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서울·경기 여행

대이작도의 화려한 추억

약초2 2014. 12. 1. 22:28

대이작도의 화려한 추억

 

1.날짜: 2014년 10월 25일(토)~26일(일): 1박 2일

2.참가인원: 6명(송순득, 홍선덕, 박희자, 이진숙, 윤미연, 조인기)

 

3.세부일정

[10월 25일 토요일. 구름]

-06:30 중계역 발

-08:00경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 착

-이후 아침식사

-09:30(실제 09:45분경)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 발(대부고속카훼리 7호)

-11:10(실제 11:35분경) 대이작도 선착장 착

-이후 민박집 차량으로 민박집으로 이동

-12:00~14:30 점심식사 및 휴식

-15:00~17:00 부아산 산행

-17:30~19:00 둘얼래(최고령 암석) 답사 및 일몰 구경

-19:00~20:30 저녁식사

-이후 자유시간 및 취침

 

[10월 26일 일요일. 구름]

-07:00~09:30 송이산 산행

-09:30~10:00 아침식사

-10:30~12:00 풀등 답사(풀등 시간: 10:10~13:10)

-12:10~13:00 계남마을 답사

-13:30~14:30 점심식사 및 휴식

-15:20 대이작도 발(대부고속카훼리 7호)

-17:10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 착(해산)

-20:00 귀가

 

4.여행후기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에서 대이작도 풀등을 알게 되어 서둘러 풀등을 보고 싶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영 기회가 닿질 않았다. 그러던 참에 일산모임에서 놀러가자는 이야기가 나와 대이작도를 강력 추천하여 결국 1박2일 일정으로 대이작도를 가게 되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는데 때마침 옹진섬 나들이 행사(5.특기사항 ①옹진섬 나들이 행사 참고)가 있어서 재빨리 신청하여 배편 왕복요금을 편도요금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대이작도 가는 방법은 인천(연안부두)과 대부도(방아머리선착장)가 있는데 글쓴이 입장에서는 대부도가 편하고 배편 요금도 저렴하여 대부도(방아머리선착장)로 정했다. 여름철에는 2회 운행하는데 지금은 비수기라 1회 밖에 없어서 비수기철에 구석구석 보려면 1박을 해야 한다.

배편, 숙소, 먹거리 등 모든 것들을 진숙누님이 다 맡아 해줘서 편하게 다녀왔다.

 

회원님들에게 주민증은 필수라고 몇 번씩이나 당부를 하고는 드디어 출발하는 날이 밝았다.

송누님의 부군께서 이른 새벽에 강일동에서 만남의 장소인 중계역까지 자가용으로 바래다주어서 6시 30분에 글쓴이 차량으로 중계역에서 3사람이 출발했다. 조금 늦게 출발하면 서부간선도로가 많이 막히기 때문에 조금 일찍 출발했다. 덕분에 약간의 정체가 있었지만 예정시간 보다 일찍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에 도착했다. 꽤 오랜만에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에 왔는데 그사이 많이 변해 있었다. 많이 복잡해졌고, 무엇보다도 주차장이 새로 생겼다. 그래서 5,000원 내고 주차를 시켜놓고 다른 일행 오기를 기다리다가 여객터미널 2층의 식당에서 아침식사도 할 겸 식당으로 올라갔다. 음식을 주문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미연누님이 오고, 곧이어 나머지 누님들도 도착해서 다함께 아침식사를 맛있게 했다. 그사이 진숙누님이 매표를 하고 왔다. 배 출발시간이 되니 두 줄로 길게 늘어선 사람들 앞에 선사 직원이 선(배)표와 주민증 검사로 일일이 본인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일행 중 한 사람이 주민증을 안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아무리 통 사정을 해도 통과를 시켜주지 않는 것이다. 참으로 낭패였다. 배 출발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머리를 쥐어짜서…, 검표하는 직원을 여러 명이 정신없이 만드는 그 사이에 다른 옷으로 바꿔 입은 누님은 잽싸게 배 쪽으로 나살려라 하며 빠른 걸음으로 내달렸다. 결국 승선하는데 성공했다. 휴~!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중에 대이작도에서 나갈 때도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대부고속카훼리7호는 정시(09:30)보다 약 15분 정도 늦게 출항했다. 하루에 한 번 대이작도를 가기 때문에 늦게 승선한 우리 팀이 선내에 들어가 앉을 틈은 없었다. 밖(갑판 등)에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되고 있었다. 그나마 약간의 공간이 있는 곳에다 돗자리를 깔고 자리를 잡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자리 잡은 곳 바닥이 물이 흘러 다시 이사를 했는데 바람이 불어서 여간 신경이 쓰인다. 지루한 시간이 흘러 선내방송은 곧 승봉도에 도착한다는 멘트가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승봉도에서 내려 이제 한결 편안하게 가게 되었는데 이내 대이작도에 도착한다. 예정시간 보다 20여 분 늦게 도착했다(원래 9시 30분에 출항하여 1시간 40분 걸려 대이작도에는 11시 10분에 도착해야 했었다).

