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전라·제주 여행

꽃무릇(석산화)을 찾아서

약초2 2007. 9. 27. 21:31

 

꽃무릇 찾아서


1.날     짜: 2007년 9월 22일(토요일)

2.날     씨: 초반-구름, 중반-약한 비, 후반-비(백수해안도로에서부터 약한 비 시작)

3.참가인원: 2명


4.일정 및 코스

▶집(중계동)→내부순환도로→서해안고속도로→함평나들목→23번국도(영광방향)→백운리삼거리(838번도로)→용천사

용천사 꽃무릇 구경

▶용천사→838도로→23번국도→불갑사

불갑사 꽃무릇 구경(불갑산 꽃무릇 축제)

불갑저수지

원불교영산성지

백수해안도로(77번국도)

▶법성포 백제불교 최초도래지

▶법성포→22번국도→고창 학원농장

학원농장(메밀꽃단지)

선운사

▶선운사→선운산나들목→서해안고속국도→성산대교→내부순환도로→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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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한 도로지도

 

 

5.여행후기

요즘 꽃무릇이 한참이라 추석 명절 교통체증을 감수하더라도 꽃무릇을 보기위해 친구하고 함께 이른 새벽에 출발한다(01:00).

내부순환도로를 거쳐 성산대교를 건너 서해안고속도로를 진행하는데 예상과는 달리 차량 소통이 원활하여 기분좋게 내려가는데 당진 지나 3차로가 2차로로 좁아지면서 잠깐 정체가 되더니 이내 금방 소통이 된다.

얼마간 진행을 하니 졸리워 군산휴게소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일어나서 진행하여 함평 나들목을 빠져 나온다.

함평 나들목에 「용천사 16km」라고 쓰여 있다.


함평 나들목에서 조금 진행하니 23번 국도가 나온다. 좌회전(영광방향)하여 계속 직진하여 진행하다 백운리 삼거리에서(용천사 7km) 우회전하여 838번 지방도로를 진행하는데 도로 가장자리에 꽃무릇이 가로수처럼 계속해서 나타나는데 보기가 참 좋다. 굳이 용천사 까지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길가가 온통 꽃무릇 천지다.

도로가에 핀 꽃무릇을 실컨 보면서 진행하니 어느새 용천사 진입로 앞 삼거리에 닿는다. 「용천사 3km」라고 쓰여 있다.

좌회전하니 꽃무릇과 좌우로 용(龍)이 있는 대형 아치가 가장 먼저 반기는데 그냥 갈 수 없어 기념사진 한 장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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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천사 가는 길

 

 

용천사를 향해 다시 출발하는데 곧바로 꽃무릇공원이 나타나고 길가에 멋진 돌탑들도 환영한다. 우측으로는 용(龍)분수대가 반긴다.

곧바로 비포장의 주차장에 닿아 주차를 시킨 후 용천사로 올라간다.

용천사 일주문에 들어가기 전의 우측 사면은 온통 꽃무릇 천지다.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삼각대를 세우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일단 먼저 용천사를 구경한다.



용천사(龍泉寺)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 모악산(母岳山)에 있는 사찰.

종파: 대한불교조계종

창건시기: 600년

창건자: 행은

소재지: 전남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600년(백제 무왕 1) 행은(幸恩)이 창건하였다. 절 이름은 대웅전 층계 아래에 있는 용천(龍泉)이라는 샘에서 유래한다. 이 샘은 황해로 통하며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645년(의자왕 5) 각진(覺眞)이 중수하고, 1275년(고려 충렬왕 1) 국사 각적(覺積)이 중수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세조와 명종 때 중수하여 큰 절로 성장하였다. 《용천사대웅전현판단청기》에 따르면 전성기에는 3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한다.


