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해외여행

중국 청도 노산(거봉풍경구), 적산 법화원지, 장보고유적지를 찾아서!

약초2 2010. 3. 6. 21:07

 

생애 첫 해외(중국)여행을 다녀와서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

 

1.여행날짜: 2010년 2월 26일(금)~3월 1일(월): 3박4일

2.여행방법: 기러기투어여행사(총 480명. 관광버스 11대) 이용

3.동행인원: 6명(여행님, 설국님, 보라님, 파아란님, 블루홀님, 본인)

 

4.여행날씨

-2월 26일(금): 구름.

-2월 27일(토): 맑음. 시야 보통.

-2월 28일(일): 흐림. 비 살짝 내림. 저녁 때 승선이후 비.

-3월 1일(월): 비 온 후 그침.

 

5.여행일정

[제1일차: 2월 26일(금요일)]

-13:20 집 발

-13:40 면목역에서 설국님, 보라님 만남

-학동역에서 여행님 합류

-15:40 동인천역

-16:00 인천항 제1국제여객터미널 착(파아란님, 블루홀님 합류)

-화동명주Ⅵ호에서 저녁식사(선상식)

-19:00 인천항 발

-선내 이벤트 관람(초대가수 노래들음)

-숙박(405호실. 8인용, 2층 침대)

 

[제2일차: 2월 27일(토요일)]

-07:00 선내에서 아침식사

-08:30 중국 석도항 착

-약2시간 정도 걸려 하선 완료

-10:40 총11대의 전용차량 중 배정받은 7호차(현지인 가이드: 김은희씨) 발

-노산 입구에 도착했는데 출입통제하여 다시 이동함

-15:05 노산 거봉풍경구 입구 주차장 착

-15:32 셔틀버스 종점이자 케이블카 승강장 도착하여 케이블카 승차

-15:50 케이블카 종점(이제 순수 산행 시작)

-16:02 이문 통과

-16:05 쉼터 착 / -16:14 발

-17:50 케이블카 종점(셔틀버스 타는 곳) 착

-버스로 이동(13분 소요)

-18:50 노산 거봉풍경구 입구 주차장 착(거봉풍경구 산행종료)

-식당으로 이동하여 식사하면서 색스폰 연주듣고, 식사 마친 후 불꽃놀이 구경

-20:20 이동

-청도야경 구경

-21:40 호텔(양광신지대주점) 착(912호 숙박)

 

[제3일차: 2월 28일(일요일)]

-05:00 모닝콜

-06:10~07:00 아침식사(호텔식)

-07:35 호텔 발

-08:10 소어산 입구 착

-08:10~08:30 소어산 관광(15분 관광)

-08:35 소어산 입구 발

-10:18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휴식(비 조금 내림)

-12:22 석도의 식당 착(점심식사) / -13:20 발

-13:30 석도적산 입구 착

-적산명신, 장보고동상, 물불쇼(14:40~14:55) 구경

-15:15 주차장 착 / -15:25 발

-15:38 석도국제여객터미널 착

-16:20 화동명주Ⅵ호 승선

-22:00 출항

-선내에서 저녁식사 후 선상이벤트로 노래자랑

-405호에서 숙박

 

[제4일차: 3월 1일(월요일)]

-06:00 기상

-06:20~07:00 선내에서 아침식사

-10:30 인천항 도착

-11:20 입국수속 마치고 시내버스 승강장 착

-11:40 24번 시내버스 발

-13:22 서울역 착(추어탕 먹고 귀가)

 

 

날짜

지역

교통편

시간

행사 내용

제1일

2/26

(금)

인천

지하철

13:20

집 출발

16:00

인천항 제1국제여객터미널 착

화동훼리

19:00~08:30

(14:30 소요)

화동훼리(중국 배) 인천항 발

제2일

2/27

(토)

석도

전용버스

중국 석도항 착

10:40

석도항 발(하선시간 약 2시간 소요)

버스 내에서 점심식사

청도

15:05

노산 거봉풍경구 주차장 착

셔틀버스

15:32

거봉풍경구 버스종점(케이블카 승강장)

케이블카

15:50

케이블카 종점

17:50

거봉풍경구 버스종점(케이블카 승강장)

셔틀버스

셔틀버스로 이동(약 13분 소요)

18:50

노산 거봉풍경구 주차장 착

전용버스

식당에서 저녁식사

(색스폰연주 및 불꽃놀이 구경)

청도 시내 야경 구경

전용버스

20:20~21:40

호텔로 이동

21:40~

호텔 숙박

제3일

2/28

(일)

07:35

호텔 발

08:10~08:30

소어산 관광(15분 관광)

08:35~12:22

이동(소어산입구→석도)

석도

12:22~13:20

점심식사

13:20~13:30

이동(석도 식당→적산입구)

13:30~15:15

적산명신, 적산법화원(장보고유적지, 물불쇼)

15:25~15:38

이동(적산주차장→석도항)

화동훼리

16:20

화동훼리 승선(405호실)

22:00~10:30

화동훼리 이동(중국 석도항→인천항)

제4일

3/ 1

(월)

인천

셔틀버스

11:20

입국수속 끝

시내버스

11:40

24번 시내버스 발(동인천역에서 환승)

서울

지하철

13:22

서울역 남원추어탕에서 점심 먹고 귀가[끝]

 

 

 

6.여행후기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말이라는 것이 이번 첫 해외여행에서 받은 총평이다.

 

첫 해외여행지로 중국을 여행하게 되어 출발 몇 일전부터 청도 노산에 대해 인터넷검색을 해서 필자 나름대로 예습을 했다고 자부했건만 갔다 와서 지금 이 시간 후기를 쓰면서 생각해 보건데 코끼리의 「코」만 만지고 왔는데도 코끼리의「코」나마 제대로 만지고 못하고 온 거에 대한 아쉬움이 무척 크다.

 

이번 여행에서 받은 소감은 가이드의 역량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어떤 가이드를 만났느냐에 따라 보고 느끼는 감정이 엄청나게 틀려지기 때문이다.

기대가 컸던 첫 해외여행이니만큼 실망도 무척 컸다.

 

작년 12월에 기러기투어여행사에서 필자 핸드폰으로 문자가 날라 왔다. 『3.1절 황금연휴 중국 노산 등반문화제 3박4일 \299,000』

해외여행을 한 번도 하지 못한 필자로서는「순간, 이것이다!」 하며 필이 팍 꽂혔다.

그래서 저렴한 가격이라 많은 사람들하고 동행하고 싶어 소속 산악회와 타 산악회 홈피에다도 공지를 올렸다. 그러나 결국 6명의 회원님들하고만 동행하게 되고 2월 16일에 입금을 완료하고 출발일 만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렸다.

 

드디어 2월 26일(금요일), 중국 출발날짜의 아침 해가 떴다. 이날은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이 걸려있는 날이기도 했다.

출근해서 일찌감치 퇴근해 중국여행 준비를 마치고 집에서 편안하게 밴쿠버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를 구경한다. 곽민정(13위) 선수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 좋았는데 문제는 김연아였다. 회원님들과 약속한 시간이 점점 가까워져 할 수 없이 경기 보는 것을 포기하고 서둘러 지하철에 승차한다.

 

혹시나(위성DMB를 보는 사람이 없나 싶어) 하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김연아 경기를 시청하는 사람을 보고는 얼른 그 앞에 서서 곁눈질 시청을 한다. 핸드폰 액정이 너무 작아 조금 힘들게 봤지만 실수는 안하는 것 같아 다소 안심이 놓였다.

결국 경기가 끝나 세계신기록(78.50+150.06[기술점수 78.39+프로그램 구성점수 71.76]=합계 228.56)을 세웠다는 소리를 듣고는 「앗 싸~」하며 환호를 지른다.

 

한국 선수단은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2개로 역대 최다 메달을 수확했고, 종합 순위에서도 동계올림픽 출전 사상 최고인 5위에 올랐다. 한국은 전통적인 효자 종목인 쇼트트랙 뿐 아니라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빙상 종목 그랜드슬램을 달성, 동계스포츠 강국으로 입지를 다졌다.

 

첫 번째 약속장소인 면목역에 도착하여 보라님과 재회한다. 바로 옆에 설국님이 어느새 나타나 반갑게 인사한다.

세 사람이 함께 지하철타고 이동하다가 학동역에서 여행님이 합류하고, 온수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여 동인천역에 15:40분에 도착한다.

 

미리 도착해 있던 파아란님과 블루홀님은 점심을 마저 먹고 버스타고 온다고 해서 먼저 택시타고 인천항 제1국제터미널에 도착하니 택시비가 6천원 나왔다.

 

터미널 여객대합실에는 기러기투어여행사에 함께 동행하는 사람들로 무척 복잡하다. 화동명주 선사가 있는 3층으로 올라가 기러기투어 전과장님을 만나 배표와 일정표 등과 선물로 등산양말을 받고는 다시 대합실로 내려와 회원님들과 담소를 나눈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파아란님과 블루홀님이 나타난다.

 

시간이 흘러 입국수속을 받고는 중국 스다오(석도 石島)행 화동훼리에 올라간다. 배정받은 선실인 405호를 찾아가 짐을 내려놓고 잠시 담소를 나누다 선상식으로 저녁을 먹고는 일몰 사진을 촬영하려고 갑판으로 올라가 주변 경관과 일몰사진을 촬영하는데 구름이 잔뜩 끼어있어 좋은 사진을 건지지는 못했다.

 

 

 

 중국 지도

 

 

 

19:00분에 중국선적 화동명주6호는 스다오(석도)항을 향해 인천항을 출발한다. 인천대교를 지나갈 때 인천대교의 야경을 촬영하느라 잠시 부산하게 움직인다. 생각보다 인천대교의 야경이 별로라서 조금은 실망한 체 선실로 되돌아간다.

 

2층 침대 4개로 꾸며져 있는 405호실은 정원이 8명이라 다음카페 「3050산우리산악회」(모두 10명이 참석했는데 나머지 2명이 우리 숙소인 405호로 왔다)의 회원 중 2명이 숙소를 함께 쓰게 되었다.

