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서울경기의 산

[초안산] 내시 묘가 서쪽을 향한 이유는?

약초2 2009. 3. 30. 16:33

 827번째 산행이야기

915번째 산, 초안산 첫 이야기

 

제목

초안산 (서울)

높이

초안산(楚安山 115.4m)

위치

도봉구 창1동, 창3동 / 노원구 월계2동, 월계4동

특징

볼거리

사적 440호(조선시대 분묘군[墳墓群])로 지정될 만큼 산 능선 곳곳에 내시들을 비롯해 양반과 서민 등 조선시대 분묘 1,000여 기가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이 내시들의 묘여서 「내시네 산」이라고도 불렸다.

도봉구(창동)과 노원구(월계동)에 걸쳐있는 초안산은 야트막한 산으로 기복이 심하지 않아 산책코스로도 좋은데 능선 곳곳에 체육시설물 등이 들어서 있으며 동호회(배드민턴)시설물 등도 많이 들어서 있다. 넓은 등산로 따라 편안하게 산책할 수 있는 산이다.

어느 코스를 선택하든 1시간이면 산행을 마칠 수 있다.

등산시간

1시간

등산지도

 

등산코스

①녹천역 1번출구~41m봉~북동릉~헬기장~초안산(상행 0:20)

②창1동 주공아파트 4단지~헬기장~북동릉~초안산

③도봉문화정보센터(생태육교)~북릉~초안산(하행 0:15)

④창3동 주민센터~남동릉~초안산

⑤창3동 동문교회~남동릉~초안산(하행 0:25)

⑥창3동 극동아파트 101동~남릉~통신탑~헬기장~초안산

⑦비석골근린공원~남릉~통신탑~헬기장~초안산(상행 0:30)

⑧월계역~남동릉~초안산

대중교통

전철 1호선(경원선) 월계역(8번 코스), 녹천역(1, 2, 3번 코스),

1157번, 1133번(4, 5, 6번 코스)

사이트

 

산행후기

 

 

 

1.산행날짜: 2009년 3월 27일(금)

2.참가인원: 나 홀로

 

3.산행코스: 중계역→녹천역→41m봉→초안산→남동릉→동문교회→극동아파트101동→비석골근린공원→통신탑→초안산→북릉→생태육교→도봉문화정보센터→중계역

 

 

4.산행시간

-13:56 집(중계역) 발

-14:12 녹천역

-14:18 삼거리(우측으로)

-14:20 삼거리(좌측으로)

-14:22 이정표가 있는 사거리

-14:25 방공호 시작

-14:27 지능선 합류

-14:29 헬기장 착 / -14:32 발

-14:33 초안산 정상

-14:36 헬기장 발

-15:05 동문교회 앞

-15:26 유원 ․ 극동아파트 101동 앞 덕원영양탕 집 발

-15:41 비석골근린공원(월계고등학교 옆) 발

-15:54 통신중계탑

-16:10 초안산 정상 발

-16:12 삼거리 착 / -16:13 발

-16:20 생태육교(초안산교)

-16:32 도봉문화정보센터 앞 착

-16:40 녹천역

-17:00 중계역 착(산행종료)

 

◈녹천역→41m봉→초안산: 20분

◈초안산→남동릉→동문교회: 25분

◈덕원영양탕(비석골근린공원)→중계탑→초안산: 30분

◈초안산→삼거리→북릉→생태육교(도봉문화정보센터): 15분

 

 

5.산행날씨: 맑음

 

 

 산행 지형도(1/25,000 지형도 축소분)

 

 

6.산행후기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집을 짓거나 묘를 쓸 때 남향으로 한다. 남향으로 해야 해가 잘 들고 따뜻하며 아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계나 지형상의 아주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대부분의 집이나 묘들이 남향을 하고 있는데 모두 서쪽을 향한 특이한 묘역이 서울에 있다. 그것도 필자가 사는 동네 뒷산이 그렇다. 앞산은 불암산이다.

 

「내시네 산」으로 불리는 노원구 월계동과 도봉구 창동 사이에 있는 조선시대 특수신분계층인 내시들의 묘역이 바로 주인공이다.