1597년(조선 선조 30)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1600년(선조 33) 중창하였고, 1632년(인조 10)에는 법당을 새로 지었다. 1638년(인조 16)과 1705년(숙종 31)에 중건하고, 1938년에 중수했으나 1950년 6·25전쟁 때 모두 불에 타 없어졌다. 1964년에 금당이 옛 보광전(普光殿) 자리에 대웅전을 새로 세우고, 요사채도 지어 절의 면모를 바꾸었다. 1996년에 대웅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범종각·웅진당·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는 용천사석등과 해시계 등이 전한다. 이 중 1981년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84호로 지정된 석등은 높이 2.38m로 1685년(숙종 11)에 제작된 것이다. 짜임새가 투박하지만 하대석에 거북이 조각되어 있다. 해시계는 석등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6·25전쟁 때 잃어버렸다가 1980년 경내 흙더미 속에서 발굴된 것이다. 본래는 높이 14cm, 가로 세로 각 39cm의 정사각형이었으나 지금은 절반이 떨어져나간 상태이다. 하지만 낮 시간에 해당되는 묘시(卯時)부터 유시(酉時)까지는 남아 있어 사용하는 데는 이상이 없다고 한다. 그밖에 대웅전에는 18세기 때 조성된 후불탱화가 있었으나 2000년 5월에 도난당하였다.


용천사에 들어가기 위해 돌계단을 올라가는데 좌우측으로 꽃무릇이 많이 피어있다. 금강문을 통과하니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84호인 「석등」주변에 꽃무릇이 많이 피어 있다.

절 내부을 한 바퀴 돈 후 좌측으로 빠져 나가 꽃무릇 군락지를 보고 있으니 눈이 부시다 못해 세상이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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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천사 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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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천사

 

 

꽃무릇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붉은 상사화로 알려져 있다. 상사화와 같이 수선화과에 속하지만 상사화는 봄에 잎이 피고 잎이 떨어진 뒤에 7~8월에 노란색 꽃이 핀다.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므로 상사화란 이름이 붙었다.

꽃무릇도 상사화처럼 잎과 꽃을 동시에 볼 수 없지만 꽃무릇은 꽃이 먼저 9~10월에 피고 꽃이 진 뒤 잎이난 뒤 겨울을 지나고 5월경에 떨어진다. 그리고 꽃 색깔도 붉은 색이다.

꽃무릇은 꽃이 피는 무릇이란 뜻이며 무릇은 백합과의 야생화다. 물론 꽃이 피지만 꽃이 작고 큰 특색이 없다. 무릇과 매한가지로 꽃무릇도 백합 뿌리와 비슷한 구근이 있어(학술적으로 비늘줄기라 부른다 한다) 꽃이 화려한 꽃무릇을 그리 부르게 된 것이다.

아마 꽃이 별 볼일 없으면 개무릇이라 불리우지 않았을까.


군락지에서 벗어나 내려오니 각종 행사장의 주무대가 나오는데 나비 형상으로 되어 있다. 주무대와 개석을 지나니 천연잔디가 넓게 깔려있는 가족운동장이 나오고, 식당 몇 군데가 눈에 띈다.

그럭저럭 다 본 것 같아 주차장으로 되 돌아와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려는데 아까 미처 못 본 야생화단지를 구경하려고 길 가장자리에 잠시 주차를 하고 잠깐 위로 올라가는데 이곳에서 바라본 용천사 부근이 온통 빨갛다. 이곳 야생화단지도 멋지게 조성되어 있어 한번쯤 보고 갈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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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천사와 불갑사는 능선(영산기맥)을 두고 남북에 위치하고 있다

 

 

왔던 길로 되돌아 나와 23번 국도에서 이번엔 우회전하여 지경재(함평과 영광의 경계. 영산기맥 고개)를 넘어 불갑면소재지에서 불갑사 이정표(축제기간이라 이정표가 많이 붙어 있다) 따라 우회전하고, 조금 더 가서 다시 우회전하여 직진하니 불갑사에 도착한다.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아직 아침식사도 못해서 똑같이 생긴 식당들이 즐비한 불갑사 입구의 식당촌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아무집이나 들어가 아침식사를 하고 나온다.


아직 공식행사가 시작이 안돼서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사람들이 움직이고 아직까진 여유가 있다.