 

 

 

 화동훼리, 일몰사진, 인천대교의 야경 모습

 

 

필자는 국내 배 여행을 많이 다녔다. 통상 국내 배의 대부분이 마루바닥으로 돼있어서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서 간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또한 고스톱도 즐기며 여행을 하는데 국제선인 화동훼리는 통로가 무척 좁아 4명이 둘러앉기가 용이하지가 않다(화동훼리도 마루바닥실[다인용실]이 있다). 그러나 침실을 침범하여 걸쳐 앉으면 4명은 고스톱을 즐길 수가 있었다. 하여 고스톱 멤버를 모집하는데 회원님들이 응해주질 않는다. 사실 고스톱을 제대로 칠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애원하다시피 하여 여행님과 파아란님 필자, 이렇게 세 사람이 고스톱을 잠깐 즐기는데 모두 다 초보실력들이다. 뒤이어 블루홀님과 보라님이 잠깐 합류해서 즐겼지만 초보들의 잔치라 재미가 없다. 설국님은 아예 손사래까지 해가며 화투장은 만지지도 않는다. 다만 구경하는 성의(?)는 보여준다.

 

그렇게 재미없게 고스톱을 하고 있는데 안내실에서 멘트가 들려온다. 선상이벤트가 있으니 참여 해달라는 내용이다. 그래서 서둘러 고스톱 1라운드를 마친다. 결산을 보니 자칭 타짜(?)인 필자가 돈을 다 잃었다. 초보한테 다 잃었으니 어찌된 영문일까?

다행히(?) 돈을 딴 여행님이 필자가 불쌍해 보였는지 다 돌려준다. 1만원의 거금을!

 

식당으로 이동해서 이벤트를 구경하는데 초청가수의 노래가 계속 이어진다. 재미가 없어 이내 회원님들하고 숙소로 돌아온다.

숙소로 들어와서 다시 고스톱 2라운드에 들어가려는데 이번 역시 응해주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동갑내기 파아란님과 둘이서 맞고에 들어간다. 이번에 말로 자칭 타짜(?)의 실력을 보여줬다. 새벽 1시 50분에 파아란님이 기권하는 바람에 고스톱을 접었다. 역시 돈 1만원을 따서 되돌려주는 은공(?)을 베풀었다. 이미 나머지 4사람(타 산악회 2명은 고스톱에 끼워주지 않는 바람에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은 잠자리에 들어있었다(근데 워낙 소리를 질러가며 고스톱을 쳤기 때문에 깊은 잠은 들지 않았으리라 짐작을 해본다).

 

필자는 원래 방배치가 3호였는데 5호는 소음(잡음)이 심해 파아란님과 자리를 바꿨다. 덕분에 3050산우리산악회 소속 회원님의 코고는 소리와 이가는 소리에 몇 번씩이나 잠을 설쳤다. 필자 바로 위층에서 잠을 잔 설국님도 잠을 설쳤다고 한다.

이렇게 중국여행 첫날은 호기심 반 설렘 반으로 후딱 지나가 버렸다.

 

 

다음날,

중국여행 이틀째가 됐다.

 

아침일출을 보려고 했는데 조금 늦게 일어났다. 얼른 갑판 쪽으로 나가 상황을 살펴보니 구름이 잔뜩 끼어있어 틀렸구나 생각을 하고는 이내 다시 들어와 부족한 잠을 청하다가 다시 일어나서 볼일을 보고는 아침세면을 한다.

세면을 마치고 아침식사를 하려고 회원님들하고 식사하러 아래층의 식당으로 내려간다.

 

아침식사를 하는데 설국님이 일출사진을 보여준다. 그나마 아쉬운 대로 구름사이에 낀 일출사진을 어느새 찍은 모양이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숙소(405호)에서 다시 침상에 들어 눕는다. 마땅히 달리 할 것도 없고 잠도 부족하고 해서.

 

엊저녁 7시에 인천항을 출발한 화동명주Ⅵ(華東明珠Ⅵ)호는 14시간 30분 걸려 08:30분에 중국 스다오(石島)항에 도착한다. 참으로 지겨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다. 입국수속은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는지.

 

입국수속을 하는데 앞으로 승차하게 될 버스 번호별로 하선을 하기 시작한다. 하선하는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버스번호 순서대로 부르지를 않는다. 그래서 순서를 모르는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미리 입구 쪽에 한꺼번에 모여 있어 호출된 여행객들이 그곳을 빠져나가는데 애를 먹는다. 여행사 측에서 여행객에게 미리 하선순서를 예기했으면 선실에서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다가 신호가 오면 하선하면 무질서하지도 않고 질서있게 빠져 나가 시간도 많이 단축할 수가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니 7호차 호출방송이 나온다. 선실(405호)에서 나와 출구 쪽으로 내려가려고 하는데 역시 입구 쪽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어 많은 사람들 사이를 어렵게 빠져 내려간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다시 영문 알파벳 순서대로 기다린다. 필자는 M이었다. M번호가 모두 14명이어서 14명이 함께 움직여서 입국심사(여권검사)를 받는데 인민군 복장 같은 공안(?)의 모습이 「여기가 중국이구나!」를 느끼게 만든다.

결국 시간이 꽤 흐른 후에 하선을 했다.

 

예전에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중국 사람들의 시간개념이「잠깐은 세 시간, 조금은 네다섯 시간, 조금 더는 열 시간」이라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뒤따라 내려오던 여행님이「화동명주」선박과 여객터미널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는데 중국 경찰인지 공안인지 모르지만 정복 입는 사람이 사진을 제지하며 소리를 지른다. 순간 놀라서 화들짝 거린다.

배에서 내려 셔틀버스를 타고 대합실을 거쳐 기다리고 있던 7호차(차량은 모두 11대)에 올라탄다. 7호차는 51인승 버스이다(다른 차들은 몇 인승인지 확인 못했음).

 

10:40분이 돼서야 첫 번째 여행지인 청도 노산으로 향한다.

 

 

[중국에 대하여]

정식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China)이다.

수도는 베이징[北京]으로 중국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국토 범역은 북위 4˚ 31'에서부터 북위 53˚ 52'까지 남북 5,500km, 동경 135˚ 2'인 우수리강(江)과 헤이룽강의 합류점에서부터 파미르고원까지 동서 5,200km에 달한다.

 

북동쪽으로 한국·러시아연방, 서쪽으로는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남서쪽은 인도·파키스탄·네팔·부탄, 남쪽은 미얀마·베트남·라오스, 북쪽은 몽골·러시아연방과 각각 국경을 이루는데 그 국경선의 총 길이는 2만 280km에 이른다.

중국 또는 중화라는 국명은 3,000년 전 서주(西周)에서부터 사용되어 왔는데, 중(中)은 중심이라는 뜻이고 화(華)는 문화라는 뜻으로, 세계의 중심 또는 문화의 중심이라는 뜻이다.

 

중국은 강역이 넓고 하천과 산이 많으며 육지 면적 약 960만㎢, 대륙 해안선은 18,000여㎞에 달한다.

광활한 해역에는 5,000여 개의 섬이 분포되어 있는데 그 중 해남도가 가장 크다.

중국은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층계형으로 바다를 향해 경사져 있다.

장강과 황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큰 강이며 중국 강 하천의 총 길이는 22만㎞에 달한다.

중국의 산천은 웅장하고 아름다워 끊임없이 이어진 산맥, 길게 이어진 산자락과 드높은 고원, 넓게 펼쳐진 평원이 있으며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와 경사가 완만한 구릉이 있다.

산지대 구릉과 고원은 전국 육지 면적의 65%를 차지하며 2,000여 개의 크고 작은 천연호수들이 전국에 걸쳐 널리 분포되어 있다.

 

중국은 통일된 다민족 국가로 한족, 만족, 몽고족, 회복, 장(티베트)족, 위구르족, 묘족, 이족, 쫭족, 부이족, 조선족, 뚱족, 요족, 바이족, 투자족, 라구족, 수이족, 둥상족, 나시족, 징퍼족, 키르키즈족, 투족, 다우르족, 머로족, 창족, 부랑족, 살라족, 모난족, 거로족, 시버족, 아창족, 푸미족, 타지크족, 어원커족, 더앙족, 보안족, 위구족, 징족, 타타르족, 두룽족, 오로죤족, 허저족, 먼바족, 뤼바족, 지노족 등 56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한족 인구가 가장 많아 인구의 92%를 차지하고 있으며 중국 인구는 12억으로 전 세계 인구의 22%를 차지하고 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창설 이후 중국은 사회주의국가로 존속해왔다.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제4조는 “중국은 공산당의 영도 아래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毛澤東]사상, 인민민주주의독재와 사회주의의 길을 견지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상 중국의 최고권력기관은 전국인민대표대회이며 전국인민대표대회는 국가의 대내외 중요사안에 관한 최고의 의결기구로, 각 지역과 인민해방군에서 선출된 2,900여 명(최고 3,500명)으로 구성된다.

대내외적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최고권력자인 국가주석과 중앙군사위원회의 주석은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추천에 의해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선거되고 승인 받는다.

 

국무원은 중앙인민정부라고도 하며 산하 각성(省)과 자치구에 지방인민정부를 두고 있다.

국무원은 중국의 최고 행정기관으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결정된 중요사안을 집행한다.

국무원은 국가행정에 관한 법률의 결의나 결정, 예컨대 국민경제와 사회발전계획, 국가예산 등은 국무원이 집행한다.

국무원은 산하에 29개의 중앙행정부처를 거느리고 있으며, 총리 1명, 부총리 4명, 국무위원 5명, 비서장 1명, 각처 부장 23명(중국인민은행장 포함)을 둔다.

 

국무원 총리는 국가 주석의 추천으로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승인을 받아 임명되며, 국무원 산하 부총리와 국무위원은 총리의 지명으로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인준을 받아 임명된다.

현재 중국의 국가 주석은 후진타오이다.

 

중국의 행정 구획은 기본적으로 성, 현(시), 향 3급 행정구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전국은 성, 자치구, 직할시, 특별행정구로 구분되어 있으며 현재 중국은 23개 성(대만을 23번째 성으로 간주 함), 5개 자치구, 4개 직할시, 2개 특별 행정 구역으로 나뉜다.

