한다고 한다. 그래서 해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은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일몰까지 구경한 것에 만족하고 두무진 구경을 마치고 역시 어제 먹던 가정식백반집에서 저녁 먹고 귀가했다.

 

민박집에 도착하여 백령도 지도를 보면서 빠트린 곳이 있나 찾아보니 빠트린 곳은 없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볼 곳도 없고 해서 늦잠을 자려고 했는데 이곳에서 일출을 못 봐서 일출보기로 하고는 일출 시간에 맞추어 알람설정을 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4월 4일(화) 백령도 여행 마지막 날

5시 15분에 일어나서 서둘러 일출 장소인 끝섬전망대를 향하는데 새벽안개가 무척이나 짙게 끼어 있어서 예감이 좋지 않았다. 좌우지간 매우 조심스럽게 운전해서 끝섬전망대에 도착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안개는 걷히질 않아 마음이 초조해진다.

이미 일출시간은 지나가 버렸다. 아직도 안개는 자욱하다. 이제 포기하고 민박집에 되돌아와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딱히 특별한 일정도 없고 어제 못 본 끝섬전망대 만 구경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8시 50분에 일어나서 백령도 떠날 준비를 챙기고는 민박집 주인과 작별인사를 나누고는 끝섬전망대로 향하다 다시 한 번 사곶해변(천연비행장)을 보고 싶어서 다시 가봤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이 빠져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이제 끝섬전망대에 도착하여 내부 구경을 했다. 망원경으로 지척의 북한 땅도 구경했다. 시간이 많아서 구석구석 다 돌아봤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제 진촌리로 들어가서 꽃게탕으로 아침 겸 점심식사를 하고는 용기포항으로 향했다.

때마침 랜터카 사장님를 용기포항에서 만났다. 그래서 차량을 반납하고는 여객터미널로 들어가서 짐을 내려놓고는 용기포항 주변을 구경했다.

 

13시 30분에 코리아킹호를 타고 백령도와 작별했다.

고려고속훼리(주)의 코리아킹호는 대청도, 소청도를 거쳐 약 3시간 40분 걸려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인천연안여객터미널 옆 지하주차장에서 차량을 회수한 후 귀가했다.

두 가지(감람암포획현무암, 점박이물범)를 못 봐서 많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백령도 구석구석 본 것에 만족한다.

백령도 여행을 하려면 6월 이후에 물때시간을 잘 맞추어야 완벽하게 모든 것을 볼 것 같다.

행복한 백령도 2박3일 여행이었다.

 

6.특기사항

(1) 옹진섬 나들이 지원사업 안내

1) 운영기간 : 2016. 12. 30 ~ 2017. 12. 31

2) 대상지역

- 서해5도 : 연평도, 소연평도,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 근해도서: 덕적도, 소야도, 자월도, 이작도, 승봉도

3) 지원대상 : 관광을 목적으로 한 타 지역민(인천시민, 도서민 제외)으로 1박이상 4박이하 왕복 여행자 (6일 이상 여행 제외)

4) 지원금액 : 여객운임 50%(보조금 35%, 선사 15%) 지원

5) 신청절차 및 유의사항 :

① 한국해운조합 예매시스템(가보고싶은섬)을 통한 온라인 예매

※ 하단「예매하러 가기」버튼 현출 및 한국해운조합 예매사이트 「가보고 싶은 섬」링크

(http://island.haewoon.co.kr/)

② 여행일 전일 자정(24시)까지 신청

③ 승선자 정보(이름, 생년월일, 주소, 연락처) 제공 필수

승선자 정보 변경, 예약 취소 등으로 인한 손해는 본인 책임

④ '섬나들이 사업' 안내문 이용 동의 체크 필수

⑤ 터미널 이용료 및 환불 수수료는 본인부담

⑥ 본인부담금 여객선 운임비를 결재완료 한 예매만 지원(예약제외)

⑦ 출발 당일 기상악화 또는 천재지변 등으로 여객선 결항 시 방문 일정이 취소되며, "재신청"해야 함

⑧ 여행지 교통편, 숙박, 음식점 등은 여행정보 확인 후 방문자가 직접 예약

⑨ 결항 등으로 장기체류 시 발생하는 비용은 본인부담

⑩ 한사람이 동일 신청기간에 이중예매 불가하며, '서해5도 방문의 해'사업과 '옹진 섬 나들이'사업을 통합하여 1인당 연3회(왕복기준)까지만 지원

⑪ 신청시점을 기준으로 30일 이내의 선표만 예매 가능

⑫ 부당이용 적발 시, 과태료 부과(적발자 1인당 지원금액(왕복)의 30배)

⑬ 본 행사는 6일 이상의 여행일정은 지원해 드리지 않습니다.