곧장 진행하여 불갑사를 향하는데 이곳의 주변은 온통 잔디밭이라 보기가 참 좋다. 좌측으로 꽃무릇이 나타나는데 용천사 보다도 더욱 더 많은 꽃무릇이 나타난다. 이러한 꽃무릇은 불갑사 가기 전에 많고 불갑사 경내엔 꽃무릇이 거의 없다. 능선으로 올라야 군락지가 다시 나타나는데 등산은 나중에 영산기맥 종주할 때를 기약하기로 하고 되돌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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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갑산 상사화 축제 애드벌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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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갑사의 꽃무릇(석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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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830호인 불갑사 대웅전의 모습

 

 

불갑사(佛甲寺)

불갑산 기슭에 자리잡은 불갑사는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에 인도승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래하면서 제일 처음 지은 도량으로 우리나라 불교의 효시가 되는 곳이다. 자연스러운 돌계단을 올라 처음 마주하게 되는 천왕문 안에는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다. 대부분의 불상들이 건물 정면에 앉아 있으나 불갑사의 부처는 대웅전의 왼쪽에 동향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보물 제830호로 지정된 대웅전과 만세루, 명부전, 일광당 그리고 요사채가 있고, 절 뒤에는 천연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된 참식나무 군락이 있다.

불갑사 이름의 유래: 백제에 불교가 처음 들어올 때 불교 의미의 부처 불(佛)자와 육갑의 천간인 첫째 갑(甲)자를 따서 불갑사라 하였다고 한다.


불갑사 구경을 마치고 조금 진행하니 불갑저수지가 나온다.


불갑저수지 수변공원

광주 ․ 전남 최대규모의 수변공원으로 조성된 이곳은 인공폭포와 풍력오색경관 등의 야경은 다정한 연인, 가족 등과 함께 드라이브 코스 및 휴식처로 각광을 받을 뿐 아니라 제방에는 건가을 도모할 수 있도록 200m에 걸쳐 지압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저수지에는 빙어가 서식할 정도로 맑고 깨끗하며, 낚시터 및 수상스키장으로도 유명하다.


저수지의 인공폭포 앞에서 사진 한 장 찍고 출발한다.

얼마간 진행을 하니 원불교 영산성지가 나와 잠시 주차를 한 후 구경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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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최초의 교당인 영산원 모습

 

 

원불교 영산성지(圓佛敎 靈山聖地)

원불교의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이 태어나 구도의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교화를 시작한 곳이다. 이곳에는 구호동 집터, 대종사 탄생가, 산신령을 만나기 위해 기도 드렸다는 바위, 대종사가 한나절이나 서서 입정에 들었던 진포, 최초의 법어를 설파한 범현동 이씨 제각, 최초교당인 구간도실터, 큰 깨달음을 얻은 노루목 대각지, 제자들과 함께 바다를 막아 이룬 정관평, 구인 기도봉 등과 영산선원이 있다.

개법 성지인 이곳에는 대종사의 생가, 기도터인 삼밭재, 마당바위, 대각을 이룬 노루목, 제자들과 함께 바다를 막아 이룬 정관평 방언답 등이 있어 성지 순례차 전국의 많은 교도뿐만 아니라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

원불교는 영광군 백수읍 길룡리 영촌마을에서 태어난 소태산 박중빈(1891~1943)이 창시한 종교로 세계에 500여개의 교당과 100만 신도가 있다고 한다.


 

원불교 영산성지를 나와(영광군에는 백제불교 최초도래지, 원불교 영산성지, 기독교인 순교지의 3대 종교문화와 내산서원(유교)이 있다) 조금 진행하니 백수해안도로가 나온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팔각정(3층의 七山亭)에 올라 아래 경치를 보니 과연 아름다운 길 100선 중 9위에 뽑힐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쉽게도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멋진 조망은 못 봤지만 그래도 참 잘 왔다는 생각을 한다.