 

예전부터 섬 여행을 좋아해서 많은 섬을 여행했는데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것이 변하였다. 매표 할 때부터 주민증이 없으면 매표를 할 수 없고, 단체여행객도 개개인의 주민증이 있어야 매표가 가능하다. 매표한 후에도 승선시에 다시 한 번 본인 확인 절차가 들어간다. 카페리호의 경우 승차한 자동차의 4바퀴 모두에다 단단히 고정을 시킨다. 고정시키는데 적잖이 시간이 흘러 정시에 출발을 못하고 지연 운행한다.

대이작도 선착장에 도착을 하니 이미 진숙누님은 예약을 한 민박집 주인하고 조우를 하고는 일행을 불러 모은다. 민박집 트럭타고 5분 여 이동하여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해 먹고 부아산 산행에 나섰다.

지도 없이 산행을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어디에도 지도를 구할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감각적으로 산행에 나섰다.

 

[대이작도 소개]

대이작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자월면에 딸린 섬이다.

넓이 2.57㎢, 해안선 길이 18km, 최고봉은 188m의 송이산이며 인구는 2013년 현재 140세대 283명이다.

대이작도에는 작은풀안해수욕장, 큰풀안해수욕장, 목장불해수욕장, 계남(띄넘어)해수욕장 등 여러 해수욕장이 있다.

대부분 고운 모래가 깔려있고 경사도 완만해 아이들도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해수욕장 뒤편의 해송숲에서는 야영도 가능하다.

대이작도 앞바다에서는 썰물 때마다 거대한 모래섬이 솟아오른다.

‘풀등’ 또는 ‘풀치’라 부르는 이 모래섬은 밀물 때는 바다에 잠겨 있다 썰물 때만 나타난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사리 때는 길이 5km, 폭 1km의 거대한 자태를 드러내기도 한다.

풀등에 가려면 낚싯배나 모터보트를 이용해야 한다.

작은풀안해수욕장에 풀등선착장(배편 문의 010-9019-1224)이 조성돼 있다.

100% 모래밭으로 이루어진 풀등에서는 맛, 고동, 바지락, 비단조개 등을 잡거나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대이작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해수욕장은 작은풀안해수욕장이다.

주변에 민박집, 펜션 등 편의시설이 많고 풍광이 아름다워 사시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작은풀안해수욕장 동쪽 해안에는 데크 산책로가 개설돼 있다.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에 서 있는 정자에서는 큰풀안해수욕장, 풀등, 사승봉도 등 주변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풀등 가는 모터보트를 탈 수 있다.

또한 이 데크 산책로 중간쯤에서는 우리나라 최고령 암석을 관찰할 수 있다.

25억 년 전 형성됐다는 이 암석은 깊은 땅속에서 암석 일부가 뜨거운 열에 녹아 생성된 혼성암이라고 한다. 둘얼래에서도 최고령 암석을 볼 수 있다.

대이작도 한복판에 우뚝한 부아산(159m)은 천혜의 바다 전망대다.

정상 부근까지 찻길이 나 있어 쉽게 오르내리기도 쉽다.

작은 구름다리(현수교)를 건너 정상에 자리한 전망데크에 올라서면 풀등, 승봉도, 사승봉도, 소이작도, 대이작도, 덕적도, 소야도, 선갑도, 굴업도가 모두 시야에 들어온다.

해질 무렵에는 장엄한 일몰과 천지를 불사를 듯한 노을도 감상할 수 있다.

대이작도 선착장 맞은편에는 아우 격인 소이작도가 떠 있다.

두 섬의 선착장 간 직선거리가 500m도 안 될 만큼 가깝다.

넓이 1.36㎢, 해안선 길이 10km의 이 작은 섬에는 벌안해수욕장, 약진넘어해수욕장 등 해수욕장 두 곳이 있다.

하지만 워낙 섬이 작고 편의시설도 많지 않아 외지인의 발길은 뜸한 편이다.

소이작도 선착장 동쪽에 자리한 몽돌해변 옆에는 데크 산책로가 개설돼 있다.

산책로가 끝날 즈음의 바닷가에는 손가락바위가 우뚝하다.

영락없이 곧추세운 검지 모양인 이 바위는 각도에 따라 반가사유상이나 관음보살로 보이기도 한다.

 

[대이작도의 역사]

고구려,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함에 따라 소속이 바뀌었다.

삼국시대 백제에 속하였고 고려 현종 9년(1018) 수원에 속군 되었으며 뒤에 인천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남양부에 속했으며 1914년 경기도 부천군 영흥면에 소속되었다가 1983년 옹진군 자월면으로 승격되면서 1개의 법정리(이작리)로 정해져 오늘에 이르렀다.

 

[특기사항]

임진왜란 때 피난 온 난민들이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이 섬은 옛날에 해적들이 은거하여 이적도라 불렀으며 이적이 이작으로 변해 이작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 중 큰 섬을 대이작, 작은 섬을 소이작이라 부른다.

해변주위에 갯바위 낚시터가 산재하고 있고, 자연산 굴이 많이 나며 흑염소가 방목되고 있다.