[자료 출처: 중국국가여유국 서울지국 홈피. 주소 http://www.cnto.or.kr/]

 

 

◈면적 960만(9,597,000)㎢. 세계 3번째, 한반도의 44배, 남한면적의 96배 크기이다

◈국경선 총길이 : 20,280㎞(한국,러시아,몽골,중앙아 3국,아프카니스탄,파키스탄, 인도,네팔,부탄,미얀마,라오스,베트남 등 14개 국가와 육지접경)

 

◈행정구역(行政區域)

-省級 : 22성, 4직할시, 5자치구, 2특별자치구 (중국은 대만을 23번째 성으로 간주)

 

[22개 성]

☞ 화북구 : 하북성, 산서성

☞ 서북구 : 섬서성, 감숙성, 청해성

☞ 동북구 :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 화동구 : 강소성, 절강성, 안휘성, 강서성, 복건성, 산동성

☞ 중남구 : 하남성, 호북성, 호남성, 광동성, 해남성

☞ 서남구 : 사천성, 운남성, 귀주성

[4직할시]: 북경, 천진, 상해, 중경

[5자치구]: 내몽고, 신강위구르, 서장, 광서장족, 영하회족 자치구

[2특별자치구]: 홍콩, 마카오

※ 1997.7.1,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인수받아 특별 행정구 설치

※ 1999.12.20, 포르투갈로부터 마카오 인수받아 특별행정구 설치

 

◈인구 총수(人口 總數) : 1,330,044,605 (2008년 6월)

◈한족(漢族) : 1,099만명(91.02%)

◈소수민족(少數民族) : 55개민족 8,579만명

◈장족:1550만명, 만주족:980만명, 회족:860만명, 묘족:740만명, 조선족:192만명

[인터넷에서 발췌]

 

 

7호차에 배정받은 현지 가이드인 김은희(28세)씨가 본인 소개를 한다.

시간이 꽤 지체되어 분위기가 서먹했던지 아침부터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반전하자고 하며 본인이 먼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한국노래(필자가 노래를 잘 몰라 노래제목을 기억하지 못한다)를 참 잘 부른다.

 

7호차(45명 탑승)에는 산악회 4팀이 섞여있었다. 첫 번째 팀이 가장 먼저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는 다음 팀이 노래를 부르고 이어 새싹팀 순서가 돼서 보라님이 대표로 나간다. 보라님이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노래방 화면이 없는 곳에서 더군다나 반주없이 생음악을 그렇게 잘 부르는 것을 처음 보았다. 앵콜곡까지 한 곡 더 뽑았다. 새싹산악회의 명예를 드높인 보라님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제 분위기가 조금 올라가는가 싶더니만 이내 다음 팀(28인승산악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결국 노래 부르기는 썰렁하게 10여 분만에 끝났다. 어쨌거나 분위기를 살리려고 노력 하는 것에는 찬사를 보낸다.

 

버스는 노산을 향해 이동한다.

버스 내에서 현지인 가이드는 중국에 대해서 대충 설명을 한다.

중국에는 23개의 성(省)이 있고, 이곳이 산동성 위해시라는 것이다.

중국인이 평생가도 3가지를 못하는데 그것은 말(언어), 여행, 음식이라는 것이다. 넓은 땅덩어리 때문에 생긴 일들이다. 하긴 좁은 땅덩어리의 우리나라도 평생 다 답사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또한 서태후가 죽을 때 10대의 피부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3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첫째로 실크나 옥으로 만든 옷을 입고, 둘째는 매일 잘 때 진주스프를 먹었고, 셋째로는 매일 저녁 젊은 남자의 기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 젊은 남자는 다음날 죽인다고 한다.

 

 

[산동성에 대하여]

면적: 15만 3000㎢

인구: 9089만 명

성도: 제남[濟南]

 

황화의 하류에 위치한 산동성은 유구한 문화의 발상지로서 약 4,000년 전 대문구문화의 용산문화를 창출했다.

지리적으로는 북쪽은 보하이해[渤海], 남동쪽은 황해(黃海), 남쪽은 장쑤성[江蘇省], 안후이성[安徽省], 남서쪽은 허난성[河南省], 북서쪽은 허베이성[河北省]에 접해 있다.

 

동반부가 바다에 둘러싸여 있어 기후는 해양성 기후를 나타내 여름에는 온화하여 청도[靑島] 등은 피서지로 이용되며 겨울에는 한류의 영향으로 하천이 얼어붙기도 한다.

 

산동 지역은 서주 춘추 전국시대의 제(齊)나라와 노(魯)나라의 지역으로 제노(齊魯)문명을 형성했으며 산동성은 관광자원이 매우 풍부하여 태산 풍경구는 이미 세계문화와 자연 이중 유산명부에 수록되었고 청도, 연대, 위해, 봉래 등의 유명한 해양관광명승지도 있다.

 

세계적인 국제도시로 부상하는 산동성의 칭다오항의 컨테이너 화물 처리량이 2,000년에는 100만톤을 돌파하여 상해ㆍ심천에 이어 중국 3대 컨테이너 화물 처리항으로 부상하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생각나는 것이 별로 없다.

10:40분에 석도항을 출발한 버스는 드넓은 중국 땅을 지나가는데 차창에서 바라본 중국집들의 지붕이 한결같이 빨간색이라는 것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중국인들은 유독 빨간색을 좋아하나보다.

 

버스는 작은 도시를 지나가는데 길가에 따라 야채와 과일 등을 파는 상인들의 좌판이 죽 늘어선 시내거리는 내일(2월28일)이 정월대보름이라 장을 보는 사람들이 꽤나 있어 보인다. 가이드 예기로는 장날이라서 좌판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의 5일장과는 다르게 3일장이라고 한다.

 

고속도로에 진입한 버스 내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는다.

처음 답사한 중국의 풍경을 놓치지 않으려고 차창 쪽 풍경을 끊임없이 지켜보다가 밀려오는 잠에 어쩔 수없이 꾸벅꾸벅 졸다가 갑자기 버스의 클락숀 소리에 기겁을 하며 잠에서 깬다. 콘테이너박스를 실고 달리던 트럭이 차선을 바짝 끼고 운행하고 있어 1차로를 달리던 버스가 클락숀을 누르며 지나가는 것이다. 함께 버스에 탄 대부분의 등산인들이 놀라 소리를 지른다. 이렇듯 버스기사는 중국내에서는 베테랑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사람이 느끼는 운전 실력은 난폭운전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가이드 말로는 중국인들의 운전 실력은 예술이라고 한다. 곡예운전을 많이 한다는 예기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중간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쉬는데 고속도로 휴게소도 규모가 무척 작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얼마간 더 진행을 하다가 청도의 노산 입구에 도착한다.

 

회원들이 내리려고 하자 가이드가 제지를 한다. 내리지 말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한참을 기다리니 어쩐 일인지 차를 돌린다.

이곳은 입산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식으로 표현한다면 산불예방기간의 통제지역이라고나 할까? 암튼 버스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다시 차를 돌려 반대쪽으로 진행하는데 시간은 2시가 훨씬 넘어선지 오래다.

3시가 가까워지자 등산객 중 한 사람이 기러기여행사의 전과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한다. 주변사람들도 웅성대기 시작한다.

 

결국 3시5분이 돼서야 노산 입구의 주차장에 도착하는데 이미 도착해 있는 버스들을 보고는 기가 막힌다.

이미 9대의 버스가 주차되어 있고 마지막으로 2대가 도착하는 것이다.

 

결론을 예기하자면 9대의 버스는 행선지를 이미 알았던 것이고 필자가 탄 7호차와 5호차(확실하지 않음)는 행선지를 몰라 우왕자왕했던 것이다. 나중에 가이드의 예기로는 내비게이션이 고장 났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운전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내비게이션에 의존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고, 더군다나 정확한 행선지를 알아야 할 가이드는 엉뚱한 소리만 해대고….

 

암튼 급하게 되었다. 정해진(예약된) 행사 일정이 있어서 노산 산행을 내일로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서둘러 셔틀버스에 올라탄다. 그런데 좌석이 꽉 찼는데도 셔틀버스는 출발을 하지 않는다. 아까 기러기투어의 전과장님하고 통화를 한 그 분이 심하게 항의를 한 모양이다. 본인은 산행을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시위를 하고 있는데 모양새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나중에 전과장님하고 허공다리에서 만났을 때 물어보니 그 분도 산행을 했다는 예기를 들었다).

 

 

노산 거봉풍경구 사진

 

 

우여곡절 끝에 버스는 출발한다.

버스는 S자의 굽이굽이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는데 중간 중간 새겨진 대형벽화며 대형조각상에 감탄을 한다. 가끔씩 걸어서 내려오는 사람도 목격된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걸어 올라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올라가는 길목에 태극과 팔괘가 그려져 있다. 이곳에서 태극기의 기초(태극기는 4괘, 이곳은 8괘이다)가 이뤄 졌다고 한다.

15:32분에 넓은 공터의 버스 종점에 도착한다.

케이블카 승강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쪽 방향은 케이블카가 곤돌라이고 반대쪽 방향은 리프트로 운영되는 것 같다.

 

 

 

 노산 거봉풍경구의 허공다리 모습

 

 

 노산 거봉풍경구의 허공다리에서 내려온 다음 허공다리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했다.

 

 

[노산(崂山, Lao Shan, 1,133m)에 대하여]

노산은 청도시 동쪽에 있는 嶗山區에 있으며 청도시 중심지에서 40km 떨어져 있다. 바다와 연접해 있어서 "海上의 名山"이라 부르며 중국 국무원이 정한 國家重点風景名勝區이다. 동쪽과 남쪽은 바다로 이어져 있고, 서쪽은 청도시와 연접해 있다. 면적 446㎢ , 해안선 길이 87.3Km이고 主峰인 巨峰은 해발 1,132m이다.

1억 년 전 백악기(白堊期)에 형성된 산으로 거봉을 중심으로 산맥이 사방으로 연이어진 큰 산이다. 노산의 지맥은 거봉지맥(巨峰支脈), 삼표산지맥(三標山支脈), 석문산지맥(石門山支脈), 오산지맥(午山支脈)이 있다. 노산은 道敎의 명산으로도 유명하다.