 

 


백수 해안일주도로

원불교 영산성지를 지나 시원하게 보이는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17km의 해당화 길, 해수욕장과 바다낚시, 거북바위, 모자바위 등 기암괴석과 칠산도, 낙조 등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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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해안도로 모습(칠산정에서 촬영했다)

 

 

백수 해안도로 바로 앞에 있는 법성포항을 향해 이동한다. 법성포항에서 굴비로 점심을 먹고 백제불교최초도래지 구경에 나선다. 물론 우산을 받쳐 들고 구경에 나선다.


백제불교 최초도래지

-백제불교 최초도래지 영광 법성포

영광 법성포는 마라난타 존자께서 중국 동진에서 해로를 통해 백제에 입국할 때 최초로 당도하여 불교를 전파하였던 곳입니다.

법성포의 백제시대 지명은 「아무포(阿無浦)」로서 「아미타불」의 의미를 함축한 명칭입니다. 그 후 「성인이 불법을 들여온 성스러운 포구」라는 뜻을 명확히 하여 법성포(法聖浦)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법성포는 불연(佛緣)이 깊은 고장이며, 한국의 불교문화사적, 정신문화사적으로 매우 유서 깊은 곳입니다. 영광군에서는 법성포에 문화적 역사성을 구체화하여, 후세에 길이 남겨질 수 있도록 「백제불교최초도래지」라는 기념비적 명소를 조성하였습니다.


-전법의 신승 마라난타 존자

인도 간다라 출신 승려 마라난타 존자는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 동진에 이르렀으며, 384년(백제 침류왕 원년) 백제에 도래(渡來)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해동고승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해동고승전에는 「석 마라난타는 인도 출신의 승려이다. 그는 신통한 힘을 지녀 온갖 일을 해내는데, 그 능력을 헤아릴 수 없었다. 스님은 불교를 전파하는데 뜻을 두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교화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마라난타 존자의 불교전래로 인하여 백제에 불교가 빠르게 널리 전파되었으며, 옹혼하고 찬란했던 백제불교문화의 서막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백제불교최초도래지 주요시설

-사면대불상(四面大佛像)

아미타불을 주존불로 모시고 관음세지보살을 좌우보처(補處)로, 그리고 마라난타본자가 부처님을 받들고 있는 모습을 다른 한 면에 배치한 사면불로서, 약식 석굴사원 형식을 띤 독특한 형태의 간다라 양식 사면대불(높이 23.7m)이 세워져 있습니다.

※아쉽게도 현재 보수공사 중이라 실체를 구경 못했다.


-부용루(芙蓉樓)

참배 및 서해 조망용 누각으로서 1층 석벽에는 간다라 양식의 불전도 부조 조각이 23면에 걸쳐 부처님의 전생 인연담과 일대기가 생동감있게 조각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탑원(塔園)

간다라 지역 사원 유구(遺構) 가운데 가장 잘 남아있는 탁트히바히 사원의 주탑원을 본떠서 조성한 탑원으로서, 마라난타존자의 출신지인 간다라 사원 양식의 대표적이고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징문(象徵門)

백제불교최초도래지의 일주문 역할을 하는 기념물로서, 간다라 양식의 건축 개념을 도입하여 건립된 불교도래지의 상징적 이미지를 입구에서부터 느낄 수 있도록 세워져 있습니다.


-간다라 유물관(遺物館)

대승불교문화의 본 고장인 간다라의 2C~5C경의 불전도 부조 및 불상등 진품 유물을 전시하여 간다라 불교 문화예술의 특징적 요소를 직접 관람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하였으며, 그 건축양식도 간다라 건축 요소를 담아내도록 하였습니다.

<영광군 「백제불교최초도래지」 홍보책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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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성포에 있는 백제불교 최초도래지 내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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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불교 최초도래지 내의 시설물

 

 

아쉽게도 비가 내려 좋은 조망은 못 봤지만 넓은 부지에 잘 조성이 되어 있고 바다를 볼 수가 있어서(아쉽게도 밀물 때라 갯벌이 많이 드러나 있었다) 좋았다.