 

누님들이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근처는 미리 답사를 해서 민박집에서 뒤쪽 밭길로 해서 부아산 가는 길의 포장도로에 접어들었다.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름길을 이용해서 6~7분 정도 단축한 것 같다. 제대로 된 길은 큰마을 입구의 포장도로에서 올라가면 된다.

이제 포장도로를 따라 고개에 다다르니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는 이정표(←정상(부아산) 0.9㎞ / 계남해변 3㎞→, 목장풀해변 2.5㎞→, 큰풀안해변 1.2㎞→, 작은풀안해변 0.5㎞→)가 세워져 있다. 정상(부아산)을 가기 위해 좌회전하면 이내 파란색의 이정표(↑부아산입구(구름다리) 0.4㎞ / 장골마을 0.3㎞→ / ←여객선부두, 큰마을 1km)가 또 나온다.

 

10여분 더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삼거리)에 이정표(↑휴게쉼터 80m, ↑전망데크 80m, ↑화장실 80m / ←팔각정(부아정) 200m, ←구름다리 120m / 장골마을(약수터, 작은풀안해변) 500m↓)와 안내판(부아산 탐방안내도)이 세워져 있는 쉼터가 나온다. 큰마을 민박집에서 20분 정도 걸렸다. 이제 이곳에서 부아산 정상으로 가려면 좌측의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되는데 우측으로 2개(좌측, 우측)의 정자가 있어서 일단 정자 쪽으로 향했다. 이곳에 차량 3대가 주차되어 있다.

 

자갈이 깔려 있는 바닥에 낙엽이 쌓여있어서 가을이 깊어 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곧바로 좌측의 정자과 우측의 정자가 갈리는 지점에 닿는다. 이곳에도 이정표(←부아산 정상(전망데크) 0.3km / ↑송이산(정자) 1.0km / 전망데크(아기업은재) 50m→)가 세워져 있는데 직진하면 송이산으로 가는 등산로이다. 왕복 2km 거리라 아쉽지만 송이산은 생략하기로 하고는 일단 우측의 정자 쪽으로 향했다.

 

각종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고 팔각정에 올라가니 승봉도가 지척이고, 우뚝 선 송이산의 자태가 멋지다. 얼마간 휴식을 하다가 되짚어 내려와 이번에는 우측의 팔각정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바라 본 부아산 능선이 멋지다. 구름다리도 보인다. 소이작도도 보이고, 이쪽 팔각정이 아까 팔각정 보다 조망이 더 좋다. 이곳에서 제법 많은 시간을 보낸 후 다시 되짚어 삼거리로 내려와서는 부아산 정상을 향해 계단을 올라간다.

 

계단은 이내 끝나고 능선길이 이어지는가 싶더니만 구름다리가 나타난다.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안내판에는 대이작도 팔경중 하나인 신선들이 걷는 다리. 이른 새벽 안개가 그윽할 때 신선들이 세인의 눈을 피해 걷는다는 대이작도 내 가장 유명한 장소. 연인끼리 구름다리를 건너면 신선들의 축복에 의해 백년해로의 기쁨을 얻을 수 있다라고 적혀 있다.

 

 

부아산

 

구름다리를 건너면 이내 팔각정이 나온다. 이정표(←정상전망데크 0.1km, ←여객선부두 2.0km / 송이산 1.5km→)와 봉수대 5거, 부아산 봉수대 안내판 등이 설치되어 있고, 조망이 무척 뛰어나다. 이곳에 「부아산 정상입니다」 라고 써진 표지목이 세워져 있고, 표지목 밑에는 「←정상 전방 100m」라고 써져 있다. 이곳에서 100m 더 가야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 정상에 닿는다. 조망이 무척 좋은 곳이라 이곳에서 한참동안 조망삼매경에 빠져본다.

휴식을 마치고 곧바로 정상석(부아산 정상 해발 162.8m) 인증샷을 찍고는 전망대로 향한다. 이곳 정상석이 있는 곳에서 전망대까지는 날카로운 바위구간이다. 바위 구간이 다소 짧은 것이 아쉽다.

 

이내 전망대에 도착한다. 이곳 전망대에도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고, 조망도도 설치되어 있어서 주변 섬들을 관찰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이제 하산길로 접어든다. 전망대에서는 더 이상 등산로가 없다. 빽해서 조금 가다 보면 우측으로 하산길이 보이는데 그쪽으로 내려간다. 급경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경사가 있는 편이다. 그렇게 경사 구간을 내려가면 이내 완만한 능선길이(방화선 같은) 이어지다가 삼거리가 나오면 우회전하여 내려가면 경사구간은 끝이 난다. 이곳에 이정표(←부아산 휴계쉼터(정상) 1km / ↑부아산 정상(전망대) 400m / 여객선부두 1.4km→)가 세워져 있다.