 

노산의 관광코스는 3개로 분류할 수 있다.

-남쪽코스: 태청궁(太淸宮)→명하동(明霞洞)→상청궁(上淸宮)→용담폭포(龍潭瀑布)

-동쪽코스: 태평궁(太平宮)→멱천동(覓天洞)→나라연굴(那羅延窟)→백용동(白龍洞)→유용동(猶龍洞)→화엄사(華嚴寺)→백운동(白雲洞)→기반석(棋盤石)

-북쪽코스: 북구수윤곡(北九水潤谷)→낙타봉(駱駝俸)→장군고(將軍崓)→금색망일석(金色望日石)→비래석(飛來石)→비봉애(飛峰崖)→연운애(連雲崖)→조음폭포(潮音瀑布)→울죽암(蔚竹庵)

이상의 3개 코스를 따라가면 노산의 진면목을 대부분 구경할 수가 있다. 이중 하루코스로 대부분 남쪽코스를 선택한다.

이곳 노산은 우리나라 태극기의 기초가 여기서 천 년 전에 만들어진 곳이다.

곳곳에 태극기의 4괘가 그려져 있고(이곳은 8괘) 주역의 기초가 여기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중국 진시황제는 불로초를 구할 목적으로 노산에 사절단을 자주 파견했는데,

이때마다 백성들의 노고가 많아 산이름에 노(山변에 勞)자가 들어있다고 한다.

정상을 둘러싸고 있는 암석, 동굴, 폭포, 오솔길은 절경을 이루고,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 한 폭의 웅장하고 수려한 그림 같으며, 중국 정부에 의해 가장 아름다운 관광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노산 주봉은 거봉(巨峰)으로 해발 1,133m, 18,000만 km의 중국 해안선에서 최고의 산봉우리이며, 우리나라 관악산과 산세가 비슷한데 훨씬 험하며 바위가 특징있고 높이가 두 배 이상이다.

 

노산은 특히 도교 사원으로 매우 유명하다. 등산 당일 시간에 쫒겨 사원을 보지 못했지만 셔틀버스로 오르면서 길가 벽면에 도교 조각품을 보는 것으로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노산은 도사들이 도를 학습하고 무술을 연마하는 곳이고, 노자초상을 모시고 있다.

특히 이곳 산동성 출신이 공자, 맹자, 손자, 묵자 등 기라성 같은 인물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노산 거봉풍경구에 대하여]

노산 중남부에 위치한 거봉 풍경구는 거봉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거봉 풍경구에서 산, 바다, 숲, 기이한 봉우리, 기석, 기상변화 그리고 인문적인 경관이 잘 어우러져 웅장하고 아름다운 정상 장관을 이루고 있다. 7.4평방미터의 면적에는 上十八盤(상십팔반), 黃花頂(황화정), 黑風口(흑풍구), 虔女峰(처녀봉), 五指峰(오지봉), 巨峰(거봉), 比高崮(비고고), 靈旗峰(영기봉), 一線天(일선천), 自然碑(자연비), 慈光洞(자광동), 天乙泉(천을천), 柱後高(주후고), 巨峰口(거봉구), 天馬峰(천마봉), 迷洞(미동), 滑溜口(활류구) 등 총 17곳의 명소가 흩어져 있다.

“거봉욱조(巨峰旭照, 거봉일출)”는 “노산의 12개 유명 경관”중의 하나로 꼽힌다.

 

1. 거봉(巨峰)

只有天在上,下無山與齊;舉頭紅日近,回首白雲低。身在虛無縹緲間 ,山海城島常依稀。

이게 바로 노산의 정상인 거봉 이다.

 

거봉은 “노정” 이라고도 불리는데 노산의 상상봉으로서 해발 1,132.7m로 중국 만리 해안선의 최고봉이다.

거봉 정상은 기둥모양의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면적이 약 300㎡ 이다. 특히 최정상에 있는 거대한 돌 하나가 우뚝 솟아있어 날카로운 칼처럼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인공으로 만든 돌계단을 따라 전망대에 오르면 “아! 이보다 더 높을 순 없겠네”라는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憑高目斷週四顧,萬壑千岩下無數,匝地洪濤吞島嶼,三山不見,九霄凝望,似入鈞天去。”라는 고대 시가가 만든 경지와 똑같다.

 

정상에서 멀리 바라보면 바다와 산이 서로 어우러진 경치가 눈에 들어오고 남쪽과 동쪽으로 드넓은 바다에 배들이 떠있으며, 북쪽과 서쪽으론 산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도시와 마을이 구름 사이에 보이다가 사라진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주변에서 푸른 봉우리들이 가지각색을 하고 있다.

정상 남측에 청나라 때 석각인 “동해기관”이 새겨져 있다.

 

2. 태문(兌門)

지금 우리가 이미 대문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이 길은 “자강로 (自强路)” 라고 하는데 이 이름은 “역경(易經)”중 “天行健,君子以自強不息”라는 문구에서 딴 것이다. “태”는 팔괘 중의 하나로 양효 2개가 음효 하나를 받쳐주는 형태로 되어있는데 가정에 있어서 막내 딸을, 날씨에 있어서 “흐림”을, 방위에 있어서 “서쪽”을 자연계에 있어서 “늪”을 대표한다.

 

태문의 대련을 보면 상련은 “學聚問辯朋友講習”, 하련은 “寬居仁行君子自強”이다. “역경”에서 “兌”는 “기쁨”과 “구설(口舌)”의 뜻을 가진다. “朋友講習”는 《易經•象傳》에서 유래된 것이고 “學聚, 問辯, 寬居, 仁行”은《易經•文言篇》에서 딴 것이다. 이 대련을 풀면 남들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하고 토론과 강습에서 학식을 부단히 풍부하게 하고 향상시킴으로 써 지식 공부에 기쁨을 얻으라며 속이 넓고 행동을 어질게 하라는 뜻이다.

 

태문에서 서쪽으로 멀리 바라보면 해발 1,000m가 안 되는 소거봉 아래에 龍泉崮, 麥石屋, 茶澗, 狼山, 觀台峰, 萬卷書, 紗帽峰, 元帥崮 등 봉우리가 천군만마처럼 위엄 있게 줄을 지어있다. 이들 봉우리 밑의 비옥한 평지에서 예로부터 동이족(東夷族) 선민들이 살고 있었다. 노산 주변에서 출토된 다량의 선사문물들이 바로 4,000여 년 전에 선민문화가 있었다는 증거물이다.

 

3. 곤문(坤門)

강습로(講習路)을 따라 올라가면 곤문이 나온다.

 

“곤”은 팔괘 중의 하나로 음효 3개로 구성되는데 가정에 있어서 모친을, 육기(六氣) 에 있어서는 “태음(太陰)”을 자연계에 있어서는 만물을 양육한 “땅”을, 방위에 있어서는 “남서”를 대표한다. 거봉 유람구역에서 곤문이 딱 거봉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곤문의 대련은 상련 으로“身過斯門直方大”이고 하련으론 “人居坤位自含章”이다. 여기의 “直方大”는 《易經》坤卦文二爻중의 “直方大,不習無不利”에서 딴 것이고 “自含章”은 六三爻 중의 “含章可貞”을 딴 것이다.

그 뜻으로 땅 어머니의 도량이 매우 넓어 세로로 가던 가로로 가던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하고 사심이 없고 어질게 모든 생명을 양육해 인후하고 정직하며 선량한 본성을 보여줬다. 사람이 이런 정신을 이해하고 따라하면 일을 정직하고 선량하게 할 수 있고 좋은 미래를 얻을 수 있다.

 

여기서 남서쪽으로 멀리 바라보면 “巨峰十萬八千丈,海東來接混茫”의 기세를 느낄 수 있고 산맥과 바다가 만나는 해안선이 끝없이 어이지는 것, 그리고 노산에서 뻗어나온 오산(午山), 부산(浮山) 및 시내 산들을 구경할 수 있다.

 

4. 이문(離門)

자연비(自然碑)에서 위로 올라가면 나오는 이 문은 바로 노산 팔괘문 중의 이문이다.

 

“이”는 《易經》 팔괘 중의 하나로 양효 2개가 음효 1개를 가운데에 감싸는 형태로 되어 있는데 가정에 있어서 “딸(아름다움 과 밝음을 상징함)” 육기(六氣)에서 “厥陽”을 자연계에 있어서 불을 대표한다. 불은 인류로 하여금 몽매 상태에서 문명으로 발전되게 한 최초의 도구일 뿐 아니라 인류가 자신을 보호하고 맹수를 쫓아낸 친구이다.

 

그리고 방위에 있어서 “정남” 방향을 의미 하는데 북방구에 사는 중국인에게 태양이 항상 남쪽에 있듯이 이문은 마침 거봉의 정남 방향에 있다. 그 대련을 보면 상련은 “乾坤知造化,登易學堂奧,瞻識無礙”이고 하련은 “天地任作為,入數術門庭,悟法有方”이다. 그 뜻을 풀어보면 대자연이 변화의 법칙을 좌우 하고 있는데 이들 법칙은 많은 이에게 너무 심오해 보이지만 역학을 제대로 배우면 거시적인 세계나 미시적인 세계의 아주 조그만 변화도 눈에 잘 들어온다고 한다. 이문에서 앞으로 보면 거봉이 보일락 말락 웅장한 자세를 하고 있고 외쪽으로 보면 거봉 밑의 비고고(比高崮)와 오른쪽에 있는 영기봉(靈旗峰)이 2개 거대한 돌기둥처럼 거봉 정남쪽의 가장 넓은 산문(山門)을 형성하고 있다. “石門高聳鬱嵯岈, 煙雲深處寂無嘩.”는 시구처럼 노산 거봉이 신비로운 베일을 벗기고 넓은 가슴을 열어 여행객이 “生生之謂易”의 위대한 역학의 전당으로 오는 것을 환영하고 있다.

 

5. 손문(巽門)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은 “여정로(麗正路)”라고 한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면 공중에 떠있는 듯한 누각의 복도처럼 생긴 것 이 바로 손문이다.