이제 메밀꽃을 보려고 영광군을 떠나 고창군으로 향한다. 영광군과 고창군은 바로 이웃한 군인데 서로 도가 다르다. 영광군은 전남, 고창군은 전북이다.


학원농장

전북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 산119-2

063-564-9897 대표: 진 영호

전 국무총리 진의종씨와 부인 이학 여사가 1963년 10월 개설했고 장남 진영호가 대를 이어 1992년 5월부터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1994년 4월 관광농원 지정을 받았고, 2004년부터 매년 봄 「고창청보리밭 축제」의 개최지가 되었으며, 2004년 12월에는 학원농장 일대가 「경관농업특구」로 지정되었습니다.

2005년부터는 농장주변마을들과 함께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이 5개년 계획으로 추진되고 있어 학원농장과 주변 마을들은 더욱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변모해가고 있습니다.


-봄: 청보리밭 축제

광대한 구릉지대에 펼쳐지는 끝없는 보리밭에서 봄바람에 일렁이는 싱그러운 보리물결을 즐기려 많은 내방객들이 오시므로 이때에 맞쳐 4~5월 중 약 30일간 학원농장 잔디광장을 중심으로 축제를 진행합니다.

「보리밭 사잇길 걷기」「보리피리 만들어 불기」「보리밭속 음악감상」등 학원농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체험등과 잔디광장에서 펼쳐지는 민속공연과 놀이등을 즐길 수 있습니다.



-여름: 해바라기 꽃잔치

한여름에는 해바라기 꽃잔치가 됩니다.

해바라기 꽃밭속에도 산책길을 내어 밀림 속을 걷는 기분도 맛볼 수 있습니다.


-가을: 메밀꽃 잔치

학원농장과 주변 농가가 만드는 메밀꽃밭은 전국 최대의 규모이며 주위의 풍경과 어울려 최고의 농업경관을 만들어 냅니다. 메밀꽃은 9월에 피어야 정상적으로 수확을 할 수 있는데 일부는 수확감소를 각오하고 늦게 파종하여 10월에도 꽃을 즐길 수 있도록 합니다.

<학원농장 팜플렛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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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학원농장의 메밀꽃 단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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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농장에서 촬영한 작품들

 

 

비가 내려서 불행 중 다행이라 넓은 메밀꽃을 승용차를 끌고 거의 다 답사할 수가 있었다. 도로 폭이 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곳이 대부분이어서 축제 때나 날씨가 좋을 때면 넓은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걸어 다녀야 한다.

걸어 다니려면「어휴~」


비가 오는데도 그래도 영화 촬영을 하는지 몇 몇 사람들이 메밀밭 한 가운데에 웅성거리고 있다.

날씨가 좋을 때 다시 한 번 기약을 하고 마지막 행선지인 선운사를 향했다.

비가 더욱 더 많이 내린다.

그래도 꽃무릇 3사(寺)[용천사, 불갑사, 선운사]의 마무리을 못하면 찝찝할 것 같아 선운사를 향해 이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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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의 꽃무릇(석산화)

 

 

선운사에 도착을 하니 아직 해가 떨어지려면 시간이 남았는데 비가 내려 어두컴컴하다. 선운사 입구의 꽃무릇을 보니 용천사나 불갑사의 꽃무릇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개체수가 적다. 어두워지기 전에 가볼 때까지 가보자 하며 선운사 입구에 가니 아직까지도 입장료를 징수하기에 여기서 발걸음을 돌려 다시 주차장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2층의 전통자수 하는 곳을 잠시 구경하는데 그만 입이 다물질 못한다. 너무나 멋지다.

고창전통자수 3대의 솜씨가 너무나 환상적이다.


이제 귀가길에 오른다. 선운사나들목에서 서해안고속국도를 이용하여 새벽의 역방향으로 진행하여 귀가했다.

벽의 시계가 저녁 10시 30분을 가르킨다.