 

2분 정도 더 진행하면 사거리안부가 나오는데 컨테이너 시설물이 있고, 이정표(←오형제바위(큰마을, 여객선부두) 0.3km / 부아산정상(송이산) 0.3km→ / ↑회춘골해변 0.2km / ↓큰마을(여객선부두) 0.2km)가 세워져 있다. 대부분의 누님들이 이곳에서 하산하고 싶은 눈치가 보이지만(힘들기도 하고 가는 방향이 오름길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곳까지 와서 오형제바위를 못 보면 안 된다고 부추겨 결국 직진하여 얕은 능선 하나를 넘어서니 이내 조망이 터지면서 바다가 조망된다. 조금 더 내려가면 삼거리가 나오면서 데크길로 이어진다. 이정표(←오형제바위 50m / ↑부아산정상(송이산) 0.6km / 큰마을(1km 여객선부두) 0.4km→)와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이제 이곳에서 좌측으로 50m 더 가면 오형제바위이다. 해안데크길 따라 50m 진행하면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중앙에 팔각정이 조성되어 있어 운치가 멋지다. 팔각정의 전망대에서 오형제바위까지도 해안데크길로 연결되어 있어 오형제바위까지 갈 수 있다. 경치가 멋진 곳이다. 맞은편으로 소이작도가 가깝게 보인다. 「오형제바위의 전설, 기원제(祈願祭)」가 써진 안내판도 세워져 있다. 멋진 해안절경을 구경하다 이제 빽하여 해안데크길을 따라 한동안 진행하면 해안데크길이 끝난다. 이곳 해안데크길은 「대이작도 바다 생태체험 탐방로」라고 명명이 되어 있다. 총연장 387m이다.

이제 포장도로로 따라 진행하다 보면 큰마을 입구에 오래전부터 대이작도 주민들이 사용해 온 마을 우물인 감로천(甘露天)이 나오고 이내 큰마을 입구를 지나 1~2분 올라가면 민박집이다.

 

 

오형제바위

 

누님들은 저녁 준비하느라 민박집으로 들어가고 글쓴이 홀로 다른 곳을 답사하려고 여기 저기 둘러보다가 최고령암석이 있는 돌얼래 해변으로 향했다. 언덕 하나를 넘고 해변에 다다르니 안내판이 반긴다. 안내판에는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약 25억 1천만년 추정<화강암질 혼성암>)이라고 써져 있어서 흥분되었다. 이곳에도 해안 데크길이 연결되어 있어서 해안데크길을 따라 조금 가니 해안데크길은 이내 끝나고 이후로는 아무런 표기도 없다. 물이 많이 차 있어서 더 이상 갈 수도 없다. 때마침 낚시하고 있는 분에게 최고령 암석이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니 모른다고 예기를 한다. 할 수 없이 실망한체 발걸음을 돌렸다. 사실 송이산 등산를 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어두워져 송이산 산행은 포기하고 대신 최고령 암석을 보려고 했던 것이다.

 

이제 그만 민박집으로 들어가려 하다가 일몰을 보고 들어가도 되겠고, 또한 지도도 얻을 겸해서 선착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선착장의 안내소는 문이 잠겨 있어서 지도를 구할 수 없었다. 이제 일몰을 보려고 선착장에서 해안데크길을 따라 걸어간다. 일몰을 볼 수 있는 쉼터가 조성되어 있는 곳에 도착했는데 이미 여러 사람들이 일몰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가 떨어지려면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진숙 누님에게 전화를 해서 일몰 구경하러 오라고 연락을 하고는 그사이 문희 소나무를 보러 언덕에 올라갔다.

 

언덕에는 문희 소나무, 섬마을 선생 촬영지라고 써진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1967년에 이곳 대이작도 계남마을을 중심으로 촬영된 섬마을 선생은 당시 크게 유행했던 이미자의 노래 「섬마을 선생」의 내용을 영화화한 것이라고 한다. 문희 소나무는 섬마을 처녀 문희가 섬을 떠나는 선생님을 배웅하는 모습을 촬영한 곳이다.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얕은 구름이 끼어서 결국 멋진 일몰은 구경하지 못했다. 한걸음에 민박집에서 이곳 선착장까지 뛰어 온 누님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누님들하고 마지막으로 문희 소나무를 보고는 민박집에 들어가 맛있는 저녁을 먹는데 민박집 주인아저씨가 하수오주를 가지고 와서 낮에 받은 생선 매운탕(각종 물고기<물고기 이름 모름> 등)과 함께 잠시나마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잠자기 전까지 고스톱을 즐기는데 그만 진숙누님과 약간의 오해 다툼으로 인해 판이 깨기고 말았다.

 

속이 상한 진숙 누님은 밖으로 나갔고, 나머지 누님들과 함께 취침에 들어갔는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밖에 나간 진숙 누님은 아직도 들어오지 않고…, 시간은 계속 흐르고…, 불안한 생각이 들어 조용히 일어나서 밖에 나가 진숙 누님을 찾아보았다.