※ 위 신청절차는 타 지역민에 한 합니다.

 

☞ 여행관련 문의는 옹진군 관광문화과 032)899-2210로 문의 바라며,

온라인 예매관련 문의는 한국해운조합 02)6096-2266으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2)물때 정보

바닷물은 달의 인력, 해류, 날씨 등의 영향을 받아 그 높이와 움직임이 달라지며, 이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달의 인력이다. 바닷물은 달의 인력에 의해 하루에 약 2번씩 들물과 날물이 교차되며, 그 횟수와 수면의 높이는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변한다. 이 변화를 날짜별로 정리해 체계화 시켜 놓은 규칙이 물때이다.

 

물때는 음력을 기준으로 하면 이해하기 쉽다. 1물부터 15물, 또는 0물부터 14물까지로 구분하며, 15물과 0물은 같다. 따라서 같은 물때는 한달에 약 2번 돌아온다.

 

1물은 음력 10일과 25일이다. 2물은 11일과 26일, 3물은 12일과 27일이다.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음력 날짜만 알면 그날이 몇물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바닷물은 15물 또는 0물일 때 가장 적게 들고 적게 난다고 알려져 있다. 이때는 '조금 물때'라고 한다.

조금물때에는 만조일 때와 간조일 때의 수면 차이가 작으며 조류 흐름도 느리다.

반대로 바닷물은 7물일 때 가장 많이 들고 많이 난다고 알려져 있다. 이때를 '사리 물때'라고 한다.

사리 물때에는 만조일 때와 간조일 때의 수면차가 크며, 조류 속도 또한 빠르다.

※ 물때 정보는 국립해양조사원(http://www.khoa.go.kr/)의 홈피를 이용하면 된다.

 

7.경비내역(2박3일, 2인)

(1)준비물: 간식: 30,000

(2)통행료: 인천(왕복): 900× 2=1,800

(3)주차요금: 인천연안여객터미널 지하주차장: 3일(30,000) 실제(14,000)

(4)선박요금: 142,500

-갈 때(하모니플라워) 37,250× 2=74,500

-올 때(코리아킹) 34,000× 2=68,000

※선박요금은 2017년 서해5도 방문의 해(사실 해마다 요금을 할인해 주는 것 같다), 여객운임 왕복 50% 할인 된 금액인데 휴가철은 제외되는 것 같다. 휴가철 외의 기간은 예산 소진시까지 할인된다.

 

(5)민박요금: 2일(100,000)

(6)식대 (103,000)

-2일(일) 아침(해장국)6,000× 2=12,000 / 점심(칼국수)6,000× 2=12,000 / 저녁(백반)7,000× 2=14,000

-3일(월) 아침(백반) 민박집에서 무료제공 / 점심(냉면)6,000× 2=12,000 / 저녁(백반)7,000× 2=14,000

-4일(화) 아침 겸 점심(꽃게탕) 39,000

(7)렌터카(모닝 / 2일) 100,000

(8)렌터카 휘발유: 34,000(리터 당 1,600원)

(9)두무진 유람선비: 20,000

(10)합계: 545,300

 

8.백령도 사진 보기

순서

내 용

1

   

2박3일 백령도 여행 사진(끝섬전망대, 용기포신항)

 

2

 

2박3일 백령도 여행 사진(두무진<해상, 육상, 일몰>)

  

3

 

2박3일 백령도 여행 사진(끝섬전망대, 사자바위, 연꽃마을, 기상대)

  

4

 

2박3일 백령도 여행 사진(심청각, 용기포신항, 구항, 해식동굴)

  

5

 

2박3일 백령도 여행 사진(두무진)

  

6

 

2박3일 백령도 여행 사진(천안함 위령탑)

  

7

 

2박3일 백령도 여행 사진(사곶해변, 콩돌해안, 장촌포구, 중화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