[끝]


 

 

못다 이룬 사랑 상사화


스님과의 안타까운 연정을 간직하고 잎도 없이 피어나는 연분홍 절꽃


여름이면 사찰 화단이나 시골집 오래된 정원 한 켠에서 간혹 상사화 꽃을 볼 수 있습니다. 연분홍빛 꽃송이들이 얼마나 고운지…. 이 식물은 꽃이 필 때는 잎이 나지 않고 잎이 날 때에는 꽃을 볼 수 없어, 즉 만날 수 없는 서로를 그리워 한다 하여 상사화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래서 이 꽃에 붙여진 사연도 절절한데, 세속 여인을 사랑한 스님이 만날 수 없는 여인을 그리워하며 절 마당에 심었다고도 하고, 반대로 스님에 대한 사모의 정을 키우던 여인이 수도중인 스님의 방 밖에서 그리움만 키우다 된 꽃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꽃을 주로 절에서 볼 수 있다는 점, 꽃의 이름과 사연, 그리고 아름다우면서도 은근한 그 자태가 모두 한 느낌으로 와 닿습니다.


하지만 상사화는 알고 보면 이렇듯 애절하고 수동적인 식물이 아니랍니다. 더러 사람도 알고 보면 선입견과 전혀 다른 모습일 때가 있듯이 말입니다. 우선 상사화의 잎과 꽃은 서로를 그리워할 리가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듯 식물에 있어서 꼭 만나야만 하는 대상은 잎과 꽃이 아니라 암술과 수술(식물에 따라서는 암꽃과 수꽃)이기 때문입니다.


상사화는 살아가는 방식도 다릅니다. 아주 살이 많이 찐 부추 같기도 하고 양파 같기도 한 새순이 봄에 삐죽 올라오다가 이내 초록빛이 무성하게 포기를 만듭니다. 그만큼 열심히 광합성을 하여 알뿌리에 양분을 비축한 것이지요. 그러다가 여름이 시작되고 어느 날 문득 바라보면 땅위에서 사라져 버리지요.


긴 장마도 그치고 여름이 무르익고 있다고 느낄 즈음, 다시 어느 순간 쑥 꽃대를 올려 보내 꽃을 피웁니다. 물론 잎도 없이. 꽃대 하나마다 여러 송이의 큼직한 꽃송이들이 사방을 향해 달려 한 포기를 이루면 너무 예뻐 그 앞에 발길을 멈추지 않을 수가 없지요. 상사화는 사라지고 나타나는 방식도 극적일 뿐 아니라, 한 계절 비축했던 것을 소진하며 한 여름을 자신의 계절로 마음껏 향유하겠다는 당돌함이 마치 신세대를 보는 것 같습니다.


더욱이 상사화는 사람의 손에 의해 키워진 지 너무 오래된 탓에 본성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사람의 입장이 아닌 식물 입장에서 꽃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열매를 잘 맺지 않을 뿐 아니라, 열매가 달린 듯해도 후손이 될 씨앗은 여물지 않습니다. 이루지 못할 사랑을 그리워하다 죽어가는 그런 소극적인 절꽃은 아닌 것이지요.


그런데 왜 절에 많냐고요? 사연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상사화 알뿌리의 방부효과 때문입니다. 불경을 만들 때 종이를 배접해 책을 묶는 데 쓰는 접착제에 넣거나 탱화를 그릴 때 섞으면 좀이 슬거나 색이 바래지 않게 해주니 항시 곁에 심어두고 이용했던 것이죠.


상사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는 것이 병이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그냥 보기만 해도 고운 상사화 분홍 꽃빛을 넋 놓고 바라보며 이제는 아련해진 첫사랑의 추억에나 빠져드는 것이 더 좋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상사화는 초여름에 무성한 잎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지만 여름이 한창일 즈음, 다시 어느 순간 쑥 꽃대만 올려 보내 꽃을 피웁니다.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본문 중에서 / 이유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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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노랑상사화(원산지: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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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화 꽃(원산지: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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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화 꽃(원산지: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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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노랑상사화(원산지: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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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석산화. 원산지: 일본)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진노랑상사화