 

민박집 주변을 아무리 살펴봐도 보이지가 않아 조금 더 멀리 가봤지만 역시 찾을 수가 없었다. 갯벌에서 후레쉬 불빛으로 무언가를 잡는 사람들이 보여 그쪽으로 가봤지만 역시나 진숙 누님은 없었다. 그 사람들은 지금 물이 많이 빠져 있어서 바지락을 잡고 있다고 한다. 계속해서 핸드폰으로 진숙 누님에게 전화 통화를 시도해봤지만 묵묵부답, 화가 단단히 났나보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불안한 마음은 계속 커지고…, 그러는 사이 희자 누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진숙 누님이 들어왔으니 어서 들어오라고 연락이 와서 한걸음에 민박집에 들어가니 방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진숙 누님과 절친인 선덕 누님이 심한 언쟁으로 말다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다른 누님들이 중재에 나서 언쟁은 이내 끝나고 잠이 들었다. 찜찜한 마음으로.

 

 

다음날, 밤새 뒤척이다 살짝 잠이 들었는데 누님들은 벌써 일어나고 있었다. 부스스한 몸을 일으켜 세운 뒤 잽싸게 세면을 한 후 어제 못 간 송이산을 가려고 민박집에서 나왔다. 누님들한테 9시까지 들어오겠다고 하고는.

 

부아산 갈 때와 마찬가지로 지름길로 해서 차도로 들어선 후 고개를 지나면 나오는 삼거리에서 부아산 방향으로 진행한 후 부아산 쉼터에 다다랐다. 이곳까지는 부아산 산행 때와 같은 코스이다. 안개가 얕게 끼어 있어서 시야가 좋지 못하다. 아침식사 전(9시)까지 민박집에 도착해야 하기에 서둘러 송이산(거리 1km)으로 향한다.

 

이제부터는 처음 가는 길이다. 경사가 제법 급해진다. 거의 땅으로 떨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부아산과 송이산은 능선으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왠지 불길한(과외인가 싶어서) 생각이 들지만 이정표 보고 분명히 송이산으로 가고 있으니 괜찮겠지 하며 계속 내려간다. 앞서 가던 여성 2사람을 만나는데 이곳으로 내려가면 해안가가 나오냐고 묻기에 잘 모르겠다 하고는 계속 급경사 길을 내려가니 짧은 계단이 나오면서 역시나 땅바닥에 떨어진다. 이제야 이정표(←장골마을 0.5km / ↓송이산(정자) 0.7km)가 반긴다. 이정표를 확인하니 아까 부아산 갈림길에서 300m 내려온 셈인데 길게 느꼈다. 이제 짧은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좌측은 바다고, 우측은 습지인데 섬마을(바닷가)에 습지가 조성되어 있는 곳이 드물다고 써진 습지 생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짧은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이정표(↓장골마을(작은풀안해변) 0.7km / ←부아산(정자)(화장실) 0.7km / 송이산(정자) 0.6km→)가 세워져 있다. 이제부터 송이산을 향한 600m 오름길이 시작되면서 숲길로 들어선다.

 

100m 더 가면 이정표가 또 나온다. 땅에 떨어진 후 올라가려니 힘이 든다. 올라갈수록 안개가 짙어진다. 앞서가던 남자 한 사람(등산객)을 추월한 후 계속 힘겹게 올라가니 드디어 주능선에 닿는다. 땅에서부터 6분 정도 걸렸는데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주능선엔 쉼터가 조성되어 있어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데 아쉽게도 안개가 짙게 끼어 있어서 조망은 볼 수가 없었다.

 

쉼터에서 5~6분 더 진행하면 「장골마을(0.5km), 계남마을(2.0km), 부아산(정자) 1.3km」라고 써진 이정표가 나오고, 이후 2분 정도 더 진행하니 드디어 송이산 정상의 2층 정자에 도착한다. 매우 작은 오석의 정상석엔 해발 188.7m 송이산 정상이라고 써져 있다. 그 옆엔 조망도가 세워져 있다. 이정표(←계남마을 1.5km / 부아산 1.5km→ / 장골마을 0.5km→)도 세워져 있다. 민박집에서 송이산 정상까지 40여분 걸렸는데 안개가 걷히면 멋진 조망을 즐길 수가 있었을 것 같은데 많이 아쉬웠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제 민박집을 향해 하산하기 시작한다. 되짚어 가기엔 거리가 너무 멀고 해서 계남마을 쪽으로 하산하는데 길이 완전 국립공원 수준으로 무척 좋다. 계속 내리막길인데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서 편안하게 내려가면 차도로 떨어진다. 이정표(←계남마을 1.6km / 여객선부두 3.0km→ / ↓송이산(정자) 0.5km)가 세워져 있다. 송이산 정상에서 5~6분 걸렸다. 이렇게 해서 48분 걸려 송이산 산행을 마쳤다.

 

이곳에서 큰마을 민박집까지 걸어가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어서 지나가는 차를 히치하이크 하기로 하고 잠시 기다리는데 다행히 기다린지 얼마 되지 않아 승용차가 나타나 한 번에 히티하이크에 성공했는데 이 차는 작은풀골 쪽으로 가는 차라 장골마을에서 내렸다. 장골마을에는 장승 몇 기가 조성되어 있다.