 

미루고 미루다 며칠 전에 비로소 답사를 했다. 큰 맘 먹고 집(중계역)을 나섰다.

 

15분을 걸어가 녹천역 지하보차도 앞에 도착하여 지하보차도를 빠져나오자마자 좌측의 능선에 붙었다. 실질적인 산행에 들어선 것이다.

 

 

 녹천역(우측 버스정류장 안내판으로 올라간다)

 

 

 산행들머리에서 1~2분 오르면 나타나는 41m봉 삼각점 모습

 

 

약간 경사진 오름길을 올라서니(1~2분) 삼각점이 나타난다. 「주택공사, No.3」이라고 쓰여 있는 삼각점이 있는 곳이 지형도(1/25,000 의정부[議政府]. 2004수정, 2005인쇄분)상 「×41」봉이다.

 

이젠 완만하게 올라간다. 조금 진행하니 삼거리가 나와 우측으로 1~2분 진행하니 다시 삼거리가 나온다. 이번에는 좌측으로 진행한다. 평일(금요일) 오후시간인데도 서너 명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운동시설물 등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꺽어 진행한지 1~2분이 지나면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는 사거리가 나타난다. 주변으로 많은 샛길이 나 있어 조금은 어지러운데 조금 큰 길로 진행하면 무리없이 정상을 찾을 수가 있다. 조금 더 올라가니 방공호가 나타나고 주변에 진달래가 개화돼서 보기가 참 좋다. 다람쥐가 쌩하니 지나간다.

 

 

 정상 직전의 헬기장에 위치한 시멘트 구조물

 

방공호가 있는 곳에서 2분을 올라가니 지능선이 합류되는 능선에 올라선다. 다시 2분을 더 올라가니 헬기장이 나타난다. 바로 앞에 시멘트 구조물이 세워져 있는데 그곳으로 올라가본다.

예전에 군 시설물로 쓴 것 같은데 철거하지 않고 왜 그대로 방치해 두는지 모르겠다. 흉물까지는 아니어도 능선 상에 있어서 보기가 좋지는 않다.

시설물에 올라가니 뻥 뚫린 곳으로 북한산에서 도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잘 조망된다. 멋진 북한산의 능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산악자전거를 끌고 와서 헬기장 한 바퀴 도는 사람도 목격된다. 초안산 능선 곳곳의 안내문에 산악자전거는 타지 말라는 문구가 걸려있던데….

 

 

 초안산 정상 모습

 

 

멋진 북한산 조망을 마치고(헬기장에서는 나무에 가려 조망이 별로다) 조금 더 올라가니 이내 사각정자가 나타나고 군 화생방의 빨간 종이 걸려있고 오래돼서 글씨가 없어진 삼각점과 삼각점 위로 철 구조물이 세워져 있는 초안산 정상에 도착한다. 녹천역에서 20분 정도 걸린다.

아무런 표기도 되어 있지 않아 모르는 사람 같으면 이곳이 정상인 줄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조그마한 안내판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초안산(楚安山 115.4m)의 산 족보를 따져보면 백두대간 식개산분기점에서 한북정맥이 분기하여 북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한강봉 분기점에 이르러 한줄기는 오두산으로 이어지고(원 한북정맥 산줄기), 또 한줄기는 도봉산, 우이령을 거쳐 상장봉~월롱산~장명산으로 한북정맥 산줄기가 이어진다. 그러니까 한북정맥이 우이령(북한산과 도봉산의 경계) 가기 직전의 우이암분기점에서 남쪽으로 우이남능선을 거쳐 산불감시초소에 이르러 시루봉을 분가시키고 방학동, 쌍문동의 도심지역을 거쳐 도봉로를 지나 창동으로 들어선 후 생태육교(초안산교)을 건너면서 초안산으로 접어든다. 초안산 정상을 거쳐 월계로를 넘어 영축산을 일으킨 후 석계역 부근에서 우이천과 중랑천이 만나는 지점에서 산줄기는 끝이 난다.