역경 팔괘 중 하나인 “손”은 양효 2개가 위에 있고 음효 1개가 밑에 있다. 가정에 있어서 “장녀”를, 방위에서 “남동” 방향을 자연계에 있어서 “바람”을 상징 한다. 바람은 천지간에서 사방으로 치달려 식물들로 하여금 번식할 수 있게 하고 가뭄이 든 땅에 비를 가져온다.

 

상나라 때부터 “사풍(四風)”이라는 단어가 나왔고 한나라 때 “팔풍(八風)”이라는 말도 나왔다. 이들 단어가 사시사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손문의 대련은 상련으로 “八卦八門千古靈秀” 인데 바람이 천지사방에서 한가롭게 거닐어 천만년전부터 내려온 천지의 영기(靈氣)를 보여준다는 뜻이고 하련은 “四象四德萬物更新”으로 바람이 각 계절에 만물 생성에 대한 기여를 찬양하는 것이다.

손문에서 복도를 따라 올라서면 영기봉 정상이다.

여기는 노산을 구경하기 아주 좋은 또 다른 곳이다.

 

6. 진문(震門)

“진”은 역시 역경 팔괘 중의 하나로서 위에 음효 2개, 아래에 양효 1개로 구성되어 있다.

 

방위를 따지면 “동방”이고 가정에 서 “장남”이며 자연계에서 “천둥” 을 상징한다.

“천둥” 은 빠르고 용맹스러우며 공정하다. 옛날 사람의 마음속에는 절친한 땅 어머니와 높고 높은 하늘 아버지 외에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천둥이라고 한다. 사나운 맹수도 천둥이 치면 벌벌 떨기 때문이다.

 

진문의 대련을 보면 상련은 “海濤拍岸疑雷至”이고 하련은“霧氣拂面是飛雲”이다. 즉 바람타고 날아온 안개와 한 몸이 되면 바다소리, 숲소리, 그리고 바람소리가 다 들리고 “道力神功不可言,生成萬化獨超然”의 정취를 느끼리라는 뜻이다.

 

7. 간문(艮門)

간문으로 가는 길이 “치부로(致富路)” 인데 길가에 거대한 화강암이 늘어서 있다. 간문은 크지 않다.

 

문 양쪽의 대련을 보면 상련은 “歎艮門山重,望似無路”이고 하련은 “聽林中松濤,頓開九天”이다. “간(艮)”은 역경 팔괘 중의 하나로 서 위에 양효 1개 있고 그 아래에 음효 2개가 있다. 가정에서는 작은아들을, 자연계 에서는 “산” 을 방위에서는 “북쪽”을 대표한다.

 

산은 땅의 골격이고 강인한 성격을 가진다. 그리고 산이 없으면 동굴도 없을 것인데 동굴은 초기에 인류 및 다른 짐승들이 사는 집이었다.

《易經•系辭》에 “上古穴居而野處”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우리 조상들이 동굴에서 살았다는 뜻이다. 이밖에 산이 없으면 돌도 없을 것이고 정말 그러면 우리 조상들이 많이 썼던 최초의 도구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산은 인류 최초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다.

 

8. 감문(坎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광명로(光明路)라고 하는데 왼쪽의 높은 산은 단로봉(丹爐峰)이고 단로봉 북쪽의 이 산문은 바로 감문이다.

 

“간(坎)”는 역시 역경 팔괘 중의 하나로 정북방에 있다. 음효 2개가 양효 하나를 그 사이에 안고 있는 형태의 간은 가정에서 “두번째 아들” 을, 자연 계에서는 물을 상징한다. 모두가 알고 있듯 이 물은 생명의 요람이고 모든 생명이 살아가는 필수조건이다. 다양한 형태로 존재 하는 물이 하늘과 땅 사이에 쉬지 않고 계속 돌아다녀 돌에 구멍을 내듯이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기는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물의 그 온순한 배후에 알수 없는 위험이 도사린다고 하여 “坎為水(감은 물이다)”, “坎為險陷(감은 위험한 덫이다)”의 관념이 나왔다.

 

거봉 북쪽에 노산에서 해발이 가장 높은 천을천(天乙泉, 일명 原泉)이 있는데 이는 중국 고대 선현(先賢)들의 “天一生水”이념에 딱 부합한 것이다. 감문의 대련으로 상련은 “草木凝卦聚神氣”이고 하련은“海天呈爻演道源”이다.

자연 중의 풀과 나무들이 다 생명을 갖고 있고 아주 미세한 생명체마저도 자연의 신비로움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9. 건문(乾門)

건문은 북서쪽의 오지봉(五指峰)의 손가락 사이에 위치해있어서 멀리 바라보고 절을 올릴 수 있으나 올라가지는 못한다.

“건(乾)”은 역경 팔괘에서 수위를 차지하는데 양효 3개로 구성되어 있다. 가정에 서는 부친을, 나라에서는 군주와 황제를 육기에서는 태양을, 자연계에서는 하늘을 또는 사람이 막을 수 없는 요소를 상징한다.

 

건문의 대련은 상련으로 “門射祥輝領八卦”이고 하련으로 “道湧吉光證三才”이다. 역학 이념에 있어서 “건(乾)”은 팔괘 중의 첫 번째 로서 “元, 亨, 利, 貞”등 상서로운 뜻이 있고 그리고 “太陽”과 “太陰”이 다 “태극(太極)” 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중국 고대 철학인 “太極生兩儀,兩儀生四象,四象生八卦”와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의 근원이기도 해서 “領八卦, 證三才”의 자격을 가진다. 또한 “九宮八門” 가운데 북서방에 위치한 건문은 가장 길한 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상련과 하련 중에 각각 “吉”자와 “祥”자가 들어있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발췌)

 

 

 노산 거봉풍경구 입구 모습(케이블카 승강장이 있다)

 

 

 

시간이 촉박하여 걸어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케이블카를 이용하기로 하고 매표를 하는데 1인당 30원(중국 돈. 할인가격임.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5,400원 정도)을 받는다. 중국 돈도 받고, 한국 돈도 받는다.

필자가 중국여행을 위해 10만원(위안화로는 580원)을 환전했는데 케이블카 요금인 180원만 쓰게 됐다. 남은 돈 400원을 국내에 와서 환전을 하니 9,248원의 환전 손해를 봤다.

 

결론을 예기하자면 여행사를 이용할 경우는 중국 돈(위안화)이 거의 필요하지가 않다. 별도로 개인행동도 할 수도 없어 돈 쓸 일이 없기 때문이다. 돈 쓸 일이 있어도 한국돈도 통용되기 때문에 굳이 환전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케이블카 승강장에 이르러 케이블카를 타는데 다행히 6인승이라 6명 전원이 함께 타며 노산을 향해 올라간다.

올라가면서 바라본 노산은 온통 바위산이다. 국내에도 바위산이 많이 있지만 이렇게 나무가 거의 없이 온통 산으로만 된 산은 국내에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고, 또한 「없다」라고 자신있게 예기할 수가 있다.

18분 걸려 케이블카 종점에 닿는다.

 

이제 걸어 올라가야 한다. 계단을 타고 올라간다. 중국의 산들이 온통 계단으로 만 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다.

나중에 후기 쓰면서 알게 되었는데 필자가 다녀온 곳은 노산 중에서 「거봉풍경구」를 다녀온 것이다. 거봉풍경구 중에서도 1/4쪽 만 다녀온 것이다.

그래서 감히「거봉풍경구가 좋다 나쁘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마디 한다면 우리나라의 설악산이 더 좋다고 말 할 수 있다.

 

16:02분에 이문을 거쳐 3분 후에 쉼터가 조성된 곳에 닿는다. 벤치도 설치되어 있어 후미도 기다릴 겸 하여 잠시 휴식을 한다.

나무가 없이 돌도 만 된 산이라 모든 곳이 다 조망이 좋지만 이곳도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설악산 용아장성에서 봤던 기암(아기공룡 둘리라고 표현하면 어울릴지 모르겠다)과 비슷한 바위가 있는데 이곳은 규모가 무척 크다. 회원님들이 다 도착해서 간식을 먹고 있는데 가이드가 나타난다.

그래도 우리 팀(7호차)의 가이드인데…,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쉼터에서 9분을 쉬고 다시 출발을 한다.

점점 고도가 높아지면서 회원님들이 힘들어 한다.

등산로 곳곳에 「好人一生平安 (호인일생평안)」이라고 써진 빨간 리본이 지천으로 나무에 매달려 있다. 좋은 사람이 일생평안하기를 비는 마음으로 많은 등산객들이 매달아 놓은 것 같다. 필자가 탄 7호차의 가이드는 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전혀 없어 너무나 답답했다. 아마 등산은 별로 하지 않는 모양이다.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으로 갈까 우측으로 갈까 망설이다가 앞서가던 사람이 좌측으로 가서 같이 따라 올라간다. 덕분에 뒤에 오던 회원님들도 뒤따라 올라간다. 급한 계단을 헉헉거리며 올라가니 손문이 나온다.

 

손문에 도착하니 이곳에서 대기 중인 가이드가 우측으로 가라고 한다. 좌측은 정상인데 군 시설물이 있어서 출입통제지역이다. 선택의 여지없이 우측으로 올라간다. 조금 올라가 정상을 배경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고 있으니 보라님과 설국님이 올라온다. 같이 합류하여 허공다리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허공다리 가기 직전에 있는 봉우리에도 올라가 본다. 어디를 가도 조망이 무척 좋다. 그중 허공다리 근처가 조망이 최고 좋은 것 같다. 허공다리를 건너 정자에도 들려본다. 아까부터 여행님이 보이지가 않아 찾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내려갔는지 까마득한 아래까지 내려가서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목격된다.

내려가고 싶었지만 다시 올라와야 하기에 생략을 하고는 여행님이 올라올 때까지 휴식을 한다. 이때 기러기투어의 전과장님이 나타난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7호차의 상황을 예기해줬다.

여행님이 곧바로 올라와서 합류하여 이제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제 손문 쪽이 아닌 급경사 철계단 방향으로 내려간다. 바위와 바위사이에 설치되어 있는 철 계단이 수직으로 되어 있어 무척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무사히 철 계단에서 내려와 다시 급경사 계단을 내려가면 삼거리에 도착한다. 조금 더 내려가면 쉼터가 나오고 이내 케이블카 승강장에 닿는다. 파아란님은 힘들다 해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걸어서 내려간다.