장골마을에서 큰 마을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서 걸어가기로 하고는 포장도로를 따라 걷는데 보호수가 나온다.

 

안내판에는 왼쪽은 약250년 된 적송(암나무)이고, 오른쪽은 약 350년 된 적송(숫나무. 수고[15m], 둘레[2m])이라고 한다. 원래는 이어지는 능선 상에 있었으나 현재는 도로에 의해 양분되었다고 하고, 삼신할미의 약수물 덕분에 득남한 부부가 아들의 다복, 다산,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암수 소나무 다수를 심었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다.

 

멋진 적송을 본 후 조금 더 올라가니 이번엔 삼신할미 약수터가 나온다. 약수터도 구경하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데 희자 누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어디쯤 오고 있냐고 해서 다 왔다고 예기하고는 서둘러 급하게 뛰어서 민박집에 도착하니 이미 상은 차려져 있고 막 아침식사를 하려는 순간이었다.

아침식사도 맛있게 먹고는 이제 대이작도에 온 목적인 풀등 구경에 나섰다.

 

민박집 차량이 고장 나서 할 수 없이 풀등 선착장까지 걸어가기로 하고는 조금 일찍 민박집을 나섰다. 역시 밭길로 해서 포장도로에 접어든 후 삼신할미 약수터에 도착하여 약수 한 잔 먹고는 장골마을에 도착했다. 장골마을에서 우회전한다. 이내 작은풀안과 큰풀안이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풀등 선착장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몰라 일단 큰풀안 쪽으로 가본다.

 

큰풀안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 해송 사이로 바다가 조망되는데 풀등 모습이 보이고, 바닷가 쪽으로 멋진 정자도 보인다. 이 정자가 풀등 선착장이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멋진 집 한 채를 지나자 큰풀등해수욕장 아치 간판이 나오고 이내 큰풀등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철 지난 해수욕장이라 썰렁하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선착장은 보이지가 않아 당황스러웠다. 진숙 누님이 민박집에다 전화를 해서 풀등 선착장이 작은풀안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되짚어 나가 작은풀안해수욕장으로 향한다.

 

작은풀안해수욕장에 도착하니 역시 풀등매표소(비닐하우스 건물)가 보인다. 칠판으로 된 안내판에는 요금이 대인(중학생 이상) 왕복 10,000원, 소인(초등학생 이하) 왕복 7,000원 적혀 있고, 이용시간은 11:00~13:00 라고 적혀 있다. 진숙 누님이 매표하고 왔는데 1인당 8,000원을 받는다고 한다. 엊저녁 민박집 아저씨 예기는 풀등 요금은 민박집을 이용한 사람은 7,000원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10,000원 이라고 했는데…. 이유인즉 작년까진 7,000원 이었는데 올해부터 8,000원으로 올랐다고 한다.

 

어쨌든 풀등 때문에 대이작도에 왔으니 매표한 후 길게 이어진 해안데크길을 따라 선착장까지 이동하는데 중간에 「대한민국최고령암석(25억1천만년)」이라고 써진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그러니까 최고령 암석은 대이작도에 두 군데 있는데 이곳하고 둘얼래에 있다.

해안데크가 끝나는 지점에 팔각정이 세워져 있고, 팔각정 아래로 내려가면 선착장이다. 대기하고 있던 풀등 가는 소형 모터보트에 올라탄다.

모터보트 선장님의 간단한 본인소개와 13:00까지 수시로 풀등을 왕복한다는 말을 한다. 구명조끼를 다 착용하자 이내 출발한다. 10여 명이 탄 모터보트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아 풀등에 도착하는데 도착하기 직전에 롤러코스트처럼 좌우로 심하게 비틀어주니 어린아이들이 신나서 비명을 지른다.

이내 풀등에 도착했다. 처음 본 풀등은 마냥 신기했다. 예전에 삼척의 오십정산 갔을 때 우물 같은 엉덩이가 많았는데 이곳 모래섬인 풀등도 물 엉덩이가 많아서 신기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섬을 시간상 끝까지 가볼 순 없고 중간 쯤 가다가 돗자리 펴고 간식시간을 가졌다.

 

 

풀등

 

모래의 미소 바다의 오아시스 「풀등」

인천에서 뱃길로 40여km 떨어진 작고 아름다운 섬 대이작도에 가면 신비의 모래섬이라 불리는 '풀등' 을 만날 수 있다.

밀물 때 바닷물에 잠겼다가 물이 빠지면 바다 한가운데 신비로운 모래섬 '풀등' 이 나타난다.

풀등의 크기는 동서로 약 3.6km,남북으로 약 1.2km에 이르며, 면적은 약 47만평 정도에 달하는 드넓은 모래섬이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바다의 물결과 바람에 따라 날마다 다른 모양과 넓이를 드러낸다.

사람들에게 풀등은 '고래등' , '풀치'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풀등'은 모래위에 풀이 자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고래의 등을 닮았다고 해서 '고래등', 갈치 새끼인 풀치 떼들이 푸른 바다를 길게 휘저어가는 모양새라고 해서 '풀치' 라고도 한다.