사무친 그리움에 아름다움 더하고


‘여름, 책의 향연’이라는 제목으로 한 서점이 주최한 행사에 참여했다. 숲을 주제로 고객들과 대담을 하는 행사였다. 마치 나무가 가득 찬 숲처럼 책들로 가득찬 곳에서 희귀식물을 찾듯, 마음에 드는 책들을 고르고 같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잔잔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참으로 행복하였다.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면서, 몸도 마음도 지치기 쉬운 날들을 견디다 보니 왜 사람들에게 여름 휴가가 특별히 필요한지가 느껴진다. 또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쾌적한 곳에서 책을 읽는 것도, 뜨거운 태양을 한 몸에 받으며 길을 떠나는 것도 모두 좋은 방법이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혹시 여름을 탈출하여 떠나는 길의 방향을 남도로 잡았다면, 불갑사 경내에 피어있을 진노랑상사화 구경을 꼭 한번 권하고 싶다. 물론 이 아름다운 꽃은 내장산이나 백양사, 고창 선운사같은 곳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딱 이즈음, 불갑사 경내가 가장 아주 쉽게 만나지기 때문이다. 혹 이곳에서 진노랑상사화에 마음을 빼앗겼다면 아예 이 여름 여행의 주제를 이 꽃으로 하여 아름다운 사찰구경을 함께 떠나봄이 어떨지.


이야기를 시작하고 보니 상사화도 아니고 진노랑상사화란 이름이 좀 생소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식물은 우리 땅에서 자란 것은 아주 오래이고, 더욱이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특산식물이지만, 식물학자들이 비슷한 종류의 식물과 비교하여 새롭게 다르다는 것을 찾아내고 비교적 최근에 새 이름을 붙여준 식물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집안의 상사화는 꽃색이 연한 분홍색이고(요즈음 상사화 꽃도 한창 피고 있다), 백양꽃은 주황색이며, 꽃무릇이라고도 부르는 석산은 진한 주홍색이어서 진한 노란 빛의 꽃을 피우는 진노랑상사화와는 한 번에 구별할 수 있다.


하지만 상사화와 같은 특성을 가진 점도 많다.(하긴 같은 집안 식물이니까 당연히 그렇겠지만) 우선 상사화란 이름의 유래처럼 꽃이 필 때는 잎이 없고 잎이 필 때는 꽃이 없는 것이 같고, 꽃잎이 갈라져 펼쳐지는데 백합과 식물들과는 달리 한쪽이 깊게 패이고 벌어져 마치 부채살이 펼쳐지듯 꽃이 피는 것도 같으며, 사찰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같고. 땅속에 있는 비늘줄기를 약으로 쓰는데 많은 알카로이드가 함유되어 있어서 그냥 먹으면 독이 될 수 있고 잘 쓰면 약이 되는 식물로 해독, 가래 제거, 종기, 소아마비와 같이 마비로 인한 통증과 같은 중상에 처방한다는 점도 같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아는 상사화나 석산의 고향은 중국인 반면 이 식물은 우리만의 꽃이라는 점이 정말 좋고 그래서 아름다운 원예식물로 개발해도 더욱 가치가 있어 더 좋다.

진노랑상사화는 여러해살이 풀인데 잎은 늘어지니 꽃자루가 올라왔을 때가 가장 큰 키라고 할 수 있는데 한 60cm 정도 된다. 잎은 봄에 나왔다가 지고 지금쯤 꽃대를 올려 그 끝에 몇 개씩의 큼지막한 꽃송이를 사방으로 매어 단다.


불갑사엔 이 진노랑사상사화가 질 무렵, 다시 새롭고 붉은 꽃 무리들이 장관을 이룬다. 바로 그 유명한 석산이다. 그쯤 되면 이 무서운 무더위는 다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불갑사에서 의미있게 볼 것이 어디 이뿐이랴. 스님과 공주의 사연을 담은 천연기념물 참식나무는 겨울이 되어도 그 푸른 잎과 붉은 열매를 여전히 달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아! 세월은 빨리도 간다.

<인터넷에서 발췌>