계속되는 계단길을 따라 내려간다. 초반에는 경치가 무척 좋다. 아까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올 때는 뒤쪽의 동해바다(한국 쪽에서 보면 서해바다이다)를 보지 못했는데 내려가면서 보니 동해바다가 잘 조망된다. 아쉽게도 날씨가 좋지 않아서 뚜렷하지가 않다.

 

점점 내려갈수록 조망이 시원치 않아 약간 속도를 내서 내려간다. 게이트(출입구)을 빠져나오니 산문이 설치되어 있는 케이블카 승강장이자 버스종점에 닿는다.

하늘엔 보름달의 윤곽이 뚜렷해지면서 어느새 주위는 어두워지고 있다.

셔틀버스를 타고 다시 주차장을 향해 내려간다. 기사가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주변 경관은 아까 올라오면서 다 봤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은 별로였다. 걸어서 내려가는 사람도 보인다. 금방 어두워 질텐데….

 

약13분 걸려 주차장에 닿는다. 일찍 내려온 팀은 이미 출발해서 주차장에는 버스가 몇 대 없다. 일찍 출발한 팀은 진주시장(짝퉁시장. 가이드 예기로는 중국은 짝퉁의 천국인데 샘플 만 있으면 못 만들어내는 것이 없는 짝퉁의 천국이라고 말을 한다)을 들렸다고 한다.

이로써 우여곡절 끝에 처음으로 해외(중국) 명산을 답사했다.

 

노산 산행을 하려고 이번 여행에 동참하게 된 것이었는데, 참으로 시간이 아쉬웠고 미련이 많이 남는 산행이었다.

후기를 쓰면서 더욱 더 아쉬움이 크게 다가온다.

노산, 그것도 노산의 일부분인 거봉풍경구, 그것도 거봉풍경구의 일부분 만 산행하고 와서 그런지 자꾸만 아쉬움이 크게 다가온다.

 

중국에서는 각 풍경구의 관광교통, 관람, 관광안전, 위생, 우전 서비스, 관광 쇼핑, 경영 관리, 자원과 환경보호, 관광자원 흡인력, 시장 흡인력 등 요소에 따라 관광지 질량을 5A, 4A, 3A, AAA급 5개 급별로 나눈다. 4A급 풍경구는 <관광 풍경구 질량등급 구분과 평정> 국가 표준과 <관광 풍경구풍경구 질량 등급 평정관리 방법>에 근거해 성 관광 풍경구 질량 등급 평정위원회의평정위원회의 초심과 추천 그리고 전국 관광 풍경구 질량등급 평정위원회의 평정을 거쳐 결정된다.

중국 국가관광국에서 발표한 중국 5A급 풍경구는 66개, 4A급 관광풍경구 942개이다.

노산 거봉풍경구는 현재 4A급 풍경구인데 몇 일전 뉴스기사에 5A급으로 상향조정한다는 내용을 보았다.

 

 

[중국의 세계문화유산 목록]

자금성, 만리장성, 이화원, 명13능, 천단, 주구점 북경유인원유적지, 서안 진시황릉, 승덕 피서산장, 평요고성, 곡부-공부 공묘 공림, 운남성 여강고성, 소주원림, 무당산 고건축, 도강언, 용문석굴, 운강석굴, 돈황 막고굴, 중경 대족석각, 마카오. (이상 19군데)

 

[중국의 세계자연유산 목록]

장가계, 무릉원, 구채구, 황룡, 태산, 황산, 무이산, 아미산 낙산대불. (이상8군데)

 

[중국 내 66개 5A급 풍경구 목록]

북경: 고궁박물관, 천단공원, 이화원, 팔달령 만리장성

천진: 천진 고문화거리, 천진 반산풍경명승구

하북: 진황도 시산해관경구, 보정시 안신백양전경구, 승덕피서산장 및 주변의 절

산서: 대동시 운풍석굴, 흔주시 오대산 풍경명승구

요녕: 심양시 식물원, 대련 라오후탄해양공원

길림: 장춘시 위만황궁박물관, 장백산경구

흑룡강: 하얼빈시 태양도공원

상해: 상해 동방명주방송탑, 상해 야생동물원

강소: 남경시 종산풍경구-중산릉원풍경구, CCTV무석 영사기지 삼국수호경구, 소주시 출정원, 소주시 주장구진경구

절강: 항주시 서후풍경명승구, 온주시 연탕산 풍경명승구, 주산시 보타산풍경명승구

안휘: 황산시 황산 풍경구, 지주시 구화산풍경구

복건: 하문시 고랑서 풍경명승구, 남평시 무이산풍경명승구

강서: 강서성 여산풍경명승구, 길안시 정풍산 풍경관광구

산동: 연태시 봉래각 관광구, 제녕시 곡부명고성 관광구, 태안시 태산경구

하남: 등봉시 숭산소림경구, 낙양시 용문석굴 경구, 초작시 운대산 풍경명승구

호남: 형양시 남악형산관광구, 장가계 무령원 관광구

호북: 무한시 황학루공원, 의창시 삼협대패 관광구

광동: 광주시 장륭 관광휴양지, 심천 화교성 관광휴양지

광서: 계림시 이강 풍경구, 계림시 락만지 휴양세계

해남: 삼아시 남산문화관광구, 삼아시 남산대소동천 관광구

중경: 중경시 족석각 관광구, 중경 무산삼협

사천: 성도시 청성산 도강언 관광구, 락산시 아미산 관광구, 아패 장족강족 자치주,

구채구 관광구

귀주: 안순시 황과수대폭포 관광구, 안순시 용궁 관광구

운남: 곤명시 석림관광구, 여강시 옥룡설산 관광구

섬서: 서안시 진시황병마용 박물관, 서안시 화청지 관광구, 연안시 광제릉 관광구

감숙: 가욕관시 가욕관 문화 관광구, 평량시 공동산 풍경 명 승구

녕하: 석취산 시사호 관광구, 중위시 사파두 관광구

신강: 신강천산천지 풍경명승구, 투루판시 포도구 관광구, 아륵태지구 객납사 관광구

 

 

기러기여행사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석도(스다오) 가는 배가 인천에서 월, 수, 금이라서 금요일에 출발하여 귀항일은 화, 목, 일이라서 연휴날짜에 맞추다보니 그렇게 일정을 잡은 것 같다. 해외이든, 제주도 가는 배든 간에 배시간은 예정시간보다 항상 늦게 도착한다. 또한 대규모의 인원이 승선되어 있기 때문에 하선하는 시간도 이외로 오래 걸린다는 것을 여행사 측에서는 모를리 만무한데….

 

만약에 필자가 여행스케쥴을 잡아 본다면 첫 날 석도에서 장보고유적지가 있는 적산법화원을 먼저 보고, 그리고 청도로 이동을 해서 청도야경을 구경하고, 숙박하는 것으로 첫날 일정을 짜고 다음날 청도에 있는 소어산과 노산 산행을 하고 청도에서 비행기편으로 귀국하는 일정을 잡고 싶다. 이럴 경우 2박3일의 여정으로 여행경비가 많이 증가하겠지만 그래도 한번 갔으면 제대로 보고 와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산행을 마치고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다행스럽게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이동한다.

 

호텔에서 중국 현지식을 먹는데 한국 사람들을 위해 향신료도 많이 줄이고 덜 느끼하도록 했다는데도 먹기가 영 불편하다. 차례대로 모두 10가지가 나오는데 더 먹고 싶으면 추가하면 되는데 추가하면 개인요금을 내야한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한 개의 테이블에 10명이 앉게 되어있는데 우리 새싹팀은 6명이라 1사람이 다른 테이블로 가서 식사를 하라는 것이다. 여행님이 다른 팀에 합류했는데 소수팀 참가자의 비애인가? 기분이 영 찝찝하다.

 

여행님에게로 다가가 자리를 바꿔 앉아 다소 어색한 식사를 한다. 그래도 같은 한국사람들이라고 환영해준다. 다소 도수가 약한 고량주가 서비스로 나온다.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섹스폰 소리가 들려온다. 섹스폰 연주는 식사가 거의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재미없고 불편한 식사를 계속하고 있는데 여행님이 부른다. 그래서 새싹팀과 합류하게 되어 기분이 조금은 풀린다. 계속되는 섹스폰 연주를 들으며 식사를 하는데 어쩐 일인지 우리 테이블에서 모든 서비스가 엉망이다. 녹차도 없고, 녹차를 갔다 달라고 하면 함흥차사이고 해서 필자가 직접 녹차주전자를 가지고 와서 회원님들에게 드렸다. 또한 다른 테이블은 이미 후식(수박)까지 먹었는데 우리 테이블로 수박 구경도 못했다. 한참을 실랑이를 해서야 겨우 수박을 구경할 수가 있었다.

 

서비스 엉망인 호텔에서(다른 팀들에게 서비스는 좋은지 모르겠다) 저녁을 먹고는 밖에 나와 불꽃놀이를 구경한다.

불꽃놀이 역시 수차례 많이 봐온터라 관심있게 구경하는데 몇 발 쏘는 것으로 끝나버린다. 그래도 불꽃놀이는 보기는 봤다고 해야겠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서 나와 불꽃놀이를 구경했다.

 

 

청도시내 야경

 

 

불꽃놀이까지 마치고 버스를 타고 청도시내 야경을 즐기러 짧은 거리를 이동한다.

주차장에 닿아 버스에서 내리니 해안가라서 그런지 바람이 차갑다. 옷을 다소 얇게 입은 회원님들은 춥게 느껴질 것 같다.

청도시내 야경이 서울 못지않게 화려하다.

 

 

[청도(靑島 : 칭다오)에 대하여]

산둥성[山東省] 동부, 남쪽은 황해[黃海], 산둥반도 남안 자오저우만[膠川灣]의 만구(灣口)에 위치한 청도는 쟈오둥[膠東] 지구의 최대 상공업 도시로 중국 중점 개발 항구이며 유명한 해변 휴양도시이며 피서지이다.

중국에서 네 번째로 큰 항구 도시로서 여대[旅大], 천진, 상해, 연운강[連雲淃], 연태[煙臺] 등과의 정기항로도 열려 있어 대외무역도 활발하다.