이 산줄기(단맥)의 동쪽으로 우이천이 서쪽으로 중랑천이 흐른다.

 

 

정상에 대한 아무런 표시가 없다는 것에 대해 실망한체 곧장 직진하여 진행한다. 철조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넓은 등산로를 따라 조금 진행하니 헬기장이 나타난다. 헬기장에서 직진하여 진행하는데 내시들의 묘는 어디에 있는지 나타나지가 않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시들의 묘가 서쪽을 향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방향을 바꾸어 서쪽 방향의 능선으로 향한다.

 

 

 내시 묘역을 알리는 안내판과 여기저기 널려있는 내시 묘들의 모습

 

 

역시 추측한대로 맞아 떨어졌다.

서쪽(남동릉) 능선으로 접어들고 얼마가지 않아 내시묘역임을 알리는 안내문이 나타나고 주변에 여기저기 방치되어 있는 석물 등이 보이기 시작한다.

 

 

 

초안산 조선시대 분묘군(楚安山 朝鮮時代 墳墓群)

지정번호

사적 제440호

시대

조선시대

소재지

서울특별시 노원구 월계동 산8-3외 도봉구 창동 산 202-1 외

설명

이곳 초안산에는 내시들을 비롯해 양반과 서민 등 조선시대 분묘 1,000여 기가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이 내시들의 묘여서 「내시네 산」이라고도 불렸다.

이곳 내시 묘들은 대부분 궁궐이 있는 서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죽어서도 궁궐을 바라보며 왕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일제강점기까지도 매년 가을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서 내시들을 위해 제사를 지냈다.

특히 이곳은 다양한 계층의 분묘와 수 백여 기의 석물(石物)들이 시기별로 분포되어 있어 조선시대 묘제(墓制)와 석조각(石彫刻)의 변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대부분의 묘들이 봉분이 없다. 봉분이 있는 묘도 납작해졌고 주변에는 아카시아 나무 등 잡목이 많아 접근하기도 쉽지가 않다.

 

 

 여기저기 방치되어 있는 각종 석조물 모습

 

 

묘지 상석에 새긴 글자 

 

 

 동문교회 진입로 모습

 

 

내시묘역을 확인해서 그런지 기분좋게 하산하기 시작한다.

매우 뚜렷한 능선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니 계단이 나오고 이내 포장도로에 떨어짐으로써 산행을 마쳤다. 정상에서 25분 정도 걸린 것 같다.

「↔배밭길」「↓신창교길」이라고 쓰여 있는 도로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바로 앞이 동문교회이다.

 

이왕 시간 내서 초안산을 찾은 김에 좀 더 구석구석 답사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남릉 쪽 능선을 답사하기 위해 남쪽으로 도로를 따라 이동을 한다. 1133번, 1157번 버스가 자주 목격되는 도로를 따라 조금 이동하니 유원 ․ 극동아파트 101동 앞 버스정류장이 나타나고 버스회사와 덕원영양탕집이 나타난다. 덕원영양탕 집으로 들어서니 산행입구가 나타난다(15:26).

 

 

사적 440호임을 알리는 조선시대 분묘군 안내문이 능선 곳곳에 세워져 있다

 

 

정비가 잘 된 등산로 계단을 올라가니 이내 능선에 붙는데 반대쪽에서 올라오는 길이 더 정비가 잘 되어 있어 그 쪽으로 넘어가 본다.

이내 벤치가 나오고 운동기구 등이 나타난다. 넓은 공터를 가로지르니 안내문과 함께 조선시대 묘지석물 등이 보기 좋게 전시되어 있어 잠시 구경을 한다.

 

 

 조선시대 묘지석물 전시안내문

 

 

 왕릉과 양반가 묘역  형태안내문

 

 

문인석(복두공복), 문인석(금관조복), 망주석, 동자상, 상석, 비석 등이 차례로 잘 전시되어 있다.

 

 

망주석(望柱石)

크기

140cm~160cm

원래위치

초안산 염광학원 내 야외음악당(5), 불암산등산로(3)

형태

햇불을 연상시키는 기둥모양

조성연대

초안산의 조선시대 분묘군에서 발견되는 문인석과 같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므로 16세기~조선말기로 추정된다.