 

풀등은 어떻게 만들어 졌나?

풀등은 바람이 나르고 시간이 빚어낸 자연의 거대한 조화이다.

5~6천 년 전 해수면이 현재의 위치에 도달하기 전 한강, 임진강, 예성강에서 흘러나온 퇴적물이 하구에 쌓이면서 일차적으로 강 하구에 조그만 사주가 만들어졌다.

이후 해수면의 상승과 강한 왕복성 조류에 의해 사주는 수직-수평 방향으로 성장했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몇 천 년에 걸쳐 경기만에 거대한 사주군이 형성되었다.

대이작도 풀등은 경기만 사주군의 일부로 건조시에 가장 크게 드러난다.

바람이 불고 파도에 밀려 온 모래가 수 천 년을 켜켜이 쌓이고 쌓여 바다 한 가운데 풀등이 만들어진 것이다.

 

'풀등' 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은 무엇이 있을까?

모래바닥에 사는 그물무늬금게, 흔히 골뱅이로 불리는 큰구슬우렁이, 대맛(죽합)조개, 등이 있고 해양생물 보호종으로 지정되어 있는 '잘피'가 있다.

잘피는 꽃을 피우는 고등 현화식물로서, 뚜렷한 잎. 줄기 및 뿌리 조직을 가져 해조류(김, 미역 등)와는 구별된다.

잘피는 해양생물들에게 서식처 및 산란장을 제공하는 등 해양과 하구 생태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생명의 보금자리 '풀등'

풀등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풀등에 대한 생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형 저서동물 185종이 출현하고, 평방미터당 밀도도 923개체나 된다.

서해 바다에 물고기가 넘치던 불과 몇 십 년 전에는 썰물 때면 풀등의 웅덩이에 갇힌 꽃게, 새우, 광어들을 거저 주어 담을 수 있었다고 한다.

풀등은 꽃게와 넙치 등 해양생물의 서식 및 산란지이고 풀등 주변 해역은 소라, 굴, 피조개, 광어 등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풀등이 없어지면 풀등을 터전으로 살고 있는 생명들이 없어지고 풀등의 생명을 먹이로 하고 있는 관련 생태계도 없어지게 된다.

 

천연 방파제 '풀등'

풀등에 쌓인 모래는 파도를 막아 해양생물들에게 안정적인 서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바다 새들에게는 쉬어가는 휴식처를 제공한다.

바다 생물들 외에도 끝없이 펼쳐진 고운 모래와 탁 트인 맑은 하늘은 풀등을 잠깐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도 편안함을 준다.

또 갯벌이 육지의 방파제 역할을 하듯 풀등은 섬의 방파제 역할을 한다.

바다 한 가운데 풀등은 파랑에너지를 감소시켜 태풍이나 해일같은 외부의 힘을 차단하고 육지의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천연방파제인 것이다.

그런데, 풀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풀등의 면적과 높이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위성영상을 활용하여 산출한 풀등의 면적은 2008년에서 2010년까지 약 0,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풀등의 소실이 모래재취 등 인위적인 요인에 기인하는 것인지 아니면 태풍과 같은 자연현상에 의한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해양생태계와 해안침식 등 바다생명들의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풀등' 바로 앞에 있는 큰풀안해수욕장의 해안가는 아직도 침식이 이루어지고 있어 해안가 소나무들이 뿌리를 앙상하게 들어내 놓고 있었다.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유산인 '풀등' 이 더 이상 소실되지 않고 바다와 함께 살아온 어민과 바다생명들의 삶의 터전이 더 이상 위태롭지 않도록 이제는 우리 모두가 '풀등' 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인터넷에서 발췌]

 

 

간식을 먹고는 조금 더 풀등에서 시간을 가지다 이내 풀등 구경을 마치고 대기하고 있던 모터보트에 올라타니 이내 출발한다. 역시 5분이 채 걸리지 않아 작은풀안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풀등에 갈 때처럼 작은풀안에 올 때도 롤러코스트를 보여줬다.

이제 대이작도 마지막 코스로 계남분교를 갈 차례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누님들이 힘이 드는지 그냥 민박집으로 가자는 눈치들이다. 글쓴이와 진숙 누님외엔. 진숙누님이 두 분의 누님을 꼬드겨서(?) 결국 4사람이 계남마을로 향하고 나머지 두 분의 누님은 민박집으로 향했다.

작은풀안해수욕장에서 계남마을까지는 거리가 꽤 멀어서 히치하이크 하기로 하고 지나가는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다행히 계남분교 맞은편에 있는 펜션 차(봉고 승합차)가 나타나 도움을 받아 편안하게 계남마을에 도착했다.

 

계남마을 방조제까지 가본 후 영화 촬영지인 계남분교를 찾아갔다. 아까 히치하이크한 봉고차의 펜션주인처럼 폐허가 되버린 계남분교는 볼 것이 하나도 없었다. 영화의 고향 표지석(섬마을선생 촬영장소)이 이곳이 영화 촬영지였음을 알려준다. 그나마 낮에 봤으니 망정이지 저녁시간에 보면 꼭 귀신이나 나올만한 장소이다. 실망한체 발걸음을 돌렸다.