 

도시 전체의 면적은 10,654㎢이며, 총 679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해양성 기후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연평균 기온은 12℃이고, 연평균 강수량은 776㎜이다. 비교적 사계절이 뚜렷하며, 여행하기에 좋은 계절은 봄과 가을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청도대학, 해양대학이 있고, 관광지에 루쉰[魯迅]공원, 중산공원, 라오산(노산), 중국과학원, 해양연구소 등이 있다.

 

청도는 굴곡이 많은 리아스식 해안과 “해산명산제일”이라 불리는 노산, 붉은 지붕과 푸른 나무로 둘러싸인 전통 유럽식 건축, 역사와 문화가 한데 담겨 있는 명인들의 고가는 완벽한 현대의 비즈니스 회의 시설과 함께 동서양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관광, 휴가 레저, 비즈니스 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주요 관광 명소로는 천주교 성당, 기독교 교회, 신호산 공원, 제독루, 소어산 공원, 중산 공원, 청도 맥주 박물관, 화석루, 잔교, 소청도, 빈해, 목잔도 등이 있다.

 

 

그렇게 청도 야경까지 구경하고는 첫 날 일정을 마쳤다. 이제 숙박하러 호텔로 이동을 한다.

숙박은 2인 1실(2개의 침대가 놓여있음)인데 새싹팀은 모두 6명이 참가를 했는데 5명이 여성이고 필자 혼자 남성이라 방 2개는 문제가 없었는데 2명은 다른 팀과 룸메이트가 돼야한다. 이번에도 다섯 분의 여성 중에서 여행님이 총대를 메셨다. 다른 팀 여성분하고 룸메이트가 되어 911호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필자 역시 다른 팀 남성하고 같이 912호실에 들어갔다.

필자하고 한 방에 쓰게 된 사람은 성수동의 엠코코리아에서 직장동료들하고 함께 왔다고 한다.

 

호텔방은 예상보다 무척 깨끗하고 분위기가 좋았다. 방의 크기도 적당했다. 샤워를 마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함께 쓴 룸메이트가 같은 팀에게서 연락이 와서 방을 빠져나간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매우 약하게 전화벨 소리가 꿈결에 들리는데 전화기 있는 곳이 멀어서 그냥 무시하고 잠을 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노크소리가 들려온다. 비몽사몽하고 있는데 다시 노크소리가 들려온다. 순간 룸메이트라고 생각하고는 벌떡 일어나서 방문을 열어준다.

 

역시 룸메이트였다. 늦게 와서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하는 바람에 필자가 더 미안하게 됐다. 나중에 알고 난 사실은 필자는 문을 잠겨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들어올 수가 있다고 판단했는데 안에서 잠가 놓지 않아도 밖에서는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이렇게 해서 중국에서의 둘째 날도 지나갔다.

 

 

 4A급인 소어산공원 입구 모습

 

 

 소어산공원에서 바라 본 조망

 

 

다음날,

중국여행의 셋째 날의 아침 해가 떠올랐다.

 

새벽 5시가 되니 전화기가 울린다. 모닝콜이었던 것이다.

조금 더 늦장부리다가 이내 세면하고 밖으로 나온다. 우리 팀 숙소인 911호, 910호, 909호를 차례로 노크를 하면서 식사하러 가자고 예기를 한다.

 

그런데 여행님 혼자 떨어져 있는 911호에는 인기척이 없다. 910호에 묵고 있던 블루홀님과 파아란님은 나중에 내려가겠다고 해서 설국님, 보라님과 함께 로비의 식당으로 내려간다.

내려가니 다행히 여행님의 모습이 보여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식당으로 향하는 긴 줄에 합류하여 순서를 기다리며 여행님의 이야기를 듣는데….

 

먼저 911호실에 들어갔던 여행님이 샤워를 하고 있는데 밖에 노크소리가 나서 샤워할 때까지 기다리라 해서 샤워를 마치고 문을 열어주는데 함께 방을 써야 할 여성분이 남성분과 같이 와서 부부지간인데 방을 옮겨줄 수 없냐고 해서(기러기투어에서 방 배정을 잘못했음) 양보하여 12층으로 올라갔는데 12층의 방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중국 인민복장을 한 공안인지 경찰인지 하는 사람이 여행님을 제지하며 「뭐라~, 뭐라~」 예기를 하는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서 가만히 서 있는데 동행하자고 하는 제스쳐를 써서 놀라 서 있는데 다행히 방을 함께 쓸 룸메이트가 손짓으로「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표현으로 그 상황(혹시나 납치당할까 하는)을 모면했다는 예기를 들으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밤사이 그런 상황이 벌어진 것도 모르고 잠 만 잤으니….

 

그런데 블루홀님과 파아란님이 아직까지 모습이 안보여 할 수 없이 찾으러 방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보라님이 이미 내려와서 식사를 하고 있는 블루홀님과 파아란님을 발견해서 내게 알려준다. 기쁜 맘(방에서 이미 내려왔기 때문에)과 괘씸한 맘(나머지 사람을 찾지도 않고 자기네들끼리 먼저 식사해서)으로 얼른 달려가 어찌된 일이냐고 물어보니 본인들도 우리 팀을 찾았는데 찾을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두 사람 만 식사를 하는 거라고 되래 어찌된 일이냐고 반문을 한다.

 

좌우지간 전화위복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식사를 하는 바람에 식사테이블이 적어서 테이블 차지하기가 어려웠는데 먼저 식사를 한 블루홀님과 파아란님 덕분에 쉽게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뷔페식으로 음식을 갖다 먹었는데 필자에게는 정말 먹을 것이 없었다. 바로 옆 테이블에 고추장이 있어서 고추장을 빌려 비벼서 먹는 것으로 맛없는 아침식사를 마쳤다.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승차에 첫 행선지인 소어산으로 이동을 한다.

좁은 이면도로를 어렵게 통과하여 소어산 입구에 도착을 한다. 가이드는 20분의 시간을 할애해서 다녀오라고 한다.

「헉! 20분 동안에 무었을 본다고?」

 

소어산 입구에는 「AAAA」표지판이 붙어있다.

그러니까 소어산은 중국 내 942개의 4A급 중의 하나이다(중국 국가관광국에서 발표한 중국 5A급 풍경구는 66개, 4A급 관광풍경구 942개가 있다).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이내 정자가 나오고 바로 옆에 3층8각정의 누각이 나타난다. 낮은 산인데 조망이 무척 좋다. 청도 제1해수욕장이 잘 보이는데 수영을 하는 사람이 목격된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휴식공간, 소어산공원(小魚山公園, 샤오위샨공위엔)에 대하여]

청도시 남쪽에 있는 어산로(魚山路)와 복산로(福山路)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한 해발 60m 높이의 산으로, 남으로 회천만(匯泉灣)과 접해 있으며 북으로 팔관산(八關山)과 인접해있다.

 

예전에는 아문산(衙門山)이라 불리던 이곳은 1922년 이 산을 둘러싼 도로를 어산로(魚山路)라고 부르면서 산의 이름도 소어산이라 불리며, 정상에 있는 누각이 자연과 어울려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준다.

산 정상에는 관조각(觀潮閣)을 비롯해 18m 높이의 3층 8각탑(覽潮閣)이 있고, 누각 아래로 벽파정(碧波亭)과 옹취정(擁翠亭) 등의 쉴곳이 있다.

 

또한 1984년에 정부에서 중국 고대풍격의 소어산공원(小魚山公園)을 건설하였는데 지세에 따라 경치를 만들었고 경치에 따라 건물을 지었다.

 

 

3층8각정 내부에는 기념품 등을 파는 판매장이 층마다 들어서 있다. 마땅히 살 만한 것이 없어 그냥 내려온다.

좁은 면적이라 한 바퀴 도는데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다. 결국 15분간 관광을 마치고 버스로 돌아온다.

 

 

 소어산공원의 팔각정 모습

 

 

이제 버스는 석도로 향한다.

중국식으로 하면 잠깐만(3시간 30분 정도 소요) 가면 되는 거리이다.

어제 왔던 길로 되짚어 가서 어느새 길이 익숙해졌다. 중간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렸는데 어제 들렸던 휴게소가 맞은편에 있다.

 

아침부터 흐렸던 날씨는 휴게소에 들어서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눈과 섞어서 내리기 시작해서 얼른 버스로 들어간다.

천만다행으로 비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그쳤다.

 

엄청나게 큰 식당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는데 또 이산가족이 된다. 그러나 이내 합류하여 6명이 함께 식사를 한다.

 

 

 점심을 먹었던 대규모의 식당 모습

 

 적산 장보고유적지 입구의 모습

 

 

점심을 먹고는 조금 이동하여 마지막 행선지인 적산법화원 입구의 주차장에 닿으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중국민속악대가 풍악을 울리기 시작한다.

 

잠시 구경을 하다가 이내 500여명 가까운 관광객 무리 속에 섞여 공원을 오른다. 생각보다 규모가 큰 공원이다.

우리나라 유명한 관광지 어디가나 있는 전기차가 이곳에도 어김없이 있어서 관광객들에게 타고 올라가라고 유혹을 한다. 무시하고는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이내 넓은 공터(전기차 종점)가 나오고, 조금 더 올라가면 좌측으로 장보고 유적지가 나오는데 장보고 유적지는 내려올 때 보기로 하고 직진하여 거대한 동상이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적산명신 앞에서

 

 적산명신 내부에 있는 적산명신과 똑같이 생긴 작은 적산명신 모습(내부에는 9,999개가 조성되어 있다)

 

 

조금 더 올라가니 거대한 동상 앞에 이른다.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가이드 이야기로는 무게가 자그마치 300톤이라고 예기를 한다. 인민폐 3,000만원(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약 54억원)을 들여 건립하였다 한다. 이 동상이 적산명신이라고 명명이 되어 있는데 한마디로 바다의 신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계단을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 본다. 꼭대기의 사각평면 전망대를 한 바퀴 돌면서 조망을 즐긴다. 조망이 무척 좋다.