조성유래

망주석(望柱石)은 묘 앞 양옆에 하나씩 세우는 대략 2m 정도 높이의 기둥으로 먼 곳에서 바라보아 묘를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표지이며 나아가 영혼이 자기의 유택(묘)을 찾아오도록 안내 역할을 한다. 이는 중국에서 전하여 통일신라부터 발전되기 시작해 8세기경에는 왕릉의 석물배치가 정비됨에 따라 묘제석물(墓制石物)로 자리를 굳혀 오늘날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의 괘릉과 흥덕왕릉에 보이며,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능원(陵園)은 물론, 일반사대부의 묘에도 예외없이 망주석이 세워졌다.

-망주석은 크게 대석(臺石)과 기둥으로 나뉘는데, 일반적인 모습은 횃불을 연상시키고 기둥의 중간을 다람쥐나 쥐 모양의 세호(細虎)를 좌측(동향)에는 올라가고 우측(서향)은 내려가는 모양(左上右下)을 새겨 넣고 머리는 연꽃 모양외 다양한 형태로 만들었다.

 

 

동자상(童子像)

크기

90cm~110cm

원래위치

월계동 초안산 염광학원 내 야외음악당(3), 영축산등산로(3)

형태

쌍상투, 민머리에 옷을 입은 어린아이 모습

조성연대

초안산의 조선시대 분묘군에서 발견되는 문인석과 같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므로 16세기~조선말기로 생각된다.

조성유래

동자상은 석인상(石人像)의 일종으로 주요 인물을 수행하는 시자(侍者)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어린이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문인석과는 달리 관모를 쓰지 않고 두 손으로 무언가를 공손히 들고 있는 모습이다.

조선시대에는 묘지 내의 석물 설치에 제한을 엄격하게 두었기 때문에 동자상은 학문적 업적이 뛰어났으나 벼슬에 오르지 못한 경우나 당하관 이하의 경우에 동자석상을 세웠으며, 문관상 보다 크기가 작은데 이는 묻혀있는 사람의 신분과 무관하지 않다.

동자상이 묘의 석인상으로 조성된 것은 16세기 이후로 볼 수 있다.

동자상의 기원은 도교와 불교의 동자상에서 찾을 수 있으며 초안산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동자상은 대체로 쌍상투 또는 민머리이며 옷을 입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하였다. 이것은 조선시대 사찰에 조성된 동자상의 도상과 일치되는 것이다.

 

 

문인석(文人石)

크기

90cm~190cm

원래위치

노원구관내[염광학원 내 야외음악당(6), 경춘선철도변(1), 영축산등산로(3), 상계동수락산도선사입구(2), 수락산등산로(1)]

형태

-복두공복(幞頭公服)을 입고 두 손을 모아 홀(芴)을 들고 있는 모습

-금관조복(金冠朝服)을 입고 두 손을 모아 홀(芴)을 들고 있는 모습

조성연대

복두공복(幞頭公服)을 입고 있는 형태의 문인석은 조선초~조선중기로 추정된다. 금관조복(金冠朝服) 차림의 문인석은 16세기~조선말기까지 유행한 문인석으로 추정된다.

조성유래

문인석은 무덤 앞에 세워진 사람 형상의 석물로서 중국 한나라 때부터 세워지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순장풍습을 대신해 토용을 묻기 시작한 것에서 유래되었으며 무인석, 석수와 함께 능묘를 수호하는 의미의 석물.

묻혀있는 사람이 살았던 시대에 따라 모양과 크기, 형태가 각기 다르며 그 사람이 생전에 누렸던 지위나 후손의 권세에 따라 그 크기와 조각 수준 등이 다르다.

현재 초안산 일대에 남아 있는 석인상은 금관조복 차림의 문관상이 주를 이루고 있으므로 16세기 이후부터 본격적인 묘역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물 등을 구경한 후 조금 더 나가보니 우측으로 화장실 건물이 있고 좌측으로 약수터도 보인다. 약수터로 가서 약수 한 잔을 먹어본다. 위생점검표에 비석골근린공원이라고 쓰여 있다.