 

이제 이곳 계남마을에서 큰마을까지 가는게 문제다. 이곳에서도 할 수 없이 히치하이크를 해야 한다. 다행히 이번에도 펜션 차를 얻어 탔는데 이번에는 봉고승합차가 아니라 트럭이다. 트럭 짐칸에 탔지만 너무나 황송한 자리였다. 그 바람에 생각보다 일찍 민박집에 도착했는데 앞서 민박집에 도착한 두 분의 누님들이 깜짝 놀란다. 예상과 달리 너무 일찍 도착했기 때문이다.

 

엊저녁에 미리 준비한 매운탕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고는 잠시 쉬다가 매우 친절한 민박집 주인과 작별하고는 천천히 걸어서 선착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갈 때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갈 때도 역시 주민증을 일일이 확인하며 승선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주민증을 검사하고 있는 직원에게 다가가 정신없이 만드는 사이 주민증이 없는 누님이 잽싸게 승선하는데 성공했다. 휴~!

 

돌아오는 배 선실에서 느긋하게 자리를 잡았다. 갈 때는 올 때와는 다르게 대이작도가 출발지이기 때문에 선실을 차지할 수 있었다. 방아머리에서 대이작도 갈 때는 승봉도, 소이작도를 거쳐 대이작도에 도착하지만, 대이작도에서 방아머리로 갈 때는 대이작도에서 가장 먼저 출발하여 소이작도, 승봉도를 거쳐 방아머리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1박2일의 일정이 피곤했는지 다들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다. 그렇게 많은 추억을 남기고 대이작도를 출발하여 방아머리선착장에 도착하여 누님들과 아쉬운 작별한 후 귀가했다.

 

5.특기사항

①옹진섬 나들이 행사

옹진섬 나들이

1) 운영기간 : 8월 4일부터 예산 소진시까지  

2) 대상지역 : 5개면(연평ㆍ백령ㆍ대청ㆍ덕적ㆍ자월) 

3) 지원대상 : 관광을 목적으로 한 타 지역민(인천시민, 도서민 제외)으로 1박이상 여행자

 4) 지원금액 : 여객선 운임 50%(옹진군 35%, 여객선사 15%) 지원

 5) 신청절차 및 유의사항  

① 한국해운조합 예매시스템(가보고싶은섬)을 통한 온라인 예매 

② 여행일 전일 자정(24시)까지 신청 

③ 승선자 정보(이름, 주민번호 13자리, 주소, 연락처) 제공 필수 

④ '서해5도 방문의 해' &'옹진 섬 나들이' 안내문 이용 동의 체크 필수 

⑤ 터미널 이용료 및 환불 수수료는 본인부담 

⑥ 본인부담금 여객선 운임비를 결재완료 한 예매만 지원(예약제외) 

⑦ 출발 당일 기상악화 또는 천재지변 등으로 여객선 결항 시 방문 일정이 취소되며, "재신청"해야 함 

⑧ 여행지 교통편, 숙박, 음식점 등은 여행정보 확인 후 방문자가 직접 예약 

⑨ 결항 등으로 장기체류 시 발생하는 비용은 본인부담

⑩ 한사람이 동일 신청기간에 이중예매 불가하며, '서해5도 방문의 해'사업과 '옹진 섬 나들이'사업을 통합하여 1인당 연 3회까지만 지원 

⑪ 본 행사는 동일항로 동일선박을 왕복으로 이용하셔야 지원 가능 

⑫ 신청시점을 기준으로 30일 이내의 선표만 예매 가능 

⑬ 부당이용 적발 시, 과태료 부과(적발자 1인당 지원금액(왕복)의 30배) 

⑭ 본 행사는 8일 이상의 여행일정은 지원해 드리지 않습니다. 

 

②일산 모임에서 다녀옴

③방아머리선착장까지 승용차 이용

 

6.여행경비(진숙 누님 자료 참조)

①선박비: 9,800 × 5 = 49,000

②언니 선박비: 15,800

③아침식대: 7,000 × 5 = 35,000

④숙박비: 60,000

⑤횟값: 20,000

⑥풀등 선박료: 8,000 × 6 = 48,000

⑦맥주: 2,000 × 3 = 6,000

⑧찰떡: 3,000 × 3 = 9,000

⑨우리밀과자 4봉지: 11,200

⑩파리바게트 빵 3봉: 10,700

⑪쌀값: 15,700

⑫갈치: 25,000

⑬돼지고기: 9,000

⑭떡국 떡: 5,000

⑮파, 고추: 3,500

(16)과일: 15,000

(17)총계: 337,900 ÷ 6 = 56,310 (1인 경비)

 

7. 상세 사진 보기

대이작도 1박2일 1-7

대이작도 1박2일 2-7

대이작도 1박2일 3-7

대이작도 1박2일 4-7

대이작도 1박2일 5-7

대이작도 1박2일 6-7

대이작도 1박2일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