정면으로 적산법화원 사찰이 보이고, 대형 적산팔층탑정이 능선위에 우람하게 보인다. 이밖에 바다도 잘 보인다. 이제 맨 위의 전망대에서 내려와 적산명신 내부로 들어간다. 내부조명이 휘양 찬란하다. 내부에는 똑같이 생긴 적산명신 미니취어가 9,999개가 있다. 이밖에도 볼거리가 많다.

 

 

 장보고 유적지 모습

 

 장보고 동상

 

 

내부에서 나와 계단을 타고 내려가 장보고 유적지로 향한다.

이내 장보고 유적지에 도착한다.

 

이곳에 해상왕 장보고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 아래 장보고의 박물관이 있다. 이곳을 지배하고 호령하던 장보고장군의 찬란한 위상을 보며 뜨거운 동족애를 느낀다.

장보고 박물관을 보고는 물불쇼가 시작되니 서둘러 구경하라는 가이드이야기에 서둘러 법화원으로 향한다.

 

 

[해상왕 장보고의 생애에 대하여]

장보고 [張保皐 ?~846] 전남 완도 장좌리 출생(추측)

 

일명 궁복(弓福)·궁파(弓巴). 일찍이 당나라 서주(徐州)에 건너가 무령군 소장(武寧君小將)이 되었으나 신라에서 잡혀간 노비(奴婢)의 비참한 처우에 분개하여 사직하고 귀국했다. 해적들의 인신매매를 근절시키기 위해 왕의 허락을 얻어 1만의 군사로 해로의 요충지 청해(淸海. 지금의 완도[莞島])에 진을 설치하고 가리포(加利浦)에 성책을 쌓아 항만시설을 보수, 전략적 거점을 마련했다. 그리고 청해진 대사(淸海鎭大使)가 되자 휘하 수병을 훈련시켜 해적을 완전 소탕했다.

 

837년(희강왕 3년) 왕위계승 다툼에서 밀려난 우징(祐徵. 神武王)이 청해진에 오자 이듬해 우징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839년 민애왕(閔哀王)을 죽이고 우징을 왕위에 오르게 하여 감의군사(感義軍使)가 되었다. 신무왕이 죽고 문성왕(文聖王)이 즉위하자 진해장군(鎭海將軍)이 되었다. 840년(문성왕 2년) 일본에 무역사절을 당나라에 견당매물사(遣唐賣物使)를 보내어 삼각무역을 했다. 845년(문성왕 7년) 딸을 왕의 차비(次妃)로 보내려 했으나 군신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846년(문성왕 8년) 그의 세력에 불안을 느낀 조정에서 보낸 자객 염장(閻長)에게 살해되었다.

 

장보고는 우리나라 역사상 특기할만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전 생애에 관한 기록은 희소하고 그것도 분명치가 않다.

우선 장보고를 부르는 이름은 우리 측 기록에는 궁복(弓福), 궁파(弓巴), 장보고(張保皐)로 되어 있고, 중국 측 기록은 모두 장보고(張保皐), 일본에서는 장보고(張寶高)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신라 관습상 평민은 성(姓)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장보고가 중국에 있을 때 궁복의 '궁'자와 비슷한 장씨라는 성(姓)을 갖게 된 것이고, '보고'라는 이름은 '복(福)'의 음을 그대로 따라 지은 것으로 추측된다.

 

장보고의 출신지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문성왕(文聖王 839~856)의 차비로 장보고의 딸을 맞이하려 할 때 조정의 신하들이 그가 해도인(海島人)이라는 점을 들어 반대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섬사람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으며, 그의 고향은 청해진이 설치되었던 오늘날의 완도라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첫째로 그가 해상왕국의 근거지를 하필이면 청해진에 설치하였던가 하는 점이며, 둘째로 자기보다 10세 가량 어린 동향(同鄕) 후배 정년(鄭年)이 뒷날 당나라에서 실직하여 사주(泗州)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허덕이고 있다가 고향에 돌아갈 결심을 하면서 청해진으로 돌아오고 있는 점을 들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으로 성장한 장보고는, 정년과 함께 풍운의 꿈을 안고 당으로 건너가서 30세쯤에 서주(徐州) 무령군 소장(武寧軍 小將)이라는 군직(軍職)에 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무령군이라는 군단명이 805년에 처음 생겼다고 하니, 장보고가 무령군 소장직에 오른 시기는 아무리 빨라도 805년 이전으로 올라갈 수는 없겠고, 그가 당에 건너간 시기는 일단 805년 전후였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가 신라에 귀국한 시점이 828년이었으므로, 그의 재당(在唐) 기간은 9세기초 20여 년간으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물불쇼의 모습

 

 

어느새 물불쇼가 시작되면서 녹음된 음성이 흘러나온다.

얼른 청동불상 앞에 도착하니 막 물불쇼가 시작되면서 청동불상 주변에 있는 분수가 가동되면서 물을 뿜어대기 시작한다. 다른 회원님들이 보이지가 않아 조금은 걱정이 되지만 자리 잡고 구경 하고 있으리라고 짐작을 하면서 구경을 하기 시작한다.

물불쇼는 약15분간 진행됐는데 동영상으로 촬영하면 멋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번쯤은 볼만한 쇼라고 생각이 든다.

 

회원님들과 만나 이제 모든 일정을 마치고 법화원 내부을 거쳐 주차장에 도착함으로써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

석도항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모든 일정을 마친 후에 비가 와서 천만다행이라 생각을 해본다.

미우나 고우나 1박2일 동안 7호차 가이드를 맡은 김은희씨 하고 작별을 나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배정받은 방으로 올라간다. 역시 올 때와 마찬가지로 405호에 배정받았다. 3050산우리산악회 2명 역시 따라 들어와서 반갑게 재회한다.

 

비가 오니 일몰구경은 이미 물 건너갔고, 갑판으로 나갈 이유가 없어 침실에 드러누워 잠시 여행했던 곳을 떠올려본다. 좌우로 뒹굴다가 한참 후에 디카를 열어 촬영한 사진을 구경을 한다. 170여 장 정도 촬영한 것 같다.

 

저녁식사 시간이 돼서 함께 저녁을 먹고, 다시 따분하게 침실에 누워있는데 기러기여행사의 전과장님이 방에 들어온다. 이야기인즉 조금 후에 노래자랑이 있는데 산악회에서 대표로 1명 만 참석을 할 수 한다는 것이다. 새싹팀은 만장일치(?)로 보라님이 대표로 나가고, 노래제목은 「그여자의 마스카라」라고 불러준다.

 

시간이 다 돼서 노래자랑이 열리는 식당으로 이동을 한다. 어느새 넓은 식당이 꽉 차 있어 맨 뒤쪽에서 구경을 한다. 총26개(정확하지 않음) 정도의 팀이 참가를 했는데 저마다 개성을 살려 마음껏 끼를 발산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새싹팀은 맨 뒤에서 3번째 순서라 한참을 기다려서야 차례가 돼서 무대에 나간다. 필자는 블루홀의 사진기로 찍사 역할을 했다.

 

보라님이 열창을 하고 뒤에서 블루홀님과 여행님이 파아란님 얼굴에다 그림을 그리는 안무를 한다. 그리고는 뒤에서 흔들기 시작한다. 필자 역시 사진을 찍고는 조금 남은 시간 함께 뒤에서 흔들다 내려왔다.

모든 팀들이 순서를 마치고 채점을 하는 사이 초대가수의 가수가 연이어 3곡을 부르는데 이어, 댄스타임을 거쳐 마침내 발표순간이 되었다.

 

필자가 노래는 부르지 않았어도 조금은 긴장된 순간이다.

결국 많은 회원이 참가한 팀에게 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는 많이 실망했다.

만약에 필자가 주최한다면 참가한 모든 팀들의 대표들에게(노래를 부른 사람에게) 「참가상」이라는 명목으로 간단한 기념품이라도(등산 손수건 정도) 줄터인데….

상이라는 것이 크고 작고를 떠나서 조그마한 것이라도 받으면 기분이 좋다는 것을 모를리 만무한데….

서운한 감정을 애써 감추고 선실로 돌아간다.

 

상을 받은(많은 회원들이 참석한 산악회는 모두 상을 받았다) 산악회들이 여기저기서 건배하는 소리로 선내는 시끄럽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잠이 들었다.

 

중국여행 마지막 날!

 

일어나니 아직도 밖은 비가 내리고 있다. 제법 굵은 비가 내린다.

아침식사를 하고는 선실로 들어와 다시 이리저리 뒹굴기 시작한다.

나중에 확인하니 석도항에서 원래 밤8시에 출항예정이었는데 밤11시에 출항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인천항에는 몇 시에 도착하나 하며 심히 걱정했는데 같이 한 방을 쓰게 된 무적엘지님 예기로는 도착시간(10시 30분)을 마쳐준다는 예기를 했다고 한다. 암튼 도착시간을 맞춰 준다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예기이다.

다행히 예정시간에 인천항에 도착했다.

 

1호차(이번 여행에 가장 많이 참석한 수도권산악회가 탄 차)가 가장 먼저 하선을 하기 시작했고, 뒤이어 뒤차(11호차)부터 순서대로 하선을 하기 시작한다. 우리 팀은 7호차라 그나마 조금 일찍 하선을 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24번 시내버스를 타고 동인천역에 도착해서 전철로 환승하여 서울역에서 내려 남원추어탕집에서 뒤풀이 점심식사를 맛있게 했는데 필자는 그만 배가 탈이 나고 말았다.

「그 놈의 배, 민감하기도 하지!…」

 

서울역에서 설국님과 블루홀님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파아란님 승용차로 면목동 보라님 집까지 태워다 줘서 이곳에서 모두 헤어져 귀가했다.

많이 아쉽고, 허전한 중국여행이었다.

 

7.특기사항

①해외 첫 여행(중국 첫 여행)

②기러기투어 여행사 주관(총480명 참가. 버스 11대 운행). 새싹회원 5명과 함께 동행.

③7호차 현지인 가이드: 김은희 씨(조선족. 아버지가 경상도 사람이라고 함)

④첫날 노산 거봉풍경구 갈 때 기사님이 위치를 잘 몰라 산행시간이 무척 촉박했음.

⑤기러기투어에서 참여 선물로 등산양말 1켤레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