 

 

 비석골근린공원에 가면 묘지석물을 볼 수 있다. 전시장의 묘지석물 모습

 

 

 비석골근린공원 들머리 모습

 

 

비석골근린공원에서 묘에 대한 공부를 마치고 이제 산행을 시작한다.

입구에 동자상 1개가 보인다. 원래 위치는 아닌 것 같고, 동자상이 오래돼서 형체가 많이 마모됐다.

 

계단을 올라서니 이내 주능선에 닿는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서 등산로가 매끈하다. 얼마안가 문인석이 나타난다. 여기저기 방치된 문인석이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넘어져 있는 망주석도 나타난다.

 

이제 등산로가 승용차도 다닐 정도로 넓어진다. 이내 통신중계탑이 나타나고, 조금 더 진행하니 체육공원이 나오고, 1분 정도 더 진행하니 헬기장이 나타난다. 이내 초안산 정상에 다시 도착한다.

 

 

 비석골근린공원 들머리에 서 있는 동자상 모습

 

 

 등산로에 설치되어 있는 안내문

 

 

 문인상

 

 

 목이 잘려나간 문인상 모습

 

 

 그나마 온건히 보존되어 있는 석물 모습

 

 

정상에서 직진하면 헬기장을 거쳐 녹천역으로 가는 방향이라 창동 쪽으로 진행하기 위해 좌측으로 진행을 한다.

 

이내(정상에서 2분) 이정표(↑주공4단지, ←창3동주민센터, ↓월계동)가 세워져 있는 삼거리가 나와 직진(주공4단지 방향)한다.

이곳도 등산로가 매우 뚜렷하고 잘 나있다. 계속해서 운동시설물 등이 나타난다. 예전에 성남시계를 종주할 때 분당의 산을 지나면서 봉우리마다 체육시설물을 해 놓아서 그렇게 분당사람들을 부러워했었는데 이곳에 와보니 분당사람들 못지않게 이곳에도 곳곳에 운동기구 등을 설치해놓아서 괜히 분당사람들을 부러워했었다. 근데 필자는 노원구민인데….

 

초안산은 노원구(월계동)가 2/3, 도봉구(창동)가 1/3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데 도봉구 쪽이 능선 상에 운동기구 설치를 잘 해놨고, 산행들머리는 노원구가 근린공원 등을 설치해놔서 여가활동을 즐기기가 좋다.

 

정상에서 각종 운동기구 등이 있는 능선을 15분 정도 내려가니 생태육교(초안산교)가 나와 생태육교를 건너가보니 다시 이정표가 나와 등산로가 계속 이어지는데 이후 이어지는 등산로는 나중에 답사하기로 하고 우측의 도봉문화정보센터로 내려감으로써 실질적인 산행을 마쳤다.

포장도로를 따라 8분을 진행하니 녹천역이 나오고, 이후 20분을 더 걸어가 집에 도착했다.

 

예전에 경주 남산을 답사할 때 산 능선 곳곳에 각종 불상 등이 널려 있었는데 이곳 초안산은 산 곳곳에 각종 석물 등이 널려 있어 많이 비교가 된다.

 

집에서 시작하여 두 능선을 연결한 초안산 산행은 여기 저기 볼 것 다 보고도 3시간 걸렸는데 한 코스 만 선택하면 1시간 정도 걸릴 것 같다.

초안산은 각종 석물 등을 공부한 산이었다.

 

 

 생태육교(초안산교) 모습

 

 

7.특기사항

①집에서 시작해서 집으로 되돌아옴.

②초안산을 X자로 산행함. 녹천역→정상→동문교회 코스를 산행한 후 걸어서 이동한 후, 덕원영양탕에서 다시 산행을 시작하여 비석골근린공원을 답사한 후 남릉을 거쳐→초안산→북릉→생태육교→도봉문화정보센터로 하산하여 녹천역을 거쳐 귀가했음.

 

 

8.이미지 감상

 

초안산 1

초안산 2

초안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